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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은혜와 진리 시리즈 (2) -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이라!

2026-08-09 903 恩典和真理系列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주에는 은혜와 진리 제2강,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눕니다. 이 제목은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말씀을 통해 자유를 얻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필요합니다.

그저께 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우리 교인 중 한 분의 동창인데, 그의 딸이 심각한 우울증에 걸렸었습니다. 꽤 오래전 일인데,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 온갖 방법을 다 써도 낫지 않다가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결국 우울증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다 나은 후에 우리는 사람을 도덕적으로 얽매지 않기 때문에,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와 그의 딸은 우리 가운데서 다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진리를 추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검사를 해보니 신장 기능도 안 좋고 간 기능도 안 좋게 나온 것입니다. 심장, 간, 비장, 위, 신장을 다 검사해보면 어느 하나 성한 곳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덜컥 겁이 나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이 일이 참 흥미롭습니다. 그가 찾아와서는 처음에 자신의 병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에게 몇 마디 건넸더니, 오히려 저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유 목사님, 불교는 기독교를 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기독교는 불교를 포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습니다. 종교를 통합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미 그렇게 통합을 시도한 곳이 있는데, 바로 '일관도(一貫道)'라는 곳이며 꽤 그럴듯하게 합쳐놓았습니다. 상 위에 태상노군도 올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도 올려놓고, 석가모니도 올려놓고, 마호메트까지 올려놓은 것 같습니다. 다 올려놓으니 딱 마작 한 판 치기 좋은 조합이 되었습니다. 제가 "참 재미있는 생각입니다만, 솔직히 많은 불교인이 인생의 헛됨에 대해서는 어지간한 기독교인보다 훨씬 더 깊이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많은 기독교인이 이를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불교인들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다며 '사대개공(四大皆空)'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껏해야 '삼대개공' 수준이니, 저들보다 하나가 모자랍니다. 참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길래 제가 말했습니다. "친구여, 오늘 내가 당신에게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려주겠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는 은혜가 있다는 것이며, 그것도 풍성하고 충만하게 있다는 것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수행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 은혜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 역시 과거에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몹시 힘겨운 날들을 도저히 버텨낼 수 없을 때, 저는 절에 가서 스님의 설법을 한바탕 듣고, 도관에 가서 도사의 이야기를 한바탕 들었습니다. 주위에는 불교를 믿는 친구, 도교를 믿는 친구 등 별의별 친구가 다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이것을 내 수행으로 도달하려면 도대체 어느 세월에 하겠는가? 언제쯤이나 득도하여 열매를 맺겠는가? 차라리 이미 맺힌 열매를 따 먹는 편이 낫겠다.' 그러다 귀신을 쫓아내는 교회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 발로 걸어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귀신을 쫓는지 뭔지도 몰랐습니다. 제가 그런 것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들어가서 말씀을 듣는데 너무 좋았고, 하나님의 영이 저를 감동하게 하셔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치 방황하던 아이가 부모의 집으로, 부모의 품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참으로 포근한 느낌이었습니다. 여러분, 그 후로 제 인생은 완전히 전환되어 완전히 뒤바뀌었고 너무나도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습니다. '내가 무슨 자격이 있는가? 성경의 창세기나 마태복음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데.'

나중에 성경책을 한 권 구했는데, 그것도 영어 성경이었습니다.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스무 개씩이나 나와서 사전을 뒤적이며 기를 쓰고 읽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괘씸하게도 작은 사심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영어를 못하니 영어 공부나 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제게 은혜를 주셨고, 너무나도 많은 은혜를 베푸셔서 직장과 생활이 하나하나 전환되었으며 몸의 질병도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이 하나님이 참 좋으신 분임을 느꼈고, '은혜'라는 단어를 배웠습니다. 여러분,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이라는 찬양을 들어보셨습니까? 놀라운 은혜, 거저 주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좋으신 분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도 거저 주셨습니다. 그때는 아직 세례도 받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세례를 받지 않았을 때의 아주 큰 은혜 중 하나는 헌금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이어서, 얼른 이 기간을 틈타 헌금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우습겠지만, 아직 입교하지도 않았는데 억지로 입교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나중에 양육을 받고 세례 공부를 마친 뒤 헌금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헌금을 배우고 나니 은혜가 더욱 넘쳐났습니다.

