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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에베소서 2장 - 우리는 함께 지어져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느니라

2025-07-23 31,178 以弗所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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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弗所书02章-出死入生
  • 1 你们死在过犯罪恶之中,他叫你们活过来。
  • 2 那时,你们在其中行事为人,随从今世的风俗,顺服空中掌权者的首领,就是现今在悖逆之子心中运行的邪灵。
  • 3 我们从前也都在他们中间,放纵肉体的私欲,随着肉体和心中所喜好的去行,本为可怒之子,和别人一样。
  • 4 然而, 神既有丰富的怜悯,因他爱我们的大爱,
  • 5 当我们死在过犯中的时候,便叫我们与基督一同活过来(你们得救是本乎恩)。
  • 6 他又叫我们与基督耶稣一同复活,一同坐在天上,
  • 7 要将他极丰富的恩典,就是他在基督耶稣里向我们所施的恩慈,显明给后来的世代看。
  • 8 你们得救是本乎恩,也因着信;这并不是出于自己,乃是 神所赐的;
  • 9 也不是出于行为,免得有人自夸。
  • 10 我们原是他的工作,在基督耶稣里造成的,为要叫我们行善,就是 神所预备叫我们行的。
  • 11 所以你们应当记念:你们从前按肉体是外邦人,是称为没受割礼的;这名原是那些凭人手在肉身上称为受割礼之人所起的。
  • 12 那时,你们与基督无关,在以色列国民以外,在所应许的诸约上是局外人,并且活在世上没有指望,没有 神。
  • 13 你们从前远离 神的人,如今却在基督耶稣里,靠着他的血,已经得亲近了。
  • 14 因他使我们和睦(原文是因他是我们的和睦),将两下合而为一,拆毁了中间隔断的墙;
  • 15 而且以自己的身体废掉冤仇,就是那记在律法上的规条,为要将两下藉着自己造成一个新人,如此便成就了和睦。
  • 16 既在十字架上灭了冤仇,便藉这十字架使两下归为一体,与 神和好了,
  • 17 并且来传和平的福音给你们远处的人,也给那近处的人。
  • 18 因为我们两下藉着他被一个圣灵所感,得以进到父面前。
  • 19 这样,你们不再作外人和客旅,是与圣徒同国,是 神家里的人了;
  • 20 并且被建造在使徒和先知的根基上,有基督耶稣自己为房角石,
  • 21 各(或译:全)房靠他联络得合式,渐渐成为主的圣殿。
  • 22 你们也靠他同被建造,成为 神藉着圣灵居住的所在。

《答疑解惑》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에베소서》 2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에베소서》야말로 신약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믿다 보면 점점 어리석어져서, 믿음이 개인적인 수양이나 개인의 일로 변질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우리가 하나하나 차근차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주님을 믿는 신앙은 절대로 개인의 영역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가 왜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렸습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면 누가 찾아옵니까? 귀신이 찾아옵니다. 여호와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악한 영이 그 안에 거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점점 문제에 빠지는 이유입니다.

《에베소서》 2장의 주제는 바로 "우리가 주 안에서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입니다. '함께 지어져 간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 자신이 지어져 가는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무언가를 대단하게 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모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며 우리가 한 일과는 거의 상관이 없습니다.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관계가 있는 듯하면서도 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제 관찰에 따르면, 세상에서 많은 돈을 번 사람들도 자기가 어떻게 벌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나중에 큰돈을 잃은 사람들도 자기가 왜 잃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적 세계가 주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교회를 세우는 분들 가운데 목회자라 자처하는 분들이 있다면 《에베소서》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사실 《성경》은 인간 스스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부정합니다. 사람은 살아가다가 결국 죽는 것 외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암에 걸려도 왜 걸렸는지 모르고, 강직성 척추염에 걸려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며, 어떻게 고쳐야 할지 알지 못해 치료하지 못합니다.

