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我的肉体常常感觉想躺着、想刷手机,因为从小到大都顺服这种感觉。我做错了很多事情,也浪费了很多时间,自己也很难受。最近刚开始明白对付肉体,比以前做更多的家务、学习等等,但是这种想躺着刷手机的感觉每天都会有很多次,我该怎么快点对付掉这种感觉,真正的治死肉体呢?
这问题挺好!其实这种感觉没啥用。一个人有感觉就有呗,其实我也有,顺着还是不顺着,那就是咱们说了算了。大家明白我说的意思吗?人要是老顺着那种感觉,你就被辖制。如果你决定不顺着那种感觉,我告诉你,你干完活之后那种享受比刷手机的感觉好多了。你整天在那啥事也不干,在那刷手机可郁闷了。谁想郁闷哪?想一想,我还是别郁闷了,我还是干点活,干点正事。
如果干事抓不到原理,抓不到本质,干起来是很郁闷的。为啥?因为干得笨哪。人从小不干活,人就笨的像猪似的。除了吃,除了喝,饭来张口,能不笨的像猪似的吗?所以哈佛大学做过一个调查,就是不做家务的孩子后来没出息。慢慢你自己琢磨,而且不做家务的孩子后来都笨,读到哈佛大学也一样。为啥?原因很简单,招鬼!招了鬼以后,就是读完了那有啥用?没用!就是人脑子不好使。
为什么不喜欢干家务呢?不想祝福人,不想帮助父母解决问题。如果你很想帮父母解决问题,分担一点家务的话,其实现在的家务真的都谈不上家务了,尤其是现在。我小的时候还有劈柴,还有点火,还有拉煤,那可闹心了。我们都帮着爸爸妈妈干,干多干少是一回事。问题是什么呢?现在哪还有活?我们家养的那猪,那猪粪都是我整,一整就往外面倒。倒哪?你就别管了,可能倒得不太合乎规矩,那时城市管理也不行。所以我说的意思是这是人应当做的,人不做是不应该的,这是我应该做的。
我们必须在概念上、理论上有一个突破,心里明明白白那条路是一条招鬼的路,那条路是一条没有出息的路,那条路是一条难受的路;这条路是一条生命的路,这条路是一条变聪明的路,这条路是一条创造价值的路,这条路是一条跟爸爸妈妈关系健康的路。谁喜欢养一个孩子像养个猪似的,那不闹心吗?所以感觉这东西不准,悟性才重要。我们得心里明白,我们为什么往败坏里走呢?
一个小孩不喜欢学习,最后长大了咋办?闹心啊。干啥啥不行,你说怎么办?不太好办。所以不要做愚昧的人,不要做一个无知的人。为什么要做一个有知识的人?有知识的人是一个建造的人,是一个创造的人。建造的人,创造的人他不可能缺乏。他不缺乏,他首先可以养活自己,还可以养活很多人。那你愁啥啊?啥也不用愁。而且干活还享受,多好啊!所以治死肉体得从心里头明白,但如果那个鬼一彰显,你就联系你的牧者,靠着圣灵把它赶出去就好了。
Q2:“愚蒙人哪,你们要会悟灵明,我智慧以灵明为居所。”灵明是什么意思?
智慧是个灵,而且是个明明白白的事。我们常说,你看这个人很精明,很灵活,很有灵性,很机灵,都是这个意思。明就是明白。
Q3:老师,为啥什么也不读只读《圣经》,会成为一个愚昧人呢?请你解释一下好吗?我不明白。
人如果一辈子只读《圣经》那是干啥呢?做啥啥不成,做啥啥不行,你要干啥啊?我是说,你建个桥桥塌了,盖个房子房子倒了,你一事无成就只读《圣经》,没有别的知识你干啥呀?我不知道你干啥,你总得谋生吧?你不能在那坐吃等死吧?像他们那故事里讲的,烙个大饼中间掏个洞放在脖子上,整天读《圣经》,饿了就咬一口。等你把那饼咬完了咋办呢,咬完了等死啊,人没有知识哪行啊?
给大家举个《圣经》里的例子,咱们是不是得效法亚伯拉罕,我问你亚伯拉罕那些年他都在干啥?他在训练他们家里的家丁,那三百一十八个家丁个个都是武林高手。亚伯拉罕家里头经营两千号人,吃啥喝啥?他得牧养羊群。到了以撒年间,以撒挖井。你得会挖井啊,你不会挖井,你哪来的水?等着天上下雨接啊?
