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大家好!今天是《阿摩司书》的第一章,我得说一下,他没写的我讲了不少。我就把他三番四次地犯罪应该还是解释得挺明白,就是人的核心利益的问题。《阿摩司书》的第一章:《人若三番四次地犯罪,神必不免去他的刑罚!》。现在是答疑解惑时间,问题来了:
【问题】1:老师,人想在世上建功立业,想要永垂不朽、青史留名,好像也是一种追求永生的心理?
答:那可不是。这是啥呢?这是今生的逻辑,他以为他在今生里做点什么,他就觉得可以青史留名。这个青史到底是哪个史?咱就不知道了。死亡的死,哦,青死。也可能是米的尸体也是死,所以人就想传扬自己的名。人真的得知道天高地厚,所以这些东西可以让人变得非常狂妄想要青史留名,永垂不朽。他要将来跟随与秦皇汉武并列成为历史上的名人,这就是他所追求的。可是问题来了,你追求这玩意干啥呀?谁也说不清楚,反正就是追求这个。
这个逻辑其实忽悠了很多人,这个逻辑忽悠的人基本上都是以今生为根基。其实我们的根基应该建立在永生之上,因为今生在永生里就是虚空的虚空。人把虚空的、虚妄的东西当成实在的东西追求,那就彻底地毁了。最后就是以神为敌!虽然你的名会像宁录一样,但是最后还是一个猎户。我想我们追求青史留名,那还是传扬自己的名?如果你要问我的话,我就永远不出名,我不想出名,我只想追求神的名。你问我叫啥?我就告诉你:我姓米,我叫米田共。啊,粪呐!其实我的名可不就是粪土吗,那东西要它干啥?偶尔说一下就完了,因为真正成就救恩的是耶稣基督,我的工作就是让大家都能够有机会认识神。
我自己十几岁的时候我就知道,活着没什么太大的意思,然后追求来追求去整得挺闹心。那后来越来越清晰,活着没啥意思。但是有的人活得可有奔头了,我说没啥意思,你得知道为啥我现在这么活着,还蹦跶着挺好。有的人在前些年就说:你看他还能蹦跶多久?我蹦跶到今天,我真的想给他看看我还在蹦跶呢。呀,你还挺气人。我不是故意气他,就是我蹦跶还是不蹦跶这事不重要。要知道我的逻辑很简单,活着是虚空。但是虚空怎么办呢?人就得喜乐,喜乐的一辈子活着。
那怎么才能喜乐呢?就在劳碌中喜乐,以什么东西为劳碌呢?我就以服侍为劳碌。劳碌中喜乐,服侍中喜乐。然后怎么着呢?这下不得了啦!服侍的甘心乐意呀;劳碌得甘心乐意呀;做事也甘心乐意呀,还挺认真。那写文章,还写得挺好,最近我在准备写点理论,叫做:《数字化的方法论》。我写吧写吧,我看加起来也能整个十万字吧,还准备开课讲这个《数字化的方法论》。为啥?就是人活着得活在神的恩赐当中。人在劳碌中喜乐、服侍中喜乐,这是神的恩赐,这也是神给我们的这一份。听明白了吗?
所以说我想劝大家,这条路多好呀!这条路这么好,咋就不好好地整呐?我就在想原因在哪?原因就是人看不透今生。其实今生真的是虚空,我一点也不忽悠你,如果你真的认为是虚空,那怎么办?在虚空中找到活着的意义。然后为此而生,为此而死,然后为此将自己的生命献上;成为很多人的祝福,这就是亚伯拉罕的路,就是这么回事。我也不知道给大家弄晕了没有?总而言之我觉得还是把活着的意义找到。
【问题】2:老师,这个活得好的想法有时候就跳出来,就掉沟里了,搞出一推问题,请问这个有什么办法对付?
答:这个其实很简单,因为人想活好是可以的,但是你没招。那我想活好,我的招是啥?我的招就是讨神喜悦。简单了吧?简单了。一简单了就好办了。那讨神喜悦,神喜欢我做啥人我就做啥人,这路老有智慧啦!你看《圣经》说:别传扬自己的名,咱就不传扬自己的名。我就不像人家老想做名牧。为啥要做名牧呢?因为名牧收钱多呀,那你不做名牧收钱少。但是问题是我收那玩意干啥呀?我睡觉如果是九十厘米宽的床对我来讲就挺宽了,我也没必要整个一米五、一米八的床,我在上面也不折跟头,两平米我不是睡得挺好嘛。然后一天一餐,这不是也挺好嘛,一天二十块钱,十五块钱,还有五块钱的一碗面都行,吃完了挺好。
我要那么多钱干啥呀?我要那个名干啥呀?很多东西都是在这个今生的虚空里,然后在今生的虚空寻找活着的意义;然后就讨神的喜悦;然后神就祝福你。那比自己传扬自己的名,比那吸金大法好,神祝福我的那是我当得的多好。神又使我喜乐;神是我的智慧;神是我的力量;神是我的医治者;神是我一生的追求,我就是要回到神那里。因为我不太想活,我对活着也不是那么有兴趣,我也不太想活完了给人证明看:你看我活得多好,我也不太想证明这个。我就蔫不湫地活着,活得还挺好。
所以活得好你得有招,这招就是亚伯拉罕那招。但是很多人一看,他不是个亚伯拉罕,所以他那招就用不上。比如说:你们家的水井被人抢去了,然后我的天呀,那个纠结呀!请律师,打官司,整、掐、干。人家亚伯拉罕抢去了就抢去了呗,咱再挖一个,我们就不理解。亚伯拉罕住帐篷其实不是不辛苦,是很辛苦的,他不是不知道所多玛里面的那个卫生设施很好,什么都知道。但是这世上不是我的家,我要寻求一个更美的家乡。这办法怎么样?就用这个办法来对付,就是还得看透!
