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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에스더 4장 - 하나님이 주신 자리가 이때를 위함이 아니겠는가?

2026-04-10 35,511 以斯帖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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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斯帖记-末底改求以斯帖帮忙
  • 1 末底改知道所做的这一切事,就撕裂衣服,穿麻衣,蒙灰尘,在城中行走,痛哭哀号。
  • 2 到了朝门前停住脚步,因为穿麻衣的不可进朝门。
  • 3 王的谕旨所到的各省各处,犹大人大大悲哀,禁食哭泣哀号,穿麻衣躺在灰中的甚多。
  • 4 王后以斯帖的宫女和太监来把这事告诉以斯帖,她甚是忧愁,就送衣服给末底改穿,要他脱下麻衣,他却不受。
  • 5 以斯帖就把王所派伺候她的一个太监,名叫哈他革召来,吩咐他去见末底改,要知道这是什么事,是什么缘故。
  • 6 于是哈他革出到朝门前的宽阔处见末底改。
  • 7 末底改将自己所遇的事,并哈曼为灭绝犹大人应许捐入王库的银数都告诉了他;
  • 8 又将所抄写传遍书珊城要灭绝犹大人的旨意交给哈他革,要给以斯帖看,又要给她说明,并嘱咐她进去见王,为本族的人在王面前恳切祈求。
  • 9 哈他革回来,将末底改的话告诉以斯帖;
  • 10 以斯帖就吩咐哈他革去见末底改,说:
  • 11 “王的一切臣仆和各省的人民都知道有一个定例:若不蒙召,擅入内院见王的,无论男女必被治死;除非王向他伸出金杖,不得存活。现在我没有蒙召进去见王已经三十日了。”
  • 12 人就把以斯帖这话告诉末底改。
  • 13 末底改托人回复以斯帖说:“你莫想在王宫里强过一切犹大人,得免这祸。
  • 14 此时你若闭口不言,犹大人必从别处得解脱,蒙拯救;你和你父家必致灭亡。焉知你得了王后的位分不是为现今的机会吗?”
  • 15 以斯帖就吩咐人回报末底改说:
  • 16 “你当去招聚书珊城所有的犹大人,为我禁食三昼三夜,不吃不喝;我和我的宫女也要这样禁食。然后我违例进去见王,我若死就死吧!”
  • 17 于是末底改照以斯帖一切所吩咐的去行。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어서 《에스더》 4장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주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가 바로 이때의 기회를 위함이 아닌가?"입니다. 사실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는 방식은 스스로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삶의 방식은 세상 전체와 살아가는 일, 그리고 살면서 겪는 일들을 바라보는 여러분의 관점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관점과 일치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제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내린 결정들과 그 이면에 있는 논리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보기

제가 한 자매님을 섬긴 적이 있는데, 그 자매님은 이것도 두려워하고 저것도 두려워했습니다. 어릴 적 학대받았던 시절을 떠올리기만 해도 그것이 살아가는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보좌의 높이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일을 바라볼 수 없을까요?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고, 살아간다는 것을 꿰뚫어 본다면 수많은 문제도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꿰뚫어 보지 못하면 눈앞의 사소한 일만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꿰뚫어 볼 수 있을까요? 사실 매우 간단합니다! 내일 죽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지금 겪고 있는 이런 일들에 여전히 연연하겠습니까? 600만 위안이든 6억 위안이든 빚이 있다 해도 더 이상 연연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6억에는 연연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600만에는 연연하니,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사람이 자기가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하루 신경 쓰지 않고, 이틀도 신경 쓰지 않는다면 한 달은 어떻겠습니까? 고작 30일에 불과하며 순식간에 지나가 버립니다. 그러니 저 역시 연연하지 않습니다.

