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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레위기 23장 -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자!

2021-03-26 28,617 利未记 以神为中心 咒诅 智慧 祝福 钱 服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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利未记23章-节期
  • 1 耶和华对摩西说:
  • 2 “你晓谕以色列人说:耶和华的节期,你们要宣告为圣会的节期。
  • 3 六日要做工,第七日是圣安息日,当有圣会;你们什么工都不可做。这是在你们一切的住处向耶和华守的安息日。
  • 4 耶和华的节期,就是你们到了日期要宣告为圣会的,乃是这些。”
  • 5 “正月十四日,黄昏的时候,是耶和华的逾越节。
  • 6 这月十五日是向耶和华守的无酵节;你们要吃无酵饼七日。
  • 7 第一日当有圣会,什么劳碌的工都不可做;
  • 8 要将火祭献给耶和华七日。第七日是圣会,什么劳碌的工都不可做。”
  • 9 耶和华对摩西说:
  • 10 “你晓谕以色列人说:你们到了我赐给你们的地,收割庄稼的时候,要将初熟的庄稼一捆带给祭司。
  • 11 他要把这一捆在耶和华面前摇一摇,使你们得蒙悦纳。祭司要在安息日的次日把这捆摇一摇。
  • 12 摇这捆的日子,你们要把一岁、没有残疾的公绵羊羔献给耶和华为燔祭。
  • 13 同献的素祭,就是调油的细面伊法十分之二,作为馨香的火祭,献给耶和华。同献的奠祭,要酒一欣四分之一。
  • 14 无论是饼,是烘的子粒,是新穗子,你们都不可吃,直等到把你们献给 神的供物带来的那一天才可以吃。这在你们一切的住处作为世世代代永远的定例。”
  • 15 “你们要从安息日的次日,献禾捆为摇祭的那日算起,要满了七个安息日。
  • 16 到第七个安息日的次日,共计五十天,又要将新素祭献给耶和华。
  • 17 要从你们的住处取出细面伊法十分之二,加酵,烤成两个摇祭的饼,当作初熟之物献给耶和华。
  • 18 又要将一岁、没有残疾的羊羔七只、公牛犊一只、公绵羊两只,和饼一同奉上。这些与同献的素祭和奠祭要作为燔祭献给耶和华,就是作馨香的火祭献给耶和华。
  • 19 你们要献一只公山羊为赎罪祭,两只一岁的公绵羊羔为平安祭。
  • 20 祭司要把这些和初熟麦子做的饼一同作摇祭,在耶和华面前摇一摇;这是献与耶和华为圣物归给祭司的。
  • 21 当这日,你们要宣告圣会;什么劳碌的工都不可做。这在你们一切的住处作为世世代代永远的定例。
  • 22 “在你们的地收割庄稼,不可割尽田角,也不可拾取所遗落的;要留给穷人和寄居的。我是耶和华你们的 神。”
  • 23 耶和华对摩西说:
  • 24 “你晓谕以色列人说:七月初一,你们要守为圣安息日,要吹角作纪念,当有圣会。
  • 25 什么劳碌的工都不可做;要将火祭献给耶和华。”
  • 26 耶和华晓谕摩西说:
  • 27 “七月初十是赎罪日;你们要守为圣会,并要刻苦己心,也要将火祭献给耶和华。
  • 28 当这日,什么工都不可做;因为是赎罪日,要在耶和华你们的 神面前赎罪。
  • 29 当这日,凡不刻苦己心的,必从民中剪除。
  • 30 凡这日做什么工的,我必将他从民中除灭。
  • 31 你们什么工都不可做。这在你们一切的住处作为世世代代永远的定例。
  • 32 你们要守这日为圣安息日,并要刻苦己心。从这月初九日晚上到次日晚上,要守为安息日。”
  • 33 耶和华对摩西说:
  • 34 “你晓谕以色列人说:这七月十五日是住棚节,要在耶和华面前守这节七日。
  • 35 第一日当有圣会,什么劳碌的工都不可做。
  • 36 七日内要将火祭献给耶和华。第八日当守圣会,要将火祭献给耶和华。这是严肃会,什么劳碌的工都不可做。
  • 37 “这是耶和华的节期,就是你们要宣告为圣会的节期;要将火祭、燔祭、素祭、祭物,并奠祭,各归各日,献给耶和华。
  • 38 这是在耶和华的安息日以外,又在你们的供物和所许的愿,并甘心献给耶和华的以外。
  • 39 “你们收藏了地的出产,就从七月十五日起,要守耶和华的节七日。第一日为圣安息;第八日也为圣安息。
  • 40 第一日要拿美好树上的果子和棕树上的枝子,与茂密树的枝条并河旁的柳枝,在耶和华你们的 神面前欢乐七日。
  • 41 每年七月间,要向耶和华守这节七日。这为你们世世代代永远的定例。
  • 42 你们要住在棚里七日;凡以色列家的人都要住在棚里,
  • 43 好叫你们世世代代知道,我领以色列人出埃及地的时候曾使他们住在棚里。我是耶和华你们的 神。”
  • 44 于是,摩西将耶和华的节期传给以色列人。

