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一人信奉神,全家必蒙福,这句话怎么理解?
一人信奉神,全家必蒙福,有的好像蒙福了,有的好像没有蒙福。我们以《圣经》为借鉴,如果你是亚伯拉罕,这事就好办了,神因着亚伯拉罕的缘故纪念罗得,在倾覆所多玛、蛾摩拉的时候,却把罗得从那里带出来了。
所以,一人信奉神,全家必蒙福,我真的没有看到很多蒙福的例子,但反面的例子却不少,因为你的逻辑是:只要我信奉神了,就一定会蒙福。但我亲眼看见很多信主的人不得胜,这不毁了吗?很多基督徒也好,牧师也好,他们信不信主?信主。但是在他们身上看不见蒙福的样子,这让我心里非常感慨,也愿意付代价探索这种问题。
我终于搞明白了:原来亚伯拉罕的信,和他们的信不是一个信,如果我们都有像亚伯拉罕这样的信,不但全家蒙福,就是跟你八竿子挨不着的,或者能挨着一点的,神都会纪念他们,这事很重要。
为什么我们叫命定神学?因为“命定”这两个字是从亚伯拉罕来的,亚伯拉罕是活腻歪了,不知道活着干什么,所以他不断地寻求。那时候他也不认识神,一有空,就坐在门口的小板凳上不断的琢磨:哎呀,人为什么活着?活着到底是怎么回事?神就开始跟他说话:
耶和华对亚伯兰说:“你要离开本地、本族、父家,往我所要指示你的地去。我必叫你成为大国。我必赐福给你,叫你的名为大;你也要叫别人得福。为你祝福的,我必赐福与他;那咒诅你的,我必咒诅他。地上的万族都要因你得福。”(《创世记》12:1-3)
所以,我们的异象和使命里头有这么一句话:我们要成为地上万国万民的祝福!怎么成为祝福?就是要把人带到命定的里头。
我有一个信佛的校友,他写了一句很有意思的话,发在朋友圈里:为什么钱一天天变少,你就焦虑的不行,但是生命一天天变少,你却毫不在意呢?我就在底下跟了一句话:你说是为什么呢?他说:傻呗!
他虽然不是个基督徒,但是他看得比较开,也看得比较透。人到底为什么而活?这话很尖锐。如果你活着就是为了活着,那怎么可能成亚伯拉罕呢,是不是?如果你活着是为神而活,就会全然献上。亚伯拉罕将自己献上,这是比较容易的,但他竟然愿意将自己心爱的儿子以撒也献上给神。我告诉你:一个老爸愿意替儿子死的有很多,但愿意把自己的儿子也献上的却很少,因为这太难了,是不是?但这就叫有命定。
所以,一人信奉神,全家必蒙福,这样的谬论是不成立的。你观察一下就知道不是那么回事!我反而看到很多人信主以后,全家倒霉的有很多。正因为如此,我后来研究出一个结果:
你若听从耶和华你神的诫命,就是我今日所吩咐你的,谨守遵行,不偏左右,也不随从侍奉别神,耶和华就必使你作首不作尾,但居上不居下。(《申命记》28:13-14)
这句话你听得懂吗?你信靠神,你就要谨守遵行神的话,你若不谨守遵行,神就使你身居天下万民之下,在世上被抛来抛去。这是神的话,你读明白了没有?我想很多人应该是没有读过这些话,也没整明白。
Q2:老师,所罗门跟推罗王说的话,我觉得就是很普通的对话而已,怎么看出是很有智慧的,你能再讲讲吗?
所罗门说的话有没有威胁到推罗王希兰?没有。如果所罗门一开口就这样说:你得给我,你不给我,我就揍你!你说这叫有智慧吗?这不叫智慧。如果你说的话不软不硬,没有威胁,人家一读就懂,这就叫有智慧。
我就拿古代的“秦晋之好”来说吧,有一天,晋国的晋惠王被秦国的秦穆公给抓去了。大家有听过秦晋之好吗?是从这个秦国和晋国来的,他们两国经常通婚,结果这个晋惠王又浑又坏,经常出尔反尔,还想把这个秦穆公的土地给抢来。结果秦穆公一气之下发兵,不但打败了晋惠王,还把他给抓回来了。可是晋惠王的姐姐是秦穆公的老婆,抓来的也是他小舅子,这要怎么处置呢?秦穆公陷入了两难之间。
这时候,晋国的卿大夫就来跟秦穆公谈,怎么把他们的晋惠王给要回去。我告诉你,据说那是中国外交辞令高手的天花板,是不是?弟兄姐妹们要慢慢学说话,别一上来就跟人家杠,那不是办法。我们来看所罗门和希兰是怎么谈的,所罗门说:我父亲建殿,但是神不让他建。为啥呢?因为那时候仇敌还没有服在他脚下。如果所罗门说:现在仇敌都服在我的脚下!这样讲话肯定不太好听。
听明白了吗?如果是你,一定会这样说:我父亲都没把仇敌服在脚下,现在你看,四面的仇敌都被我摁住了!你觉得好听不?不好听。你看人家所罗门怎么说的?
