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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열왕기상 22장 - 아합의 보응!

2014-07-04 46,333 列王纪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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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王纪上22章-先知米该雅警告亚哈
  • 1 亚兰国和以色列国三年没有争战。
  • 2 到第三年,犹大王约沙法下去见以色列王。
  • 3 以色列王对臣仆说:“你们不知道基列的拉末是属我们的吗?我们岂可静坐不动,不从亚兰王手里夺回来吗?”
  • 4 亚哈问约沙法说:“你肯同我去攻取基列的拉末吗?”约沙法对以色列王说:“你我不分彼此,我的民与你的民一样,我的马与你的马一样。”
  • 5 约沙法对以色列王说:“请你先求问耶和华。”
  • 6 于是以色列王招聚先知,约有四百人,问他们说:“我上去攻取基列的拉末可以不可以?”他们说:“可以上去,因为主必将那城交在王的手里。”
  • 7 约沙法说:“这里不是还有耶和华的先知,我们可以求问他吗?”
  • 8 以色列王对约沙法说:“还有一个人,是音拉的儿子米该雅,我们可以托他求问耶和华。只是我恨他;因为他指着我所说的预言,不说吉语,单说凶言。”约沙法说:“王不必这样说。”
  • 9 以色列王就召了一个太监来,说:“你快去,将音拉的儿子米该雅召来。”
  • 10 以色列王和犹大王约沙法在撒玛利亚城门前的空场上,各穿朝服,坐在位上,所有的先知都在他们面前说预言。
  • 11 基拿拿的儿子西底家造了两个铁角,说:“耶和华如此说:‘你要用这角抵触亚兰人,直到将他们灭尽。’”
  • 12 所有的先知也都这样预言说:“可以上基列的拉末去,必然得胜,因为耶和华必将那城交在王的手中。”
  • 13 那去召米该雅的使者对米该雅说:“众先知一口同音地都向王说吉言,你不如与他们说一样的话,也说吉言。”
  • 14 米该雅说:“我指着永生的耶和华起誓,耶和华对我说什么,我就说什么。”
  • 15 米该雅到王面前,王问他说:“米该雅啊,我们上去攻取基列的拉末可以不可以?”他回答说:“可以上去,必然得胜,耶和华必将那城交在王的手中。”
  • 16 王对他说:“我当嘱咐你几次,你才奉耶和华的名向我说实话呢?”
  • 17 米该雅说:“我看见以色列众民散在山上,如同没有牧人的羊群一般。耶和华说:‘这民没有主人,他们可以平平安安地各归各家去。’”
  • 18 以色列王对约沙法说:“我岂没有告诉你,这人指着我所说的预言,不说吉语单说凶言吗?”
  • 19 米该雅说:“你要听耶和华的话!我看见耶和华坐在宝座上,天上的万军侍立在他左右。
  • 20 耶和华说:‘谁去引诱亚哈上基列的拉末去阵亡呢?’这个就这样说,那个就那样说。
  • 21 随后有一个神灵出来,站在耶和华面前,说:‘我去引诱他。’