어떤 자매님은 일을 도무지 내려놓지 못하고 죽어라 일만 했습니다. 제가 "내려놓으세요, 일을 다 못 끝내도 죽지 않습니다!"라고 했지만 끝내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내려놓게 되었는데, 의사가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곧 죽게 될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반드시 이 세상에서의 날들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중국 교육계에 깊은 영향을 끼친 어떤 사람이 며칠 전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전에는 정말 목숨 바쳐 일했지만, 자신이 마흔한 살에 죽을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알았더라면 그렇게 필사적으로 일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역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사실 사람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사람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오래전부터 저는 관 하나를 짜고 싶었는데, 지금까지도 그 생각을 접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지 못할 때 관 속에 잠시 누워 있으면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대체 다 무엇이란 말입니까? 사실 하나님께서 연출하시는 한 편 한 편의 연극일 뿐입니다.

여러분께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욥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세상에서 겪은 일은 사실 하나님께서 연출하신 한 편의 소동극이었습니다. 사탄과 하나님 모두 욥을 눈여겨보셨고, 그리하여 한 편의 소동극이 벌어졌습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속 터지는 일입니다. 욥의 열두 자녀가 모두 죽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왜 그들을 그렇게 죽게 내버려 두셨습니까?"라고 묻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사람이기 때문에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 서서 바라보면 꿰뚫어 보게 됩니다! 《성경》의 많은 장들이 이것을 말씀합니다. 누가 몇 년을 살고 누구를 낳았으며, 또 몇 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들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80세보다 100세까지 사는 것이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날마다 침대에 누워 대소변을 받아내야 한다면 그것이 좋은 일이겠습니까, 나쁜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알지 못하고 그저 살아있기만 하면 좋은 줄 압니다. 하루를 더 살수록 하루를 더 고통받는 것인데, 그렇게 살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연출하신 한 편 한 편의 소동극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왜 이렇게 못되셨는가?"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런 연극들의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꿰뚫어 보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자업자득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꿰뚫어 보게 되면 많은 문제들이 술술 풀리게 됩니다.

에스더는 훗날 왕후가 되어 온갖 호사를 누리고 원하는 것을 다 얻었으며, 궂은일이나 힘든 일을 할 필요도 없고 시중드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돈 벌 걱정도 없었으니 다 좋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나누어 생각해야 합니다. 숭정제에게 시집갔는데 그가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었다면, 그의 아내와 자식들이 편안했겠습니까? 그러니 이것은 단순히 말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왕후가 되었고 하만은 총리가 되었으니, 이 억울함을 어디에 호소하겠습니까? 한 사람은 유다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아말렉 사람으로, 그들은 대대로 원수였습니다. 게다가 모르드개라는 인물이 나타나 죽어도 하만 총리에게 절하지 않자, 하만은 유다 민족을 몰살할 계략을 꾸몄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더와 모르드개, 그리고 하만 앞에 이 각본을 펼쳐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모신 사람, 곧 하나님의 백성은 참으로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사람은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결단을 품고 하나님의 각본대로 연기해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하겠다!'라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각본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실 뿐입니다.

예컨대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 하나님의 각본은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거부하자 결국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한 사람이 더 죽는다고 많아지는 것도, 덜 죽는다고 적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아야만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우리 가운데 한 자매님의 가문이 원수를 만나 사방으로 매우 비참해 보이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꿰뚫어 본다면 이 일은 여러분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관점에 서서 인생과 죽음, 살아가는 것을 꿰뚫어 본다면 최종적인 결말은 승리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자손이라면 그 누구도 여러분을 해칠 수 없습니다!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시고,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일을 만날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옆에서 "아이고, 모르드개야, 그냥 절 한번 하고 머리 숙이고 허리 굽히면 되지, 그게 뭐 대수라고 그래? 왜 굳이 하만을 건드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사실 모르드개의 그런 행동조차 하나님께서 연출하신 일부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 아말렉 사람을 멸하시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다시금 보게 하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논리가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약간의 고난이 닥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여러분이 이집트에 팔려 가지 않았다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만약 이집트에 팔려 가는 그런 불운한 일을 겪는다 해도 그것 역시 정상입니다.

하나님의 각본대로 연기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높이 세우려는 것입니다. 요셉이 30세에 이집트의 총리가 된 것처럼,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길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각본대로 연기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각본대로 연기하시겠습니까?