今天基督徒这种混乱的状态我也服气,为什么能够问出这种问题来?因为就是受了很多教导的污染,那种教导的污染是非常可恶的污染,至于是受到什么派影响,我就不说了。那后来摩西是放羊的,大家知不知道雅各放羊放得最好?那大卫呢?大卫不但放羊放得最好,大卫还建造圣殿呢。大卫是architect,就是一个建筑师。
哪有一个是废物啊?没有一个是废物。在《圣经》里你给我举出一个来,哪个是废物?我就觉着很有意思,人就不学这些。你要不要效法耶稣?耶稣以前是木匠,你以为耶稣做木匠做的很烂吗?做得不烂!他三十岁才开始出来传道。三十岁之前在家里坐吃等死?只读《圣经》那就麻烦了。
所以大家还需要我解释吗?不需要我解释了,我就不解释了。这不是很直白的事吗?我问你,就约瑟后来建造粮仓,大家算一算七个丰年,后来又有七个荒年,那粮食要储存多少年?至少得八年。第一年丰收的粮食到了第八年吃,反正就是粮食至少得储存八年,那八年粮食长毛了、都发霉了怎么吃啊?所以约瑟有各种全备的知识,摩西也是学了各种知识,保罗也是学了很多,他织帐篷。我问你,到底整天以祈祷传道为生好不好啊?整天以祈祷传道为生的,会把教会都搞黄了。
Q4:老师,聪明人是不是知道,那些对自己有益处,接受训诲,从心里觉得这是爱,这是智慧的态度。
说的不错。智慧人就是知道自己很多东西不知道,而且智慧人的态度非常好。做人其实就是一个态度问题,不能训,不能说,说错了就要亮牙齿,就要咬人那不闹心吗?傻瓜蛋一个。所以一定要做聪明人,能够被训,能够被斥责,能够被修理。你要知道,不修理人的教会都败坏人。
Q5:很多人都是从传统教会,进到咱们教会的,很多人里面都识别善恶很严重也不顺服,里面的态度一定是有问题的,而这些都是传统教会的教导,他们属于无知,这些人属于亵慢人吗?这些人我们要服侍他对吗?要给他们机会对吗?
要给他们机会。问题是什么呢?大家知不知道,他为什么来到咱们当中?他一定是寻求的人。如果不是寻求的人,你来这里干嘛来了?来做我老师来了?来教我怎么建教会来了。有些东西我们服侍不了,不是因为他来到咱们当中,就一定要怎么着。我给大家举一个例子,有一次,我带领查经查《创世记》,那是好些年前的事了。因为我们做外展做得还不错,有个人他就走进来,浑身贴着那个膏药,一身的膏药味。我说你这膏药是怎回事呢?
他是肾癌患者,骨头疼。你知道我查《创世记》跟很多人的讲法不一样。讲到一半还没讲完的时候,他啪的站起来说:牧师!你这么讲神会咒诅你的!我说:我这么讲怎么会咒诅呢?我看你已经被咒诅了,你还有资格来讲咒诅?我就很感慨,你说我咋服侍?他来教我来了,干脆我把那个位子让出来,你来带查经。别把大家带成肾癌就不错了!后来我说,不好意思,下次你就别来了。
所以大家看,我们当中问这种问题的人是不是有问题?如果你来了,你带的态度是一个亵慢的态度,你要带着这种态度我们怎么服侍?你能服侍?我是服侍不了,你要服侍你服侍,我交给你。无知不怕,愚蒙也不怕,但亵慢是一个非常邪恶的态度。还有一次,他要自杀,我好不容易给他整回来了。
有一天,他读了一本书嘎嘎推门就进来了。啪!拿了一张椅子就坐我前面。我说:你这是啥知识,这是要来教我做牧师来了?他说:牧师!你应该这么做牧师。好,真的教我来了。看那架势就是来做老师来了。我说:你怎么知道这么做呢?他说:你看我读了这个书。我说:你做过、试过了没有?他说没有。我又说:你做过牧师?他又说没有。然后我就把他打发了。
有些人服侍得了,有些人服侍不了。你做过啥呢?差点要自杀给你整回来了,自杀未遂啊!那你这是干啥呢?没试过?人家书上这么说,你就这么认为,书上说的东西多了去了。我心里想,你试都没试过,那是啥?他说那是我的意见。哦!原来你是来提意见来的。那你试完了,你再来提意见行不行?你说这怎么服侍?你要能服侍,我交给你。
Q6:老师,愚妄人是不能说的吗?用什么方法能让他们悟性通透呢?
