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하나님을 구하는 시리즈 제5강을 이어가겠습니다. 주제는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살펴보면, 비록 제 시야가 넓지 않고 교류하는 영역도 많지 않지만, 돈은 있는데 건강이 없어 돈을 쓸 명(命)이 없는 사람들을 봅니다.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돈은 있는데 건강이 없습니다.
몸은 건강한데 돈이 없는 것도 비극입니다. 몸도 건강하고 돈도 있는데 기쁨이 없어서 얼굴이 늘 울상이라면 정말 답답한 노릇입니다. 인생이 어찌 이리 온전하지 못할까요? 안 그렇습니까? 매일 즐겁게 살면서 “선생님, 제가 뭐가 부족해 보이나요?”라고 묻기에, 제가 보다가 “눈치가 좀 부족하네요”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가 부족합니다.
여기에 아주 훌륭한 해답이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돈이 부족하겠습니까? 부족하지 않습니다. 건강이 부족하겠습니까? 부족하지 않습니다. 기쁨이 부족하겠습니까? 부족하지 않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님들은 사람이 무언가 부족할 때의 그 느낌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일입니다. 제가 자주 말하듯, 하나님 없는 날들을 어떻게 살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환난과 고난을 겪더라도 여러분은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고난을 겪을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그 고난에서 건져내실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덕이 부족한 사람도 참 많다는 것을 봅니다. 사람이 덕을 잃으면 수많은 고생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여호와를 찾는 자가 덕이 부족하겠습니까? 부족하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찾는 자가 돈이 부족하겠습니까? 부족하지 않습니다. 능력이 부족하겠습니까? 지혜가 부족하겠습니까? 지혜가 부족하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찾는 자는 어떤 문제를 만나든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것은 여러분 모두가 경험해 본 바입니다. 사람이 평생 겪는 일들을 누가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면 가능합니다.
어떤 자매님이 평소에 신앙생활을 건성으로 대충대충 했습니다. 조금만 권면하면 기분 나빠하고, 담당 목회자가 권면하면 대들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하면서 열쇠를 배전함에 넣어 두었습니다. 배전함은 우편함도 아니고 열쇠 보관함도 아닌데, 거기엔 전기가 흐르고 있지 않습니까.
그날 문을 열려고 하다가 손가락으로 열쇠를 전선 뒤쪽으로 쑥 밀어 넣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손을 뻗어 열쇠를 잡으려는데 잡혔을까요? 아니죠, 전선을 건드려서 찌릿 감전이 되었습니다. 전기가 끊기지 않고 계속 치직치직 불꽃이 튀었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이 자매님이 제가 설교했던 말이 떠올라 급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전기가 통하고 손가락이 전선에 붙어 있으니 다 타버릴 판이었습니다. 그제야 하나님을 구하기 시작하며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차단기가 저절로 내려갔습니다. 차단기가 내려가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 자매는 너무 감사해서 간증이 있다며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그게 무슨 간증입니까?”라고 했습니다. 결국 병원에 가서 손가락을 절단해야 했습니다.
세상에서 손가락 하나가 없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목수 일을 하다가 전기톱에 잘리는 경우는 있어도, 이 자매는 감전되어 잃은 것입니다. 이제 깨달으셨습니까? 진작에 하나님을 찾고 그분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이 지경까지 되었겠습니까? 손을 배전함에 넣고 나서야 하나님을 찾지 마십시오. 평소에 하나님을 잘 찾았다면 손가락 하나를 잃을 일이 있었겠습니까?
