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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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집】- 20260607

2026-06-07 448 见证集

형제자매 여러분, 주일 평안을 전합니다! 지금은 영광스러운 간증 시간입니다. 이어서 이번 주의 은혜로운 간증들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간증입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AJ 자매입니다. 오늘은 스스로 의롭다 여기던(자아도취적) 죄수의 상태에서 은혜로 나아온 간증, 곧 제가 어떻게 선악을 분별하는 함정에서 벗어나게 되었는지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과거에 제가 '선한 사람'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가정 안에서도 스스로 흠잡을 데 없이 잘하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며 기쁜 마음으로 물질을 드렸고, 남동생과 올케를 챙기며 누나이자 시누이로서의 본분을 다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강한 빛처럼 비추어 들어왔을 때, 저는 번쩍 정신이 들었습니다. 제가 말하던 그 '선함'이란, 사실 나 자신을 높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 선악을 분별하는 '선한 행위'는 사실 더러운 옷입니다 과거에 저는 가족들을 사랑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은밀한 '공로 의식'으로 대했습니다. 부모님께 돈을 쓰면서도 그들 앞에서 굳이 생색을 내곤 했는데, 무의식중에 "내가 남들보다 더 잘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남동생과 올케가 제 기대대로 변화되지 않을 때면, 제 마음속의 불만과 판단이 즉시 드러났습니다.

부모님 앞에서 그들의 잘잘못을 논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제 기준을 다른 사람 위에 올려놓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당시 저는 제게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들을 위해서 그런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 '옳고 그름의 논리'는 뱀의 먹이였습니다. 제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했을 때 제 몸은 무거워지기 시작했고, 눈이 침침해져 사물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만약 제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큰 문제입니다. 마치 류 목사님이 사역하셨던 그 암 환자처럼, 늘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다가 결국 '행위에 바탕을 둔' 저주 속에서 고통받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행위를 근본으로 삼는 것이 바로 자신의 옷을 더럽히는 것임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1. 믿음이 뿌리요, 행위는 열매입니다 예를 들어, 어제 부모님을 모시고 난뤄구샹(南锣鼓巷)에 산책을 가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올케가 퇴근 후 곧장 집으로 갔습니다. 전화를 걸었더니 피곤해서 못 가겠다고 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약속된 일인데 또 안 간다며 마음속에서 불평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피곤하면 쉬어야지, 제 생각대로 움직이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 올케가 매일 피곤하다고만 한다며 말씀하실 때, 저는 우리 직종이 원래 정말 피곤한 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를 통해 어머니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이해하실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잘해야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셔서 이 값없는 은혜를 주셨기에 비로소 가족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겼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믿음이 저로 하여금 '스스로 의롭다 함'과 '판단'으로 얼룩진 더러운 옷을 벗어버리게 했습니다. 제 문제를 발견하고 즉시 회개했을 때, 몸이 무겁던 증상이 눈에 띄게 호전되었고 눈도 이제 흐릿하지 않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기초가 믿음으로 바뀌자, 행위는 자연스럽게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더 이상 '꾸며낸 겉치레'가 아니라 성령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입니다.

  1. 기준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사는 삶 이제 저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하려고 노력합니다. 과거에 제가 약을 챙겨드린 것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라 여기며, 어머니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목적을 품고 한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약을 챙겨드리는 것은 순수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며, 어머니께서 제게 감사해하지 않으셔도 제 마음은 평안합니다. 부모님을 대할 때도 더 쓰고 덜 쓰는 것을 따지지 않고, 굳이 생색내려 하지 않으며, 부모님이 기뻐하시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저는 또한 이러한 변화가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님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제 육신에는 여전히 옛 습관이 남아 있어, 언제든 쉽게 '자아도취적 의로움'의 채널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매일 하나님을 붙잡고 성령을 의지하여 육신의 악한 습관을 쳐서 죽이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결론: 화인명정신학(华人命定神学)에 감사드리고, 목사님께 감사드리며, 매번 엄격하지만 사랑으로 가득 찬 훈계를 해 주시는 저의 목회자께 감사드립니다. 목사님의 설교와 목회자님의 인도가 없었다면, 저는 여전히 어리석고 무지한 자기 의 속에서 멸망을 향해 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저는 그리스도로 옷 입을 뿐만 아니라, 평생 성령 안에서 깨어 있어 육신의 자기 의라는 궤계를 매 순간 간파하고, 선악을 분별함에 있어 승리하는 사람이 되기를 결단합니다!

