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신학 제5강을 이어가겠습니다. 우리는 늘 우리가 무언가를 행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전에 설교한 내용 중에도 다소 오해를 불러일으켰을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것도 잘했고 저것도 잘해서 대단하다’는 식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렇게 받아들이셨다면 큰일입니다. 그것은 제가 전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하나,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가시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번 강의의 제목은 다소 깁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앞서 건너가사 삼키는 불과 같이 원수를 멸하시리로다.” 이것은 저를 참으로 놀라게 하는 일입니다. 어째서 싸울 때마다 승리하는가? 어째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는가? 어째서 백전백승인가?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아직 아주 연약할 때에도 귀신을 굴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매우 의아했습니다. ‘왜 더 큰 귀신을 보내서 우리를 단번에 끝장내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가시며, 삼키는 불과 같이 원수를 멸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전에는 제대로 깨닫지 못해서 마귀보다 1분 더 오래 버텼기 때문에 효과가 있었다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행하시고,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뒤를 따르고 있었을 뿐이며, 하나님께서 원수를 멸하실 때를 이미 정해 두셨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을 믿었던 것이지 마귀보다 1분을 더 버텨서가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을 따라갔더니 마침 승리의 자리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이 논리가 맞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신학이 ‘내가 무언가를 행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행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무언가 한 것이 있습니까? 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바로 왕과 모든 애굽 사람의 장자를 치셨고 심지어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치신 후에야 그들을 놓아주었습니다. 광야에 이르렀을 때에도 그 이스라엘 사람들은 엉망이었지만, 모든 것을 행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도 그 당시 참으로 엉망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엉망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 하나님께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으시며, 반드시 저를 이끌어 승리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우리 하나님을 ‘나를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가, 그리고 승리의 그 순간까지 끝까지 하나님을 따를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일입니다. 우리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이 다 사람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알고 보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 앞서 그들을 위해 싸우셨던 것이지, 그들이 무언가를 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의 논리 체계는 이토록 바뀌기 힘든 것일까요? 애굽에서 나올 때는 꽤 잘 아는 것 같더니 홍해 가에 이르러서는 알지 못하고, 홍해를 건널 때는 분명히 알다가도 물이 없으면 또 알지 못하며, 고난에 부딪히기만 하면 다시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도대체 어떤 머리입니까? 혹이 났거나 구멍이 뚫렸거나, 아니면 똥물이라도 가득 찬 것입니까? 사실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세상에 너무 심하게 오염되어 그렇게 된 것임을 말입니다.
우리가 중국에 있을 때 서너 명씩 모여 장기 두는 것을 구경하곤 했습니다. 장기판에서 가장 둔한 말이 바로 ‘장(將)’입니다. 우리 사람은 늘 그 ‘왕’이나 ‘장’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가장 둔합니다. 모든 수(手)가 자기 장이 잡히지 않도록 보호하는 데 집중되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게 도대체 무슨 장기인가? 장이 맨 앞에 돌격하고, 차보다 세고, 포보다 세고, 마보다 세면 얼마나 좋은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비단 중국 장기뿐만 아니라 서양의 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킹이 제일 무능하여 좌우로 보호받기 바쁩니다. 그것을 보고 나니 우리 하나님도 장기판의 ‘장’처럼 우리가 보호해 드려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끝장입니다. 세상의 논리 체계가 들어와 버린 것입니다.
황제가 친히 군사를 이끌고 친정(親征)한다면 대단히 뛰어난 황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황제가 친정하는 모습은 보기 드뭅니다. 북한에 가든, 중월 국경에 가든, 인도 국경에 가든 전쟁을 치르게 하고, 장수는 뒤에 머뭅니다. 알고 보니 우리 하나님은 장기판의 ‘장’이나 ‘수’가 아니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맨 앞에서 돌격하십니다.