【问题】3:老师,如何判断我们里面的核心利益?既然今生都是虚空,要如何活在今生却不在意今生?永生的体系又如何判断呢?
答:这个东西容易。就是什么东西让你抓狂,让你难受,那就是。既然今生都是虚空,要如何活在今生却不在意今生?永生的体系又如何判断呢?你问的问题挺好啊。既然今生是虚空,那你在意它干啥?那你现在如果说今生是虚空,就有两条路,其实说多了是三条。一条是去麦加朝圣;还有一条是到山里头女的叫剃发为尼,男的叫剃发为僧;那第三条路就开始走亚伯拉罕那条路。亚伯拉罕怎么干,咱们就怎么干。
这就是学,一开始咱不会,咱不是很生疏吗,不知道咋整。那没关系呀,我开始学、琢磨呀。所以说找来找去就找到了活着的意义。活着的意义就在于成为很多人的祝福,那你如果成为很多人的祝福,你一定是给出去的人。那你给出去不就吃亏了吗?吃亏了,对,就是这么干的。吃亏了以后怎么着?神就给你。今天我的都是神给的,那你就别跟我较劲了。你说:神为什么给你?神给我怎么着?那是神愿意给我你着啥急?你有本事让神给你呀。
所以说我们今天就是活在今生却不在意今生。这句话多好呀!如何?不用如何,就是这样子。你活在今生不用在意今生,都是虚空你在意啥呀?其实不是我愿意来到这世上啊,我得告诉大家,我怎么就来到这世上了呢?一活,活了好几十年了。后来发现不是我愿意,我说了不算。你不能说:神呐,我不来。你也不知道咋说呀,就来了嘛。现在都来了,咱就别太在意了,什么得呀、失呀、占了便宜了、吃了亏了。像婆媳关系非得较真,非得掐,非得弄,然后弄得婆媳关系乌烟瘴气的。
前段时间有一个新闻,因为婆媳关系不好,儿媳妇抓起孩子从窗户丢下去了。哪来这么大脾气呀?其实较劲都是较得啥劲呐?要么就是她上厕所没冲就来点脾气;要么就是吃完饭没擦桌子就来点脾气,大概都是这些事。我想你慢慢琢磨,永生的体系那就是《圣经》里天天讲。
【问题】4:请老师把神的国、神的义讲一讲?
答:先讲神的义,凭着信心相信神,那叫神的义。神的义还有另外一种叫神的公义,神的义就是神的公义。要相信神是公义的,所以说神的义就是信心,就是信神。很多人不信神。那我问你是不是神掌管一切?肯定是神掌管一切。那如果是鬼来了,是不是神掌管的呢?是神掌管的。那你说:神怎么这么坏,怎么整个鬼来了呢?那你不能怪神,为啥?你配得这些。那怎么办?就把鬼赶走,你靠着耶稣得胜!然后挺好。那你就别去怪了,要相信神。叫做:义人因信得生。什么叫做义人?在神眼里的义就是相信,相信就是义。
神的国呢,那地上的国和神的国,属世界的逻辑体系和属神的逻辑体系,它是两套。地上的国将来总有一天要成为我主耶稣基督的国。所以说这个追求神的国,就要靠着神的灵赶鬼。这地方有鬼在工作呀,那你靠着神的灵把鬼赶走了以后,这地方就成了神的国了。听明白了?那如果这个地方被日本鬼子占着呢,那这地方还不是咱们的国,还是别人的国,那是日本国。如果这个地方日本鬼子被赶走了,就成了中国的东三省。
我想我们今天就逐渐的开始了解这个神的国和神的义。你求神的国,就是求的是神在这个国里做王,你求的是世上的东西,那就必是魔鬼做王。虽然魔鬼也在神的掌管之下,但是问题还是一样啊,人的逻辑体系就把人带到那种魔鬼的国里。
【问题】5:老师好,我上个教会说不会信靠神的人里面有孤儿的灵,是不是有圣经依据呢?马太福音里耶稣举例提到的大儿子和小儿子,他们没有儿子的心态,我挺像他们的,我要如何做才可以爱神、信靠神?
答:很多教会就整了个孤儿的灵这种概念。什么叫孤儿呢?就是爸妈都死了。那这个解释其实也很像,就不知道我们有一个天父,在祂的国里,在祂的家里有何等丰富的恩典。这孤儿,就自己养活自己。那儿子的心态可不是那么简单整来的,不是说我有儿子的心态就有儿子的心态。我把这个过程描述给你,第一:你先做奴仆,你做奴仆做着做着,就是神让你干啥,你就干啥,这叫奴仆。还在守律法这种概念里头,就是神让你做啥你做啥,因为你啥也不懂。然后就开始做朋友,朋友不能继承朋友的资产的。朋友是啥意思?就是咱俩的想法挺好、挺像,整着整着成了知音了。知音过去以后再往下走,就走到很深的关系里头,就成了神的儿子。
什么意思呢?就是神的心意你已经完全能够领受,而且还照着做,这个时候你就成了一个继承者。你继承神的遗产,虽然神还没死,神也不会死,但是神的家就是我们的家,神的东西就是我们的东西多好啊。神的银行账号,就可以给你一张卡,你随便刷这就是儿子。所以说他们就讲什么孤儿的灵,这东西我都觉着不好落地。但是我讲的就尽量让它能够落地,你觉着好落地吗?先读《圣经》照着做,做着做着就发现原来神的意思是这个,然后慢慢就明白了。明白了然后就开始再往前走,就开始主动的以儿子的身份支取神的权柄。然后就开始跟神非常的合一,身上就有神完整的神的形象,就可以支取神给我们的权柄。
【问题】6:既然今生是虚空,那不信神的人劳碌做工和吃喝玩乐在神眼里也一样吗?