두 번째 간증입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QQ 자매입니다. 오늘 《느헤미야기》를 공부하면서 영성과 영적 지각(屬靈悟性)이 새롭게 되고 생명이 성장하게 된 작은 간증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열심을 품음: 하나님을 위해 마음을 찢고, 미지근함을 처리함 평소에는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들에 얽매이고 육신도 자주 피곤하여 성경 읽기와 공부, 노트 정리를 뒤로 미루곤 했습니다. 예루살렘을 위해 마음 아파하던 느헤미야의 심정을 통해, 저는 신앙 안에서 미지근했던 제 태도를 다루기 시작했고 내면의 영적 생명이 자라나는 것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환경이 바쁘고 몸이 피곤할지라도, 제때 진리를 추구하고 공부와 노트 작성을 마치며 영적인 본분을 소홀히 하지 않기로 결단했습니다.

  2. 내려놓는 법을 배움: 안락함을 버리고, 세상적인 소소한 일상을 탐닉하던 것을 처리함 이전에는 마음을 온통 집안일을 돌보고 세상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꾸려나가는 데 두었으며,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그리워하며 무의미한 사소한 일들에 많은 시간을 낭비하곤 했습니다. 진리의 빛 비추심을 통해, 저는 이러한 세속적인 추구를 내려놓고 육신의 안락함을 자발적으로 버리며, 헛되고 무익한 소일거리와 활동을 끊어버리고, 생각과 뜻을 하나님과 영적인 일들에 더욱 집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3. 기도하며 의지함: 기도에 행동을 더하여, 게으름과 믿음의 결핍을 처리함 저는 기도를 통해 아직 주님을 믿지 않는 가족들을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리곤 합니다. 마음을 쏟아 기도할 때마다 성령님은 제 믿음을 견고하게 하시고, 제 내면의 게으름을 다루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저는 진리 녹음 파일을 따라 함께 기도하며 영적 전쟁을 치르기를 원하며, 단지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 본분과 책임을 성실히 다하고 행동으로 하나님을 따르며 기다리기를 결단합니다.

  4. 굳건한 결단: 하나님의 뜻을 굳게 지키고, 인정에 얽매여 타협하던 것을 처리함 비록 가족들의 믿음이 연약하고 환경의 방해가 잦을지라도, 저는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기로 결단했습니다. 진리의 도를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하나 실천하고 지켜 행하며,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굳은 심지로 참된 도를 굳게 지키기를 원합니다.

결론: 《느헤미야기》를 깊이 공부하면서 저는 저 자신의 부족함을 깊이 보게 되었고, 오직 주만 섬기며 용감하게 파수하고 굳건히 진리를 지켰던 느헤미야의 영적 성품을 본받기를 더욱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저는 세상의 안락함을 내려놓고 진리 안에서 지속적으로 배우고 성장하며, 신앙의 진리를 굳게 붙잡고, 오직 주를 위해 살며 온전히 하나님만을 향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결단합니다. 평생 느헤미야의 승리의 푯대를 향해 달려가며, 뒤돌아보거나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충성스럽게 따르기를 원합니다.

