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推荐评论
命定神学 关闭
【성경공부】에베소서 1장 - 만물 위에 뛰어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너희로 참으로 알게 하기를

2025-07-16 49,441 以弗所书

相关经文

以弗所书01章-问候
  • 1 奉 神旨意,作基督耶稣使徒的保罗,写信给在以弗所的圣徒,就是在基督耶稣里有忠心的人。
  • 2 愿恩惠、平安从 神我们的父和主耶稣基督归与你们!
  • 3 愿颂赞归与我们主耶稣基督的父 神!他在基督里曾赐给我们天上各样属灵的福气:
  • 4 就如 神从创立世界以前,在基督里拣选了我们,使我们在他面前成为圣洁,无有瑕疵;
  • 5 又因爱我们,就按着自己的意旨所喜悦的,预定我们藉着耶稣基督得儿子的名分,
  • 6 使他荣耀的恩典得着称赞;这恩典是他在爱子里所赐给我们的。
  • 7 我们藉这爱子的血得蒙救赎,过犯得以赦免,乃是照他丰富的恩典。
  • 8 这恩典是 神用诸般智慧聪明,充充足足赏给我们的;
  • 9 都是照他自己所预定的美意,叫我们知道他旨意的奥秘,
  • 10 要照所安排的,在日期满足的时候,使天上、地上、一切所有的都在基督里面同归于一。
  • 11 我们也在他里面得(得:或译成)了基业;这原是那位随己意行、做万事的,照着他旨意所预定的,
  • 12 叫他的荣耀从我们这首先在基督里有盼望的人可以得着称赞。
  • 13 你们既听见真理的道,就是那叫你们得救的福音,也信了基督,既然信他,就受了所应许的圣灵为印记。
  • 14 这圣灵是我们得基业的凭据(原文是质),直等到 神之民(民:原文是产业)被赎,使他的荣耀得着称赞。
  • 15 因此,我既听见你们信从主耶稣,亲爱众圣徒,
  • 16 就为你们不住地感谢 神。祷告的时候,常提到你们,
  • 17 求我们主耶稣基督的 神,荣耀的父,将那赐人智慧和启示的灵赏给你们,使你们真知道他,
  • 18 并且照明你们心中的眼睛,使你们知道他的恩召有何等指望,他在圣徒中得的基业有何等丰盛的荣耀;
  • 19 并知道他向我们这信的人所显的能力是何等浩大,
  • 20 就是照他在基督身上所运行的大能大力,使他从死里复活,叫他在天上坐在自己的右边,
  • 21 远超过一切执政的、掌权的、有能的、主治的,和一切有名的;不但是今世的,连来世的也都超过了。
  • 22 又将万有服在他的脚下,使他为教会作万有之首。
  • 23 教会是他的身体,是那充满万有者所充满的。

《答疑解惑》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함께 에베소서를 살펴보겠습니다. 에베소서는 교회를 세우는 것에 관한 성경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가 능력을 잃고, 하나님의 임재를 잃고,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리면 정말 큰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세울 때 반드시 에베소서를 따라 세워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전하는 이 성경공부를 많은 곳에서 사역자분들이 설교에 활용하고, 그 지역의 성도들을 양육하는 데 쓰고 계실 줄 압니다. 여러분께 한 가지 권면을 드립니다. 만유 위에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결코 산타클로스처럼 믿지 마십시오. 그것은 인생의 비극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만 잘 알지 못합니다. 에베소 지역의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이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말 알고 있었을까요? 그들이 정말 알았다면 바울은 굳이 에베소서를 쓸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왜 에베소서를 썼을까요? 그들이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장의 주제는 “만유 위에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정말 알고 계십니까

말씀드리자면, 많은 이들이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무엇을 믿는지 모릅니다. “나는 그냥 예수님 믿고 천국 간다” 할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는지, 갈 수는 있는 것인지,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고 어떻게 떨어지는지조차 명확히 알지 못합니다.