愚昧、愚蒙、无知都可以教。但是一个人有了一个错误的态度,神都拿你没办法。神都做不了,神都改变不了。所以人必须知道自己是个人,人也必须知道自己需要神,人还须要知道自己不知道的东西太多,自己还需要去寻求,就是这个态度,很简单!人如果是个寻求的人,我告诉你,他的悟性就会通。人如果不去寻求,还自以为是,教不了!
所以企业也好,教会也好,找人是找态度,请人是请态度。有一个好的态度,技能不太好,可以训练。这句话写在哪儿呢?写在《人力资源管理》的书里头,经典!请人是请态度,态度不好的别请。他除了给你制造麻烦,给企业制造混乱,什么用都没有,所以千万别乱请人。
有一些人,他以为他读了一个神学,就要来你这工作。不好意思!不要!为啥?学的东西都学错了,我咋要?就以为神学能怎么着似的。所以弟兄姊妹一定要知道,招员工招的是态度,当然技能不是说不重要,也是一个其中的因素。如果技能很强,态度很恶劣,最好别要。为什么?来了会把你的公司给搞垮。
愿神祝福大家!
1. 서론
잠언서는 서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서로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하며, 거만한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설득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거만함은 매우 악한 태도입니다. 거만한 태도란 자기만 옳다고 여기고, 남을 하찮게 여기며, 교만하고 오만한 것입니다.
2. 당신의 태도가 당신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지 어리석은 사람으로 만들지 결정합니다
사람됨의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이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가 그가 지혜로운 사람인지 어리석은 사람인지를 결정합니다.
사람이 거만하고 교만해지는 순간 어리석어집니다. 사람됨의 태도만 바뀌면 사람은 똑똑해집니다.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말할 수 있고, 가까이할 수 있으며, 책망할 수도 있습니다.
2. 지혜를 따를지 어리석음을 따를지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바른 일을 하는 사람은 사람을 세우는 말을 하고, 바른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헛소리를 합니다. 헛소리와 거짓말만 하는 사람과 친구가 되면 결국 타락하게 됩니다.
사람을 세우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를 받쳐 주는 틀이 있습니다. 일을 할 때 근거와 기초가 있으며, 하나님의 진리를 의지하여 세우고, 거저 베풀며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4. 자신이 선택한 결과를 보라
지혜를 선택하면 날이 더해지고 좋은 것이 부족하지 않게 됩니다. 거만함을 선택하면 어리석음을 거두고 음부와 지옥과 죽음의 영을 불러들이게 됩니다.
몸에 오랫동안 악성 질병이 있다면, 자신 안에 거만한 태도가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5. 결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며, 지극히 거룩하신 분을 아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자신에게 아직 지혜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계속해서 구하지만,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없습니다!
겸손해지고 여호와를 경외하며 지극히 거룩하신 분을 아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반드시 사람을 세우고 축복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핵심 단어
사람됨의 태도
거만한 태도
자기만 옳다고 여김
겸손히 배우고 가르침을 받음
바른 일을 하는 사람
사람을 세우는 사람
거저 베풂
다른 사람을 축복함
여호와를 경외함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잠언》 9장을 함께 공부해 보겠습니다. 어느새 우리가 8장까지 공부했습니다. 여러분은 지혜로워졌습니까? 지혜로워지는 일이 정말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리석어지는 데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먹을 것 먹고, 마실 것 마시고, 놀 것 놀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면 됩니다! 그러니 사람이 지혜로워지는 일이 정말 특별히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가운데 오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제가 대략 먼저 살펴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거만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목사님 설교 듣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이게 사실일까요? 그 사람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인지 저는 보통 먼저 살펴보고, 조금씩 시험해 봅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만일 제가 그 사람이 거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주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아주 편안해집니다. 그런데 그 사람 안에 있는 거만한 태도를 제가 보는 순간, 저는 슬쩍 피해서 그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합니다. 이제 제 패를 여러분에게 다 보여 드렸습니다. 여러분이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 제가 그 사람을 거만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사람은 설득할 수 없습니다! 저는 많은 실험을 해 보았고, 쓴맛도 많이 보았습니다. 생콩을 먹어 본 사람이라면 그 비린 맛을 없애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잠언》을 9장이나 공부했습니다. 그 안에는 이미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대할 때 어떤 태도와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가. 책망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바로잡을 수도 없는 사람을 대할 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제가 그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게 해 주십시오.” 노래 가사처럼 말입니다.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주께서 나의 죄과를 나에게서 멀리 옮기셨나이다!” 제가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저는 친구를 사귀는 일이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친구를 사귈 때 아무렇게나 사귀지 마십시오. 이 문제는 정말 심각합니다. 만일 어리석은 여인과 친구가 되면, 그 여인은 큰소리로 헛소리와 어리석은 말을 늘어놓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그 말로 당신을 무너뜨릴 뿐입니다. 결국 당신이 화병으로 암에 걸리면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그래서 제 마음에는 늘 이런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함께 지혜로워집시다. 이 태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저와 함께 성경을 공부한 뒤로 핵심과 주제를 찾기 시작했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은 기뻐할 만한 일입니다. 우리는 성경 본문에서 자주 핵심을 찾을 수 있지만, 때로는 저자가 핵심을 직접 기록하지 않기도 합니다. 이 장의 핵심이 반드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라는 말씀인 것은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이 말씀이 앞뒤 내용을 연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한 주제를 여러분에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그 주제는 바로 **《당신의 태도가 지혜의 말을 들을지 어리석음의 말을 들을지 결정합니다》**입니다.
