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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사도행전 3장 - 표적과 기사가 따르다

2023-06-07 37,182 使徒行传 使徒行传第三章 使徒行传03章 信心 救恩 效法神 圣灵充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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使徒行传03章-圣殿门口的瘸腿者得医治
  • 1 申初祷告的时候,彼得、约翰上圣殿去。
  • 2 有一个人,生来是瘸腿的,天天被人抬来,放在殿的一个门口(那门名叫美门),要求进殿的人周济。
  • 3 他看见彼得、约翰将要进殿,就求他们周济。
  • 4 彼得、约翰定睛看他;彼得说:“你看我们!”
  • 5 那人就留意看他们,指望得着什么。
  • 6 彼得说:“金银我都没有,只把我所有的给你:我奉拿撒勒人耶稣基督的名,叫你起来行走!”
  • 7 于是拉着他的右手,扶他起来;他的脚和踝子骨立刻健壮了,
  • 8 就跳起来,站着,又行走,同他们进了殿,走着,跳着,赞美 神。
  • 9 百姓都看见他行走,赞美 神;
  • 10 认得他是那素常坐在殿的美门口求周济的,就因他所遇着的事满心希奇、惊讶。
  • 11 那人正在称为所罗门的廊下,拉着彼得、约翰;众百姓一齐跑到他们那里,很觉希奇。
  • 12 彼得看见,就对百姓说:“以色列人哪,为什么把这事当作希奇呢?为什么定睛看我们,以为我们凭自己的能力和虔诚使这人行走呢?
  • 13 亚伯拉罕、以撒、雅各的 神,就是我们列祖的 神,已经荣耀了他的仆人(或译:儿子)耶稣;你们却把他交付彼拉多。彼拉多定意要释放他,你们竟在彼拉多面前弃绝了他。
  • 14 你们弃绝了那圣洁公义者,反求着释放一个凶手给你们。
  • 15 你们杀了那生命的主, 神却叫他从死里复活了;我们都是为这事作见证。
  • 16 我们因信他的名,他的名便叫你们所看见所认识的这人健壮了;正是他所赐的信心,叫这人在你们众人面前全然好了。
  • 17 弟兄们,我晓得你们做这事是出于不知,你们的官长也是如此。
  • 18 但 神曾藉众先知的口,预言基督将要受害,就这样应验了。
  • 19 所以,你们当悔改归正,使你们的罪得以涂抹。这样,那安舒的日子就必从主面前来到;
  • 20 主也必差遣所预定给你们的基督(耶稣)降临。
  • 21 天必留他,等到万物复兴的时候,就是 神从创世以来、藉着圣先知的口所说的。
  • 22 摩西曾说:‘主 神要从你们弟兄中间给你们兴起一位先知像我,凡他向你们所说的,你们都要听从。
  • 23 凡不听从那先知的,必要从民中全然灭绝。’
  • 24 从撒母耳以来的众先知,凡说预言的,也都说到这些日子。
  • 25 你们是先知的子孙,也承受 神与你们祖宗所立的约,就是对亚伯拉罕说:‘地上万族都要因你的后裔得福。’
  • 26  神既兴起他的仆人(或译:儿子),就先差他到你们这里来,赐福给你们,叫你们各人回转,离开罪恶。”

