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
Q1: 我实在告诉你们,站在这里的,有人在没尝死味以前,必看见人子降临在他的国里。(《马太福音》16:28)老师,这句话我不太明白,可以解释一下吗?
A:如果你查考别的经卷会发现,在没尝死味以前就会看见神的国。大家都要理解耶稣在讲什么。其实我们都是在没尝死味以前就看见神的国降临。什么是神的国降临?就是当我们靠着神的灵赶鬼,神的国就降临。我们在哪里靠着神的灵赶鬼,在哪里就看见神的国降临。这话讲得非常直白,神的国降临,就看见人子降临在祂的国里。这话读起来有点绕,其实就是我们看见神的国。
大家听完我这样的解读,要明白每一个基督徒都应该看到神的国降临,神的国就在我们心里。如果我们里面装的是从神来的宝贝,就是神的灵住在我们心里,可以显出这莫大的能力,那就是神的国。我们要开始知道,人子就是耶稣基督,祂的国就是神的国。祂的国降临,就是祂得胜的教会可以在地上把鬼赶出去,我们会一块一块地收复失地。
Q2: 如何弃绝法利赛人、撒都该人的酵?如何拆毁属人的东西?
A:关于法利赛人和撒都该人的酵,法利赛人和撒都该人他们就是不信,他们不相信神。为什么他们即便看见了也不相信?因为和他们里面的逻辑体系不合。比如这些人中有很多很顽固的传统的牧师,就算他们亲眼看见了神迹,他们也说这是灵恩派,是异端。
他们怎么能定义这是异端、灵恩派呢?其实他们自己也说不太清楚,但就这么认为。因为不符合他们里面的领受,他们不能够承认这么多年自己整错了。人就这样,傻就傻在这里。所以法利赛人和撒都该人的酵就是不信。今天我们的心要开始柔软,心里柔和谦卑,对于自己不明白的就赶快寻求,好好寻求,神就一定启示给我们。
如何拆毁属人的东西?人不遭罪能拆毁吗?就靠着神的灵拆毁。神的拆毁方式是让人遭罪,遭够罪就好了。我看到有一些人很傻,我把他害自己的事告诉他,他还以为我要害他,继续顺着害自己的方式往前走,然后就走到绝路里去了,眼前完全没有任何的盼望。我们以前认为美好的东西,今天发现全都不是。
如何拆毁属人的东西?是神的灵在拆毁。我们需要与神同工,心里柔和一下,谦卑一下。人都是很自私的,自私和懒惰是密不可分的。懒惰和自私的人都比较难对付,想拆毁就只有多遭点罪。
Q3: 人在不断拆毁的过程中,其实有挣扎,有时挣扎会胜不过去。我该如何面对这样的状况,有什么更好的方法去对付?
A:更好的方法就是多遭点罪,多付点代价。遭完了罪以后,回转过来,反思自己为什么这么傻。有什么好挣扎的?挣扎是因为有自己看重的东西,自己天经地义地认为每个人都应该这么看。
自以为是非常的愚蠢,连愚昧人都比自以为是的人强。至于挣扎和胜不过去,就是没看明白,如果你看明白了还是胜不过去,神会帮助你。但如果你骨子里非常自私、体贴肉体、懒惰、不喜欢挑战、有畏难情绪,最后就是愚蠢。
Q4: 怎样区分活出神的荣耀和爱世界呢?比如常常努力工作,为未来做打算的时候,心里又总有一种声音,要这么多是不是爱世界呢?
A:应该是。什么叫努力工作,为未来打算?打算什么?就是在做工的时候,也是要分清楚什么是我们的命定。其实工作不过是我们生活当中的一小部分,谈不上命定。我们的命定是什么?我们的命定就是服侍这个世代。
有人说,我不工作,我怎么服侍这个世代?你这么想的话,一会儿就绕进去了。我们从来没有说过不让人好好工作。有的人好好工作,8个小时不够变成10个;10个小时不够变成12个;12个小时不够变成14个⋯⋯后来干脆就不睡觉,一天时间全部干活了。那还谈什么服侍这个世代?
