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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에베소서 4장 - 그리스도의 몸(교회)을 세우고,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각자의 직무를 다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라.

2025-08-06 47,436 以弗所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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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弗所书04章-身体的合一
  • 1 我为主被囚的劝你们:既然蒙召,行事为人就当与蒙召的恩相称。
  • 2 凡事谦虚、温柔、忍耐,用爱心互相宽容,
  • 3 用和平彼此联络,竭力保守圣灵所赐合而为一的心。
  • 4 身体只有一个,圣灵只有一个,正如你们蒙召同有一个指望。
  • 5 一主,一信,一洗,
  • 6 一 神,就是众人的父,超乎众人之上,贯乎众人之中,也住在众人之内。
  • 7 我们各人蒙恩,都是照基督所量给各人的恩赐。
  • 8 所以经上说:“他升上高天的时候,掳掠了仇敌,将各样的恩赐赏给人。”
  • 9 既说升上,岂不是先降在地下吗?
  • 10 那降下的,就是远升诸天之上要充满万有的。
  • 11 他所赐的,有使徒,有先知,有传福音的,有牧师和教师,
  • 12 为要成全圣徒,各尽其职,建立基督的身体,
  • 13 直等到我们众人在真道上同归于一,认识 神的儿子,得以长大成人,满有基督长成的身量,
  • 14 使我们不再作小孩子,中了人的诡计和欺骗的法术,被一切异教之风摇动,飘来飘去,就随从各样的异端;
  • 15 惟用爱心说诚实话,凡事长进,连于元首基督,
  • 16 全身都靠他联络得合式,百节各按各职,照着各体的功用彼此相助,便叫身体渐渐增长,在爱中建立自己。
  • 17 所以我说,且在主里确实地说,你们行事不要再像外邦人存虚妄的心行事。
  • 18 他们心地昏昧,与 神所赐的生命隔绝了,都因自己无知,心里刚硬;
  • 19 良心既然丧尽,就放纵私欲,贪行种种的污秽。
  • 20 你们学了基督,却不是这样。
  • 21 如果你们听过他的道,领了他的教,学了他的真理,
  • 22 就要脱去你们从前行为上的旧人,这旧人是因私欲的迷惑渐渐变坏的;
  • 23 又要将你们的心志改换一新,
  • 24 并且穿上新人;这新人是照着 神的形像造的,有真理的仁义和圣洁。
  • 25 所以,你们要弃绝谎言,各人与邻舍说实话,因为我们是互相为肢体。
  • 26 生气却不要犯罪;不可含怒到日落,
  • 27 也不可给魔鬼留地步。
  • 28 从前偷窃的,不要再偷;总要劳力,亲手做正经事,就可有余分给那缺少的人。
  • 29 污秽的言语一句不可出口,只要随事说造就人的好话,叫听见的人得益处。
  • 30 不要叫 神的圣灵担忧;你们原是受了他的印记,等候得赎的日子来到。
  • 31 一切苦毒、恼恨、忿怒、嚷闹、毁谤,并一切的恶毒(或译:阴毒),都当从你们中间除掉;
  • 32 并要以恩慈相待,存怜悯的心,彼此饶恕,正如 神在基督里饶恕了你们一样。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에베소서》 4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에베소서》를 읽다 보면 온통 요구 사항투성이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번 장의 주제를 정리하면서 마침내 찾아낸 주제는 바로 “그리스도의 몸(교회)을 세우고,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각자의 직분을 다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제목이 좀 길지만, 핵심 주제는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다

《창세기》 1장을 읽어보시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사람은 타락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행하신 한 가지 일은 바로 구원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혼란스럽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그 혼란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사람이 살아있을 때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며 사는 것이 아니라, 마치 죽은 뒤에 천국에 가는 것만이 구원인 것처럼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특히 어떤 형제자매들은 자기가 죽어서 천국에 갈 것은 확신하면서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사람답지도 못하고 귀신같기도 한 모습으로 살아가며, 때로는 저승사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건대, 저희가 오랜 세월 성경을 연구하고 검증한 결과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구원은 우리가 살아있을 때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며, 이것은 산 자의 신앙이지 죽어서 천국 가는 것만이 전부인 신앙이 아닙니다.

