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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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疑解惑》

1. 서론

  1. 가장 중요한 일은 단 하나뿐이다. 이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으면, 다른 많은 일들은 중요하지 않다.
  2. 사람이 왜 일을 잘 해내지 못하는가? 바로 일을 너무 중하게 여겨 예민해지고 분주해지기 시작하며, 일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3. 가장 중요한 일은 단 하나뿐이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좋은 편을 택하는 복이다!

2. 본문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38-42)

3. 기도

4. 본문의 배경

  1. 하나님이 계시면 모든 것이 있는 것이다. 좋은 편의 복을 택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
  2. 부족함이 없어야 할 것은 단 하나뿐이니, 곧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면 모든 것을 얻는다.
  3. 많은 사람이 마르다처럼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착각하며,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분주하다가 결국 마음에 불평만 가득 차게 된다.

5.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좋은 편의 복이다

  1. 하나님을 사랑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저주가 해결된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은 아시며,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을 예비해 두셨다.
  2. 사람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된다.

6. 마르다의 선택

  1. 일을 하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좋은가? 사람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 마르다가 한 선택의 기초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녀는 마음이 분주하여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하나님은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3. 우리가 손에 쥔 일을 하지 않는다 해도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사람은 자기 두 손으로 만물을 붙들 수 없다.
  4. 사람이 자기 두 손의 분주함을 의지하는 것은 저주이며, 얻는 것은 혼란뿐이고, 이는 에서의 길을 걷는 것이다.

7. 선택의 기초: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1. 사람이 무엇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는 일이 성사되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축복이 있으면 행했든 행하지 않았든 마찬가지이고, 축복이 없으면 행했든 행하지 않았든 마찬가지이다!
  2.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만물을 붙드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선택의 기초이다!

8. 많은 일은 중요하지 않다

  1. 어떤 일도 우리를 옭아맬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기만 하면, 우리가 잘했든 잘못했든 하나님께서 다 바로잡아 주신다.
  2.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저주와 축복을 뇌리에 깊이 새겨야 한다. 사람은 과연 어느 길을 갈 것인가? 온종일 예민해져 분주하게 쏘다니는 마르다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복을 받는 길을 갈 것인가?
  3. 당신이 만약 재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9.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라

  1.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으러 갔으나 온종일 분주하기만 하고 아무 소득이 없었으며, 결국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서 그물을 던져야 할지 일러주셔야 했다.
  2. 사실 물고기를 잡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며,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좋은 편의 복이다!

10. 결론

  1. 바쁘고 혼란스럽다면 분명 무언가 잘못된 것이며, 마르다처럼 되어 좋은 편의 복을 날려버린 것이다!
  2.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발을 땅에 딛는 성실한 사람이 되며,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더 이상 분주하지 말고 좋은 편의 복을 택하라!
  3. 더 이상 자신의 믿음을 자기가 행하는 일 위에 두지 말고, 자신이 해결하려는 문제 위에 두지 말며, 믿음을 하나님 위에 두어라!

핵심 키워드

  1. 분주함
  2. 예민함
  3. 가장 중요한 일
  4. 좋은 편의 복
  5. 마르다의 선택
  6.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7.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함
  8.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함

1.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참으로 좋습니다. 제목은 바로 ‘그 좋은 편을 택하라!’입니다. 좋은 편의 복을 택하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은 그저 자리에 앉아 설교를 듣는 것이 좋은 편의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본문 말씀에 마르다와 마리아가 나오는데, 한쪽인 마르다는 분주히 일하고 있고 다른 한쪽인 마리아는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 본문은 결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저는 제가 깨달은 바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대단히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어느 정도로 자유롭냐 하면, 저에게는 수많은 일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원래 오늘 전하려 했던 제목은 지난주에 동역자들에게 말하기를 “다음 주일에는 ‘많은 일은 중요하지 않다’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겠습니다”라고 했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보니 이 제목이 썩 좋지 않은 것 같아 다시 ‘좋은 편을 택하라’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시작하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역시 ‘많은 일은 중요하지 않다’가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제 와서 바꾸지 말고 그냥 그대로 가겠습니다. 제가 왜 다시 바꾸려 했을까요? 그 이유는 많은 사람이 이 제목으로 설교를 너무 많이 해서 이미 닳고 닳은 주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이 정말로 중대한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이 ‘좋은 편을 택하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는 것을 몇 편 들어보았지만,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저는 수많은 일들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중요한 일은 고작 한두 가지뿐입니다. 그 한두 가지를 분명하게 정돈해 내면, 수많은 일들은 저절로 풀리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사람이 바로 그 한 가지 일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끊임없이 붙들고 끙끙대며 수많은 일에 얽매여 살아갑니다. 분주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여러분도 보셨겠지만 그러다 보면 사람이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합니다. 사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많은 일은 정말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아셔야 할 것은, 제가 매우 자유롭다고 말할 때 저는 정말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이 제 말을 듣고 웃길래, 제가 “왜 웃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보세요, 저는 예전에 시험을 치면 1등, 2등, 3등을 하다가도 어떤 때는 순식간에 20 몇 등으로 곤두박질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웃으며 “아이고, 제가 20 몇 등이라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네요”라고 하더군요. 보십시오, 완전히 빗나갔고 완전히 초점이 어긋났습니다. 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일을 그들은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이 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때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한 가지 반응은 “당신이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저한테는 그래도 아주 중요합니다”라는 것입니다. 왜 오늘날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까요? 바로 당신이 그것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너무나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 일에 얽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일에 휘둘리고, 그 일에 짓눌려 땅바닥에 내팽개쳐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잘될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많은 사람을 섬겨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20대가 되도록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고, 어떤 사람은 30대가 되어도 이룬 것이 없으며, 어떤 사람은 40대가 되어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모든 문제의 원인은 바로 분주함 때문이었습니다. 그 일을 너무나 대단하게 여기고, 지나치게 무겁게 여긴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중요합니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도, 당신이 그 속에 빠져들어가면 대단히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 회계사가 되려고 할 때, 회계사 자격증을 따는 것이 중요합니까, 중요하지 않습니까?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막상 시험을 치면 딱 1, 2점, 혹은 3, 5점 차이로 불합격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시험만 보면 그렇게 긴장을 합니다. 자기는 긴장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잔뜩 긴장하고 있습니다. 그 시험을 치르는 모습이 마치 중국 축구와 같습니다. 왜 실력이 올라가지 못합니까? 그 일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제가 분주해하는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제가 분주하게 허둥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기본적으로 분주해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을 알고 나서는 더욱 분주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 그리 대단히 중요합니까?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사역이라는 일조차도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분수를 아주 잘 압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도저히 섬길 수가 없습니다. 동쪽으로 가라 하면 서쪽으로 가고, 개를 쫓으라 하면 닭을 잡으려 합니다. 자기만의 방식이 확고하여 우리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그럴 때 저는 “우리가 섬길 수 없으니 하나님께 맡깁시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맡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자기가 찾고 싶은 사람을 마음대로 찾아가라는 뜻입니다. 절에 가든 말든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지 않습니까? 절에 가면 혹시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니 우리는 신경 쓰지 맙시다.