一个蒙神祝福的人用得着这样吗?用不着!一个蒙福的人,一个有命定、活在祝福当中的人,做什么都兴旺。我们当中有很多的弟兄姐妹可以跟你比一比,你干的那些活有多少?真的没多少!可你觉得自己好像了不起似的。我们都做了什么呢?稍微动点脑筋,人要么脑懒惰,要么身体懒惰,反正就是不想好好把事情做好。做好了做对了,哪需要那么多时间呢?
Q5: 在当今社会,人们都追求物质享受,我们作为一名基督徒,怎么样才能不受世俗的影响?
A:我想这是一个新来的弟兄姐妹提出的问题。人很想追求物质享受,可是享受了吗?其实试完了就知道没享受,反而遭了很多的罪,受了很多的苦。做一个聪明人,要明白最重要的两件事,一个是祝福,一个是咒诅。
人活在咒诅当中,能好得了吗?人要活在祝福当中!因为人活得怎么样,享受还是不享受,全看神啊!追求物质享受,心里却难受,有什么用呢?所以我们要看明白。
我鼓励大家做一个竭力追求的人。竭力追求的人会享受工作,享受一切,而不是享受物质。享受把我们创造的价值奉献给这个社会,我们为这个世界创造价值,而不是成为社会的负担。我们如果做工享受,学习享受,还会因为压力巨大就跳楼吗?昨天我就听到一个小孩因为学习压力大,从楼上跳了下来。这真的很悲哀!
Q6: 耶稣提醒门徒要防备法利赛人和撒都该人的酵。那在当今社会物质丰富的情况下,我们华人命定的基督徒又应该注意哪一些呢?
A:我们应该注意有命定。我们要知道活着和物质丰富不丰富,没什么太大关系。我们仔细观察,物质丰富也好,不丰富也好,是现在的问题多,还是我小时候的那个年代问题多?我小时候那个年代,人多穷啊!所以我们好好琢磨一下,其实问题从来都没有减少过,跟物质丰富不丰富没有关系。
Q7: 老师分享说解决问题是关键,有时候我很想把问题解决了,但不知如何解决。不想做错事情,很多时候就莫名其妙出错。我一直告诉自己做事要严谨认真,但还是偶尔会出错,心里纠结难受,怎么办?
A:其实做更多的事情,出错更多,我们反思、抽象、总结、归纳、整理,就会越来越聪明,那出错的情况就会越来越少。你纠结难受,没有什么用。
Q8: 什么是天国的钥匙?
A:天国的钥匙就是可以开天上的门。门里边有资源,我们可以开天上的府库,把天上的资源拿到地上来用。比如说赶鬼的时候,你发现怎么做效果都不好。这时候,你拿起天国的钥匙,拿起天国的法器来赶鬼,鬼很快就会完蛋。
我说的法器,在这里就不多做解释了。这就像耶稣用唾沫和点泥,抹在人的眼睛上一样,那是灵界的法器。鬼一碰到这法器,立刻就离开了。
Q9: 请问面对还没有信主的人,但是被辖制了,活得很痛苦,我们可以为他们赶鬼祷告吗?
A:他们愿意的话,就可以为他们祷告。大家千万不要问他们信不信主,鬼听到这话,说不信,那就没有办法服侍了。我们可以问你愿不愿意走出来,愿不愿意不再这么痛苦了?如果愿意的话,我们就带着他祷告,把鬼赶出去,他就舒服了。他舒服以后,还得做选择,选择是否接受耶稣基督做他的主。
Q10: 彼得跟随耶稣那么久,显露的还是人的心思意念。我们现在要彻底拆毁里面属世界的体系才能得胜,是不是这个世代对门徒的标准要高过初代教会?
A:这话有一些问题。彼得跟耶稣那么久,里面还有一些属人的想法。耶稣被钉十字架的时候,他们还在争论谁坐在主耶稣的左边,谁坐主耶稣的右边。他们以为耶稣要在地上坐王。人里面有一些天然的与生俱来的想法,这是属人的观念、属世界的观念,我们要彻底拆毁。
拆毁的过程,不是一下子就拆毁,是一块一块拆毁。不是拆毁了才得胜,是得胜了拆一块,再得胜了就再拆一块,不是拆了才得胜,而是神帮助我们。我们拆毁的过程,一定是悟性上明白的过程。比如我们清楚的知道懒惰不大行,就开始对付我们里面的懒惰,你很快就可以走出来。不是这个世代对门徒的标准要高过初代教会,是一直都这么高。
Q11: 人所做所说,什么样是体贴人的意思,什么样是合神心意?
