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我很喜欢讲《创世记》三十二章,因为我里面的挣扎跟雅各里面的挣扎一模一样。有多少次,想行神的旨意,可真的是筋疲力尽,付不起这代价。只能够收拾收拾我里面留下的那么一丁点的信心,再次往前奔跑。有一次,在唱一首赞美诗歌,里面有一句歌词是将残的灯火祂不熄灭,我老有感触了!因为神就是常常让我们经历这将残的灯火,就剩下奄奄一息的、一丁点的信心,其它的全是黑暗。不容易啊!熬过了一天又一天,末了,终于看见了神的荣耀。
Q1:老师,雅各到最后也没有像约瑟、大卫、亚伯拉罕一样那么厉害,他怎么能算得着神的祝福呢?就是单单因为每一次危机神都拯救他吗?是不是我们的人生也是这样,活着就是面临这么多的挑战,没有一天的好日子,直到追求到永恒的生命?
其实雅各的信心超越了以撒的信心,以撒的信心超越了亚伯拉罕的信心。因为他们是踩在先人的肩膀上往前走的。大家千万不要以为我们是凭空来的,我们是踩在人家的肩膀上往前走的。
雅各身上有一个了不起的特性,就是很多事他都不那么在乎。为什么能做到这一点?那是因为他在信心里面依靠神。不是每一次危机神都拯救他,而是每一次危机都是信心和肉体的较量。在属灵的事和属肉体的事上较量,最后,雅各胜过去了。所以,雅各其实超越了以撒、亚伯拉罕。但是,约瑟、大卫、撒母耳,全是照着信心的路走的。绝对不是像某些人说的,认为信主就是平安、开心和喜乐。
如果你想自己独善其身,也善不了;如果你想追求自己活得好就完事了,你也好不了。因为神要让你走在信心当中。一个人不想遇见事,却遇见事,不是很辛苦吗?会不会遇见事,不是我们说了算,但是,遇见了以后可以说了算的一件事就是得胜。
我就是要坚持到得胜,坚持到在永恒的生命里见主的面。因为在这世上有苦难,在耶稣基督里有平安。你说,这不也是平安吗?这平安是信心的较量。表面上一点儿也不平安,但是,在耶稣基督里,因为我们有永恒里的盼望,所以,这些东西不能撼动我们里面的情绪。约瑟、大卫、亚伯拉罕和雅各一生都充满了挑战,但是,都是得胜的人。
Q2:老师,我也常常挣扎。听了老师讲的,我边听边哭,我们怎么能够像雅各、老师一样胜过这世上的杂事?
很好的问题!如果你不为了这些东西活着,这些事就都成了小事或者不是事;如果我们都是为了这些东西活着,一碰就抓狂,就没有办法得胜。我们常常挣扎,要靠着圣灵的能力,治死肉体的的恶行。但是我们常常跟自己较量,里面是一种争战的状态。我们要把肉体的恶行、邪情的私欲按在地上摩擦,不再照着自己的意思行。这说起来容易,做起来难。现在就从小事上开始得胜,然后在大一点的事上得胜;一开始在自己的事上得胜,接下来在服侍上也得胜。
在人这一生当中,拦阻我们的就是属肉体的本性。我们要靠着圣灵,把肉体的邪情私欲钉在十字架上。顺着圣灵,收永生;顺着肉体,收败坏。什么叫做顺着圣灵?就是照着神的话去行。我们离神的话还差得很远。神的标准不像我们所说的那些标准。我们的标准根本不是亚伯拉罕、以撒、雅各和约瑟的标准。
尤其是在我们当中,有些人觉得自己活得好平安、好喜乐、好感恩,神给这个恩典、那个恩典就挺好了;到公园里散散步,吃一顿,喝一顿,孩子考大学考得挺好,就开心了。这些是标准吗?不是的。如果人活在这些东西的里头,那是一个非常危险的状态。
Q3:老师,有天下雨,我开着摩托车载我儿子在路上走。那时赶时间,开得比较快,前面的车突然停了,我赶紧刹车,但将要撞到前面的小车时,突然稳稳地停住了。请问我经历的是神的同在吗?
是神的同在。但是又能说明什么呢?不要养成坏习惯,为什么要赶时间呢?又不是赶黄泉路。要养成平静安稳的好习惯,晚了就晚了吧。如果我告诉你这是神的同在,你就会觉得太好了,下次你就会再多快一点。如果真的出事了,就真的是与神同在了。不要养成这种赶时间的恶习。
Q4:我的同事和她初二的女儿起冲突,女儿要出门,她死活拦着不让,女儿硬生生的踹妈妈两脚,第二天妈妈还做些好吃的给女儿,给女儿说好的。这是一种处理矛盾的方法和技巧,还是一种体贴肉体的溺爱呢?