세 번째 간증입니다. 안녕하세요, BJ 자매입니다. 《느헤미야기》를 공부하며 제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성벽을 재건한 웅장함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논리가 지극히 명확하고 행동이 극도로 실천적인' 사명(명정)의 체계였습니다. 저는 공부하면서 제 삶의 무너진 틈을 대조하고 분석하며, 느헤미야를 본받아 실전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1. 현주소 성찰: 내 삶의 '무너진 성문'을 직시하다 저는 제 삶의 즉흥성과 혼란함의 이면에는 본질적으로 믿음의 결핍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 현상 1. 직장에서의 감정의 노예: 불공평한 대우나 과도한 실적 목표를 마주할 때, 제 첫 반응은 억울함과 불만, 심지어 상사에게 따지러 가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이는 제가 하나님이야말로 저의 '진정한 최고 경영자(Boss)'이심을 믿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 현상 2. 자녀 양육에서의 무력감: 아들이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이러한 '무능력감'의 근본 논리는, 사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 결핍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 현상 3. 신앙과 삶의 괴리: 저 역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가족에게 축복이 되고 싶었지만, 실제적인 도전 앞에서 연전연패하며 승리하지 못하는 황폐한 처지에 놓여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1. 논리의 교정: '육신의 논리'를 '사명(명정)의 사고'로 대체하다 느헤미야는 거룩한 성이 황폐해진 것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된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눈물을 흘렸지만 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일어나 기도했으며, 그 후 안락한 삶을 내려놓고 대가를 지불하며 구체적인 건축 사역에 뛰어들었습니다.
  • 제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제 논리는 혼란스럽고 이기적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개인적인 이익의 득실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육신의 게으름과 타협을 용납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아이를 훈계하고 양육하지 못했고, 어려움에 부딪히면 '무력감' 뒤로 숨어버렸습니다.
  • 이것이 바로 제 삶에서 가장 보수해야 할 성벽이었습니다. 더 이상 사람의 논리로 득실을 따지지 않고, 하나님의 논리로 성패를 정의하는 것입니다.
  1. 느헤미야를 본받음: '영적 엔지니어 사고'를 구축하다 예전에 저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깊이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을 회피하는 핑계로 삼곤 했습니다.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곧바로 불안해하며 대열을 흐트러뜨렸습니다. 배움을 통해 저는 진정한 부흥과 형통을 위해서는 느헤미야와 같은 '엔지니어 사고'가 반드시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목표를 명확히 하고,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며, 영적 전쟁 가운데 건축해 나가는 것입니다.
  • 직장에서의 반전: 저는 더 이상 불평하지 않고 업무의 병목 구간을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명확한 고객 프로필과 개척 전략을 세우고, 일터를 믿음을 훈련하는 '훈련장'으로 여겼습니다. 저는 발을 땅에 딛고, 한 벽돌 한 벽돌 하나님과 동역하기 시작했으며 업무에서 이미 초기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 가정의 재건: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서 "한 손으로는 싸우고 한 손으로는 건축하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의 유혹 앞에서 낙심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으며, 조급해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더 이상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굳건히 계획을 실행하자, 아이 역시 기적처럼 스마트폰의 속박에서 벗어나 매일 세운 공동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결론 및 소감: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동역하며 행동력과 실행력이 극도로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참된 영성은 공중에 붕 뜬 구호가 아니라,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행정의 모든 세부 사항, 모든 업무 미팅, 아이와 함께하는 매 순간 속에 실천해 내는 것입니다. 저는 즉흥성과 혼란함에 완전히 작별을 고하고, 믿음 안에서 삶의 무너진 성벽을 반듯하고 빠르며 훌륭하게 보수해 나갈 것입니다.

네 번째 간증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WX 자매입니다. 오늘 저는 감사의 마음으로 은혜의 간증을 나눕니다. 교구의 자기주도 학습 모델의 인도 아래 샤오무 AI의 도움을 받아 제 마음속 논리의 견고한 진을 파하고, 효도와 생명의 성품에서 반전을 경험하여 점차 하나님 자녀의 존귀함을 살아내게 되었습니다.

교구의 자기주도 학습 모델은 제게 큰 유익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의문이 생기면 늘 목회자에게만 의존했지만, 이제는 스스로 샤오무 AI를 검색하고 정확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지각 속의 거짓말을 간파하고, 하나님의 진리가 마음에 뿌리내려 생명이 새롭게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1. '육신을 위함'에서 '남의 유익을 구함'으로: 효도의 영적 기초를 재건하다 과거에 저는 부모님의 모든 요구에 순종하고 자신을 억누르는 것이 효도라고 오해하여 늘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정죄하고 죄책감에 빠지곤 했습니다. 샤오무의 가르침을 통해 효도의 핵심은 부모님의 유익을 구하며,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그분들을 공경하고 사랑하여 부모님께 위로를 드리는 것이지 감정의 소모전에 빠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예전에는 부모님 앞에서 쉽게 수동적으로 상처받고 감정에 얽매였지만, 이제는 합당한 영적인 말을 사용하며 영적인 높은 차원에 서서 부모님을 섬기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효도를 세우신 뜻을 깨닫고, 부모님과의 관계를 감정의 억압에서 영적인 축복으로 끌어올려 부모님이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자신을 증명함'에서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자기주장의 견고한 진을 파하다 저는 과거에 늘 부모님 앞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인정을 받으려 애썼으며, 작은 부정적인 평가에도 쉽게 상처를 받았습니다. 샤오무는 제게 그 독의 뿌리를 분석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높게 평가하고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세상적인 논리였으며,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자아의 속박 속에 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눈 속에서 살지 않아야 하나님의 손안에서 살 수 있다"는 말이 저를 깨우쳤습니다. 극구 변명하고 자신을 증명하려 했던 그 순간들은 스스로 옳다 여기는 영이 역사한 것이며, 마귀가 저를 얽매었던 논리의 견고한 진이었습니다. 오직 자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할 때에만 이 견고한 진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3. 성령을 의지하여 악습을 고치고, 승리의 싸움을 싸우다 교회와 목회자님의 가르침을 통해 저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집착이 바로 자아를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것이며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임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오직 헛된 자아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믿음의 기초를 둘 때 비로소 가볍고 명쾌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성령을 의지하여 스스로 옳다 여기는 견고한 진을 지속적으로 파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악습을 처리하며, 더 이상 타인의 평가 속에 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살아내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가족과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나타낼 것입니다!