예전에 사업을 아주 크게 하던 한 대표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함께 식사하는데 그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저희 교회에 어떤 목사님이 오셔서 설교하시기를 ‘천 명 중에 999명은 지옥에 가고 단 한 명만 천국에 간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게 시험문제를 낸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받아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연구해 본 문제였으니까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곳에 우리가 가보지 않았으니 저도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천 명 중 999명이 천국에 가는지, 아니면 999명이 지옥에 가는지요. 가본 적도 없고, 갔다가 못 돌아오면 큰일이지요. 하지만 제 관점은 이렇습니다. 사람이 살아있을 때 예수님을 닮았다면 죽어서 예수님께로 갈 것이고, 살아있을 때 마귀를 닮았다면 마귀에게로 갈 것입니다.” 그러자 그분이 “참 좋은 답변입니다”라고 하더군요.

따라서 우리 화인 사명 신학은 줄곧 산 자의 신앙이었지 죽은 자의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최근 우리의 비전과 사명을 조정했습니다. 중점을 ‘교회를 세우는 것’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것’으로 조정한 것입니다. 여러분, 눈치채셨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각자의 직분을 다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제의 핵심은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데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공허한 말장난이나 교조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법 (1):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다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게 하실까요? 바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캄캄한 작은 방에 틀어박혀서 하나님과 친밀해지겠다고 하며 속사람을 훈련한다 해도, 그런 식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낼 수 없습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사람들과 동역해야 하는데, 그때 비로소 본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하나님은 대단하십니다.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교회를 한번 세워보십시오. 짓자마자 온갖 싸움과 갈등이 일어나는 교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은 진리의 도 안에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자기 안에 있는 악습을 처리하지 못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으로 하여금 핑계치 못하게 만듭니다.

어떻게 핑계치 못하게 하실까요? 나귀인지 말인지 끌어내어 달려보게 하면 바로 드러나는 법입니다. 막상 멍에를 씌우면 배탈이 나 버립니다. 일해야 할 때가 되면 게으른 나귀가 똥오줌이 잦은 법입니다. 수레를 끌어야 하는데 똥을 싸고 오줌을 누며, 얼마 가지도 못해 설사를 하고 엎어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교회를 세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당신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교회를 세워보면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도 이 법칙을 발견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양육을 맡겨 놓으니 엉망이 되어 양육받는 사람과 선악을 분별하기 시작합니다.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무슨 사랑이 있습니까? 사역만 시작하면 서로 헐뜯고 싸우며 옳고 그름만 따집니다. “네가 맞네, 내가 맞네, 네가 틀렸네, 내가 틀렸네.” 하나님은 정말 놀라우십니다!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은 너무나도 신비하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에베소서》 4:12-13)

보이십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습니까? 바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짓다가 잘못 지었으면 얼른 인정해야 합니다. “아이고, 제대로 못 지었네. 이건 잘못되었으니 어서 고치자.” 지어보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법을 알게 되고, 조정하고 또 조정하면서 진리의 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에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참으로 좋습니다. 정말로 교회를 세우는 일은 너무나 좋습니다! 왜일까요? 교회를 세웠는데 왜 하나님의 임재가 없을까요? 우리가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세우고 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아, 바로 이것이구나’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실상 교회를 세우는 책입니다. 성경은 교회를 세우는 과정을 통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인정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인정이 임하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단순한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길 원한다면 교회를 세우십시오. 만약 교회 안에서 “난 그저 복이나 받으러 왔어. 교회는 무슨 교회? 교회를 세우는 건 나와 상관없어. 나는 그저 승리하는 교회에서 덕이나 보고 혜택이나 누릴래”라고 한다면 어떻게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나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겠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형상은 참으로 놀랍고 존귀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다면 그 인생은 헛되지 않은 것입니다. 살아있을 때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냈다면 죽은 뒤에는 당연히 하나님께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법 (2): 각자의 직분을 다하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4:7-12)

이 말씀은 참으로 탁월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원수를 사로잡으사 높은 하늘로 오르셔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셨으며, 우리를 위해 참되고 산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무엇을 하려 하십니까? 원수에게서 빼앗은 그 은사들을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분량대로 선물로 주려 하십니다. 나누어 주시며 당신은 이것을 하고, 당신은 저것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주신 직분이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로, 교사로 세우신 것입니다.

