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이며, 하나님께서 보응하시는 날이다. 아합아, 아합아, 이 날이 얼마나 갑작스럽게 찾아왔느냐! 너는 전쟁터를 누빌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네 앞에는 무덤이 놓여 있었다! 한 사람이 무심코 쏜 화살이 갑옷 이음새를 꿰뚫었지만, 그것은 우연한 재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친히 쏘신 칼이었다! 네가 쓰러지는 그 순간에야 하나님의 저주가 얼마나 실제적인지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생각해 볼 문제:
하나님께서 언제 사람에게 보응하신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은 하나님께 어떤 보응을 가장 받고 싶습니까? 당신의 삶에서 그러한 보응을 받기 위해 어떻게 행해야 합니까?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언제 거짓말을 합니까?
왜 아합과 거짓 선지자들은 거짓말하는 영에게 사로잡혔습니까? 왜 미가야만 참된 예언을 말했습니까?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영적 원칙: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장을 읽고 이 장이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답은 아합이 보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보응의 날이 오면 무엇을 해도 이미 돌이킬 수 없습니다. 미가야가 아합에게 사실을 분명하게 모두 말해 주었다 해도, 아합 자신이 마음속으로 아무리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해도, 다시 상황을 뒤집을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가 자신을 위해 쌓아 온 하나님의 진노가 이미 가득 찼기 때문입니다. 이 장은 《로마서》 2장의 말씀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든지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을 네가 판단하면서도 네가 같은 일을 행하니,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혹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오래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를 네게 쌓아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날에 임할 진노를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영생으로 보응하시고,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보응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로마서》 2:3-8)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진노를 쌓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일을 하나 저질렀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진노가 어느 정도까지 쌓이면 하나님의 보응이 임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보응은 사실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각 사람에게 갚으시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마음속으로 알고 있으며, 하나님도 알고 계십니다. 아합과 거짓 선지자들과 미가야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들 자신도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영적인 결과가 무엇인지 알려 줍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타락한 상태에 있다 해도, 자신의 양심은 자신이 악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모든 일을 경계해야 합니다. 심판의 날이 오면 다시 돌이킬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재능이 많고 아무리 기름부음이 있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거짓말하는 영의 역사
어떤 사람의 생사든 모두 영적인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보좌에 앉으셔서 누가 아합을 꾀어 그가 전사하게 하겠느냐고 물으시는 장면을 볼 때,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의 생사를 결정하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합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한 심판을 우리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사람이 죽은 후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은 영을 지으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전도서》 12:7 참조). 사실 아합이 죽은 후 그의 영은 하나님께로 가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심판하신 다음 지옥에 던지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적인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는 중요한 사람들만 관리하시며 자신은 상관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진노를 쌓습니다. 이것은 실로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아합이 당한 심판도 이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아합에게 임할 때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거짓말하는 영이 그 가운데 참여하여 역사한 것입니다. 이 거짓말하는 영은 거짓 선지자들뿐만 아니라 아합에게도 역사하여 아합의 마음을 매우 완고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심판하실 때에도 그 일은 영적 세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출애굽기》로 돌아가 봅시다. 이집트의 바로가 하나님의 기적을 거듭 보았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정말 몰랐겠습니까? 그는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과 대적했고, 여전히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했습니다. 그 결과 홍해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왜 이렇게 완고할 수 있는지 우리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섬기는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정말 이렇게 완고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만일 이런 사람이 바로 여러분의 가족이라면, 너무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그를 위해 마음과 힘을 다해 섬기십시오. 하루라도 구할 수 있다면 하루를 구하고, 이틀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이틀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에게는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가 회개하고 돌이킨다면 주님께 감사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가 계속해서 멸망의 길을 선택한다면, 여러분도 그를 도울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를 위해 계속 괴로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합의 죽음은 거짓말하는 영이 역사한 결과였습니다. 그렇다면 거짓말하는 영은 어떻게 역사합니까? 사람 안에 있는 두려움을 통해 역사합니다. 여러분이 거짓말하는 영에게 통제받을지 여부는 기본적으로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사람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에게 본래적인 경향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사람은 특정한 환경에 놓이면 두려워하고, 그 결과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러한 본성적인 경향을 이기기로 선택한다면, 두렵고 처벌을 받게 되거나 심지어 생명의 위험을 당한다 해도 진실을 말하기로 선택한다면, 거짓말을 이기게 될 것입니다.