우리 인간은 이처럼 미련해서, 무언가를 겪지 않고는 하나님을 찾지 못합니다. 여러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고난을 겪지 않고서야 어찌 하나님을 제대로 찾겠습니까? 늘 자신이 대단한 줄 알고 교만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을 찾는 습관을 기를 수 있겠습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잘 찾도록 작은 사건을 마련해 주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한 자매님은 지난주에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문이 닫히자마자 캄캄해졌다고 합니다. 깜짝 놀라 급히 기도했더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나왔다고 합니다. 이런 구함도 좋습니다. 일을 만났을 때의 부르짖음은 진짜 구함입니다. 아무 일도 없을 때는 건성으로 구하기 쉽습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작은 사건들을 경험할 때마다 돌이키십시오. 자신을 구할 때는 너무 많고, 하나님을 구할 때는 너무 적지 않습니까? 알아들으셨습니까? 지금 우리에게 고쳐야 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인간은 작은 사건이 없으면 하나님을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배전함에 손을 넣었을 때 기도했더니 손가락은 잃었지만 목숨은 건졌다”, “엘리베이터가 암전되었을 때 기도했더니 문이 열렸다”는 간증처럼 말입니다.
또 우리 가운데 아주 재미있는 자매님이 한 분 계십니다. 하나님을 안 찾는 것도 아니고, 모임도 빠지지 않고 노트 필기도 꼬박꼬박 합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게 해보려 하면 도무지 의욕을 내지 못합니다. 의욕이 없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주님을 믿고 모임에도 나오지만, 별다른 필요나 갈급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시간 기도회를 갖게 되었는데, 이 자매에게 절박한 필요가 생겼습니다. 왜일까요? 어머니가 병원에서 위독해 돌아가실 지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그 기도에 쏟아부은 열정은 전례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뜨거운 열정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렇게 기도하자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머니가 나으신 것입니다. 나중에 어머니를 전도했는데, 비록 어머니의 믿음이 대단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건강하게 잘 살아 계십니다.
그 후 집안에 다른 일이 생겼을 때, 이 자매의 양육 열정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참으로 깊은 감회를 느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시시콜콜 따지지 않으십니다. 한 자매님이 “선생님, 저도 아버지가 깨어나시도록 기도하고 싶어요”라고 했습니다. 사실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깨어나게 하시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기억하셔서 아버지도 깨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인생에서 어떤 일을 겪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열정을 다해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제 인생도 참 흥미로웠습니다. 중년 시절, 직장도 좋았고 모든 것이 다 좋았습니다. 하나님을 찾는다고는 했지만, 이것저것 바쁜 일 먼저 다 하고 남는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결국 실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마흔이 넘은 중년이 되면 이른바 중년의 위기를 겪기 쉽습니다. 중년의 위기는 정말 큰 위기입니다. 아이들은 아직 다 자라지 않아 수입이 없고, 부모님은 살아 계시며, 주택담보대출과 차 할부금, 각종 할부금이 있는데 갑자기 수입이 끊긴 것입니다.
그때는 하나님을 정말 열정적으로 찾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외에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니 참으로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모든 흉악과 재앙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시면 산다는 것은 참으로 단순한 일이 됩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되십시오.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훌륭해서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너무나 형편없고, 하나님이 너무나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믿음을 일으키십시오. 절대로 “하나님 보세요, 제가 이렇게 잘하고 있잖아요”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형편없습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주님을 믿은 이후 지금까지 제 자신이 훌륭하다고 느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흠을 잡으려면 한 무더기는 나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왜 이 부분이 아직 바로잡히지 않았을까, 저 부분이 왜 안 됐을까’ 고민하며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지난 몇 번의 강의에서 다룬 다윗은 노년에 아들 솔로몬에게 “하나님을 찾아라, 하나님을 찾아라, 하나님을 찾아라, 하나님을 찾아라” 하며 잔소리 많은 어머니처럼 거듭 당부했습니다. 다행히 솔로몬은 “아버지, 제가 하나님을 잘 찾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미련한 자식들은 “왜 끝도 없이 했던 말을 또 하세요? 이미 수없이 들었는데 재미없어요”라고 할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런 자식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하나님을 찾으라는 말을 들으면 늘 하던 그 소리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입만 열면 다음에 무슨 말 할지 다 알아요.” 여러분이 제가 무슨 말을 할지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실제로 하나님을 구하고 있는가, 그것이 생사가 걸린 문제입니다. 사람이 노년이 되면 잔소리가 많아지기 쉽습니다. 그 잔소리가 어디서 왔을까요? “하나님을 찾아라, 찾아라, 찾아라” 했던 것은 그가 젊었을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다윗은 양치기 생활을 마치고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사울의 진영에 들어가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의 출셋길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사울의 딸과 결혼했으니 부마가 되었고, 외모도 잘생겼습니다. 공주가 다윗을 몹시 사랑했고, 천부장이 되었으니 최소한 소장이나 중장급 장군이 된 셈입니다.