그랬더니 어느 자매가 발끈하며 말했습니다. “아니, 목사님이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왜 이렇게 사랑이 없으십니까?” 제가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그럼 그 사랑이라는 일은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당신이 한번 해보십시오. 제가 지켜보고 당신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그 한 가지 일이 바로잡히지 않으면 다른 일을 아무리 해봤자 헛수고이며, 우리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사람이 좋은 편의 복을 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억지로 쑤셔 넣어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오직 좋은 편의 복을 택하는 사람들만 찾습니다. 당신이 좋은 편의 복을 택했다면, 그것을 우리는 사명이라 부르며 함께 달려갈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세상을 사랑하기로 택했다면 세상이나 열심히 사랑하십시오. 설령 세상조차 사랑할 자격이 안 된다면, 먼저 천천히 자격부터 갖추십시오. 자격증이라도 먼저 따고 나서 세상을 사랑하십시오.

오늘날 사랑이 있네 없네 하는 그런 일도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누가 “목사님은 사랑이 없으십니다”라고 한다면, 저는 어쩔 수 없으며 신경 쓰지도 않습니다. 사소한 일이고 중요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중요하지도 않은데 내가 왜 신경을 씁니까?”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이 그렇게 하시면 그 사람은 죽을지도 모릅니다”라고 합니다. 제 자신이 죽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그 사람이 죽는 것을 제가 신경 쓰겠습니까? 저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가 왜 신경을 씁니까? 어차피 때가 되면 다 한 줌의 재가 될 텐데요. 이렇게 재가 되든 저렇게 재가 되든 매한가지 아닙니까? 어떤 사람이 좋은 편의 복을 택했다면 재가 되든 되지 않든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좋은 편의 복을 택하지 않았다면 재가 되든 되지 않든 다 똑같고 그저 그뿐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설교한 내용을 종종 수정하곤 했습니다. 어느 자매가 매우 엄숙한 표정으로 찾아왔습니다. 당시 제가 설교를 막 마쳤을 때였고, 아직 오프라인 교회가 있을 때였습니다. 그녀가 제 앞으로 다가와 말했습니다. “목사님, 5년 전에 목사님 설교를 들었을 때는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5년 전에 틀리신 겁니까, 아니면 오늘 틀리신 겁니까?” 아이고, 그런 질문으로 저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나 봅니다. 5년 전에 제가 틀렸다 한들 부끄러울 것도 없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십니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내가 성장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그 정도 수준이었으니 그렇게 설교했던 것인데, 제가 그것을 마음에 둘 줄 알았습니까? 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은 과거에 잘못했다고 지적받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런 말을 하고 이렇게 답변하면 상대방은 말문이 턱 막혀버립니다. 그녀는 활을 팽팽히 당겨 저를 한 방에 꼼짝 못 하게 제압할 수 있을 줄 알았겠지만, 저를 누르기에는 아직 도가 한참 모자랍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이폰도 벌써 몇 버전까지 나왔습니까? 벌써 아이폰 14까지 나왔습니다. 당신은 아직도 아이폰 2에 머물러 있습니까? 업그레이드된 것이고, 제가 성장한 것입니다.” 제가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됩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교회 바닥에서는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납니다.

한번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담임목사가 담임목사 자리를 자기 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아비가 아들에게 세습한 것입니다. 세습하는 것도 참 좋지요, 얼마나 좋습니까. 요즘 시대에 ‘관이대(고위 관료 2세)’가 있는데 좋지 않습니까? ‘부이대(재벌 2세)’도 있고, 심지어 ‘목이대(목회자 2세)’도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제가 “아이고, 그 교회는 만 명이나 모이는 교회인데 담임목사의 바통을 아들에게 넘겨주어 목회자 2세가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상대방이 뜻밖의 반응을 보여 저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와, 정말 행복하겠네요! 목회자 2세라니.” 얼마 전 SNS 피드를 휙 넘기다 보니 어떤 친구가 “재벌 2세들은 정말 너무 행복하겠다”라고 써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제가 만나본 재벌 2세 치고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고위 관료 2세 중에도 불행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목회자 2세를 보며 “와, 정말 행복하겠다”라고 하더니, 나중에 암에 걸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에게 “목사님, 사역을 더 크게 키우고 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내가 교회를 크게 키우고 강하게 만들어서 무엇 하겠습니까? 할 수 있는 만큼 일하고, 못 하면 그만두는 것이지, 저는 그런 것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관료 2세든, 재벌 2세든, 목회자 2세든 저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교회를 크게 키우고 강하게 만드는 것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 저를 옭아매려 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는 수많은 일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이해가 되십니까? 사실 좋은 편의 복을 택하는 것은 대략 한두 가지 일에 불과하며, 다른 일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동안 사람들이 저를 어떤 모임의 울타리로 끌어들인 적이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목사들의 세계도 인맥을 형성하고 줄을 서야 하는 바닥입니다. 목사들의 모임에서 어울리려면 요령이 있어야 하고, 업계의 불문율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불문율을 지키지 않고 번번이 깨뜨리곤 했습니다. 그들이 무슨 집회를 연다며 목사 모임을 가졌는데, 제가 어떻게 그 안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들어가고 나니 저를 집회에 초청하여 참석하게 되었고, 저는 갔습니다. 저는 그들이 앞에서 깃발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면 나도 밑에서 소리나 몇 번 질러주며 적당히 호응해주면 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미안했는지 저를 강단으로 밀어 올렸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설교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안 됩니다. 꼭 하셔야 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제가 설교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제가 입을 열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제 입이 워낙 거칠어서요.” 그들이 “괜찮으니 설교하십시오”라고 해서 저는 올라갔습니다. 제가 위에서 설교를 시작하자, 그들은 아래에서 연신 저를 향해 ‘멈추라’는 손짓을 보냈습니다. 더는 설교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전한 제목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였습니다. 사람들이 듣더니 “끝났다, 끝났어. 이 바닥에서는 더 이상 같이 못 어울리겠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제가 내려오자, 세상에나! 저를 작은 방으로 끌고 가더니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판에서 그렇게 처신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하더군요. 아이고, 저는 제가 물을 흐리고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규칙을 지키지도 않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좋은 편의 복은 오직 하나뿐이기에, 저는 그 좋은 편의 복을 택했습니다. 사람 몇몇에게 거슬리는 말을 했다고 해서 제가 신경이나 쓸 줄 아십니까? 저는 사람들에게 자주 거슬리는 말을 합니다. 그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뿐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당신이 목회자이든 그리스도인이든 가장 중요한 일은 단 하나뿐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마십시오! 다른 누구에게 밉보여도 상관없습니다. 나중에 제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앞으로는 저를 부르지 마십시오. 저는 이런 모임에서 어울리지 못합니다.” 어울리지 못한다면,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런 모임에서 어울려서 무엇 하겠습니까? 내가 그런 짓을 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더 이상 복잡하게 얽히지 않고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일들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제 마음속에는 ‘절대로 하나님을 노엽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사실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해보니,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묘한 특징이 있었습니다. 아무에게도 감히 거슬리는 짓을 못 하면서, 유독 하나님께만은 대담하게 거슬리는 짓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아이고, 저는 그저 우리가 좋은 편의 복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괜찮습니다. 인생은 그대로 흘러갑니다. 제가 젊었을 때 서버를 관리하던 시절, 관리 시스템에서 에러 메시지가 삐삐삐 울리며 “이것이 다운되었다, 저것이 다운되었다” 하고 끊임없이 날아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요? 다운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나중에 사장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서버가 죽었는데 왜 손을 안 댑니까?” “예배 중이었습니다.” “예배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저의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왜 당신의 하나님이 가장 중요합니까?” “이 직장을 제게 주신 분이 바로 그분이신데, 어떻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이고, 그렇게 대꾸하니 그 사람들도 기가 팍 꺾여 저를 보며 어쩌지 못했습니다. 저를 어떻게 해볼 방도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배가 끝난 뒤에 가서 손을 보면 됩니다. 잠시 다운된다고 무슨 큰일이라도 납니까? 인생은 아무 탈 없이 굴러갑니다. 게다가 나중에는 컴퓨터 네트워크가 신기하게도 잘 죽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예배를 드릴 때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다운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배가 다 끝나고 나서 죽어도 늦지 않습니다.