세상에, 이것은 우리 머릿속의 개념을 완전히 뒤엎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앞에 계시니 아무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매번 승리하는 이유가 아닙니까? 매번 승리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보호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논리 체계가 이렇게 뒤바뀌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오전에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해 드릴 때 제가 무엇을 했습니까? 저는 이렇게 멀리서 여러분에게 손도 댈 수 없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니고 여러분이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영계(靈界)에서 보시고 “작은 귀신아, 네가 저 사람 팔에 붙어 있구나, 떠나가라”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온 땅 위에 운행하십니다. 우리가 선포하고 손을 들 때, 하나님의 영이 그곳에서 운행하시며 온몸의 무기력함이 낫고, 허리가 낫고, 요도염이 낫는 것입니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기존 인식은 다 틀렸고, 다 세상에 속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속한 것과 하나님께 속한 것은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맨 앞으로 보내 총알받이로 삼지 않으시며, 하나님 자신도 총알받이가 아니십니다. 원수가 바로 총알받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고 기쁘고 즐겁게 승리의 날을 맞이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앞서 원수를 이미 멸하셨는데, 여러분은 “왜 내 눈에는 안 보이지?”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제가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보지 못하는 일은 아주 많습니다. 여러분의 육안으로는 영계의 일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볼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대단히 뛰어나고 무예가 출중하며 지붕을 넘고 벽을 타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은 그 사람 안에 있는 영 때문입니다. 그 사람에게서 영을 쫓아내면 사람은 무력해집니다. 키가 3미터에 달한다 해도 그저 고깃덩어리일 뿐이며, 5미터라 해도 5미터짜리 고깃덩어리에 불과합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칭화대를 졸업하고 인플루언서가 된 어떤 학생이 인터넷에서 자기 기숙사 룸메이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친구는 가히 천재였습니다. 공부는 전혀 하지 않는데 시험만 보면 늘 수석이었습니다. 남들이 금융 자격증인 CFA 같은 것을 준비할 때도 공부하지 않다가, 시험 보기 이틀 전에 책장을 훌훌 넘겨보고 시험을 쳐서 단번에 합격하니 모두가 감탄했습니다.
사실은 사람 안에 있는 영이 그를 그렇게 대단하게 만든 것입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그는 책장을 뒤적였을 뿐, 흉내만 낸 것입니다. 사람 안의 영이 대단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무공을 연마하여 천하제일이 되고 화산논검의 경지에 이른 것은, 천하제일의 무공을 가진 영이 그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저의 추론이니 여러분은 천천히 묵상해 보십시오. 절대로 이런 것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가인의 후손들은 온갖 분야의 시조(始祖)가 되었습니다. 각종 분야의 시조들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악기를 다루는 자, 노래하는 자, 쇠를 벼리는 자 등 참으로 뛰어났습니다. 각 분야의 시조의 영이 그들에게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겪은 일이 있습니다. 10년 전, 제가 한 자매를 위해 기도할 때 그 속의 존재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매는 원래 음치였는데, 귀신이 드러나자 자기 이름이 ‘샤오칭(小青)’이라고 제게 말했습니다. 제가 “너는 누구냐?” 하니 “나는 샤오칭이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제 앞에서 경극을 부르는데 손가락과 팔을 움직이는 자태가, 비록 저는 할 줄 모르지만 볼 줄은 아는데 딱 봐도 전문가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불러내는 소리가 너무나 듣기 좋아서 기가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그 귀신이 자매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나가라고 쫓아내려 하자, 자기는 나가지 않겠다고, 갈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이트클럽 근처로 가라”고 하니 안 간다고 했습니다. “어디로 가고 싶으냐?”고 물으니 교회로 가고 싶다면서 찬양팀이 있는 곳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교회를 언급했더니 “그 교회는 촌스러워서 싫다, 좀 더 세련된 교회를 골라가야겠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 속에 이런 영들이 들어가면 대단해지는 것입니다. 이제 설명이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것이 우리가 나누려는 주제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대단하고 무예가 뛰어난 그 사람 안에 있는 귀신을 처치해 버리면, 그 사람은 그저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며 처치당하기만을 기다리는 존재가 됩니다. 그 사람이 강했던 이유는 그 사람 안의 영 때문이며, 영계의 역사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아 그 영이 이미 떠났고 그가 더 이상 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여전히 그를 거인으로 여기며 바보같이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소가 힘이 세지 않습니까? 그러나 결국 우리 식탁 위의 스테이크가 되지 않습니까? 소가 당신보다 힘이 세고 당신보다 큽니다. 그러나 소용없습니다. 그저 고깃덩어리일 뿐입니다.
