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我很有信心为神而生、为神而死,也很有信心成为一个得胜的基督徒,得着神的印记,但是我母亲过世时,我跪拜了,请问这种行为是不是不讨神的喜悦?算不算是拜偶像呢?
你拜死人做啥呀?你拜完了以后是孝顺了,还是没孝顺呢?很多人都以为自己有信心,愿意为神而死!
而你想做一件给人面子的事,我没说错吧?因为大家都这么整,你不这么整就觉得不对,然后你就去做了!但那是信神吗?如果有为神而死的心,至于这样做吗?
我刚刚信主的时候,小组里面一个姐妹的妈妈死了,我们去看她,然后看到她披麻戴孝,跟着那些道士一起为她妈做法事,大家知道后来发生啥事吗?她得了癌症。
所以人不能拜偶像,也不能拜死人,因为我们很尊贵!如果你不知道自己是何等的尊贵,那你听我讲这些话,心里都会很痛苦。人为什么拜死人呢?也不过是看人的面子,倘若你习惯看人的面子,等到敌基督那兽让你印个印记时,你应该扛不过去吧?所以千万不要拜死人。
其实神求的不是别的,是让我们活出尊贵,我们是神的儿女,我们比什么都尊贵,尊贵到不能拜任何东西,只能拜神!如果你听完了以后感觉很辛苦,那就好好悔改,神还会给你机会。
Q2:老师,请再给我们讲讲这句经文:“他们息了自己的劳苦,做工的果效也随着他们。”
我得告诉你,我们的服侍不是没有果效,我们的服侍会随着我们直到永永远远!其实你在世上服侍不过是在走一条得胜的路,这条得胜的路就是在做工的时候表现出来的。
神让我们做这些,是不是操练信心呢?是啊!华人命定神学走到现在,就是操练信心的结果,就是凭着信心走过来的。所以千万不要以为我们的服侍没有果效,我们的服侍就是一个得胜。
在哪得胜呢?在服侍当中得胜。因为冒犯你的人很多,你能制服自己里面那个感觉吗?我们里面都有属肉体的感觉,但是你顺着它吗?所以做工的果效那就是实践信心的结果。
Q3:老师,怎么理解“顺着感觉”这句话?
感觉是属肉体的呀!感觉是个非常败坏的东西。你说感到很疲倦,是不是真的?是真的!比如忧郁症的人都觉得很累很累,为什么累?因为他夜里没睡好。那后来呢,他来找我祷告,因为折腾了一夜。他说:老师,我整个人无力,昏昏沉沉。于是五点多钟我就带他祷告,祷告完了,他无力的感觉全消失了。你说无力的感觉是从哪来的?是从鬼来的。
浑身无力是一种感觉,那头疼是不是一种感觉?也是一种感觉。这种感觉从哪来?是从鬼来的呀!所以我们弟兄姐妹不要再顺着感觉走。那人里面如果讲的话不是神的话,那都是啥话?都是鬼话;人的想法不是神的话,是谁的话?是鬼话。这回能理解了吗?
千万不顺着自己的感觉,是顺着神的道。我问你,耶稣钉十字架感觉好吗?不好!但是耶稣选择钉十字架。那我们选择殉道好玩吗?不好玩!但那却是神的话。别顺着自己的感觉,那感觉基本上都是从鬼来的。
这次我们的答疑就到这,愿神祝福大家!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계속해서 《요한계시록》 14장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어린양을 따르는 자와 짐승을 따르는 자의 결말”입니다.
어린양을 따르는 십사만 사천 명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요한계시록》 14:1-5)
예수님께서 십사만 사천 명을 데리고 시온산에 임하시는데,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사실 《성경》에는 아주 오묘한 사실이 있는데, 승리하는 자에 대해서는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어린양을 따르는 이 십사만 사천 명처럼, 또한 《요한계시록》 서두에서도 승리하는 자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승리하지 못한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들은 어린양을 따릅니까? 《성경》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우리는 조금이라도 흠이 있는 자들은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바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어린양을 따르는 이 십사만 사천 명을 본받도록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 중간에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자들에게 장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우리도 모릅니다.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양극단의 사람들을 아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흠이 없는 십사만 사천 명은 예수님과 함께 올 것이지만, 승리하지 못하고 믿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믿는 것 같기도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요한으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이렇게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학 입시에서 칭화대, 베이징대, MIT, 하버드 같은 명문대에 합격했다면 그것은 아주 명확합니다! 하지만 합격하지 못한 사람들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매우 간단합니다. 제가 살던 시대에는 겨우 3퍼센트의 사람만이 대학에 갈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 가지 못한 사람들은 장래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훌륭하게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의 설계입니다. 본보기를 확실히 세워두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이 십사만 사천 명을 본받아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티끌만큼도 두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남녀 간의 정욕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십사만 사천 명의 내면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다는 뜻입니다.