당신의 태도가 당신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지 어리석은 사람으로 만들지 결정합니다
지혜의 말을 듣기로 선택하면 그것이 자신에게 유익하고, 날이 더해지며 햇수가 늘어납니다. 그러나 당신의 태도가 거만하다면 반드시 어리석음을 따르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의 영을 불러들이게 됩니다. 어리석음과 사귀는 것이 정말 좋다고 생각합니까? 그 결과는 음부의 깊은 곳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태도가 거만하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거만함이 무엇입니까? 남을 하찮게 여기는 것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더하리라. 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나 네가 거만하면 너 홀로 그 해를 당하리라. (《잠언》 9:11-12)
그는 죽은 자들이 그곳에 있으며 그의 손님들이 스올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잠언》 9:18)
왜 남을 하찮게 여깁니까? 좋은 말을 해 주고 바른길로 가라고 하면 눈을 치켜뜨며 말합니다. “흥, 당신 말대로라면 나는 어떻게 살라는 거야?” 좋습니다. 그러면 잘 살아 보십시오. 행운을 빕니다! 이런 거만한 태도를 가진 사람에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거만한 사람을 아주 많이 보았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그 비율은 비슷합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올바르게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렇게 많은 신자들 가운데 자신이 제대로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저 하나뿐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하는 지금도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주제를 제가 꼭 올바르게 이해한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겸손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 자신도 잘 모르면서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는 것 아닙니까?” 제가 아무리 사람을 잘못 인도해도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잘못 인도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와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일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통제할 수도 없고, 통제하고 싶지도 않으며, 누가 옳고 그른지 논평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세계 정치를 안다면 모든 것이 이익 관계의 결합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한때 베트남과 형제처럼 가까웠지만, 1979년에는 대베트남 자위 반격전을 벌였습니다. 세상일은 아이들이 소꿉놀이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은 이 사람과 친하다가 내일은 또 사이가 나빠집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일을 다루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믿는 일을 다룹니다! 거만함과 남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의 근본은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태도는 정말 큰 문제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뿐 아니라 우리 교회의 크고 작은 목회자들도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태도를 자주 다루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거만함은 정말 가증스럽습니다. 이 태도가 당신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지 어리석은 사람으로 만들지 결정합니다. 지혜를 따를지 어리석음을 따를지는 바로 이 거만함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누군가가 사역을 하다가 일을 잘못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가 일을 한 번 잘못하면 그를 말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어머, 왜 그렇게 하셨어요?” 그러면 그가 선악을 분별하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일을 한 번 잘못하고 나면 사람의 태도가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어떤 사람은 어리석고 거만해서, 어렵게 한 번 잘해 놓고는 꼬리를 하늘 높이 치켜듭니다. 마치 미어캣처럼 말입니다. 때로는 일을 잘못하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 잘못하면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인지 거만한 사람인지 한눈에 구별됩니다. 제가 일을 항상 잘되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잘못되는 것이 오히려 더 좋습니다. 그래야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한 기업에서 일하는데 사장의 능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음속으로도, 입으로도 그가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젊었을 때부터 이런 지혜가 있었습니다. 언제나 가장 좋은 부하 직원이 되고, 교회에서는 가장 좋은 성도가 되며, 소그룹에서는 가장 좋은 소그룹원이 되는 것입니다. 부하 직원으로서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상사가 조금만 실수해도 곧바로 선악을 분별합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본질적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당신이 선악을 분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직 때가 오지 않았을 뿐입니다. 저는 어디에서든 좋은 부하 직원이 되려고 매우 노력했습니다. 상사가 능력이 있든 없든 저는 온 힘을 다해 그의 일을 지지했습니다. 소그룹에서도 소그룹장이 성경공부를 잘 인도하지 못하고, 때로는 잘못 말해서 웃음거리가 되더라도 저는 아래에서 묵묵히 그를 지지했습니다. 그가 틀린 말을 하도록 지지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의 상사도 아니고, 윗사람도 아니며, 그의 목회자도 아니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소그룹 모임을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은 그렇게 견디지 못합니다. 저는 아래에서 노트를 잘 기록했습니다. 그가 한 말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성경 본문을 모두 적었습니다. 어쨌든 소그룹이 진행되고 있으니 시간을 낭비하지 않은 것입니다. 가끔 소그룹장이 저에게 나누라고 하면, 몇 분 동안 하라고 한 만큼만 했습니다. 시간이 되면 바로 멈췄습니다. 어릴 때 저는 부모님 눈에 아주 착한 아들이었습니다. 