사실 교회는 느슨한 조직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도 바울은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을까요? 지난 세월 동안 제가 교회 안에서 발견한 것은 쓸데없는 헛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대만의 한 자매가 교회의 상태를 묘사하면서 한 말이 있습니다. 왜 그녀가 교회의 상태를 그렇게 묘사했을까요? 그 자매는 팔이 골절된 후 치료를 받았음에도 2년 넘게 통증이 지속되었습니다. 마침 제가 그녀를 만나 “이렇게 간단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대체 교회에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자매는 “똥 싸는 사람은 수두룩한데 알 낳는 사람은 없더군요”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그 ‘알 낳는 사람’이었기에 그녀를 데리고 기도했고, 5분 만에 팔의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찬 교회를 세울 때, 그것은 반드시 교회 안에서의 조화로운 동역이어야 합니다. 각자 직분을 다해야 하는데, 교회들이 각자의 직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직분들은 무엇입니까?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입니다. 원래 이렇게 나누어져 있으며, 교회에는 다양한 기능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기능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성도들을 훈련하여 온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한다는 것은 곧 각자의 직분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조교 직분을 맡기고, 소그룹 목회자로 세우며, 여러 직분을 부여합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여기서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 이 다섯 가지를 언급했습니다. 훗날 많은 사람이 이것을 ‘오중 직임’이라고 부르며 아무나 붙잡고 “당신은 선지자입니다”라고 임명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무슨 선지자입니까? 사람이 어떻게 선지자를 임명합니까? 그러니 가짜 선지자가 판을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런 용어를 잘 쓰지 않습니다. 어떤 교회들은 9대 은사니, 오중 직임이니 하는 것들을 많이 강조하지만, 우리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것에 더욱 집중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저희는 성도들이 바르고 온전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훈련을 시작했고, 우리 가운데 있는 회계 담당자들을 돕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많은 회계 담당자가 개념이 명확하지 않고 생각이 정돈되지 않아 훈련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 훈련 과정에서 누군가는 그 책임을 맡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훈련할 때 사실은 자기 자신을 훈련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각자의 직분을 다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마침내 모두가 진리의 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교회가 서로 물고 뜯어서는 안 되며 각자의 직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만약 교회에서 그저 일찍 와서 의자나 정리하고 문앞에서 안내나 하는 정도라면, 그것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각자의 직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모임 준비를 돕는 일에 불과합니다. 사실 저희는 모임 중심의 사역에서 벗어난 지 오래되었으며, 지금은 일대일 양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훈련하여 바른 일을 하게 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 원수에게서 빼앗은 것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은사를 주셔서 각자의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고 직분을 다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교회 안에서 적극적으로 섬김에 동참해야 합니다. 양육할 줄 모른다면 다른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께 말씀드리건대, 우리 교회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로 훈련하는 교회입니다. 창조력이 있고, 일을 맡으면 반드시 성사시키며, 말에 권세가 있고, 사람 됨됨이가 하나님을 닮은 자로 훈련하는 곳입니다. 교회 안에서 사람을 훈련하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이후로 우리 가운데 많은 형제자매가 한 걸음씩 끊임없이 성장하여 직장에서도 리더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법 (3): 진리의 도 안에서 하나가 되다

‘하나 됨’이라는 것은 참으로 강력합니다. 앞서 각자의 직분을 다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직분을 다하기는커녕 서로 물고 뜯으며 자기 직분이 남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고,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참된 진리의 도가 아닙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에베소서》 4:3-6)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교회를 세울 때 하나님의 뜻대로 세워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교회를 세우면, 이곳을 채우시는 분이 하나님의 영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같은 진리의 도 안에서 하나의 소망을 품고, 동일한 한 분 주 예수님을 믿으며, 동일한 믿음 곧 아브라함의 믿음을 갖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받은 세례도 회개의 세례요, 성령의 세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분이시며,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만유의 아버지께서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며 우리 모두 가운데 거하십니다. 우리가 왜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지각과 이성으로 하나님을 참되게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아주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성도들이 진리의 도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훈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는 예수님과 제가 믿는 예수님이 같은 예수님입니까? 만약 다르다면 큰 문제입니다.