만약 자신의 각본대로 한다면 이렇습니다. '어차피 난 왕후가 되었으니 왕궁에 머물면 그만이고, 난 아무 탈 없어. 너희들이 죽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어!' 하지만 하나님의 각본대로 한다면 이렇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왕 앞에 나아가리라. 나는 하나님의 각본대로 연기하리라!' 사실 사람의 이 세상 목숨은 길지 않으니,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에스더는 왕후가 되고 하만은 총리가 되어 유다 민족을 멸하려 하다

비록 에스더는 왕후가 되었지만 하만이 총리가 되어 유다 민족을 멸하려 한 것은, 사람들이 이 연극을 어떻게 해내는지를 시험하시려는 하나님 연출의 소동극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모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연극을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훗날 하만이 유다 민족을 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만이 나무틀에 매달려 죽고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총리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르드개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각본대로 연기하니 역전이 너무나도 빠르게 찾아왔습니다!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자리를 얻은 것이 바로 이때의 기회를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 부유하다면 그것이 바로 지금의 기회를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기회란 무엇입니까? 민족 멸망의 위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대 가운데 그분의 영광을 온 땅에 가득하게 나타내시고자 우리에게 여전히 두신 위대한 뜻입니다!

모르드개가 핵심을 말하다

모르드개가 사람을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에스더》 4:13-14)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시고 한 자리를 마련해 주셨는데, 여러분이 감당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찾으십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온통 다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의 경우, 사실 하나님은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택하셨지만 그가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택하셨고, 사도 바울이 그 직분을 이어받아 얼마나 훌륭하게 감당했습니까!

그러므로 모르드개는 핵심을 찔렀습니다. "지금 네가 죽기를 두려워하여 나서지 않고 잠잠히 있다면, 우리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는 반드시 방법이 있습니다! 당신이 이 역할을 연기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찾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화인 사명 신학의 정수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각본대로 연기하면 종종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아 보이지만 결코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여러분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렇게 연기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제가 여러 차례 인용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본케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아프리카로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집회에 수백만 명이 참석했으니 그 영광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사실 그는 아프리카에 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셨기에 순종하여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본케 목사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너는 내가 처음 택한 자가 아니라 네 번째다. 앞의 세 사람이 모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본케 목사님은 "하나님, 다섯 번째 사람을 찾으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되고 안 되고는 저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참 공교롭게도 싱가포르에서 중국인 교회를 세울 때 저 역시 네 번째였습니다. 저를 택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당시에는 저도 몰랐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게 기독교 신학 안의 수많은 터무니없는 부분들을 바로잡게 하셨고, 결국 지금 바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대략 9년 전, 릭 조이너라는 선지자가 있었는데, 그가 쓴 《선지자의 환상》은 제게 매우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하나님께서 소수의 중국인들을 일으키셔서 기독교 신학의 많은 터무니없는 것들을 바로잡게 하실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도 참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바로 우리를 두고 한 말이 아니겠습니까? 기자가 릭 조이너에게 "당신이 말한 그 일이 미래의 어느 시점입니까, 아니면 과거의 어느 시점입니까?"라고 묻자, 릭 조이너는 "바로 지금, 2017년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가 '화인 사명 신학'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 바로 2018년이었습니다.

기독교 신학 체계 전체에 도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감히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거침없이 전하고 있습니다. 《유다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를 모두 거침없이 전합니다. 초기 시절에 제가 처음으로 《야고보서》의 논리 체계에 도전했을 때, 저와 매우 가까웠던 형제자매들조차 제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며, 다들 지혜로워졌습니다.

그러므로 모르드개는 핵심을 말했습니다. 당신이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를 찾아 세우셨으니 우리는 제대로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직분을 감당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겠지만, 우리 유다인은 다른 데서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무리는 모두 생사를 꿰뚫어 본 사람들입니다!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고 살아가는 것을 꿰뚫어 본다면 돈 따위가 무슨 문제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제 권면을 들으십시오. 생사를 꿰뚫어 보고 삶을 꿰뚫어 보십시오. 살아가는 일이 대체 뭐 그리 대단한 일입니까? 고작 좁쌀만 한 일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전히 얽매여야 하겠습니까?