월급이 로켓을 탄 것처럼 치솟았는데,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렇게 걸어왔기에 저는 너무나 좋았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려야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나는 아무것도 드린 것이 없는데도 그분은 거저 주셨습니다. 은혜를 받은 후 저는 기를 쓰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제가 왜 새벽 2시 전에는 거의 잠을 자지 않았는지 아십니까? 그 시절에는 낮에 출근해야 했기에 밤마다 성경을 읽었고, 때로는 새벽 2시까지 기를 쓰고 읽었습니다. 은혜가 넘쳐나니 이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구를 만나든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사람이 제 상사이든, 부하이든, 동료이든 상관없이 온종일 입이 닳도록 은혜를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게 '기독교'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멀리서 걸어오면 "기독교 온다, 기독교 온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조롱조로 한 말이었지만 저는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제가 '기독교' 그 자체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 은혜는 불교의 수행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기독교의 은혜가 얼마나 좋습니까? 거저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 거저 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닭을 들고 갈 필요도, 오리를 바칠 필요도, 생선을 끓여 바칠 필요도 없고, 과일 몇 개를 차려놓을 필요조차 없습니다. 향을 피울 필요도 없이 그저 받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형편없이 살아가는 꼴을 보시고 도저히 그냥 보실 수가 없어서 "이리 오너라, 거저 받아라" 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십시오. 우리 자신도 참 한심하지 않습니까? 때로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내뱉기도 하는데, 저 역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환난의 날, 스스로 뒤집을 수 없는 불운의 날이 닥치고 인생이 잘못되어 곁길로 빠졌을 때 하나님은 놀랍게 역사하십니다. 그렇게 역사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회개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당신을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쳐야 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첫 번째 관문이 바로 헌금입니다. 돈이 얽히면 진짜 마음이 상하기 쉬운데, 지금 생각해도 참 회개하게 됩니다. 나의 하나님은 정말 좋으신 분입니다.

은혜는 우리를 회개로 인도합니다. 죽을 만큼 괴로운 우울증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서 당신을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당신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너무 불쌍해서입니다. 불면증과 불안증도 당신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너무 불쌍해서이며, 고침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하나님이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수많은 하나님의 은혜가 풀어졌지만, 실제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 중 5%만 남아도 다행입니다.

계산해 보십시오. 5%라면, 500명이 남아있다면 실제로는 만 명을 섬긴 셈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은혜를 경험했습니까?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관절염에 걸렸다가 나은 것은 당신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허리 통증이 낫고, 망쳤던 시험에서 초능력을 발휘하듯 좋은 결과를 얻은 것도 당신이 훌륭해서가 아니며, 당신의 그 사소한 일이 대단해서도 아닙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시험을 망친 것이 하나님 편에서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에,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셔서 비록 시험을 망쳤더라도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박사 학위를 받지 못하는 것도 하나님 편에서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지만, 당신에게는 중요합니다. 학위를 못 받으면 인생이 어떻게 될까 염려하니 하나님이 졸업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 수많은 은혜는 바로 우리를 회개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당신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나서 변화되었습니까? 회개했습니까? 나이가 들수록 선악을 분별하는 마음만 날로 커져 갑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존재도 아닌데,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많은 사람이 회개하기는커녕 자신이 잘났다고 여기며, 자기 공로인 줄 알고 남을 정죄할 밑천을 삼습니다. 그 결과 스스로 진노를 쌓아 하나님의 진노와 보응의 날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을 때 그 은혜를 남용하지 마십시오. 은혜를 남용하면 보응이 따릅니다. 보응이 닥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보응마저도 은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 높은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디 소변도 못 보고, 대변도 못 보고, 걷지도 못하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게 되어서야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일찍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아, 내가 회개해야겠구나.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니 내가 돌이켜야겠다" 했다면, 어찌 체면을 중하게 여기고 그깟 사소한 일들을 대단하게 여겼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는 것이 가장 큰 손해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진노 속으로 들어가지 마십시오.

