2019년 02월 22일 나눔 녹음
서론
모세의 이야기는 정말 놀랍습니다! 그가 한 일은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하던 땅에서 이끌어 냈습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실제로 이집트에서 나왔다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이 나올 때 빈털터리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의 금붙이와 은붙이, 옷과 재물을 모두 빼앗아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의 집마다 사람이 죽었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집안의 재물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 땅에서 나왔습니다. 그 모습을 우리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싱가포르의 인구는 오백만 명이 넘고,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삼백만 명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계산한 것일까요? 젊은 사람들 중 칼을 들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육십만 명이었고, 위로는 노인이 있고 아래로는 어린아이가 있으니 계산해 보면 삼백만 명 정도가 됩니다. 정확히 사백삼십 년이 되는 바로 그날, 삼백만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르르 이집트에서 나왔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아마도 차마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집에서 반죽이 아직 발효되지도 않았는데 천으로 싸서 이집트 땅을 떠났습니다. 이것이 무슨 군대와 같습니까? 전혀 군대 같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군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출애굽기》 12:40-41)
여호와의 군대가 모두 이집트 땅에서 나왔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군대라는 개념을 여러분도 이제부터 세워 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처음 이집트 땅에서 나왔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단순히 백성들의 무리라고 부르지 않으시고 여호와의 군대라고 부르셨습니다. 군대는 전쟁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군대가 없는데 어떻게 싸울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와서 한 나라를 세워야 했습니다. 나라를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국가 기관은 군대입니다.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오자 모세는 그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아갔습니다. 걷고 또 걷다가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길을 갈 때 낮에는 구름기둥이 있었고 밤에는 불기둥이 있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빛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앞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빛을 주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애굽기》 13:21-22)
하나님은 그들을 홍해로 가는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방향을 잘못 잡은 것 아닙니까? 하나님,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시려는 것 아닙니까? 이집트에서 가나안까지는 아주 가깝습니다. 많아야 사흘이나 닷새면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싸워 승리해야 약속을 얻는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출애굽기》 13:17-18)
다시 말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가서 싸우도록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쫓아내야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지만, 이미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모세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군대를 세워 가나안 땅으로 가서 그 땅을 되찾아야 했을까요? 이 일에서 제가 받은 감동과 깨달음은 매우 깊었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왜 모세가 군대를 이끌고 싸워서 차지해야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한숨만 내쉬셔도 가나안 땅의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이 모두 사라지게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편안하게 들어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누리려면 반드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싸우지 않으면 약속의 땅을 얻을 수 없습니다. 누가 싸우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염려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싸워야 한다고 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광야 길로 가게 하셨을까요? 사람이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싸움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모세의 이야기는 모세가 당시 왜 이런 말씀을 기록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그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뜻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싸워서 이겨야 약속의 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고, 전쟁을 만나면 후회합니다. 이것이 보통 사람의 마음입니다. 싸우는 것이 두렵다면 광야로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길은 우리가 싸우려는 마음가짐과 관계가 있으며, 한 그리스도인의 길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매우 비슷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길이 이스라엘의 역사와 매우 비슷하다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 앞서 행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싸우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걷는 길은 승리의 길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누리는 길입니다.
우리 가운데 싸워서 승리함으로써 얻는 보상은 매우 풍성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겁이 많고 싸우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요한계시록》은 매우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계시록》 21:8)
어떤 사람은 “나는 원래 겁이 많게 태어났는데, 당신이 상관할 바입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담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싸움을 두려워하면 광야에서 죽고,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갑니다. 싸움을 두려워하는지 두려워하지 않는지가 여러분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우리 가운데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 아주 고생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해 낮에는 구름기둥을, 밤에는 불기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믿음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그들을 홍해 앞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바로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 앞에 이르렀다고 보고했습니다. 이집트의 바로는 이것이 하늘이 내려 주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는 이집트의 가장 강한 정예병들을 데리고 그들을 추격했습니다.