어떤 이는 “이걸 누가 해낼 수 있겠는가?”라고 말합니다. 십사만 사천 명이나 해내지 않았습니까? 또 어떤 이는 “왜 이렇게 적은가?”라고 묻습니다. 원래 적은 것입니다! 이 십사만 사천 명 외의 사람들, 즉 145,000번째, 146,000번째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거룩함을 힘써 추구하라고 의도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은 ‘승리하지 못한 자는 어떻게 될까? 승리하지 못해도 구원은 받을까? 구원받은 뒤 천국에 갈까? 아니면 지하로 내려갈까? 지하로 내려간다면 몇 층으로 갈까? 천국에 간다면 몇 층으로 갈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문제를 탐구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오직 어떻게 이 십사만 사천 명 안에 들어갈 수 있을지만을 탐구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본뜻도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열정이 있다면, 설령 140,001번째로 밀고 들어가더라도 하나님께서는 한 명 더 늘어나는 것을 개의치 않으실 것입니다.
이 본문은 당신이 정말로 타협 없이 예수님을, 어린양을 따르고 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그들은 따릅니다! 골고다로 가신다면 나도 따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면 나도 따릅니다! 이것이 바로 화인 사명 신학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결코 “나는 이미 구원받았으니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고, 천국에 가서 무엇을 하든 상관없으며 청소를 해도 좋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생각이 없습니다. 힘써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추구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습니까? 사실 자신에게 진리가 있다고 착각하지 말고, 힘써 추구해야 합니다!
제가 방금 세 분의 목사님을 맞이했는데, 그분들이 저에 대해 평가해 주신 말씀이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당신에게 올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고, 그것들이 모두 매우 유용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참 좋은 말입니다! 그분이 몇 년 전에도 오셨는데, 그때 제가 나눈 것은 몇 년 전의 영적 높이였고, 지금 오셨을 때 나눈 것은 지금의 높이입니다. 여러분, 왜 이전과 달라졌을까요? 제가 또 한 걸음 더 위로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저는 결코 제게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힘써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화인 사명 신학의 매우 중요한 자질입니다. 여러분, 제가 게으르게 살고자 한다면 아주 쉬운 일입니다. 아무도 저를 간섭하거나 감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은, 저는 결코 나태하게 지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힘써 추구해도 부족한 판에 해이해진다면 분명 끝장나고 말 것입니다! 저는 이 십사만 사천 명 안에 들어가고 싶고, 우리 형제자매들도 모두 들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게다가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아무도 배울 수 없습니다. 유덕화가 부르는 것보다 훨씬 훌륭합니다. 하나님의 하프 소리 가운데 승리의 개념을 선포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저는 이 목사님들에게 승리의 개념을 전해주었습니다. “당신은 승리하셨습니까?” 대충해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승리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모르며, 피를 흘리는 것조차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러한 성품을 형성하기 시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성품을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예전에 한 원로 목사님이 저에게 “당신의 성품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런 교회가 세워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걸어온 것을 보면, 교회의 성품이 곧 저의 성품입니다. 저는 승리하는 성품을 가진 사람이며,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저는 이 목사님들에게 승리하도록 격려했습니다. 그분들이 얼마 전에 큰 영적 전쟁을 겪었고 교회에 큰 어려움이 닥쳤기 때문에, 저는 그분들의 믿음을 세워드리고 끊임없이 영적 정상에 오르며 계속해서 승리하도록 격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이런 마음의 그릇을 주셔서, 제가 최고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이 다가오지 못하게 막거나 2등을 없애버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저를 뛰어넘기를 간절히 바라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왜 십사만 사천 명뿐인지 아셔야 합니다. 다 밀고 들어간 것입니다. 베이징대나 칭화대가 정원을 늘려 100만 명을 뽑을 수 있을까요? 뽑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다 뽑고 나면 더 이상 베이징대, 칭화대가 아니라 쓰레기 같은 삼류 대학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승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제 곁에 오는 자들에게 제가 전하는 개념도 모두 승리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승리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비참한 일입니다! 우리가 사역자가 되었는데도 이런 추구가 없이 나태하고 해이하다면, 그것이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해이해서 어떻게 승리하겠습니까? 승리하지 못한 결말은 매우 처참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이렇게 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독하게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나는 반드시 이 십사만 사천 명 안에 들어가겠다. 밀려 들어가더라도 기필코 들어갈 것이며, 140,001번째가 되더라도 좋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느낌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면 엄청난 일이 일어납니다.