덕을 많이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정말 좋아하셔서 자주 자전거에 태우고 식당에 데려가셨습니다. 정말 즐거웠습니다! 기업에서 일할 때든, 교회에서 성도로 있을 때든, 좋은 부하 직원이 되면 많은 덕을 볼 수 있습니다. 의견과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은 제가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왜 저를 사용하시는지 아시겠습니까? 제 태도가 좋고 제가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자신이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다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태도가 정말 사람의 선택을 결정합니다! 사람들을 이끌어 가면서 저는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매일 만납니다! 제가 겪은 일도 많고, 상대해 본 사람도 많아서, 한 사람이 말하는 것만 들어도 그가 어리석은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제가 하는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 인내심은 날마다 자랐습니다. 모두 이런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사람들과 씨름하며 길러진 것입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예전에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셨을 때 제가 어머니를 섬겼는데, 매우 효과가 있었습니다.
한 자매의 부모님이 제 어머니와 비슷한 연세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자매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는지 보세요. 나중에 필요하면 그대로 해 보세요. 자매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치매에 걸리실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자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괜찮아요. 두 분 다 이미 저를 통해 결신하고 주님을 믿게 되셨어요!” 저는 그 말에 막혀 한참 동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정말 제 인내심을 훈련시켰습니다. 나중에 그 자매의 아버지가 치매에 걸렸고, 한참 섬겨도 효과가 없자 제가 했던 말을 기억해 내고 제 방법대로 섬겼습니다. 효과가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러분의 사람됨의 태도를 성공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저는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할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의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람이 지혜로워지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거만해지는 순간, 제가 교만해지는 순간 저는 어리석어집니다. 저도 잠시 동안만 지혜롭고, 나머지 많은 시간은 어리석음 가운데 있습니다! 태도가 우리의 선택을 결정합니다! 우리는 지혜의 말을 들을 것입니까, 어리석음의 말을 들을 것입니까?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하고, 어떤 사람은 저런 말을 합니다. 한 번은 우리 형제자매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어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마음이 불편하고 뒤숭숭해져요.” 제가 말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여전히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이야기합니까? 어떤 사람과 이야기해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른 일을 하는 사람과 이야기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과 이야기하면 마음이 불편하고 뒤숭숭해집니다.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은 큰소리로 떠들기를 좋아하고, 이 집 저 집의 사소한 일을 옮기며, 남몰래 나쁜 일을 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런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괴로워집니다! 우리 가운데 비교적 심각한 질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면, 그 병이 어떻게 왔는지 말씀드려야 합니다. 당신의 병은 음부의 권세에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음부의 권세를 보지 못합니까? 사실 당신은 이미 보았습니다! 자주 어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들이 하는 말이 모두 당신을 무너뜨리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말입니다. “당신 남편이 어떻게 당신에게 그렇게 대할 수 있어요? 당신 상사가 어떻게 당신에게 그렇게 대할 수 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면 마음이 괴로워지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그 사람이 자신을 얼마나 잘 이해해 주는지, 자신이 옳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음부와 지옥과 죽음의 영이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아무 일도 없는데도 먼저 찾아와 잡담을 하고 헛소리를 늘어놓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모두 사람을 무너뜨리는 말입니다! 당신이 밖에서 다른 사람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남편도 밖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두 사람이 각각 음부와 지옥과 죽음의 영과 실컷 이야기를 나눈 뒤 집에 돌아와 한바탕 싸우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우스운 일이 아닙니까? 그러다 결국 중병에 걸립니다. 강직성 척추염, 암, 류머티즘 등 온갖 질병이 쌓입니다. 전부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당신의 태도가 당신의 선택을 결정합니다. 당신은 들을지 듣지 않을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거만함은 사실 매우 악한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따를지 어리석음을 따를지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성경은 기본 원리를 말합니다. 모든 사물의 원리와 원칙과 법칙을 말합니다. 저는 성경을 기록한 사람이 아니며, 성경공부를 인도할 때 성경의 원리를 설명하고 그것을 어떻게 실천할지 알려 드리려고 매우 노력합니다. 우리에게 좋은 태도가 생겼다면, 두 번째로는 누구를 따를지 알아야 합니다.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는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보아야 합니다. 바른 일을 하는 사람은 사람을 세우는 말을 하고, 쓸데없는 말만 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무너뜨리는 말을 합니다.