答:没读懂。就是今生是虚空,还在虚空当中吃喝玩乐那就不一样了。为啥呢?因为他们劳碌做工,吃喝玩乐都是为了他们自己。那我们认为是虚空,是因为没有意义,所以对吃喝玩乐也没什么太大兴趣,就渴望成为别人的祝福。
【问题】7:老师,再想问一个比较具体的问题,就是一感到周围环境不好了,就想着觉得家里很好。请问这个核心利益是不是:其实就是想在世界上活得好的逻辑?
答:环境不好了然后就想到家里很好,家里环境要不好了呢?那你往哪好去呢?就是我们总是用属世界的逻辑来看待事物,就是你这种想法天经地义啊,很正常啊。你觉着很正常,但是我觉着不太正常,为啥不太正常呢?为啥我们觉着周围的环境不好呢?那所多玛那地方好不好啊?看着那环境多好啊!所以我们就把这些事看得很重要,如果不重要,什么环境好还是不好,就是我被卖到埃及做奴隶,我也知道这环境不好,但是我还是靠着神。凭神的同在,神所给我们的智慧在这样的一个环境里头去好好的往下走,那就叫做信心。
【问题】8:老师,公义和公平的意思就是公平的意思吗?
答:这公义是神的公义,神的公平和人的公平不是一个公平。我们喜欢讲求公平,神的公义和公平是一回事吗?其实神的公义常常不太公平。比如说:这有一万两银子的,把那一千的夺过来给那一万的。有人就问:神呐,他有了,你怎么还给他一千?神说:我愿意。它不公平,但这是神的公义,神认为公平,它就公平,神认为它是公义就公义。你应该是说:神的公义就是我认为是公平的吗?那不公平,耶稣被钉十字架哪来的公平啊?
【问题】9:老师,您常常说您不大想活,对活着没有兴趣。可是老师,我总是怕自己还没有悔改好,不讨神的喜悦,怕死了没有机会悔改,总是在这个疑惑在里面,所以会害怕死亡,所以想您帮助梳理一下我里面的问题。
答:其实人不信是一个恶习,你所说的这些东西叫做不信。人不信那不就是罪吗?你如果说想用不信来解决悔改的问题,那永远解决不好。那问题在哪呢?我们信神就信靠祂,包括悔改。信是什么意思呢?就是信祂的话,祂的话怎么说,咱们就怎么做,叫做信。我想这话一说,好像跟没说一样。神一定会给你机会悔改,可是人若爱世界,那怎么可能悔改好呢?如果人认为活着是虚空,能照着神的话得着命定,为神而活,他怎么可能没有悔改好呢?就是人里头还有很多东西是我们自己很在乎,但神却不在乎。
那问题又来了,我里面那些属世界的逻辑体系怎么改?我们里面属肉体的那个情节怎么去除掉?最后还得靠圣灵。神的灵、神的话就是灵、就是生命,所以读了神的话就去行,就是个聪明人。就是你里面总觉得的这些东西,它实际上是你自己里面的感觉或者是一个谎言,所以不要活在谎言里面那才是重要的。因为你认为的东西都不是神说的,都是你自己编了一套,然后咋梳理?梳理不了,最后就梳理出,它就是个谎言。
【问题】10:老师好,我有自我归咎和自责的心理,无论是不是我的错,一旦出问题都会自动扛到自己身上,认为都是自己的错,会有愧疚感。所以我害怕出问题,无论是不是我导致的,我整个人非常焦灼,遇到类似情况我是三番四次陷入事情里,对人识别善恶,事后也很痛悔。请问老师,我这是没有永生盼望导致的吗?怎么才能从这个旋涡里出来?
答:这是个鬼,听见没有?其实不是你不想出来,一整都养成了很习惯的自然反应。这种自然反应不是经过头脑思考,你肯定是一个很直觉的一个反应,肯定不是一个头脑弄清楚了,悟性上明白这事是我干错了,应该是这样这样,所以跟我没关系,完事了。你的不是,你的全都是晕晕乎乎、模模糊糊、悟性不通。其实悟性不通是无知的问题,那人无知不被鬼搞吗?是不是?然后那种感觉就很强烈,那感觉很强烈啥也说明不了,只能说明感觉背后是个鬼。
今天我得告诉你沮丧是一个鬼,很多人沮丧完了以后,他不知道沮丧是个鬼,还以为是他自己。为啥?因为一开始那个沮丧是他自己要沮丧,后来那个沮丧已经是沮丧的鬼了。头疼是个鬼,一开始你不知道,不知不觉就把头疼那个鬼给请来了,然后就开始头疼了,那是个感觉。你到医院看X光,脑袋里头啥事都没有,但就是疼啊,所以它是个感觉,跟感觉相关的,都跟悟性不太相干。所以像忧虑啊、忧愁啊,很多东西都是鬼。那这些东西都是从哪来的呢?都从灵界里来的。所以说像这个喜乐的灵充满我,那神的灵是个喜乐的灵。
如果我们忧愁就为我们的罪忧愁,那或许还是有点像走正道的感觉。所以别再照着自己的感觉,是照着悟性。在悟性上能不能说清楚我们的神到底是个怎样的神?在悟性上能不能说清楚非常焦灼的这种感觉到底是个啥?它不是三番四次,它是悟性上要通才对,听明白了吗?好好下功夫在悟性上,人悟性不通经常被骗的,人傻呀。所以神要成为你的智慧,人就不再靠着自己的感觉,乃是靠着神的话。这是神的话吗?不是神的话丢一边去,完事。
【问题】11:老师,为什么有的人稀里糊涂的会追求神,有的人稀里糊涂的不追求神?