사실 승리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승리는 곧 어린양을 따르는 것입니다. 어린양이 앞서 가시면 뒤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어린양께서 골고다의 길을 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니, 우리도 골고다의 길을 가며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자신의 느낌 따위는 개의치 않는 것입니다. 목표는 오직 하나, 승리하여 십사만 사천 명 중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14:12-13)
《성경》은 주 안에서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지 않고,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왜일까요? 《요한계시록》 13장과 14장에 이르면 죽지 않고는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죽음을 택하든가—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아니면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을 택하든가 둘 중 하나입니다.
이 십사만 사천 명은 기본적으로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육신을 위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을 떠나 수고를 그치고 쉬며, 그들이 행한 일의 열매도 그들을 따릅니다. 이 십사만 사천 명 뒤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비록 허물이 있을지라도, 차라리 죽을지언정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다면 그것도 참으로 대단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영부영 《요한계시록》 14장까지 살아남았는데, 진작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육신을 따르는 것은 너무나 비참하며, 육신이 강한 사람은 정말 처참합니다! 가끔 깊은 생각이 듭니다. 방금 어떤 목사님이 저를 찾아왔을 때 제가 이렇게 나누었습니다. “승리하지 못하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고 무겁습니다.” 그러면서 암에 걸린 수많은 사례를 들어주었습니다. 이 목사님들이 너무나 비참하게 사는 것은 그들이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큰 곰의 엉덩이를 찌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 큰 곰을 때려잡을 수 없다면 왜 곰의 엉덩이를 찌릅니까? 사역자가 되는 것은 곰의 엉덩이를 찌르는 것과 같아서, 곰이 와서 물려고 할 때 무엇으로 막아내겠습니까?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려면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선택하고 세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기로 했다면 마땅히 이러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매우 처참해집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이를 하루빨리 깨닫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짐승의 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가서야 짐승의 표를 받기 시작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지금도 마귀가 표를 치고 있습니다! 당신 안에 귀신의 형상, 마귀의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정말 마귀의 모습이 있다면 그것은 육신을 위하고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 한 자매가 십여 년 전에 우울증의 억압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십여 년 동안 성장도 했지만 여전히 육신을 위하고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잠을 자지 못하면 몹시 괴로워하고 염려하더니, 대략 반년 전쯤 우울증의 영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 자매가 무슨 나쁜 짓이라도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저 육신을 위하고 사는 것을 너무 좋아하여 목숨에 지나치게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상의 수고를 그치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교회를 세우고 여러분을 섬기는 것도 큰 기쁨이지만,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더 기쁜 일입니다! 저는 세상의 수고를 그치고 제가 행한 일의 열매가 저를 따를 터인데,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우울증에 걸리겠습니까?
육신을 위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은 너무 육신을 위하다 보니 스스로 몹시 불안해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사람이 육신을 위하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왜 그렇게 사는 것에 집착합니까?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는 것이지, 주 안에서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육신을 위하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을 독하게 먹고 지금 결단하십시오. 주를 위해 죽기를 각오한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주를 위해 죽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결단과 성품이 있을 것입니다. 아주 조금의 바람만 불어도 흔들려버리는, 지극히 육신을 위하고 자기만을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그것이 무기력한 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육신을 위하는 사람치고 무기력한 자가 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땅히 하나님을 경외하라
또 내가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14:6-7)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경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온갖 것을 다 두려워하게 됩니다! 이것도 두렵고 저것도 두렵고 다 두려운데,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지 않으니 망하지 않겠습니까? 귀신도 무서워하고 죽음도 무서워하며 온갖 것을 다 무서워하면서 하나님만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몹시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몹시 고통스러운 처지에서 살고 싶다면 아주 간단합니다. 이것저것 다 따지면서 하나님만 따지지 않고, 어린양을 따르는 이 십사만 사천 명 안에 밀고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육신대로 대충 살아가며 스스로 상관없다고 여기면 됩니다. 그러면 마지막 결말은 매우 비참할 것입니다.