《答疑解惑》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사도행전》 3장을 나누고자 합니다. 말씀을 전하면서 약간 망설여지기도 하는데, 제가 이 말씀을 전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 가장 먼저 걸려 넘어질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제가 처음 주님을 믿었을 때는 잘 몰라서, 베드로가 유창하게 많은 말을 쏟아내고 날 때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 걷게 되니, 베드로가 마치 엄청나게 위대한 일을 행한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사실 날 때부터 맹인 된 자와 걷지 못하는 자를 치유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보다 훨씬 더 많이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장황한 설명도 하지 않으셨지만, 베드로는 많은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제가 처음 주님을 믿었을 당시에는 베드로가 참 말을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표적을 행하는 차원은 매우 낮은 차원이며,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명백한 일에 대해 거의 설명하지 않으셨지만 베드로는 아주 많은 설명을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한 날이 더해갈수록 베드로라는 사람이 말하는 것을 꽤 좋아하지만, 그가 설명하는 내용은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베드로가 한 말의 글자는 다 알겠지만, 합쳐놓으면 도대체 무슨 뜻을 전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베드로는 한참을 말하면서도 여전히 예수님과 죄, 그리고 죄가 지워질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곰곰이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차원의 관점에서 비교해 본다면 예수님의 차원과 베드로의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표적과 기사가 따름”입니다. 여러분은 성령 충만이 엄청나게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성령 충만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며, 충만을 받은 후 표적과 기사가 따르는 것은 아주 초보적인 차원입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높은 차원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드리며, 기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며, 명철 가운데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차원은 명철 가운데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것이었고, 총명 가운데 충분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었으며,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신학 체계였습니다. 누가는 기록할 때 베드로가 한 말을 그대로 다 기록함으로써, 베드로의 당시 차원을 의도적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해 놓았습니다. 여러분은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해진 후 표적과 기사가 따르는 것은 아주 당연하고 정상적인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후에는 반드시 권능을 얻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권능을 얻고 나면 몹시 흥분하여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병이 낫게 되면, 자기가 표적을 행했다며 대단한 존재라도 된 양 우쭐해합니다. 이런 때에 자신이 대단히 영적이라고 착각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이것이 바로 ‘추녀가 시집가니 땅이 진동한다’는 격입니다! 표적 하나 행하고 권능을 얻었다고 해서 대단한 줄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마치 자신의 영적 차원이 이미 아주 높아진 것처럼 여기지 마십시오.

저는 일들을 종합적으로 연결해서 보기를 좋아하며,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보셨는지, 과거의 여러 선지자들은 어떻게 말했는지, 사도 바울은 또 어떻게 말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면서 점차 깨닫기 시작했고 그 안의 법칙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반드시 권능을 받고, 그 후 주 예수님을 위해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차원이 도대체 얼마나 높은 것일까요?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므로,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사도행전 1:4)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이 두 구절에서 성령 충만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증인, 즉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증언한 후에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렇게 오랫동안 예수님을 따랐으면서도 근본적인 본질까지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베드로가 정말 근본까지 배웠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다소 까다로운 사람이라, 여러분이 저에게 왔을 때 제가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면 분명 대답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듣기만 해도 누가 생각이 명확한지, 누가 입만 열면 헛소리를 하는지 바로 알기 때문에 참지 못하고 지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무엇을 말하든지 조리 있고 논리 정연하게 말하도록 훈련해야 하며, 즉흥적으로 아무렇게나 마구 말해서는 안 됩니다.

예전에 제 부하 직원으로 있던 사람들은 유익한 점도 많았지만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여러 페이지의 글을 써 왔는데 제가 10분 동안 읽어도 핵심을 찾지 못하면 저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이해할 수가 없네요!” 당신이 쓴 글이 불분명하다면 저에게 가져와도 명확하게 설명해 낼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용을 컴퓨터에 다 적어 놓고 머릿속은 텅 비어 있습니다. 질문을 하면 잠깐만 기다리라며 컴퓨터를 켜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계획은 사람의 머릿속에 있어야지 왜 컴퓨터에 들어가서 찾아야 하는가?’ 횡설수설하는 것은 아주 나쁜 습관이며, 제 부하 직원으로서 헛소리를 늘어놓는다면 그 사람은 결코 저를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다고 말할 때,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며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당신 자신과는 사실 그리 큰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표적과 기사가 따름