答:这事很有意思,这就是个命。有的人稀里糊涂的,你说他完全糊涂?也不是。最近我就不断地去考察。我说:你怎么就信主了?他说:老师,我就从小觉着活着没有盼望,没有意义,我就到了教会。他去了一个传统的教会,神就引领他,领着领着就领到咱们当中了。然后他就开始知道,神的话是这么说的。所以说很多时候我们以为是糊里糊涂,其实有没有糊里糊涂的成分?有。但是这个糊里糊涂其实就是对今生虚空的一种茫然,他就去寻求神。那有的人稀里糊涂,也是一种茫然,但是他不去追求神,他不寻求永生,他啥也不寻求,他就那么活着。有的人就谈恋爱受伤了,买张机票去加拿大,后来发现很多受伤的去了。都是这样,那电影都这么演的,港剧都是这么演的。所以说糊里糊涂其实好多都是命啊。
【问题】12:忧虑也是鬼吗?
答:忧虑是鬼。当然,有没有你的成分?肯定有。因为你跟鬼合伙干了一个忧虑,结果把你累够呛。
【问题】13:老师,我有个问题,就是关于怎么读《圣经》?神怎么说就怎么信,怎么去做?这是指字面意思吗?《圣经》是要用属灵的话解释属灵的事,我有点不明白啥时候用属灵的眼光看?啥时候用字面意思去信?还是最重要的是先要建立起《圣经》框架体系?特别旧约《诗篇》里的经文,是不是需要辩证的看?能不能拿来直接祷告?
答:这问题挺有意思。其实人最要命的问题是不是寻求?比如说我读了一句话我去行,我就行不了啊。《圣经》说:读了神的话就去行,那我读了起初神创造天地。我说:我起初创造天地去,我也不在现场。那我怎么行呢?你别说我这一较真,还较出了华人命定神学了。当时较真的时候就说:神啊,我咋行啊?神啊,你说我咋行?寻求。我知道我的神是个活人的神,祂是个启示的神。祷告一天啥事也没发生;祷告两天也没发生;祷告一礼拜过去也没发生;两礼拜过去,突然间神说话了。
神怎么说呢?神说:我怎么做,你就怎么做。我说:那我不能起初创造天地去啊?祂说:不是。祂说:人常常面对空虚混沌,然后你就照着我所做的去做,让我的灵运行在那里。我说:这怎么运行?就好好在灵里祷告好使。神的灵运行,然后开口宣告,要有光,就有了光,事情就这样成了。后来一实践,发现果然不错。你说:照着字面意思吗?照着字面意思行不通的,好好寻求;照着字面意思能行得通的,就好好去行。听明白了吗?我们不是在这问呐、问呐。
其实旧约《圣经》里的《诗篇》,我们到今天都还没查过,我也很不喜欢查这玩意,我就觉着《旧约》里的这个《诗篇》不好整。还有什么书呢?就《雅歌》,什么鸽子眼呐,我不知道那东西咋整。所以说慢慢来吧,咱们等走到那,咱们再查《诗篇》共一百五十篇。人其实最重要的是在悟性上有充足的信心,如果说是拿来祷告能解决问题的话,那就容易了。拿来祷告就祷呗。《诗篇》拿来,打开第一篇:如同一棵树栽在溪水旁,祷告的词汇很美啊,写了一篇散文,最后有啥用?我也不知道有啥用?
人祷告寻求神实际上是啥?人祷告要寻求神的引领让我们能够认识神的话,认识真理。不是在那卖弄一点文采。我发现很多人喜欢卖弄文采,站一圈,拉好手。第一个人开始祷告,这祷告就祷告了五分钟;第二个人觉得那不行,我得十分钟;第三个人就十五分钟了,这不是扯淡吗。这比啊,比啥呢?结果就这样。所以说很多时候悟性是不通的。拿来祷告这是什么话?好像拿来祷告就很伟大了?所以我想我们今天还要不断地寻求。
今天我们的答疑解惑就到这,愿神祝福大家!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우리는 《아모스서》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저에게도 상당한 도전이 되지만, 여러분과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아모스서》 1장은 "사람이 서너 가지 죄를 거듭 범하면, 하나님께서 결코 그 형벌을 면제해 주지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의 내면에는 누구나 핵심 이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만약 이 핵심 이익이 하나님과 영생이 아니라 이 땅의 것에 있다면, 누구든 그것을 건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며칠 전 차를 몰고 한 자매님을 데리러 가던 길에 차가 막히는 일이 있었습니다. 두 대의 차가 서로 끼어들기를 하려다 부딪힌 것입니다. 한쪽 운전자는 나이 드신 여성분이었고, 다른 한쪽은 젊은 청년이었는데, 말이 맞지 않자 말다툼이 벌어지더니 서로 멱살을 잡고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경찰이 와서 뒤차들이 먼저 지나갈 수 있도록 차를 빼라고 했지만, 그들은 끝내 길을 비켜주지 않았습니다. 저마다 각자의 핵심 이익이 있어서 남이 그것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서너 가지 죄를 거듭해서 짓는 이유는 사람에게 핵심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핵심 이익이 이 세상의 일이라면 죄를 짓고 또 짓게 됩니다. 사람의 핵심 이익은 건드릴 수 없다고 여기지만, 사람이 잘 살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핵심 이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핵심 이익이 자신을 잘 살게 해주는 요소이며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살지도 못합니다. 핵심 이익 때문에 거듭하여 죄를 범하면서도, 자신이 짓는 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기 핵심 이익만 챙기다가 결국 하나님께 죄를 짓고 맙니다. 하나님께 죄를 짓고 나면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며 결코 형벌을 면제해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의 이러한 논리들을 하나씩 짚어보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상인이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실제로 임할 때는 그것이 더 이상 도덕의 문제가 아니게 됩니다.