이제 여러분도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많은 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바쁘게 살다 보니 저주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어떤 사람들은 바쁘지 않게 살면서 축복 속으로 들어갈까요? 바로 그 한 가지 일을 올바르게 정돈하면 모든 일이 수월해지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저주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성장하고 있고 실제적인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해서 착각하지 마십시오. 실제적인 일을 열심히 한다 해도 저주 가운데서 하는 일이라면, 그것 역시 철저하고 확고한 저주입니다! 저는 이런 원리를 명확하게 밝혀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예수님을 갓 믿기 시작한 초기에도 이 문제를 확실히 정돈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정돈하고 나니 어떤 일이 중요하고, 어떤 일이 보답이 크며, 어떤 일이 없어서는 안 될 일이고, 어떤 일이 잠시 미루거나 두 번 미루어도 되며, 3일이나 5일을 기다려도 되는 일인지 아주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제가 여러분에게 억지로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속마음이 어떠한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율법적인 종교 규례를 지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런 종교적 규례는 지킬 가치도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주님을 믿은 첫날부터 저는 이것이 저의 보배임을 알았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을 때에도 하나님은 저를 돌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축복해 주셨는데 제가 다른 것을 찾아 헤매겠습니까? 제가 바보입니까? 머리에 문제라도 있습니까? 저는 바보가 아닙니다. 거울을 보면 참 똑똑하게 생겼습니다. 좋은 편의 복을 택한 자에게서 그 복을 빼앗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마음 깊은 곳에서 좋은 편의 복을 택했다면, 그 누구도 그것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일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를 권면합니다. 무슨 일만 생기면 하나님을 한쪽으로 밀쳐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하나의 선택입니다. 사실 구역 모임에서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해도, 제가 그곳에 가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저는 이 시간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하고, 이것이 하나님께 속한 시간임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좋은 편의 복을 택할 것이며,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제 안에서 이미 결정을 내렸는데 누가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비즈니스를 논의할 기회가 있다면 모임을 다 마치고 나서 이야기하면 됩니다. 무엇이 그리 급합니까? 돈을 벌 기회가 있다 한들 무엇이 그리 급합니까? 조급해하다가 기회인 줄 알고 덥석 물었다가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주 오래전부터 저는 성경에 매우 중요한 계명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곧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알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왜 이렇게 사역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왜 이런 교회를 세웠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저는 이 일을 참으로 즐겁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목회는 고역이며,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직업이다”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수많은 일로 분주하여 가장 중요하고, 가장 뛰어나며, 결코 없어서는 안 될 그 한 가지 일을 놓쳐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이 그 가장 중요한 일을 놓치고 있으니 참으로 비극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런 일들을 너무나 무겁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일들이 정말로 중요합니까? 정말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일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면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많은 사람이 왜 일을 잘 해내지 못합니까? 일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격증 시험을 볼 때 “내가 반드시 잘 봐야지” 하고 들어가면 문제를 틀리기 십상입니다. 왜 그럴까요? 문제 중에 바른 것을 고르는 문제가 있고 틀린 것을 고르는 문제가 있는데, 마침 반대로 보고 놓쳐버리기 때문입니다. 틀린 것을 지우라고 했는데 맞는 것을 지워버리고, 맞는 것을 지우라고 할 때 또 틀린 것을 지워버립니다. 정반대로 보았으니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긴장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만약 개를 키우는데 주인이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사람이라면 개조차도 주인을 얕잡아봅니다. 개도 사람을 깔아보고 힐끔거리며 쳐다봅니다. 개가 왜 째려보겠습니까? 개도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개를 키우는데 개와의 관계가 아주 좋다면, 분명 그 주인은 결코 예민하게 구는 사람이 아닙니다. 개 훈련 프로그램을 보면 나중에 알게 되지만, 그것은 개를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훈련하는 방송입니다. 주인이 주인 노릇을 제대로 못 하니 개가 주인을 얕보고 하인 취급을 하는 것입니다. 개가 스스로 주인이 되고 당신을 하인으로 여기니, 이거야말로 위아래가 뒤바뀐 것 아닙니까? 왜 그렇습니까? 예민하게 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예민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분이 계십니까?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일을 너무 무겁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일을 너무 중하게 여기면 그때부터 꼬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가장 중요한 일은 오직 하나뿐이며,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일은 단 하나뿐이라는 습관을 길렀습니다. 이 일을 올바르게 정돈해 두고 나서 다른 일들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개념이 실제 삶에 적용하기에는 엄청나게 어렵습니다. 사실 시간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저는 여러분이 종교적인 규례를 지키기를 바라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이 복이 없어서 늘 재수가 없습니다. 골문 바로 앞에서 공을 뻥 차서 날려버리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직전에 엎어져 버립니다. 어쩌다 갑자기 계약이 성사되었다 싶으면 상대가 사기꾼입니다. 평생을 얼마나 재수 없게 살아야 이 지경이 되겠습니까? 저에게 묻는다면, 우리는 먼저 이 재수 없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부디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결국 불운한 인생으로 끝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필요 없이, 그저 다른 것들을 열심히 사랑하십시오! 무엇이든 마음껏 사랑하다가 완전히 망할 때까지 가보십시오. 돈을 벌려고 안달이 난 사람들을 보십시오. 양 떼를 목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니요, 급히 돈을 벌어야 하고 급히 일을 해야 합니다!”라고 하더니, 결국 제대로 해낸 것이 없습니다. 오늘부터는 좋은 편의 복을 택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질 낮은 편을 택하지 말고, 형편없는 것을 택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복은커녕 아예 저주의 길을 택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저는 지금도 어떤 사람들에게 과감하게 예언할 수 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분명 끝나자마자 무너질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주 아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가 행한 것들을 반드시 허물어뜨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오늘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인생을 잘 살아가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한 가지 일을 올바르게 정돈해야 하며, 인맥 모임에 들어가고 말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모임이 있어서 무엇 하겠습니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0장 38절부터 42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2. 본문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38-42)

