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大家好!我们查的是《何西阿书》的第八章,这一章我得着了一个新的看见,我以前讲三种基督徒,现在变四种了。那为什么变四种了呢?因为到了何西阿年间出来了第四种基督徒。摩西带着以色列人出埃及,没出埃及前是一种基督徒;出了埃及,死在旷野是第二种基督徒;第三种基督徒是出了埃及,进到旷野,又进了应许之地;第四种基督徒是进了应许之地,后来又回到埃及。
这张的题目是神必追讨以色列的罪,他们必归回埃及。实际上这是一个非常严重的警告!如果大家忘记了,就把之前的笔记拿出来看看。神必追讨以色列的罪,他们必归回埃及!这就是第四种基督徒。如果你放眼望去,看看现在教会里面基督徒的光景,这种见证非常多,很多基督徒可能是第一种,也可能是第二种,也可能是第三种,也可能是第四种。
我得告诉你,做第四种基督徒的人有很多!因为这些人信了主,也经历了神。你说信主的人都没经历过神吗?其实都经历过!几乎没有人是没有经历过神的!但是人经历过神的应许后,后来又被弄回埃及了。刚才我查经的时候讲到那对夫妻,孩子十岁了,但是夫妻俩都是得癌症的基督徒,还是在一个生命堂的地方,其实应该改名叫生病堂。咱们要开始逐渐地把这个《何西阿书》第八章放在心上,这些人也祷告、献祭、认识神,但这就是麻烦所在!因为都是自以为的,所以不好使。
Q1:老师,亚哈和耶洗别是怎么死的?
亚哈是怎么死的呢?因为亚哈贪了拿伯的葡萄园,先知就警告亚哈。后来神在天上开了一个会,就说:谁去引诱亚哈去阵亡呢?结果冒出来一个谎言的灵,说:我去!神说:你去的话,你要怎么整呢?谎言的灵说:我要骗他!结果这个谎言的灵就下来了。很多先知开始都说好听的话:亚哈,你去肯定能得胜。结果这个亚哈就觉得自己挺厉害的,真的以为能得胜,上阵后就发现被骗了。
亚哈就驾着战车,穿着一个士兵身上的服装。你想想看,一个士兵站在战车上,那就跟其他战车的士兵长得都差不多。我猜亚哈的这辆车不是一般的车,肯定是一辆豪车,就像一个开豪车的农民。结果不知道是谁随便放了一箭就把亚哈给射死了,最后死的有点悲剧,这就是亚哈的结局。你想知道人是怎么死的?那你最好小心点,也得知道我们自己会怎么死的。
耶洗别是一个非常有权势的女人,结果神就兴起了一个叫耶户的人起来造反,耶户本身是亚哈手下的一个将军,他就开车把京城给围了,后来就把京城给破了。耶户就站在耶洗别的楼房的外面,耶洗别还在那梳妆打扮,一看是自己的世界末日。就好像缅北的诈骗集团,被果敢同盟军围困了,结果一下子给攻下来了。
这个时候耶洗别还在屋子里头抹粉呢,耶户就和她有段对话。耶洗别手下的太监一看:亚哈王朝彻底完了!结果就把耶洗别从楼上给丢下来了,就是这么死的。后来狗就来吃耶洗别的肉,叫狗葬。现在有火葬、天葬、海葬,但是耶洗别的葬礼叫做狗葬。
Q2:老师,是不是以色列人从耶罗波安拜金牛犊开始,就进入自以为是的逻辑体系?就像我们没有得着命定的时候一样?