A:跟今生有关的,基本上都是人的意思。人的意思不是摆上,人的意思通常都是获得,以自私为动机。比如人不为己,天诛地灭……这万万不能……这些话都是属人的逻辑体系。其实耶稣是把自己完全摆上,但是有的人就不能,为什么不能呢?有的人想摆上之后,自己该怎么办呢?考虑的全是自己。
什么是合神心意?合神心意,比如我们今天读《圣经》,今天读一章,明天读另外一章,这些都是合神心意,不需要鉴别省察。为什么人要鉴别和省察呢?比如说我找了两份工作,到底哪一份是合神心意的呢?其实这不是什么了不起的事儿。这根本就登不了大雅之堂,也上不了神国度的高度。我们把生活这点事看得太重了!其实随便选择一个就好。
有的人会说选错了怎么办呢?没有什么对和错。对一个有命定的人,即便你选错了,神也会让你做对的。一个没有命定的人,你即使选对了,最后也是错的。什么才是合神心意的呢?我们要相信神的话,行在神的话语当中。有些人说他们传统教会的人也做这样的事儿,但是他们都是做表面功夫,一试验就不行。
我们开始好好读《圣经》,了解神的心意。我们在查经的过程当中,所说的这些话,都是建立在一个根基上,这个根基就是相信神的话。人的意思相当普遍,听起来很合理,但是神的意思通常听起来不是很合理。
比如为耶稣摆上生命的,就得着生命,这是什么话呢?有的人说我都没了,怎么得着生命呢?因为耶稣是管生命的,他不明白。我们要开始琢磨,如果琢磨不明白,你要开始相信,相信就会明白。
성경공부: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16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이 책은 성경공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자매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매번 성경공부하기 어렵다고 말씀하시지만, 매번 결국 다 해내시잖아요. 자신을 치켜세우는 것 같아요.” 이것이 저를 칭찬하는 말인지 비난하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저를 치켜세우는 말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6장은 도대체 무엇을 말씀하고 있을까요? 이 단락과 저 단락을 읽어 보면 서로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제대로 이해하면 모두 연결됩니다.
제가 이 장을 공부하면서 정말 많은 힘을 들였습니다. 저는 제가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여러분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장의 주제는 “당신은 정말 이해하고 있습니까?”입니다. 첫 번째 단락, 두 번째 단락, 세 번째 단락, 네 번째 단락, 다섯 번째 단락을 곰곰이 살펴보면, 전부 사람이 이해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어떤 때는 이해하고 어떤 때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대부분의 때에는 이해하다가 마귀가 당신을 속일 때는 이해하지 못한다면 끝장입니다. 이번에 다시 돌아올 기회가 있을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가지고는 하나님의 일을 깨달을 수 없다
《마태복음》 16장의 주제는 “당신은 정말 이해하고 있습니까?”입니다. 이 장 1절부터 4절까지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와서, 하늘로부터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 내용입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또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모세가 전에 지팡이를 땅에 던졌을 때 뱀이 되었고, 그 뱀을 집어 들자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사실 예수님도 이런 표적을 행하실 수 있었지만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께서 그토록 많은 표적을 행하셨는데, 그들은 충분히 보지 못한 것입니까? 그들은 충분히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을 다시 시험해 보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맑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마태복음》 16:2-3)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날씨를 살핍니다. 아침에 하늘이 붉고 어두우면 그날 비가 올 것입니다. 저녁에 하늘이 붉고 어두우면 날이 맑을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신기한 일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았습니다.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맹인이 보게 되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시고,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일 등을 보았습니다. 이 일들로 인해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이런 일들을 몰랐겠습니까?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다시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을까요? 그들의 마음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마태복음》 16:4)
이 말씀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혼란을 일으킵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당시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고도 깨닫지 못하며 매우 혼란스러워합니다. 이 사람들은 사람의 뜻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는데,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날씨는 이해하면서도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면 귀신의 왕이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하고, 은사주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무슨 논리입니까?
