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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사사기 18장 - 하나님에 대한 무지

2025-02-26 33,255 士师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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士师记18章-米迦和但支派
  • 1 那时,以色列中没有王。但支派的人仍是寻地居住;因为到那日子,他们还没有在以色列支派中得地为业。
  • 2 但人从琐拉和以实陶打发本族中的五个勇士,去仔细窥探那地,吩咐他们说:“你们去窥探那地。”他们来到以法莲山地,进了米迦的住宅,就在那里住宿。
  • 3 他们临近米迦的住宅,听出那少年利未人的口音来,就进去问他说:“谁领你到这里来?你在这里做什么?你在这里得什么?”
  • 4 他回答说:“米迦待我如此如此,请我作祭司。”
  • 5 他们对他说:“请你求问 神,使我们知道所行的道路通达不通达。”
  • 6 祭司对他们说:“你们可以平平安安地去,你们所行的道路是在耶和华面前的。”
  • 7 五人就走了,来到拉亿,见那里的民安居无虑,如同西顿人安居一样。在那地没有人掌权扰乱他们;他们离西顿人也远,与别人没有来往。
  • 8 五人回到琐拉和以实陶,见他们的弟兄;弟兄问他们说:“你们有什么话?”
  • 9 他们回答说:“起来,我们上去攻击他们吧!我们已经窥探那地,见那地甚好。你们为何静坐不动呢?要急速前往得那地为业,不可迟延。
  • 10 你们到了那里,必看见安居无虑的民,地也宽阔。 神已将那地交在你们手中;那地百物俱全,一无所缺。”
  • 11 于是但族中的六百人,各带兵器,从琐拉和以实陶前往,
  • 12 上到犹大的基列·耶琳,在基列·耶琳后边安营。因此那地方名叫玛哈尼·但,直到今日。
  • 13 他们从那里往以法莲山地去,来到米迦的住宅。
  • 14 从前窥探拉亿地的五个人对他们的弟兄说:“这宅子里有以弗得和家中的神像,并雕刻的像与铸成的像,你们知道吗?现在你们要想一想当怎样行。”
  • 15 五人就进入米迦的住宅,到了那少年利未人的房内问他好。
  • 16 那六百但人各带兵器,站在门口。
  • 17 窥探地的五个人走进去,将雕刻的像、以弗得、家中的神像,并铸成的像,都拿了去。祭司和带兵器的六百人,一同站在门口。
  • 18 那五个人进入米迦的住宅,拿出雕刻的像、以弗得、家中的神像,并铸成的像,祭司就问他们说:“你们做什么呢?”
  • 19 他们回答说:“不要作声,用手捂口,跟我们去吧!我们必以你为父、为祭司。你作一家的祭司好呢?还是作以色列一族一支派的祭司好呢?”
  • 20 祭司心里喜悦,便拿着以弗得和家中的神像,并雕刻的像,进入他们中间。
  • 21 他们就转身离开那里,妻子、儿女、牲畜、财物都在前头。
  • 22 离米迦的住宅已远,米迦的近邻都聚集来,追赶但人,
  • 23 呼叫但人。但人回头问米迦说:“你聚集这许多人来做什么呢?”
  • 24 米迦说:“你们将我所做的神像和祭司都带了去,我还有所剩的吗?怎么还问我说‘做什么’呢?”
  • 25 但人对米迦说:“你不要使我们听见你的声音,恐怕有性暴的人攻击你,以致你和你的全家尽都丧命。”
  • 26 但人还是走他们的路。米迦见他们的势力比自己强盛,就转身回家去了。
  • 27 但人将米迦所做的神像和他的祭司都带到拉亿,见安居无虑的民,就用刀杀了那民,又放火烧了那城,
  • 28 并无人搭救;因为离西顿远,他们又与别人没有来往。城在平原,那平原靠近伯·利合。但人又在那里修城居住,
  • 29 照着他们始祖以色列之子但的名字,给那城起名叫但;原先那城名叫拉亿。
  • 30 但人就为自己设立那雕刻的像。摩西的孙子、革舜的儿子约拿单,和他的子孙作但支派的祭司,直到那地遭掳掠的日子。
  • 31  神的殿在示罗多少日子,但人为自己设立米迦所雕刻的像也在但多少日子。