탄탄대로를 달리며 사무실의 큰 안락의자에 앉아 자신의 미래를 상상해 보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찬란했겠습니까? 공주와 결혼했을 뿐만 아니라 왕의 아들은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인생이 온통 아름다운 소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 거리의 여인들이 외쳤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사울이 이 말을 듣고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 사울의 도량이 참 좁았습니다. 사울이 거리를 지나가며 국수 한 그릇 먹으려다가 아낙네들이 그렇게 소리치는 것을 듣고 ‘아이고, 밥맛 뚝 떨어지네’ 했을지도 모릅니다.
다윗이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아무것도 안 했는데 사울이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다윗에게는 참으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다윗의 열성 팬이었던 그 여인들의 한마디 말이 그를 인생의 재난 열차에 태워버린 것입니다. 어디 가서 하소연하겠습니까? 따질 곳도 없습니다.
사울은 전국에 다윗에 대한 지명수배령을 내렸고, 다윗은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어안이 벙벙했겠습니까? 왕의 손아귀에서 도망쳐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비유하자면 싱가포르처럼 좁은 곳에서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도망칩니까? 왕이 잡으려 하면 도망칠 곳이 없어 기껏해야 말레이시아로 도망치는 수준입니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을 찾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입술을 참 잘 다스렸습니다. “저 아낙네들이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날 이 지경으로 만들었어”라며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달리고 달려 국경을 넘으니 블레셋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블레셋 사람들을 쳐죽였는데, 도망치다 보니 블레셋의 아기스 왕에게 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불과 몇 달 전에 골리앗을 죽이고, 수많은 블레셋 사람을 죽이며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의 포피를 베었던 그 다윗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모를 리 있겠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습니다. 그런데 “어라, 이 사람 다윗 아니야?” 다윗은 ‘큰일 났다, 내가 어쩌다 블레셋 땅까지 왔지? 하지만 도망칠 곳이 없네. 애굽까지 가기엔 너무 멀어 갈 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다윗은 거기서 미친 체를 했습니다. 미친 척한다고 빠져나갈 수 있겠습니까? 미친 척한다고 다윗인 줄 모르겠습니까? 미친 척한다고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의 포피를 벤 일을 잊겠습니까?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기적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기적을 행하시는 우리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다면 다윗이 어디로 피했겠습니까? 어떻게 기적이 일어났을까요?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이 왔으니 원수를 갚아야겠다고 다가갔지만, 마치 거대한 보호막이 쳐진 것처럼 도무지 손을 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주위에 진을 치고 그를 지키셨습니다. 겉으로는 미친 체해서 도망친 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친 척한다고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다윗처럼 날벼락 같은 재난을 만나더라도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다윗은 미친 척하며 빠져나왔고, 자신이 연기를 잘해서 도망친 줄 알았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기적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저는 수많은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중년의 위기가 닥쳤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문득 경제적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왜일까요? 임대료 수입이 주택담보대출 상환금보다 훨씬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졌습니다.