더 심각한 것은 어떤 사람들이 이 말씀을 공부한 후 매우 단정적으로 “표적을 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표적을 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와서 치유를 구했을 때, 그녀의 딸이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표적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표적을 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자세히 읽으면 표적을 구해서는 안 된다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지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보여 줄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요나의 표적이 사람을 회개하게 하는 표적이며, 사람이 회개해야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왜 회개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마음속에 사람에게 속한 체계가 들어 있었고, 생각이 매우 혼란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어떻게 오천 명을 먹일 수 있느냐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말이 “불가능하다”일 수 있지만, 우리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오천 명을 먹이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돌 틈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표적을 본 후에 엉뚱한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목회자가 엉뚱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정말 많습니다. 어느 날 신장암 환자 한 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온몸이 아파서 몸 곳곳에 파스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파스 냄새가 아주 강해서, 그분이 떠난 뒤에도 제 사무실에서 오랫동안 파스 냄새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분과 함께 성경을 공부했는데, 그분은 오히려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이 이런 식으로 성경을 공부하면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심판하실 겁니다.” 저는 매우 탄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심판하실까, 아니면 이미 당신을 심판하신 것일까? 사람은 정말 이상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손을 통해 그토록 많은 표적을 행하셨는데도, 그는 저를 극단적인 은사주의자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매우 의아했습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은 은사주의자가 되고, 예수님을 닮지 않은 사람은 정통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모두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우리 중국인 사명 신학의 매우 중요한 표지입니다. 저는 나의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저는 목회와 섬김을 위해 매우 큰 대가를 치렀습니다. 때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루 만에 좋아지지 않으면 이틀, 이틀 만에 좋아지지 않으면 일주일, 일주일 만에 좋아지지 않으면 이 주일, 이 주일 만에 좋아지지 않으면 한 달을 기도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복음주의 목회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은 설교할 때 매우 격정적이지만 사람을 치유받게 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간혹 한두 명 정도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닮았습니까? 닮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를 계속 조정합니다. 우리는 원래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가 정말 이해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사람의 논리 체계가 들어 있어서 보고도 깨닫지 못합니다.
어느 날 제가 왕린이 빈 대야에서 뱀을 꺼낸 일에 대해 말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것은 가짜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의아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어릴 때 저는 동북 지역 사람들이 여우 선인이나 족제비 선인에게 기도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어느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렸는데, 그들은 그릇 위에 붉은 천을 한 장 올려놓고 산으로 가져가 땅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릇을 열어 보면 정말 그 안에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먹고 병이 나을 수 있었습니다.
어릴 때 저는 점을 보았는데 매우 정확한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정말 사람의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가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은 가짜이며 이미 들통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왕린의 일이 가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일 가짜였다면 그가 살아 있을 때 왜 들통나지 않았겠습니까? 우리가 영계의 관점으로 문제를 보지 않으면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사스가 어떻게 발생했고 어떻게 사라졌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 바이러스는 어떻게 사라진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날씨가 더워졌기 때문에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얼마 전 저는 몇몇 사람들과 가게를 여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훈련하고,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한 청년이 말했습니다. “먹는 일은 정말 영적인 일입니다. 예를 들어 이곳에서 국수를 삶으면 맛이 아주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먹으러 오는데, 같은 방법으로 다른 곳에서 만들면 맛이 달라집니다. 음식 장사는 매우 영적인 일입니다.”
