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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누가복음 3장 - 주의 길을 준비하고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2020-10-14 44,617 路加福音 信心 救恩 智慧 荣耀 悔改 施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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路加福音03章-施洗约翰传道
  • 1 凯撒提庇留在位第十五年,本丢·彼拉多作犹太巡抚,希律作加利利分封的王,他兄弟腓力作以土利亚和特拉可尼地方分封的王,吕撒聂作亚比利尼分封的王,
  • 2 亚那和该亚法作大祭司。那时,撒迦利亚的儿子约翰在旷野里, 神的话临到他。
  • 3 他就来到约旦河一带地方,宣讲悔改的洗礼,使罪得赦。
  • 4 正如先知以赛亚书上所记的话,说:“在旷野有人声喊着说:‘预备主的道,修直他的路!
  • 5 一切山洼都要填满;大小山冈都要削平!弯弯曲曲的地方要改为正直;高高低低的道路要改为平坦!
  • 6 凡有血气的,都要见 神的救恩!’”
  • 7 约翰对那出来要受他洗的众人说:“毒蛇的种类!谁指示你们逃避将来的忿怒呢?
  • 8 你们要结出果子来,与悔改的心相称。不要自己心里说:‘有亚伯拉罕为我们的祖宗。’我告诉你们, 神能从这些石头中,给亚伯拉罕兴起子孙来。
  • 9 现在斧子已经放在树根上,凡不结好果子的树就砍下来,丢在火里。”
  • 10 众人问他说:“这样,我们当做什么呢?”
  • 11 约翰回答说:“有两件衣裳的,就分给那没有的;有食物的,也当这样行。”
  • 12 又有税吏来要受洗,问他说:“夫子,我们当做什么呢?”
  • 13 约翰说:“除了例定的数目,不要多取。”
  • 14 又有兵丁问他说:“我们当做什么呢?”约翰说:“不要以强暴待人,也不要讹诈人,自己有钱粮就当知足。”
  • 15 百姓指望基督来的时候,人都心里猜疑,或者约翰是基督。
  • 16 约翰说:“我是用水给你们施洗,但有一位能力比我更大的要来,我就是给他解鞋带也不配。他要用圣灵与火给你们施洗。
  • 17 他手里拿着簸箕,要扬净他的场,把麦子收在仓里,把糠用不灭的火烧尽了。”
  • 18 约翰又用许多别的话劝百姓,向他们传福音。
  • 19 只是分封的王希律,因他兄弟之妻希罗底的缘故,并因他所行的一切恶事,受了约翰的责备;
  • 20 又另外添了一件,就是把约翰收在监里。
  • 21 众百姓都受了洗,耶稣也受了洗。正祷告的时候,天就开了,
  • 22 圣灵降临在他身上,形状仿佛鸽子;又有声音从天上来,说:“你是我的爱子,我喜悦你。”
  • 23 耶稣开头传道,年纪约有三十岁。依人看来,他是约瑟的儿子;约瑟是希里的儿子;
  • 24 希里是玛塔的儿子;玛塔是利未的儿子;利未是麦基的儿子;麦基是雅拿的儿子;雅拿是约瑟的儿子;
  • 25 约瑟是玛他提亚的儿子;玛他提亚是亚摩斯的儿子;亚摩斯是拿鸿的儿子;拿鸿是以斯利的儿子;以斯利是拿该的儿子;
  • 26 拿该是玛押的儿子;玛押是玛他提亚的儿子;玛他提亚是西美的儿子;西美是约瑟的儿子;约瑟是犹大的儿子;犹大是约亚拿的儿子;
  • 27 约亚拿是利撒的儿子;利撒是所罗巴伯的儿子;所罗巴伯是撒拉铁的儿子;撒拉铁是尼利的儿子;尼利是麦基的儿子;
  • 28 麦基是亚底的儿子;亚底是哥桑的儿子;哥桑是以摩当的儿子;以摩当是珥的儿子;珥是约细的儿子;
  • 29 约细是以利以谢的儿子;以利以谢是约令的儿子;约令是玛塔的儿子;玛塔是利未的儿子;
  • 30 利未是西缅的儿子;西缅是犹大的儿子;犹大是约瑟的儿子;约瑟是约南的儿子;约南是以利亚敬的儿子;
  • 31 以利亚敬是米利亚的儿子;米利亚是买南的儿子;买南是玛达他的儿子;玛达他是拿单的儿子;拿单是大卫的儿子;
  • 32 大卫是耶西的儿子;耶西是俄备得的儿子;俄备得是波阿斯的儿子;波阿斯是撒门的儿子;撒门是拿顺的儿子;
  • 33 拿顺是亚米拿达的儿子;亚米拿达是亚兰的儿子;亚兰是希斯仑的儿子;希斯仑是法勒斯的儿子;法勒斯是犹大的儿子;
  • 34 犹大是雅各的儿子;雅各是以撒的儿子;以撒是亚伯拉罕的儿子;亚伯拉罕是他拉的儿子;他拉是拿鹤的儿子;
  • 35 拿鹤是西鹿的儿子;西鹿是拉吴的儿子;拉吴是法勒的儿子;法勒是希伯的儿子;希伯是沙拉的儿子;
  • 36 沙拉是该南的儿子;该南是亚法撒的儿子;亚法撒是闪的儿子;闪是挪亚的儿子;挪亚是拉麦的儿子;
  • 37 拉麦是玛土撒拉的儿子;玛土撒拉是以诺的儿子;以诺是雅列的儿子;雅列是玛勒列的儿子;玛勒列是该南的儿子;该南是以挪士的儿子;
  • 38 以挪士是塞特的儿子;塞特是亚当的儿子;亚当是 神的儿子。