어떤 이들이 교회를 세우는 방식을 보면 참으로 각양각색입니다. 어떤 교회는 오전 모임에서는 방언을 반대하고, 오후 모임에서는 방언을 인정합니다. 이런 교회가 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또 어떤 교회는 통로를 기준으로 왼쪽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방언을 반대하고, 오른쪽 의자에 앉은 형제자매들은 방언을 찬성합니다. 그런 교인들을 앞에 두고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사님도 참 대단합니다. 진리의 도 안에서조차 하나가 되지 못하는데 어떻게 설교하겠습니까? 그런 교회는 영적 전쟁을 치를 능력이 없으며, 성도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게 하기도 어렵습니다.

어떤 교회는 교인 한 명이 암에 걸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교인도 암에 걸리고, 또 얼마 후에는 목사님마저 암에 걸립니다. 그것이 진리의 도 안에서 하나가 된 모습입니까? 참으로 안타깝지 않습니까? 만약 사역자분이 우연히 제 설교를 듣게 된다면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결코 오합지졸을 모아놓은 집단이 아닙니다. 서로 헐뜯고 물어뜯으며 다 같이 망하자고 모인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진리의 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곳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서》 4:13-14)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20-24)

그렇다면 이 참된 도란 대체 무엇입니까? 여러분, 저에게 순종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저를 맹신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바라지도 않습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찾아와서 “목사님, 목사님 설교를 수년 동안 들었는데 정말 너무 좋습니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반응을 반기지 않습니다. 저를 칭찬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제가 전하는 말이 참된 진리의 도인지 스스로 차근차근 검증해 보십시오. 정말로 깨달아 들었습니까? 지각을 사용하여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고 있습니까?

진리의 도를 참되게 추구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귀신에게 속아 이리저리 휘둘리게 됩니다. 멀리서 보면 흔들거리고 가까이서 보면 비틀거리는 사람들처럼,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가 순식간에 혼란에 빠집니다. 그렇게 혼란에 빠져서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든 흐리멍덩하고 건성으로 대충대충 처리하며 볼썽사납게 만드니 큰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화인 사명 신학은 지각과 깨달음 위에 세워진 신학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단순히 트림하고 방귀 뀌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축사 사역을 받을 때 트림이 나오고 방귀가 나올 수 있지만, 그것 자체가 진리의 도는 아닙니다. 우리는 진리의 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저 축사나 치유만을 좇는다면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간절히 다시 한번 외칩니다. 우리는 왜 진리의 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까? 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야 합니까? 왜 각자의 직분을 다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게 하려 하심이지, 저승사자나 단순한 자선사업가처럼 살게 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도 안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되 그분이 자신의 몸과 보배로운 피로써 우리에게 진리를 깨닫는 길을 열어주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 도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신 것입니다. 그분은 단순한 치유와 축사만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 치유만을 얻는 데 그친다면 언젠가는 효력이 없는 날이 올 것입니다. 왜일까요? 참된 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진리의 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저와 하나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도와 하나가 되고 저 또한 하나님의 도와 하나가 된다면, 우리는 동일한 것을 믿고, 동일한 한 소망, 한 분 주님, 하나의 믿음, 하나의 세례, 한 분 하나님을 모시게 됩니다.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며, 여러분이 믿는 분과 제가 믿는 분 모두 만유의 아버지로서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며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찌 하나가 되지 않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믿는 예수와 내가 믿는 예수가 서로 다르다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교회와 교회 사이의 인위적인 연합을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런 인위적인 연합을 추구하지 말고, 우리 모두가 진리의 도 안에서 하나가 됩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됩니다. 제가 틀린 말을 했다면 지적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틀렸다면 성경으로 돌아가 다시 면밀히 살피면 됩니다.