《答疑解惑》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사기 18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을 다 듣고 나면 틀림없이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도대체 무슨 일인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갈피를 잡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장의 주제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입니다. 이 장은 단 지파가 미가의 신상을 자신들의 신으로 삼고, 모세의 손자를 자신들의 제사장으로 세운 사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사사기 초기에 일어났을 것입니다. 모세의 손자가 아직 살아 있었으니, 그리 오랜 세월이 지나지 않았을 때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면 우상 숭배나 미신 같은 일련의 비극을 낳고, 온갖 잘못된 행태를 만들어 내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계 안에도 얼마나 많은 미가가 있는지, 모세의 손자 같은 자가 얼마나 많은지, 또 영문도 모른 채 단 지파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단 지파'라는 이름은 참 좋게 지었지만, 실제로는 참으로 터무니없고 무지한 지파였습니다. 아무것이나 대충 만들어 놓고 신으로 삼았으니, 얼마나 기괴한 일입니까?

그런데 그것이 효과가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효과가 있었습니다. 나가서 싸워 승리했습니다. 그러니 미가가 만든 이 신상이 효과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신을 하나 만들어서 섬긴 것입니다. 미가는 하나님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그는 자기 어머니가 저주를 내리자 우상을 만들고 에봇을 지었습니다. 그 후에 미가에게 결국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성경은 기록하지도 않았고, 굳이 기록할 가치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정말로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미가와 그의 제사장은 평소에 무엇을 했을까?

미가와 모세의 손자는 평소에 무엇을 했을까요? 과감하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제사장이 집에서 종일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을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 예를 들어 미가의 이웃들은 종종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저 집에 신상이 있대. 와, 하나님이 저 집에 제사장까지 보내주셨어, 알아? 그 제사장이 모세의 손자래, 그 대단한 유명인의 후손이란 말이야." 이웃들은 집에 무슨 일만 생기면 찾아가 물어보았고, 모세의 손자는 점쟁이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가 "당신의 길이 형통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 이웃이 집에 돌아가 보니 정말로 형통했던 것입니다.

미가는 상인이었고, 이 제사장에게 일 년에 은 열 세겔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보니 열 세겔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마을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하나님을 믿는답시고 집에 십자가를 걸어놓았습니다. 그러고는 그 마을에서 동네 선지자 노릇을 하며 평소처럼 살아갑니다. 집에 누가 아프면 기도해 주고, 무슨 일이 생기면 대신 하나님께 물어봐 줍니다. 이런 것을 선지자랍시고 한 것입니다.

미가와 그의 제사장, 곧 모세의 손자이자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이 있었습니다. 요나단은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먼 곳에서 여기까지 찾아와 머물렀습니다. 요나단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실로에 가도 내 몫은 없고, 어디를 가도 날 써주는 곳이 없구나. 모세의 손자라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대우해 주지도 않으니, 내가 직접 길을 개척해 보자.' 하지만 실상 그것은 '신을 지어낸 것'에 불과했습니다.

모세의 손자가 평소에 창세기, 레위기, 출애굽기를 몰랐을까요? 그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시골 마을에 예배당 하나 세워놓고 말씀을 전하는 것처럼, 그도 평소에 그것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미가와 그의 제사장 요나단은 평소에 이런 것들을 가르치고 말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전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꽤 효험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하나님, 이곳이 주님의 전입니까? 하나님,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우신 분입니다. 그분은 넘어뜨리는 반석이시기도 하고,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도구로도 역사하십니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 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왜 이 요나단을 멸하지 않으십니까?' 사사기 18장은 오늘날 이 세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도 수많은 미가와 모세의 손자 요나단 같은 자들이 있습니다.