以色列人对钱的问题是充满了困惑,不管谁做以色列王,只要一想到以色列的钱要拿到对面南边那个国家去就难受,因为到了南边那个国家叫做犹大国,那些奉献的钱都要献给犹大的圣殿。奉献的比例是多少呢?百分之十五。如果这百分之十五贡献给别的国家,这老百姓就没有钱再交税了。政府能收多少税呢?政府收所得税大概是在百分之二十或者在百分之十几左右,老百姓把百分之十五都拿到犹大国那里奉献了。以色列的王一想到这件事,不用五根手指头,就是两根手指头就能算出来,他们就觉得这样不行。
我猜咱们当中有好多弟兄姐妹,也都是用这两根手指头算的,一算没有钱就不行。人越是没有钱就越是被人骗,非常倒霉!所以以色列王这么一算就得罪了神,那是怎么得罪神的呢?以色列王心里就在想:这奉献我得收回来!结果耶罗波安就发明了一个东西叫做金牛犊,他就做了两个金牛犊,一个放在但,另一个放伯特利。耶罗波安说:你们来拜这个金牛犊,这就是领你们出埃及地的神。
为什么要用金牛犊呢?大家得知道牛是一个很属灵的动物。比如说,牛在印度是神兽,你不能碰,牛在路上走的话,你得让路。股市也有牛市,所以牛给人的印象还是很不错的。结果耶罗波安发明的这两个金牛犊,一个放在伯特利,一个放在但,就让以色列人来拜金牛犊。
后来我们说的扯犊子大概就是从这来的,就是为了收钱。那你说得罪神了没有?神不是金牛犊!结果人整了两个金牛犊在那拜,然后他们说:这就是耶和华神!我就觉着这人脑袋又聪明又傻,聪明在哪呢?奉献肯定很多,把老百姓的百分之十五都收来了,用来搞国家的经济发展。可是从另外一个角度来看又傻得要命,因为得罪了不该得罪的神。谁敢得罪神呢!人里面的逻辑体系是不是很愚蠢?就是宁可得罪神也要把这百分之十五的钱给拦下来。
如果以色列人去犹大、耶路撒冷拜神,他们的奉献是出不了海关的,因为根本就过不了海关。海关一检查:你带着羊羔做啥?你说:我要献祭。那是不行的!你要到伯特利献给金牛犊,那就是带你出埃及的耶和华神。如果你非要带去耶路撒冷,就给你放到监狱里,那就麻烦了。所以以色列人就把这财路给拦下来了,就得罪了神。人一得罪神,这日子该咋过呢?神捏死人就像捏死蚂蚁一样。所以说我讲的这个逻辑就是属世界、属老马的逻辑体系。
Q3:老师,人能够认识神是因为神启示给人了,所以人才能认识神,而不是人通过研究思考的方式来认识神的,是这样吗?
人要透过寻求才能认识神!人不寻求神的话,神怎么启示呢?难道你就在那等着吗?等着神的启示,神就启示你了?不是的!是人自己主动地寻求。所以神坐在祂的宝座上看看有寻求的没有?有明白的没有?太少了!人认识神是透过寻求!那是怎么透过寻求呢?读神的话、不断地揣摩、思考、祷告。如果人只想透过圣灵充满是很难明白的,所以我们一定要去寻求神。
为啥要寻求神呢?因为有很多问题解释不通,但是只要你一寻求,神就启示给你了。咱们查的《创世记》、《101课程》、《约翰一书》,那可都是扒了一层皮。《约翰一书》的每一章我都听了好几百遍。因为你不寻求就得不着启示!《圣经》已经写给我们,我们好好地读就肯定知道。
Q4:老师,《启示录》里的白马是指耶稣基督还是指老马?
白马肯定是指老马,白马这个东西挺厉害的,白马是胜了又胜。有一天老马就跟我说话:几千年来我都没打过败仗,但是我就败在你们命定神学手下了。什么原因呢?因为我们靠着神!骑这个白马的是耶稣,不是看见那四匹马。白马是耶稣的坐骑,你对付了肉体就可以骑白马。
Q5:老师,《马太福音》的第10章:凡在人面前认我的,我在天上的父面前也认他。不是在别人面前认不认耶稣,而是别人承认你或者是认耶稣,那我在天上的父也必认他。这段经文讲得很明白,可是为啥《圣经》里有这么多坑呢?