어떤 집주인이 집이 도무지 나가지 않아 대출금을 갚느라 쩔쩔매다가 저에게 집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제 손에 들어오자마자 임대가 나갔습니다. 어디에 가서 이런 일을 설명하겠습니까? 그것도 아주 높은 가격에 나갔습니다. 사실 세입자가 많이 필요하지도 않고 한 명이면 족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우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시면 인생을 사는 것은 매우 단순한 일이 됩니다. 염려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미친 척 연기해서 아기스의 위기를 넘겼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지금도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 가운데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고자 하십니다. 여러분이 누구이든,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이제 그분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경문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34:4-10)
기도
하나님, 우리 하나님, 주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시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요,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우리를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시고, 모든 두려움에서 구원하여 주옵소서. 주님으로 인해 우리는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님으로 인해 우리 평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주 안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주님을 찾고 주님을 알기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경문 배경
다윗이 도망치다가 경계선을 넘어 아기스가 다스리는 블레셋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적대국이었고, 주변 사람들은 다윗을 다 알아보았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유명했습니까? 그 시대의 걸출한 청년 중 유일무이한 인물이었습니다. 평범한 백성이었다면 넘어가도 몰랐겠지만, 너무나 유명한 다윗이었기에 알아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미친 체를 했고, 결국 아기스 왕 앞으로 끌려갔습니다.
당시 아기스 왕은 이상하게도 그날 아침 머리가 어지러웠던 모양입니다. “목사님, 머리가 어지러운데 기도 좀 해주세요” 하듯 정신이 몽롱하고 눈도 침침했을 것입니다. “어이, 웬 미치광이를 데려왔느냐? 당장 쫓아내라, 쫓아내!” 전날 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정신이 없었는지 다윗을 쫓아내 버렸습니다.
다윗이 아기스 앞에 섰을 때 그 공포를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이자가 우리의 골리앗을 죽였으니 당장 목을 베어라” 하는 것이 당연한 논리 아니겠습니까? 생사가 갈리는 찰나였습니다. 그런데 쫓겨났으니, 마침내 가슴을 쓸어내리며 하나님이 나를 모든 두려움에서 건지셨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쫓겨나자 다윗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쳐 아둘람 굴로 들어갔습니다. 다윗은 속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무언가를 찾아 당시의 심정을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34:1-8)
그는 이 벅찬 감정을 단숨에 써 내려가며 기쁨으로 시를 지었습니다. 다윗은 글씨도 참 아름답게 잘 썼을 것입니다. 지금 다윗의 친필 원본을 소장한다면 엄청난 가치가 있겠지만, 그것을 소장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 훨씬 귀합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34:10)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다윗이 자기가 젊은 사자 같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알았습니다. 그러나 젊은 사자 같은 나도 소용없고, 오직 여호와를 찾는 자만이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우리는 친필본을 탐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그 중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가 기록한 것은 하나님이 두려움에서 건지시고 수치에서 건지셨다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혔다면 얼마나 큰 수치를 당했겠습니까!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의 포피였으니, 이백 가문과 그 친인척들이 다윗을 겹겹이 에워쌌을 것입니다. 남의 포피를 베었으니 그들이 다윗을 가만두었겠습니까? 시편 34편을 기록한 양피지가 아니라 다윗의 몸이 찢기는 수치를 겪었을 것입니다. 그가 겪었을 끔찍한 모욕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치를 떨며 다윗을 갈기갈기 찢으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수치를 당치 않게 하시고, 연이은 환난을 면하게 해주셨습니다. 다윗은 여러분이 주의 은혜를 맛본다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맛본 우리는 과연 다윗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다윗이 도망칠 때는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속으로 ‘저 여인들이 몇 마디 한 것 때문에 내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하나님, 실수하신 것 아닙니까?’라고 원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 어디 계셨습니까?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합니까?”라고 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말을 입에 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시편》 34:12-13)
다윗은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생각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내어버렸습니다. 우리 안에서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그 생각이 얼마나 해로운지 모릅니다. 우리는 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남 탓만 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입만 열면 섭섭한 소리를 하고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인간의 비극입니다.
다윗은 참으로 지혜로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자신을 망치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저것 원망하다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혀 발가벗겨지는 수치를 당하면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결단하여 입을 지키고 입술로 부정적인 말을 내뱉지 마십시오.