어떤 형제자매들은 여전히 직장에서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무엇을 걱정합니까? 사람이 죽지 않는 일은 다 사소한 일이고,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은 아예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모르드개는 핵심을 말했습니다.

모르드개가 사람을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에스더》 4:13-14)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이 몇 가지 일들을 모두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왜 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까? 왜 세상 배후에서 공중의 어두운 세상을 주관하는 흑암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까? 우리가 생사를 꿰뚫어 보고 살아가는 것을 꿰뚫어 보아, 이 세상이 우리 안에 아무것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얼마든지 덤벼들라 하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공중의 어두운 권세와 맞닥뜨린다 한들 어떠합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이 모르드개가 한 말의 핵심입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여러분이 편안하게 살아가라고 그 자리를 주신 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 자리를 주신 것은 여러분에게 사명을 주어 하나님을 위해 살게 하시고,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쓰고자 하실 때 담대히 일어서게 하려 하심입니다. 여러분, 이 도리를 이해하셨습니까? 우리 가운데 많은 형제자매들이 일은 매우 중하게 여기면서 정작 하나님은 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에스더가 올바른 선택을 내리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에스더》 4:15-16)

여러분 알아들으셨습니까? 모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금식이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다들 자신을 위해 살며 수산성에서 그저 먹고살며 죽을 날만 기다렸는데, 이제 민족이 멸망하게 생겼고 모두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으며, 자신이 번 돈마저 하만에게 다 빼앗기게 되었으니 더 이상 갈 길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관 하나를 마련해 관 속에 누워보는 느낌과 같습니다. 이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됩니다!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조서가 이미 반포되고 어인이 찍혀 각 지방으로 보내졌으니, 12월에 모든 유다인을 몰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정부의 공문이었고 정부에는 군대와 경찰이 있으니, 유다인을 쓸어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돈을 쥐여준다 한들 소용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돈을 위해 살지 않았습니까? 가진 자본이 많지 않았습니까?

비록 유대인들이 장사도 잘하고 돈도 잘 벌며 생활력도 강했지만, 이제 곧 죽게 되었으니 사흘 금식이 아니라 닷새 금식이라도 할 판이었습니다! 평소 아무 일 없을 때 사흘 금식하라고 하면 "공장은 누가 돌봅니까? 장사는 안 합니까? 물건은 안 보냅니까? 공사가 절반이나 남았는데요"라고 핑계를 댔을 것입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고 간사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연출하지 않으셨다면 수산성의 이 유대인들은 여전히 그대로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저 역시 딜레마에 빠집니다. 연약한 형제자매를 볼 때, 그를 위해 복을 구해야 할까요, 아니면 화를 구해야 할까요?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더 많이 경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또한 여러분 안에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치 관 속에 들어가 한 번 죽었다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둠의 권세는 공중의 어두운 세상을 주관하며 날마다 우리를 죽이려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날마다 세상에 묶여 있다면 죽음과 그리 멀지 않은 것입니다!

에스더는 어릴 때부터 모르드개의 집에서 훈련을 받았기에 모르드개는 그녀를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특히 궁에 들어간 후 모르드개가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가운데 누워 있자, 에스더는 그에게 돈이 없는 줄 알고 옷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강력한 도전을 던졌습니다. '너는 혼자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말라. 피할 수 없다. 하만의 도륙은 피할지 몰라도 하나님의 추적은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명히 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대 가운데 우리에게 똑똑히 보여주고 계십니다. 지금은 참으로 사명 신학의 시대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현혹하거나 무언가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저를 택하시고 사용하셨을 뿐입니다. 저 역시 제 작은 왕국을 세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도처에서 교회를 허물고 계십니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 얼마나 많은 교회가 무너졌습니까? 그러자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우리를 검색하여 찾아냈습니다. 굳이 우리 모임에 직접 나오지 않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우리의 성경공부와 설교를 듣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복이 되었습니까? 왜 '사명 신학'이라고 부를까요? 바로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신학이기 때문입니다!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에스더》 4:11)