《圣经》本来就是要制造一件事,你查的是《马太福音》,如果你查的是《路加福音》,你就知道这孩子被立是要让许多人跌倒,许多人兴起。大家知道有一个先知叫西面,这西面看着马利亚抱着孩子进圣殿,他一看到耶稣这孩子就知道是弥赛亚来了,然后就抱过这个孩子来,就在那说:哎呀!我终于可以闭眼了,这孩子被立是要让很多人跌倒,很多人兴起。
Q6:老师,进入应许之地被押送回埃及的人,是不是在旷野的时候得胜了?进入应许之地之后就又开始犯浑或者是逻辑体系没有改过?
大家得知道,死在旷野的那拨人里就留下了约书亚和迦勒。其他的人是神给他们恩典放他们进去的,是前面那一代人都死光了,后面这一代人都变得比较乖了。人里面的逻辑体系还是没有改,因为属世界的逻辑体系的根是非常深的,人识别善恶的根也是非常深的,根本不是轻而易举就能干掉的,结果这些人进了应许之地后,就给神出了一个巨大的难题。
神给的难题是希望祂的百姓过得兴盛,可是以色列人一兴盛就离弃了神。神多难做啊!让你的状况好些就犯浑,然后一犯浑又得管教,外邦人就来抢、夺、打击这些以色列人。他们又开始呼求神,神又拯救他们;神拯救了他们之后,过上了好日子,然后他们又离弃了神,就这么一直这么循环下去,也是够邪门的。
到底是一个什么东西使以色列人变成这样呢?就是人里面的金牛犊。可能你里面连金牛犊都不是,可能就是个小兔崽子,可能是个金老鼠也说不定。我说的意思就是人里面装的那套东西,如果说不是照着神的话来走的话,那早晚是个悲剧!神的话从哪些年间有的呢?从摩西年间就赐下来了,到了何西阿年间,前面有很多信心的伟人:亚伯拉罕、以撒、雅各、约瑟;还有后来的摩西、撒母耳、大卫、约书亚、以利亚、还有以利沙。
问题就是这人怎么就不改呢?一看人家住的大房子,心里头不舒服,再看看自己的小房子。人一攀比、一争竞、一嫉妒,就为世上这点事去奔跑,就忘了将来等着他们的就是一个骨灰盒,就忘了这事了,然后就得罪了神!如果人心里面没有在永恒里荣耀的盼望,人的盼望就都在这世上,所以这些人就算做了神的百姓,最后也是成了埃及的奴隶。所以以色列人的历史就是一个笑话,神拣选了他们,结果又被神狠狠的修理了一顿。人能够进入应许之地是神的恩典,神给你的恩典并不是要让你犯罪,而是要让你更多地爱神。但是直到现在,就我个人而言,我里面真的有点失望。
愿神祝福大家!
서론
우리가 《호세아서》 8장을 살펴보겠습니다. 그중에는 제가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둔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배나 되는 수확이며, 모든 재앙이 다 이와 같습니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어리석고 무지하며 패역한 백성이 반드시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나누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그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는지를 말씀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에도,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추궁하시매 그들은 반드시 이집트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추궁하시매, 그들이 반드시 이집트로 돌아가리라”입니다.
주님을 믿는 위험과 대가는 매우 큽니다
주님을 믿는 위험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사람이 주의 도를 지키고자 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위험은 매우 높습니다. 사실 주님을 믿는 위험이란 바로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왔으나 광야에서 죽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비극이었습니다.