现在耶和华我的神使我四围平安,没有仇敌,没有灾祸。(《列王纪上》5:4)
厉害!人精!你读出来没有?如果你跟老板讲话没有智慧,一张口就像个倔种似的,你说怎么可能好?
我定意要为耶和华我神的名建殿,是照耶和华应许我父亲大卫的话说:我必使你儿子接续你坐你的位,他必为我的名建殿。(《列王纪上》5:5)
所罗门把前提这么一列出来,我问你:“耶和华神”这三个字在推罗王希兰的心里是什么分量?很有分量,是不是?也就是说,从这句话里头,所罗门不但把他父亲大卫抬上来了,然后他又把自己抬得比大卫还高!所罗门的意思是:你以为你是我父亲大卫王的粉丝,就觉得很了不起?大卫王都比不上我所罗门!听出这味道来了吗?这是第一点。
所以求你吩咐你的仆人在黎巴嫩为我砍伐香柏木,我的仆人也必帮助他们,我必照你所定的,给你仆人的工价;因为你知道,在我们中间没有人像西顿人善于砍伐树木。(《列王纪上》5:6)
第二点,我必照你所定的给你仆人工价,意思是你自己出个价吧,是不是?我问你:所罗门知不知道推罗王会出什么价?希兰缺粮食他能不知道吗?是不是?
假如说你跟人家谈判,人家缺稀土你能不知道吗?这工厂都开不了工了,武器都造不出来了,可以谈判。对方的大豆要卖出去,我们这边又需要大豆,是不是?大家都知道。这所罗门言简意赅,但却非常清晰地表达了交易的基本的规则,是不是?
大家一定要知道,不是跟人家杠上了那才叫智慧,杠上了那叫愚蠢。如果我们当中还有人喜欢跟人家杠,像个杠精似的,“唰”的一下脸就掉下来了,肯定坏事,这就是没有智慧,不会说话,是不是?
我们当中还有一些人,遇到事不会处理,不会说话,把自己整得可被动了,也气得够呛,为啥?因为没有智慧。听明白了吗?所以,我们在跟人交往的时候,如果你真的学会了“智慧”这两个字,很多事就没有了。
有一些弟兄姐妹问我:“老师,如果你遇到我这种状况你怎么办?”我听完了以后,我说:“啥状况?”他就讲给我听。我说:“我遇不到。”他说:“你咋就遇不到呢?”我不往那儿走,我能遇得到吗?大家能听明白吗?很多人会把关系整拧巴了,但我不往拧巴了整,我能遇到吗?听明白了吗?
我就很感慨,很多人愚昧在哪?就以为全世界的人都跟他一样。但是我得告诉你,所罗门跟你不一样,如果这事让你整,还不知道整成啥样了!
Q3:老师,《列王纪上》第九章提到所罗门建造耶和华殿和王宫,这两所二十年才完毕了。(推罗王希兰曾照所罗门所要的,资助他香柏木、松木,和金子)所罗门王就把加利利地的二十座城给了希兰。希兰从推罗出来,察看所罗门给他的城邑,就不喜悦,说:“我兄啊,你给我的是什么城邑呢?”他就给这城邑之地起名叫迦步勒,直到今日。希兰给所罗门一百二十他连得金子。所罗门后来是不是没有用神的智慧了?
