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엘리야는 멋진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 장에서는 선지자의 연약함을 보게 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아니며, 교회의 목회자도 마찬가지이고, 소그룹의 리더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연약할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연약함에서 어떻게 다시 힘을 얻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볼 질문:
한 그리스도인이 많은 기적을 행했다면, 그것은 그가 영원히 연약해지지 않는다는 뜻일까요? 여러분에게도 믿음이 연약해졌던 때가 있었습니까?
기름 부음을 많이 받은 엘리야는 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을까요?
하나님은 어떻게 엘리야가 다시 힘을 얻도록 하셨을까요? 여러분이 낙심하고 좌절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을 읽을 때에는 끊임없이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이 장에서 무엇을 읽고 있는가? 《성경》의 저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이 장의 주제는 바로 **“다시 힘을 얻은 선지자”**입니다.
선지자의 연약함
모든 사람에게는 연약할 때가 있다
선지자도 다시 힘을 얻어야 합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을 그토록 많이 섬겼지만, 선지자에게도 연약할 때가 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한 사람일 뿐입니다. 교회의 목회자와 소그룹의 리더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연약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연약함 가운데서 어떻게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지, 이것이 바로 이 장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시려는 내용입니다.
엘리야는 방금 놀라운 기적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이 사람을 보내 그에게 한 아주 간단한 말 한마디가 엘리야의 모든 생각과 마음을 즉시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그를 극심한 낙심과 고통스러운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 말은 이러했습니다.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정말 단순한 한마디였습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
사람이 하는 말은 사실 매우 강력합니다. 저는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입을 함부로 놀리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매우 반대합니다. 왜 그럴까요? 말은 사실 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며 성령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여 말하면 사람의 생명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가 사람을 통해 하는 말은 악한 영에서 나온 것이며, 사람의 생명을 무너뜨립니다. 입을 함부로 여는 사람들을 통해 마귀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대화하면 마음이 쉽게 혼란스러워지고, 생명이 무너집니다.
때로는 어떤 형제자매들이 이런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혼란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교회에 와서 한참 기도해야 비로소 해방되고 더 이상 마음이 뒤엉키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힘들게 할 바에는 이런 사람들과 계속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그가 하는 말은 악한 영을 풀어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세벨은 그 말을 한 후 무엇을 하려고 했을까요? 그녀는 자신이 의지하는 어둠의 권세를 향해 필사적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고 많은 주술도 행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어둠의 권세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악한 능력을 풀어놓습니다. 만일 많은 사람이 악한 영을 숭배하고 있다면, 어둠의 권세는 더욱 강해집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 예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일생 동안 어둠의 권세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지 마십시오. 악한 영은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시다”는 이유만으로 여러분을 쉽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승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영과 싸우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 이러한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나는 마귀의 어둠의 권세와 끝까지 싸울 것이다!”
마귀의 거짓말
엘리야가 이세벨의 말을 들은 후 마음속으로 한 생각은 이러했습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열왕기상》 19:10, 14) 여기에 사실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거짓말도 있습니까? 역시 있습니다. 어느 말이 거짓말일까요? “오직 나만 남았다”는 말입니다.
엘리야가 낙심한 이유는 마귀에게서 온 거짓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며, 그는 그 말을 매우 완고하게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두 번 물으셨지만, 그는 두 번 모두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사람을 낙심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머릿속에서 어떤 정보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면, 반복될 때마다 마음이 한 번씩 뒤엉키고 그 혼란의 정도는 점점 더 심해집니다. 심지어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반드시 이 생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어떻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조종할까요? 먼저 우리에게 몇 가지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사실에 근거하여 결론을 내리지만, 그 결론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닙니다. 엘리야가 생각한 것은 이러했습니다. “이제 나 혼자만 남았는데,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나의 하나님, 주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까? 주님은 여전히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까? 주님은 그들이 주의 제사장들을 죽이고 이제 마지막으로 나 하나만 남았으며, 그들이 내 생명까지 빼앗으려 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의심하는 생각이 생겨난 것입니다. 엘리야가 한 이 말을 자세히 읽어 보면, 그가 이미 하나님에 대해 완전히 절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절망했을까요? 이 시대에는 아무런 소망도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엘리야로 하여금 방금 자신이 행한 모든 기적을 잊어버리게 했습니다. 사람의 기억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렇게 큰 기적도 눈 깜짝할 사이에 잊어버립니다.
다시 힘을 얻음
스트레스를 해소함
그러면 하나님은 엘리야의 혼란을 어떻게 해결하셨을까요? 하나님은 먼저 그에게 먹을 것을 조금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흥미로우신 분입니다. 성경에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신명기》 8:3, 《마태복음》 4:4 참조) 그렇다면 이때 엘리야에게 말씀하시면 되지, 왜 먹을 것을 주셨을까요?
하나님의 일은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지혜로 하나님의 일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엘리야가 음식을 먹고 나자 하나님은 그가 운동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마라톤처럼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 사십 주야를 달리게 하셨습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모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입니다. 결코 사람의 논리로 하나님의 일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어떤 일을 해서 자신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형제들은 달리기로 스트레스를 풀고, 어떤 자매들은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풉니다. 사실 이런 것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도하고 싶다면 기도하러 오십시오.