  • 22 耶和华问他说:‘你用何法呢?’他说:‘我去,要在他众先知口中作谎言的灵。’耶和华说:‘这样,你必能引诱他,你去如此行吧!’
  • 23 现在耶和华使谎言的灵入了你这些先知的口,并且耶和华已经命定降祸与你。”
  • 24 基拿拿的儿子西底家前来,打米该雅的脸,说:“耶和华的灵从哪里离开我与你说话呢?”
  • 25 米该雅说:“你进严密的屋子藏躲的那日,就必看见了。”
  • 26 以色列王说:“将米该雅带回,交给邑宰亚们和王的儿子约阿施,说
  • 27 王如此说,把这个人下在监里,使他受苦,吃不饱喝不足,等候我平平安安地回来。”
  • 28 米该雅说:“你若能平平安安地回来,那就是耶和华没有藉我说这话了”;又说:“众民哪,你们都要听!”
  • 29 以色列王和犹大王约沙法上基列的拉末去了。
  • 30 以色列王对约沙法说:“我要改装上阵,你可以仍穿王服。”以色列王就改装上阵。
  • 31 先是亚兰王吩咐他的三十二个车兵长说:“他们的兵将,无论大小,你们都不可与他们争战,只要与以色列王争战。”
  • 32 车兵长看见约沙法,便说:“这必是以色列王!”就转过去与他争战,约沙法便呼喊。
  • 33 车兵长见不是以色列王,就转去不追他了。
  • 34 有一人随便开弓,恰巧射入以色列王的甲缝里。王对赶车的说:“我受了重伤,你转过车来,拉我出阵吧!”
  • 35 那日,阵势越战越猛,有人扶王站在车上,抵挡亚兰人。到晚上,王就死了,血从伤处流在车中。
  • 36 约在日落的时候,有号令传遍军中,说:“各归本城,各归本地吧!”
  • 37 王既死了,众人将他送到撒玛利亚,就葬在那里;
  • 38 又有人把他的车洗在撒玛利亚的池旁(妓女在那里洗澡),狗来舔他的血,正如耶和华所说的话。
  • 39 亚哈其余的事,凡他所行的和他所修造的象牙宫,并所建筑的一切城邑,都写在以色列诸王记上。
  • 40 亚哈与他列祖同睡。他儿子亚哈谢接续他作王。
  • 41 以色列王亚哈第四年,亚撒的儿子约沙法登基作了犹大王。
  • 42 约沙法登基的时候年三十五岁,在耶路撒冷作王二十五年。他母亲名叫阿苏巴,乃示利希的女儿。
  • 43 约沙法行他父亲亚撒所行的道,不偏离左右,行耶和华眼中看为正的事;只是邱坛还没有废去,百姓仍在那里献祭烧香。
  • 44 约沙法与以色列王和好。
  • 45 约沙法其余的事和他所显出的勇力,并他怎样争战,都写在犹大列王记上。
  • 46 约沙法将他父亲亚撒在世所剩下的娈童都从国中除去了。
  • 47 那时以东没有王,有总督治理。
  • 48 约沙法制造他施船只,要往俄斐去,将金子运来;只是没有去,因为船在以旬·迦别破坏了。
  • 49 亚哈的儿子亚哈谢对约沙法说:“容我的仆人和你的仆人坐船同去吧!”约沙法却不肯。
  • 50 约沙法与列祖同睡。葬在大卫城他列祖的坟地里。他儿子约兰接续他作王。
  • 51 犹大王约沙法十七年,亚哈的儿子亚哈谢在撒玛利亚登基,作以色列王共二年。
  • 52 他行耶和华眼中看为恶的事,效法他的父母,又行尼八的儿子耶罗波安使以色列人陷在罪里的事。
  • 53 他照他父亲一切所行的,侍奉敬拜巴力,惹耶和华以色列 神的怒气。