3.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를 이 분주함에서 건져내어 주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좋은 편의 복인지를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우리의 지각을 열어주셔서 이 복잡한 문제들을 단순하게 정돈하게 하옵소서. 없어서는 안 될 일은 오직 하나뿐이니, 곧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를 이 모든 분주함에서 건져내어 주시고, 이 모든 예민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일들에서 건져내어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 마음속에 수많은 일들이 중요하지 않음을 분명하게 깨닫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를 자유케 하사 이 분주함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온갖 얽매임에서 해방시켜 주셔서, 주님 안에서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되게 하시며, 주께서 왕권을 잡으시고 으뜸이 되심을 확실히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이 좋은 편의 복을 얻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본문의 배경

이 본문의 배경을 먼저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이 누가복음에 대해 저는 《많은 사람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이 넘어지리라》라는 책을 썼습니다. ‘많은 사람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이 넘어진다’는 것이 바로 누가복음의 주제입니다. 책 홍보를 좀 하자면, 제가 쓴 이 책은 정말로 훌륭합니다. 성경 강해 중에서도 누가복음 강해를 비교적 잘 해냈습니다. 왜 많은 사람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이 넘어질까요? 선택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편의 복을 택했고, 어떤 사람은 최고의 저주를 택했습니다. 저주 중에서 가장 강력한 저주는 참으로 무섭습니다! 사람들은 선택할 때 그저 마구잡이로 선택합니다. 이 본문을 보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10장 첫머리부터 차근차근 살펴보면 과연 이 말씀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마리아가 자리에 앉아 말씀을 듣는 것 자체가 좋은 편의 복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잘못 짚은 것입니다. 사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누가복음 10장 전체를 읽어드리고 분석해 드리겠습니다.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전대를 가지지 말며 배낭을 가지지 말며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누가복음 10:1-4)

왜 예수 그리스도가 좋은 편의 복인지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돈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예수님은 칠십 인을 세우시고 짧은 훈련을 시키신 뒤 그들을 파송하셨습니다. 그들을 보내실 때 아주 흥미로운 조건이 있었습니다. 돈을 가지지 말고, 배낭도 가지지 말며, 신발도 여벌로 챙기지 말고, 길에서 사람들에게 문안하지도 말며, 사람들에게 구걸하지도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이 칠십 명이 나가서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내면서 그들은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와, 예수님이 돈보다 더 귀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계신 형제자매 여러분에게 ‘예수님이 돈보다 더 귀하다’라는 논리가 세워지기 시작했습니까?

만약 사업상 거래를 하는데 상대방이 “주일날 만나서 이 비즈니스를 논의합시다”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응하시겠습니까? 저라면 단호하게 거절할 것입니다. “그건 안 됩니다. 월요일로 바꾸면 안 됩니까? 월요일 밤이라도 괜찮지만, 주일의 이 시간은 제가 하나님께 구별해 드린 시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돈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대도, 배낭도, 신발도 챙기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을 누가 공급해 주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공급하셨고, 우리 하나님께서 공급하셨습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당신이 하나님을 택하고 이 좋은 편의 복을 택하며, 이런 비즈니스 저런 비즈니스, 이것저것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그 사업 역시 아무 문제 없을 것입니다.

나중에 이 사람들이 돌아왔을 때 모두가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와, 하나님은 정말 놀라우신 분이구나!” 그러나 그것이 좋은 편의 복인 줄은 몰랐습니다. 사람은 늘 사람의 논리 체계 속에 빠져서 생각합니다. “내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당신이 해결해 줄 겁니까?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당신이 내 수도요금, 전기요금을 대신 내줄 겁니까?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병원비를 대신 내줄 겁니까?” 여러분 속에서도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 속에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공급하시고 저것도 하나님이 공급하시니, 나는 그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만 하면 만사가 형통하다”라는 믿음이 있다면 문제는 아주 쉽게 풀립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오늘 우리가 이 좋은 편의 복을 택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많은 문제가 저절로 풀리게 됩니다. 그 사람들이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누가복음 10:17)

귀신들이 굴복한다고 해서 무엇이 그리 기쁩니까? 그것은 좋은 편의 복이 아닙니다. 귀신들이 왜 그 칠십 인에게 복종했는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권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권능을 주셨다면 그것은 예수님이 맡기신 일을 하라고 주신 것인데, 그들은 갑자기 자기가 대단한 신령한 사람이라도 된 양 우쭐해진 것 아닙니까? 결코 우쭐대지 마십시오. 그것은 좋은 편의 복이 아닙니다. 사람은 일이 조금만 잘 풀려도 쉽게 어리둥절해지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20)

이름이 하늘에 어떻게 기록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알아두셔야 할 것은 저는 바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주님을 믿은 첫날부터 저는 이 좋은 편의 복을 택했습니다. 그 후 저의 직장 생활은 마치 로켓을 탄 것처럼 대단히 빠르게 승진했습니다. 제 스스로도 깜짝 놀랐던 것은, ‘이런 세상일까지도 하나님이 주관하시는구나!’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기를 쓰고 발버둥 쳐서 얻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게 복을 주신 결과였습니다. 오늘 여러분을 얕보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겉보기에는 지혜롭지도 않고, 귀하지도 않으며, 대단한 능력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시면 수많은 문제가 스르르 풀려나갑니다. 때로는 사고를 쳐도 아무 탈이 없습니다. 남들은 사고를 치면 사달이 나는데, 이 사람은 사고를 쳐도 무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택했기 때문이며, 그것이 바로 좋은 편의 복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결코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일들은, 심지어 귀신을 쫓아내는 일조차도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일이 중요합니까?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는 기도란 그저 이기적인 욕심으로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일 지경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이러한 현상들 속에서 무엇을 이끌어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면 모든 것을 얻은 것이요,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리 애써도 다 헛수고다!”라는 개념을 도출해 낼 수 있겠습니까? 헛수고를 하고 싶다면 어디 실컷 해보십시오. 수년 동안 신앙생활을 했어도 헛바퀴만 돌다가 결국 우리 교회에 와서 처참한 몰골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단순한 논리 하나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젖먹이 아이조차 알 수 있는 그 단순한 논리, 곧 ‘우리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그분만이 우리의 가장 좋은 복이 되신다!’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누가복음 10:21)