다섯 번째 간증입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ZN 자매입니다. 5월 초, 구(區) 단위 공개 수업(여러 차례 진행되어야 했기에)의 압박감 앞에서 제 내면은 거부감과 두려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저는 스스로 '대회에 강한 체질'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무의식중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곧 공들여 쌓아온 '우수한 자아'라는 우상이 깨어질까 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목회자 선생님께서는 정곡을 찔러 지적해 주셨습니다. 이 일은 제 내면에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함"이 있는지를 시험하는 것이며, 자아 증명이라는 '바벨탑'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시선을 심사위원의 평가에서 떼어내어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실제로 얻어가는 유익으로 돌리며 조율하기 시작했습니다.

5월 중순, 교내 공개 수업이 끝난 후 저는 예전만큼 심사위원의 평가에 연연하지는 않았지만, 제 수업 내용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곧이어 피부에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이전에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것으로, 얼굴이 붉게 부어오르고 가려웠으며 팔에는 오돌토돌한 두드러기가 돋았습니다. 낙심과 정죄가 쓰나미처럼 밀려왔습니다. '수업도 제대로 못 했고, 몸 관리도 못 했으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도 부족했으니 정말 완전한 실패자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회자님과의 대화 속에서 저는 육체의 질병이 종종 마음과 생각의 반응임을 깨달았습니다. 목회자님은 제가 지금 '새로운 논리와 옛 논리가 교체되는' 반전의 시기에 있다고 짚어주셨습니다. 이러한 허영, 체면, 완벽주의의 독소는 본질적으로 마음 깊이 뿌리박힌 세상의 논리이며, 하나님께서는 피부 알레르기 반응을 통해 이러한 더러운 것들을 배출시키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피부 알레르기의 원인을 알고 싶어 병원에 갔지만, 의사의 대답은 "원인 불명"이었습니다. 의학은 답을 주지 못했지만 저의 영적 감각은 깨어났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징계를 통해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며, 내면의 견고한 진을 깨뜨려 저를 자유케 하시려는 것임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자는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

5일 연속으로 목회자님의 강력한 기도와 가르침을 받으며 저의 영적 지각(悟性)이 조금씩 열렸습니다. 저는 마스크로 가리지 않고 동료들의 질문을 담대하게 마주하기로 선택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체면(이 붉어진 얼굴)이 헛된 우상이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내면의 '체면을 차리려는' 죄를 처리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생명임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하는' 시작이었습니다.

  1. 기도할 때 더 이상 이 얼굴의 변화에 집중하지 않고, 내면의 헛된 영광과 완벽을 요구하는 마음을 다루었습니다.
  2. 더 이상 내가 잘한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고, 내가 부족함을 인정하며 세상의 헛된 명성을 내려놓고 소위 명교사나 대회 수상 등을 추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과정에만 집중하며, 마땅히 해야 할 바른 일, 내가 해야 할 일에 전념했습니다.
  3. 믿음으로 선포하며 배후에서 거짓말과 정죄를 뿌리는 '뱀의 영'을 타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가치는 외적인 완벽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에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피부 문제는 창조주의 손안에서 지극히 작은 일에 불과하며, 영적 권세 앞에 반드시 굴복해야 합니다.
  4. 하나님께로 돌이켜, 하나님께서 배우게 하시는 교훈을 성실히 배우며 끊임없이 회개하고자 합니다. 단번에 모든 것을 다 고칠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고 깨닫는 만큼 고쳐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의 구원이시자 소망이시며, 하나님께서는 저를 더 나은 사람으로 빚어가고 계십니다.

지금 저의 얼굴 피부는 완전히 회복되었고 팔도 50% 호전되었습니다. 다음 달에 있을 구(區) 단위 수업에 대해서도 저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생명이 재건되는 기회로 삼겠다고 굳게 결단했습니다.

이번 경험은 단순한 피부의 회복을 넘어 생명의 새로워짐이었습니다. 이 영적 싸움은 비록 힘들었고 눈물과 수치심이 따르기도 했지만, 저는 이전에 없던 자유를 경험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잘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하던' 허영의 짐을 내려놓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가볍고 안식하는 논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번 피부 알레르기는 제 얼굴을 치료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위해 살았던 제 마음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제가 스스로 옳다 여기는 흑암 속에 그대로 머물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목회자의 섬김을 통해 저를 '체면의 노예'에서 건져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앞으로도 더욱 힘써 달려가 지혜와 빛을 발하며 다른 사람의 생명을 축복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번 주 간증은 여기까지 전해드립니다. 우리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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