우리가 서른 살, 마흔 살, 쉰 살까지 살아오면서 영계의 일을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많은 일들을 우리는 정말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관찰해도 그렇게 자기 의에 빠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과 제가 행한 일을 보고 무엇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것은 어느 교파이고 저것은 어느 교파라고 결론 내립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당시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과 비슷했습니다. 그들은 늘 다른 사람들이 행한 것이 가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 안에 사람에게 속한 논리 체계가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고 경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매우 혼란스러워했습니다. 바리새인들만 혼란스러웠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도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들은 직접 하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것을 보았지만, 이때에는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그들은 떡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상황을 마주하시고 한 가지 일을 분명하게 설명해 주시는 것도 꽤 힘든 일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는 것은 마치 개미에게 사람의 뜻을 이해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 안에 있는 것은 매우 완고합니다. 사람에게 속한 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어떻게 보아도 어지럽고 혼란스럽습니다. 사람의 머릿속에는 온통 사람의 논리 체계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은 물리학과 화학 지식을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지식을 배우는 것이 하나님의 진리를 대신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이런 지식은 종종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도 물리 법칙 안에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사람의 법칙을 초월합니다. 사람의 법칙에 부합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 무엇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일에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만약 당신이 사람에게 속한 논리 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늙은 말의 영에게 통제받게 됩니다. 우리가 한 자매에게서 귀신을 쫓아낼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반드시 하나님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매 안에 있던 늙은 말의 영이 나타나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소용없다. 너희가 나를 쫓아내도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의 생각과 뜻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나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사람에게 속한 논리 체계를 철저히 무너뜨려야 합니다. 우리 안에 절반은 사람의 논리 체계가 있고 절반은 하나님의 체계가 있다면, 점점 더 혼란스러워질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경계하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은 떡에 관하여 말한 것이 아니요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심이라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마태복음》 16:11-12)
마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말이 대부분 사람에게서 나온 가르침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최근에 한 게시물을 보았는데, 아무리 보아도 이상했습니다. 홍콩의 매우 유명한 한 목회자가 《창세기》를 해석하면서, 에서와 야곱 형제가 화목하지 못했던 이유는 부모가 편애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삭은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했고, 죽기 전에도 사냥한 고기를 먹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야곱을 좋아했는데, 야곱이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며, 어머니들은 보통 자녀가 곁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 게시물에는 리브가가 매우 편애했기 때문에 죽을 때 야곱도 돌아와 장례를 치르지 못했고, 이 저주는 어머니가 감당해야 했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런 해석이 성경에 부합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거짓말을 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어떤 신학교 교수는 《창세기》 38장을 강의할 때마다 자신이 완전히 무너진다고 말했습니다. 유다가 타락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대체 어떤 이해입니까?
오늘날 기독교 안에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에 속한 가르침이 매우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닮았는지 아닌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거짓말을 했다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거짓말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해결했는지 살펴보십시오.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그들이 하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하지 않으시는 일은 그들이 잔뜩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말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그들이 잔뜩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이 사람들을 책망하셨습니까? 그러신 적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언제 이 사람들을 책망했습니까? 그런 적이 없습니다! 모든 선지자도 이 사람들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뜻을 하나님께 뒤집어씌우는 것입니다. 당신의 뜻을 하나님께 억지로 존중하게 하려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도록 강요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바리새인과 사두개의 누룩을 경계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 누룩은 사람을 점점 더 어리석고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이것이 그들의 가르침입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논리 체계입니다. 오늘날 사람의 논리 체계로 성경을 바라본다면 정말 우스운 일이 벌어집니다. 우리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누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과거 전통 교회에서 받은 오염이 매우 깊다면, 오늘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경계해야 합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표적을 본 후 예수님께 또 하나를 행해 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그들은 전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회당에 허리가 굽은 사람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고쳐 주시자, 이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께서 안식일 율법을 어겼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문제 해결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데 있다
당신이 문제를 해결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고, 문제를 해결하는 목회자가 되고 싶다면 무엇을 결론 내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는 매우 큰 대가를 치렀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착한 아이였고, 부모님을 화나게 한 적이 없으며, 듣기 싫은 말을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억지로 나서게 되었고, 정말로 자신을 몰아붙여 듣기 싫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것을 보니 마음이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매우 많은 아이들이 장난이 심하지만 부모들은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저를 찾아오면, 저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결국 성경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성경은 회초리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 회초리가 필요하냐고 묻습니다. 필요합니다! 저도 어릴 때 매를 맞은 적이 있지만, 많이 맞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매우 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처럼 착한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많은 도덕적·종교적 속박과 겉치레를 하는 것과 같은 온갖 종류의 속박을 깨뜨려야 하며, 이런 것들은 우리 안에서 무너져야 합니다.