우리 가운데 한 형제가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실내 인테리어 디자이너라고 했습니다. 그가 계약을 하나 따내더니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한 건 계약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계약을 따내서 목사님께 마당 딸린 큰 단독주택(빌라)을 사드리겠습니다." 그의 말투와 기세를 보니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교만의 꼬리를 얼마나 높이 쳐들었는지 하늘을 뚫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큰 주택을 사주기를 기대하며 "하나님, 그에게 계약을 하나 더 주십시오, 하나 더 주십시오"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한 건 이후로 반년이 지나도록 단 한 건도 따내지 못했습니다. 한 달 평균 몇백 위안밖에 벌지 못해 수도세와 전기세, 전화요금을 내고 나면 밥도 못 먹고 죽을 쑤어 먹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제 큰 주택은 어디로 갔습니까? "주택이요? 목사님, 그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십시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자기가 대단하다고 착각하는 것, 사람이란 이렇습니다. 나중에 저는 매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순간 은혜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그것을 '자기 의를 세우는 것'이라고 하며, 자기 능력과 자기 손으로 밥벌이를 하려는 교만의 밑천이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한다면, 어떻게 교만할 자격이 있겠습니까? 교만할 자격이 전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면 어떻습니까? 예를 들어 제가 화인 명정 신학(중화권 명정 신학)의 창시자라고 해서 대단할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었다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다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입니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문질러지는 느낌을 겪어봐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저는 반근(8냥)은커녕 5냥도 채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8냥 근처에도 못 갑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저 또한 순간 방심하면 내가 대단하다고 여길 때가 있기에 회개해야 합니다. 차라리 정신이 번쩍 드는 책을 더 읽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참 묘합니다. 때로 세상은 박사 학위라는 것을 주어 깊은 함정을 파놓기도 합니다. 박사 학위라는 것이 실상은 깊은 함정이 되어 은혜에서 떨어지기 쉽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은혜를 베풀지 않으며, 남이 작은 실수 하나만 해도 욱하고 화를 낸다면 이미 은혜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정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대단하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순간 위험해집니다. 저는 지금도 꼬리를 내리고 사는 법을 계속해서 배워야 합니다. 꼬리를 치켜드는 순간 은혜는 사라지고 주택도 날아갑니다. 다른 사람이 꼬리를 한 번 치켜세웠다가 제 주택이 날아갔으니 어디에 하소연하겠습니까? 그저 꼬리를 내리고 행복의 기준점을 낮추어 매 순간 인생 최고의 경지를 누리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트레킹을 마치고 싱가포르의 흔한 푸드코트(식각)에 가서 차 한잔을 마실 때마다 "이것이 바로 인생 최고의 경지다"라며 사진기를 꺼내어 그 순간을 기록합니다.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 감히 생각하지 않고 꼬리를 내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 화인 명정 신학의 한마디를 꼭 기억하십시오. "모든 것이 은혜이며, 내가 섬기는 것 또한 은혜입니다."

우리 가운데 작은 목회자든, 목회 동역자든, 저를 포함하여 탈진(번아웃)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많은 교회가 3년마다 사역자가 바뀝니다. 뇌암에 걸렸던 한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 목사님, 제가 교회를 개척하고 수많은 구역을 관리하는데, 구역장들이 일주일에 두 번씩 교회에 옵니다. 한 번은 훈련받으러 오고, 한 번은 주일예배에 오며, 평일에는 집에서 소그룹을 인도합니다. 이렇게 계속하다가 어떻게 버티겠습니까?" 제 귀에는 그 말이 참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왜 번아웃이 올까요?

그들은 자기가 '공헌'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은혜'를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섬김은 은혜를 받는 것이고, 그들의 섬김은 위대한 공헌을 하는 것이니, 사역을 하다 보니 결국 하나님의 진노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하는 것도 은혜요, 섬기는 것도 은혜이며, 모든 것이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사무실 화장실이 아주 더러울 때, 저는 복권에 당첨된 사람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화장실을 청소합니다. 휘파람을 불고 콧노래를 부르니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쳐다봅니다. 화장실을 깨끗이 청소하고 나면 인생 최고의 경지에서 오는 은혜를 느낍니다. "당신의 경지는 참 높군요. 화장실까지 높아졌네요."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죄인인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그분을 섬기도록 택함받았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제 어휘력이 부족하지만, 이것은 제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라면 제가 무슨 자격으로 남을 정죄하겠습니까? 모든 것이 은혜라면 제가 무슨 자격으로 남을 판단하겠습니까? 나 역시 죄인인데, 다 같은 죄인끼리 무슨 자격으로 남을 정죄하겠습니까?