至于希兰喜不喜悦这事,关键还是他们没把价钱谈好,是不是?大家要知道,所罗门割了二十个城邑给希兰,那为什么?因为他用的材料除了粮食之外不够,还要给别的。大家要记住:永远不要站在占便宜的角度去做事儿。听明白了吗?这不是一个很好的习惯。但也不能老被人家占便宜,有时候你心里头也过不去。
不是所罗门后来没有用神给的智慧,实际上所罗门做事还是很厉害的。你看希兰说:“我兄啊,你给我的是什么城邑呢?听话要听音,这肯定是在找茬,有点吹毛求疵。我想,人家有自己的看法是很正常的,咱们就别去评论这事儿了。
Q4:老师,以前我听有人说大卫是唯一被称为合神心意的人,现在听老师讲所罗门比大卫更有智慧,对吗?
其实,大卫仍然是最合神心意的人。你知道为什么吗?因为大卫到死都行在神的心意当中。所罗门后来被败坏了,他又悔改了,所以他写了《传道书》。但是大卫的智慧肯定比不上所罗门的智慧,因为所罗门的智慧是神赐的。
虽然大卫的智慧也是神赐的,但是神赐给所罗门的智慧,在《圣经》中说是前无古人,后无来者。不是说更讨神喜悦,但是所罗门的智慧的确是超越所有的古人和超越所有的后人。
愿神祝福大家!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열왕기상 5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 하고, 신하들도 다 배치되었으며, 행정 관리도 잘 정돈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도 평안히 거주하며, 솔로몬의 명성도 널리 퍼졌습니다. 그러나 성전 건축에 대해 솔로몬은 이리저리 궁리해 보아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이번 장의 제목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와 기회를 주셔서 성전 건축을 위한 목재와 돌을 준비하게 하시다'입니다. 이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왜일까요? 목재를 운반하려면 뱃길과 산길을 거쳐야 하는데, 성전을 지을 예루살렘의 그 장소까지 어떻게 운반하겠습니까? 그렇게 큰 돌과 큰 나무를 어떻게 운반하겠습니까? 오늘날에도 그렇게 큰 물건을 운반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인데, 하물며 3천 년 전에는 어떠했겠습니까? 3천 년 전의 솔로몬은 근심이 태산 같았는데,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 두로 왕 히람이 사람을 보냈습니다.
두로 왕 히람과 다윗의 깊은 관계
두로 왕 히람이 평소에 다윗을 사랑하였으므로 솔로몬이 기름 부음을 받고 그의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되었다 함을 듣고 그의 신하들을 솔로몬에게 보냈으니 (열왕기상 5:1)
다윗과 두로 왕 히람의 관계는 매우 좋았습니다.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두로 왕 히람이 평소에 다윗을 사랑할 정도였습니다. 이를 흠모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누군가를 흠모해 본 적이 있습니까? 다윗은 두로 왕 히람의 우상이었습니다. 왜 두로 왕 히람의 우상이 되었을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핵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다윗이 쓴 시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두로 왕이 다윗의 시를 좋아한 것은 유덕화의 팬이 유덕화를 흠모하고, 다오랑(刀郎)의 팬이 다오랑을 흠모하는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이 다오랑이라는 가수는 자기가 직접 곡을 쓰고 노래하는데, 예를 들어 <서해정가(西海情歌)> 같은 명곡을 많이 썼고 노래도 참 좋습니다. 그러니 두로 왕 히람의 마음속에 다윗의 이미지는 너무나 훌륭하고 위대했던 것입니다.
둘째, 다윗은 무예가 뛰어났습니다. 두로 왕 히람은 그를 엄청나게 숭배했습니다. 다윗은 백전백승의 장군이었고, 처세술도 대단히 뛰어났습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다윗은 두로를 자신의 식민지로 만들지 않았고, 두로 왕 히람과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두로 지역은 아마도 식량이 나지 않는 곳이었던 반면, 이스라엘 다윗의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라 곡식이 많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일이든 곡식이든 생산된 것을 두로 왕 히람에게 팔았습니다. 그리고 두로 왕 쪽에서는 건축 자재가 났습니다. 식량은 먹을 수 있지만 건축 자재는 먹을 수 없으니, 서로 아주 훌륭한 거래를 한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과 두로 왕 히람은 상호 윈윈하는 협력 관계였습니다.