따라서 《에베소서》는 사실상 교회를 세우는 것을 다룬 책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교회를 세우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가운데 통일하시고 거하실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서로 탐내거나 빼앗으려는 마음이 사라질 것이며, 만약 탐내고 빼앗으려 한다면 하나님께서 가만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이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느냐는 여러분의 지각이 진리의 도를 얼마나 깊이 깨닫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일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것은 정밀 공학과도 같습니다. 정밀 공학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대충대충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충 만든 시계를 차면 어떤 사람은 12시인데 다른 사람은 1시가 되고, 어떤 사람은 2시인데 다른 사람은 4시를 가리키듯 시간이 제각각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대충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일이 정밀 공학과 같다는 것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리의 도 안에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위해 힘써 달려갈 때, 말씀 곧 하나님의 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교회에서는 암 환자를 위해 기도해도 낫지 않는데, 왜 당신들 교회에서는 기도하면 암이 낫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여러분의 교회와 우리 교회의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간판만 걸어놓았다고 다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그 교회가 누구의 교회인지 알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교회 간판만 걸어놓고 마귀가 왕 노릇 하는 곳이 허다합니다. 왜일까요? 사람들이 진리의 도를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또한 하나님의 기묘한 섭리입니다. 마귀가 스스로 권세를 잡은 것이 아니라, 마귀가 그곳을 장악한 것조차 하나님의 심판과 섭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법 (4):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우다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것은 곧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에베소서》 4:1-2)

여러분이 품은 사랑의 크기만큼 사역의 열매가 맺힙니다. 그것은 결코 왜곡되고 기괴한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참된 사랑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에베소서》 4:15-16)

이 말씀은 참으로 귀합니다.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저 자신도 이 일을 통해 큰 유익을 얻었고, 많은 형제자매를 통해 훈련받았습니다. 교회를 세우다 보니 제 인내심이 크게 연단되었습니다. 사역하다 보면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제 감정과 기호대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합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이 말씀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지만, 양육이란 사랑이 없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형식적인 양육만 하고 마음에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신을 세울 수 없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섬기며 양육하는 과정을 통해 저 자신을 훈련하게 하신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저 역시 많이 성장했고 승리를 거듭해 왔습니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제가 전했던 설교를 우연히 찾아 듣게 되었습니다. 설교를 듣다 보니 그 주간에 설교를 준비하던 당시의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동역자 중 한 자매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도 않고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제 동역자였기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랑으로 바른말을 한마디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자매에게 문제가 많았기에 지적해 준 것인데, 밖에서 돌아오는 길에 제 마음도 몹시 복잡하고 괴로웠습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 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섬기기로 선택했습니다.

운전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주께서 반드시 저를 승리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 충돌 과정에서 감사하게도 귀신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그 귀신이 아주 간교하게 말했습니다. “난 이 여자를 죽이고 싶은데, 너희는 왜 이 여자를 이렇게까지 사랑하는 거냐?” 한 차례 영적 전쟁을 치른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양육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운다’는 말씀은 너무나도 실제적입니다.

때로는 귀신이 사람을 괴롭히며 사람의 속마음을 찌르기도 합니다. 귀신이 “사실 너도 쟤 엄청 싫어하잖아, 안 그래?”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 그랬습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옳고 그름도 분간 못 하고 좋은 말도 못 알아들으며, 사랑해 주면 자기를 해치려는 줄 알고, 속여먹으면 자기를 사랑하는 줄 아는 사람을 대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귀신이 “너도 쟤 싫어하잖아”라고 했을 때 제가 어떻게 대답했겠습니까? “마귀야, 물러가라! 저 자매가 내 곁에 있는 한 나는 너를 결코 가만두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너의 손에서 저 자매를 건져낼 것이다. 나는 내 육신의 감정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다. 내 육신으로는 저 자매가 밉지만, 나는 육신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른다. 썩 물러가라! 저 자매가 우리 가운데 있는 한 마귀 너는 결코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이러한 사역이 끊임없이 반복되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상처받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마음이 불편할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양육하면서 제가 크게 성장했기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성장하고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점점 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남들이 나를 공격하고 비난해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우고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 작은 목표를 하나 세웠습니다. 무슨 목표일까요? 1억을 버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1억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살아있는 동안 지켜나갈 저의 목표는,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내게 맡겨주신 모든 양을 온전히 잘 먹이고 돌보아,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는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소그룹 목회자 여러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직분을 선악을 분별하는 육신의 생각으로 감당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몹시 싫을 수도 있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기에 감정은 매우 실제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의 도 안에서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야 하며, 진리의 도 안에서 형제자매들과 함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상처가 될지라도, 여러분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결코 입을 다물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양들을 잘 양육해 왔습니다. 비록 때로는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매번의 갈등은 변화와 성장의 기회가 됩니다.