"하나님, 평생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게 하소서. 평생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날들을 살게 하시고, 영원히 주님을 떠나지 않고 주님의 약속과 은혜 안에 서 있게 하소서." 이렇게 살아가면, 목사로서 저와 같은 인생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인생 최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지는 머릿속의 걸림돌을 제거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은혜로 여긴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행복의 기준점이 낮아져 쉽게 기뻐하고 늘 행복하니 매 순간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부럽지 않습니까? 참으로 좋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은혜에서 떨어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는지 명심하십시오.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길 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잃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남은 나쁘게 보고 자신은 옳다고 여기니, 집에서 분통을 터뜨리다가 치질까지 생기는 것입니다.

은혜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자기는 다 옳고 스스로를 의인으로 세우며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의인인 척하는 것이지만, 결코 인생 최고의 경지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치질만 최고의 경지에 이를 뿐입니다. 늘 "하늘이 다 보고 계신다"라고 하는데, 그 사람 머리 위에만 계십니까? 당신 머리 위에도 계십니다.

우리 머리 위에도 하나님이 계시므로 우리는 남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남을 판단하면, 하나님은 당신이 판단한 그 기준으로 당신을 심판하십니다. 때로 우리는 착해 보이는 사람과 악해 보이는 사람을 보며 의아해합니다. 그러나 그 착한 사람이 스스로를 선하다고 여기면 악인보다 더 많은 고난을 겪게 됩니다. 그렇게 고통을 겪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람은 조심해야 하며, 이 말은 자기 자신에게만 해야 합니다. "내 머리 위에 하나님이 계시니 나는 남을 판단할 수 없다. 나는 남을 정죄하지 않고, 은혜를 받았으니 속히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 안에 서리라." 이것이 가장 복된 길입니다. 사람이 왜 어리석어지는지 기억하십시오. 자기 의를 세우고 자기 체면을 아끼다 보면 점점 미련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자주 말합니다. 여러분은 머리가 좋고 모자란 구석이 없습니다. 코 하나, 입 하나, 눈 두 개, 귀 두 개 다 있고 팔다리도 온전합니다. 그러나 은혜 안에 서 있는 그 마음의 끈 하나가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회개로 인도하는 것인데, 회개하지 않고 자기 의를 세우며 스스로 잘났다고 여기니 어리석어지는 것입니다.

머리는 다 좋은데 왜 일만 하면 틀리고, 그르치는 데에는 아주 익숙할까요? 그런 익숙함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일을 어리석게 처리하여 몹시 피곤하게 만드는 데만 익숙한 까닭은 자기 의를 세우고, 남을 판단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기 의를 세우는 데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서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101과정》은 참으로 탁월하게 쓰였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영적인 일이며, 그렇기에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은혜를 예비하셨고, 우리는 믿음으로 그 은혜를 취합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음을 믿는 것이지, 자신이 착한 사람임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착한 사람인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나서 하나님의 승리를 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승리하시면 우리는 그 뒤를 따라 들어가고, 하나님은 "네가 승리했다" 하시며 상급을 주시고, 원수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을 우리 몫으로 돌려주십니다.

이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남는 장사입니다. 세상에 이런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수행하고 싶으면 불교로 가고, 은혜를 받고 싶으면 예수 그리스도께 오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좋습니까? 저는 '도대체 누가 이렇게 똑똑해서 이토록 빈틈없고 논리가 정연한 《101과정》을 썼을까?' 생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혜로우셨던 것입니다! 제가 제 자랑을 하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지 않으셨다면 제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저는 사무실을 석 달 동안 이리저리 서성거리며 미간을 찌푸리고 고뇌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제가 미쳐가는 것 같아서 "목사님, 제발 정신 차리세요"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제가 "걱정하지 마라. 인상을 쓰는 것은 고민하고, 구하고, 두드리는 중이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매우 기초적인 《101과정》을 주셨습니다. 남의 것을 베껴온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본문 말씀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로마서 2:1-10)

기도

하나님, 우리를 다시 한번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가 곁길로 간 곳을 바로잡아 주셔서 다시 주님의 길을 걷게 하시고,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게 하옵소서. 하나님, 주님의 은혜와 진리를 다시 한번 충만히 얻게 하옵소서. 주님의 본래 뜻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선악을 분별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남을 정죄하는 데서 벗어나게 하시며, 자기 의를 세우는 데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다시 주님의 은혜를 입고 깊이 회개하여 우리를 치료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주님의 보혈로 우리의 허물을 다시금 덮으시고, 모든 재앙과 질병에서 우리를 건져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는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배경

바울이 《로마서》를 쓸 당시, 그는 로마에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에는 많은 교회가 있었고, 당시 바울은 교계의 거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의 이름만 들어도 그의 말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여겼습니다.