咱不谈这个行不行,她整那玩意儿我没学过,也不知道。你要想跟着她学,你就观察她学完的结果。要么就跟着神学,跟着《圣经》里的教导学,好吗?
Q6:老师,你得新冠病毒的时候,有点气还在祷告。我很想知道你在面对生死关头是怎么祷告的?怎么胜过去的?当时心里是怎么想的呢?难道你能放下华人命定神学吗?
这个问题大家常问。我当然能放下,这个东西不能成为我的辖制。你以为我会很在乎吗?有的人就问:老师,你创立了华人命定神学,你死了以后谁来管?不用管,神会亲自来管。神会在万民当中再来拣选人。不是我托住华人命定神学,是神托住。
亚伯兰罕、以撒、雅各、大卫死了世界照走。这个世界谁死了,神都不会在乎,就是我死了,也不会在乎。我只在乎我在活着的时候,好好走神让我走的路。就像使徒保罗说的,该打的仗我打胜了,该走的路我走完了,该守的道我守住了。完事了,没什么好怕的。我告诉你,如果我当时怕死,我就肯定死了。怕死的人不但没办法得胜,还会把鬼招来。大家千万不要怕死!
Q7:老师,亚伯拉罕,以撒,雅各,约瑟去世的时候会给孩子祝福,我们平时可以学习这样的方式给家人祝福吗?
大家学这个要干什么呢?因为这爷四个是先知,这个先知给那些子孙的祝福,看起来不太像祝福,说这是个野狼,那个是野驴的。一般的人看起来,觉得这是爷四个给后代祝福。其实我告诉你不是。如果你像约瑟,给约瑟的祝福就是你的;如果你像西缅,给西缅的祝福就是你的。
十二个支派所得着的,实际上不是指着他们个人说的,那是给我们看的,是要让我们知道,如果你做了流便,你的日子就会像流便;你做了西缅,你的日子就会像西缅;你做了约瑟,你的日子就会像约瑟。
Q8:老师,祝福亚伯拉罕的必蒙福,是因为被祝福的人是神喜悦的人。如果我们身边的朋友,我们祝福他,但却不知他是否是神喜悦的人,这样我们会蒙福吗?如果他不是神喜悦的人,我们会怎样?
很好的问题。我给你讲几个例子。有个人超级倒霉。他是做金融的,帮人投资理财。做了二十个项目,其中十九个赚钱,只有一个不赚钱,结果人家给他告到法庭,让他去赔。就是做什么都倒霉。来到咱们当中就跟我一把鼻涕一把泪地讲。我一听,这咒诅挺深啊,就带着他祷告。
我跟他说:你应该不是一个奉献的人。他还跟我火了。他说自己是一个奉献的人。我说:那你怎样奉献的?他说奉献给穷人。他能不倒霉吗?《圣经》上怎么教的?把从神来的奉献给神!你不能给穷人。所以,问这个问题的姐妹要知道,祝福亚伯拉罕的蒙祝福。如果你祝福以扫会怎么样?你就跟以扫一样受咒诅。
你问这个问题有点偏,你想祝福你身边的这个朋友,你怎么祝福?你给他钱?给他吃的喝的?那叫祝福吗?比如说:这个孩子不听话,很淘气,然后妈妈跟他道歉,第二天给他做好吃的,那叫祝福啊?你真的知道什么是祝福吗?问题就在这,我们经常逮着个名词就瞎用。可能我给你浇了一瓢冷水,如果这些你都说不清楚的话,我看就算了。
那什么叫祝福亚伯拉罕的蒙祝福?就是跟亚伯拉罕有同样的命定。你身边的朋友,你给他点吃的喝的,你觉得很了不起啊?这块地震捐点钱,那块地震捐点钱,把你家里的房子卖了都捐给灾区好不好?你如果不懂祝福,你慢慢琢磨吧。这是功课呀,这个都不懂,那你问这个问题做什么呢?你来到咱们当中这么久了,你学啥来着?真的需要被训一顿。
有的人以为给某人一点钱叫作天父的爱,那叫纯扯。大家慢慢琢磨。使被掳的得释放,被压制的得自由,那叫做祝福人。耶稣怎么干,你就怎么干。把人带到神的祝福里去,带到神的真理里边去。如果概念不清,还在哪儿探讨,也不知道在那探讨什么。
Q9:老师,基督徒有永生的盼望,有人说还有来世吗?