작은 질병 하나로 대변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태를 보십시오. 대변을 보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비극적입니다. 죽을 것 같지 않습니까? 허리뼈 하나만 조금 잘못되어도 반쯤 죽을 지경이 됩니다. 몸의 작은 부품 하나만 고장 나도 견디기 힘듭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죽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허물로 죽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말씀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에베소서》 2:1-5)

이 말씀이 무엇을 뜻합니까? 과거에 우리가 그런 상태에 살면서 어둠의 권세와 이 세상의 논리 체계를 따랐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따르다 보니 결국 누구의 진노를 샀습니까?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너무나 가련했던 것입니다. 고통으로 인해 얼굴이 고약하게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프고 괴롭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우울증, 암, 강직성 척추염, 온갖 염증에 걸려 대소변도 제대로 못 보고,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이 바로 허물과 죄 가운데 죽어 있는 상태가 아닙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다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치유를 받고 은혜를 입어, 본래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람이 살아나고 나면 다시 변질된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살아나면 또 문제가 생깁니다. 허물과 죄 가운데 죽어가고 있을 때 사람의 마음이 어떻습니까? 세상의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내일 죽는다면 오늘 돈을 벌러 가겠습니까? 돈을 번들 누구를 위해 쓰겠습니까?

내일 죽는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먹고 싶은 것 먹고 마시고 싶은 것 마시려 할 것입니다. 병문안을 갔을 때 환자의 상태가 위중하면 "뭐 드시고 싶은 것 없으세요? 마시고 싶은 것은요?" 하고 묻습니다. 그 지경에 이르면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고 무엇을 마셔도 감흥이 없습니다. 산해진미를 누리려 해도 누릴 수 있는 자격과 기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때가 되면 먹고 싶어도 넘어가질 않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고 택하셔서 '내가 하나님을 알아야겠구나' 하고 깨닫게 하십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까? 기도할 시간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시간이 없습니까? 시간이 생깁니다. 성경 읽을 시간이 없습니까? 시간이 생깁니다. 모든 것에 시간이 생깁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알고 나니 참으로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고 나면 또 문제가 생깁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면서 '이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또다시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에게 순종하며,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합니다. 다시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무너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하시며 또다시 살려주십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이렇습니다.

살아나기만 하면 '돈이 있어야 해'라고 합니다. 얼마 전 한 자매님도 그랬습니다. 집안에 큰 위기가 닥치고 재앙이 임했을 때는 기도할 시간이 생겼습니다. 하루에 두 시간씩 일곱 번 기도하는 시간도 척척 냈습니다. 기도를 통해 회복되고 나자 다시 마음이 흐트러집니다. 허물과 죄 가운데 죽어가는 것이 인간의 연약함이며, 그런 우리를 품으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이처럼 한순간의 생각 차이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님이 죽을 지경이 되어 저에게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하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저는 기꺼이 도왔습니다. 그것이 제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자매의 언니 역시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동생은 주님을 믿었지만, 언니는 믿지 않았습니다. 참 기이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택하심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난 것이 아니며, 주님을 믿기로 한 선택조차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신 것이며, 우리는 수동적으로 은혜를 받아들인 것뿐입니다. 어떤 이들은 끝까지 이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다시 살아났다고 해서 자기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착각하거나, 대단한 인물이 된 양 굴거나, 체면을 내세우지 마십시오. 돈과 세상일이 다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면 큰 영적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일으키사 하늘에 함께 앉히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늘에 앉아 계십니까? "저는 아닌데요"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그곳에 가보신 적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아직 가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니까요.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일으키사 하늘에 함께 앉히셨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록 육신으로 가보지는 못했을지라도 이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2:6-7)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늘에 함께 앉아 있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 안의 관점이 영적인 높은 곳을 향해 계속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끝까지 올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우리 내면의 생각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과 같아지는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땅에서도 하늘에 있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됩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저 역시 이를 깊이 절감합니다. 저도 때로는 하늘에 있다가 땅으로 내려오고,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기를 반복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때로 눈앞의 상황을 보며 절망하기 때문입니다. 절망에 빠지면 하나님의 뜻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제 안의 논리 체계가 세상에 속해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아니다, 내가 왜 괴로워해야 하는가? 왜 소망을 잃어버렸는가? 안 된다, 이렇게 낙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는 다시 올라가 내면의 생각을 예수님의 논리로 바꿉니다. 내면의 논리를 예수님의 것으로 바꾸는 순간, 다시 하늘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게 되고 마음이 환하게 열립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방심하면 순식간에 땅으로 떨어집니다. 우리 안의 본성이 그만큼 질기고 연약합니다. 잠깐 방심하는 순간 땅의 논리로 돌아가 버립니다. 세상의 논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해 보이지만, 하늘의 논리는 어색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주님을 믿는다고 밥이 나옵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대답합니다. "땅의 양식뿐만 아니라 하늘의 양식까지 주십니다." 그러면 "당신 왜 그렇습니까? 하늘로 솟아오르기라도 할 겁니까?"라고 하지만, 저는 올라갈 필요 없이 이미 영적으로 하늘에 앉아 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과정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길입니다. 왜 고통스럽습니까? 땅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고, 내면의 논리 체계가 여전히 세상의 것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사역자가 되려면 하늘에 앉아서 사역해야 합니다. 땅에 앉아 사역하면 수준이 너무나 낮아집니다.