많은 사람이 흥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이 넘어지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 좋은 편의 복을 택했고, 어떤 사람들은 최악의 저주를 택했기 때문입니다. 최악의 저주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가장 큰 저주이며 대단히 치명적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가 나누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누가복음 10:23)

너희가 보는 것을 본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모든 일을 보고도 ‘우리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시며, 없어서는 안 될 일은 단 하나, 곧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뿐이다!’라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신데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영원 속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우리의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과 같은 형통함을 누릴 수 있으며, 어디를 가도 돈이 부족하지 않고 돈을 챙기지 않아도 모자람이 없게 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보고도 알지 못합니다. 다 보고 나서 예수님께 와서 질문을 던지는데, 마치 우리가 질문응답 시간을 가질 때 뇌 속에 순두부만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이 아주 해괴한 질문을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보았다면 개라도 우리 하나님이 가장 크신 분임을 알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것을 알지 못하니 대체 어떤 인간들이며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단 말입니까? 참으로 탄식이 나옵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어제 어느 자매와 나눌 때도, 제가 걸어오며 경험한 수많은 표적들—이 사람도 해방되고 저 사람도 해방된 이야기들을—수없이 들려주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는 제가 이 좋은 편의 복을 얻어야 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미 그 좋은 편의 복을 택했고, 아무도 그것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비즈니스 상대도 빼앗을 수 없고, 제 직장 상사도 빼앗을 수 없으며, 제 일자리도 빼앗을 수 없고,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저의 좋은 편의 복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걸핏하면 이 좋은 편의 복을 잃어버리고 마니, 얼마나 비극입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올바른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그때 한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님을 시험하여 말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여러분, 이 질문을 보십시오. 우리 가운데 사람들이 묻는 질문과 똑같지 않습니까? 머릿속에 두부밖에 없는 사람들의 질문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내가 무엇을 해야 하지요? 무엇을 하냐고요?” 당신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당신 같은 머리로는 무엇을 해봤자 헛수고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목사님, 제가 어떻게 해야 복을 받습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 율법교사와 다를 바가 없는 행태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그러자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대답을 누가 한 것입니까? 그 율법교사가 대답한 것입니다. 율법교사가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까? 참으로 기가 막히게도 율법교사 자신이 직접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전혀 살지 않았습니다. 위선자들 아닙니까? 위선자들입니다. 예수께서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또다시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묻기를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라고 했습니다. 어떻게든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려보려는 심보였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30-37)

이해가 되십니까? 누가가 기록한 이 좋은 편의 복이라는 말씀은 이미 그 해답이 앞에 다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읽고는 “마리아가 얌전히 앉아 설교를 들었다”라는 데에만 꽂혀 버립니다. 그렇게 계속 듣다가는 아주 ‘설교 중독자’가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들은 설교가 마리아가 들은 것보다 훨씬 많고, 웹사이트에 있는 음성 파일도 싹 다 들었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는다면, 예수님은 “내가 너에게 말한 것이 다 무엇이더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한 것이 아니냐?”라고 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무엇을 행했습니까? 우리는 오늘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 일이 있은 후에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곧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와 마리아가 그분을 자기 집으로 영접했는데, 마르다는 온통 집안일에만 분주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셔도 듣지 않고,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은 채 집안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 그녀가 그렇게 분주하게 일하지 않으면 사람이 죽기라도 합니까?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사람은 그 밥 한 끼 안 먹는다고 큰일 나지 않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묻겠습니다. 그 밥 한 끼, 물 한 잔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목이 마르면 스스로 마시면 되고, 배가 고프면 스스로 부엌이나 냉장고를 뒤져서 찾아 먹으면 됩니다. 무엇이 보이십니까? 마르다는 혼자 분주하게 일했습니다. 분주하게 일하는 그 마음의 동기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기에 결국 불평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불평이 쏟아져 나오니 마음이 분주하고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자기는 대단히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지금 예수님을 대접하고 섬기고 있다.” 예수님이 당신의 섬김과 대접을 필요로 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요?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을 섬긴답시고 나서다가 도리어 저주를 자초합니다. 섬긴다, 섬긴다 하면서 스스로를 저주 속으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분주하게 허둥대며 ‘내가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지 않으면 어쩌란 말인가?’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바쁘게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하늘을 무너지게 하시겠습니까? 하늘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당신이 죽어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 굴러갑니다. 믿어지십니까? 당신이 죽어도 세상은 굴러가고, 제가 죽어도 세상은 여전히 잘 굴러갑니다. 그러니 자신을 너무 대단한 존재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죽어도 세상은 돌아갑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관 속에 들어가 한 사나흘 누워 음료수나 챙겨두고 있어 볼까요? 제가 관에 누워 있을 테니 뚜껑을 완전히 못 박지는 마십시오. 밀봉해 버리면 숨을 못 쉬니까요. 알아들으셨습니까? 제가 관 속에 갇혀 죽는 거야 상관없겠지만, 나중에 경찰이 당신을 찾아오면 큰일 날 것 아닙니까? “이 사람 어떻게 죽었소?” 하면 골치 아파집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수많은 일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붙잡고 마음을 끓이며 하다가 정작 가장 좋은 편의 복을 날려버리는 것, 이것이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바입니다.

그렇게 분주하고 피곤해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지칩니다. 그러나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일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마리아는 이미 그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단순히 설교를 듣는 행위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기꺼이 시간을 구별해 내고, 수많은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끝나고 일할 차례가 되면 그때 열심히 일하십시오. 절대로 이따위로 행동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는 딴청 피우며 바쁘게 일하다가, 예수님이 말씀을 마치고 나면 그제야 녹음본을 틀어놓고 듣고 앉아 있습니다. 대체 뭐 하는 짓입니까? 수학 공부를 할 때는 영어를 생각하고, 영어 공부를 할 때는 물리를 생각하느라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습의 적나라한 초상 아닙니까? 이렇게 해서야 어떻게 잘될 수가 있겠습니까?

많은 일은 중요하지 않으며, 중요한 일은 단 하나뿐이니, 곧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본문의 배경입니다. 이 배경을 하나로 꿰어보면, 누가가 이 구절을 기록한 목적이 사람을 ‘설교 중독자’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려는 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그것이야말로 좋은 편의 복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자체가 곧 가장 좋은 복입니다!

5.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좋은 편의 복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짐으로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열렬히 연애해 본 적이 있습니까? 연애에 푹 빠져 있을 때는 언제든지 시간이 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뜨겁게 사랑할 때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열정이 식고 나면 언제 무엇을 하려 해도 시간이 없습니다. 그 시간들이 다 어디로 갔습니까? 딴짓하러 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이 가장 좋은 복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이 도리가 이 성경 본문과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습니까?