단 지파 사람들도 대단했습니다. 이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이 창세기, 신명기, 출애굽기를 가르치는 것을 보면, 그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평소 실로에 있을 때 적잖이 공을 들여 필사할 것은 다 필사해 두었습니다. 그러고는 입만 열면 "여호와께서 당신의 길을 형통하게 하실 것입니다"라고 했는데, 그게 또 꽤 잘 맞았습니다.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배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우리는 깊이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악령이다"라고 말합니다. 잘 짚은 것입니다. 참으로 기만적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이 사람을 미혹하도록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미가든 요나단이든, 심지어 마귀조차도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으니, 마귀가 무익하다고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멸망시킬 자를 멸망시키십니다.

단 지파는 그때까지 기업으로 땅을 얻지 못했다

단 지파는 그때까지 기업으로 땅을 얻지 못했습니다. 에브라임, 유다 등 다른 지파들은 다 땅을 얻었는데, 단 지파는 이때까지도 정착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평소에 늘 고민했습니다. '왜 다른 지파들은 다 기업으로 땅을 얻었는데, 우리 지파는 어째서 지금까지 이 땅을 떠돌며 헤매야 하는가?' 매우 고달팠고, 그들 역시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에게 복을 주시겠습니까? 단 지파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알고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시골 마을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저 '신 하나 모셔두고 섬기면 얼마나 좋을까? 신 하나 만들어서, 여호와라는 신을 하나 세워두고 절이나 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참으로 사악한 발상입니다. 이들의 마음속에는 우상 숭배의 본질이 깊이 자리 잡고 있어서, 우상 숭배를 좋아했고 참되신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직장도 온전치 못하면서, 하나님을 제대로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무엇을 구했을까요? 하나님이 남자친구나 남편감을 주시기만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 환상 중에 계시를 받았습니다. 남편 될 사람의 키가 얼마인지, 몸무게가 얼마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아주 정확하게 보았고, 나중에 실제로 그런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사람이라고 확신하고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 남편이 쫄딱 망했습니다. 그 여자를 데려올 때만 해도 돈이 많았는데 말입니다. 가난해지자 그녀는 "내가 당신 집안에 속았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에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이 시켜서 결혼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말씀드리자면, 예전에 저도 어떤 목회자들이 "하나님께 구할 때 생김새까지 구체적으로 아뢰라, 그러면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다"라고 설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사람을 망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들어보신 적 있지 않습니까? 틀림없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랍시고 이것 구하고 저것 구하는 식입니다.

또 아주 흥미로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집안이 꽤 부유해서 항저우에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교회 목사인 한 시골 선지자가 "아이고, 성도님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사업의 은사가 있으시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아직 땅을 기업으로 다 얻지 못했는데, 내게 사업의 은사가 있다고 하니 더 많은 땅을 얻고, 더 많은 돈을 벌어 집을 더 많이 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망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더 알기를 갈망한 것이 아니라 돈을 더 많이 벌기만을 갈망한 결과, 완전히 쫄딱 망해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아내와 자식은 그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결국 아내와 자식은 밖에서 일하며 셋방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우리 교회에 온 또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녀 역시 하나님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구하는 척했지만, 실상은 잿밥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선생님, 누가 남자친구를 소개해 줬어요"라고 하기에 제가 "잘 분별해 보라"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땡전 한 푼 없는 빈털터리였습니다. 시집가서 뭐 하려고 합니까, 남편 뒷바라지하며 돈 벌어다 주려고 합니까? 돈도 못 버는 남편을 먹여 살리는 여자들이 참 많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아세요? 제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니까 그 사람이 'OK'라고 하더라고요." 이것이 더 무서운 일입니다. 무엇을 하든 다 'OK'라니, 그의 지지가 그렇게 필요합니까? 그녀는 이어서 "그 사람이 글쎄 우리 창세기 강해도 들어요"라고 했습니다. 이 자매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아름다운 사랑을 예비해 주셔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착각했습니다. 사업을 갈망하든, 남자친구를 갈망하든, 땅을 기업으로 얻기를 갈망하든, 이런 상태는 정말 치명적입니다.