이것이 훗날 솔로몬에게 매우 좋고 견고한 관계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절묘합니까? 솔로몬이 궁에서 미간을 찌푸리며 묘안도 떠오르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도 임하지 않아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어젯밤에도 잠을 잘 못 잤는데 오늘도 여전히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지기가 외칩니다. "보고드립니다! 왕이시여, 두로 왕 히람의 신하가 알현을 청합니다." 솔로몬이 말합니다. "어서 들라 하라, 어서 들라!" 두로 왕 히람이 보낸 외교관은 솔로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다들 철저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두로 왕 히람 쪽에서도 이미 다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서둘러 접견했는데, 만나자마자 이야기가 아주 잘 통했습니다. 단순히 술과 고기, 음식이 좋아서가 아니라, 국빈관 같은 곳에서 융숭하게 대접하며 먹고 마시면서 순조롭게 대화를 나눈 것입니다.
히람의 외교관이 말했습니다. "왕의 신하들을 우리 히람 대왕께 보내 이 일을 말씀하십시오. 저희 지역은 바로 그런 물건들이 특산물입니다. 원하시는 것은 아무 문제 없습니다." 솔로몬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물건들을 어떻게 운반합니까?"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아,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저희에게는 전문가들이 있고, 원래 이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솔로몬이 "얼마나 굵은 나무가 필요한데..."라고 하자, 그 사람은 "문제없습니다. 저희에게는 그것보다 더 굵은 나무도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이야기를 듣고 즉시 알아차렸고, 서둘러 외교 사절단을 파견하여 관계를 다지고 우리가 하려는 일을 성사시켰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이것이 어디서 온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에서 온 것입니다. 지혜만 있었을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그에게 좋은 기회도 주셨습니다! 기회가 따르지 않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사고 싶다고 해서 상대방이 무조건 팔아줄 것 같습니까? 희토류를 사고 싶다고 해도 안 팔고, 반도체를 사고 싶다고 해도 안 팔면서 '너 어떻게 할래? 제재를 가하겠다'라고 하면 어쩌겠습니까? 그러고는 '아, 네가 네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으려고 그 물건이 필요하구나? 그럼 가격을 두 배로 올려야겠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온갖 일이 다 일어납니다. 그러나 관계가 좋으면 달라집니다. 관계가 좋으면 터무니없이 값을 올리지 않고, 값을 올리지 않으니 일이 쉽게 풀리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상대방에게도 특별한 필요가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두로 왕 히람에게 자재 준비를 요청하다
솔로몬이 히람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도 알거니와 내 아버지 다윗이 사방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의 원수들을 그의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기다렸나이다 이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안식을 주시매 원수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에 내가 너를 이어 네 자리에 오르게 할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신 대로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 하오니 당신은 명령을 내려 나를 위하여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베어내게 하소서 내 종과 당신의 종이 함께 할 것이요 또 내가 당신의 모든 말씀대로 당신의 종의 삯을 당신에게 드리리이다 당신도 알거니와 우리 중에는 시돈 사람처럼 벌목을 잘하는 자가 없나이다 (열왕기상 5:2-6)
솔로몬은 두로 왕 히람에게 자재 준비를 도와달라고 요청하며 자신의 패를 다 보여주었습니다.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 다윗 왕을 이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려 합니다.' 이렇게 패를 다 보여주면 상대방이 바가지를 씌우거나 약점을 물고 늘어질까 봐 두렵지 않겠습니까? 두렵지 않겠습니까? 사람의 관점에서는 당연히 두려울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은 어떻게 말했습니까? 솔로몬은 '내 아버지 다윗이 사방의 전쟁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진솔한 말 아닙니까? '내 아버지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는 내 아버지보다 더 대단합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수들을 발아래 굴복시키셨고, 이 일이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두로 왕 히람이 다윗이 어떻게 승리했는지 알고 있었을까요?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조건을 제시하자 두로 왕은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무엇을 알아차렸을까요?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일이니 함부로 굴어서는 안 되겠구나,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큰일 난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다윗이 어떻게 승리했습니까? 그의 하나님 덕분이었습니다. 다윗이 싸워 승리한 이야기를 두로 왕 히람은 훤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다윗 왕국은 참으로 강력하여 주변 나라에 명성이 자자했고, 다윗은 군대를 파견하여 주변 여러 나라에 주둔시켰습니다. 