사람의 논리 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문제를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어떤 문제를 해결했습니까? 예수님께서 해결하실 수 있는 문제를 그들은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같은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한번은 제가 밖에 나가 섬기다가 한 목회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용의 영에게 사로잡힌 정신질환자를 제게 맡겨 섬기게 했습니다. 그 정신질환자는 매우 심하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 목회자는 다가와서 이렇게 한마디 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나가라!” 그리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계속 섬기세요!” 그러고는 돌아서서 가 버렸습니다.
그가 떠난 뒤 저는 이 정신질환자를 섬기기 시작했고, 곧바로 악한 영을 완전히 제압했습니다. 그 사람은 정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그가 회복되기는 했지만, 저는 말투가 좀 거칠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듣기 좋은 말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듣기 좋은 말을 하고 싶습니다. 모두가 편안하고, 당신도 괜찮고 나도 괜찮으며, 당신은 자고 나도 자면 좋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것인지에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마치 신화처럼 말하는 사람은 매우 많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승리하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세워진다
사람이 악해지는 것은 육체에 속한 것과 세상에 속한 것과 사람에게 속한 관념을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셨는데, 너희가 정말 깨닫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께서 이처럼 행하신 것을 보았다면, 여전히 세상의 일을 걱정하겠습니까? 우리의 평생에 필요한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족됩니다.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6:13-20)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 무엇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구원자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시며, 구원자이시라는 것을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그분을 의지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이것은 혈육이 알려 준 것이 아닙니다. 혈육으로는 베드로에게 이것을 알려 줄 수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어린양이심을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짐을 지시고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를 이 반석 위에 세우려고 하셨습니다. 이 반석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음부의 권세가 그분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대해 말씀하신 유일한 본문이며, 유일한 구절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도대체 무엇인지, 교회의 사역이 도대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의 누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읽고도 깨닫지 못합니다.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하고, 하나님의 반석 위에 세워져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음부의 권세는 반드시 그를 이기지 못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는 말의 뜻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제가 보아 온 교회들은 음부의 권세에 자주 패배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세워진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이 교회입니까? 교회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의 열쇠를 당신에게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당신은 정말 천국의 열쇠를 얻었습니까? 정말 천국의 자원을 사용할 수 있습니까?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도 풀립니다. 매고 푸는 것은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사역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정의하실 때 우리에게 계시하신 것입니다.
절대로 잘못 생각하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의 교회에는 귀신을 쫓아내는 은사가 있지만 우리 교회에는 없습니다. 당신들의 교회에는 이런 은사와 저런 은사가 있지만 우리 교회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서로 다른 교회에 서로 다른 안배와 서로 다른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반드시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땅에서 영적인 어둠의 권세를 묶을 수 있어야 하며, 땅에서 마귀에게 억압받는 백성을 자유롭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승리하는 교회입니다!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읽고 무엇을 결론 내릴 수 있습니까? 교회가 승리하지 못하고 많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입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정의하셨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다른 성경공부와 과정에서도 저는 이 말씀을 자주 인용합니다. 이 말씀은 반드시 여러분의 머릿속에 새겨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손에 천국의 열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에게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에게 주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묶어야 할 것은 묶지 않고, 풀어야 할 것도 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일들은 모두 우리가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을 초월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행할 수 있다면 사람이 여전히 혼란스러워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도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을 그리스도인과 목회자로 내세웁니다.
세상에 속한 가치 체계가 사람의 변화를 가로막는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떡을 먹이신 것에 관한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계시하고자 하신 진리에 관한 것입니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일과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신 일은 한 가지 진리를 계시하기 위한 것이지, 사람의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어린양이시고, 우리를 구속하여 어둠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우리가 그분을 의지하여 음부의 권세를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주 저에게 묻습니다. 모든 질병이 악한 영과 관련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또 여러 해 동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온 사람들 중에도 “정말 모든 사람이 치유받습니까?”라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설령 제가 모든 사람을 치유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성경은 모든 사람이 치유받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 사람의 관점으로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보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섬긴 사람들 가운데는 교회를 떠난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왜 떠났습니까? 그들은 제가 치른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저처럼 대가를 치르며 살면 잘 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처럼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것이야말로 잘 살 수 없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손가락이 일 년 동안 아팠는데, 강단에서 중국 의학도 받고 서양 의학도 받아 마침내 나았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도대체 간증인지 의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교회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병이 치유되지 않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사람의 논리 체계를 제거해야 합니다.