다시 말해 사람의 핵심 이익이 이 세상에 있을 때, 그것이 돈이든 영토든 핵심 이익이 되어 버리면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중국 동북의 헤이샤쯔 섬 맞은편은 러시아의 극동 지역인데, 그 땅은 역사적으로 청나라 시절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곳에 자신들의 명장 동상을 세워 두었습니다. 이름을 다 알 수 없는 그 러시아인은 그들에게는 위대한 영웅이지만, 우리에게는 살인자입니다. 우리의 영토를 침탈하기 위해 서슴없이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사실 전쟁에서는 이겼을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패배한 것입니다. 세상일이란 참으로 묘합니다. 우리의 영웅이 다른 이들에게는 살인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중국이든 세상의 다른 나라든 모두 각자의 핵심 이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핵심 이익은 사람을 대단히 해칩니다. 사람의 핵심 이익이 천국에 있다면 이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누가 조금 더 차지하든 덜 차지하든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사람의 핵심 이익이 세상에 속하게 되면, 겉으로는 매우 위대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에는 형벌받을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모스가 언급한 이스라엘 주변의 여러 나라들은 사실 모두 이스라엘과 연관이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서너 가지 죄를 거듭 범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형벌을 결코 면해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하나씩 살펴볼 것입니다. 이 '서너 가지 죄'란 계속해서 반복하여 짓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시지만 그들은 도무지 듣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 자신에게도 핵심 이익이 도대체 무엇인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을 미치게 만들고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것이 곧 핵심 이익입니다. 반면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나라를 핵심 이익으로 삼는 사람은 감정이 매우 안정되어 있고 괴로워하는 일도 거의 없음을 보게 됩니다. 돈을 벌어도 크게 기뻐하지 않고, 손해를 보아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런 것들을 대단한 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1. 다메섹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다메섹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 (《아모스서》 1:3)
길르앗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사울이 죽임을 당한 후 사울을 기억하고 기렸던 사람들입니다. 다메섹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아주 성공적으로 쳤으며, 그것도 한 번만 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참으로 대단한 소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울이 죽었을 때 사울의 시신을 수습해 주었고, 훗날 다윗도 이를 칭찬하며 상을 주었습니다. 즉 사울이 비록 온전치 못했을지라도, 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메섹은 하필 다른 이들도 아닌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몇 번이고 거듭해서 쳤습니다. 길르앗이 괴롭힘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방식이 우리의 방식과 다를 뿐인데,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은 우리의 생각과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메섹의 빗장을 꺾으며 아웬 골짜기에서 그 주민들을 끊으며 벧에덴에서 규 잡은 자를 끊으리니 아람 백성이 사로잡혀 길에 이르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아모스서》 1:5)
남의 것을 탐내고 이익을 취한 대가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포로로 끌려가게 하시는 것이니,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도 훗날 모두 포로로 끌려가 나라가 망하고 가정이 깨어졌는데, 이러한 비극이 일어난 원인을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나라가 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라의 강성함이란 결코 그 세대의 사람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며, 사실 그 나라가 죄를 지었는지 여부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영적인 안목을 하나 가르쳐 드리자면, 겉보기에 아주 강한 나라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흔히 '인생사 새옹지마'라 하듯이, 한 나라가 연약할 때 와신상담하며 마음으로 통회하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국운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나라들은 갑자기 강성해지면 오늘은 이 나라를 괴롭히고 내일은 저 나라를 괴롭히며 온갖 곳에서 행패를 부리다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민을 생각하고 있다면 여기에는 깊은 이치가 담겨 있으니, 결코 쇠퇴해 가는 쪽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올해는 흥하던 곳이 내년에는 쇠할 수 있는데, 마침 여러분이 이민 간 곳이 쇠하는 곳이 된다면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입니다. 다메섹은 국력이 강성할 때 남을 괴롭혔습니다. 세상에서는 강자가 약자를 억누르는 것이 변치 않는 법칙처럼 보이지만,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보다 강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하나님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를 굴복시키실 것이며, 이것이 바로 역사의 법칙입니다. 만약 어느 지역이 갈수록 타락하고 갈수록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으며, 오직 자신의 핵심 이익만을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다루실 것이고, 그 나라는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강해지기만 하면 교만해져서 분수를 모르고 빼앗으려 듭니다. 일부 선진국의 부유함이 그들의 과학 기술 덕분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느 역사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국가의 부유함은 다 빼앗아 온 것이라고 합니다. 빼앗는 것이야말로 가장 빠르지 않겠습니까? 남의 돈을 빼앗아 오면 단숨에 부유해집니다. 힘이 세고 건장하니 남들이 당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메섹도 한때 매우 강성했지만 세상의 형세는 바뀌는 법이라, 이 글을 쓸 당시에는 번영하고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쇠퇴하여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도 포로로 끌려간 적이 있고, 아람 사람들과 다메섹도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곳이 동일한 일을 겪으며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바로 핵심 이익과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기독교 탓으로 돌립니다. 제 동창 한 명이 제게 영상을 하나 보내왔는데, 그들의 분석에 따르면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과 그 논리 체계가 지난 수백 년간 일어난 전쟁의 근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매우 의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와도 싸우신 적이 없고, 결코 남을 침략하신 적도 없으며, 심지어 잡혀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조차 자신을 위해 변호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베드로 같은 사람들을 데리고 각자 오호대장군이나 십이대장군처럼 군사를 거느려 전쟁을 일으키고 로마 제국을 전복시키려 하셨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내세웠을 뿐, 예수님께서 하신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행했습니다. 예수님의 핵심 이익은 하늘에 있는 핵심 이익이었고, 이 세상 사람들의 핵심 이익은 세상의 핵심 이익이었습니다. 속담에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양두구육'과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제게 영상을 보낸 사람은 제 설명을 들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사람의 내면에는 언제나 기이한 논리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람은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주님이시니, 예수님께서 하지 않으신 일들을 벌이지 말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바르게 행해야 합니다.