이후에 또 다른 일을 겪었습니다. 사역 초기 교회에 한 사람을 초청했는데, 그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그는 동남아의 도박왕으로 매우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도박을 좋아했고, 그 역시 어릴 때부터 공부를 싫어하여 아버지를 따라 친구들과 도박을 했습니다. 돈이 없을 때는 1전을 걸고 도박을 했고, 돈이 조금 생기면 1모(0.1위안), 더 생기면 1위안을 걸고 도박을 했습니다.
그가 18, 19세쯤 되었을 때 어느 날 갑자기 귀에서 소리가 들리기를 “내가 너로 하여금 도박을 할 때마다 이기게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도박판에 갔습니다. 패를 쥐어 보니 다이아몬드 2, 클로버 3, 스페이드 5, 4라도 나오면 다행인 형편없는 패였습니다. 세상에, 패를 탁 엎어 놓자 그 음성이 “베팅해라! 베팅해라!” 하고 말했습니다. ‘이런 패로 베팅을 하라고?’ 그는 말을 듣고 베팅을 했습니다.
베팅을 하고 나서 패를 뒤집어 보니 에이스(A) 포카드였습니다. 누가 패를 바꾸었는지 알 수 없으나 영계에서 바꾼 것입니다. 카메라로 찍을 수 있겠습니까? 찍히지 않습니다. 영계의 일은 찍을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도박을 하기만 하면 무조건 이겼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모르며 온종일 도박만 했습니다. 영화 <도신> 같은 데서 헬리콥터를 타고 도박하러 가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백전백승하다가 어느 날 그 영이 그를 떠나자, 판판이 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약 2,000만 싱가포르 달러를 벌었었습니다. 그 시절 2,000만 싱가포르 달러면 단독주택이 20~30만 달러였으니 100채는 살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박마다 패하여 300만 달러를 날렸습니다.
카지노에 300만 달러의 빚을 져 싱가포르 파산자 명부에 올랐고 블랙리스트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투신자살을 하려 했습니다. 아래로 뛰어내린 후 그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눈을 떠보니 세 시간이 지나 있었는데, 뛰어내리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 집 발코니에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물었고 저도 물었습니다. “정말 뛰어내렸습니까, 안 뛰어내렸습니까?” 그는 “뛰어내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발코니로 다시 떨어졌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세 시간 뒤에 깨어나 보니 발코니에 있었고, 목사인 그의 형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형을 들어오게 했고, 형의 전도로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싱가포르에 카지노가 세워질 때 그가 나서서 도박 중독자들의 상담과 멘토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 공부를 못하고 싫어했지만, 결국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사가 된 것도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며 사역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눈을 뜨고 보면 육체는 대단한 것이 아니며, 영이 대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앞서 운행하시며 그 사람들 안의 영을 처치하시면, 이전에 천하제일이었던 자도 이제는 꼴찌가 됩니다. 이전에는 최고 부자(富者)였을지라도 이제는 최고 부채자(負者)가 되는 것입니다. 글자는 같아도 하나는 빚이고 하나는 부유함입니다. 그러므로 영계의 역사는 실로 강력합니다.
여호수아가 전쟁터에서 싸울 때, 모세가 손을 들면 여호수아가 이기고 모세가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것이 여호수아의 칼이 뛰어나서였습니까, 아니면 그의 무술이 뛰어나서였습니까? 저는 아말렉 사람 안의 영과 우리 하나님 사이의 싸움이었다고 말씀드립니다.