사람이란 때로 참 이상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면서도 상하이에서 태어나 상하이 사람이 되었다는 이유로 몹시 자부심을 느낍니다. 베이징 사람도 베이징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집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보면 다 코 하나에 눈 두 개이고, 팔다리가 멀쩡할 뿐 저보다 팔이 하나 더 달린 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선전의 도시 속 마을(성중촌)에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이 대단한 이유는 단지 어떤 지도자가 동그라미 하나를 그렸고, 그들의 집이 그 동그라미 안에 들어갔기 때문인데 마치 자신이 대단해진 줄 압니다. 벤츠를 한 대 샀다고 해서 자기가 벤츠라도 된 양 으스댑니다.

현재 선전에는 재미있는 현상이 있는데, 외지인이 현지인을 차별한다는 것입니다. 선전의 한 형제가 나눠준 이야기인데, 일하고 있으니 외지인이 "일하지 마세요. 현지인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합니까? 우리 외지인들도 좀 먹고살게 자리를 남겨두세요"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로마 사람들의 자부심이 대단했다는 것입니다. 수도에 살고 있으니 수도의 품격이 있다며 스스로 대단하게 여겼습니다. 베이징에서 택시를 타면 기사님들이 백과사전 같아서 하늘을 나는 것, 땅을 기는 것, 바다를 헤엄치는 것을 다 꿰고 국가 대소사와 국제 정세를 거침없이 분석하는 것과 같습니다. 로마는 로마 제국 전체가 아니라 로마 도시를 의미합니다. 그 수도의 자부심이 교회 안에도 그대로 들어왔습니다. 교회 안에서 우월감을 느끼며 "너는 왜 아직도 그 모양이냐?" 하고 남을 정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은혜를 조금 받고 나니 자기가 대단해진 줄 안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은혜를 받은 이후에 곁길로 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혜를 받고 나서 엉뚱한 길로 빠지다 보니 수많은 교파가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어느 교파든 처음 주님을 믿을 때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다 믿음이 깊어질수록 자기 의를 세우기 시작하고, 남을 정죄하기 시작하며, 결국 하나님의 진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흔한 현상입니다.

바울이 로마인들만을 가리켜 말한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누구를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바로 로마의 형제자매인 당신을 향한 말씀입니다. "이 사람아,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면서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아느냐?"

로마의 형제자매들은 이 서신을 읽고 나서 '왜 은혜가 사라졌는가?'라는 거대한 의문을 해결했습니다.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은 '허니문 기간이 끝났다', '하나님과의 신혼기가 지났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사실 신혼기가 지나서도 아니고 7년 차 권태기도 아니며, 은혜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자기 의를 세우고 자신이 괜찮다고 여기며, 어떤 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거저 받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자신을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목적은 회개하기 위함인데, 회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대도시에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참 피곤하게 삽니다. 자신이 박사이고, 석사 학위가 두 개이고, 학사 출신이며, 명문대(985, 211) 출신이라며 잘난 체합니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결국 완고하고 회개하지 않는 마음을 버리지 못합니다. 바울이 남에게 쓴 줄 아십니까? 로마 교회 안의 형제자매들에게 쓴 것입니다. 스스로 진노를 쌓다가 결국 하나님의 진노와 공의로운 심판의 날이 임하게 됩니다.

장담하건대 암에 걸린 사람도 생겨났을 것이고, 관절염이 나았다가 다시 붓기 시작하고, 우울증이 도졌을 것입니다. 왜 더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자기 의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이 논리 체계가 《로마서》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쓴 대상은 꼬리를 한껏 치켜세운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님, 예전에는 인테리어 공사를 잘 따냈는데 왜 지금은 안 될까요? 왜 기도해도 소용이 없을까요?" 꼬리를 너무 높이 쳐들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님, 그 사람이 제게 빌라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사업이 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디로 갔습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은 교만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회개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 줄기를 굳게 붙잡으십시오. 우울증, 관절염, 암, 신장 결석을 다시 불러들이지 마십시오.

