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여러분은 우리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 매우 흥미롭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수백만 자로 기록하지 않으시고, 몇백 자의 아주 짧은 분량으로 사람이 복을 받고 오래 살 수 있는 기본 법칙을 설명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일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십계명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십계명은 구약의 것이고, 우리는 이미 신약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절대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구약도 하나님의 말씀이고 신약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구약은 사람이 잘 살아가면 복을 받을 수 있는 법칙을 나타내고, 신약 역시 잘 살아가면 복을 받을 수 있는 법칙을 나타냅니다.
복을 받는 것은 사람이 잘 살아가는 핵심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일을 관찰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복을 받고 어떤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합니다. 복을 받은 사람은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지만, 복을 받지 못한 사람은 날마다 애쓰고 또 애써도 잘 살아가지 못합니다. 사람의 일생은 정말 이상해서, 아무리 보아도 반드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께서 사람이 잘 살아가도록 주신 법칙을 지키고 행하며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이 열 가지 법칙을 어깁니다. 그 결과 어떤 사람은 잘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잘 살아가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신명기》 5장을 읽기 시작하면서 십계명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제가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십계명은 오늘날에도 적용됩니까?” 많은 사람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십계명은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법칙을 설명합니다. 이것을 실천하며 살아낸다고 해도 기껏해야 저주를 받지 않는 아주 낮은 수준에 머무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신약 안에 살고 있으며, 십계명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십계명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내는 것과는 아주 큰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십계명을 아주 높은 수준의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십계명은 가장 기본적인 법칙이며, 기껏해야 합격선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내려면 십계명을 훨씬 뛰어넘어야 합니다. 오늘 형제자매들은 신약 안에서도 어떤 경우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십계명의 규범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지켜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듣고 배우며 지켜 행해야 합니다
첫 번째: 듣기
모세가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너희는 듣고 배우며 지켜 행하라.”(《신명기》 5:1)
사람이 듣지 못한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정말 알아듣지 못하겠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사람이 들은 내용이 자신이 원하는 것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이렇게 되기를 원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나는 저렇게 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사람은 “하나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셔야죠”라고 생각하다가 “저는 알아듣지 못하겠어요”라고 말합니다. 사실 알아듣고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일입니다.
나중에 저는 “나는 몰라요”, “나는 못 해요”라는 말이 아주 좋은 핑계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부부가 이렇게 대화합니다. “당신이 밥 좀 해.” “나는 못 해. 이건 나를 탓할 수 없어.” 그러면 일이 단번에 해결됩니다. “못 한다면 당신을 곤란하게 하지 않을게. 다른 사람에게 시킬게.” “내 옷 좀 다려 줄 수 있어?” “나는 못 해.” “그럼 못 하는 거지 뭐.” 이런 상황은 매우 많습니다.
오늘 우리는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알아듣지 못할 수 있겠습니까?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사람을 해치려고 거짓 증언하지 말라”는 말씀을 어떻게 알아듣지 못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알아듣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 배우기
여러분은 듣고, 배우며, 지켜 행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알아듣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알아듣지 못하면 배우면 됩니다. 나중에 저는 많은 사람이 “나는 몰라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그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10%는 알아들었고, 또 20%는 알아들었습니다. 그런데 10%를 모르면 “나는 못 알아들었어요”라고 말합니다. 사실 자신이 90%를 알아들었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설령 대부분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해도, 여러분은 여전히 어느 정도는 알아들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부분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배우면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배우기를 매우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배우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배우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형제자매들은 모두 한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듣기만 해서는 대략 5%를 얻을 수 있지만, 배우면 95%에 이를 수 있습니다. 배우는 과정에서 지켜 행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이 세 가지 기본적인 태도를 길러야 합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기
듣고, 계속해서 듣습니다. 둘째, 계속해서 배웁니다. 셋째, 계속해서 실천합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의 핵심 이념이며, 우리 교회의 핵심 가치입니다.
얼마 전 제가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에 대해 언급했는데,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니케아신경》을 인정하지 않으시고, 《사도신경》도 인정하지 않으시네요. 저는 단체방에서 나가겠습니다.”
사실 저는 한 번도 그것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단지 핵심적인 요소를 말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사도신경》도 읽고 《니케아신경》도 읽는데,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셨고,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믿습니다.” 저는 이 일이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이것은 단지 입으로 말하는 기술에 불과합니다.
제가 여러분과 함께 성경을 공부할 때 발견한 한 가지 특징은 반드시 자신의 삶과 연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도신경》을 읽은 뒤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저도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삶 가운데 실천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 결국 허풍을 떠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반드시 이런 허풍을 떠는 나쁜 습관을 제거해야 합니다. 허풍을 떠는 행동은 매우 악한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옳으면 “옳다” 하고, 아니면 “아니다”라고 하십시오. 그보다 더하는 말은 악한 자에게서 나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대로 행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부터 형제자매들은 이 관점에서 변화되기 시작해야 합니다.