不知道。弟兄姐妹,咱不问这种问题好不好?我说了也不知道对和错。我们可不可以探讨一些你在世上能不能活出神的荣耀这样的问题。什么来世不来世,咱们好像走错门了。其实人一定要小心,关注的那些点都是很懵很晕的,说出来谁也不知道,也说不太清楚。咱们开始一点点调整。
Q10:老师,我离婚带着大儿子多年,大儿子控制不住玩手游,他长的很瘦小,很喜欢打篮球,高个子的人打篮球犯规的时候,他就生气,但是又骂不过别人,想通过游戏发泄情绪。想请老师帮助指点一下,我该怎么做来牧养他?
这是个复杂问题。大家知不知道牧养是什么?我给大家讲一下牧养。第一,要把他从鬼的辖制当中释放出来;第二,把他肉体的邪情私欲给对付掉;第三,让他能够认识神的话;第四,让他把神的话给落实出来。这叫做牧养。那不是什么人都能够牧养的。你给他吃的行,但你要修理对付他就不行。
咱们能不能分辨哪一些东西是鬼,哪一些东西是人?我猜你连这一些最基本的东西都不知道。如果你不会装修,然后你非得装修,装修完了还不如不装,装完了还得拆。你连牧养这个词都没搞明白,听风都是雨,那才要命呢。
小孩子在这种状况下心灵是非常扭曲的,扭曲以后就识别善恶,然后就招鬼,鬼就把他往邪门歪道上带,因为他小的时候,做父母的就没好好管教过他。你自己的生活过得乌烟瘴气,很多时候真的是要好好对付自己。你跟自己较劲不得胜,跟前夫较劲不得胜,跟自己现任的老公较劲不得胜,跟自己孩子较劲也不得胜,怎么办?你真的要做一个得胜的人。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창세기》 32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중국인 명정신학에서는 ‘승리’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우리는 늘 승리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간증할 때 우리 교회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그냥 ‘승리의 교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승리의 교회라는 의미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데, 사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하니라.(《창세기》32:28)
사람의 일생은 고난으로 가득합니다. 주님을 믿으면 평생 평안하거나, 좋은 사람이 되면 평생 평안할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성경의 주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평안을 원한다고 해서 평안이 여러분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평안을 원하면 평안을 얻고, 돈을 원하고 돈을 사랑하면 돈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쉬웠겠습니까?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일생은 사실 고난으로 가득하며, 매번의 고난이 우리가 승리하는 사람인지 실패하는 사람인지를 결정합니다.
야곱의 일생은 고난으로 가득했다
여러분, 야곱의 일생이 순탄했다고 절대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으로서 평생 편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고, 먹고 싶으면 먹고 놀고 싶으면 놀고 싶다면 틀림없이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야곱은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고 고향 하란을 떠난 때부터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버지 이삭의 삶도 쉽지 않았고, 거의 매일 고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고난 가운데 있었고, 《창세기》 32장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지만, 돌아가는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길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고, 야곱은 가까스로 외삼촌 라반의 손에서 도망쳤습니다. 당시 라반은 많은 하인들을 거느리고 칼과 무기를 들고 야곱을 죽이려고 쫓아왔으며, 야곱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계셨고, 한 번의 꿈으로 라반의 계획을 깨뜨리셨습니다.
라반과 그의 아들들은 원래 야곱이 모은 재산을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이미 야곱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머릿속의 생각도 달라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진 사람이 살아야 할 삶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삶이 평생 평안하고 아주 기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완전히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좋든 싫든 사람의 일생은 고난으로 가득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이유입니다!