서론

성경공부를 할 때 우리는 성경을 다 읽고 나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자주 강조합니다. 다 읽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면, 성경을 읽는 방법이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는 것이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읽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각 장을 공부할 때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신 뜻은 무엇입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자신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것은 좋은 습관입니다. 성경은 사물의 발전에 내재된 법칙을 고도로 요약한 것이고, 논(論)은 내재된 법칙을 적용할 때의 경험과 총결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논하는 것입니다.

제3장의 주제는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의아해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필요로 하셔서 자신을 위해 길을 준비하게 하십니까?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주권을 특별히 존중하는데, 하나님께서 스스로 길을 준비하실 수 없습니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가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한 가지를 나타냅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없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의 일을 이루시지만, 우리가 이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첫 번째 문이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기록된 말씀과 같으니 이르되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 하였느니라(《누가복음》 3:4-6)

이 장의 전반부에는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께 세례를 베푼 일이 기록되어 있고, 후반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하는 것은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인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세례 요한은 회개의 문을 열었고, 그가 선포한 것은 모두 회개의 세례였습니다. 이후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에도 회개를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회개가 정말 옳은 것입니까? 여러분은 첫 번째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첫 번째 문에도 들어가지 못했는데 뒤에 있는 두 번째 문을 어떻게 통과하겠습니까? 벽을 뚫고 지나갈 능력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육체를 가진 사람이므로, 육체를 가진 사람은 누구도 벽을 뚫고 지나갈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땅속으로 들어가서 이쪽으로 들어가 캐나다로 나올 수 있어.” 이런 사람들도 결국에는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고, 비행기를 타고 그 나라에 가야 합니다.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려면 첫 번째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곧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해야 합니다. 회개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필요로 하셔서 하나님을 위해 길을 준비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쪽에 계시고 우리가 이쪽에 있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시게 할 수 있습니까? 또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함께 걸을 수 있습니까? 바로 첫 번째 문인 회개를 통해서입니다.

회개는 가장 우선적인 조건입니다. 사람이 회개하지 않고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세례 요한은 회개의 길, 곧 주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도록 길을 준비하는 길을 전했습니다.

요한이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누가복음》 3:8-9)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은 자손이라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길을 걸었는데 여러분이 걷는 길은 아브라함과 정반대되는 길이라면 큰일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길이 아닌 길을 걸으면서 회개조차 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돌이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람은 왜 회개해야 합니까? 길을 잘못 걸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제가 기도를 인도했는데, 병의 증상이 한 무더기였습니다. 나중에 모두 기도받고 나았지만, 그래도 여러분은 회개해야 합니다. 길을 잘못 걸었기 때문에 병이 난 것이니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겠습니까?