2. 가사와 두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가사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모든 사로잡은 자를 끌어 에돔에 넘겼음이라." (《아모스서》 1: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넘겼음이라." (《아모스서》 1:9)
이 두 구절에는 모두 백성들을 사로잡아 에돔에 넘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가사와 두로는 이스라엘 주변에 위치해 있으며, 오늘날의 가자와 레바논 지역입니다. 두로와 가사는 종종 이스라엘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에돔을 의지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후손이고 에돔은 에서의 후손으로,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 형제입니다. 가사와 두로는 다윗이 통치하던 시절에 다윗과 꽤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각자의 핵심 이익이 있었기에 거듭하여 죄를 범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을 한 명이라도 잡기만 하면 에돔에 넘겼는데, 당시 에돔 역시 매우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에돔이 저주를 받았으니 결코 강해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가인도 매우 강했습니다. 강도의 논리를 가진 자는 강하지 못할 것이라 착각하지 마십시오. 강하지 않으면 강도짓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가인과 라멕, 그리고 훗날 용사요 유명했던 자들은 모두 복을 받은 자들이 아니었지만 매우 강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백성은 오히려 연약했는데, 이는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최근 우리는 영적 전쟁터에서 점진적으로 전진하며 소돔과 롯에 대해 명확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롯의 입장이었다면, 우리 역시 롯과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롯이 서서 바라보았을 때 소돔의 문명과 기술은 아브라함이 있는 곳보다 훨씬 발달하고 뛰어났습니다. 과학 기술뿐만 아니라 생활 수준이나 1인당 GDP도 훨씬 높았고, 가장 중요한 유흥과 사람들의 자유도 풍부했습니다. 롯이 보았던 것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있는 곳을 보니 아무것도 없고 매우 낙후되어 보여서 소돔으로 이주하려 했던 것입니다. 비록 아브라함과 함께 하란을 떠나왔지만, 롯은 그곳이 아브라함의 약속의 땅일 뿐 자신의 약속의 땅은 아니며, 소돔이야말로 자신의 약속의 땅이라고 여겼습니다. 사람들은 다 이렇게 바라봅니다. 그러나 소돔의 죄악이 가득 찼을 때 하나님께서는 불로 그것을 살라 멸망시키셨습니다.
여러분, 결코 어떤 곳이 매우 번창하고 경제가 발달했다고 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 역시 롯과 같을 수 있습니다. 가사와 두로가 바로 그렇게 행했습니다. 힘이 부치면 에돔을 의지하고, 이기면 빼앗은 것들을 에돔에 넘겨주었습니다. 그들의 결말이 어떠했는지 보십시오.
내가 가사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내가 또 아스돗에서 그 주민들과 아스글론에서 규를 잡은 자를 끊고 또 손을 돌이켜 에그론을 치리니 블레셋의 남아 있는 자가 멸망하리라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아모스서》 1:7-8)
이제 여러분은 가사 사람과 블레셋 사람의 관계를 명확히 아시겠지요?
내가 두로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아모스서》 1:10)
가사와 두로가 맞닥뜨리게 될 운명은 소돔의 멸망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결코 세상적인 안목으로 바라보지 마십시오. 강자의 논리는 결코 좋은 논리가 아닙니다. 세상의 강자들은 매우 대단해 보입니다. 예를 들어 이나모리 가즈오는 세 개의 포춘 500대 기업을 일구어 냈는데, 그중 교세라와 KDDI 통신사는 그가 직접 창립한 회사입니다. 훗날 그는 헤드헌팅을 통해 일본항공(JAL)을 경영하게 되었고, 불과 1년 만에 흑자 전환을 이루어 냈습니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이처럼 대단하니 많은 사람들이 그를 숭배합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JAL처럼 거대한 기업에서 이나모리 가즈오가 1년 동안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킬 수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사실 그것은 이나모리 가즈오와 그리 큰 상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이나모리 가즈오가 갔기 때문에 좋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치 한 작은 국숫집의 주인이 두 번 바뀌었는데, 둘 다 국수를 팔고 맛도 거의 같았지만, 첫 번째 주인이 할 때는 전혀 장사가 안 되다가 두 번째 주인이 이어받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 먹는 것과 같습니다. 맛은 변하지 않았고, 단지 사진 몇 장을 바꾸었을 뿐입니다.
실제로는 누가 무엇을 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 붙어 있는 영적인 요인과 관련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우리도 알 수 없지만, 강자의 논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올 때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아야 합니다. 당시에는 매우 성공적으로 보였을 수 있습니다. 5년 전만 해도 헝다(Evergrande)나 룽촹(Sunac)의 부동산 단지들은 매우 훌륭해 보였지만, 그것이 꼭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충분히 오래 살아본다면 어느 곳에 불이 내려올지 알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바닷물이 빠지지 않았을 때는 모두가 물속에서 수영하고 있으니 진상을 알 수 없고 다 좋아 보이지만, 물이 빠져나가야 비로소 누가 바지를 입지 않고 알몸으로 있었는지 드러나는 법입니다.
불이 내려올 때에야 비로소 그것이 헛된 것임을 알게 됩니다. 문제는 서너 가지 죄를 거듭 범한 후에야 불이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죄를 지었을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치 신호위반을 처음 했을 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두 번 더 해도 아무 일이 없을 수 있지만, 그것이 영원히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 언제 심판이 닥칠지 모른다는 뜻입니다. 만약 에서처럼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과 자주 어울리며 자기 손의 힘에 의지해 살아가고 저주 가운데 거한다면, 하나님의 불이 내려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다만 그 불의 형태가 다를 뿐입니다.