에베소 교회 역시 명확히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를 기록하여 에베소 교회가 무엇을 믿는지 분명히 알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기독교 역사는 어떤 면에서 비극의 역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삶 속에서 잃어버린 역사였고, 교회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든 장 칼뱅이든, 많은 경우 에베소서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다소 피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했다고 저를 탓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세운 교회들을 보면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유 위에 뛰어나시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대로 교회를 세웠습니까? 심지어 교회의 구원관조차 모호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에베소서가 왜 저에게 이토록 큰 영향을 주었을까요? 한 노목사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교회를 세워야 한다.” 그분은 에베소서가 바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책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전부터 이 책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수없이 묵상하고 공부했습니다. 설교할 때도 에베소서 본문을 아주 많이 인용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에베소서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더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오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까? 조금은 보았습니다. 우리의 눈이 정말 열렸습니까? 희미하지만 조금은 열렸습니다. 우리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았습니까? 조금은 받았습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눈을 참으로 밝혀 주시고, 지혜와 계시의 영을 다시금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가 오늘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려면 조금 더 많은 지혜와 조금 더 많은 계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참으로 알고 있는가 묻는다면, 안타깝게도 겨우 조금 알 뿐이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알게 된다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알게 된다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바울이 에베소서를 쓴 이유는 당시 에베소 교회가 아는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고 있던 상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쓴 단어들을 보면 읽기에 다소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거창한 개념들이 많이 나오지만 정말 이해하고 있을까요? 이해하는 듯하면서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최선을 다해 제가 깨달은 이 작은 부분이라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아는 것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아는 것이 조금이든 얼마이든,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어떤 소망이 있냐고요? 그 소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에베소서 1:18)

주제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바로 17절에서 나왔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에베소서 1:17)

그분은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1장의 주제가 “만유 위에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첫 번째 요점은 ‘여러분은 자신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정말 알고 있는가?’이고, 두 번째 요점은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말씀드리자면, 세상에 대한 소망을 끊어버리지 않고서는 그 소망을 예수 그리스도께 둘 수 없습니다. 우리 중에도 세상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것이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 안에는 수많은 바람이 있습니다. 불꽃처럼 뜨거운 연애를 해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많은 자매들이 불같은 사랑을 꿈꿉니다. 그러나 결국 자기 자신이 불타버리는 줄도 모릅니다. 세상일을 다 깨닫고 났을 때는 이미 나이가 꽤 들었고, 수없이 손해를 보고 속았으며, 돈이든 마음이든 여러 번 사기를 당한 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삶에 소망을 둔다면 과연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조금 더 멀리 내다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유한 노인에게 시집가는 것을 기대합니다. 어떤 재미있는 숏폼 영상이 있었습니다. 한 노인이 미녀 옆에 앉아서 “내 여자친구가 되어 주겠소?”라고 묻습니다. 여자는 벌떡 일어나 “어떻게 그런 말을 하세요?”라고 화를 냅니다. 그러자 노인이 100위안짜리 지폐 십여 장을 탁 꺼내놓습니다. 여자는 그 돈을 받아 들더니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 하며 돈을 바닥에 내동댕이칩니다.

그러자 노인이 뒤에서 만 위안짜리 돈다발을 여러 묶음 척 꺼냅니다. 여자가 그것을 보더니 ‘나이가 좀 많긴 하지만…’ 하면서도 그 많은 돈다발을 덥석 받습니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자리에 앉으며 “그래도 우리 나이 차이가 좀 나긴 하네요”라고 합니다. 노인이 다시 굵은 금목걸이를 꺼내 흔드니, 여자는 “와! 아니에요, 나이 차이 얼마 안 나네요!”라고 말합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소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소망은 ‘유니콘 기업’을 만드는 것입니다. 기업이 유니콘이 되기는커녕 본인이 뿔이 날 지경인데도 말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이것저것 애써 본들 무엇을 얻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세상에 대한 이런 소망들을 끊지 못했다면, 오늘 제가 전하는 이 소망은 여러분에게 소망처럼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에게 좋은 소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여러분을 축복하고 싶지, 헛된 말을 늘어놓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진지하게 조언을 해드릴 수도 있지만 결국 의미가 없습니다. 서로 거짓된 것만 주고받는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반드시 세상을 꿰뚫어 보고 세상에 대한 미련을 끊어버린 사람들이 모여야 합니다. 저에게 세상에 무슨 소망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세상에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덧없는 일입니다. 굳이 소망을 두어야 한다면, 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에 소망을 둡니다.

신령한 복이 얼마나 좋은지 아십니까? 사람이 돈이 많다고 무엇을 살 수 있겠습니까? 건강조차 살 수 없습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중 하나는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질문은 하지 마십시오. 저에게 물어보셔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훗날 우리가 함께 천국에 가서 바울과 함께 에베소서를 읽을 때 비로소 다 알게 될 것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에베소서 1:4)

“선생님, 저는 거룩하고 싶지 않고 더럽게 살고 싶어요”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사람의 선택입니다. 어떤 사람은 온몸에 악취가 나도 상관없다고 여길 수 있지만, 그것은 참된 소망이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 안의 문제들이 다 고쳐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망입니다.