가장 중요한 일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 한 가지 일만 해결되면 수많은 일이 단순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한 가지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수많은 일이 극도로 복잡해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좋은 편의 복인 이유는, 이 한 가지만 해결되면 다른 수많은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교회를 개척하고, 사람들을 섬기며, 사람들을 축복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를 세우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수많은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종종 어떤 사람들이 저를 찾아와 묻습니다. “목사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묻습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합니까?” “조상의 저주를 끊어주십시오.” 제가 말합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네? 필요 없다고요? 예전에 다른 목사님들 설교를 들을 때는 다 부수고 끊어내야 한다고 하던데요.” 제가 묻습니다. “그래서 끊어졌습니까?” “안 끊어졌습니다.” “끊어졌다면 당신이 저를 찾아올 이유가 있었겠습니까?” 나중에 이 문제로 꽤 골치가 아파서 제가 깊이 연구해 보았습니다. 아, 끊어낼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모든 저주가 해결됩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며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것들인데, 문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가슴 아파하고 괴로워해 본 적이 얼마나 됩니까? 거의 없지 않습니까? 제가 오늘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적절치 못하여 여러분의 열심에 찬물을 끼얹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거의 없습니다. 그런 전화를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전화를 걸어옵니다. “목사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실 수 있습니까?” “좋습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할까요?” “아이고, 우리 아들이 큰일 났습니다.” “아, 아들이 안 좋군요.” “우리 며느리가 힘듭니다.” “손자가 아픕니다.” “직장이 위태롭습니다.” “사업이 망해가고 있습니다.” 온통 이런 시시껄렁한 잡일뿐입니다. 그러니 섬기다 보면 얼마나 답답하고 괴롭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제 권면을 들으십시오. 오늘 여러분이 겪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조상의 저주를 끊겠다고 진을 빼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끊고, 끊고, 또 끊어도 저주는 점점 더 늘어만 갑니다. 남 탓하는 것도 유분수지, 자기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그 책임을 아버지에게 돌리고, 할아버지에게 떠넘기는데 대체 누구에게 핑계를 대겠다는 말입니까?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오늘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택한다면 그것이 바로 좋은 편의 복이며 수많은 문제는 눈 녹듯 사라질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온 힘을 다해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고, 또 다른 일을 벌입니다. 제가 말합니다. 실컷 해보십시오. 저주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 보십시오. “목사님, 목사님이 열심히 성장하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제가 언제는 하나님을 열심히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그것은 행하지 않습니까? 성장이 당신에게 저주가 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은 좋은 편의 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주가 아무리 많다 한들, 그 저주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시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니,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면 이 문제는 해결된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더 이상 누구를 찾아다닐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은 첫날부터 저는 성경을 열심히 읽었고,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이러한 영적 비밀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면, 설령 길을 잘못 들었다 해도 하나님께서 올바르게 고쳐주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내면의 관념과 동기는 과연 무엇입니까? 나중에 보니 돈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고는 저에게 묻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돈을 사랑하듯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누군가 그의 하나님을 건드리기만 해도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돈을 사랑한다면, 누군가 그의 돈을 건드리기만 해도 괴로워 미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본 대부분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당신의 하나님을 건드릴 때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당신의 돈을 건드리면 그 즉시 발끈하고 난리를 칩니다. 이런 사람을 두고 저주받았다고 하지 않으면 무엇이라 하겠습니까? 사장이 야근하라고 하면 군말 없이 야근하면서, 하나님이 조금 더 헌신하라고 하시면 온갖 핑계를 대며 스트레스가 극에 달합니다. 그래 가지고 되겠습니까?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젖먹이 아이라도 이 논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곧 우리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입니다.

6. 마르다의 선택

마르다는 무엇을 택했습니까? 마르다는 일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일하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좋습니까? 성경 어디에도 당신이 일하기 때문에 산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문제이기에 사람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입니다.

마르다는 속으로 일하느라 분주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고, 하나님을 너무나 무력한 분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 내가 밥을 짓지 않으면 하나님도 배가 고프실 텐데요.” 이 말을 들어보십시오. 얼마나 해괴망측합니까? 마르다는 속으로 분주해하며 ‘내가 밥을 안 하면 당신들이 뭘 먹겠는가? 먹지도 마시지도 않을 셈인가? 밥이 보약인데 내가 안 차려주면 무엇을 먹는단 말인가? 어서 내 동생을 보내 일손을 돕게 해야지, 저기 앉아서 설교나 듣고 있다니. 내 주 예수님을 굶주리게 할 셈인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보십시오, 제가 가장 질색하는 것이 바로 이런 태도입니다. 제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기가 무언가를 해서 하나님을 먹여 살려야 한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상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부양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봉양을 받으셔야겠습니까? 당신이 누구 덕에 먹고사는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선택의 기초가 완전히 잘못되었습니다. 그 기초에는 수많은 일이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착각이 깔려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굶주리실 테니까.”

이런 논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하지 않고 내가 챙기지 않으면 하나님도 굶주리실 것이고, 하늘과 땅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하늘과 땅이 무너지기는 왜 무너집니까? “내가 예수님을 집에 모셨으니 마땅히 이런 것들로 분주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분주히 챙기지 않으면 예수님은 무엇을 잡수시겠는가?” 언뜻 듣기에는 아주 그럴듯해 보이지요. 결코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먹여 살려야 할 만큼 나약한 분이 아닙니다. 결국 이렇게 생각하니 문제가 터지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음이 소란해지고 분주해지기 때문입니다. 왜 분주해집니까? 순서가 뒤바뀌니 귀신이 틈을 타는 것입니다. 분주함은 귀신입니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순식간에 두부처럼 굳어버리고, 그 두부가 썩어 오물이 되니 나오는 음식마다 불평의 냄새가 진동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일들을 쓸데없이 복잡하게 꼬아놓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한번 실험해 보십시오. 제가 예전에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한들 하늘이 무너지는지 보십시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태양은 어김없이 떠오릅니다. “그럼 왜 우리를 그렇게 가르치십니까? 그렇게 가르치면 다들 손 놓고 드러누워 버리면(탕핑, 躺平) 좋겠습니까?” 사실 드러눕는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지도 않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분주해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제발 이런 일들을 지나치게 대단하게 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일에 매달리다 보면 귀신에게 얽매이게 됩니다. 마르다는 이 일에 얽매여 버렸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이러한 일들에 옭아매여 있습니다. 일에 얽매이다 보면 사람은 조금씩 미쳐가고 논리가 뒤틀려버립니다. 오늘 이 뒤틀린 논리를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그 일에 매달리지 않아도 아무 탈 없습니다. 당신이 그 일을 끝내지 못해도 하늘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대체 무엇 때문에 분주해합니까? 안달복달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사람이 자기 두 손으로 만물을 붙들 수 있습니까? 붙들지 못합니다. 만약 사람이 자기 두 손으로 자신의 목숨을 붙들고, 자기가 하는 일들을 지탱하려 든다면 그것은 저주를 부르는 짓이며, 저주는 귀신을 불러들입니다. 결국 모든 일을 극도로 혼란스럽고 복잡하며 곤혹스럽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이지, 당신의 분주함이 아닙니다. 알고 계십니까?