우리는 순서에 따라 그리스도인을 네 가지 부류로 나눕니다. 첫 번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여전히 이집트에서 노예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그리스도인은 이집트에서 나와 종 되었던 집을 떠났으나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세 번째 그리스도인은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네 번째 그리스도인은 약속의 땅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집트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크게 한 바퀴를 도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결코 화인 사명 신학에 오기만 하면 치유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비록 여러분이 화인 사명 신학에 왔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회개해야 합니다! 철저히 회개한 사람은 반드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철저히 회개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갔다가도 나중에 다시 이집트로 돌아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금송아지를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믿는 위험과 대가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만약 여러분이 그분을 거역하고 그분께 죄를 짓는다면,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한때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지라도 나중에 나라가 망하고 집안이 풍비박산 났던 것처럼 될 것입니다. 그들이 제멋대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험했고, 모두 이집트에서 나왔으며,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몇몇 약속들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비극은 그들이 나중에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고, 해방 전의 상태로 되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흔한 일입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사람이 자신을 창조하신 주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성경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호세아서》를 읽으면, 우리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거대한 충격이 일어나며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더러 이집트로 돌아가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사실은 우리 스스로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당신이 바람을 심으면 광풍을 거두고, 작은 죄를 지으면 큰 죄를 거둡니다. 죄는 배로 불어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잘 하지 못합니다. 말하고 나면 교인들이 듣기 싫어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이 듣기 싫어하니 목회자도 말하기 싫어하고, 어쩌다 조금 말하면 교인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수천만 위안의 빚을 내어 겨우 성전을 짓고 헌금을 걷어 빚을 갚으려고 기다리는데 교인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목회자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호세아서》를 성경공부할 때 많은 이들이 듣기 싫어합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주님을 믿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믿지 않습니다. 얼마 전, 저는 암에 걸린 두 사람을 섬겼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둘 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묻기를, “당신에게 오면 다 치유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째서 또 죽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분명 다 치유를 경험했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왔으나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는 자가 있고, 이집트에서 나왔으나 광야에서 죽는 자가 있으며, 약속의 땅에 들어갔으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이집트로 다시 보내지는 자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 사람들이 큰 소망을 품고 우리 가운데 나아와 치유받기를 원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치유하고자 하지 않으셨다는 점에 대해 깊은 탄식이 나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제 기도가 효과가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 역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면, 제가 사무엘이라 할지라도 말한 것이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이 한 말이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신 것은, 사무엘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을 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님을 믿는 위험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온 어떤 암 환자라도 다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경험한 후에 상황이 조금만 안 좋아지면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병원에 가면 안 되는 것이냐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사실 그런 것이 아니라, 당신이 무엇을 의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것입니까, 아니면 병원을 믿는 것입니까? 병원을 믿는다면 교회에 오지 말아야 하는데, 그들은 가지 않고 일이 없을 때는 저를 찾아와 기도해 달라고 하고, 일이 생기면 병원을 찾아가며 돈을 많이 씁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네 부류의 주님을 믿는 사람을 인식하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는 이집트 안에서 나오지 않는 자요, 두 번째는 이집트에서 나왔으나 광야에서 죽은 자요, 세 번째는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들어간 자요, 네 번째는 약속의 땅에 있었으나 다시 이집트로 보내진 자입니다. 이집트란 무엇입니까? 바로 노예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노예 노릇 하기를 좋아하니, 이집트로 다시 보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참으로 비천합니다. 군대식 관리가 없을 때는 온갖 문제와 버릇이 다 나타납니다. 하지만 군대에 보내지면 모든 버릇이 사라집니다. 본래 몸에 온갖 문제가 많았던 사람도, 어느 날 미얀마 북부로 속아서 끌려가면 모든 버릇이 사라지고, 시키는 대로 다 하며 아주 규율을 잘 지키게 됩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여전히 주님을 믿는 위험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옳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지킬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 안에 영구히 거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는 것, 이것이 바로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십니다
호세아가 묘사한 이러한 상황은 호세아 시대에는 아직 완전히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호세아는 선지자로서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을 일깨우고 경고하며 그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어, 이렇게 행하는 것이 옳지 않으며 이렇게 하면 이집트로 보내질 것임을 알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예전처럼 살아가며 도리어 호세아를 의심하고 비난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로 돌아가리라는 말을 마음에 두지 않았고, 경고를 들으려 하는 자도 전혀 없었습니다.