우리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 불에 던져집니다. 사람이 회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면 결국 모두 찍혀 불에 던져집니다.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주님의 길을 평탄하게 하지 않으며, 자신은 꽤 괜찮다고 생각하고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는 사람은 찍혀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이 말이 여러 번 반복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오실 그리스도입니까?” 요한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자신보다 능력이 더 크신 분이 오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요한은 능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믿도록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했을 것입니다. 다만 성경에는 세례 요한이 행한 일은 기록되어 있지 않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이 말하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드시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누가복음》 3:16-17)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보배로운 사람에게 회개는 첫 번째 문입니다. 회개한 사람과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분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후회만 하고 돌이키지 않는 것은 회개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길을 잘못 걸었고 죄를 충분히 겪었다는 것을 후회하며, 오늘 새로운 길을 걷기로 결단합니다. 회개하는 순간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뉩니다. 회개하는 사람과 회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참으로 회개한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보배이다

**요한이 말하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드시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누가복음》3:16-17) **

이 성경 말씀은 매우 잔혹하게 들리지만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알곡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를 버리기를 원하시므로, 우리는 반드시 알곡이 되고 하나님의 눈에 보배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경건한 바리새인이다. 방금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다. 나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다……”라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런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설령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친형제라 해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가 보장할 수 있는데, 그것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회개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바로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하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일을 분명히 깨닫기

사람은 돈을 벌고, 이익을 챙기고, 다른 사람을 폭력적으로 대하고, 사람을 속이는 등 온갖 수단을 만들어 내기를 좋아합니다. 사람을 속이는 수법들을 모아 놓으면 백과사전 한 권을 쓸 수 있을 정도입니다. 사람이 세상의 득실을 위해, 집을 사고 돈을 모으고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사람은 왜 회개해야 합니까? 사람이 세상에서 많은 죄를 겪으며 너무 고생한다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다가 죽는 것을 보면 마음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들고, 그러면 언젠가 자신도 그들처럼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의 일생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일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부모님이 싱가포르에 오셨을 때가 바로 제 나이 정도였습니다. 어느덧 저도 그분들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시간은 매우 빠르게 지나갑니다. 어느덧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여 년이 되었고, 제가 만일 10여 년을 더 산다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가 됩니다. 10여 년도 길지 않습니다. 대략 3천 일에서 5천 일 정도입니다. 사람의 일생은 매우 짧습니다. 지나온 일을 돌아보면 지난 3040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때는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지만, 뒤돌아보면 3050년이 이미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습니다!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갑니다!

회개는 일을 분명히 깨닫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무엇입니까?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누어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정한 세금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누가복음》 3:10-14)

세례 요한의 가르침은 매우 실제적이고 현실에 밀착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왜 다른 사람을 속여 빼앗습니까?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왜 다른 사람을 폭력적으로 대합니까?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세금을 걷는 사람은 왜 세금을 더 많이 거둡니까? 자기 것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옷 두 벌을 가진 사람은 옷이 없는 사람을 보면서도 옷 한 벌을 꺼내 다른 사람에게 주려 하지 않고, 자신이 입으려고 간직합니다.

먹을 것이 있는 사람은 굶주린 사람을 보면서도 자신의 음식을 나누어 주려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나면 자신이 먹을 것이 없어질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하는 것은 모두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면 살수록 문제는 더 많아지고 더 심각해집니다. 사람의 근본이 살아가는 데 있기 때문에 많은 죄를 겪게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여러분과 저는 모두 죽게 됩니다. 그러니 옷을 자신이 입으려고 간직하고, 늘 살아가기 위해 준비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어머니께서 쓰신 돈의 대부분은 제가 드린 돈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연금으로는 정말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머니께 적지 않은 돈을 드렸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제 여동생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고기는 물을 돕고, 물은 물고기를 돕는다.” 어머니는 여동생이 자신을 도와주기를 기대하셨지만, 결국에는 기대한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이런 기대에 살아가는 일을 맡기면, 결국 그 근본부터 잘못되게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고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원래 힘든데, 여러 방면의 일을 걱정하면 더욱 힘들게 살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회개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기 시작하라고 가르칩니다. 자기 자신을 의지해서는 의지할 수 없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계획해 놓아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날 어머니께서 그렇게 많은 일을 계획하셨지만 유용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어머니에게는 이렇게 효도하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과거에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았습니까? 살아가는 것을 근본으로 삼지 않았습니까? 이것들이 언젠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기쁘게 한 번 살아가며 우리 하나님을 잘 신뢰합시다.

나는 옷 두 벌과 음식과 돈을 의지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공급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새도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먹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눈에 얼마나 존귀하겠습니까! 우리는 흔히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먹여 살리십니다.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하여, 육체를 가진 사람들, 벽을 뚫고 지나갈 수 없는 사람들, 육신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합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기록된 말씀과 같으니 이르되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 하였느니라(《누가복음》 3:4-6)

사람은 평생 울퉁불퉁하고 패인 일을 하기를 좋아하며, 그 안에는 굽고 비뚤어진 것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거의 매일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여동생에게 말한 “물고기는 물을 돕고 물은 물고기를 돕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굽고 비뚤어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신뢰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평생 이리저리 계획하지만, 모든 것이 헛됩니다. 사람이 평생 걷는 길은 불안정하고 요동하며 거의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뒤틀린 생각과 뜻을 다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한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회개는 마음속에서 우리 안의 굽고 비뚤어진 것을 없애는 것이며, 우리 안을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바르고 공의로운 말씀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우리 안의 굽고 비뚤어진 것들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甄嬛传》 같은 드라마나 궁중극에 나오는 서로 시기하고 다투며 이리저리 계산하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에는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별로 큰 소용이 없습니다.