우리가 지금 완전히 거룩하고 흠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습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소망이 있습니다. 이것을 소망으로 삼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아들의 명분을 얻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들의 명분을 얻으면, 하나님의 집에 있는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되며, 필요한 것을 얼마든지 가져다 쓸 수 있게 됩니다.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된다는 말이 당장은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가 자녀가 되면 하나님의 그 엄청난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에베소서 1:6-9)

여러분에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더 깊이 들어가려 해도 제가 전할 수 있는 깊이는 대략 여기까지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1:10)

인생이 왜 막장 드라마처럼 흘러가는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안에 사랑하시는 아들의 피가 아닌 더러운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막장 드라마 같은 삶을 살까요? 죄 사함을 받지 못했고 저주 가운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연히 막장 드라마가 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길거리에서 아무나 손가락으로 가리킨 뒤 눈을 떠보십시오. 분명 막장 드라마 같은 인생일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삶 속 깊은 내막을 들여다보지 못해서 그렇지, 다 막장 드라마입니다. 소설가들이 그런 자극적이고 비참한 막장 소설을 써서 노벨상을 받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인생이 파란만장해 보일지 몰라도, 그 주인공으로 살아간다면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옛날 궁중 암투나 신하들 간의 정쟁을 보십시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 선거를 돕다가 당선된 후 갈라서서 서로 싸우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세상의 삶은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왜 싸울까요? 귀신이 배후에서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지휘하며 “자, 네 차례다, 무대에 올라가라” 하면서 끊임없이 교체 투입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막장 드라마를 계속해서 연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막장 드라마 같은 삶을 바라고 싶으십니까?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 중에도 사기를 당해 수만, 수십만 위안의 빚을 지고 마음이 찢어지듯 괴로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본인의 잘못도 아닙니다. 괜찮은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고 생각했는데, 겉만 번지르르했을 뿐 어느 날 남편이 외도를 하여 인터넷 방송인과 바람이 난 것을 알게 되는 등의 일들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지 못하면, 그저 비참하고 더러운 일들만 겪게 됩니다. 또한 거룩하고 흠이 없지 않으면 귀신이 달라붙습니다. 거룩함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몸에 귀신이 없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단순한 도덕이 아니라 귀신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귀신은 몹시 더럽고 악취가 납니다. 지옥의 벌레들이 구더기나 쇠똥구리처럼 온몸을 기어 다닌다면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거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틈이 없는 알에는 파리가 꼬이지 않듯이, 사람이 더러우면 귀신이 붙게 마련입니다. 왜 이렇게 될까요? 소망이 없으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명분도 없고, 하나님이 주신 권세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가지면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할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영적 세계는 너무나 실제적입니다. 며칠 전 한 가정의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왜일까요? 생각 자체가 여전히 귀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집의 아이는 폐에 질환이 있어 몹시 고통받고 있었고, 아버지는 입원해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어머니 역시 온갖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제가 그 집에 심방을 간 적이 있습니다. 다른 아이를 사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아이는 초등학생 때 뇌수막염에 걸렸습니다. 아이가 왜 뇌수막염에 걸렸을까요? 집에서 학교로 오가는 길목 웅덩이에 여학생 친구가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된 채 버려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매일 그곳을 지나다니며 공포에 떨다가 결국 뇌수막염에 걸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가문의 비극적인 역사는 하늘의 신령한 복이 없고 아들의 권세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이것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것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명문대 학벌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실지 모르지만, 그것도 소용없습니다. 학벌이 통하는 것이라면 명문대 박사인 저에게 먼저 통했어야 합니다. 우울증이 찾아오면 어떤 학위도 소용없습니다. 명문대를 나와 싱가포르에 와서 우울증에 걸린 사람도 제가 귀신을 쫓아내 주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가진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소망이 있습니까! 우리 손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가 있고, 아들의 명분이 있으며,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알고 있고, 우리의 죄는 사함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몸이 속량받고 죄가 용서받았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사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고 때가 차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소망입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바랄 수 없습니다. 직장을 다닌다 한들 미래에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재앙과 내일 중 어느 것이 먼저 올지 알 수 없습니다. 길가에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인데, 사회에 불만을 품은 자가 차를 몰고 돌진해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들을 치어 숨지게 하는 세상입니다.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세상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굳이 세상의 소망을 꼽자면 고작 좋은 유골함 하나 장만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에 소망이 없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얼마나 큰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부르심의 소망이 얼마나 놀라운지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얼마나 좋은지 말해줄 수 있나요?”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우울증이 치유되고 암이 치유됩니다. 왜일까요? 바로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왜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합니까?”라고 할지 모릅니다. 단정이 아닙니다. 직접 경험해 보고 나니 정말 좋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소망을 택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없어도 이것만은 결코 없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생뿐만 아니라 내세와 영원에 이르기까지, 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기를 원합니다.