나팔을 네 입에 댈지어다 원수가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그들이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 (《호세아》 8:1)
때로 저는 “이렇게 가는 것은 길이 아닙니다. 이렇게 행하면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저에게 눈총을 주거나 말대꾸를 하며 쏘아붙이는데, 그 속에 담긴 논리가 매우 기이합니다. 사람은 참으로 선지자의 경고와 일깨움을 듣지 않습니다. 제가 수없이 시도해 보았지만, 어떻게 말해도 상대방은 듣지 않았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 말해주어도 그들은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괴로울 때면 저를 찾아와 기도해 달라고 하고, 조금 나아지면 또다시 자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보통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기회는 충분히 많으며, 깨닫고 회개할 시간도 충분히 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숭배하기 시작한 날부터 이스라엘이 멸망하기까지 하나님께서는 200년 넘게 경고하셨습니다. 《요엘서》, 《호세아서》, 《스가랴서》, 《학개서》, 《말라기서》 등 이 소선지서들은 모두 그 시대에 기록된 것인데, 결국 아무도 듣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듣기 싫증이 나자 선지자를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누가 너더러 날마다 불길한 소리를 하라더냐? 또 불길한 소리를 하면 네 입을 틀어막아 다시는 말하지 못하게 하겠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이런 태도가 있었기에, 결국 선지자가 예언한 모든 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응하여 그들은 그때부터 온 세상의 웃음거리요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도 온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명백한 일은 지키지 않고, 굳이 온갖 기괴한 일들을 만들어 행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그것이 어떤 일들인지는 여기서 길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요점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시며,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끊임없이 경고와 교훈을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8장 전체가 이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이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 그들이 행한 모든 일이 호세아를 통해 선포되었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조차 아주 명확하게 말씀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자신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장차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하리라 이스라엘이 이미 선을 버렸으니 원수가 그를 따를 것이라 그들이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난 것이 아니며 그들이 지도자들을 세웠으나 내가 모르는 바이며 그들이 또 그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결국은 파멸을 맞이하리라 (《호세아》 8:2-4)
여러분은 읽으시면서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들은 정작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기억이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사마리아여 네 송아지는 버려졌느니라 내 진노가 무리를 향하여 타오르나니 그들이 어느 때에야 무죄하겠느냐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장인이 만든 것이라 참 신이 아니니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산산조각이 나리라 (《호세아》 8:5-6)
사람은 결코 회개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저는 사람 속에 자신만의 논리 체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저 자신의 깨달음이기도 합니다. 사람 속의 논리가 체계라고 불릴 수 있는 이유는, 그 논리가 스스로 자가당착 없이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말이 빈틈없고 매우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많은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비극이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요 혹시 맺을지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 이스라엘은 이미 삼켜졌은즉 이제 여러 나라 가운데에 있는 것이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 같도다 (《호세아》 8:7-8)
사람이 심어서 싹이 튼다 해도 여전히 열매를 맺지 못하며, 설령 열매를 맺는다 해도 이방인에게 삼켜지고 마니, 참으로 수고로운 일입니다.
그들이 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에브라임이 품삯을 주어 사랑하는 자들을 얻었도다 그들이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품삯을 주었을지라도 이제 내가 그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지도자들의 임금에게 눌려 점점 쇠하기 시작하리라 에브라임은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그에게 범죄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내게 드리는 제물로 말할진대 그들이 고기를 제물로 드리고 먹을지라도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 (《호세아》 8:9-13)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더욱 회개의 길을 가야 하며, 자신이 옳게 행했다고 결코 착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잘못 행한 부분이 아주 많습니다. 여러분이 옳게 행했다면 지금처럼 되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한 가지 일을 겨우 옳게 행하고 나면 꼬리를 치켜세우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그 자리에 머물러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채찍질하지 않으시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발로 차지 않으시면 뒤로 물러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징계를 강요하고, 하나님의 벌을 자초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자신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 속에 한 체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논리 체계는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이며, 바로 여로보암의 길입니다.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것은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이며, 사람을 세상 속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러므로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사람이 회개하지 않는 것은 모두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회개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다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몸에 온갖 문제가 가득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어야 자신이 바르게 행하지 못했음을 깨닫겠습니까? 여기서 칠판을 두드리며 강조합니다. 다시 한번 반복하겠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어야 자신이 바르게 행하지 못했음을 깨닫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권면을 받고도 몹시 언짢아하며 “이렇게 안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반문합니다. 저는 그저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계속 죽을 때까지 해보십시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비록 바르게 행하지 못했음에도 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예전에 암에 걸린 한 부부를 섬긴 적이 있습니다. 집안에 아이가 겨우 열 살인데 부모가 둘 다 암에 걸렸으니, 그 삶을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제가 “이것은 저주입니다!”라고 말하자, 그들의 반응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고, 도리어 자기 속에 있는 이가 밖의 것보다 더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암이 남들보다 더 크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속의 종양이 크다는 말입니까?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여깁니다. 제가 그들에게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냐고 물었더니, 명확하게 설명하지도 못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과자를 믿는 줄 알겠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이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경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스스로 하나님을 안다고 여깁니다. 어떤 사람은 “신약에는 이미 저주가 없는데 성경을 엉터리로 가르치니 목사가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제가 묻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성경을 읽어보기나 했습니까?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신약 성경 아닙니까? 읽어보면 제가 엉터리로 말하는 것인지, 이 사람들이 엉터리로 말하는 것인지 알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입맛대로 골라서 믿습니다. 그 신장암 환자는 이미 그 지경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자기가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스라엘 백성과 판박이였습니다.