롯의 아내는 불이 내려올 때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천사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재산과 돈을 내려놓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한 번의 돌아봄으로 인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을 눈앞에서 보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해에 가보면 해변에 수많은 소금 기둥들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롯의 아내는 한 사람뿐인데 어떻게 저렇게 많은 소금 기둥이 있는가?' 하고 의아해할 것입니다. 롯의 아내만 그렇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롯이 있고, 수많은 롯의 아내가 있습니다. 저도 젊었을 때 사해에 가본 적이 있는데, 그 바다에는 염분이 너무 높아 물고기가 한 마리도 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백성들을 사로잡아 에돔에 넘겼을까요? 에돔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보다 더 대단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집에서 기른 사병이 318명뿐이었지만, 에서는 400명이나 거느려 할아버지보다 82명이나 더 많았습니다. 우리 눈에 에서가 대단해 보일 뿐만 아니라, 에서 자신도 자신이 왜 저주를 받았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야곱을 보았을 때, 한쪽 다리를 절며 발에는 슬리퍼를 신고 헐렁한 러닝셔츠를 걸친 채 영화에 나오는 꾀죄죄한 집세 받는 노인처럼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더욱 납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저주란 말인가? 야곱이 내 복을 가로채려 온갖 애를 썼지만 결국 빼앗아 가지도 못하지 않았는가?' 세상은 이처럼 사람을 심히 미혹합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불이 떨어질 때는 더 이상 미혹되지 않습니다. 친청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과 한때 득세하며 기세등등했던 자들이 훗날 어떻게 되었는지 보십시오. 오늘은 한없이 당당해 보일지 몰라도,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3. 에돔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을 보고서도 여전히 세상적인 길을 걷기로 선택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에돔은 야곱의 형으로, 야곱보다 5분 먼저 태어났습니다. 에서의 후손을 에돔이라고 부르는데, '돔(dom)'은 붉다는 뜻으로 '이홍(以红, 붉은 자)'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넘기고도 '붉을 홍(红)' 자가 참 좋다며 스스로를 에돔이라 불렀습니다. 음역하여 에돔이라 부르며, '붉고 번성하다'는 뜻으로 여기고 당시 장자의 명분을 판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이 팥죽 사건은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었고, 명분을 판 후에도 그는 여전히 강성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에돔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가 칼로 그의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항상 맹렬히 화를 내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내가 데만에 불을 보내리니 보스라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아모스서》 1:11-12)
악령이 붙은 자들은 결국 불로 태워져야 합니다. 에돔은 서너 가지 죄를 거듭 범하며, 늘 칼을 들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유다 사람들을 뒤쫓고 괴롭혔습니다. 본래 한 형제였는데, 어찌하여 원수가 되었을까요? 사실 이러한 일은 에돔과 이스라엘, 에서와 야곱 형제 사이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중국 명나라 황제 주원장의 아들들도 서로를 잔혹하게 죽였습니다. 주원장의 넷째 아들인 연왕 주체 역시 수많은 형제들을 죽였는데, 단지 그들이 자신의 경쟁 상대라는 이유로 골육상쟁을 벌였습니다. 중국 역사를 보면 참으로 끔찍합니다. 《칠보시》에 나오는 "콩대를 태워 콩을 삶으니, 콩이 솥 안에서 우는구나. 본래 한 뿌리에서 태어났거늘, 어찌 이리도 급하게 볶아대는가?"라는 구절과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의 핵심 이익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가 친구를 사귀거나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혹은 결혼 상대를 고를 때에도 그 사람의 핵심 이익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의 핵심 이익이 권력에 있는 것을 본다면 조심해야 하며, 가능한 한 멀리 피해야 합니다.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에게는 기이한 현상들이 나타나는데, 진실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작은 의심 하나만으로도 상대를 큰 곤경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조조처럼 천성이 의심 많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호랑이 곁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핵심 이익이 돈이거나 세상의 일에 마음을 두고 있다면 조심하십시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그런 사람들뿐입니다.
에돔은 진작에 형제의 정을 잃어버렸습니다. 소망을 하늘에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소망을 땅에 둘 때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 형벌을 면해주지 않으시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하시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단지 다메섹, 가사, 두로, 그리고 에돔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들과 같은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일을 겪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심판하시며 단 한 사람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실 것이고, 당연히 우리 자신도 포함됩니다. 아직 언급하지 않은 모압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빠뜨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의 형벌을 받을 사람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사람인지 깊이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형벌을 받을 사람이라면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의 핵심 이익만을 위해 서너 번 거듭 달려간다면 하나님의 형벌이 반드시 임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영적 상태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려 봅시다. 현재 우리의 영적 상태는 도대체 어떠합니까? 우리는 에서, 가사, 두로, 그리고 다메섹과 같은 길을 걷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메섹은 아람 사람들을 가리키며, 하사엘과 벤하닷이 바로 아람 사람들의 왕이었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이러한 세상 것들이 저를 유혹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저의 작은 지혜는 이러한 유혹을 만났을 때 속히 피하게 만듭니다. 저의 핵심 이익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세상의 하찮은 일들에 대해 비교적 명확하게 분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암몬
암몬은 오늘날의 요르단입니다. 여러분도 실제로 그러한지 확인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암몬 자손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내가 랍바 성에 불을 놓아 그 궁궐들을 사르되 전쟁의 외치는 날과 회오리바람 부는 광풍의 날에 할 것이며 그들의 왕은 그 지도자들과 함께 사로잡혀 가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아모스서》 1:13-15)
사실 영토를 넓힌다고 한들, 확장을 다 하고 나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인 우리 내면에도 여전히 수많은 세상적 역사관과 세상적 논리 체계가 남아 있습니다. 이를테면 강희제, 진시황, 한무제가 영토를 확장해 준 것을 고마워하는 식입니다. 중국의 역사적 영토 변화를 보면, 수천 년 전 초기에는 아주 작은 땅에 불과했다가 청나라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청나라를 도대체 어떻게 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훗날 청나라를 우리의 역사로 편입시켰고, 이제 청나라에는 만주족도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칭기즈칸 역시 우리의 역사로 포함시켰지만, 정작 그 시대 사람들은 칭기즈칸을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했습니다. 그가 중국을 너무나 참혹하게 짓밟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사가 흘러가면서 칭기즈칸은 대단한 인물로 둔갑했습니다. 사람의 역사관이란 참으로 기이합니다.