장차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체제와 완전히 다릅니다. 앞으로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 안으로 들어가 한 도시를 다스리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더 잘해서 다섯 도시를 다스리게 된다면, 세상으로 치면 큰 영토를 다스리는 지도자가 되는 것 아닙니까? “벼슬자리를 참 좋아하시네요”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벼슬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소망입니다! 얼마나 큰 소망입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십시오. 여러분의 소망을 세상에 두지 마십시오. 세상에 소망을 두면 반드시 실망하게 되고, 통일되기는커녕 멸망의 구덩이에 빠지게 됩니다.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아는 것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에베소서 1:17-18)

바울이 쓴 이 말씀의 근거가 어디에 있을까요? 11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은 앞부분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18절의 이 두 구절은 앞선 3절부터 14절까지의 요약이자 결론입니다. 그리고 13절과 14절은 18절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펼쳐서 다시 한번 명확하게 설명해 줍니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1:11-14)

이 말씀을 읽고 나면 다소 어리둥절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 감이 잘 안 오실 수 있습니다.

장차 만유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때 우리는 무엇을 하게 될까요? 기업을 얻게 됩니다. 어떤 기업일까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드리자면, 우리가 주님을 얻고 주님도 우리를 얻으신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얻으셔서 그분의 기업(소유)으로 삼으시고, 우리가 주님을 얻어 주님이 우리의 기업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업에는 참으로 풍성한 영광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에베소서 1:13-14)

바로 우리로 하여금 기업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시골에 가면 집을 지을 수 있는 대지(택지)가 있습니다. 농촌에서 선을 긋고 “여기는 당신 집터입니다” 하면 그곳에 집을 짓고 영구히 자기 소유가 됩니다.

우리 형제자매 중 어떤 분의 집터는 선전에 있습니다. 도심 속 마을이 된 것입니다. 거기에 십몇 층짜리 건물을 올렸다면 엄청난 가치가 있습니다. 선을 긋고 경제특구로 지정해 준 지도자에게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선전 안에 있는 땅과 외딴 시골의 황무지는 그 가치가 완전히 다릅니다.

이런 영구적인 땅을 ‘기업’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기업이란 무엇입니까? 70년 임대권이 있는 아파트는 진정한 기업이 아닙니다. 70년이 지나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업이란 영원히 나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선전 특구 안에 들어간 땅도 그토록 가치가 높은데, 예수님께서 정하신 영역 안에 들어간다면 선전의 땅보다 훨씬 더 값지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얻은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얻는 것은 엄청난 유익이 있으며 비교할 수 없이 귀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정말 선전의 건물보다 더 가치가 있나요?” 당연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업을 얻었다는 것은 영원토록 주님이 우리의 기업이 되시고 우리가 주님의 기업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되고 우리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런 삶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인을 치십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나타납니다.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 사람은 여러분을 몰라볼지 몰라도 귀신은 반드시 알아봅니다. 그러므로 비참한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던 마귀의 세력이 여러분에게는 더 이상 통하지 않으며, 여러분이 그것들을 발아래 짓밟게 됩니다.

이 기업을 얻고 싶지 않으십니까? 당연히 얻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기업은 영원한 소유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얻고 주님도 우리를 얻으십니다. 주님의 영광이 나의 영광이고 나의 영광이 주님의 영광입니다. 주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이 얼마나 복됩니까! 만약 마윈과 재산을 합쳐서 반씩 나누자고 한다면 그 사람이 응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우리와 하나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손해 보시는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얻으심으로 우리 또한 지극히 존귀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이런 분이시라면, 앞서 말씀드린 부르심의 소망도 놀랍고, 성도 안에서 얻는 기업도 놀랍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네 번째 내용은 더욱 놀랍습니다.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지 아는 것

사람이 아무리 큰 능력을 가졌다 해도 하나님의 능력에 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며, 신령한 복을 얻었고,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으며, 아들의 명분을 얻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놀라운 존재가 되었습니까!