중국 역사에 나오는 여후, 서태후, 무측천도 이 세상에서 한때 세상을 호령했지만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사람이 멀리 보지 못하고 오래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살아가는 일이 매우 현실적이라고 여기지만, 결국 모든 것이 헛된 것이 되어 버립니다. 사람이 주님께 쓰임받지 못한다면 쓸모없는 사람이며, 불에 던져 태워지는 쓰레기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그릇이 되기를 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와 분량을 얻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마음과 함께 성장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결국 역시 쓸모없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인생 최대의 비극은 모든 소망을 이 세상에 두고 그것을 애써 추구하는 것입니다. 계속 추구하고 또 추구하지만 마음은 괴롭습니다! 어제의 최고 부자가 오늘은 빚더미에 앉은 사람이 됩니다. 사람이 평생 이런 헛된 것을 추구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사실 정말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방식으로 키로 타작마당을 깨끗하게 하시고, 알곡을 곳간에 들이며, 쭉정이를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나누어 세우십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은 아브라함과 함께 걷게 하시고, 이삭과 같은 사람은 이삭과 함께 걷게 하시며, 야곱과 요셉과 같은 사람은 야곱과 요셉과 함께 걷게 하십니다. 그들의 결말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결말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에서와 같아서 에서의 길을 걷고, 결국 저주받은 본보기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것을 매우 진지하게 선택하고 저것을 매우 진지하게 선택하지만, 살아가는 일을 정말 진지하게 분명히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는 것만 못합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매우 깊이 느낍니다. 눈앞에서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을 보고,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날 때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당신은 치유와 해방을 아주 잘하지 않습니까?” 제가 치유와 해방을 아주 잘하기는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사람의 죽을 때가 오는 것입니다. 사람의 죽을 때가 오면 여러분도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저도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이 사람은 죽을 때가 되었다”고 계시하시면 저는 더 이상 기도하지 않고, 그를 위로하여 삶과 죽음을 빨리 꿰뚫어 보게 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생명과 죽음이라는 일은 이렇게 무력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는 날이 길지 않다는 것을 모르고 세상의 그 작은 일들을 위해 계속 계획한다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프고 어리석게 느껴집니다. 어떤 사람은 의문을 가집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서도 왜 당신이 매일 분주하게, 이렇게 충실하고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봅니까? 왜 그렇습니까?” 바로 제가 꿰뚫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하는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완성합니다. 힘들지 않습니까? 힘듭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도 살고 저렇게 살아도 사는 것이니, 저는 잘, 그리고 매우 진지하게 살아갑니다. 사실 이것도 회개의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나를 지배할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나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제게 “돈이 당신을 지배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돈은 나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집이 당신을 지배할 수 있습니까?” 집도 나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사업이 당신을 지배할 수 있습니까?” 사업도 나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람이 겪는 작은 일들을 모두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진지하게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회개가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하는 첫 번째 문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회개의 열매를 맺기

성경에서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도 회개했어요”라고 말하지만, 회개는 단지 첫 번째 문일 뿐입니다. 아직 많은 문이 있습니다. 처음 문은 회개이고, 두 번째 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과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세 번째 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네 번째 문은 성령과 불의 세례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 밖에도 많은 문이 있습니다. 회개는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모든 진리가 하나의 문이라면 큰일입니다. 문이 정말 많기 때문입니다. 한 층 한 층 이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톈안먼을 본 적이 있습니까? 톈안먼은 황성의 정문이고, 그 밖에도 단문, 오문 등 정말 많은 문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톈안먼을 자주 그렸지만 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누군가 톈안먼 앞에서 사진을 찍은 것을 보면 정말 부러워했습니다! 나중에 드디어 베이징에 가서 톈안먼으로 들어가 한 바퀴 돌았는데, 두 다리가 한 바퀴 줄어든 것 같았습니다. 자금성에서 걸어 나왔는데 방이 9천 개가 넘었습니다!