그러나 두로에는 주둔군을 두지 않았는데, 서로 관계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두로는 어떤 면에서 볼 때 매우 강성했음에도 다윗 왕조와는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 왕조와 비교가 되지 않았기에, 실질적으로는 다윗 왕조와 솔로몬 왕조의 보호 아래 있었고 덕분에 주변 사람들도 감히 두로를 괴롭히지 못했습니다. 주변의 작은 나라들처럼 솔로몬이나 다윗이 정복하고 군대를 주둔시킨 곳도 있었습니다. 패배시켰으니 주둔하는 것입니다. 마치 오키나와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니 일본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누구에게는 덤벼도 오키나와의 미군에게는 감히 덤비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두로 왕이 듣기에 '당신의 하나님의 일이라면 곧 나의 일입니다'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일이 잘 풀리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요청할 때는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이 말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했습니다. '이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안식을 주시매 원수도 없고(천하무적이 되어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으며), 재앙도 없도다. 내가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대로 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 하노라.' 아주 명확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당신은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이러이러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정하는 대로 삯을 다 지불하겠습니다. 당신이 부르는 대로 다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솔로몬이 바보라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아무렇게나 값을 부르게 놔두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신 날이며, 사방에 평안이 있고 원수도 재앙도 없는 때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외교적 언사에는 또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우리에게도 당신이 원하는 것이 많이 있고, 나는 당신의 물건이 필요하고 당신은 나의 물건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당신들 식량 필요하지 않소?'라고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시고 또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형제자매님들도 말하는 법을 정말 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는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할까요? 태어났을 때는 '엄마'라는 말조차 못 하지 않았습니까? 태어나자마자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어른들이 "엄마 해봐, 엄마" 하니까 배운 것입니다. '엄마'라는 말도 배움에서 나온 것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여권 만들어서 외국으로 날아갈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처세술과 대화법은 다 배워야 합니다. 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중국 고대 역사에 기록된 인물들은 모두 말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진시황의 신하들도 대단했고, 장의(張儀) 같은 사람들도 말솜씨가 뛰어났습니다. 외교 협상에 나서는 사절들은 외교적 수사를 매우 훌륭하게 구사하고 완급을 잘 조절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형제자매님들도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저처럼 읽어보면, 이것들이 매우 수준 높은 외교적 언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히람이 거래를 수락하고 자신의 조건을 제시하다
히람이 솔로몬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이르되 오늘 여호와를 찬양할지로다 그가 다윗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사 그 많은 백성을 다스리게 하셨도다 하고 이에 솔로몬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이 사람을 보내어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거니와 내 백향목 재목과 잣나무 재목에 대하여는 당신이 바라시는 대로 할지라 내 종이 레바논에서 바다로 운반하겠고 내가 그것을 바다에서 뗏목으로 엮어 당신이 지정하는 곳으로 보내고 거기서 그것을 풀리니 당신은 받으시고 내 원을 이루어 나의 궁정을 위하여 음식물을 주소서 하고 (열왕기상 5:7-9)
얼마나 분명하게 말합니까? '목재가 산속에 있으니 와서 가져가시오, 산에 둘 테니 알아서 가져가시오!'라고 했다면 솔로몬이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제시한 조건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항구까지 배달해 줄 테니, 그다음은 당신이 알아서 하십시오'라는 것입니다. 문앞까지 배송해 주고, 그 나라 내륙으로 운반하는 것은 당신들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대신 당신도 내 소원을 들어주어 내 왕실을 위해 식물을 주십시오.' 이것입니다.
사실 솔로몬 왕조, 다윗 왕조와 두로 왕조 사이에는 줄곧 이런 거래가 있었습니다. 다만 솔로몬이 필요로 한 목재는 일반 가정집의 작은 헛간을 짓는 목재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한 목재였습니다. 돌 역시 작은 헛간 기초를 놓는 작은 돌이 아니라 거대한 돌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결국 거래 조건이 제시되었고, 목재를 주는 대신 식물을 받기로 했습니다. 목재 얼마에 식물 얼마를 바꿀 것인지 실무자들이 척척 합의하고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고, 솔로몬과 히람은 화친하여 서로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리하여 요구한 대로 히람에게 밀 몇만 고르와 맑은 기름 몇십 고르를 주며 대규모 거래가 성사되었습니다.