아말렉 사람 안의 영은 분명 여호수아보다 강했지만, 우리 하나님은 분명 아말렉 사람보다 강하십니다. 그러므로 싸움은 여호수아가 싸운 것이 아니라 사실 우리 하나님께서 싸우신 것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영이, 천군 천사인지 아니면 제 생각에는 우리 하나님 자신이 친히 아말렉을 꺾으셨고, 그러자 그 영들이 힘을 쓰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눈은 어두웠습니다. 그들의 눈은 여러분과 저의 육신의 눈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보고는 “아이고, 거인이다. 이제 다 끝났다” 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을 뜨고 보면 그저 고깃덩어리일 뿐입니다. 배후의 영이 쫓겨나면 키가 3미터든 5미터든 그저 쓸모없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눈을 뜨고 내면의 전쟁 논리 체계를 재구축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행하시며 삼키는 불과 같이 원수를 멸하십니다. 여러분, 영적인 눈을 뜨고 보십시오.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따라붙어서 이 승리의 열매를 취하십시오. 거인만 보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일입니다. 모든 것을 두려워하면서 정작 하나님만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비극입니다.
우울증에 걸리셨습니까? 그것은 우울증이 아니라 귀신입니다! 암에 걸리셨습니까? 귀신입니다! 당뇨병에 걸리셨습니까? 귀신입니다! 눈먼 것은 맹인의 귀신이고, 두통은 두통의 귀신이며, 암은 암의 귀신이고, 요도염은 요도염의 귀신입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대시면 즉시 나았던 이유가 바로 그 영이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날 때부터 걷지 못한 자는 날 때부터 걷지 못하게 하는 영이 붙어 있었기에 다리를 절었던 것입니다. 그 영을 쫓아내면 낫지 않겠습니까? 육신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고난이 보이십니까? 고난의 배후에는 악령이 있습니다. 만약 그것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사악한 일입니다. 사람의 가장 큰 비극은 영계의 승리가 세상의 승리를 주관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눈이 멀고 어리석어 머리에 구멍이 나고 똥물이 가득 차서 모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지 못했습니다.
돌을 들어 모세를 치려 하다니, 도대체 어떤 이스라엘 백성입니까? 모세를 어찌할 수는 없습니다. 돌을 던져도 그 돌이 휘어져 빗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계시니 그는 대단히 강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거인을 보면 무서워하면서 모세를 보면 무서워하지 않고, 악령은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기초를 세워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시며 크고 두려우신 분으로, 우리 앞서 원수를 멸하신다.’ 어떤 어려움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외하면 문제는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문제는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 앞서 행하시며 삼키는 불과 같이 원수를 멸하시고,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시려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들이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엉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아말렉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아말렉보다 절대적으로 강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저는 하나님의 약속을 취할 충분한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우리를 위해 싸우심을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세의 일생의 결론입니다. 제 이야기를 그저 이야기로만 듣지 마시고 기초를 든든히 세우십시오. 그 기초는 바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며, 이 승리는 백 퍼센트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만났다고 두려워하지 마시고, 어려움이 닥쳤다고 물러서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승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싸움을 싸웠고 수많은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귀신이 강했다면 제가 잠자는 사이에 와서 저를 죽였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셨습니다.
본문 말씀
“이스라엘아 들으라 네가 오늘 요단을 건너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니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았으며 크고 많은 백성은 네가 아는 아낙 자손이라 그에 대한 말을 네가 들었나니 이르기를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리요 하였거니와 오늘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망시킬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9:1-5)
기도
하나님, 우리 안에 있는 신앙의 기초를 새롭게 빚어 주옵소서. 우리로 영적인 지혜를 얻게 하사 주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고 계심을 알게 하옵소서. 주께서 우리를 위해 원수를 멸하고 계심을 압니다. 하나님, 우리 안에서 빚으시는 역사를 이루사 우리를 끊임없이 다듬으시고, 우리 몸의 악한 습관과 주의 진노를 일으키는 것들을 제하여 주옵소서. 오직 믿음으로 주의 행사를 보게 하시고, 주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사 주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사 우리 형제자매들이 당시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처럼 일어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 모두가 주를 기쁘시게 하는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배경
신명기는 모세가 죽기 직전, 곧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기록한 책입니다. 기록할 당시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한 후였습니다! 이 40년은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이자 하나님의 진노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신명기를 쓸 때 모세는 영적으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기록했습니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들어가사 네 앞서 원수를 멸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절대로 “목사님, 저는 왜 보지 못할까요?”라고 하지 마십시오. 너무 뒤처져서 보이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자신의 평생의 결론을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신학’으로 정리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온몸의 근육을 키워서도 아니고, 무예를 뛰어나게 연마해서도 아닙니다. 훈련이 필요 없습니까? 필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필요한 훈련은 영적인 기초를 세우는 것입니다.