사실 이 사백 명의 거짓 선지자들은 모두 자신들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시드기야도 자신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거짓말했습니까? 그들 앞에 이스라엘의 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논리로 말하면 이것은 “시세를 알고 행동하는 사람이 뛰어난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저분은 아합 왕이야. 왕이 내 생사를 결정할 수 있어. 내가 왕에게 진실을 말하면 왕의 미움을 사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이 거짓 선지자들은 모두 왕에게서 급여를 받았습니다. 왕이 그들을 먹여 살린 이유도 그들이 이런 듣기 좋은 말을 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합은 그들을 믿었습니까? 아합도 물론 그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아합은 왜 그들을 먹여 살렸을까요? 저도 매우 놀랍습니다.
거짓을 분별하는 방법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고, 얻을 것과 잃을 것을 지나치게 염려하는 사람은 이런 상황에 놓이면 “뛰어난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세상의 논리입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데 익숙해지면 매우 위험해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성경》은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눕니다. 한 부류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 부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절대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사람을 두려워한다면 절대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함께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한 부류의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다른 부류의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요한계시록》 21:8). 여기서 첫 번째로 나오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사람이고, 마지막에 나오는 사람이 거짓말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겁이 많으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담대하면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성경》은 이 두 부류의 사람을 매우 분명하게 계시해 줍니다. 아합에 대한 심판의 과정에서 사람들은 단번에 나뉘었습니다. 사백 명의 거짓 선지자와 한 명의 참 선지자로 나뉜 것입니다. 그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을 두려워할 줄만 알았고 하나님을 경외할 줄은 몰랐으며, 매우 교만했습니다. 사실 시드기야가 두 뿔을 만들어 휘둘렀지만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소품일 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이 일을 적용하여 자세히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이 어떤 교회에 갔는데, 그곳에서 “조금 죄를 지어도 괜찮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삽니다”와 같이 사람들이 듣기에 편안한 말만 한다면, 여러분은 분명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심판을 받을 때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예전에 한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님, 반드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난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러자 그는 저와 사이가 틀어졌고, 십일조를 요구하지 않는 교회에 갔습니다. 그곳 목회자는 듣기 좋은 말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얼마 전 그는 위챗으로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직했어요. 집에는 아내와 두 아이도 있어요.” 피해를 본 사람은 누구입니까? 좋은 말을 듣기 좋아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복을 받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복을 받는 핵심은 생명을 세워 주는 말씀을 듣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세워 주는 말씀이라면 귀에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합니다.
《이사야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이사야서》 50:4). 이 말씀이 귀에 거슬리더라도, 여러분의 마음속으로 이 말씀이 여러분의 생명을 세워 주는 말씀임을 알아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누가 여러분에게 진실을 말하는지,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말씀은 매우 단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의 차이는 한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고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데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기 시작하시기를 권면합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해도 순식간에 공허해집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아합을 기쁘게 했지만, 순식간에 아합은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강하게 서서 진실을 말하기를 원한다면, 거짓말하는 영은 여러분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항상 깨어 있으라
다시 아합을 살펴봅시다. 사실 아합은 마음속으로 미가야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에게 피할 방법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에게 왕의 옷을 입히고 자신은 평상복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의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 없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은혜이지 수치가 아닙니다. 만일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고 회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진노를 쌓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2장 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각 사람에게 이루어지리니 선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먼저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영적인 진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합이 죽은 후 그의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이치대로라면 아합이 행한 일과 그의 죽음, 그리고 미가야가 말한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그의 아들이 분명히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아들은 여전히 자기 길을 걸었습니다. 매우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람이란 이렇습니다. 생활의 사소한 일에 빠져들면 이전의 일들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죽은 사람을 보는 순간에는 매우 큰 충격을 받지만,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면 곧 그 충격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이러한 사실을 읽어 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같은 사람에게 영광을 더해 주시고, 아합과 같은 사람에게는 환난과 곤고를 더하십니다. 이것을 깨달았다면 우리는 아합과 그의 아들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강한 사람이 되어 인생의 모든 재난을 대적해야 합니다. 이러한 재난은 사람의 방법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곧 참고 선을 행하며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할 복을 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생으로 보응하시고,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더해 주십니다.
열왕기상 목록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