이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이며, 하나님께서 보응하시는 날이다. 아합아, 아합아, 이 날이 얼마나 갑작스럽게 찾아왔느냐! 너는 전쟁터를 누빌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네 앞에는 무덤이 놓여 있었다! 한 사람이 무심코 쏜 화살이 갑옷 이음새를 꿰뚫었지만, 그것은 우연한 재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친히 쏘신 칼이었다! 네가 쓰러지는 그 순간에야 하나님의 저주가 얼마나 실제적인지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생각해 볼 문제:

  • 하나님께서 언제 사람에게 보응하신다고 생각합니까?

  • 당신은 하나님께 어떤 보응을 가장 받고 싶습니까? 당신의 삶에서 그러한 보응을 받기 위해 어떻게 행해야 합니까?

  •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언제 거짓말을 합니까?

  • 왜 아합과 거짓 선지자들은 거짓말하는 영에게 사로잡혔습니까? 왜 미가야만 참된 예언을 말했습니까?

  •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영적 원칙: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장을 읽고 이 장이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답은 아합이 보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보응의 날이 오면 무엇을 해도 이미 돌이킬 수 없습니다. 미가야가 아합에게 사실을 분명하게 모두 말해 주었다 해도, 아합 자신이 마음속으로 아무리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해도, 다시 상황을 뒤집을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가 자신을 위해 쌓아 온 하나님의 진노가 이미 가득 찼기 때문입니다. 이 장은 《로마서》 2장의 말씀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든지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을 네가 판단하면서도 네가 같은 일을 행하니,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혹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오래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를 네게 쌓아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날에 임할 진노를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영생으로 보응하시고,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보응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로마서》 2:3-8)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진노를 쌓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일을 하나 저질렀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진노가 어느 정도까지 쌓이면 하나님의 보응이 임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보응은 사실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각 사람에게 갚으시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마음속으로 알고 있으며, 하나님도 알고 계십니다. 아합과 거짓 선지자들과 미가야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들 자신도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영적인 결과가 무엇인지 알려 줍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타락한 상태에 있다 해도, 자신의 양심은 자신이 악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모든 일을 경계해야 합니다. 심판의 날이 오면 다시 돌이킬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재능이 많고 아무리 기름부음이 있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거짓말하는 영의 역사

어떤 사람의 생사든 모두 영적인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보좌에 앉으셔서 누가 아합을 꾀어 그가 전사하게 하겠느냐고 물으시는 장면을 볼 때,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의 생사를 결정하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합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한 심판을 우리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사람이 죽은 후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은 영을 지으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전도서》 12:7 참조). 사실 아합이 죽은 후 그의 영은 하나님께로 가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심판하신 다음 지옥에 던지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적인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는 중요한 사람들만 관리하시며 자신은 상관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진노를 쌓습니다. 이것은 실로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아합이 당한 심판도 이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아합에게 임할 때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거짓말하는 영이 그 가운데 참여하여 역사한 것입니다. 이 거짓말하는 영은 거짓 선지자들뿐만 아니라 아합에게도 역사하여 아합의 마음을 매우 완고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심판하실 때에도 그 일은 영적 세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출애굽기》로 돌아가 봅시다. 이집트의 바로가 하나님의 기적을 거듭 보았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정말 몰랐겠습니까? 그는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과 대적했고, 여전히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했습니다. 그 결과 홍해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왜 이렇게 완고할 수 있는지 우리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섬기는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정말 이렇게 완고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만일 이런 사람이 바로 여러분의 가족이라면, 너무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그를 위해 마음과 힘을 다해 섬기십시오. 하루라도 구할 수 있다면 하루를 구하고, 이틀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이틀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에게는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가 회개하고 돌이킨다면 주님께 감사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가 계속해서 멸망의 길을 선택한다면, 여러분도 그를 도울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를 위해 계속 괴로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합의 죽음은 거짓말하는 영이 역사한 결과였습니다. 그렇다면 거짓말하는 영은 어떻게 역사합니까? 사람 안에 있는 두려움을 통해 역사합니다. 여러분이 거짓말하는 영에게 통제받을지 여부는 기본적으로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사람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에게 본래적인 경향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사람은 특정한 환경에 놓이면 두려워하고, 그 결과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러한 본성적인 경향을 이기기로 선택한다면, 두렵고 처벌을 받게 되거나 심지어 생명의 위험을 당한다 해도 진실을 말하기로 선택한다면, 거짓말을 이기게 될 것입니다.