당신이 치료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회개하라고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은혜를 받아놓고 자기가 대단한 공헌이라도 한 줄 안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일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자기 의를 세우며 남을 정죄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말고, 이제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갑시다.

이 일은 참 흥미롭습니다. 바울이 마지막으로 기록한 것은, 율법을 가졌다고 해서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가졌으면 행해야 하고, 설령 율법을 지켰다 한들 그것으로 잘난 체할 자격은 없습니다. "나는 율법을 지키는데 너는 왜 안 지키냐? 이렇게 간단한 것도 왜 못 지키냐?" 익숙한 소리 아닙니까? 우리 목회 동역자들의 말투 아닙니까?

"너는 왜 그것도 못 지키냐?"라는 말은 은혜의 언어가 아닙니다. 이런 태도는 매우 악한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은 것은 회개하기 위함이고, 다른 사람이 은혜를 받은 것도 회개하기 위함이니 우리는 다시 은혜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조문)가 아니요 영이기 때문입니다.

왜 일만 하면 틀리고, 그르치는 데 아주 익숙할까요? 영이 당신을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모자란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은혜가 결핍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는데 우리는 왜 남을 용서하지 못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는데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습니까?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갑시다. 이 일은 율법 조문에 있지 않고 영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행동하면 귀신이 찾아옵니다. 귀신이 "가기 싫다"고 해도 하나님은 "안 된다, 반드시 가서 그를 쳐서 은혜가 무엇인지 알게 하고, 고통이 무엇인지 알게 하며, 자신이 무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라"고 하십니다. 대소변을 제대로 볼 수 있는지, 걸을 수 있는지조차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 무슨 자기 의를 세웁니까?

숨을 쉴 수 있는지조차 우리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 저도 숨이 막힐 뻔한 적이 있어서 이 말씀이 제게도 응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뜻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 동창들이 자주 트레킹을 가는데, 한번은 산에서 걷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구급차도 들어오지 못해 결국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남을 정죄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며, 남의 흠을 들추지 말고 오직 자신이 회개해야 할 문제를 살펴야 합니다. 다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서십시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왜 우리의 모든 것이 은혜일까요? 그 어느 것도 우리가 받을 자격이 있어서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하고 삯을 받았다면 마땅히 받을 만해서 받은 것이지만, 이것들은 모두 거저 주신 은혜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세뇌하려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의 쓰레기를 치워드리는 것입니다. 머릿속에 쓰레기가 가득한데 어떻게 삶이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내가 당신보다 낫고 당신이 나보다 낫다고 비교해 보았자 아무 소용없으며, 분쟁만 생길 뿐 유익이 없습니다. 우리는 누가 더 철저히 회개하는지를 겨루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은혜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치유를 받은 것도 은혜요, 치유받고 일할 수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불행한 날들에서 벗어나 복된 날을 누리는 것도 은혜요, 복된 날을 누리며 섬김을 배우는 것도 은혜입니다.

사실 당신이 섬기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교회는 하나님이 붙드십니다. 지구가 멈추지 않고 태양도 멈추지 않으며, 하나님의 손은 여전히 만물을 붙들고 계십니다. 당신이 발로 지구를 힘껏 굴러본들 그 작은 체구로 지구가 흔들리기나 하겠습니까? 그러니 자신을 너무 대단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은혜임을 알면 행복감이 단번에 넘쳐납니다.

그러므로 거듭 강조합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라면 얼마나 단순합니까? 모든 것이 은혜라면 이 사람 저 사람 판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에게 어떤 단점이 있다면 그것을 은혜로 여길 수 있겠습니까? "나도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으니 내게도 저런 단점이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면 은혜는 늘어나고 판단은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모든 것이 은혜임을 안다면 교만의 꼬리를 치켜세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그 주택도 날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목사님은 왜 아직도 그 주택에 미련을 두십니까?" 하겠지만, 그가 약속했으니 기억하는 것이며 물론 농담으로 하는 말입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복을 받고 은혜를 누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어떤 것도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내가 번 돈은 다 피땀 흘려 번 돈이다"라고 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위대한 개혁 개방의 설계자가 없었다면 당신에게 기회가 왔겠습니까? 어쩌면 여전히 독재자 밑에서 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단 1전도 당신의 능력으로 번 것이 아니며, 다 은혜이고 정책의 혜택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이 은혜임을 인정하면 반드시 기쁨이 찾아옵니다. 모든 것을 거저 받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알면 원망이 사라집니다.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가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게 어떻게 은혜가 될 수 있습니까? 인생을 망친 것 아닙니까?" 망친 것이 아니라 총리가 되는 법을 배우는 수업을 받는 중입니다.