단 지파는 땅을 기업으로 얻지 못했으나, 이제 땅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얼마나 기막힌 우연입니까. 단 지파가 땅을 얻지 못했을 때 정탐꾼 다섯 명을 보내 정탐하게 했는데, 그 다섯 정탐꾼이 미가의 신상과 제사장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힘이 그들을 인도하듯 기막히게 맞아떨어졌습니다. 하필이면 미가의 집에 묵게 된 것입니다. 미가는 부유한 상인이었으니 큰 부잣집이었을 것입니다.

이 다섯 정탐꾼의 마음은 간절했고, 바라던 것이 그대로 나타났으니 얼마나 절묘합니까! 하나님께 묻고 싶었는데 바로 여기에 신이 있지 않습니까? 제사장에게 자신의 길이 형통할지 묻고 싶었는데 여기에 제사장이 있는 것입니다.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가 다섯 정탐꾼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여기서 무엇을 하시오?" 모세의 손자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여기서 제사장 노릇을 하고 있소." 정탐꾼들이 물었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오? 이름을 밝히시오."

모세의 손자가 말했습니다. "이름을 대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내 아버지는 게르솜이고, 할머니는 십보라요, 내 할아버지는 모세입니다." 단 지파의 다섯 정탐꾼은 '모세'라는 말을 듣고 감격하여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발걸음을 이토록 인도하셔서, 어쩌면 이렇게 미가의 집에 묵게 하시고 모세의 손자까지 만나게 하셨는가! 가는 길마다 어쩌면 이리도 딱 들어맞는가!'

여러분, 십자가를 걸어놓았다고 해서 다 교회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단 지파의 다섯 정탐꾼은 문에 들어서자마자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즉시 무릎 꿇고 하나님을 경배했고, 감격과 감사의 눈물까지 흘렸지만, 실상은 우상에 불과했습니다. 단 지파의 다섯 정탐꾼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물어보아 우리가 나아가는 전쟁의 길이 형통할지 알려주시오." 제사장 노릇은 참 하기 쉽습니다. 교회를 세우면 누구나 사람이 오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의자에 사람 대신 허수아비만 앉아 있기를 바라는 목회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부터가 온전치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아들과 손자에게는 사실 왜곡되고 그릇된 것들이 많았습니다. 다섯 정탐꾼은 크게 감동하여 길을 떠났고, 이 아름다운 소망을 품으니 믿음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정도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리고 라이스에 이르러 땅을 보니 참으로 좋고, 크기도 적당하며, 곡식도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제사장의 예언이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고 감탄했습니다!

제사장의 예언이 너무나도 정확하게 들어맞다

이 다섯 정탐꾼은 돌아가서 단 지파의 정예 용사 육백 명에게 나누었습니다.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우리가 가는 길에 한 사람의 집을 지나치다 머물렀는데, 거기서 모세의 손자를 만났다네. 그 집에는 에봇도 있고 신상도 있었소. 그에게 물었더니 우리의 길이 매우 형통하며 여호와께서 앞길을 축복하실 것이라 하더군. 그리고 라이스에 가보니 정말 그의 말대로였소. 우리가 올라가 그 땅을 기업으로 취할 수 있겠소!"

그리하여 군대를 이끌고 미가의 집을 지나며, 육백 명의 용사가 미가의 문 앞에 정렬했습니다. 그곳을 거룩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다섯 정탐꾼이 들어가서 소리 내지 못하게 하고는, 물건들을 챙겨 신상을 자루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요나단에게 말했습니다. "한 사람의 제사장이 되겠소, 아니면 한 집안과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겠소?" 요나단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 작은 가게, 초라한 매장에서 겨우 일 년에 은 열 세겔을 받으며 진작부터 이직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는데, 이제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라니 횡재했구나!' 제사장은 몹시 흥분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 제 앞길을 형통하게 하시고 교회의 성도 수를 늘려주시며 제 사역이 더욱 번창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 역시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그렇게 해보았습니다. 가게를 열면 손님이 많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지난 수년 동안 마음이 몹시 힘들었습니다. 겨우 서너 명이 모여 있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를 호랑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저 새끼 고양이 같았습니다. 그러다 누가 와서 "목사님, 지난 주일에 모 교회에 갔더니 성도 만 명이 예배를 드리고, 무대 조명도 화려하고, 설교도 정말 은혜로웠어요"라고 하면 어땠겠습니까? 마음속으로 큰 자극을 받고 몹시 씁쓸하고 서글펐습니다.