야곱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가까스로 외삼촌 라반의 손에서 벗어났지만, 이제는 형 에서의 화가 풀렸는지를 걱정해야 했습니다. 야곱은 미리 사람을 보내 형 에서에게 편지를 전하게 했지만, 사실은 상황을 알아보려 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가나안 땅으로 막 돌아갔는데 형 에서가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그들을 몰살한다면, 야곱은 평생 헛수고한 것이 됩니다. 그런데 알아보니 형 에서는 400명의 하인들을 거느리고 기세등등하게 그들을 향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아브라함이 데리고 가서 그돌라오멜을 물리쳤던 군사보다 82명이나 더 많은 수였습니다. 야곱은 그 소식을 듣고 두려워서 벌벌 떨었습니다. 제가 야곱 같은 삶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삶은 우리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선택할 수 있다면 저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늘 마음을 졸이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찬물을 한 바가지 끼얹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승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다른 좋은 선택은 없습니다. 여전히 승리해야 하지만, 자기 힘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가족의 파괴와 모든 것을 잃는 일이었습니다. 외삼촌 라반에게서 가까스로 한 번 위기를 넘겼는데, 정말 늑대 굴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에 고난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야곱의 이런 삶의 방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한 가지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승리의 길입니다. 중국인 명정신학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승리입니다! 어떻게 승리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야곱에게서 배우십시오. 야곱이 어떻게 승리했는지 보고 우리도 그렇게 승리해야 합니다. 제가 야곱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매우 깊이 공감합니다. 제 안에도 야곱과 비슷한 느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앞에는 늑대가 있고 뒤에는 호랑이가 있는 것 같은 위기에 직면해 왔습니다. 제 일생의 길은 모두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계시면 삶이 쉬워진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하시지만, 그 길도 걷기 쉽지 않습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려 할 때 형이 400명을 데리고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야곱을 환영하러 온 것이 아니라 복수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앞에는 에서가 있고 뒤에는 라반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가도 뒤로 물러가도 에서나 라반이 그를 가만두지 않을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이 당시 야곱의 처지였고, 승리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선택하든 목회자가 되기로 선택하든, 그것은 가장 위대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와 원수와 싸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원수를 선택한 것입니다. 승리하든 승리하지 못하든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습니다. 저는 한 가지 길을 정리했습니다. 인생은 여러 가지 고난으로 가득하며, 승리 외에는 갈 길이 없습니다. 멸망하든지 승리하든지 둘 중 하나이며, 승리하려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생사를 건 고난에 직면했다
이번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실 어느 때나 생사를 건 고난에 직면했습니다. 야곱이 집을 떠날 때 형이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외삼촌 라반에게 갔을 때는 하나님의 기적으로 외삼촌의 재산을 빼앗아 오게 되었습니다. 외삼촌은 이를 갈며 분노했습니다. 야곱이 도망하지 않았다면 아마 며칠 안에 외삼촌이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야곱을 겹겹이 포위했을 것이며,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외삼촌 라반의 말대로라면 모든 것이 그의 것이었습니다. 딸들도 그의 것이고, 딸들의 자녀들도 그의 것이며, 야곱 집안의 소와 양도 그의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었고, 평생 그의 밑에서 노예로 살아야 했으며, 따져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 무슨 이치를 따질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일생 동안 생사를 건 고난에 직면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한 사람과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였더라.(《창세기》 32:7-8)
여러분은 이것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를 이길 수 없을 때는 위험을 둘로 나누는 수밖에 없습니다. 절반을 잃는 것이 전멸하는 것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도 그다지 효과가 좋지는 않았고,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직면한 야곱의 마음은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돌아가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되고, 앞으로 나아가면 이길 수 없었습니다.
야곱이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창세기》 32:9-11)
이 기도가 어찌 이렇게 믿음이 없어 보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야곱을 무시하며, 믿음의 기도라면 가슴을 치며 ‘와서 부딪혀 보라. 나는 칼과 창도 뚫지 못한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야곱의 기도는 진실했습니다.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하나님께 에서의 손에서 건져 달라고 구한 것입니다. 에서가 야곱과 그의 아내와 자녀들을 모두 죽인다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모든 것이 헛되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창세기》 32:12)
사람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없으면 무너집니다. 기도하려면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북쪽으로 가면 외삼촌 라반의 집이 있고, 남쪽으로 가면 가나안 땅에 형 에서가 있었습니다. 야곱이 그때 동쪽으로 가기로 했다면,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다른 아들들이 모두 동쪽으로 갔습니다. 서쪽으로 가도 됩니다. 어느 황토에나 사람이 묻히는 법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 생사를 건 고난에 직면한 것은 결코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에서의 400명이 칼을 갈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생사의 갈림길을 마주하든지, 아니면 탈영병이 되든지 해야 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탈영병은 많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저는 너무 지쳤습니다. 잠시 물러나 쉬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성경 어디에 물러나 쉬는 논리가 있습니까? 야곱은 형 에서가 죽은 뒤에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나중에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하나님께서 돌아가게 하지 않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일생 동안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고자 한다면 이 역시 생사를 건 고난입니다. 앞에는 늑대가 있고 뒤에는 호랑이가 있어 진퇴양난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제가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걸어갈 수 없습니다. 이번에 생사를 건 고난에 직면한 야곱의 기도는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선하고 아름다운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반드시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죽더라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려 했습니다.