얼마 전 저는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며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개성이 강한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전도하여 주님을 믿게 한 뒤, 어머니는 지금까지 수년 동안 주일예배를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제가 20년 넘게 예배에 빠지지 않는 성격도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한번은 어머니가 교회의 동역자와 함께 《출애굽기》를 성경공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출애굽기》의 이야기를 아주 많이 설명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뒤 저는 어머니에게 작은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내용은 실천으로 연결되지 않아요. 기껏해야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를 설명한 것뿐이에요.”
우리가 성경의 이야기를 그 자체로 설명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되겠습니까? 해석한 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헛되이 말한 것입니다. 형제자매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규례와 법도를 선포하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듣고, 배우며, 지켜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계시하신 말씀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언약은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모두와 세우신 것이라(《신명기》 5: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죽은 뒤에 그와 언약을 맺으셨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이미 죽은 이삭이나 야곱과 언약을 맺으셨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두 그들이 살아 있을 때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다시 말해 성경에 기록된 일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의 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제목도 “살아 복을 받고 오래 살 수 있는 기본 법칙”입니다.
만일 죽은 뒤에 천국에 가는 일에 관한 것이라면, 적어도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천국에 간다고 말씀하신 것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잘 살아가고 그렇지 못한 것은 복이 있느냐 없느냐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복이 있느냐 없느냐는 살아 있는 사람과 관련된 일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사람은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고, 육신이 죽은 뒤에도 하나님께서는 계속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살아 있을 때 귀신이 사람과 함께했다면, 죽을 때에도 분명히 귀신이 사람과 함께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성경이 신약과 구약 전체로 이루어진 책이며, 신약과 구약은 모두 사람에게 살아 복을 받는 법칙을 말해 주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살아 복을 받는 법칙
살아 복을 받는 법칙은 매우 중요합니다. 형제자매들은 오늘 자신이 그저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십계명은 가장 기본적인 법칙이며, 이 십계명도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 세워진 것이지 죽은 사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과 언약을 세우는 일은 모세 시대에 이미 분명하게 선포되었습니다. 반드시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에 온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낸다면 세상에 속한 것들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 전 한 형제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다리가 부러졌다면 병원에 가서 뼈를 맞춰야 하나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요!” 그러자 그는 제 대답에 매우 만족해하면서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하는 이런 치유와 축사 사역은 저는 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저도 말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어떤 사람이 계속 다리를 부러뜨리고, 또 허리를 부러뜨리고, 또 목을 다친다면 그 사람은 정말 의사가 필요하겠지요.” 사실 사람이 살아서 복을 누린다면 의사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있는 두 종류의 사람
오늘 형제자매들은 이 세상의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뉜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한 종류는 복을 받은 사람이고, 다른 한 종류는 저주를 받은 사람입니다. 나중에 저는 복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매우 잘 살아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너무나 잘 살아가서 잘 살지 못하고 저주받은 사람들을 “화나 죽게” 만들 정도입니다.
잘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에게 한두 가지 좋은 점이 있다고 찾아내고는 자신이 그래도 잘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자신에게 일곱, 여덟 가지 좋지 않은 점이 있는데도, 굳이 그 한두 가지를 붙들고 자신을 마비시키는 것입니다.
사람의 내면은 매우 분명해서 자신이 복을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 있을 때 복을 받지 못한다면, 저는 그들에게 한마디 권하고 싶습니다. 더 나은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오래 살며 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사람이 잘 살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자신의 마음속에 장부가 있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이 돈이 많다고 해서 판단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돈이 많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돈이 아주 많아도 잘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얼마 전 저는 고향에 갔다가 우리 지역에서 매우 유명한 사찰에 들렀습니다. 전에 한 가정이 있었는데, 제가 그들을 도와 집 안의 우상을 제거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들은 우상을 다시 그 사찰로 가져다주었습니다.
사실 사찰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매우 부유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부유한 사람들은 왜 출가했을까요? 상당한 자극과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매우 부유했는데 어떤 일을 겪고 결국 출가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도 매우 부유했지만 재난을 겪은 뒤 세상을 달관했다며 그 사찰에 들어갔습니다. 나중에는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렇게 했고, 그 결과 그 사찰은 매우 커졌습니다.
제가 이런 일들을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좋지 않은 일을 만나 잘 살아가지 못하면 다른 답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출가는 하나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출가해서 잘 살아갈 수 있다면, 여러분이 잘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십계명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십계명이 사람이 살아 복을 받고 오래 살 수 있는 기본 법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 전 저는 싱가포르에서 제가 일하던 학교의 한 학생을 만났습니다. 그 학생은 악한 영에게 매우 심하게 억압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학생을 데리고 기도했습니다. 나중에야 그 학생의 가정 배경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학생의 이모 집에는 신상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학생의 어머니가 이모 집에 놀러 갔다가 샤워실에서 갑자기 죽었습니다. 이모는 언니가 죽은 것을 보고 배를 갈라 자살하려 했지만, 다행히 응급처치를 받아 살아났습니다.