사실 제 모습을 보십시오. 50킬로 남짓한 몸무게를 저울에 달아보면 도무지 싸울 사람의 체격이 아닙니다. 영계에서 들여다보면 여전히 더럽고 추한 사람인데 어떻게 승리하겠습니까?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우리를 위해 승리하십니다. 우리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 땅의 사람들이 너무 악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결론은 우리에게 큰 소망을 줍니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약속하신 그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은혜를 입은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얻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앞서 행하사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기 때문이지, 여러분이 행한 일과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이 본문 이후에 모세는 말합니다. 이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너를 인도하여 약속의 땅에 들이시고 기업으로 주시는 것은 네 공의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는 본래 목이 곧은 백성이요, 늘 거역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늘 하나님을 진노케 하여 거의 멸망당할 뻔했고, 늘 거역하며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행사를 보지 못하고 영계의 운행도 보지 못하며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한 뜻을 보지 못하고, 오직 원수의 강대함만 보며 하나님의 크심을 알지 못하여 하나님이 자신들을 총알받이로 삼으려 하신다고 여겼습니다.
애굽을 나와 홍해에 이르렀을 때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끌어 내었느냐” 했습니다. 이 말은 참으로 매를 버는 소리였지만, 그들은 매를 견딜 힘조차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끼손가락 하나만 뻗어 치셔도 사라질 만큼 나약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으셨고 크나큰 인내가 있으셨습니다.
홍해를 건너 마라에 이르러 또 불평하고, 가는 곳마다 불평하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때로는 이것이 제게도 교훈이 됩니다. ‘하나님, 정말 주님을 본받아야겠습니다. 주님을 본받지 않으면 이 답답한 사람들을 보며 참아낼 수가 없습니다.’
모세가 신명기를 기록한 것은 그들 내면의 생각을 바로잡기 위함이었습니다. 광야 40년을 걸으며 단련되었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40년이 지났다고 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여전히 목이 곧은 백성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전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 모든 일들을 다 들추어낸 것입니다. 시간이 되시면 신명기 9장 6절부터 29절까지를 다시 읽어 보십시오. 목이 곧고,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켜 멸망당할 뻔했던 일들입니다. 다베라, 맛사, 기브롯 핫다아와, 가데스 바네아 등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진노만 일으켰습니다.
사람은 평생 기억해야 합니다. 귀신이 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강하십니다. 귀신의 노여움을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산 것입니다. ‘내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정병 교회에 있다’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으셔서 우리를 멸하지 않으셨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려 하실 때 모세는 사십 주야를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시기를 간구했고, 이들이 완악하고 거역하는 백성이지만 주의 이름을 위하여 광야에서 멸하지 마시기를 구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가 목이 곧은 백성이며, 늘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고 늘 완악하게 거역하여 멸망당해 마땅한 무리임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그 안에서 중보하는 모세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자기 공로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너희가 바로 이런 자들이다”라고 알려주어 그들이 변화되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모습을 살아내며, 모세처럼 영적으로 통달한 삶을 살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너희 앞서 너희를 위해 원수를 멸하시느니라
전쟁할 때 총알에 눈이 있든 없든, 사실 하나님께서는 영계에서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무언가를 잘해서라고 생각합니까? 사실 하나님의 본성이 그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하고 무능하며 그 고난들을 이겨낼 수 없고 아낙 자손을 감당할 수 없음을 아시기에, 친히 앞서 가시는 것입니다.
고난이 나보다 커 보일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하나님보다 클 수는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 자신이 너희 앞서 건너가사 그들을 멸하실 것입니다. 저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내가 강하지 않은데 어떻게 승리했지?’ 하고 의아해하고 신기해했습니다. ‘어째서 귀신이 우리를 무서워했을까?’ 알고 보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짓누르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뿐입니다. 제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제 안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세를 본받은 모습이 많다는 것뿐입니다. 제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 하나님께서 제 앞서 가시며 삼키는 불과 같이 원수를 멸하심을 믿습니다. 결국 귀신이 제게 부딪히자마자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 앞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앞에 계십니까? 이것은 참으로 물어보아야 할 일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너무 멀리 앞서 계셔서 보이지도 않고, 여러분은 낙오자가 되어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앞서 건너가 원수를 멸하시니, 믿고 바짝 따라붙으십시오.