부정적인 말은 매우 해롭습니다. 이것이 시편 34편에서 다윗이 내린 결론이며, 우리가 깊이 배워야 할 점입니다. 입을 지키는 것은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면 입으로 나오게 마련입니다. 마음속 논리 체계가 어떠하냐에 따라 입술의 말이 결정됩니다.
두려울 때 하나님을 찾으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만이 우리의 해답이십니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려움이 밀려오면 온몸이 떨리고 앞으로 어떻게 하나, 이것은 어쩌나, 저것은 어쩌나 염려하게 됩니다. 다른 해답은 없습니다. 해답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성경 말씀처럼 우리는 여호와를 찾아야 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시편》 34:4)
아기스 앞에 선 다윗의 생사는 찰나에 달려 있었습니다. 만약 다윗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미친 척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바지에 오줌이라도 쌀 만큼 겁을 먹었다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즉시 그 두려운 감정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찾는 자의 유익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을 온전히 찾는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현재를 무서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건지시고 두려움에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에 남편과 사별한 자매님이 계셨습니다. 생전에 남편이 곁에 없으면 밤에 혼자 잠도 못 자던 분이었습니다. 남편이 떠난 후 늘 친구를 불러 함께 있어야 했는데, 누가 매번 함께 있어 줄 수 있겠습니까?
그 후 우리 공동체에 와서 사역을 받고 이제는 혼자서도 잘 잡니다. 잠을 잘 잘 뿐만 아니라, 어릴 적 가정 환경 때문에 자주 겪던 가위눌림 같은 영적 눌림에서도 벗어났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두려움에서 건져주셨을 때, 우리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인가 하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간절히 찾아 두려움에서 벗어났을지라도, 상황이 나아지자마자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두려울 때 하나님을 찾아 구원을 받았다면, 두려움에서 벗어난 후에는 더욱 하나님을 찾아야 더 큰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기도를 멈추고, 기도를 멈추면 문제가 다시 찾아와 쳇바퀴 돌듯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권면하건대,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경험했다면 진심으로 회개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지시는 것은 그저 위기를 넘겨주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회개를 배우게 하려 하심입니다.
다윗은 두려움에서 벗어났지만, 그 감정이 찾아올 때는 매우 공포스러웠을 것입니다. 공포증이라는 질환이 있습니다. 제가 이전에 섬겼던 환자는 누군가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는데, 그 감정은 지극히 생생한 실재였습니다.
수치를 당할 때 하나님을 앙망하라
눈앞에 수치를 당할 위기에 처하고 상황을 도무지 통제할 수 없을 때, 즉시 하나님을 앙망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수치스러운 상황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34:5)
다윗이 이 고백을 적을 때 그 심정이 얼마나 절절했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과 하나님을 찾는 것은 같은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찾는 유익입니다. 수치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시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다윗은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의 포피를 베었으니 이제 내 차례구나 하며 절망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어떤 치욕을 당하게 될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는 다윗의 체면 문제를 넘어 하나님의 주권과 자비였습니다.
체면을 차리려 해봤자 아무 소용없습니다. 정말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구원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며, 어떻게 시편 34편을 쓸 수 있었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찔할 수치였습니다.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34:5)
이것이 두 번째 유익입니다. 수치를 당하고 싶지 않다면 속히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을 찾고 앙망하는 자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환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환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과 하나님을 찾는 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다윗이 무엇이라 고백합니까?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34:6-8)
시편 34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건지셨는지를 증거한 다윗의 위대한 간증시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건지셨습니까? 그가 부르짖었기 때문입니다.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습니다. 들으셨습니까? 들으셨습니다. 들으시지 않았다면 시편 34편을 쓸 시간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사울도 죽이려 하고 블레셋 사람도 죽이려 하니 어디로 가겠습니까? 어떻게 하겠습니까? 참으로 막막한 길이었지만, 결과는 단순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둘러 진 치고 건져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건지십니다. 다윗이 미친 척 연기를 잘해서 얻은 결과입니까, 아니면 주의 사자가 둘러 진 쳐서 건지신 것입니까? 주의 사자가 둘러 진 치고 건지신 것입니다.