이 나타난 능력이 얼마나 지극히 큽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신 강력한 능력과 같습니다. 맹인이 눈을 뜨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온갖 중병과 암이 낫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일들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사건을 보십시오. 죽음에 이르는 병보다 더 심각한 병이 어디 있겠습니까? 육신의 눈으로 보면 장기가 다 망가져 죽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볼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사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으니,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 일에 대해 증언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우리도 그대로 행하자’고 결단했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처럼 단번에 낫지 않았습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해도 낫지 않아서 몇 달이 걸려서야 가벼운 우울증 하나를 해결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참 기뻤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시지만 저는 배우는 사람 아닙니까? 예수님이 하신 대로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그렇게 행해 나가자, 그 베푸신 능력이 얼마나 지극히 큰지가 우리 가운데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앞서 두 번째 요점인 ‘부르심의 소망’이나 세 번째 요점인 ‘성도 안에서 얻는 기업의 풍성한 영광’은 말씀 풀이에 가깝다면, 네 번째 요점인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은 명확히 증거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실제적인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데 돈이 듭니까? 돈은 들지 않습니다. 십만 위안을 내야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기만 하면 능력이 임합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인데, 참으로 영광스러운 은혜가 아닙니까?

저는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나님의 큰 능력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온전히 믿고 끈기 있게 붙들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직장 일로 분주해지다 보면 약해지기도 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 또한 많은 일을 겪어보았기 때문입니다. 일에 매달리다 보면 세상일이 우리의 소망인 것처럼 여겨지고, 바쁘게 일하지 않으면 회사가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세상은 저를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없어도 회사는 여전히 잘 돌아갔습니다.

진정으로 ‘믿는다’는 것은 큰 도전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맹인이 보고, 다리 저는 자가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얻습니다. 제가 경험한 간증은 일일이 다 말하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랍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치유를 받으신 분들은 하나님께 큰 은혜의 빚을 진 것입니다. 또한 제가 믿음으로 함께했기에 저도 그 은혜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왜 치유가 일어났을까요? 바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믿었기에 수많은 우울증이 치유되었고, 암이 치유되었으며, 온갖 관절 통증이 나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었기에 재정적으로도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의 모든 것을 초월하셨습니다. 모든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뛰어난 이름을 다 초월하셨습니다. 만유 위에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만유 위에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알게 하소서.” 오늘 이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신다면 여러분에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믿으면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대로 이루실 것입니다. 심지어 여러분의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족까지도 기억하시고 돌보실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유 위에 뛰어나시다면, 우리는 그분의 몸이 됩니다.

예수께서 교회를 위해 만물의 으뜸이 되셨음을 아는 것

주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만물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려면 바로 이러한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성도 안에서 얻는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란, 우리가 참으로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름만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또한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이 얼마나 지극히 큰지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 우리의 기도가 주님 앞에 상달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교회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위하여 만물의 머리가 되셨고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에 기록된 이러한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지 못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사역자라면 제 권면을 듣고 에베소서를 깊이 묵상하십시오. 만물이 우리 발아래 밟히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발아래 복종시키셨습니다.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충만히 거하십니다.

저는 참으로 깊은 감회를 느낍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합니다. 저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단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수년 전 우리가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했을 때 비록 모인 사람은 서너 명에 불과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보물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우리가 세우는 교회가 참으로 훌륭하다고 여겼습니다. 모두가 큰 자부심을 가질 정도였습니다.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이 없는 세상은 헛될 뿐입니다. 비록 작을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교회로서 우리는 만물을 발아래 짓밟으며 한 걸음씩 전진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아는 척하면서 모르는 상태로 머물러 있지 마십시오. 바울이 편지를 보냈던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도 아는 듯하면서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너희가 이것을 깨달았느냐?” 물으셨을 때 제자들은 “깨달았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정작 온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깊이 묵상하시고 이 놀라운 은혜를 결코 놓치지 마십시오. 대대로 신앙생활을 해 온 가정임에도 에베소서가 묘사하는 이 영광을 보지 못한다면, 첫째는 교회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고, 둘째는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는 반드시 얻게 됩니다. 여러분이 어떤 형편에 처해 있든지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아멘!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关闭
暂无评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