제가 설교 원고를 준비할 때, 예배 시작 30분 전인데도 원고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원고 없이 설교하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그래도 ‘아이쿠, 안 나오면 안 나오는 거지’ 하고 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이 준비해 놓고는 결국 설교할 때 본문 말씀은 한마디도 전하지 못합니다. 설교를 다 마치고 나서 “아이고, 오늘 본문 말씀을 안 전했네”라고 합니다. 그럼 대체 무엇을 한 것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분주해서 그렇습니다! 절대로 당신의 믿음을 당신이 행하는 일 위에 두지 마십시오. 당신의 기도를 믿음의 기초로 삼지도 마십시오. 당신이 해결하려는 그 문제들 위에 믿음을 두지 마십시오. 믿음을 하나님 위에 두는 것만이 참된 복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님이시며, 그분이 온 우주를 다스리십니다!

나중에 보니 제가 미처 다 준비하지 못했을 때에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역사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설교를 엉망으로 한 것 같은데, 설교가 끝나면 몇몇 형제자매들이 달려와 “목사님, 오늘 말씀에 너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왜 그럴까요? 제 스스로는 설교를 너무 못해서 어디 내놓기조차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남 앞에 내놓을 만한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그분의 뜻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제가 설교를 잘 못해서 ‘정말 형편없었구나’ 싶었는데, 누군가는 “와! 목사님, 그 말씀 덕분에 제가 엄청난 도전을 받고 세움을 입었습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나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논리입니다. 마르다는 선택의 기초부터가 잘못되었습니다.

7. 선택의 기초: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당신이 어떤 일을 행할 때 그 선택의 기초가 무엇입니까? “내가 이 일을 했기 때문에 성사되었고,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착각한 것입니다. 정말로 크게 착각한 것입니다. 축복이 없으면 아무리 애써도 헛수고이며, 축복이 있으면 때로는 손을 대지 않아도 아무 탈 없이 일이 풀려나갑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저는 엔지니어로서 수많은 기술적 난제를 해결해 보았습니다. 그 수많은 엔지니어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겠습니까? 제가 각골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정말로 아닙니다. 온전히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영감 덕분이었습니다. 선택의 기초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마음의 평안과 안식을 누리십시오. 왜 평안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만물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시지 못하겠습니까? 오늘날의 신학 체계들을 보면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예를 들어 방언 기도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방언 기도는 조심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통제하지 못하시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하나님은 완벽하게 통제하고 다스리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간절히 구하고 하나님께 끈질기게 매달려 구할 때,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선택의 기초는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분별해야 한다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에 두부밖에 들어있지 않은데 대체 무엇을 분별해 낼 수 있겠습니까? 기초가 완전히 잘못되었으니 송두리째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을 믿어도 예민하고 이상하게 믿고, 교회를 세워도 신경질적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행한 일에 온갖 소망을 걸어두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이 한 일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왜 많은 사람이 분주합니까? 다 헛똑똑이처럼 헛돌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두 손을 의지하고, 자기 칼을 의지하여 미래를 개척하려는 것은 저주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짓입니다. 그것은 바로 에서의 길입니다! 왜 많은 사람이 우리 교회에 와서 축복을 받을까요? 우리는 야곱의 길을 걷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힘입어 축복의 길을 걸어가기 때문입니다.

8. 많은 일은 중요하지 않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교회조차도 저를 얽매는 굴레가 될 수 없으며, 목양도 저를 얽매지 못하고, 사역 역시 저를 옭아매지 못합니다. 저는 오직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주 나의 하나님을 사랑할 뿐입니다. 저는 무언가를 행했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마음을 졸이고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여전히 계시기만 하다면, 내가 잘했을 때는 하나님이 바로 세워주실 것이고, 우리가 잘못했을 때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바로잡아 주실 수 있습니다. 수많은 교회가 목회자가 행여 실수할까 봐 전전긍긍하는데, 그 기초부터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지 못하시겠습니까? 쓸데없이 일들을 잔뜩 벌여놓으니 갈수록 어지러워지고, 결국 좋은 편의 복을 날려버리는 것입니다.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일은 단 하나뿐인데 말입니다. 이 시대에는 사람을 미혹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조금 많은 수준이 아닙니다.

어느 날 한 목사님이 한국인 목사님 한 분을 제 사무실로 데리고 왔습니다. 왜 데려왔을까요? 그 한국인 목사님이 감리교의 논리와 전통을 우리 교회에 전수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 목사님이 제 사무실에 들어오더니, 쿵! 소리를 내며 소파에 털썩 앉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그 자리에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저에게 인사 한마디 건네지 않았고, 제가 인사를 건네도 들은 척도 안 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이게 뭐 하는 겁니까? 어디 아프신 분입니까?” “아닙니다, 멀쩡하십니다.” “그럼 왜 저러십니까?” “원래 저러시는 게 습관입니다. 어디를 가시든 일단 털썩 주저앉아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아이고, 신선이라도 납시셨나 봅니다! 용한 도사님이 오셨네요! 저는 그분이 자신의 모든 소망을 그 ‘기도하는 행위’ 자체에 걸어두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 소용없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분의 목회는 엉망진창에 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묻는다면 저는 그런 짓거리를 아주 질색합니다. 영적인 척 폼을 잡으며 성도들을 속이는 짓입니다. 일을 너무 대단하게 여기는 것 아닙니까? 무언가에 옭아매여 있는 것 아닙니까?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귀담아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수많은 일을 너무나 무겁게 여기고 있습니다. 많은 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며칠 전 몇몇 사람을 만나 몇 가지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제가 누구를 지목하며 “이 질문에 대답해 보세요”라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기절초풍할 듯이 긴장하더군요. 왜 그럴까요? 그 질문에 답하는 일을 너무나 대단하고 무겁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조금은 덜 중요하게 여길 수는 없습니까? 가장 좋은 일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없어서는 안 될 일은 단 하나뿐입니다. 기초를 잘못 놓지 마십시오. 만물을 붙드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이 잘하고 못하고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저주와 축복에 대해서는 제가 101 기초 과정에서 아주 명백하게 가르쳤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축복과 저주라는 이 두 가지 현실을 뇌리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과연 당신이 걷고 있는 길이 축복의 길입니까, 아니면 저주를 받는 길입니까? 당신은 도대체 어느 길을 걷고 있습니까? 온종일 안절부절못하며 분주하게 쏘다니고 스트레스에 짓눌려 살아가는 마르다의 길입니까? 그러면서도 그 스트레스가 아주 당연하고 합리적인 것이라 착각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자기 집에 오셔서 스트레스를 주었다고 원망합니다. “예수님, 당신이 오지 않으셨다면 내가 왜 이런 스트레스를 받겠습니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안 그렇습니까? 자기가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야 한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러한 덫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행위에 근거하고 율법의 행위에 근거하는 자들은 다 저주 아래 있는 자들입니다.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마십시오. 이것이 핵심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십시오! 당신이 지금까지 재수 없는 인생을 살아왔다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불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어제 기쁜 소식을 하나 들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님이 사기를 당하고, 빚을 크게 져서 집까지 팔았는데도 빚을 다 갚지 못해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 빚을 거의 다 갚아간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재수 없던 시절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당신이 불운의 늪에 빠져 있다면,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재수 없는 인생은 사람을 파멸로 이끕니다. 겉으로는 이것저것 분주하게 일하며 아주 그럴듯해 보입니다. PPT도 기가 막히게 만들고 홍보물도 화려하게 뽑아냅니다. 그러나 저주 아래 있다면 그 모든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없어서는 안 될 일은 오직 하나뿐이니, 세상일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9.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라