주의 사자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그런 생각을 불어넣어 그를 놓아주게 만든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자가 아기스 왕의 뇌리에 그런 생각을 넣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환난을 겪는 것은 우리가 원해서 겪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도 환난 속에서 연단 좀 받아볼까 하고 원했던 것이 아닙니다. 아낙네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고 외친 몇 마디 때문에 일이 꼬여 이 지경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원치 않는 일을 겪을 때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첫째, 두려움에서 건지십니다. 둘째, 수치에서 건지십니다. 셋째, 환난에서 건지십니다. 더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을 찾는 것은 단순한 구호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통제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불의와 억울함을 겪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라
불의하고 억울한 일을 겪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다윗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이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평생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평생 불의한 일을 당할 때마다 입술로 악한 말을 내뱉지 않았습니다. 왜 악한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을 찾았기에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미워하시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내 입으로 악한 말을 내뱉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다, 구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악한 말을 쏟아내면 구원을 잃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과 싫어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행하지 않기 위함이며, 그렇기에 입으로 악한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울이 그를 쫓아 죽이려 한 데 정당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저 여인들이 외친 몇 마디 구호 때문이었습니다.
아기스에게로 도망친 것도 그가 원해서였습니까? 국경을 넘다 보니 아기스의 땅이었고, 붙잡히고 만 것입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기가 막힙니까? 하나님을 찾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부디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은 겁이 없기 때문이고, 왜 겁이 없느냐 하면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가져다주는 손실이 얼마나 큰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것만 듣고 생각하면 온통 부정적이 되고, 입술에서는 자기 의를 세우는 말만 쏟아져 나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자기 의를 주장하는 것조차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데, 남들이 별다른 해를 끼치지도 않았는데 시시비비를 따지며 자기 의를 내세운다면 얼마나 큰 진노를 사겠습니까? 늘 자기가 옳다고만 여깁니다.
다윗이 겪은 일들은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는 악한 말을 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작은 일만 생겨도 “하나님 실수하신 것 아닙니까?”라고 원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실수한 것이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순간 그 논리는 궤변이 되고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 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입에서 악한 말을 내뱉지 마십시오. 악한 말은 스스로 복을 차버리는 행위입니다. 불의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찾는 자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인생이 망가지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신다
하나님을 찾으면 이러한 유익을 얻게 됩니다. 이 은혜를 누리려면 첫째, 입에서 악한 말을 금해야 합니다. 둘째, 영적으로 깊이 통회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 이때 마음이 상했을까요? 상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상했을 때 중심으로 통회했습니까? 통회했습니다. 다윗은 무엇을 통회했을까요?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시편》 34:17-19)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신다는 결론에 이르렀을까요? 다윗이 천부장으로 세움 받고 사울의 사위가 되었을 때, 그의 앞날은 탄탄대로였습니다. 큰 책상이 놓인 안락의자에 앉아 부귀영화를 누리며 찬란한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네가 우쭐해졌구나. 의기양양해져서 자신이 대단한 줄 알고 뽐내는구나” 하셨을 것입니다. 다윗도 뽐냈습니다. 큰 안락의자에 기대어 앞뒤로 흔들거리며 눈을 감고 달콤한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인생의 완전한 승리자 같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에 이 대목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실제 상황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장군과 형들 중 골리앗을 쓰러뜨린 자가 누구였습니까? 아무도 없었고, 오직 다윗 자신만이 해냈습니다.
블레셋 사람 중 다윗을 당해낼 자가 누구였습니까? 뛰어난 무예를 지닌 최고수였습니다. 다윗에게는 교만할 만한 밑천이 있었습니다. 공주와 결혼했고, 거울을 보면 훤칠한 미남자였습니다. 다윗이 거리를 지나가면 길가의 여인들이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나이가 들어서도 멋있어서 수많은 여인들의 로망이자 이상형이었습니다.