그들이 장차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하리라 (《호세아》 8:2)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우리 이스라엘이 주님을 압니다. 당신 같은 하나님쯤은 압니다.” 이런 뉘앙스가 풍기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가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인 줄 아니, 다 엉망진창이 된 것 아닙니까? 저는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은 심리적 위안을 얻기 위함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을 믿느냐고 물어보면 다들 예수님을 믿는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도대체 예수님의 무엇을 믿느냐고 물었을 때, 진정으로 몇 가지라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대단한 수준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회개이고, 둘째는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피 흘려 희생하셨으니 우리 역시 물과 피와 성령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물은 회개요, 피는 대가를 치러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육신의 악한 행실을 죽이거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스스로 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간증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해서 1,000만 위안을 번 것을 간증이라고 내세우는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지 어떻게 그렇게 확신합니까? 귀신도 그런 것을 줄 수 있으니, 그런 것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품삯을 주었을지라도 이제 내가 그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지도자들의 임금에게 눌려 점점 쇠하기 시작하리라 에브라임은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그에게 범죄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호세아》 8:10-11)
에브라임 사람들은 비교적 똑똑하고 장사를 잘하며, 사람을 매수하는 데도 능숙하여 뇌물을 주고받는 데는 가히 전문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어찌 뇌물을 주고받으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병들었을 때 병원 갈 생각만 하고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하여 제사를 드리려 하지만, 어째서 자기가 하나님께 혐오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진노케 하기를 언제까지 하겠습니까? 언제라야 회개하겠습니까?
우리 형제자매들은 저의 권면을 다시 한번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더욱 힘을 내야 하며, 더 이상 여러분 자신의 그 길을 따라 걸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따른다면, 여러분은 에브라임이나 이스라엘처럼 될 것이며, 마찬가지로 이집트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심지어 이집트조차 여러분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이리저리 내던져지다가 결국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면,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의 나라로 파고들어가야 합니다. 철저히 회개하기 시작하고, 자기 안의 논리 체계가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어느 부분을 옳게 행했고, 어느 부분을 아직 바로잡지 못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도대체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알려고 하면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틱톡을 볼 시간은 있으면서 하나님을 알 시간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느냐고 물으면, 알지 못하면서도 기어코 자기가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아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고 물으면, 그들의 대답은 대답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알기를 원치 않았지만, 기도할 때만 되면 열심을 내고 제사를 드릴 때도 몹시 열정적이었습니다.