이것이 바로 좋은 편의 복,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십니까? 예수님과 베드로의 관계를 보십시오. 이 베드로라는 사람은 참 답답하고 철이 없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명을 팽개쳐 버렸기 때문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에도, 베드로는 사명을 내려놓고 물고기를 잡으러 가버렸습니다. 온종일 그물을 던지며 분주하게 일했지만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파김치가 되도록 피곤에 찌들었습니다. 여러분, 보이십니까? 온종일 뼈 빠지게 일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얘들아,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볼 때 ‘거기에 무슨 물고기가 있겠는가? 나는 고기잡이 베테랑 전문가인데’ 싶었겠지만, 전문 지식도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결국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던졌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백쉰세 마리의 큰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한 마리에 1근(약 500g)씩만 잡아도 150근이고, 서너 근씩 나간다면 수백 근에 달하는 양입니다.

예수님은 해변에서 생선을 구워 그들에게 먹이시며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면서 물고기를 잡으러 간 것은 대체 무슨 짓이냐? 바보냐? 머리에 문제라도 생겼느냐?” 이것은 제가 한 말이고, 예수님은 아주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머릿속에 오물이라도 찬 것 아닙니까? 물고기 잡는 일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중요하다고 여긴다고 해서 물고기가 잡힙니까? 결국 내가 어디로 그물을 던져야 할지 일러주어야 하지 않았느냐 말입니다. 고기를 못 잡지 않았습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주여, 제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라고 하자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늙은 양이든, 젊은 양이든, 큰 양이든, 어린양이든 가리지 말고 하나님의 양을 진심으로 목양하라는 것입니다. 아, 알고 보니 목양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예전에 참 특이한 사람을 한 명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저는 바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화인명정신학(华人命定神学)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이런 신학 저런 신학도 모릅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했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아, 예수님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 아시는군요. 그다음은요?” 그다음은 없답니다. 그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 안다고 합니다. 딱 베드로가 물고기나 잡으러 가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분주하기 짝이 없습니다. 스스로 이름을 짓는다면 ‘마르다’라고 지어야 할 판입니다. 마르다가 너무 여자 이름 같다면 ‘대마(大馬)’라고 부르면 되겠습니다. 이 ‘마르다 목사’는 어찌나 바쁜지 비행기를 타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이곳에서 설교하고 저곳에서 집회를 엽니다. 그런데 목양은요? 목양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오직 한 가지 일, 곧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는 일만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며 다른 것은 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양 떼를 목양하도록 위탁하셨음을 알 뿐입니다.

어제 어느 자매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아, 눈 깜짝할 사이에 몇 년이 흘렀네요. 지난 몇 년간 제 마음은 늘 무겁고 쓰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흔 살이 되도록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었고, 직장마저 잃을 위기였으며, 빚더미에 올라앉아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교회에서 설교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화인명정신학으로 오게 되었는데, 늘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저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녀가 점점 회복되어 일을 훌륭하게 해내고, 자신의 일을 즐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자매님, 지금은 비록 이런 일을 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다시 돌아와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해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그녀는 이제 비로소 세상을 사랑할 자격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그녀에게 말해줄 것입니다. 가장 좋은 복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말입니다. 바쁩니까? 바쁘다면 당신은 무언가 잘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혼란스럽습니까? 혼란스럽다면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마르다의 삶입니다. 마르다가 일을 잘해냈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전혀 아닙니다. 그것은 저주받은 삶입니다. 가장 좋은 편의 복을 날려버렸는데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저는 인맥을 쌓는 모임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예전에 어떤 목회자들의 꿈은 으리으리한 예배당 건물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꿈은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는 것입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의 삶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찬란하게 드러나는 것을 제 눈으로 직접 보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선포합니다. 화인명정신학은 바로 목양의 신학입니다.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여 우리의 목양을 통해 형제자매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변화되고 뒤집히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헌신하고 계신 소그룹 리더, 목자, 교구장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이 쏟은 눈물과 수고를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모든 사람을 이 최고의 축복, 이 좋은 편의 복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여러분을 불편하게 만들고 상처를 주면서라도 여러분 안의 육적인 본성을 깨뜨리고, 여러분 안에 도사린 마르다의 영을 쳐부수며, 그저 설교만 듣고 앉아 있는 ‘설교 중독자’의 습관을 도려내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을 불러일으켜 지혜로운 선택을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발을 땅에 딛고 정직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참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을 아는 삶’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으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우리의 뜻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 세대 가운데 하나님의 소원이 온전히 만족을 누리시게 해야 합니다. 모든 심령이 하나님께로 돌이켜 이 좋은 편의 복을 택할 때, 하늘의 수많은 천사가 당신을 위해 기뻐 외칠 것을 믿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좇아가는 가장 좋은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양 한 곡을 부르고 오늘 헌금 드리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만약 헌금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셨다면 헌금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돈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축복을 나누어주는 곳이지 돈을 긁어모으는 곳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자매의 필요를 돌아볼 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가장 좋은 복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모든 형제자매가 이 좋은 편의 복으로 들어가기를, 이 좋은 편의 복을 온전히 택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빚더미에 앉아 있는 분들에게 소망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십시오. 당신의 문제는 결코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늘 아버지의 집에는 풍성한 은혜가 넘쳐납니다. 당신의 두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손 놓고 드러눕는 것에 달린 것도, 피땀 흘려 발버둥 치는 것에 달린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기초가 무너졌는데 무엇을 하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이곳에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바쳐 섬기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재물을 위해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섬기는 것입니다. 원망도 없고 괴로움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님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손을 높이 드십시오. 빚을 진 분들, 과거의 저주 아래 묶여 있던 분들, 몸에 중병을 앓고 있는 분들은 다 함께 손을 들고 저를 따라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니, 나는 이 좋은 편의 복을 택하노라! 나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나의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 몸을 옭아매는 가난의 저주는 깨어질지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니, 급히 부자가 되려 하고 내 두 손의 힘을 의지하던 모든 악습을 끊어버리노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니, 하나님께서 나를 친히 인도하사 이 모든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가장 좋은 편의 복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실지어다. 나의 모든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해결될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니, 나는 베푸는 자가 될 것이며 나의 온 평생을 하나님께 기쁨으로 바치겠노라.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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