왕궁에서 규례를 어기는 것은 곧 위법입니다. 왕이 세운 규례를 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에스더는 왕을 만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려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그것은 곧 죽음의 길이었고, 무단으로 쳐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이 없다면 어둠의 권세를 이겨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사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이 없어도 사람은 그리 오래 살지 못합니다. 기껏해야 70, 80년입니다. 사람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면 많은 문제가 사라질 텐데, 가장 두려운 것은 자기가 오래 살 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100세부터 200세까지 침대에 온통 마비되어 누워 있다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들겠습니까? 사람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너무 오래 살면서 고통만 끝없이 겪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생이 없기 때문에 그저 오래 살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언젠가는 죽기 마련인데, 태산처럼 무거운 죽음이 있는가 하면 깃털처럼 가벼운 죽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을 택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죽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입니다! 일단 하나님을 위해 죽기로 선택하고 '죽으면 죽으리라' 생각하면 오히려 쉽게 죽지 않습니다.

저는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제 안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논리가 있었습니다. 만약 죽음을 두려워했다면 끔찍했을 것이고 어둠의 영에게 붙잡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도 온전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일하는 모습은 매우 여유로워 보이고 결코 초조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압박감을 받습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때로는 심장이 쿵쾅거려 온몸이 쓰러질 것만 같습니다. 그럴 때면 책상에 엎드려 잠시 쉬곤 하는데, 다시 깨어나 보면 이미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면 그대로 숨이 넘어갔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책상에 엎드려 마음속으로 기도했고, 정말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업무 스트레스가 극심했고 상사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몇 년 뒤에는 둘도 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처음 3~4년 동안은 상사와 부딪히며 매우 힘들었습니다! 업무량도 많아 매일 코피를 쏟았고 화장지 서너 팩이 온통 붉게 물들었지만, 단 하루도 병가를 내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저와 나이가 비슷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가 말하는 증상이 저와 똑같았습니다! 그 친구는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지만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검사를 받은들 무엇하겠습니까? 저의 논리는 '살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는 법이고,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지만, 9개월 뒤 저는 그의 장례식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그가 관 속에 누워 있는 것을 보며 저는 "친구여, 잘 가게!"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은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그리하여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대략 5년 전, 저는 또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정말 호되게 앓았습니다! 몇 주 동안 설교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병원에 가지 않고 묵묵히 아주 작은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날마다 수천 번씩 트림을 하고 수천 번씩 방귀를 뀌며 몸속의 가스가 쉭쉭 빠져나갔습니다. 결국 20일 만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사흘 뒤에는 완전히 기력을 되찾아 펄펄 날았습니다!

제가 만약 죽기를 두려워했다면 끝장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죽으면 죽으리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황금률'이며, 저는 여러분에게 이를 말할 자격이 충분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목사님, 저는 그런 걸 못 믿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실컷 두려워하십시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면 마귀에게 바닥에 내팽개쳐져 짓밟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40대, 50대, 60대, 70대, 80대, 90대, 100세 넘게 살다가 결국 죽는데,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알아들으셨습니까? 의사가 제 수명을 늘려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의사의 손에서 많은 고통만 겪게 될 뿐입니다.

사람이 영생 안에 살아가는데 어찌 육체 따위에 연연하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올바른 선택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조만간 언젠가 여러분도 이 세상을 떠나게 될 텐데, 그때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직장에서 겪는 사소한 일들을 그렇게 중하게 여긴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스트레스만 받고 번번이 이것 틀리고 저것 실수할 뿐입니다! 사실 실수하면 좀 어떻습니까? 그게 뭐 대수라고요? 그러니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절대로 돈 벌기 위해 사는 줄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삶은 수고하는 가운데 기뻐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저는 지금 점점 더 건강해지고 있습니다! 사실 서른 살이 조금 넘었을 때 심한 비염을 앓아 아침부터 밤까지 코를 풀고 재채기를 하느라 주머니에 늘 휴지가 가득 차 있었고, 정말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후 교회를 개척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제 코가 점점 좋아졌습니다. 예전에는 에어컨 방에서 반소매를 입으면 즉시 코가 망가졌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 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대체 무엇입니까? 저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합니다. 저를 이 세상에 살게 하셨으니, 주께서 저를 쓰실 때가 오면 절대로 저를 빠뜨리지 마옵소서!'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회입니다!