권능을 얻은 후에는 표적과 기사가 따르는데, 표적과 기사가 따르는 것 역시 아주 초보적인 단계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목적은 표적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교회관에 대해 자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나타내시려는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장차 올 새 하늘과 새 땅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이 논리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천천히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교회이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및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 된 공동체이므로, 교회 안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눈에 모두 보배이며 쓰레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 같은 것을 교회 안으로 끌고 들어와 머릿수나 채우려 하다가 결국 하나님께 심하게 다루심을 받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친히 그러한 자들을 저주하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표적과 기사가 따르기만 하면 흥분합니다. 저 역시 평생 수많은 표적을 행해 왔지만 조금도 흥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이러한 표적과 기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은 표적이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현혹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마치 표적과 기사가 따르면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착각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표적과 기사가 따르고 유튜브에도 관련 영상이 많이 올라와 있지만, 정작 그 목사님 자신은 다단계 판매를 하러 갔습니다. 다단계에 뛰어드는 목사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생계를 유지하는 데 있습니다. 사람에게 표적과 기사가 따른다고 해서 흥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다 말씀해 주셨는데 무엇 때문에 흥분하겠습니까? 자신이 대단히 영적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그것은 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당신을 한 번 사용하셔서 표적을 행하셨을 뿐입니다. 자신이 대단하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표적과 기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설명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명명백백하게 풀어내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표적을 행하는 것이 사람의 영적 차원과 직결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영적 차원이 그리 높지 않아도 얼마든지 표적을 쏟아내듯 행할 수 있습니다. 표적과 기사가 따르는 이 일에 대해 지난 수십 년간 은사주의 교회의 역사는 우리에게 아주 좋은 교훈을 남겨 주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은 복음 전파와 치유, 축사를 참 잘하셨는데, 나중에는 축사나 표적이 별 쓸모가 없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말씀의 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표적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목적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난번에 어떤 분이 제게 묻기를,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하는 한 목사님이 있는데 수백만 명이 그 아래서 설교를 듣는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 목사님도 별다른 말을 한 것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는 것만 전했는데, 어쩌면 베드로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성경》에 흑백으로 명백히 기록되어 있듯이 《갈라디아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에베소서》, 《로마서》에 아주 분명하게 적혀 있는데도,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고 베드로를 배우는 데 엄청난 공을 들입니다. 나중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베드로를 본받으며 심지어 그를 교과서적인 사례로 삼아 연구합니다. 오래전부터 저는 베드로의 가르침에 대해 다소 의구심을 가졌으나, 교회를 세워가는 과정 속에서 명확한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표적과 기사가 따르는 것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큰 능력이 있는 복음임을 알려주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이 복음은 단지 죄 사함을 받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처음에 우리를 창조하셨을 때의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완전히 새롭게 빚으셔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려 하십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있는 형상을 보십시오. 도대체 귀신을 닮았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닮았습니까? 표적과 기사가 따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목적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목적은 우리가 창조되었을 때의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데 있으며,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결코 죄 사함 받고 죽어서 천국 가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다 완전히 잘못 짚은 것입니다.

표적과 기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할 것인가

여러분은 표적과 기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체계적인 개념을 세워야 합니다. 표적과 기사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한번 살펴봅시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내리신 열 가지 큰 재앙을 눈으로 직접 보았고,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넜으며,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전무후무한 이러한 사람들도 수많은 표적을 보았지만,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얼마 전 한 자매가 자기는 저만큼 표적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말해서 저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제가 그 자매 몸에 있는 귀신을 쫓아낼 때 귀신이 그 몸에서 비명을 지르고 난리를 치는 것을 자기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말입니다. 또 목을 움직이지 못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제가 기도하자마자 풀렸음에도 사흘 뒤에 저에게 와서 자기는 하나님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머리는 참 이상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잊어버릴 수 있을까요?

표적과 기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많은 표적을 행했지만, 표적과 기사를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제가 행한 표적들을 여러분에게 다 이야기하자면 잠깐 사이에 다 말할 수도 없습니다. 저보고 설명하라면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귀신을 얼마나 쫓아냈는지, 사람의 병이 나았는지 안 나았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사실 몸이 아파서 한동안 고생하는 것도 꽤 유익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플 때조차 회개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려 하지 않는데, 아프지 않다면 세상을 얼마나 끔찍하게 사랑하겠습니까? 당시에 모세가 행한 표적을 보았던 그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 엎드러져 죽어 그 세대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대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보다 훨씬 더 많은 표적을 행하셨지만, 결국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머릿속의 논리 체계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과 도무지 조화를 이룰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표적 하나 행했다고 해서 대단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미친 듯이 사랑한다면 하늘의 천사들도 당신을 위해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사실 표적과 기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가장 훌륭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누가복음 10:17-19)