어떤 책이나 교회들에서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목사님, 요즘 사역이 너무 지쳐서 좀 물러나 쉬고 싶습니다.” 그래서 수련회(Retreat)를 ‘물러나 쉬는 모임’처럼 여깁니다. 나중에 성경을 찾아보니 물러나 쉰 사람들은 영영 쉬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러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뒤로 물러가 멸망에 빠지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본대가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이 맨 앞에 계시는데 본대는 나아가고 뒤에서 두세 명이 쉬고 있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틀림없이 귀신에게 잡혀갈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물러나 쉰다’는 말을 믿지 마십시오. 저는 쉬겠다고 물러난 사람들이 왜 다 망가지는지 의아했는데, 성경에 ‘뒤로 물러가 침륜(침륜에 빠짐)’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멸망은 장난이 아니며, 귀신에게 잡혀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러서지 말고 피곤한 무릎과 연약한 몸을 다시 일으켜 세워 강건해져야 합니다. 쉬면 회복될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죽은 사람들은 다 오랫동안 누워 쉬다가 죽었습니다. 따라붙어야 피곤하지 않으며, 피곤해도 상관없습니다.
때로는 저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여러분이 이 이치를 깨닫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가만히 머물러 있을수록 망가지고 결국 침륜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말을 너무 강하게 하면 연약한 마음이 더 무너질까 조심스럽습니다. 기초가 세워졌습니까? 기초는 세워졌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 앞서 여러분을 위해 원수를 멸하십니다.
사람이 왜 연약해지고 왜 힘이 없습니까? 귀신 때문입니다. 귀신이 여러분을 죽이려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강하게 말하면 여러분은 제게 선악을 분별할 것이고, 약하게 말하면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 저도 스스로를 돌아보며, 부목사님처럼 정서적인 위로의 말을 해 주어야 하나 반성하기도 합니다.
너희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 땅 주민들의 악함 때문이니라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에게 주셨던 땅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을 멸하셨을까요? 그들이 악하고 패역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기에 하나님이 그들을 멸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들이신 것입니다.
모세 때부터 지금까지 3,50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도 거의 멸하실 뻔했고 그 땅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기도 하셨습니다. 우리 중 많은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전도해서 믿은 것이 아니라 다른 교회에서 옮겨온 분들인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곳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너무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늘 스스로를 일깨워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 부족하고 여전히 엉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으셔서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자신이 꽤 괜찮다고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며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도 ‘우리가 이렇게 괜찮은데 왜 하나님이 우리를 광야에서 멸하셨을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괜찮다고 여긴 것이 하나님의 큰 진노를 샀다는 사실을 죽을 때까지 몰랐던 것입니다. 자기만의 기준과 논리를 고집하는 것은 참으로 가증한 일이며, 극도로 자고(自高)하여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도들에게 지속적인 위기감을 주지 않는다면 대단히 위험합니다. 저는 성도 여러분 모두에게 위기감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 위기감이 우리를 일깨워 전심으로 달려가게 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엉망이기 때문이며, 그 땅 주민들의 악함 때문입니다.
다른 교회에서 우리 교회로 사람들이 온다고 해서 “우리는 대단하다,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정병 교회다”라며 우쭐대지 마십시오. 우리는 엉망이고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 형제자매들로 하여금 힘써 푯대를 향해 달려가게 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위기감이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없어 보입니다. 온종일 흐리멍덩하고 해이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제 마음은 늘 아픕니다. 설교 원고를 준비하면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기억하옵소서. 이토록 엉망인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위기감을 주사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해이해지지 않으며 세월을 아끼게 하옵소서.’