일단 교회에 들어와 그리스도인이 되었거나 소그룹 목자나 목회자가 되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는 모두 끝장납니다! 사람이 왜 어리석어집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살아서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을 전하는 것이지, 죽어서 천국에 가느냐 마느냐를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여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내가 죽으면 세상의 수고를 그치고 영생으로 들어가며 섬김과 행한 일의 열매가 나를 따를 텐데,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내가 세상일에 연연하겠습니까? 연연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이 하찮은 일들에 얽매일 게 무엇이 있으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 여러분, 특히 이전에 우울증을 앓았던 분들은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은 분명 육신을 몹시 위하고 자신의 느낌을 따르기 좋아할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느낌을 따르면 몹시 고통스러워집니다. 하나님께서 업신여기시는 것은 물론이고 귀신도 업신여기며, 스스로도 자신을 멸시하게 되니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러면서 체면은 몹시 따지고 온갖 것은 다 두려워하면서 정작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으니 너무나 비참합니다! 이제는 깨어 일어나서, 행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다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거둘 때가 이르러 땅의 곡식이 다 익었음이니이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그도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또 불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나무 열매를 거두라 포도가 다 익었느니라” 하더라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육백 리에 퍼졌더라 (《요한계시록》 14:14-20)
이 포도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포도이자 포도나무 가지이며, 유대인과 이스라엘인은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입니다. 《성경》에서 포도를 읽을 때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키고, 무화과나무를 읽을 때는 유대인과 유대교를 가리킵니다.
이 일은 참으로 기이합니다. 하나님께서 일곱 대접을 쏟으실 때 땅의 푹 익은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시는데, 이들은 바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목숨을 아끼다 짐승의 표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별하여 다루십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지만 푹 익어 썩어버린 포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썩은 포도들을 어떻게 합니까? 거두는 것입니다! 일곱 대접의 재앙은 내리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십니다.
앞에서는 승리한 십사만 사천 명을 말씀했고, 지금은 승리하지 못한 자들을 말씀합니다. 피가 강을 이루어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육백 리에 퍼졌더라”고 하니, 그 높이가 적어도 1.7미터는 되어 그 안에서 수영을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 안에서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죽어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십사만 사천 명은 결코 많은 수가 아니며, 피가 강을 이루는 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사실 이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집트를 나온 이스라엘 백성 중 칼을 차고 싸울 수 있는 자가 60만 명이었지만, 실제로 약속의 땅에 들어간 자는 여호수아와 갈렙 단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참으로 비참합니다!
저는 《도덕경》을 쓴 노자가 하나님에 대해 올바르게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 시대에 홍수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가뭄으로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것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지는 어질지 않아 만물을 짚 인형으로 여기고, 성인은 어질지 않아 백성을 짚 인형으로 여긴다.”
즉 몇 명 더 죽든 덜 죽든 하나님께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피가 600리에 흐르든 6,000리에 흐르든 하나님께서는 개의치 않으십니다. 이로 보건대 승리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비참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다시 한번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이 땅에서 승리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결말인지 모릅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모두 승리하겠다는 결단을 갖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실 목회자들 중에서 저는 다소 특이한 존재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은 자신의 교회에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1만 명, 10만 명, 100만 명이 모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저는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오직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저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가기만을 바랍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방금 만난 목사님과 함께 지난 몇 년간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는데, 우리 교회는 점점 더 잘되고 점점 더 승리하며, 승리의 길을 향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이 몇 가지 예를 들며, 어느 교회는 이제 사람이 몇 명 남지 않았고, 또 어느 교회도 사람이 거의 없으며, 어느 교회의 목사는 암에 걸렸고, 또 다른 교회의 목사는 우울증에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구원은 곧 승리이며, 구원받았는데 승리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승리의 상태에 이르게 하시는 분입니다. 사실 승리는 그리 어렵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이 행한 것을 점검해 보십시오. 사도 바울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있습니까?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믿음이 있습니까?
이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져지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으며, 당연한 이치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교회는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까? 국교가 되는 것이 좋습니까? 입교하는 것이 정당에 가입하는 것과 같아집니다.