저는 늘 여러분에게 하나님과 사람과 겨루어 이기는 야곱과 같은 성품을 가지라고 격려합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약속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섬기면서 계속 나아가든지 물러나든지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승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선택합니다. 어떤 환자든, 어떤 상황이든 제가 섬길 기회가 있다면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길을 붙들기 원한다면, 저는 반드시 여러분을 섬기고 승리 안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 성품입니다.
야곱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저는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제 안에도 야곱과 같은 느낌이 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한 자매가 한 목회자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 자매는 그 목회자가 자신을 데리고 기도하여 승리하게 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저도 과거에 그 목회자를 섬긴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그의 아이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 모든 것을 걸고 그를 섬겼습니다. 섬기면서 그에게 제가 어떻게 그를 섬겼는지, 앞으로 그도 어떻게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하는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가 정말 귀신에게 억압받는 아이를 데리고 그 목회자를 찾아갔을 때, 그는 귀신을 쫓아내려면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자신은 그 대가를 치를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찾아가라고 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생사를 건 고난에 직면할 때마다 승리를 선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야곱의 성품입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귀신은 저를 매우 미워합니다. 얼마 전 독일에서 어머니를 보러 온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 자매는 어머니가 제 기도를 따라 하는 것을 보고 저에게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자매는 십 대 소녀였을 때부터 편두통을 앓았고, 20년 동안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편두통이 매우 심해서 아플 때면 머리를 벽에 부딪칠 정도로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제가 그 자매를 데리고 5분간 기도하자 완전히 풀려났습니다. 그 자매는 매우 혼란스러워했습니다. 많은 기름 부음을 받은 대형 목회자들이 자신을 위해 기도해도 낫지 않았고, 자신이 참석할 수 있는 치유와 축사 집회에 모두 참여해도 효과가 없었는데, 왜 저에게 오니 낫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야곱이고 승리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은 여러분을 위해 기도했지만, 기도를 마치면 돌아서서 가 버립니다. 여러분이 나았는지는 그들에게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자매가 저를 만난 것은 복이었습니다. 그날 기도해도 낫지 않았다면 다음 날 계속 기도했을 것입니다. 다음 날에도 낫지 않으면 완전히 나을 때까지 섬겼을 것입니다. 그 자매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저도 절대 그 자매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하나의 성품이라고 느끼십니까? 이런 성품은 귀신도 두려워합니다. 나중에 그 자매의 어머니가 한 형제를 우리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당시 그 형제는 거의 실명할 지경이었고, 지금도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그가 제게 전화했을 때 저는 마침 운전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운전하면서 그를 데리고 기도했습니다. 10개월 동안 기도한 끝에 그 형제의 눈이 나았습니다. 어느 날 그 형제가 약 30킬로그램이나 되는 과일 한 상자를 들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기차역에 차를 몰고 가서 그를 맞이하자, 그는 저를 끌어안고 통곡했습니다. 저도 울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이 정말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이곳에 하나님과 사람과 겨루어 이기는 승리의 성품을 가진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10개월 동안 섬긴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게 이런 성품이 어디서 왔는지 묻는다면, 후천적인 선택인지, 깨달음이 열린 것인지 아닌지 저도 모릅니다. 제가 아는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이 사람은 반드시 귀신의 억압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사역이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이런 간증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것은 한 가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로 승리입니다. 사실 저도 아주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 안의 믿음을 다시 추스르고 계속 견딥니다.