제사를 드려도 열납되지 않으니,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내게 드리는 제물로 말할진대 그들이 고기를 제물로 드리고 먹을지라도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 (《호세아》 8:12-13)
제사가 열납되지 못한 결과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시고 그들의 죄를 벌하시며 그들이 반드시 이집트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 가지 율법을 기록하셨으나, 그들은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 사람들의 태도는 ‘성경을 읽어서 뭐 하냐? 저런 걸 누가 이해할 수 있겠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기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알아야 할 것은, 화인 사명 신학은 입만 크게 벌리고 소리쳐 기도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방언 기도가 매우 중요하지만, 지성에서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지성과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중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는 것을 몹시 중요하게 여깁니다.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면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헛된 짓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느 한 조항이라도 지켜 행했습니까? 많은 것들이 독선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데 독선적이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현실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제가 관리사무소에 서류 처리를 하러 갔는데, 관리사무소 벽에 안내문이 하나 걸려 있었고 그 안에는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여기지 마십시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조차 날마다 독선에 빠지지 말자고 스스로 경계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이 독선적인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어야 이렇게 행동하겠습니까? 제사는 드리면서도 하나님은 믿지 않고, 그러면서도 자기는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며 스스로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사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하지도 못합니다. 제사를 드린다고 하면서 십일조를 내거나 부추, 박하, 회향 같은 것들을 바칩니다. 사람들은 십일조만 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십일조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교회를 돕는 것이라고만 착각하니, 이 모든 것이 비극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안의 세상적인 논리를 무너뜨리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금송아지입니다. 물론 당신은 아직 금송아지 축에도 못 끼고, 어쩌면 새끼 돼지나 송아지, 어린양 정도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남들은 금송아지라도 섬기는데, 당신은 작은 토끼 새끼나 돼지 새끼를 가져다 섬긴다면 더욱 큰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지성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충만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귀신을 쫓아내는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는데, 이 단계는 반드시 지성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단계입니다. 며칠 전 한 자매가 저를 한 단체 대화방에 초대하며 어떤 사람을 섬겨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보니 지금까지 아무도 그 사람을 제대로 가르쳐준 적이 없었으며, 저라는 ‘대사’를 만나면 잘될 줄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번지수를 잘못 짚었습니다. 저는 ‘소사’ 축에도 끼지 못할지 모릅니다. 저는 사도 요한의 눈에는 어린아이에 불과한데, 대사를 찾다가 소사를 찾았으니 효과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의 머릿속은 오직 치유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제게 와서 무슨 치유를 받겠습니까? 저는 선지자로서 먼저 한마디 점을 쳐주듯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이집트로 돌아가십시오!”
사람은 하나님을 알기는 원치 않고 그저 유익만 얻으려 하니, 이것이 비극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미워하시는지도 모르면서, 마음으로는 얻기만을 바라고 회개하기는 싫어하니, 그렇다면 그저 천천히 고난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전에 “다 치유받았다”고 말한 것은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들에게 한 말입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온 많은 사람들이 다 치유를 받았습니다. 병이 80% 낫고 20%가 남아 있는 것은 당신에게 회개할 기회로 남겨두신 것입니다. 80%가 나은 것은 당신에게 베푸신 은혜이며, 당신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자신을 계시하여 당신이 그분을 알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의지하는 성벽과 궁궐을 불태우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벽을 왜 쌓는지 아십니까? 외적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궁궐을 짓는 이유는 왜 내부의 적을 막기 위함이겠습니까? 백성들은 궁궐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카드를 찍거나 얼굴을 인식하거나 다른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무언가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절대 들여보내 주지 않습니다. 경비 부대가 삼엄하게 지키고 있어 그곳은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며,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벽은 성 안의 백성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궁궐은 왕을 지키기 위한 것인데,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의지하던 성벽과 궁궐을 불살라 버리실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궁궐과 성벽을 짓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많은 궁궐을 지었지만 이스라엘 왕을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왕조 교체가 매우 빈번하여 200년 동안 최소 네다섯 번, 심지어 대여섯 번이나 바뀌었고, 이전 왕들은 모두 살해당했습니다. 궁궐도 왕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벽도 사람을 지키지 못합니다. 