며칠 전 대형 메가처치 다섯 곳이 문을 닫았다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목회자가 웅장한 대성당을 짓는 데만 몰두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는 막대한 돈을 들여 수만 장의 유리로 거대한 유리 예배당을 지었고, 외관이 매우 아름다워 유명 명소가 되었지만 결국 교회는 문을 닫았습니다. 돈에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기회가 왔습니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제 마음에는 매우 무거운 짐이 생깁니다. 이 교회들이 모두 영어를 사용하는 곳인데, 우리가 영어권 형제자매들에게 복이 될 수는 없을까? 어떻게 양육해야 할까? 저는 모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니, 주여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언젠가 온 땅이 화인 사명 신학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니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마음을 넓히고 시야를 넓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크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세우신 것이 바로 이때의 기회를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기독교 안에 터무니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비록 벌집을 건드려 벌에 쏘여 만신창이가 된다 해도, 죽으면 죽으리라!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이단이나 극단이라고 부른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이러한 독소들이 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판을 쳐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으니 우리는 죽으면 죽으리라 나아갈 뿐입니다! 많은 사람이 실제로 우리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평생 잘못 믿어왔다고 말해준들 그들이 어떻게 쉽게 받아들이겠습니까?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조금씩 묵묵히 해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온 땅에는 진리의 도가 없어서 마음에 수많은 혼란을 겪고 있는 작은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도 우리 교회에 올 때 많은 의문과 혼란을 품고 오지 않았습니까?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온몸에 질병을 앓으면서도 그것이 좋은 일인 줄 압니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와서 점점 더 좋아지지 않았습니까?

어떤 사람은 매우 가난하게 사는데, 가난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이 결코 하나님의 약속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하신다면 하나님의 각본대로 연기해 나가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붙잡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십시오!

'죽으면 죽으리라'의 근거는 무엇인가?

'죽으면 죽으리라'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이 근거는 매우 단순합니다. 우리는 영생 안에 살아가기 때문에 비록 육신은 죽더라도 우리의 영은 여전히 살아있으며, 따라서 육신은 무익한 것입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른 남짓에 돌아가신 것이 너무나 안타깝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셨으나 반드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꿰뚫어 보는 것이 핵심입니다! 꿰뚫어 보지 못하면 참으로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났을 때 고행승처럼 되어버리는 줄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것은 다 편안하게 누리되,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고자 하실 때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마치 이삭처럼 자신을 바치는 것입니다. 단번에 자신을 드리면 평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데, 무엇을 더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위기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위기는 우리 안에 있는 세상에 속한 완고한 것들을 무너뜨리는 데 딱 맞습니다. 죽게 생겼다면 무너뜨리고 싶지 않아도 무너뜨릴 수밖에 없게 되고, 비로소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됩니다. 주님께 감사하게도, 이것이 바로 꿰뚫어 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게 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 예수님을 힘입어 승리하고 죽음을 이기게 하려 하심입니다!

제 마음에는 한 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사역자들과 소그룹 목자들, 그리고 형제자매들이 모두 어둠의 권세를 이겨내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여러 번 형제자매들이 어둠의 권세를 이기지 못하고 그 안에 여전히 세상적인 것들을 품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마음이 참으로 아픕니다. 그렇기에 형제자매 여러분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시대는 여러분과 저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이 복음의 유익을 얻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께 쓰임 받고 하나님과 동역함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마땅한 권능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초입니다. 여러분이 이 기초를 두고 명철하게 분명히 깨닫는다면, 그런 '사소한 일들'에 여전히 연연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자리에 있든, 작은 사업체의 대표이든 큰 기업의 대표이든, 하나님께서 주신 그 자리가 바로 이때의 기회를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공직자일 수도 있고 전문직일 수도 있지만, 여러분이 누구이든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 안에서 성취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이번 성경공부 나눔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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