어느 해에는 제 일이 거의 끊겼고, 직장에서도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피해망상증에 걸린 한 아이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에 번갈아 그 아이를 데리고 기도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고위 관리직이어서 근무 중에 사람을 데리고 기도해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가족에게 전화해서 저녁에는 집에 가서 식사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가족이 언제 끝날 일이냐고 묻기에, 오늘 안 되면 내일, 이번 달 안 되면 한 분기, 한 분기 안 되면 1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가 건물에서 뛰어내리려 했고 너무나 고통스러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셋째 날 밤, 귀신이 제가 이렇게 계속하겠다는 말을 듣고 그 피해망상증에 걸린 아이의 입을 통해 “저 사람을 만난 게 정말 재수 없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환자는 바로 그날 밤 해방되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단번에 환자가 낫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저도 마오쩌둥의 가르침에 따라 지구전을 벌였습니다. 귀신은 결국 이 싸움을 이기지 못합니다. 이것이 승리하는 성품입니다. 제 마음속에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훗날 제가 많은 사역의 열매를 가지고 예수님 앞에 서서, ‘충성되고 선한 종’이라는 칭호를 얻고 싶습니다. 영원 안에 영광의 면류관이 저를 위해 예비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수고가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나중에 직업을 잃었지만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직업을 잃었기 때문에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에게 재정은 어떻게 하느냐고 묻습니다. 정말 힘든 일입니다. 갚아야 할 주택 대출도 그렇게 많고, 지난해 세금도 내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일생에 고난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매번의 고난은 영원 안에서, 영적인 세계에서 제게 기록으로 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제가 재정적인 곤경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 궁금해합니다. 전혀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이 없는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쌀알 반 톨만 한 축복을 떨어뜨려 주셔도 저는 평생 누릴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너무나 필요로 한다
저는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너무나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고난에 직면하고, 근본적으로 싸워 이길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없어도 되지만 하나님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 밤에 야곱이 거기서 유숙하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암염소 이백 마리와 숫염소 이십 마리와 암양 이백 마리와 숫양 이십 마리와 젖 먹이는 낙타 삼십 마리와 그 새끼들 그리고 암소 사십 마리와 황소 열 마리와 암나귀 이십 마리와 그 새끼 나귀 열 마리라 각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의 종들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거리를 두게 하라 하였더라.(《창세기》32:13-16)
야곱도 자신의 방법으로 사람들을 몇 무리로 나누었습니다. 한참 애를 썼지만 별로 효과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냐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내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도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말하고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창세기》32:17-20)
야곱은 사람들을 먼저 보냈지만 자신은 숨어서 가지 않았습니다. 이런 느낌은 참 견디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먼저 죽으러 보내고 자신은 대열 뒤에 숨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본성에 따르면 당연히 자신의 안전을 먼저 생각합니다. 바보처럼 대열 앞에 뛰어나가 총알을 막겠습니까? 사실 이것은 죽음이 두려운 것입니다. 얼마나 뱀처럼 지혜롭습니까? 모든 일을 계획한다는 것은 위험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안전은 자신이 차지하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여러분이 앞에 나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뒤에 남고 이유를 묻지도 못하게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열심히 기도하며 영적 전쟁을 하라고 하고, 자신은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모가 집에서 난리를 칠 테니까요. 이 말이 조금 익숙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마음속의 고난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가면 죽을까 두렵고, 가지 않으면 체면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믿음의 시험은 매번 고난입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창세기》32:24-25)
이때 갑자기 황량한 들판에 한 사람이 나타나 순식간에 야곱 앞에 섰습니다. 야곱은 그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몰랐을까요? 그 전에 이 장의 시작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군대를 만났고, 그곳의 이름까지 지었습니다. 그 이름은 두 군대와 만났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강을 건너지 않고 있는데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마치 《서유기》와 같습니다.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창세기》32:1-2)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건너가라고 하셨지만 야곱은 마음이 두려워 계속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몇 차례 오고 가는 동안 야곱의 마음은 매우 복잡했습니다. 이런 고난은 우리 모두가 겪습니다. 제가 사람을 섬길 때에도 마음속으로 자주 생각합니다. “하나님, 이 사람은 제가 낳은 자식도 아닌데 왜 제가 빚진 사람처럼 해야 합니까? 정말 속상합니다.”
나중에 귀신이 제게 진심 어린 말을 하며 여기서 잘난 척하지 말고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사실 제 마음속에는 그 사람을 섬기는 것이 매우 싫었습니다. 귀신이 말한 ‘그 사람’은 귀신이 제가 섬기고 있는 사람 안에 들어가 그의 입을 통해 제가 섬기고 있는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이었습니다. 이 귀신은 제 속마음을 폭로하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육신을 따라 섬기면 정말 귀찮고 손을 털고 떠나고 싶지만, 저는 제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섬기고 싶지 않은 이런 감정에게 물러가라고 명령했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말로 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 깨달음은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했고, 몇 차례 겨룬 끝에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안 되겠다 싶으면 절대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셔야 야곱은 건너가겠다고 했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야곱의 다리가 절뚝거리게 된 것이 무슨 축복이냐고 묻습니다. 그의 두 다리가 너무 빨리 달렸기 때문입니다. 허벅지 관절이 어긋난 뒤에는 지팡이를 짚고 달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자신의 두 다리를 의지했지만 이제는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대열의 앞에 나아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사람이 더 이상 자신을 의지하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야곱은 참 좋은 생각을 했습니다. 에서가 첫 번째 무리를 죽이면 ‘살아남은 산이 있으면 땔나무가 없을까 두렵지 않다’고 생각하며 자신은 재빨리 도망칠 수 있고 에서도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제는 도망치고 싶어도 달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축복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쉽게 세워진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승리를 건 싸움이며 믿음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또 의지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죽으면 죽는 것입니다.