은혜는 우리를 회개로 인도합니다

당신이 요셉처럼 애굽에 팔려 가 마음이 몹시 괴롭다면, "나는 괴로워해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애굽에 팔려 가자마자 머릿속에서 수많은 소리가 들려옵니다. "끝났다, 네 인생은 완전히 끝났다. 원래는 대학에 가고, 석사를 하고, 박사를 따서 교수가 되었어야 했는데..."

요셉은 혼란스러웠습니다. "하나님, 이전에는 제가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런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너무나 괴롭습니다. 하나님, 제가 회개합니다." 은혜는 우리를 회개로 인도합니다. 모든 것을 은혜로 여기고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지 않은 것이 없음을 인정할 때 당신은 반드시 지혜로워집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스리심을 알기에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않게 됩니다. 남이 나를 한 대 치고, 째려보고, 발로 차고, 비난할지라도 "다 은혜다, 은혜다, 은혜다"라고 고백하십시오. 내 안에 여전히 요셉처럼 괴로워하는 뿌리가 남아있음을 발견하고 회개하고 또 회개하십시오.

인생 최고의 경지는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 안에 서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것은 내 노력 때문도 아니요, 내가 주인이기 때문도 아니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내가 종으로 팔려 갔을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구원을 베푸십니다. 이렇게 은혜가 있기에 마음속의 모든 고통을 잊게 됩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긍휼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곤경에 처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 눈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은 박사 학위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당신이 박사 학위를 받든 말든 하나님께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을 너무나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대학 입시 성적이 그렇게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 성적이 온 가족의 마음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십니다. 프로젝트 하나를 따내는 것이 하나님께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당신에게 큰 영향을 주기에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은혜는 우리를 회개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은혜를 받을 때마다 속히 회개하고, 10년이고 8년이고 평생토록 회개를 멈추지 마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일이 하나님의 일이 되어, 하나님께서 승진도 시켜주시고, 작은 자원을 주셨다가 더 큰 자원을 주시고, 마침내 아주 큰 자원을 맡겨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마는,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셔서 우리가 번성하게 살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겪든지, 요셉처럼 애굽에 팔려 가든, 남에게 사기를 당하든, 직장 경쟁에서 패배하든, 삶이 엉망진창이 되든, 모든 것을 은혜로 여기고 회개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제 삶의 환경을 통해 세상적인 꿈을 철저히 무너뜨리셨습니다. "세상적인 꿈이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누군들 없었겠습니까? 누구나 잘살고 싶어 하기에 저는 여러분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저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세상의 꿈을 완전히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 서서 언제든 인생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전에는 제 자신을 욥에 비유하곤 했는데, 나중에야 욥도 대단할 것 없이 회개해야 했던 사람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교회를 개척하길 참 잘했다, 얼마나 좋고 통쾌한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 대학 교수를 지내다 은퇴하신 원로 과학자와 함께 트레킹을 했습니다. 제가 "건강이 아주 좋아 보이십니다"라고 하니, 그는 "아닙니다. 은퇴하고 요 몇 년 사이에 겨우 회복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왜 이제야 회복되었느냐고 물으니, 그는 "직장에서 자원을 차지하려고 남들과 아귀다툼을 벌이고 암투를 벌이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릅니다. 거짓말 꾸며내는 법도 배워야 했습니다. 대학 학술계라는 곳이 다 그렇듯 몹시 피곤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혈당, 혈압, 콜레스테롤이 다 오르고 배도 나왔는데 키만 안 자랐다는 것입니다. 은퇴하고 나서야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주님께 감사하게도 저는 아주 오래전에 그 자리에서 내려왔기에 건강하게 산 세월이 훨씬 깁니다. 그분처럼 60대까지 그렇게 살았다면 살아남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겪든지 제 권면을 들으십시오.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의 긍휼로 바꾸십시오. 다윗은 왕위에서 쫓겨났을 때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앙망했고, 하나님은 그를 다시 왕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남을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인데 무엇을 판단하겠습니까? 이것은 로마 성 안의 그리스도인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참 피곤하게 살았습니다. 그 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가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피해 도망쳐 로마로 이주해 뿌리를 내린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습니다. 사업도 번창하고 주님을 믿으니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났습니다. 그러자 남을 판단하기 시작하며 "이 사람은 이게 문제고, 저 사람은 저게 문제다"라며 온갖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우리는 입을 단속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판단하더라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도 방법이지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속이 답답합니다. 그 답답함을 해결하려면 마음속에서 남을 판단하는 뿌리를 완전히 뽑아버려야 합니다. 은혜에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당신에게 남을 판단할 자격이 있습니까? 당신이나 당신의 어머니나 다 같은 죄인이며, 오직 은혜를 거저 받을 자격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양육이라는 미명으로 포장하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이 자기가 양육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정죄하면서도 양육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참다 참다 터뜨려 버립니다. 늘 자신은 남을 판단할 자격이 있다고 착각합니다. 자기는 옳고 남은 틀렸다고 여기며 늘 남의 티끌을 찾아내려 하고, 실제로 지적할 거리를 찾아냅니다.