상호 조약을 맺다
상호 조약을 맺어 계약이 체결되었고 거래가 성사되었습니다. 두로 왕 히람이 필요한 식량을 공급받고, 솔로몬이 필요한 건축 자재를 공급받으며 서로 조약을 맺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상호 조약을 맺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아야 합니다. 조약(언약)은 단순한 계약이 아닙니다. 조약은 매우 격조 높은 단어이고, 계약은 비교적 낮은 차원의 단어입니다. 언약을 맺는 것과 계약서를 쓰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이 언약의 내용에는 건축 자재와 식량 외에도 다른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관계를 맺고 조약을 맺는 법을 차근차근 배워야 합니다. 서로 언약을 맺는 것과 계약서 한 장 쓰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언약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관계가 아주 좋아야 비로소 '조약'을 맺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나토)처럼 말입니다. 그것을 '조약'이라고 부릅니다. 오늘날 그 약정이 여전히 유효한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조약을 맺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솔로몬 왕은 주님을 믿었습니까?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두로 왕 히람도 믿었습니까? 비록 그가 입으로는 여호와를 찬양한다고 말했지만, 그가 정말 여호와가 누구인지 알았을까요?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있었을까요? 사실 별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너도 주님을 믿고 나도 주님을 믿는다', 혹은 '너는 안 믿고 나는 안 믿는다'라는 말에만 얽매이지 마십시오. 제 생각 체계에는 어떤 내용들이 있는데, 이를 나누었을 때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남자친구를 사귈 때, 장난삼아 사귀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것 아닙니까? 저는 '크리스천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해 물음표를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만으로 덜컥 결혼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언약, 즉 결혼 서약은 깊이 살펴보고 맺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정말 제대로 된 사람인지 철저히 검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그 사람이 히람과 같은 사람인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솔로몬이 그와 맺은 조약은 혼인 언약은 아니었지만, 이 역시 언약이었습니다. 언약이라는 것은 한 차원 더 높은 것입니다.
이에 히람이 솔로몬의 모든 원대로 백향목 재목과 잣나무 재목을 주매 솔로몬이 히람에게 그의 궁정의 음식물로 밀 이만 고르와 맑은 기름 이십 고르를 주고 해마다 그와 같이 주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고로 히람과 솔로몬이 친목하여 피차에 약조를 맺었더라 (열왕기상 5:10-12)
기억하십시오,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 없이 멍청하게 있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사람은 반드시 지혜로워야 합니다. 지혜가 있었기에 이 조약을 훌륭하게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차근차근 배우십시오. 조금씩 배워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말로 지혜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이 다소 부족합니다. 상대가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다 믿어버립니다. 크리스천 중에는 사기꾼이 없을 것 같습니까? 예전에 어떤 사람이 제게 와서 "목사님, 저 크리스천입니다. 절 믿어주세요"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그만두십시오,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습니까? 단지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만으로요? 이마에 인두로 "나는 크리스천이다"라고 석 자를 새겨놓아도 안 믿을 텐데, 내가 뭘 보고 믿겠습니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이는 "우린 동향 사람이니 절 믿으셔야죠"라고 하기에 "그만두십시오"라고 했고, 어떤 이는 "친구인데 어떻게 날 못 믿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면 절대로 맹신하지 마십시오. 사기 치는 사람들은 대개 친구나 동향 사람과 얽혀 있는 경우가 많으며, 해외에서는 이런 일이 아주 흔합니다.
솔로몬이 역꾼과 감독들을 조직하다
솔로몬 왕이 온 이스라엘 가운데서 역군을 불러일으키니 그 역군의 수가 삼만 명이라 솔로몬이 그들을 한 달에 만 명씩 번갈아 레바논으로 보내매 그들이 한 달은 레바논에 있고 두 달은 집에 있으며 아도니람은 감독이 되었고 솔로몬에게 또 짐꾼이 칠만 명이요 산에서 돌을 뜨는 자가 팔만 명이며 이 외에 그 사역을 감독하는 관리가 삼천삼백 명이라 그들이 일하는 백성을 거느렸더라 이에 왕이 명령을 내려 크고 귀한 돌을 떠다가 다듬어서 성전의 기초석을 놓게 하매 솔로몬의 건축자와 히람의 건축자와 그발 사람이 그 돌을 다듬고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재목과 돌들을 갖추니라 (열왕기상 5:13-18)
보십시오. 솔로몬이 일꾼들과 감독들을 조직했습니다. 지혜가 조금이라도 없었다면 그 3만 명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었겠습니까? 지혜가 없었다면 7만 명의 짐꾼과 산에서 돌을 뜨는 8만 명을 어떻게 통솔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들 중 많은 이들은 시돈의 장인들이었고 그발 사람들이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혜를 모두 경영과 관리에 쏟아부었습니다.