저는 전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이라는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죽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제 친구가 관 속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옆에서 그의 아내에게 “사실 제가 그보다 먼저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그는 오미크론에 걸렸고 저는 델타에 걸렸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델타는 장난이 아니며 정말 사람을 죽게 할 수 있습니다. 걸리고 나면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저는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죽으면 죽는 것이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죽지 않았습니다. 누워서 숨이 조금 붙어 있는 동안 기도했고, 그렇게 버텨 냈습니다. 하지만 제 친구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자 사람들은 제가 과시한다고 하며 모두 웃었습니다.
사람은 세상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너무나 필요로 합니다. 자기 방법으로는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 믿음이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사람과 겨루어 모두 이기는 것, 그것이 믿음의 싸움입니다. 하나님과 씨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기 생각대로 계속 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길을 가기를 원하십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굴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계속해서 증명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너무나 필요로 한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이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창세기》32:26-28)
어떻게 승리했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굳게 붙드는 것이 승리입니다. 그때부터 하늘과 땅 사이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과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우레처럼 제 귀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때부터 제 마음속에는 사람과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말이 늘 울리고 있습니다.
승리해야 축복을 얻는다
중국인 명정신학의 논리는 매우 엄격합니다. 중국인 명정신학은 승리의 신학이며, 승리해야 축복을 얻습니다. 성경에서 어느 축복이 승리를 통해 얻어지지 않았습니까?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쳤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묶어 장작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 마음속에서 정말 치열하게 싸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드릴 것인가, 아니면 이삭을 남겨 두고 하나님께 드리지 않을 것인가? 믿음의 길이 그렇게 쉽다고 생각합니까? 믿음의 길은 승리의 길이고, 승리의 길은 믿음의 길입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십자가에 올라가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아니라, 그분이 기꺼이 자원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이것이 승리입니다!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이 제 나눔을 듣고 모두 승리하는 성품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죽든 살든 생사를 꿰뚫어 보고 영원 안의 축복을 얻어야 합니다. 제가 이것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는 계속 걸어갈 수 없습니다. 세상의 작은 일들을 위해서만 살면서 이리저리 얽매이고 손익을 따진다면, 그렇게 사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야곱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의 형은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차지했지만, 야곱이 부유해진 것은 그의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에서가 부유해진 것은 장자의 권리를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나중에 형이 야곱의 재산을 빼앗아 갔지만, 야곱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승리가 있겠으며, 승리가 없는데 어떻게 축복이 있겠습니까! 믿음은 반드시 영원의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하며, 승리해야 축복을 얻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을 마음에 깊이 새기십시오. 하루 종일 “왜 나는 아직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까? 왜 아직 얻지 못했습니까?”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에게 “너는 언제 승리할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머릿속에 축복만 생각하고 매번 싸움에서 패배한다면 어떻게 축복을 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막 축복을 주시려 할 때 여러분이 패배하고 물러나며, 머릿속에는 온통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만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승리하지 않으면 정말 축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승리하려면 야곱을 본받으십시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승리하는 사람이 축복을 얻습니다. 여러분은 승리했습니까? 인생의 고난에 직면할 때, 여러분의 고난은 자녀일 수도 있고, 가정이나 사업, 혹은 아버지의 재산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다툴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승리만이 길입니다!
야곱의 승리
야곱이 한순간에, 손가락을 튕기듯 승리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집에는 아이가 다섯 명이었습니다. 어릴 때 누군가 어머니에게 꽈배기를 먹고 싶다고 말하면, 어머니는 그 아이의 뺨을 꼬집으며 “이게 바로 꽈배기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얼굴이 금세 얼얼해지고, 얼얼함과 꽃 모양이 생겼습니다. 당시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해서 아무것도 없었는데도 꽈배기를 먹고 싶어 했습니다.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식욕을 이겨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공부만 시작하면 머리카락을 제외하고 온몸이 아프다고 합니다. 그러면 승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일을 만나 아무것도 분명히 말하지 못하고 그저 함부로 말하면서, 다른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어제 한 자매가 제게 보낸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주일에 그 자매의 아들이 몇몇 아이들과 함께 한 영어 목회자의 설교를 들었는데, 주제는 《성령을 모독하지 말라》였습니다. 그런데 그 목회자는 마지막까지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귀신을 쫓아내지 않는다면 그들 자신이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들인데, 이 아이들은 오히려 그 목회자를 변호했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고난에 자주 직면합니다. 그 안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까? 제가 든 예들이 아주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상황에서 여러분의 마음에 일어나는 고난과 싸움은 매우 실제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버린다면 얻을 것입니다.