우리는 합리적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에게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습관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앞 장에서 그가 아합의 마차 앞에서 계속 달리지 않았습니까? 성령으로 충만해진 후에는 날아오르듯 달렸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은 기도만이 아닙니다.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달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방법들도 모두 괜찮습니다. 반드시 겉으로 보기에 영적인 방법만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본래 선합니다. 많은 것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
그러나 결국 우리는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엘리야가 속임을 당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엘리야의 첫 번째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엘리야가 자신을 속이고 있던 거짓말을 분별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강한 바람을 일으키시고, 산을 무너뜨리고 바위를 깨뜨리셨으며, 지진과 불을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요? 하나님은 자신의 권능을 나타내고 계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권능을 보게 되면,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이 크게 흔들립니다.
자신의 존귀한 신분을 다시 깨달음
그 후 하나님은 다시 엘리야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는 다시 대답했습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사실 이때 엘리야는 이미 그 거짓말과 속임수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그토록 큰 역사를 보았는데도, 거짓말과 속임수는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직접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예를 들어 “네가 정말 잘했다. 나를 위해 열심을 낸 것이 참으로 잘한 일이다. 내가 나의 모든 선지자를 위해 원수를 갚겠다. 그들이 네 생명을 빼앗지도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질문에 간접적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람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열왕기상》 19:15-18)
이것이 어떻게 엘리야의 질문에 간접적으로 대답한 것일까요? 하나님의 뜻은 사실 이러했습니다. “너는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너의 신분은 저 왕들보다 훨씬 존귀하다. 그들은 모두 네가 기름을 부어 준 후에야 왕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계셨습니다. “너는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것을 모르느냐? 저 왕들은 모두 너에게서 나오며, 네가 기름을 부어 세운 자들이다. 네가 하는 말과 행동이 곧 결정이다. 네가 그에게 기름을 부으면 그는 왕이 된다.” 사람이 혼란과 낙심에 극심하게 빠지면 본래 가지고 있던 자존감과 존귀한 모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다시 힘을 얻는 핵심은 우리의 존귀한 신분과 형상을 다시 깨닫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분이 그저 회사의 직원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이며 왕 같은 제사장들이고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베드로전서》 2:9 참조). 세상의 권세에 따라 우리는 상사를 존중하고 그의 권위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을 통해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곳의 책임자가 될 사람을 결정하십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하나님이 전하고자 하신 뜻을 엘리야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나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 여호와의 제사장이구나. 이스라엘의 왕은 내가 기름을 부어 세우는 사람이구나! 내가 그에게 기름을 부으면 그가 왕이 되는구나.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왕비가 나를 죽이러 온다고 해서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이어서 두 번째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생명을 찾는 사람들이 장차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죽임을 당하는 것은 여러분이 아니라 여러분의 생명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그중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은 엘리사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사는 누구입니까? 엘리야의 제자입니다. 결국 가장 큰 권세를 가진 사람은 엘리야였던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권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큽니다!
거짓말을 분별함
“이 세상에서 여호와께 충성된 사람은 너 하나뿐이다”라는 거짓말을 하나님은 이미 부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열왕기상》 19:18) 이스라엘 사람은 대략 이삼백만 명이었지만, 그중 칠천 명만 남았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사실 다수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셔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께 반역하고 바알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가운데 어떤 형제자매들이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면, 부모님은 “너희 교회는 얼마나 크니? 몇 명이나 모이니?”라고 묻습니다. 이러한 관념은 바뀌어야 합니다.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며, 적다고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분이 온 세상보다 크십니다. 중국 사람들은 큰 것을 매우 좋아하며, 커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이 장을 통해 우리는 정精한 것이 좋은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수 톤의 폐토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폐토는 아무리 많아도 여전히 폐토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몇 킬로그램의 금입니다.
교회를 세울 때에는 반드시 결연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많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하나 되며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교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아무리 커도 소용이 없습니다. 교회는 반드시 하나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은혜를 형제자매들에게 반드시 가져다주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은혜를 받은 것은 교회가 얼마나 크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교회가 거룩하고 하나 되며 영광스러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잡초가 무성한 곳과 같은 교회가 아닙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교회에 오도록 애원했지만, 이제는 여러분이 교회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여러분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펴볼 것입니다. “이 사람이 그 칠천 명 가운데 한 사람일까? 아니면 바알을 숭배하는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일까?” 우리에게 많은 사람이 있어도 교회 전체에 거룩함과 하나 됨과 하나님의 영광이 없다면, 그런 교회를 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실 사람의 수가 핵심은 아닙니다. 기적을 행하고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크게 싸운 사람은 엘리야 한 사람뿐이지 않았습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이세벨의 말도 결정적인 것이 아니며, 아합의 말도 결정적인 것이 아니고, 아람 왕의 말은 더더욱 결정적인 것이 아니다. 결정하는 사람은 바로 너다. 나의 존귀한 선지자인 네가 말한 것이 결정된다. 너는 이 세상에서 나를 대표하여 다스린다. 그리고 너와 같은 사람이 칠천 명이나 있으니,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게다가 너는 엘리사를 만나 자신의 영적 능력을 이어 주게 될 것이다.”
이어서 우리는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은 후, 엘리사가 소를 잡고 소를 부리던 도구를 불태우며 엘리야를 따르기로 결단한 것을 보게 됩니다. 엘리사가 이렇게 결단한 것은 사실 매우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가지를 증명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이미 너를 대신할 선지자를 예비하였다. 너와 같은 사람이 더 있으며, 너 하나뿐인 것이 아니다. 그는 굳게 결단하고 너와 함께 이 길을 갈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길, 이 시대를 섬기는 길을 함께 걸어갈 것이다.”
다시 힘을 얻는 핵심은
우리의 존귀한 신분과 형상을 다시 깨닫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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