수많은 고백을 받으며 인생의 승리자로서 찬란한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동굴에 숨어 아기스의 손에서 겨우 빠져나오고 사울의 칼날을 가까스로 피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습니다. 이때 마음이 상하고 영적으로 깊이 통회한 것입니다. 우리 중에도 작은 성과만 거두면 꼬리를 높이 치켜들고 자신이 대단한 줄 아는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정말 조심하십시오. 우리의 사명 신학은 아직 온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교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쭐댈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 양육의 수준을 보십시오. 저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우리의 양육은 여전히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어설프고 미흡하기 짝이 없습니다. 다른 곳보다 낫다고들 하지만, 다른 곳과 비교해서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기준과 뜻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다윗이 그때 우쭐대지 않았다면 상황이 조금 더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안 그렇습니까? 이제 다윗이 왜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신다고 했는지 아시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영적인 통회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하나님께서 종종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우리가 안주하려 할 때 엉덩이를 걷어차 전진하게 하시며, 궤도에서 이탈하려 할 때 바로잡아 주심에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걸어오지 않았습니까?
때로는 “하나님, 저를 호되게 다뤄 주십시오. 대열에서 이탈할 뻔했습니다”라고 부르짖는 것이 최선의 기도입니다. 늘 영적으로 통회하며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아직도 난 괜찮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조심하십시오. 머지않아 아기스 땅으로 쫓겨가게 될 것입니다. 결코 자만하지 마십시오. 저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저는 늘 제 자신이 턱없이 부족함을 깨닫고 지금도 힘써 달려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신다
매일 기름진 음식을 먹고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십니까? 만사가 형통하고 안락한데 하나님을 찾는다?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매일 무미건조하고 열정이 식었다면 고난이 조금 필요합니다. 왜 의인에게 고난이 많을까요? 의인은 곧 믿는 자요, 믿음을 실천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왜 고난이 있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믿음을 훈련하고 실천할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울에게 쫓기고 아기스에게 도망칠 때, 믿음이 없이는 어떻게 그 길을 가겠습니까? 고난의 목적은 우리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발휘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믿음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극입니다.
다윗은 어떻게 통과했습니까? 내가 고난이 있을지라도 믿음의 사람으로 서리라 결단한 것입니다. 의인이 누구입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알 때,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에서 건져내십니다. 평생 믿음을 실천하십시오. 믿음을 실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실천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마련하시니, 원하든 원치 않든 마주하게 됩니다. “하나님, 전 이대로가 좋습니다”라고 해도 하나님은 믿음을 실천할 기회를 주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난 후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믿음을 실천하도록 등을 떠미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이 실직과 같은 문제를 겪더라도 저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제가 염려하는 것은 여러분이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인가 하는 점입니다. 믿음을 실천하고 하나님을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고난도 믿음을 훈련하는 기회가 됩니다. 다윗이 평생 쫓겨만 다녔습니까? 아닙니다. 훗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이 고난은 저주받은 자의 고난과는 다릅니다. 다윗이 사울의 고난을 몰랐겠습니까?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울의 고난에는 일말의 영광도 없었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습니다. 의인의 고난과 사울의 영광 없는 비참한 고난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사울은 비참하게 죽었고, 평생 억압 속에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그의 고난은 불신앙의 고난이었지만, 다윗의 고난은 믿음의 고난이었으며, 믿음의 고난은 반드시 끝나는 날이 옵니다.
믿음의 고난은 죽을 때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마침표를 찍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훈련을 잘 마치고 온전한 답안지를 제출할 때, 하나님은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문제를 만났다고 당황하지 마시고, 문제를 만날 때마다 믿음을 실천하고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날마다 우아하게 커피나 마시며 안락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찾고 있다고 한다면 진실성이 떨어져 보입니다. 마음에 고통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제대로 된 것입니다. 바로 그 마음의 상함과 영적 통회, 그 간절함이 필요하며, 그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을 찾으며 믿음의 실천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때, 여러분은 이렇게 선포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34:10)
오늘 설교는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