사실 제 마음속에는 늘 간절한 바람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님들을 모두 훌륭한 관리자로 훈련시키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의 이러한 고심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단순한 노역자나 단순 작업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여러분이 뛰어난 관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지금은 인공지능(AI)의 시대입니다.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며, 특히 단순 노동직은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날 스마트 팩토리에 가보면 불도 켜져 있지 않습니다. 로봇은 조명이 필요 없기 때문에 불을 켤 필요가 없습니다. 로봇 팔이 쉼 없이 일하고 있는데, 사람은 어디 있습니까?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람은 기계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게다가 기계는 병에 걸리지도 않고, 감정 기복을 부리지도 않으며,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사람이 관리를 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얼마 전 우리 중에 인공지능 분야에 종사하는 분이 제게 말하길, 인공지능이 아무리 똑똑해져도 결국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은 인간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관리해야 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핵심입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님들이 교회 안에서 단순히 신학적인 것뿐만 아니라 관리와 경영의 영역까지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은 관리를 잘하십니까, 못하십니까?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관리하겠습니까? 우리는 참으로 사고방식을 전환해야 합니다. 사실 제 안에는 매우 강한 위기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분명히 아는 한 가지는, 사람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축복이라 할지라도 도울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사람이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다시 하나님께 떠넘기고, 하나님이 또 맡기시면 또 떠넘기는 등 책임을 핑퐁 게임 하듯 떠넘겨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다스리고 관리하라고 하셨는데 "괜찮습니다, 하나님께 맡겨드리니 하나님이 관리하십시오"라고 한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종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종입니까?
어떤 분들은 "목사님, 그럼 어떻게 배워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먼저 첫째로 사람 됨됨이(인성)를 배우고, 둘째로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 됨됨이와 일 처리 능력을 갖추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출발점에 불과합니다. 그런 다음 사람을 관리하고 일을 관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 됨됨이와 일 처리는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고, 사람을 관리하고 일을 관리하는 것은 타인을 이끄는 것입니다. 대략적인 틀을 말씀드렸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제가 어떻게 훈련을 받겠습니까? 그런 지식도 없는데요"라고 하실 것입니다.
저 자신은 사람을 대하는 법, 일 처리하는 법, 사람과 일을 관리하는 법을 잘 알지만, 이것을 남에게 가르치려 할 때는 막막하고 정리가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자료를 어디서 찾아야 하나? 내가 스스로 정리한 것은 고전이 될 수 없는데'라고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중국 고대의 지혜를 여러분과 나누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서양의 뛰어난 지혜가 있다면 그것도 나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동양인과 서양인의 구분이 아니라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구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만 존재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구분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 되시겠습니까? 저도 조급해지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급해하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제가 조급해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스로를 지혜로운 사람으로 훈련하고, 단순 작업자가 아닌 관리자로 성장하는 것은 형제자매 여러분 각자의 몫입니다. 천천히 나아갑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그분의 크신 능력을 나타내사, 우리가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얻게 되기를 원합니다.
솔로몬과 히람의 일꾼들이 목재와 돌을 준비하다
성전을 지으려면 자재를 잘 준비해야 합니다. 자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까? 솔로몬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너무나 기뻤을 것입니다. 바라던 대로 척척 이루어졌으니 말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거대한 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 하며 죽을 만큼 근심했는데,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 돌들은 오늘날 여러분이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에 가서 보더라도, 현대 기술로도 결코 간단한 공사가 아닙니다. 하물며 그것을 산 위로 운반하는 일이었으니 어떠했겠습니까? 바다로 띄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 산 위로 끌어올리는 일이었기에, 사람 혼자 맨몸으로 산을 오르기만 해도 몹시 힘든 일입니다. 솔로몬의 깊은 근심거리가 해결되어 목재와 돌이 잘 준비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면 기초를 튼튼히 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저의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왜 감사할까요? 예전에 교회를 개척할 때는 잘못된 방식으로 배웠기 때문입니다. 매 주일 예배 때마다 온갖 맛있는 음식과 음료를 잔뜩 준비했습니다. 제가 돈을 내고 힘을 쓰면서 음식을 풍성하게 차려놓으니, 몰려드는 사람들은 죄다 밥만 축내는 식충이들뿐이었고 제대로 된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좋은 목재와 좋은 돌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좋은 재목과 보석 같은 돌이 아니라 그저 풀과 나무와 짚에 불과했습니다.