왜 사람 안에 늙은 말과 같은 악한 영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사람의 논리 체계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자녀와 직장과 생활만 들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에 의지해 살아간다면 어떤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저 행운을 빌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가 방금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스도이시며, 메시아이시고, 구원자이시며,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태복음》 16:22)
우리 사람은 이런 사람에게 속한 관념에 얼마나 쉽게 영향을 받는지 모릅니다! 만약 당신이 많은 사람의 논리 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 안에서 그것들이 개조되고 갱신되는 과정에서 그 모든 것이 우리 안의 철거되지 않는 세입자가 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사람에게 속한 것들을 계속해서 무너뜨려야 합니다.
힘써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결코 사람의 뜻을 생각하지 말라
예수께서 돌이키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마태복음》 16:23)
우리가 이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베드로는 방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는데, 예수님께서는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신다는 말만 듣고, 예수님께서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다는 말씀은 듣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리하신다는 말씀을 듣지 못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절대로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탄이 얼마나 악합니까! 베드로는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까? 몰랐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어쩔 수 없이 베드로처럼 사람의 뜻을 생각하는 생각이 흘러나옵니다. 훗날 베드로가 한 일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고자 하신 일에 훨씬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의 안에 사람의 뜻을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의 뜻으로 예수님을 생각했고, 사람의 뜻으로 아내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를 세우면서 많은 사람의 뜻을 배려했지만,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상한 것들이 많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열 처녀가 있는데, 다섯 명은 어둠 속에 버려지고 나머지 다섯 명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시는 것을 봅니다. 많은 목회자들과 우리가 말하는 레이 크조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이것을 해석하면서, 사실 그 어둠은 어둠이 아니라 천국 안의 또 다른 장소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해석한 적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천국 안에서 롯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롯은 사명을 잃어버린 사람이었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문에 그를 구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롯을 칭찬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롯을 한 번도 칭찬하지 않으셨고, 선지자들도 롯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것이 사람의 뜻인지 하나님의 뜻인지 특별히 주의하여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히브리서》를 읽고 힘써 추구하며, 힘써 온전함에 들어가고, 힘써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사람의 뜻을 생각하고, 육체를 생각하며,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생각하는 것을 힘써 다루어야 합니다.
그때 베드로는 사람의 뜻을 매우 많이 생각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지 못하고 승리하지 못하셨다면, 그다음 길을 어떻게 걸어갔겠습니까? 오늘 당신과 나는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어떻게 의지해야 합니까? 오늘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르기를 원합니까? 예수님처럼 많은 고난을 받아도 개의치 않기를 원합니까? 죽임을 당한다 해도 개의치 않기를 원합니까?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살고 죽는 것이 우리의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루를 살아도 하루 동안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암에 걸린 것이 십자가를 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것은 늙은 말을 짊어진 것입니다. 육체를 생각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정도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암에 걸리게 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많은 사람을 위해 대가를 치르고 많은 사람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암에 걸려 다른 사람들의 돌봄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는 혼란이 너무 많습니다. 암이 치유되지 않았는데도 그 사람이 매우 강하고 끈질겼다고 말하는 이른바 간증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 것입니까?
사람 안에 사람의 뜻이 많이 들어 있다면, 어떻게 귀신에게 죽도록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우리도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질병과 고통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베드로와 사도 바울과 주 예수님이 암에 걸려 죽은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드린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목숨: 또는 영혼; 이하도 같음) (《마태복음》 16:25-26)
사람이 무엇을 주고 생명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이라는 단어를 여러 방식으로 해석하며 매우 혼란스러워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는 이런 단어들의 개념을 하나하나 명확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정말 큰 작업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에게 생명이 매우 풍성하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들의 생명이 승려의 생명보다도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생명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이 생명은 예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생명이시고,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길이시며,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진리이시고, 예수님이 바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범이십니다! 우리 자신을 살펴봅시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닮은 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위하여 생명을 잃는 사람은 생명을 얻습니다. 이것이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늘 당신은 정말 이해하고 있습니까? 정말 이해한다면 반드시 사명을 가지고 살아갈 것입니다. 저의 사명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이며, 저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많은 사람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많은 고난을 받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저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합니다.