저는 환상을 보는 따위의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주 나의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 한 가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저와 같이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드디어 보배를 찾았다는 생각에 제 마음은 여러분을 향해 녹아내릴 것입니다. 비록 저도 귀신을 쫓아낼 때 귀신과 대화하는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때문에 흥분하여 여러 질문을 던지지만, 저는 그런 것들을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으며 예수님께서도 그런 일에 크게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20)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핵심을 붙잡을 수 있다면 온전히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베드로는 많은 말을 늘어놓아 듣기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진짜 그에게 물어본다면 아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지언정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는 모를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한번은 우리 중 한 자매가 새신자를 맞이하여 화인 사명 신학에 대해 두 시간 동안 쉼 없이 떠들어댔습니다. 결국 상대방이 견디다 못해 말을 끊고 싶었지만 미안해서 배고프지 않느냐고만 물었습니다. 그 자매는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자기는 배고프지 않다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고, 잠시 후 새신자가 참다못해 밥 먹을 시간이라고 다시 넌지시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자매는 아직 할 말이 남았다며 자기는 배고프지 않다고 거듭 말하고는 계속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 새신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배고프지 않을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배가 고팠던 것입니다. 나중에 그 녹음을 저에게 보내주어 들어보니, 혼자서 몇 시간 동안 상대방이 알아듣든 말든 상관없이 이 말 저 말 짜깁기하여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떠들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전화를 걸기 전에 항상 대본을 작성하고, 전화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라고 당부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장황하게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아서는 안 되며, 화인 사명 신학의 명성을 그런 식으로 떨어뜨려서는 안 됩니다.

어찌 되었든 여러분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관점에서 베드로의 가르침을 바라본다면, 베드로의 차원이 주 예수님의 차원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며칠 전 베드로는 짧은 설교 한 편으로 5천 명이 주님을 믿게 되자 한창 흥분해 있었습니다. 교회의 성도가 순식간에 5천 명이 되자 우쭐해지기 시작했지만, 이것이 과연 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 묻는 것은 잊어버렸습니다.

이 시점에서 자신이 정작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제구시에 올라가 기도하여 무릎에 굳은살이 박이게 하는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표적 하나를 행하고 스스로 잘했다고 여기는 것이었을까요? 목양이 없다면 다 헛것입니다! 베드로는 물건을 다 통용하며 함께 기뻐하고 즐겁게 음식을 나누는 방식을 취했지만, 그것은 목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표적과 기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는 예수 그리스도와 모세, 그리고 사도 바울에게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한 말과 대조해 보면 대략 어떤 차원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사도 바울이 어떻게 말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린도전서 2:4-5)

우리의 믿음은 지혜의 설득력 있는 말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권능의 증거 위에 세워집니다. 사도 바울이 뒤이어 육신을 처리하는 것, 우리 안에 있는 세상적 가치 체계를 철저히 무너뜨리는 것, 그리고 주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방법에 대해 말하는 주선은 매우 명확합니다. 베드로의 서신서는 읽기 쉽지 않고 특별한 이야기도 없지만 매우 잘 쓰였습니다. 그렇다면 형제자매 여러분은 표적과 기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해야 할까요? 비록 제가 표적과 기사를 매우 낮은 차원으로 분류하긴 했지만, 낮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1이 얼마인지 모른다면 덧셈을 배울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단순한 일이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성령 충만은 단지 시작일 뿐이며, 표적과 기사는 우리 전체 신앙 체계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입니다. 가장 기초적인 차원은 다 낮기 마련입니다.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는 매우 낮은 차원이며 아주 작은 은사이지만, 실로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표적이 없다면 그 이후의 일은 논할 수도 없으며, 1이 몇인지 모른다면 나중에 미적분을 논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베드로는 무엇을 설명하고 있는가?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사도행전 3:11)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이미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그분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이미 우리 위에 임하셨으며, 표적과 기사가 우리를 따르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전하신 말씀을 확증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전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계획이 그분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데 있음을 모두에게 알리기 위함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며,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함께 나아옵시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쓸데없는 군더더기 말을 줄이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저 역시 배우는 중이며, 제가 말이 다소 많아 보일지라도 그것은 모두 일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사도행전 3:16-17)

사실 이 구절은 지금까지도 역사 속에서 수많은 변질과 왜곡을 낳았습니다. 날 때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 걷게 된 것을 증언하면서, 그것이 그분께서 주신 믿음 때문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두고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지 않으면 어찌해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예전에 저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지만, 나중에 이 말이 어딘가 맞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믿음은 우리의 책임이며, 믿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표적과 기사가 따릅니다. 성령이 충만해진 후 주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발상이며, 여러분은 설명하려다 스스로 미궁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사도행전 3:18-20)

이 말은 듣기에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제 부하 직원이 이렇게 썼다면 저는 분명 다시 쓰게 했을 것입니다. 누가는 여기서 베드로가 한 말을 그대로 기록했는데, 사실 어떤 언어로 번역하든 어느 각도에서 보든 하나님의 계획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사도행전 3:21)