그 후 교회를 개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제게 이런 지혜를 주셨을까요? 교회를 완전히 새롭게 개혁하고 허물었습니다. 옛것을 완전히 허물어버린 후에 재건했습니다. 무엇을 재건했을까요? 이전에는 통닭, 오리구이, 소시지 같은 좋은 음식을 무료로 마음껏 먹게 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과일 한 접시로 줄였고, 나중에는 과일마저 없앴으며, 종국에는 생수 한 병을 마시려 해도 동전 투입구에 동전 한 닢을 넣게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교회는 사람들에게 헌신과 봉헌을 훈련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극도로 이기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를 축복하고 무엇을 축복하겠습니까?
오늘날 우리 형제자매님들이 우리 공동체에 와서 복을 받지 않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기적인 사람은 복을 받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저는 목회자인 절친한 친구에게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헌금할 자격조차 쉽게 주지 않는다네. 헌금의 의미를 깨달아야 비로소 자격을 주지."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이런 교회가 재정이 부족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런 교회는 결코 재정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이것이 하나님의 요구이며, 하나님은 가난하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고 원수들을 우리 발아래 굴복시키십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며, 하나님께서 친히 지혜와 총명을 부어주셔서 모든 것을 예비하셨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곳곳에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사랑하는 백성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어 줄 수 있는 교회를 찾게 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중화권 사명신학(华人命定神学)은 사람들의 사명을 온전케 세우는 교회이며, 그러므로 이곳은 다른 것이 아니라 최고의 재료만을 하나님께 바치는 곳입니다.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큰 돌을 다듬는 것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어렵습니다! 어디서 그런 사람들을 찾겠습니까? 그러나 이처럼 보배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며 오늘 저는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형제자매 여러분이 진심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도 자부심을 느끼지 않습니까? 우리 공동체에서 한 사람의 성도로 있는 것은 그 기준과 요구가 매우 높습니다. 오늘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위기감도 들지만, 여러분을 바라보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며칠 전 어떤 목사님을 만나 우리 교회의 일정을 나누었습니다. 월요일에는 소그룹 기도회, 화요일에는 전교인 기도회, 수요일에는 성경공부 후 기도회, 목요일에는 교구 기도회, 금요일에는 성경공부 후 기도회, 토요일에는 소그룹 및 교구 모임, 주일에는 주일예배가 있다고 하니 그 목사님이 어리둥절해하며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라고 묻더군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할 때 부족함 없이 모든 좋은 것을 채워주심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복된지 모릅니다. 사명을 가진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늘의 길을 달려갈 수 있으니 참으로 좋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전 세계 곳곳에서 좋은 재료를 예비하고 계시며, 수많은 히람을 통해 좋은 재목을 보내주고 계십니다.
모두가 훌륭한 재료이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할 최상의 자재들입니다. 백향목과 잣나무, 거대한 기초석과 같이 훌륭한 재료들입니다. 어떤 이는 기초가 되고, 어떤 이는 기둥이 되는 등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품은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탁월합니다. 며칠 전 단체방에서 어떤 형제자매님들이 나눈 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곳으로 인도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이런 교회를 찾아 헤맸습니다." 왜일까요? 먹고 마시는 단순한 육적 나눔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을 선포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 목사는 우리 교회가 문을 닫은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예전의 명칭과 달리 지금은 '사명신학'이라는 이름을 쓰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명을 가진 자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곳곳의 보물을 가져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 귀한 보배이기 때문이며, 우리 교회가 참으로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그 목사님도 우리가 개발한 모든 콘텐츠를 전면 공개하는 것을 보고 깊이 감탄했습니다. 우리의 자료를 활용하는 작은 교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대단히 많습니다. 한번은 우리 웹사이트 서버가 다운되자 수많은 작은 교회에서 "언제 복구됩니까? 저희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분들이 우리의 콘텐츠를 활용해 사역을 이어가도 괜찮습니다.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넓고 관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신학입니다. 우리와 같은 교회는 결코 궁핍해지지 않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솔로몬의 기회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성전의 기초를 놓을 목재와 돌 역시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최상의 좋은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계 각처에서 사명 있는 백성들을 일으키고 계심을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이 사명을 굳게 붙잡고 하나님의 눈에 보배로운 존재, 성전 건축을 위한 최상의 재료가 되어 성전의 기초석이 되고 성전의 기둥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