중국인 사명 신학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나안 여인이 되어 예수님께 떡을 달라고, 은혜를 달라고 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명을 얻고, 예수님을 본받으며, 성장하고 성숙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살아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 이해하고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고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위해 사업과 직장과 가족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까? 사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그것들을 내려놓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이심을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생명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며칠 전 저는 우리 가운데 한 형제님을 매우 걱정했습니다. 그 형제님은 나이도 적지 않은데 갑자기 직장을 잃었습니다. 저는 그 형제님의 모습에서 한 가지 현상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전에 한 여행사에서 일했는데, 일하다 보니 그 여행사가 망했습니다. 그다음에는 다른 회사에 들어갔는데, 일하다 보니 그 회사도 망했습니다. 이번에는 도박 회사에 IT 담당자로 들어갔는데, 일하다 보니 회사가 또 망했습니다. 이번에는 직장이 없어진 것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담대함을 주셔서 그 형제에게 그가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그러나 저에게는 여전히 조금 용기가 부족했습니다. 어느 날 그 형제님이 저에게 다시 직장을 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제 마음이 단번에 놓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말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평생에 필요한 모든 것은 그분 안에서 충족됩니다.
이 형제님은 올해 마흔이 넘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중년의 위기가 가장 많이 나타나는 시기입니다. 저는 그가 여러 해 동안 말은 아주 그럴듯하게 했지만, 성공적으로 목양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반드시 변화되어야 한다고 간곡히 말했습니다. 이 형제님이 마음속으로 정말 깨닫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에도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나는 하나님이 필요하지만 하나님을 떠나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처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나는 일도 해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이해한 것입니까? 정말 이해했다면 그런 것들이 실제로 당신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눈을 들어 자신을 바라보고, 곁에 있는 가족을 바라보며, 우리의 삶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바울이 가르친 “정욕을 억제하고 평안히 지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에게 유익해 보이는 것을 선택하지만, 실제로는 우리를 해치는 것을 선택합니다. 반대로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선택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생명을 잃는 것이 오히려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중국인 사명 신학은 단순히 은혜를 얻는 신학이 절대로 아닙니다. 중국인 사명 신학은 생명을 완전히 드리는 신학입니다!
오늘 당신은 정말 이해하고 있습니까?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려 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귀신이 와서 괴롭히든지, 하나님께서 귀신 하나를 보내 그를 괴롭히게 하든지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12:39)
이 음란함은 무엇입니까?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며, 세상에서도 유익을 얻고 하나님에게서도 유익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저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의 결과가 어떠한지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마음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면 평생 어떤 좋은 것도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유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닮고 많은 사람에게 복이 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안에는 아직 철거되지 않는 세입자가 있습니까? 여러분 안에 여전히 매우 완고한 세상에 속한 것들이 있다면, 모든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릴 때까지 계속해서 무너뜨려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이시며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이심을 진정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언젠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서 그분의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얻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영원한 나라에서 우리를 위해 영광의 면류관을 예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영원한 곳에 영광의 면류관이 나를 위하여 예비되어 있습니다. 이런 담대함과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축하합니다. 당신은 품에 보물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제부터 세상의 일과 모든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십시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지극히 보배로운 분이 되셔야 합니다. 이 보배는 질그릇을 통해 심히 큰 능력을 나타내게 합니다. 이 능력은 이 시대를 뒤흔들고, 이 시대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며, 이 시대가 하나님의 지식으로 가득 차게 할 것입니다. 마치 바닷물이 바다를 가득 채우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격려하셔서 함께 이 하늘의 길을 달려가게 하시고,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한 것을 보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이 작은 일들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떤 부족함도 없고 어떤 곤란도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힘써 달리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목표를 향해 달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상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