제가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베드로가 말한 내용을 사도 바울이 말한 것보다 더 여러 번 주의 깊게 읽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야고보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흔치 않으며,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3:24-26)

베드로는 그들이 선지자의 자손인 줄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가 말한 그 선지자의 자손들이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습니까? 그의 차원은 여전히 회개하고 죄악에서 떠나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바로 훗날 베드로가 세운 교회가 언제나 그 차원에 머물러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 도달한 차원에 결코 도달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사도 바울은 비록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니지는 않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온전히 계승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머릿속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엉터리로 해석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교회관도 없고 하나님의 계획도 없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죄 사함이라는 낮은 차원으로 곧바로 격하시켜 버리니, 표적과 기사가 따르는 것이 단지 시작에 불과함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회개한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과연 대가를 치른다는 개념이 있기나 합니까? 화인 사명 신학은 값싼 은혜의 신학이 아니라 생명을 하나님께 바치는 신학입니다. 우리에게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없으며 오직 대가를 치르는 것뿐입니다. 제가 치르는 대가는 웬만한 사람들은 감당할 수조차 없는 것입니다. 제 동역자들은 저와 함께 사역하는 것이 너무 치열하다고 말하며, 육체적인 노동에서도 많은 이들이 저를 따라오지 못합니다. 저는 목양이든 섬김이든 치유와 축사이든 간에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대가를 치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알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무슨 편안하고 안락한 날들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가를 치르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먹을 풀이 없는 것을 보고, 이 세대의 영적 상태가 심히 황폐함을 보며, 하나님의 뜻이 아직 턱없이 채워지지 못함을 보기에 마음속으로 남몰래 눈물을 흘립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여전히 무지한 상태에 살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육신을 위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면 늘 마음이 아픕니다. 많은 이들이 대가를 치르며 양육하고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는 개념이 없으며, 심지어 승리라는 개념조차 없습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대가를 치르는 교회, 승리하는 교회, 승리의 신학이며,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단지 구원받고 죄 사함 받아 죽은 후에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한 말 중에는 날 때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을 고쳐 일어나 걷게 했을지언정, 하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생명을 하나님께 바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면, 이제부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 길을 걷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며칠 뒤에 다시 다리를 절게 되든 저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하나님의 기준을 결코 낮추지 않습니다.

표적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

사람에게 귀신이 들렸을 때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무슨 대수입니까? 그토록 간단한 일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주님의 제자가 되어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우리도 걸어가야 하며,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매우 명확한 지침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고,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바치며, 자기만을 위한 몫을 티끌만큼도 남겨두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태도가 바로 이러했으며, 바울이 계승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를 잊어버렸습니다.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하지 못한 사람의 모습이 대략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지 수년이 지난 후에도 베드로는 글을 쓸 줄 몰랐고 성경도 읽을 줄 몰랐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말이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불분명하다면 집에 가서 다시 확실히 깨닫고 오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순한 신자가 아닙니다. 5천 명, 3천 명이 믿었다고 해서 기뻐하지 말고, 한 명의 제자가 나온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십시오. 두 명의 제자, 혹은 120명의 제자가 나온다면 더욱 기뻐할 일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가 얼마나 높은지 알아야 합니다!

표적과 기사가 따름은 우리가 전하는 말씀을 확증하는 것이다

표적과 기사가 따르는 것은 우리가 전하는 말씀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우리는 감탄하며, 이러한 하나님께 생명을 바치지 않고 누구에게 바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해야 하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전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안락한 삶이 아니라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살아내지 못한다면 참으로 부끄럽고 도리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본받고 예수님을 본받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설령 십자가의 길을 걷고 우리의 생명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지라도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얻어야 합니다. 제가 다소 강하게 말씀드렸지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우리는 들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찬 이 길을 걸어갑시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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请问:如果病人不信主,我们可以为他做医治释放吗?还是需要先建立对方的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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留言:请问:如果病人不信主,我们可以为他做医治释放吗?还是需要先建立对方的信心? 回复:圣经说:“你的信救了你”,意思是信还是关键。偶尔也有神主动出手医治某人的,比如坟茔里的疯子。
@ruth: 请问:如果病人不信主,我们可以为他做医治释放吗?还是需要先建立对方的信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