감사하게도 최근 한 자매가 제게 아주 거칠고 듣기 싫은 말을 쏟아냈습니다. 마치 제가 무슨 흑심이라도 품은 것처럼, 남녀 관계의 문제인 양 치근덕거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대체 무슨 헛소리입니까? 하지만 감사하게도 나중에 그 자매가 “목사님, 제가 정말 어리석은 소리를 했습니다”라고 사과했습니다. 정말 어리석은 말이었지요. 하지만 성장했습니까? 성장했습니다.

사실 그 자매의 어머니와 딸, 그리고 자매 자신의 문제 모두 제가 사역하는 가운데 축사 받고 자유케 된 것들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우십시오. 이러한 논리를 따라 행하면 결코 손해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법 (5): 바르고 유익한 일을 하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에베소서》 4:28)

바울의 신학 체계는 ‘바르고 유익한 일(정직하고 생산적인 일)을 하는 신학 체계’입니다. 어떤 교회들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제대로 일하는 것을 장려하지 않고, 교회 안에서 기도하고 봉사하는 것만 권장하는데, 정작 무엇을 섬기는지도 모른 채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화인 사명 신학은 ‘바르고 유익한 일을 하는 신학 체계’입니다. 바른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고, 일을 제대로 완수해 낼 수 있게 됩니다.

최근 한 자매가 있습니다. 10여 년 전 중증 우울증에 걸렸던 자매였는데, 제가 사역을 통해 우울증에서 건져냈습니다. 최근 그 자매의 성장은 제게 큰 위로가 됩니다. 연구 분야에서 끊임없이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바른 일을 제대로 해내어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작년에 실직했던 한 자매는 올해 재취업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역량이 크게 성장하여 팀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교회를 도와 가난한 형제자매들이 자신이 개척한 업무를 배울 수 있도록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회계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공인회계사인 한 자매는 자원하여 실력이 부족한 회계 담당자들을 가르치며 개념을 명확히 정리해 주는 섬김을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그 자매가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공인회계사라 모든 개념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르치려고 정리하다 보니 모호하게 알고 있던 개념이 참 많았습니다. 결국 남을 가르치면서 저 자신이 훈련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 안에서 자신을 세우는 것이며, 바르고 유익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과거 교회에서 가졌던 잘못된 관념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제대로 일하는 것을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라 여기고, 정작 세속적인 정욕을 품고 있으면서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착각하여 직장을 그만두고 교회 안에만 머물려 하는 태도 말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교회 사무실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수많은 사람이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저는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바르고 유익한 일을 하는 사람이며, 생산적인 일을 좋아합니다. 집 인테리어와 리모델링,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그래밍 교육 등을 해왔습니다. 며칠 전 책장에서 책 몇 권을 꺼내 보았는데, 코로나 시기에 우리가 다국적 기업 엔지니어들을 위해 작성했던 로봇 제어 훈련 교재였습니다. 여러분에게 바른 일을 실천하는 목회자가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며, 그렇기에 저는 당당하게 바른 일을 하라고 설교합니다.