이집트로 돌아가려는 이스라엘 백성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아득히 헤매고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할지라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출애굽기》 14:3-4)
바로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따라잡자 그들은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출애굽기》 14:11-12)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조금만 어려움을 만나도 견디지 못합니다. 오늘날 주님을 믿는 길에서 뒤돌아가는 비율이 매우 높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길은 참 흥미롭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고, 적을 보자마자 겁을 내며, 차라리 노예로 사는 것이 낫겠다고 불평합니다. 그들은 치유와 축사를 하는데, 축사를 받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축사를 받고 나서 어떤 사람은 “역시 당신들의 능력이 부족하네요! 저 사람들은 얼마나 좋은데요!”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 말할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가지고 주님을 믿으며,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 대가를 제대로 치르면 승리를 가져오고, 약속의 땅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안 됩니다. 우리 가운데서 이리저리 기웃거립니다. 승리하는 교회 안에 있고, 승리하는 마음가짐과 싸우려는 마음가짐을 갖기 시작해야 합니다. 요행을 바라고 우상을 숭배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우상을 숭배한다는 것은 무언가가 필요할 때 즉시 향을 피우면 곧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지름길을 택하려는 생각은 우리 하나님의 생각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홍해 앞에 세우시고, 우리가 매우 큰 어려움을 만나게 하십니다. 조금 어려움을 만났다고 무엇이 두렵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셨는데,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지 못하시겠습니까? 사람이 살려고 하고 죽기를 두려워하면 평생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해야 합니다. 마음속으로 두려워하고 걱정하며 앞뒤를 재고 복잡한 것만 생각한다면, 결국 내리는 결정은 “마귀와 싸우지 말고 마귀의 종이 되자”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반드시 담대한 성품이 있어야 합니다. 마귀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자식아, 나도 지금 너를 찾고 있었어!” 이런 마음가짐이 얼마나 좋습니까!
부르짖지 말고 믿으라!
모세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애굽기》 14:13-14)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의 말을 들었습니까? 그들은 계속 시끄럽게 불평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매우 너그러우십니다. 이렇게 불평하는 백성들을 만나신 여호와 하나님은 아래를 내려다보시며 믿음 없는 사람들을 보시고 매우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논리는 매우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그렇게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여러분을 이끌어 내셨는데, 오늘 조금 어려움을 만났다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도 의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출애굽기》 14:15)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하나님께 부르짖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광의 길로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마음으로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두렵습니까? 저는 나중에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두려워합니다! 사람이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면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제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이 말을 하면 저를 욕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한 가지 현상을 관찰했는데, 집에서 개 한 마리를 키울 때 그 개가 오직 주인만 경외한다면 주인이 목줄을 잡고 있을 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인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은 늑대를 훈련할 수 없습니까? 늑대는 주인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어려움을 두려워하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싸움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얻지 못합니다. 그 안에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뿌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후 죽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려 하십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 데에도 이유는 있습니다. 앞에는 건널 수 없는 홍해가 있고 뒤에서는 추격병들이 쫓아오고 있으니, 그것은 정말 죽을 길이었습니다. 만일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저도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빨리 도와주세요. 저를 도와주세요.”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좋아하실까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을 인도하여 기도할 때에는 부르짖지 않습니다. 부르짖는 것은 믿음이 없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팔을 내미신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너는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출애굽기》 14:15-18 )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출애굽기》 14:21-22 )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언제 이런 일을 본 적이 있습니까? 바닷물이 서 있다니, 전무후무한 기적입니다. 만일 제가 그곳에서 마른 땅을 걷는다고 해도 믿음이 없으면 건널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닷물이 다시 합쳐지면 끝장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물이 합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는 홍해가 있었고 뒤에는 군대가 있었습니다. 그 군대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공격하지 못한 것은 이집트 군대와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 군대가 안으로 돌진하려고 하면 곧바로 막혔습니다. 저도 이런 일을 경험한 적이 있지만, 이렇게 위대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어떤 일을 경험했을까요?