자신의 지경을 넓히는 것은 수많은 위인들의 추구였습니다. 몽골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 전체가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때 지배했던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참으로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언젠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논리는 매우 치밀하여, 칭기즈칸으로 하여금 유럽과 아시아와 일본까지 정복하겠다는 꿈을 품게 했습니다. 만약 그 당시에 배가 주어졌다면 미국까지 쳐들어갔을 테지만, 채 도달하기도 전에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세상의 논리를 자신의 논리로 삼고, 세상일을 목표로 삼으며, 자기의 핵심 이익을 위해 살아간다면 반드시 서너 가지 죄를 거듭 짓게 되면서도 스스로를 매우 위대하다고 여깁니다.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람이 이 평생 살아가는 이치를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칼에 의지해 살아가며 지경을 넓힌들, 결국 죽고 나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비록 세계 500대 기업을 연이어 세운다 한들, 죽고 나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물론 세계 500대 기업을 세우는 동안 큰 기쁨을 느끼며 즐겁게 일했다면, 그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린 것으로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암몬 사람, 에돔 사람, 가사 사람, 두로 사람, 다메섹 사람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설령 이스라엘 사람이나 유다 사람이라 할지라도 서너 가지 죄를 거듭 범하면 형벌이 임하게 됩니다. 한 번 죄를 짓는 것은 아무 일 없을 수 있고, 두 번 세 번 거듭 죄를 지어도 괜찮아 보일 수 있지만, 몇 번째에 화가 닥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정말로 재앙이 임하면 큰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점차 생각을 조정하여 영생의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이생이 아니라 영생입니다. 이 영생의 길은 바로 예수님을 본받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도 침략하지 않으셨지만, 훗날 기독교는 종종 남을 침략하곤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독교는 본받아 행하지 않았는데, 기독교가 이생의 개념에 동화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서른 남짓한 나이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삼십 대에 일찍 죽는 것을 아까워하거나 억울해하지 않으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영생에 속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라면 삼십 대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을 몹시 안타깝고 아깝게 여겼을 텐데, 이러한 '아까움'은 사실 참으로 악한 것입니다. 그것이 이생의 논리 체계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뉴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보십시오. 어린아이가 살해당하면 '그렇게 어린 나이에 죽다니 너무 아깝다'고 탄식하고, '이 세상이 얼마나 좋은데 파괴되다니 너무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생각들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는데, 그 안에 영생의 관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영생의 관점에 서서 바라본다면,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바울이 걸어간 길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왜 그렇게 분주합니까? 세상의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깊이 따져보지도 않은 채 아등바등 싸우고, 벌고, 빼앗고, 쟁취하느라 곤비하여 녹초가 되고 파김치가 되도록 자신을 볶아댑니다. 사람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사람이 이생의 것들을 점차 꿰뚫어 보게 되면 야곱과 같이 됩니다. 야곱은 이집트 바로 왕 앞에서 17년을 더 살았고, 이 땅에서 140여 년의 생애를 보냈습니다. 야곱이라는 인물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그가 평생 추구했던 것은 오직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일어난 일들에는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지만, 야곱은 그 모든 것을 매우 담담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일에 대한 그의 관점은 우리의 관점과 사뭇 달랐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걸어갔던 이 길을 걷고자 한다면, 그것은 결코 이생의 길이 아니라 영생의 길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핵심 이익을 깊이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품은 채 우리 가운데 와서, 기도하자마자 복을 받는다면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멀리 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단지 세상의 것들을 얻기만을 원하지만,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섬김을 하다가 점차 힘이 빠지곤 하는데, 자신의 핵심 이익과 끊임없이 부딪치고 갈등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섬김에 더 이상 열정이 없다고 느끼는데, 섬김이 여러분의 핵심 이익이 아닌데 어디서 열정이 나오겠습니까? 만약 섬김이 여러분의 핵심 이익이고, 여러분의 추구이자 소망이며, 평생 갈망하는 바라면 당연히 힘이 넘칠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힘이 나는 법이니, 평생 동안 마땅히 해야 할 그 일을 행하십시오.
사실 사람은 겉보기에 선한 사람일 수 있지만, 죽은 후에 어떻게 될지는 알지 못합니다. 오직 이생의 것들만을 위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불이 내려와 여러분의 세상적인 모든 꿈을 태워버릴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 왕국을 세우려 해도, 설령 그 불이 내려오지 않는다 해도 사람이 죽고 나면 그 왕국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평생 포로로 끌려가든지, 불이 내려와 타버리든지, 지진이 일어나 무너져 내리든지 비참하게 끝납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소망을 영생에 두면, 우리는 서너 가지 죄를 거듭 범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거듭 짓는다는 것은 그가 여전히 자기의 핵심 이익을 좇고 자신의 꿈을 좇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나눔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