여러분이 모든 문을 다 지나가 보십시오! 9천 개가 넘는 문이라니, 너무 무섭습니다. 다시는 돌아다니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에 다시 가면 앞문에서 뒷문까지 곧장 통과할 것입니다. 뒷문은 경산공원입니다. 경산공원 밖에는 오래된 목매달이 나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숭정제가 목을 매어 자살한 나무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생도 대략 이와 같습니다. 이 세상을 한 번 지나고 나면 뒤돌아보아도 여전히 구름과 안개 속에 있어 분명히 보지 못합니다. 구름과 안개 속에서 분명히 보지 못한 채 조금 고생하고 고난을 겪으면 깨닫게 됩니다. 강직성 척추염에 걸린 어떤 사람들은 계속 아파하다가 나으면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갑니다. 상처가 아물면 아픔을 잊어버리는 것처럼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첫 번째 문도 통과하지 못한다면 아예 그만두십시오. 이 길을 계속 걸을 수도 없는데, 하물며 성령과 불의 세례를 받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책임이지 세례 요한의 책임이 아닙니다. 우리 각 사람이 준비해야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에게 임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육체가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구원을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반드시 사람의 일생에서 생명과 죽음에 관한 일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꿰뚫어 보면 됩니다.

꿰뚫어 보고 회개의 열매를 맺는다면, 여러분이 4천 년 전에 살았더라도 그 시대의 아브라함이 될 것입니다. 3천 년 전에 살았다면 그 시대의 다윗이 될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살았다면 그 시대의 세례 요한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중에 우리는 성령께서 예수님 위에 임하시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는 것을 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입니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인물들을 본받기

오늘 우리는 회개의 문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여 계속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누가복음》 3장 23절부터 38절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기록한 부분입니다. 저자 누가는 예수님이 요셉의 아들이고 요셉은 헬리의 아들이라는 데서 시작하여 계속 거슬러 올라가 아담까지 기록했습니다. 그 가운데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 등 우리가 아는 사람들도 있고, 모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구약 성경 전체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에게 임하게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아브라함까지 2천 년이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2천 년이며,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우리까지 2천 년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고고학자들은 가장 오래된 인류가 우리로부터 몇 억 년, 혹은 몇 백만 년 전의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사실 이런 일은 누구도 분명히 말할 수 없고, 고고학에도 많은 가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구약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육신의 관점에서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곧 마리아의 남편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한 사람들입니다. 셋은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노아의 시대에는 노아의 가족 여덟 명만 남았고 나머지 사람들은 홍수에 휩쓸려 갔습니다.

오늘날 이 세대의 사람들은 모두 노아의 후손입니다. 노아에서 다시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본받고자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나오는 우리가 아는 사람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구하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육체를 가진 존재이며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구한 후에는 자신 안에 있는 굽은 생각과 뜻, 높고 낮으며 뒤틀린 길을 제거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평안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칭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설령 헤롯 왕이 되거나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되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들도 그저 육체를 가진 사람들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사람들이 치열한 분쟁 가운데서 세상의 이익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을 봅니다. 중국 우선이든, 미국·독일·러시아 우선이든 모두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사람이 헛된 가운데서 이런 이익을 얻기 위해 다투는 것은 꿰뚫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꿰뚫어 보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어쩌면 첫 번째 문에도 들어가지 못한 것일 수 있습니다.

이 문을 통과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합니까? 회개하고, 살아가는 일을 분명히 깨닫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다윗 같은 사람들을 본받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 갔지만 믿음 안에서 여전히 소망을 품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믿음 안에서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이집트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세상의 재물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사람과 세상의 일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있는데 옷이 부족하겠습니까? 만일 옷 두 벌 중 한 벌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해 주실 것입니다. 한 가난한 할머니가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었지만, 다음 날에도 하나님께서는 똑같이 그녀를 공급하셨습니다. 그녀는 60대에서 70대가 되고, 다시 80대가 될 때까지 매일 헌금으로 살아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안다면 우리는 정말 회개할 것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하며, 우리의 생명 가운데 오셔서 주님과 왕으로 다스려 주시도록 맞이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을 열고 주 예수님을 여러분의 마음에 초대하여 주님으로 모시고 여러분의 생명을 다스리시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평생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것이 하나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우리에게 임하게 하는 것, 이것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세상의 일을 위해 계획하지 말고, 주님께서 우리 생명 안에 들어오시도록 계획합시다.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하며, 우리 생명 가운데 있는 굽고 비뚤어진 것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과 뜻을 깨끗이 정결하게 하여 의롭고 바르며 은혜와 긍휼이 충만한 사람이 되어 평생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아갑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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