지금은 매우 왜곡된 시대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변화시켰습니다. 로마 가톨릭이 로마 황제에 의해 국교로 지정된 후 얼마나 타락했습니까! 거기에 어떻게 승리하는 자가 그렇게 많겠습니까? 세속화가 교회를 변질시켰고, 교회는 통치 수단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므로 저 역시 교회를 거대하게 키우고 강하게 만드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승리하기만을 원합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저와 같이 승리의 개념을 전하고,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는지 보십시오. 사람의 몸에 병이 많은 만큼 그 생각도 더럽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 우울증에 걸렸던 자매가 나았는지 궁금해합니다. 그녀는 며칠 동안 많이 좋아졌는데, 제가 그녀를 호되게 꾸짖고 또 꾸짖어서 깨어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승리를 갈망해야 합니다. 승리야말로 화인 사명 신학의 핵심 가치입니다.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도다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14:8)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요한계시록》 14장에 이르러서야 무너진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자세히 보십시오. 날마다 무너지는 이야기들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아등바등 기를 쓰며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지만 결국 퇴임 후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큰 성 바벨론이란 무슨 뜻입니까? 바벨탑을 쌓고 오르던 자들인데, 그들은 결국 모두 무너졌습니다.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바벨탑에서 기를 쓰며 위로 기어오르다 꼭대기에 이르면 낭떠러지라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고, 다 오르지 못하고 떨어져도 산산조각이 나는데 어디에 좋은 결말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오르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도 얼마나 고통스럽게 사는지 얼굴이 온통 일그러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겉보기에 다 좋아 보이지만, 《요한계시록》 14장에 이르면 그렇지 못합니다. 사실 그때 무너지는 것이나 지금 무너지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결국 이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다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히 거합니다.
당신은 여전히 이 세상을 사랑하겠습니까?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육신을 위하고 세상을 사랑하여 승리하지 못하면 고통을 겪기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이 승리하고자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붙들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의 목회자들과 사역자들도 붙들어 줄 것입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모두 승리의 개념을 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자주 문제가 있으면 저를 찾아오라고 말합니다. 만약 제 말을 듣고 도리어 당신의 고통이 가중될 것 같다면 저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라고 하였으니, 듣고 나면 몹시 힘들 것입니다.
큰 성 바벨론이 무너진 것은 《요한계시록》 14장에 이르러서야 무너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무너져 왔습니다. 가인, 라멕, 니므롯이 정신병자처럼 살았던 때부터 시작하여 중국의 사마의, 조조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과연 잘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참으로 만감이 교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아주 명백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를 쏟으시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인들을 거두시고, 그다음 바벨론에서 짐승과 짐승의 우상에게 절하던 자들을 다루십니다.
짐승과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표를 받은 자들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14:9-11)
기억하십시오. 조금 더 잘 살아보겠다고 짐승의 표를 받은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목숨을 아끼며 살고자 하는 자들이 짐승에게 절을 합니다. 절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짐승에게 절해도 죽음이 멀지 않으며, 밤낮 쉼을 얻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장래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것들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짐승과 짐승의 우상에게 절하며 자신과 살아있는 것에 유난히 집착하는 자들은 잘될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삶에 집착하는지, 마치 살아있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처럼 여깁니다.
살아있는 것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당신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목숨을 아낀다면 결코 잘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짐승과 짐승의 우상에게 절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섬기는 중환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생각 속이 지극히 더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신이 괜찮다고 여겨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고 표를 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으니, 진노 외에는 오직 진노뿐이며 고통 외에는 오직 고통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결말입니다. 아픈 것이 두렵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충분히 아플 것이며, 살고자 해도 살 수 없고 죽고자 해도 죽을 수 없어 끝없이 고통을 당하며 평안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이 모두 승리하겠다는 결단을 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승리하지 못하는 쪽에 비집고 들어가지 마십시오. 거기에 들어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들어가 봐야 고통뿐인데 고통받는 것이 좋습니까? 고통받기 싫다고 하면서도 결국 고통 속으로 비집고 들어갑니다.
만약 당신이 죽을 각오로 하나님을 신뢰하고자 한다면 세상의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지만, 살고자 몸부림친다면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결말입니다. 당신은 도대체 어느 쪽으로 밀고 들어갔습니까? 십사만 사천 명 쪽입니까, 아니면 썩은 포도 쪽입니까, 아니면 짐승과 짐승의 표 쪽입니까? 이번 장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
어린양을 따르는 자들은 함께 노래하며 기쁨을 누리지만, 짐승을 따르는 자들의 결말은 쉼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심하십시오. 더 이상 육신을 따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육신을 위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니, 하나님과 원수 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은 참으로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몰라 그 결말이 매우 처참합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곧 《요한계시록》 14장이 임하기 전에도 이미 그 비참한 광경을 보게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까? 바로 승리하기 위함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승리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우리 형제자매들이 모두 하나님을 따르고 어린양을 따르는 자들이 되어, 그분을 힘입어 반드시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승리는 어렵지 않습니다. 따르기만 하면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앞서 싸우시며 당신을 위해 승리하시니, 자신의 느낌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십시오! 이번 성경공부 나눔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