한 씨름 선수가 있었습니다. 국가대표급은 말할 것도 없고 도 단위 선수만 해도 아주 무서운데, 몸집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아마 140킬로그램이 넘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땅을 걸을 때 거대한 철탑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젊은이가 저를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제가 제어가 안 됩니다. 제 손이 말을 듣지 않고 사람을 때리려고 합니다.” 꽤 오래전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에게서 악한 영을 쫓아냈습니다. 그는 제 회의실에서 두 손바닥을 휘둘렀는데, 제 목에서 불과 20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곳까지 왔습니다. 당시 저도 무서웠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싶었습니다. 나중에 귀신이 쫓겨나자 그는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저는 그 형제에게 물었습니다. “아까 왜 내 앞에서 주먹을 휘둘렀습니까?” 그가 대답했습니다. “제 안에 있는 귀신이 목사님을 목 졸라 죽이려고 했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강력한 힘이 막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막아 주셔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큰일을 당했을 것입니다. 제 작은 몸으로는 그렇게 큰 주먹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 후로 저는 점점 더 담대해졌습니다. 키가 1미터 90센티미터나 되는 큰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태권도 고수이자 무술 사범이었습니다. 그의 다리가 다쳤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귀신이 그를 괴롭히면서 계속 원숭이권법을 썼습니다. 그 원숭이권법이 아주 멋졌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모두 저에게 일어나는 것일까요? 이 귀신은 재주도 많았습니다. 결국 그 사람은 저를 때리려고 달려들었습니다. 무술 고수가 저를 때리려고 올라오는 순간, 거대한 힘이 그를 바닥에 쓰러뜨렸습니다. 다행히 카펫이 깔려 있었고, 그렇지 않았다면 크게 다쳤을 것입니다. 저는 그에게 그때 왜 쓰러졌는지 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 귀신이 목사님을 때려 죽이려고 했는데, 보이지 않는 힘이 저를 밀어 넘어뜨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집트의 군대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삼백만 명이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고, 양쪽에는 바닷물이 벽처럼 서 있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누가 이런 장면을 볼 수 있겠습니까? 그 시대에 카메라가 있었다면 정말 대단했을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를 건넜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보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건너갔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보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를 건널 수 있다면 자기들도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들을 따라 들어갔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표적과 기사가 따른다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애굽 사람과 싸우심이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출애굽기》 14:24-26 )
일반적인 쓰나미처럼 물이 빠져나갔다가 다시 밀려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물이 다시 흘러 들어와 병거와 마병을 덮었습니다. 여러분이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이런 광경을 보고 정말 믿음이 생겼을 것 같습니까? 당연히 큰 믿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보고, 물이 갈라져 홍해의 마른 땅을 걸어서 건넜습니다. 이렇게 많은 것을 보았으니 우리에게 믿음이 생길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이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여호와의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출애굽기》 14:31 ).
이스라엘 사람들은 잠시 믿었다가 돌아서면 다시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면 바닷물이 갈라지고, 지팡이를 다시 들면 바닷물이 합쳐졌습니다. 여기서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존귀하게 여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지도자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 손에 권세가 있고,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말한 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가 바다를 향해 지팡이를 든 것은 권세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권세를 우리 손에 맡기셨습니다. 지팡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에 따라 선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마가복음》 16:17-18 )
손으로 뱀을 집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모세의 손에 있던 지팡이는 뱀이 변하여 된 지팡이였습니다. 우리 손에도 권세가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특별한 일입니다. 뱀도 우리 손에서 지팡이로 변하고, 권세의 상징으로 변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를 건넌 사건이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입니다. 인터넷에는 표적과 기사를 통해 세워진 믿음은 견고하지 않다는 관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를 건넌 일을 생각해 봅시다. 홍해를 건너지 못하고 이집트 군대에게 붙잡혀 돌아갔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이 계신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겠습니까? 표적이 있어도 믿음이 없었는데, 표적이 없다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신학적 관념에 미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표적과 기사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표적과 기사가 믿는 사람들을 따르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표적과 기사가 따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강한 팔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보게 되는 한 가지 교훈을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결론
어떤 사람은 “그것은 모세였잖아요”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모세에게 이렇게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우리가 본받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모세와 사무엘은 구약 성경에서 나란히 언급되는 두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들은 그대로 행했고, 하나님은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모세와 사무엘, 이 두 위대한 선지자를 본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표적과 기사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기 시작해야 합니다. 제 이야기를 듣는 데 그치지 말고, 그 배후의 의미에 대해서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성경 전체에서 기적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책 표지뿐입니다. 성경은 모두 기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매우 놀랍게 변해야 하며, 표적과 기사로 가득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믿음의 사람이라면, 홍해가 여러분 앞에 놓여 있고 이집트 군대가 끝까지 추격해 온다고 해도 여러분의 손에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팡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홍해도 갈라지고 산도 평지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더 이상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믿음을 잃어버리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담대히 일어나 귀신을 쫓아내고, 담대히 일어나 싸웁니다. 성경의 약속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