이 가문에는 슬픈 일이 매우 많았습니다. 사실 그들은 이 기본 법칙을 몰랐던 것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나를 따라 수련하면 영생을 얻고, 죽은 뒤에는 이렇게저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하더라도 너무 믿지 마십시오.
성경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영원하신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는 것이며, 살아 복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 십계명을 어겼을 수 있습니다. 십계명을 어기면 곧바로 저주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저주를 받은 사람은 잘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시고 우리의 질고를 짊어지셨기 때문에 우리가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믿은 뒤에도 십계명을 어긴다면, 주 예수님의 보혈을 걸레처럼 사용하여 닦아서는 안 됩니다.
첫째 계명: 다른 신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라.”(《신명기》 5:6)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주님을 믿는 사람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의 하나님이기도 하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애굽 땅, 곧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셨고, 우리를 세상에서 받는 온갖 억압과 속박에서 이끌어 내십니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얼마 전 한 자매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중국의 신앙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데, 기독교는 왜 이렇게 배타적인가요?” 저도 배타적인 것이 좋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제 생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사실 진리는 배타성을 지닙니다. 틀린 답을 보면 1+1=3도 틀리고 1+1=4도 틀렸지만, 1+1=2는 옳습니다. 설령 이 답들이 서로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1+1=2가 옳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여러 명의 어머니를 어머니로 인정한다고 해 봅시다. 그 어머니들은 서로 아무런 의견이 없을 것이고, 제가 어머니가 몇 명 더 있든 적든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친어머니는 분명히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일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신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거짓 신입니다. 여러분은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독단적이십니까?” 독단적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에게 다른 신이 있다면 반드시 저주를 받게 됩니다. 어제 매우 흥미로운 간증을 들었습니다. 한 자매의 남편 집안은 거의 모두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습니다. 사실 정신질환은 저주입니다. 몇 달 동안 기도하며 영적 전쟁을 한 뒤, 그 남편은 갑자기 하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 가문의 가장과 그의 삼촌이 과거에 작은 사당을 세웠고, 참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십계명의 첫째 계명을 어긴 일이었고, 그 결과 온 가족이 저주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그 가정은 매우 분주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분주했을까요? 깊은 산속을 돌아다니며 그 작은 사당을 찾고 있었습니다. 계속 찾았지만 찾지 못하다가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의 영께서 세 번째 골짜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 사당을 허물고 돌아온 뒤, 가족 모두의 정신질환이 크게 호전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상을 제거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너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신명기》 5:8)
이 말씀은 단번에 알려 줍니다. 첫째, 우상이나 어떤 형상도 새겨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그 우상들에게 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상을 새기는 것과 우상에게 절하는 것을 함께 말해야 하는지 나누어 말해야 하는지는, 함께 말해도 좋고 나누어 말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상을 새기는 것은 숭배하기 위한 것입니다. 숭배할 것을 자신을 위해 만들고 새기는 것은 같은 뜻입니다. 그것을 다 만든 뒤에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신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다른 신을 두거나 새긴 것을 우상으로 삼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천 대까지 이르게 하리라.”(《신명기》 5:9)
다른 신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왜 우상을 새겨 만듭니까? 우상은 말을 잘 듣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를 달라고 하면 원하는 것을 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참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주셨는데 그것을 원하지 않으면 가질 수 없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가 불을 가지고 놀고 싶어 한다고 해서 여러분은 아이가 불을 가지고 놀도록 내버려 두겠습니까?
형제자매들은 우리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위험한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살아 복을 받고 오래 사는 기본 법칙입니다.
첫째, 우상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상이란 무엇입니까? 일이 여러분의 우상이 되어 일을 위해 살아간다면, 그 일이 여러분의 우상이 된 것입니다. 사람은 왜 우상을 새겨 만듭니까? 영적인 작동 원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우상을 새기고 그 우상에게 절하면 악한 영이 여러분의 삶에 들어오게 되고, 그것이 저주가 됩니다. 저주란 악한 영이 합법적으로 여러분 안에서 파괴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들은 오직 참 하나님을 예배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삶에는 우상이 될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돈, 인간관계, 영웅적인 인물 등 온갖 것이 우리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을 한 번 바라보기만 해도 치료를 받았지만, 점차 그것을 우상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히스기야 왕 시대에 그 뱀은 파괴되었습니다.
다른 신을 두어서는 안 되며, 오직 참 하나님만 예배해야 합니다. 성경을 우상으로 만들어서도 안 됩니다. 성경은 책일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를 들고 귀신을 쫓아내려고 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참 하나님만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십자가를 걸어 두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십자가를 걸어 두는 것은 전통일 뿐이며,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우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은 오늘 우상을 숭배하는 악한 습관을 버리고 마귀의 계략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가정 가운데 잘 살아가는 가정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언약은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모두와 세우신 것이라(《신명기》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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