교회 안에서 이 말 저 말 쓸데없는 소리나 늘어놓으며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하나님의 형상도 살아내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도둑질하던 자들에게 말씀했지만, “목사님, 저는 도둑질한 적 없는데요”라고 하실 겁니까? 도둑질하던 자도 돌이켜 바른 일을 해야 하거든, 도둑질하지 않은 사람이야 더더욱 바른 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교회 사무실에 종일 앉아 있는 사람들이 대체 무엇을 하는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실상은 아무것도 모르고 제대로 할 줄 아는 일은 없으면서 ‘할렐루야’만 제일 크게 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들을 너무 깎아내리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성경공부로 말하자면, 우리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거의 다 강해해 가고 있습니다. 저는 130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고, 엔지니어 훈련 교재를 집필했으며, 수많은 주택 인테리어를 직접 시공했습니다. 디자인 면에서도 독보적인 기술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치유와 축사 사역에 큰 열매가 있고,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양육하는 일에도 탁월하며, 화인 사명 신학을 창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선하십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실직하게 하셔서 교회를 개척하게 하셨고, 수년간 교회를 세워오면서 실제로 일을 이루어내는 교회로 만드셨습니다. 성경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도 제가 양육하는 형제와 함께 영업 인력을 어떻게 훈련할지 논의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회계 커뮤니티, 영업 커뮤니티를 만들어 서로를 섬기고 세워주며 실질적인 성과를 내도록 도울 것입니다. 또한 인테리어 커뮤니티와 디지털 IT 커뮤니티도 구축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한 형제는 얼마 전 실직했다가 디지털 소프트웨어 분야에 취업했습니다. 그것은 제 본업이기도 하니 제가 그 형제를 돕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이렇게 바르고 유익한 일을 하는데 누가 우리를 이단이나 그릇된 길이라 비난하겠습니까? 우리는 정직하고 생산적인 일을 합니다. 집에서 나태하게 지내는 데 익숙해진 형제자매들이 있다면, 목회자는 반드시 여러분이 일터로 나아가 바른 일을 하도록 권면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남은 것으로 부족한 자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는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맡게 되어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어떤 분들은 “목사님은 어떻게 모든 분야를 다 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지난주 이맘때쯤 제가 그 자매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묻고 원리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프로젝트의 기본 원리를 제가 꿰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며칠 뒤 자매에게 “더 궁금한 점이 있느냐”고 묻자 “이제 다 해결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목표를 명확히 하고, 방법을 바로잡으며, 경영진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여 프로젝트의 본질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살아있는 동안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가가 죽은 뒤 어디로 갈지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화인 사명 신학은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니 죽어서 천국 간다”며 안일하게 머무는 신학이 아닙니다. 냉정하게 말씀드리건대, 거울을 보고 자신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기본적인 바른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법 (6): 자신의 악습을 처리하다

교회 안에 있으면 자신의 악습이 낱낱이 드러나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악습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다 보면 자신의 악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악습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각자의 직분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17-24)

알아들으셨습니까?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 4:25-32)

여러분, 사람의 악습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습니까? 채식을 하고 불경을 욉니까? 최근 뉴스에 온갖 사건 사고가 가득하지 않습니까. 그런 식으로는 악습을 없앨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갈 때에만 악습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악습을 처리하는 것은 교회 양육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사역입니다. 곧 모든 악독과 노함, 분냄, 떠드는 것, 비방하는 것, 그리고 온갖 악의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양육 사역의 핵심은 사람 안에 있는 악습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와 이토록 분명하게 함께하실까요? 이곳이 바로 사람의 악습을 다루고 처리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게으른 성도들이 훈련받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비록 아직 부족하고 다루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이기심과 게으름, 험담과 잡담, 분노와 거짓말, 심지어 묵상 노트조차 남의 것을 베끼는 온갖 악습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온갖 악습은 결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라는 플랫폼을 온전히 활용하여 우리 모두가 세움을 입고, 내면의 더러움을 씻어내어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시기를 바랍니다. 이 부분은 더 길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에베소서》 4장은 교회를 세우라고 말씀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여 각자의 직분을 다하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우리의 비전과 사명도 바로 이 말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 주 동안 《에베소서》 4장을 묵상했습니다. 교회를 세워가는 과정 속에서 여러분과 함께 성경을 나누며 《에베소서》 4장을 이토록 명쾌하게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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