자신이 거역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백성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 하고,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직분을 넘겨주려 할 때의 그 애끓는 심정을 아십니까? 설교 원고를 준비하며 저 역시 그 마음을 느꼈습니다. 모세는 또다시 기록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백성이요, 목이 곧은 백성이다. 하나님이 너희를 멸하려 하실 때 내가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어 간구했기에 멸망당하지 않은 것이다!”
제가 종종 말하듯이, 어떤 사람들은 집안에서만 큰소리치고 문지방을 넘지 못하며 안방에서만 왕 노릇을 합니다. 밖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집안에서는 기세가 등등하고, 제게 대드는 데는 용감하면서 귀신 앞에서는 힘을 못 씁니다. 모세를 돌로 쳐 죽이려 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는 대단하면서, 정작 거인 앞에서는 기가 꺾입니다.
제가 왜 눈물을 흘렸는지 이해하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제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며, 저 역시 자격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자신을 돌로 쳐 죽이려는 백성을 마주하고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려 하실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중보했습니다. 저는 “하나님, 저는 감당할 수 없지만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백성의 모습입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 모세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 사람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 담대히 선포하기를 원합니다. “너희는 스스로가 패역하고 완악하며 목이 곧아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며 멸망당해 마땅한 백성임을 알라!” 하나님께서 앞서 행하심을 알지 못하기에, 여러분은 그저 따라붙기만 하면 하나님의 승리를 취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중보했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중보했음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멸하려 하심을 보고 여호와 앞에 사십 주야를 엎드렸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며 울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가운데 모세와 같은 자들을 많이 일으켜 주옵소서. 하루가 아니라 사십 주야를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부르짖는 자, 평생을 하나님께 바친 자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이 시대는 마음이 넓고 따지지 않는 이런 사람을 너무나 필요로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돌로 쳐 죽이려 하는데도 그들을 위해 간구하고, 사람들이 대적하는데도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겸손했습니다. 모세가 자기를 자랑하기 위해 썼겠습니까? 아닙니다. 모세가 이 말을 기록한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행하였으니 너희도 나를 본받으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하나님, 그들을 멸하지 마옵소서. 그들은 주의 큰 능력으로 속량하시고 권능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기업입니다.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기억하사 이 백성의 완악함과 악과 죄를 보지 마옵소서. 주께서 인도하여 내신 그 땅의 사람들이 ‘여호와가 그들을 광야에서 죽이려고 인도해 냈다’ 할까 두렵습니다. 그들은 주의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이요 주의 기업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비열한 백성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모세가 되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더 넓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세 역시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며 그 비열한 백성들과 함께 40년을 동행했으나 아무런 원망도 없었습니다.
모세는 그들의 행태를 직접 보았을 때 손에 든 두 돌판을 깨뜨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도전하고 계십니다. 아주 훌륭한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엉망인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본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비전과 사명이 출발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약속을 굳게 세우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내가 네 자손을 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리라”고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 중에 정작 그 조상들을 닮은 자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훗날 그들은 예수님마저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악을 기억하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우리를 통해 굳게 세우시기를 원합니다.
스스로가 완악하고 비열한 자임을 알고 회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행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매번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습니까? 매번의 승리 중에 하나님께서 앞서 싸우시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까? 우리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일찍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완악하고 패역한 자손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비록 완악하고 패역한 자손이라 할지라도 지금 하나님의 약속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속만 취하고 변화되지 않는다면 결국 패망할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얼마나 많이 취했고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많이 경험했는데, 여전히 그 완악하고 거역하는 백성으로 남아 있겠습니까? 여전히 목이 곧은 자로 살겠습니까?
결론
기초를 다시 든든히 다지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우리를 위해 싸우십니다. 피곤한 다리와 연약한 팔을 다시 강건하게 하십시오. 이 기초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우리를 위해 싸우십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다면 승리하지 못할 싸움이 없으며, 승리는 백 퍼센트 확실합니다.
무너뜨려야 할 것은 우리 안의 무기력하고 나약한 마음입니다. 고난을 보면 쉽게 물러서며, 하나님께서 앞서 승리를 예비하셨음을 깨닫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눈을 들어 거인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십시오. 거인을 보아도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셨음을 보십시오. 아멘.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