지혜가 그의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으며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차리고 자기의 여종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하며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잠언》 9:1-5)
사람을 세우는 일도 하지 않고, 세우는 일 자체도 하지 않는다면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혜는 어디에 거합니까? 사실 지혜는 사람 안에 거합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사람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를 받쳐 주는 틀이 있습니다. 이 일곱 기둥은 진리의 기둥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의지하여 집을 세우고, 하나님의 진리를 의지하여 사람을 세우는 사람은 사람을 축복하려고 합니다.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잔치를 베풀고 (《잠언》 9:2)
너희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잠언》 9:5)
거저 베푸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입만 열면 남을 이용하려 하고, 사람을 이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며, 당신이 남을 이용하지 못하면 마음이 괴로워지고 결국 병이 든다면, 이런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차지할 것이 아닌 것을 왜 차지하려고 합니까? 당신의 몫인 것을 차지하지 않으면 안 됩니까? 우리는 사람을 관찰하고, 그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사람을 세우는 사람입니까? 사람을 축복하는 사람입니까?
저는 여러분을 조금도 이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베풀고 싶고, 여러분이 저를 통해 유익을 얻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저와 교제하는 것은 안전합니다. 저는 늘 여러분의 돈을 제 주머니에 넣을 궁리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돈을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정말 많습니다. 그 사람이 사람을 세우는 사람입니까? 사람을 축복하려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남을 이용하려는 사람입니까? 저도 모릅니다. 만일 그 사람이 바른 일을 하며 잘 세우고 있다면, 그는 반드시 부유한 사람이고, 반드시 다른 사람을 축복하려는 사람이지 남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이 거지였다고 생각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구걸하다가 하나님이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시고, 다시 이집트로 가서 구걸하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거지라면 어디에서 구걸하든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필요하지 않고, 어떤 결정이든 쉽게 내릴 수 있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집안과 재산이 많았습니다.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가며 편안히 살 수 있었는데도 여기저기 먼 길을 다녔습니다. 그것은 큰 믿음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 안에 거합니다. 그는 일을 할 때 반드시 근거와 기초가 있습니다. 남을 이용하려 하지 않고 잔치를 베풉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장막에 나타나셨지만 아브라함은 그분이 하나님이신 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발을 씻어 주고 소와 양을 잡아 잔치를 준비했습니다. 나중에야 그들이 하나님의 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남을 이용하지 않으면 괴로워하는 인색한 사람이 절대로 되지 마십시오. 사람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합니다. 사람의 태도가 바르지 않으면 지혜도 그에게서 떠납니다. 하나님은 거만한 사람을 매우 싫어하시기 때문에, 저는 하나님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거만한 자를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을 잡히느니라.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잠언》 9:7-9)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도 하지 않으시는 일은 저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는 거만한 사람을 전문적으로 섬기는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그 사람을 섬겨 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목회자들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설마 여러분이 하나님보다 더 대단합니까? 이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여러분은 그를 섬길 수 없습니다. 추구하려 하지 않는 사람은 저도 상대하고 싶지 않은데, 하물며 거만한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도 거만한 사람을 책망하기를 좋아하지 않으시는데, 설마 여러분이 하나님보다 더 대단합니까? 하나님께서 하지 않으시는 일은 우리도 절대로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저도 해 본 적이 있지만 성공 확률은 0이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사람을 선택할 때 태도를 봅니다. 교회에 한 연로한 자매가 있는데, 70세가 넘었고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지 못했지만 주님을 믿는 일에는 매우 진지합니다. 그 자매가 전화할 때마다 저는 전화를 받습니다. 그 자매는 배우는 것을 매우 사랑하고, 그 태도가 저를 감동시키기 때문입니다. 그 자매는 가르침과 책망을 받아도 저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암에 걸렸는데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가 다니는 교회에는 치유와 축사가 없었습니다. 그의 친구 한 사람이 저를 통해 치유를 받고 그를 소개해 왔습니다.