말씀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지극히 풍성한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아등바등 애써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하늘의 높이로 끌어올려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내면의 논리 체계입니다. 만약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진실하게 고백한다면, 그 순간 완전히 달라집니다. 믿음이 없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심을 알지 못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은혜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모른다면,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소망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지 못한다면 참으로 비극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직장 상사를 두려워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것저것 염려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사회에서 여러분을 해고하려 한다 해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십니다. 오직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하늘에 함께 앉아 있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우리가 왜 하늘에 올라가 앉아야 합니까? 하늘에 있어야 참된 평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땅에 머물러 있으면 고통스럽습니다! 땅에서는 육신의 생각만 자랄 뿐 영적으로는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함께 부활하여 하늘에 함께 앉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반드시 하늘에 앉아 우리 내면의 논리 체계를 바꾸십시오.

위기를 겪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다니엘이 바빌론의 총리가 되었을 때 그 직무가 쉬웠겠습니까?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을 때 쉬웠겠습니까?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정치적 암투와 음모가 얼마나 극심했겠습니까? 그러나 바빌론의 총리 다니엘을 누가 감히 해칠 수 있었습니까?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지키시니 사자들도 그를 해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이토록 크신 분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늘에 앉아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 한 자매님이 마음이 너무 괴롭다며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땅에 마음을 두고 있으니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괴로운 것이 좋은 일입니다"라고 하니, 자매님이 "뭐가 좋다는 말씀인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괴로워야 하늘을 사모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일에 너무 집착하며 살다가 하나님께서 상황을 흔드실 때 비로소 세상이 참된 본향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대화를 나누며 마음을 정리하고 생각을 바로잡자,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확신이 회복되었습니다.

세상의 일들을 초연하게 바라보십시오. 가볍게 보지 않으면 괴로움에 짓눌립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아무것도 무너지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하늘에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높이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면, 예전에는 집착했던 세상의 일들이 참으로 헛되고 어리석게 보입니다. 여러분의 영적 차원이 점차 올라가 하늘에 앉게 될수록, 세상의 헛된 일들을 보며 '참으로 어리석구나' 하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베소서》 2:8-10)

얼마나 탁월한 말씀입니까? 여러분이 오늘 구원받은 것은 전적으로 은혜에 의한 것입니다. 값없이 거저 받은 선물입니다. 여러분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 어디 하나라도 있습니까?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것이 은혜임을 잊어버립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도와드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제가 주님을 돕겠습니다. 제가 청소도 하고 맛있는 것도 대접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는 부족한 것이 없으신데 우리가 무엇을 보태겠습니까? 대단한 고관의 집에 가도 그에게 부족한 것은 없습니다. 하물며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값없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신앙생활을 하면서 행위를 내세우고 자랑하려 합니까? 행위에서 비롯되면 반드시 자랑하게 됩니다. "내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다", "내가 이만큼 헌금했다"고 내세웁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과 목회자들이 왜 결국 영적 침체와 저주에 빠집니까?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 대단한 일을 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은 성경, 특히 《에베소서》를 깊이 상고합니다. 사역 자체가 은혜임을 알고 결코 자랑하지 말아야 하며,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서려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제가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사오니, 이는 저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저의 선한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결코 자랑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주님이 만드신 작품이오니, 저를 빚으시고 거룩하고 흠 없게 하셔서 주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사용하여 주옵소서."