남의 잘못을 기가 막히게 짚어냅니다. 품질 관리(QC) 담당자로는 최고일 것입니다. 품질 관리는 결점을 잘 찾아내야 하니까요.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서기를 원한다면, 남을 판단할 권리를 반드시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판단하는 자는 판단을 받습니다

왜 판단할까요? 은혜인 줄 모르고 자기가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남을 판단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판단하시고, 그때부터 고난을 겪게 됩니다. 사람이 어떻게 지혜로워지는지 아십니까? 남을 판단하는 그 나쁜 습관을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판단하는 악습을 제거하십시오. 당신이 멍청해진 것이 아닙니다. 머리도 좋고 모든 것이 온전하지만, 오직 '은혜'라는 마음의 끈 하나가 빠져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남을 판단할 자격이 있다고 여겨 판단하고 나면 도리어 심판을 받게 되고, 사람은 어리석어져서 일만 하면 틀리고, 그르치는 데 매우 능숙해집니다. 틀림없이 귀신이 당신을 치고 있는 것이며 영적으로 악한 현상입니다. 자기가 일해놓고 공로를 주장하며 공로가 없는 사람을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악습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진노를 나타내시며, 질병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요 분노입니다.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픈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병이 많은 사람일수록 악습이 깊습니다. 병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기가 대단한 줄 착각하지만 노벨상을 탄 것도 아닙니다. 노벨 평화상은 못 타도 '노벨 선악 분별상'을 받을 자격은 충분합니다.

선악을 분별하는 것만큼은 가히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기에 도리어 판단을 받고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살아가니 어찌 불쌍하지 않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이 말씀을 듣고 영적 세계에 대해 더 깊은 깨달음을 얻으셨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율법 조문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고 한 것입니다.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영적 세계의 일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행동하면 영적 세계에서 마귀가 당신을 공격합니다. 어제는 일을 제대로 처리해 놓고 오늘은 또 그르치니, 자신도 "내가 왜 또 이 모양이지?" 하며 의아해합니다. 악한 영이 당신을 쥐고 흔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의 생각이 옳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안의 논리가 영적인 논리가 아니라면 그것은 쓰레기요 배설물에 불과합니다.

율법 조문에 있지 않고 영에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가 모든 것을 다스립니다. 당신이 영 안에서 승리하여 다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서게 된다면, 귀신은 더 이상 당신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설령 귀신이 올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능히 쫓아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법칙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약에서 우리에게 세워주신 법은 구약의 법보다 훨씬 높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다시 회개하시겠습니까? 이것은 영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서고, 선악을 분별하는 뿌리에서 벗어나 마귀의 거짓말을 내어버리십시오.

그리고 이 은혜가 다시 우리를 회개로 인도하게 하십시오. 아직 온전히 고쳐지지 않았더라도 회개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비록 귀신에게 눌려 회개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울지라도 회개하기 시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귀신을 쫓아내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당신이 온전해서가 아니라 돌이키고자 하기에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은 후에는 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회개의 길은 이제 막 시작된 것입니다. 다 나았다고 해서 회개가 끝난 줄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토록 많은 말씀을 드렸으니, 여러분 모두가 은혜를 입고 다시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오늘 설교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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