이 사람의 상황은 이러했습니다. 10년 전에 암에 걸렸고, 병의 영향으로 음식을 먹으면 음식물이 폐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배에 관을 꽂아 위까지 직접 연결하고, 액체 음식물을 주입하며 생명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10년 뒤에는 아내도 암에 걸렸고, 아이도 아직 어렸습니다. 저도 그가 매우 불쌍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사람은 치유와 해방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왔으니 저는 최선을 다해 섬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와 소통해 보니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암은 저주라고 말하자마자 그는 암이 축복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도무지 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암이 축복이라면 몇 개 더 드릴까요? 성경 어디에 암이 축복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신명기》 28장 1-14절이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네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면 내가 너에게 암을 주겠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대화가 되지 않으니 섬기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머리에서 땀이 날 정도였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거만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나중에 그는 자신이 현대판 욥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요, 그래요. 당신은 현대판 욥입니다. 제가 졌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배워야겠네요.” 그를 책망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만 해도 그는 여러분을 미워할 것입니다. 제가 이것은 모두 저주라고 말하면 그는 “당신이나 저주를 받으세요. 나를 저주하지 마세요”라고 반박합니다. 됐습니다. 이 책망은 지혜로운 사람에게 남겨 두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복음주의에 대해 꽤 큰 의견을 가지고 있고, ‘복음주의’라는 세 글자에 대한 인상도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소위 복음주의란 말할 수는 있지만 행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행하지 못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행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다리 저는 사람이 걷게 하고, 눈먼 사람이 보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부정해서는 안 되지만, 제가 만난 복음주의는 그랬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심한 우울증에 걸렸는데, 제가 그를 섬겼습니다. 그가 원래 다니던 교회도 복음주의 교회였고, 제가 그를 섬기는 동시에 원래 교회의 목회자도 그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치유와 축사를 전혀 다루지 않았습니다. 우울증이 있으면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으라고만 했고, 귀신을 쫓아내는 은사주의 교회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에게 “차라리 우울증을 앓더라도 천국에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듣고 있으면 마치 우스갯소리 같습니다.
나중에 그의 어머니는 그가 이전 교회의 목회자와 연락하기만 하면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습니다. 사람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일이니 사납게 보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음부와 지옥과 죽음의 영을 풀어놓는 일이니 사납게 보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목회자 자신이 어리석음과 무지를 대표하고, 음부와 지옥과 죽음의 영을 대표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그 앞에 서 계셨다면 어떻게 하셨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은사주의인지 복음주의인지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을 것입니다. 예로 들자면 끝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선택해야 합니까? 그 사람이 떠들기만 하는 사람인지 보아야 합니다. 떠들기만 하는 사람은 말할 수는 있지만 행하지는 못하고, 온종일 먹고 놀며 게으르게 지내고, 일하지 않고 얻으려 합니다.
이것이 어리석음입니다! 떠들기만 하는 사람은 속에 어리석음과 무지가 있지만 말은 많습니다. 우리 동북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2푼짜리 주전자”라고 표현합니다. 입만 잘 놀린다는 뜻입니다. 사실 그 입도 형편없는 입입니다. 이제 누구를 따라야 하는지 알겠습니까? 첫째는 태도입니다. 거만한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둘째는 이제 어떤 사람을 따를지 선택해야 합니다. 지혜를 따를지 어리석음을 따를지 선택해야 합니다. 지혜를 따르는 것과 어리석음을 따르는 것은 절대로 같은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이 평생 성경만 읽으면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온종일 자신이 천사를 보았고, 이런 환상을 보았고, 저런 환상을 보았으며, 심지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말씀을 아브라함보다 더 많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지혜를 따를지 어리석음을 따를지 어떻게 선택합니까? 그가 하는 말을 듣지 말고 그가 무엇을 하는지 보십시오.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한 사람을 따라가면 당신도 무너집니다! 지혜와 어리석음은 모두 길거리에서 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지혜와 어리석음이 어떻게 말하는지 보십시오.