야곱은 어떻게 승리했습니까? 그는 어릴 때부터 영원 안의 영광을 추구했습니다. 사실 영원 안의 영광이 정확히 무엇인지, 땅의 모든 나라와 백성에게 축복이 되는 것이 밥을 먹게 해 주는지 그는 분명히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어머니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아버지와 결혼했고, 야곱을 낳았습니다. 형 에서는 이 사명과 장자의 명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고, 야곱은 어렵게 그것을 얻었습니다.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얻은 뒤 무엇에 쓸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오히려 더 많은 고난이 찾아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야곱은 일생 동안 형과 외삼촌 라반을 이겼고, 심지어 집안의 분쟁도 이겨 냈습니다. 네 아내 사이에 분쟁이 있었지만, 야곱이 레아와 라헬과 자녀들, 그리고 가축을 데리고 라반의 집에서 도망칠 때에는 마침내 하나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얼마나 많은 싸움에서 자신을 이겼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건너가라고 하셨지만 그는 건너가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과 씨름하다가 결국 굴복했고, 대열의 앞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야곱의 이런 승리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입니다. 조금 고생하고 고난을 겪는 것은 정상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런 고난과 저주로 인한 고난이 같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런 고난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며, 영적인 세계에서 마귀의 권세를 흔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승리하는 백성이 되라고 여러분을 격려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작은 일들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사람은 하나님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을 자신의 생명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분으로 모시지 않는다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여전히 자신의 추구와 많은 얽매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또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또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란 이들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니라.(《마가복음》4:14-19
사람이 조금만 박해를 받아도 포기한다면 그것은 모두 승리하지 못한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 절대 물러서지 마십시오! 영어 단어 중에 retreat라는 말이 있습니다. 번역하면 물러나 수양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retreat가 없습니다. 매번 앞으로 돌진합니다! 제가 겪었던 혼란 가운데에는 퇴수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퇴수회가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없지만 다른 교회에서 온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강사를 초청하여 3일이나 5일 동안 어떤 호텔에 들어가 먹고 마시며 놀고, 함께 설교를 듣는 것을 퇴수회라고 합니다. 그것은 퇴수 캠프일 뿐이며, 퇴수회를 마치면 타락으로 들어갑니다!
한때 두 자매가 퇴수회에 참석했는데, 돈을 아끼기 위해 한 방을 함께 사용했습니다. 한 사람은 불을 켜야 잠을 잘 수 없었고, 다른 한 사람은 불을 끄면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잠잘 때 불을 켤지 끌지를 두고 두 자매는 서로 양보하지 않고 크게 다퉜습니다. 그것은 퇴수회가 아니라 화산논검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추구하는 것은 퇴수회가 아니라 승리입니다. 할 일 없이 호텔에 가서 먹고 마시며 노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사람과 겨루어 승리하기 시작합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고, 자신의 뜻대로 행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합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32장 성경 본문
32:1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32: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이는 두 군대라는 뜻이라〕
32:3 야곱이 세일 땅 곧 에돔 들에 사는 형 에서에게로 사자들을 자기보다 앞서 보내며
32:4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주하며 오늘까지 있었나이다
32:5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를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32: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32: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한 사람과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32:8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32:9 야곱이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32:10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32: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32: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32:13 그 밤에 야곱이 거기서 유숙하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32:14 암염소 이백 마리와 숫염소 이십 마리와 암양 이백 마리와 숫양 이십 마리와
32:15 젖 먹이는 낙타 삼십 마리와 그 새끼들 그리고 암소 사십 마리와 황소 열 마리와 암나귀 이십 마리와 그 새끼 나귀 열 마리라
32:16 각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의 종들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거리를 두게 하라 하였더라
32:17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냐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32:18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내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32:19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도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말하고
32:20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32:21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유숙하였더라
32: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32: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의 소유도 건네고
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32: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32:26 그 사람이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32: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32:28 그 사람이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32: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2: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32:32 그런즉 이스라엘 자손들이 허벅지 관절에 있는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오늘날까지 이르니 이는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힘줄을 쳤음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