그러나 지금 누군가 저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저는 "얼른 가보십시오, 평안히 가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처음부터 성도들이 하나님을 알기를 바랐지, 신전을 짓거나 화려한 교회를 짓고자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교회나 화려한 사당이나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그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히 쌓아와서 지금 사사기를 나누고 있지 않습니까? 사사기도 벌써 두 번째 강해하고 있고, 성경 전체를 거의 다 강해해 가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온전한 신학 체계를 세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체계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풍문으로 들어서도 안 되고, 어떤 징조나 증표가 맞는지 틀리는지만 보아서도 안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선생님, 저는 남자친구를 정말 찾고 싶어요"라고 한다면, 저는 "지역에 있는 현장 교회에 가보세요. 그래야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사람을 만나야 기회가 생기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는 매일 하나님께 "키 180cm에 몸무게는 얼마, 외모는 어떠해야 합니다"라며 신체 치수와 조건을 다 정해놓고 기도한 뒤 교회들을 찾아다니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앞길을 인도하시기를" 바란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겠습니까?

단 지파는 이름은 참 좋았지만, 결국 터무니없는 엉터리 지파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 지파에게 복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상 숭배에 있어서는 가히 원조 격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을 알고자 하지 않고, 하나님을 제대로 구하려 하지 않고 오직 자기 이익만을 추구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익에 대한 강한 욕망이 있으면 미끼를 덥석 물기 쉽습니다. 사람이 속는 이유는 내면에 강한 사리사욕이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을 간절히 찾다가 미얀마 북부로 간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장기 적출을 당하러 갈 생각은 없었지만 고수익 직장을 찾으려다 보니 속아 넘어가기 쉬운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추구가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라면 결코 쉽게 속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뼛속 깊이 자신만의 것을 구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사람을 번성하게 하는 신학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소한 일들의 본질을 똑똑히 깨달아, 그런 하찮은 일에 미혹되지 않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분주하게 살았는데 결국 미가의 신상을 만들어 놓고 여호와 하나님인 줄 착각하고, 모세의 손자를 세워두고 진짜 제사장인 줄 착각한다면 얼마나 헛된 일입니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이 징표나 응답의 증거를 찾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에게 그런 징표를 구하라고 하지 않는 것을 보셨습니까? 진정으로 증명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전하는 말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별하고 확인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며,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이 세상에 왔고, 이를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나 자기 이익을 앞세우는 순간, 하나님은 더 이상 첫 자리가 아니며 자신의 이익이 첫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장이 도리어 저주가 되기도 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가 "성장해야 합니다"라고 하면, 그는 "선생님, 저는 성장하려고만 하면 괴롭습니다"라고 합니다. 성장이 저주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장해야 합니다. 땅을 기업으로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얻어야 합니다. 번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번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추구가 아닙니다. 우리의 추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의 생명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기어이 우상을 만들어 섬기려 한다면 파멸할 뿐입니다. 비록 제사장의 예언이 잘 맞고 증거가 많을지라도 말입니다.