사실 이 사백 명의 거짓 선지자들은 모두 자신들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시드기야도 자신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거짓말했습니까? 그들 앞에 이스라엘의 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논리로 말하면 이것은 “시세를 알고 행동하는 사람이 뛰어난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저분은 아합 왕이야. 왕이 내 생사를 결정할 수 있어. 내가 왕에게 진실을 말하면 왕의 미움을 사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이 거짓 선지자들은 모두 왕에게서 급여를 받았습니다. 왕이 그들을 먹여 살린 이유도 그들이 이런 듣기 좋은 말을 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합은 그들을 믿었습니까? 아합도 물론 그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아합은 왜 그들을 먹여 살렸을까요? 저도 매우 놀랍습니다.

거짓을 분별하는 방법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고, 얻을 것과 잃을 것을 지나치게 염려하는 사람은 이런 상황에 놓이면 “뛰어난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세상의 논리입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데 익숙해지면 매우 위험해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성경》은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눕니다. 한 부류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 부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절대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사람을 두려워한다면 절대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함께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한 부류의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다른 부류의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요한계시록》 21:8). 여기서 첫 번째로 나오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사람이고, 마지막에 나오는 사람이 거짓말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겁이 많으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담대하면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성경》은 이 두 부류의 사람을 매우 분명하게 계시해 줍니다. 아합에 대한 심판의 과정에서 사람들은 단번에 나뉘었습니다. 사백 명의 거짓 선지자와 한 명의 참 선지자로 나뉜 것입니다. 그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을 두려워할 줄만 알았고 하나님을 경외할 줄은 몰랐으며, 매우 교만했습니다. 사실 시드기야가 두 뿔을 만들어 휘둘렀지만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소품일 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이 일을 적용하여 자세히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이 어떤 교회에 갔는데, 그곳에서 “조금 죄를 지어도 괜찮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삽니다”와 같이 사람들이 듣기에 편안한 말만 한다면, 여러분은 분명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심판을 받을 때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예전에 한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님, 반드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난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러자 그는 저와 사이가 틀어졌고, 십일조를 요구하지 않는 교회에 갔습니다. 그곳 목회자는 듣기 좋은 말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얼마 전 그는 위챗으로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직했어요. 집에는 아내와 두 아이도 있어요.” 피해를 본 사람은 누구입니까? 좋은 말을 듣기 좋아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복을 받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복을 받는 핵심은 생명을 세워 주는 말씀을 듣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세워 주는 말씀이라면 귀에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합니다.

《이사야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이사야서》 50:4). 이 말씀이 귀에 거슬리더라도, 여러분의 마음속으로 이 말씀이 여러분의 생명을 세워 주는 말씀임을 알아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누가 여러분에게 진실을 말하는지,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말씀은 매우 단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의 차이는 한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고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데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기 시작하시기를 권면합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해도 순식간에 공허해집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아합을 기쁘게 했지만, 순식간에 아합은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강하게 서서 진실을 말하기를 원한다면, 거짓말하는 영은 여러분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항상 깨어 있으라

다시 아합을 살펴봅시다. 사실 아합은 마음속으로 미가야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에게 피할 방법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에게 왕의 옷을 입히고 자신은 평상복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의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 없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은혜이지 수치가 아닙니다. 만일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고 회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진노를 쌓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2장 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각 사람에게 이루어지리니 선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먼저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영적인 진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합이 죽은 후 그의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이치대로라면 아합이 행한 일과 그의 죽음, 그리고 미가야가 말한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그의 아들이 분명히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아들은 여전히 자기 길을 걸었습니다. 매우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람이란 이렇습니다. 생활의 사소한 일에 빠져들면 이전의 일들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죽은 사람을 보는 순간에는 매우 큰 충격을 받지만,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면 곧 그 충격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이러한 사실을 읽어 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같은 사람에게 영광을 더해 주시고, 아합과 같은 사람에게는 환난과 곤고를 더하십니다. 이것을 깨달았다면 우리는 아합과 그의 아들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강한 사람이 되어 인생의 모든 재난을 대적해야 합니다. 이러한 재난은 사람의 방법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곧 참고 선을 행하며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할 복을 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생으로 보응하시고,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더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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