여기서 선한 일이란 길거리나 기차역에서 차비 잃어버렸다고 거짓말하는 사람에게 돈 몇 푼 쥐여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선한 일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죄악과 저주에서 해방하고, 복음을 전파하며,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어 마귀의 억압에서 건져내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선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헌금이나 사역이나 모든 일에 있어서 이것이 은혜임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을 거꾸로 행하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만 못하며, 도리어 영적 저주를 자초하게 됩니다.

중병에 걸린 그리스도인들을 관찰해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들 자신이 대단한 존재라고 여깁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교회에서 파수꾼 역할을 합니다"라고 하길래 "어떻게 파수꾼 역할을 하십니까?" 물었더니, "목사님이 설교를 틀리게 하면 가서 바로잡아 줍니다"라고 합니다. 그것을 대단한 공헌이라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요구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인간은 늘 하나님을 도우려 합니다.

우리는 대단한 포부로 하나님을 도우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들린 그릇일 뿐이며, 그저 은혜를 받는 자에 불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역할 때 괴로워하거나 일그러진 표정으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져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연약함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은혜임을 기억할 때가 있는가 하면 잊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을 바랄 뿐입니다.

육체로는 이방인이었던 과거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에게서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에베소서》 2:11-12)

인생에서 하나님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비극입니다. 헬스장에서 아무리 근육을 키워도, 고난이 닥쳤을 때는 그 육체의 힘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세상에서 소망과 든든한 반석을 갖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이 시대는 인간적인 배경을 의지하는 시대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시대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만유보다 크신 분입니다.

우리는 본래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었고 아브라함과 아무 상관도 없는 외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우리는 본래 이방인이자 외인이었으나,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함께 성전으로 지어져 가게 하셨습니다. 함께 약속에 참예하고 함께 후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언약에 동참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많은 약속과 기도가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이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교회를 세울 때 반드시 주의 거룩한 성전으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난 성전에는 악한 영이 찾아옵니다.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지 못하면 도리어 화가 됩니다. 자기 행위를 내세우거나 자만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얻은 은혜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자에게는 확실한 소망과 보호가 있습니다.

여러분을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여러분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직장과 일터에서도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한가운데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에베소서》 2:13-19)

이 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가로막혀 있던 담이 허물어졌다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선민이라 여기며 이방인을 멸시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를 믿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고 해서 맹목적인 자만심이나 우월감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먼저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새로 들어온 자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모든 약속이 이제 우리의 것이 되었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것이 저주라면, 하나님의 자녀에게 임하는 것은 사랑의 징계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저주하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다윗에게 내리신 것도 저주가 아니라 철저한 징계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참된 가족이 된 자들은 징계를 받을지언정 결코 버림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와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갑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갑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서》 2:20-22)

이것이 핵심입니다. 많은 이들이 구원을 받고도 하나님의 성전을 짓지 않으며, 성전으로 지어져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만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분의 몸이며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입니다.

신약 《성경》의 중심 주제는 바로 교회를 세우는 것, 곧 하나님의 성전이자 영광스럽고 승리하는 교회를 건축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막과 성전은 모두 신약의 교회를 가리킵니다. 신약의 교회야말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입니다.

모세 시대에 성막을 짓자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충만했고, 솔로몬이 성전을 짓자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습니다. 백성들이 성전을 향해 손을 들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은 백성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수양에만 머물러 성전을 세우는 사명을 잃어버린다면 올바른 신앙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는 교회를 통해 사람을 거룩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물고 뜯는다면 그것은 육신에 속한 모습일 뿐입니다. 육적인 신자들이 모여 싸우면 마귀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육신의 정욕과 악행을 죽이는 것이 성도의 영적 성장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주 안에서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궁극적인 중심은 바로 교회,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에베소서》 2장의 깊은 진리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다소 직설적으로 들릴지라도 참된 영적 양식이 담겨 있습니다. 이 귀한 말씀을 명확히 깨닫고, 특히 사명 신학의 기초 위에서 교회를 세워가는 모든 분이 이 진리를 깊이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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