한 자매가 식사 자리에서 점쟁이를 만났습니다. 사실 그녀는 연애 중이었고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 점쟁이가 "지금 이 사람은 당신 남편이 아니오. 결혼은 절대 성사되지 않을 것이오. 당신 남편은 어떻게 생겼고 어떠어떠한 사람이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과 밥을 먹는데,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점쟁이가 말한 인상착의와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결국 그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삶은 완전히 망가졌고 철저히 파탄 났습니다. 문제가 끊이지 않았고 비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런 것을 믿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런 것에 기대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가증한 것입니다. 훗날 그녀가 우리 교회에 와서 들려준 이야기들은 온통 막장 드라마 같은 삶의 이야기였습니다.

단 자손이 제사장과 신상을 자신들의 신으로 세우다

단 지파는 제사장을 얻고 신상을 얻어 자신들의 신으로 삼았으며, 나가서 싸워 실제로 승리했습니다. 미가가 뒤따라와서 "어찌하여 우리 집 제사장과 신상을 빼앗아 갔느냐?"라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단 자손은 안면을 바꾸며 "어째서 못 가져간단 말이냐? 한마디만 더 해봐라"고 위협했습니다. 만약 미가가 한마디만 더 했다면, 흉포한 단 지파 사람들에게 칼침을 맞고 피를 흘렸을 것입니다. "네가 감히 내 신을 건드려? 한마디만 더 해봐!" 얼마나 기괴하게 들립니까?

미가는 은 천백 세겔로 신상을 만들었고, 돈을 벌었습니까? 번듯하게 숙소를 차려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그 집안의 재물신이었고, 온 마을까지 번영하게 만들었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참 신입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번영했을까요? 재물신이 그를 부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단 지파가 그 집안의 보물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가 섬기던 신이 참 하나님이었다면 사람이 빼앗아 갈 수 있었겠습니까? 나의 하나님은 우상이 아니며 내 마음에 계신 하나님이시니, 어떻게 빼앗아 갈 수 있겠습니까? 결코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과 저주에 대해 무지했기에 미가는 신상을 세우고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효과가 있었을까요? 분명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배후의 악령은 어떤 존재입니까? 요나단을 제사장으로 맞아들여 겉보기에는 참으로 신기해 보였지만, 이제 모든 것을 빼앗긴 후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훗날 미가는 우상 숭배로 인해 집안이 몰락했습니다. 아주 전형적인 결과입니다. 악령의 역사는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성공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게 만들 수도 있는 극도로 부패한 것입니다. 결코 이런 것들을 신앙의 증거로 삼지 마십시오.

단 지파가 미가의 우상과 제사장을 빼앗아 갔으니, 그 지파가 겪은 타락과 멸망은 또 얼마나 컸겠습니까? 후에 단 지파에 대해 살펴보니, 야곱과 모세가 단 지파에 대해 한 예언도 좋지 않았습니다. 배후에 있는 이 영들이 단 지파를 비참하게 몰아넣어 평안과 기쁨은 전혀 없고, 온통 파탄 난 삶뿐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결과는 아무것도 증명해 주지 못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전쟁에서 이겼다고 해서 그것이 무언가를 보증해 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저 귀신에게 놀아나고 영적 세계의 악한 것들에게 속아 넘어간 것에 불과합니다. 그 후로 그들은 요나단을 자신들의 제사장으로 극진히 섬겼고, 요나단의 후손들은 대대로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었으며, 신상과 에봇은 단 지파의 신이 되었습니다.

저도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시작했을 때, 처음부터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그대로 행하자.' 비록 황량하고 메마른 시기를 지나기도 했지만,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황량한 것은 문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공동체에서 여러분이 필기하고 기록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절대로 단순히 과제를 하듯 필기만을 위해 적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알아야 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무지해서는 안 되기에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하면, 오늘은 이런 환상을 보고 내일은 저런 예언을 받으며 모레는 또 다른 징표를 찾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게 되고,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것은 곧 비극의 시작이 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과 구원에 대해 명확히 알기를 권면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나 자기 자신으로 인해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견고한 반석이시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보좌에 앉으셔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십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각자 자기 잇속만을 구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징표와 우상을 얻게 될 것입니다. 헛된 신을 섬기며 이 세상에 와서 엑스트라처럼 헛되이 살다 가는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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