사람 안에서 의지하고자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시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담을 의지하면 담이 무너지고, 나무를 의지하면 나무가 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를 잊어버리고 왕궁들을 세웠으며 유다는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내가 그 성읍들에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 (《호세아》 8:14)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당신을 이집트로 돌려보내시기 위함입니다. 이집트에서 나올 때는 이집트 사람들의 재물을 노략하여 나왔으나, 이집트로 돌아갈 때는 당신의 재물을 그들에게 도로 내주어야 하며, 심지어 당신 자신마저 그들의 소유가 되어 이 세상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호세아서》의 말씀이 다소 무겁지만, 저는 이러한 일들이 여러분에게 임하지 않기를, 그리고 제게도 임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람이 바람을 심으면 광풍을 거둡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사람의 죄를 벌하시며,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그의 죄를 갚으시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제 설교를 다 들으셨다면 더 이상 바람을 심지 마십시오. 바람을 심고 나면 광풍을 거두게 되며, 바람이 불어 당신을 이집트로 도로 날려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요 혹시 맺을지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 (《호세아》 8:7)
당신은 이런 것들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지 않습니까? 광풍이 불어와 다 날려버릴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심는 것이 죄이고 선악을 분별하는 것이라면, 거두는 것은 배나 되는 선악 분별의 결과일 것입니다. 만약 심는 것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거두는 것은 세상을 사랑함으로 인한 배나 되는 저주일 것입니다. 이 논리는 당신이 무엇을 심든지 다 배나 되는 보응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바람을 심으면 광풍을 거둔다는 이 말씀이 《호세아서》 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담력이 참으로 큽니다. 거위 간처럼 기름져서 한 입 베어 물면 기름이 뚝뚝 떨어질 지경입니다. 말씀을 다 듣고서도 여전히 똑같이 행하며 머릿속에는 온통 그런 것들뿐입니다. 만약 당신의 머릿속이 온통 그런 것들로 가득 차 있다면, 《호세아서》가 말씀하는 대상이 바로 당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숭배하며 끊임없이 바람을 심고 끊임없이 광풍을 거두다가, 결국 이집트로 돌아가 노예가 되어 자기 자신조차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당신 자신조차 당신의 것이 아닐 때, 재산 또한 당연히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를 기억하시고 반드시 사람의 죄를 추궁하시며, 이어서 그들을 이집트로 도로 보내실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매우 엄중합니다. 사람이 바람을 심으면 광풍을 거둔다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배나 갚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저주에도 30배, 60배, 100배가 있으니, 당신이 어떻게 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에게 한 가지 사실을 상기시켜 드리겠습니다. 사람의 기억이란 매우 기이합니다. 아합이 어떻게 죽었습니까?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고 우상을 숭배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잊어버리고는 아합이 참 좋았으며 나라를 아주 잘 다스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세벨은 성벽 위에서 던져져 개들에게 뜯어먹혔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이세벨이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며, 아합이 죽은 후 이세벨이 남편 집안의 70명의 자녀를 돌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결말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 어떻게 괜찮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당신이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 안에 있는 사람이 내뱉는 말과 추구하는 목표는 참으로 하나님의 형벌과 보응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끊임없이 무너뜨려야 합니다! 절대로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의 것들을 온전한 논리인 양 붙들고 하나님과 흥정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 굳게 서서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이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하나님의 말씀은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서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얼마나 복된 자들입니까!
여로보암이 어떻게 죽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의 결말은 매우 비참했고, 늙은 선지자 하나를 죽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훗날 여로보암이 죽은 후 시므리, 아합 같은 왕들도 다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째서 그것을 보지 못했을까요? 또한 엘리야와 엘리사가 행한 일들을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모를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다 모르는 척했을 뿐입니다. 사람의 기억이란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당신 자신의 기억력을 의지하려거든 아예 그만두십시오. 왜냐하면 당신 자신이 기억하는 것은 다 틀렸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뇌는 사물을 인지할 때 당신의 논리 체계에 부합하는 것만을 기억하며, 당신의 논리 체계에 맞지 않는 것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 머릿속의 논리 체계가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것은 기억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지 않은 것은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호세아서》는 우리에게 큰 경종을 울려줍니다. 앞 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와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말씀했고, 8장에 이르러서는 이집트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 말씀합니다. 당신은 노예로 되돌아가고 싶습니까? 사실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는 많은 선택지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선택, 곧 앞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 승리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핑계를 대지 말고 어떤 말도 변명하지 마십시오. 무지함에 어리석음까지 더해진다면 제사를 드려도 소용없습니다! 당신의 헌금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며 지성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 그것만이 핵심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