그의 여종들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하며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잠언》 9:3-5)
자기 집 문에 앉으며 성읍 높은 곳의 자리에 앉아서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인들을 불러 이르되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잠언》 9:14-17)
그러므로 선택은 매우 중요합니다. 당신이 걸어온 길에서 나타난 결과는 바로 당신이 선택한 결과입니다.
자신이 선택한 결과를 보라
사람은 자신이 잘못 선택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자신이 선택한 결과를 보면 됩니다. 지혜를 선택하면 지혜로 말미암아 날이 더해지고 햇수가 늘어납니다. 질병이 늘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가 있으면 자신에게 유익하지만, 지혜가 없으면 음부에 손님으로 가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18층에 앉고, 어떤 사람은 17층에 앉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집을 살 때 18층을 사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18층이 음부의 18번째 층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좋아하지만, 이것이 지혜입니까? 지혜가 아닙니다. 사람은 무엇을 따르느냐에 따라 어떤 결과가 오는지 알아야 합니다.
음부와 지옥과 죽음의 영이 사람 안에 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선택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악성 질병이 생겨 오랫동안 몸에 있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도 모르게 어리석은 여인과 함께 악을 행하기를 좋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음부와 지옥과 죽음의 영이 언제 사람을 축복한 적이 있습니까? 사람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지혜를 선택할지 어리석음을 선택할지는 당신과 관련된 일이지, 저와는 조금도 상관이 없습니다.
거만한 태도를 선택하면 어리석음의 길을 걷게 되고, 결국 음부와 죽음의 영을 불러들이며, 그 결과를 홀로 감당하게 됩니다. 누가 감당하겠습니까?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자신이 끓인 것을 자신이 먹지 않겠습니까? 무엇을 끓였든 그것을 먹으십시오! 여주를 심었으면 여주를 먹고, 참외를 심었으면 참외를 먹는 것입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그렇게 많은 저주를 심어 놓고 오늘까지 여전히 그것을 먹고 있는데, 계속 심어야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혼자 감당해야 합니다! 세상의 비극은 모두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여러분이 잘 깊이 생각해 보기를 권합니다.
결론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여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면 아직 구할 기회가 있고,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찾게 됩니다. 이미 알고 있다 해도 제대로 알지 못했을 수 있으니 다시 개선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신자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 가장 완벽한 신자가 어디 있습니까?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겸손해지고, 여호와를 경외하며, 지극히 거룩하신 분을 알기를 권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지극히 거룩하신 분을 안다면, 당신은 반드시 집을 세우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언》 9:10)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도전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목양해 보았습니까? 뭐가 그렇게 대단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매우 대단한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사실 목양과 관련된 많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잘 알지도 못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나는 잘 모른다.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한다. 계속 탐구하고 계속 배워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일에는 끝이 없다’는 태도로 다시 구하기를 권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안다면 집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될 것이며, 교회라는 곳은 축복을 나누어 주는 곳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함부로 헌금을 받지 마십시오. 교회는 헌금을 받는 곳이 아니라 축복을 나누어 주는 곳입니다.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이 헌금을 하나님께 조금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 무엇이 부족합니까! 하나님을 토지신이라고 생각합니까? 우상이라고 생각합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헌금을 드리고 싶다고 해도 저는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아는 경우에만 받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집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짐승을 잡고 좋은 포도주를 섞어 잔치를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무지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불러와 여러분의 축복을 누리게 하십시오. 그리고 헌금을 드리러 오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여러분이 그 뜻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헌금을 드립니까? 마치 교회가 여러분에게 의존하여 살아야 하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해했습니까? 하나님만 계시면 돈도 문제가 아니고 사람도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사람은 매우 어리석어서 하나님을 모독하고도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역자가 이렇게 가난하니 내가 돈을 벌어 그를 먹여 살려야겠다”라고 말하다가 하나님께 죄를 짓고, 영문도 모른 채 저주를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먹여 살리실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함부로 일을 벌이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선택의 결과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분명히 보이고, 날이 더해지며 햇수가 늘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반드시 모든 좋은 것이 부족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