성경공부:

서론: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법을 배우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다시 여러분과 온라인에서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온라인으로 함께하는 분들이든 현장에서 함께하는 분들이든, 우리 모두 함께 《레위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레위기》를 공부하면서, 《레위기》가 정말 좋은 책이고 치유와 해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의 문제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사람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데서 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기 때문에 저주를 받고, 그러면 삶이 잘 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말씀을 지켜 행해야 할까요? 이 일은 꽤나 번거로운 일입니다. 오늘은 《레위기》 23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는 매우 도전적인 문제가 하나 언급되어 있습니다. 과연 어떤 문제일까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때에는 일을 해서는 안 되고, 저때에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이때에는 성회를 지켜야 하고, 저때에도 성회를 지켜야 한다. 아! 저는 이 일이 참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 주님을 믿었을 때, 아주 오래전에 저는 ‘산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정말 정리해 보았습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우리의 생명이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이렇게 정리했는데, 여러분도 그런지 한번 보십시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대략 말하면 한 무더기의 시간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든 살까지 산다면 며칠이나 될까요? 계산기로 한번 계산해 보십시오. 80 곱하기 365를 하면 대략 3만 일 정도가 됩니다.

3만 일이라는 시간이 많습니까? 사실 많지 않습니다. 절반은 잠을 자고, 일부는 씻고, 또 일부는 화장실에 가는 데 씁니다. 어쨌든 사람이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자는 일에 쓰는 시간이 아주 많습니다. 실제로 유용하게 쓰는 시간은 정말 많지 않습니다. 태어나서 이가 나지 않아 우유를 먹는 시간도 보통 1~2년은 됩니다. 철이 들지 않은 날들도 있고, 철이 든 뒤에도 시간을 좀 낭비합니다. 여러분이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 시간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요? 잘 생각해 보십시오. 대부분 낭비한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생명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생명은 곧 시간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산다는 것은 그저 시간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시간이 곧 생명이고, 생명이 곧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레위기》 23장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바로 우리에게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장 중간에는 음식을 하나님께 드리는 내용도 있습니다. 오늘은 이 장에서 음식을 하나님께 드리는 부분은 잠시 넘어가겠습니다. 음식 제사에 대해서는 앞의 장들에서 이미 많이 설명했고, 여러분도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장에서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것이 이 장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아! 저는 제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니, 이 사람은 십일조를 한 번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아! 저는 제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왜 십일조를 드리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는 “저는 이미 제 생명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렇다면 왜 십일조를 드리지 않습니까?”라고 다시 물으니, 그는 “내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것이 곧 내 것이 아닙니까?”라고 했습니다. 보십시오. 아주 그럴듯한 논리를 펴지 않습니까!

나중에 저는 사람을 시험하려면 두 가지를 시험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첫 번째는 돈입니다. “우리 둘 사이가 꽤 좋지요?” “네, 우리 사이가 아주 좋지요.” 제가 말합니다. “그럼 나에게 10만 위안만 빌려주십시오.” 그러면 그는 “그건 안 됩니다!”라고 합니다. “아, 제가 방금 투자했거든요!” 저는 생각합니다. ‘투자하지 않았어도 나에게 빌려주지 않았을 텐데.’ 사실 어떤 사람들은 돈이 있어도 빌려주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돈이 있어도 나에게 빌려주지 않을 것이고, 돈이 없다면 그 가난한 모습을 보아 그냥 넘어가겠다.’ 만약 당신의 손에 100위안밖에 없다면, 제가 “그 100위안을 나에게 빌려주십시오”라고 할 때 당신은 “그건 안 됩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한 번 시험해 보고 바로 드러납니다. 어떤 사람이 딘타이펑 만두를 먹고 있을 때 제가 “하나만 주십시오”라고 하면, 그는 “안 됩니다! 당신의 배 속에 들어가는 것과 내 배 속에 들어가는 것이 어떻게 같습니까?”라고 합니다. 아이고, 세상에! 사람이 참 재미있습니다.

세상의 분주함을 꿰뚫어 보다, 인생은 그저 한 번의 시험이다

두 번째는 시간입니다. 제가 “그 시간을 내어 하나님께 드리십시오”라고 하면 사람들은 “안 됩니다!”라고 합니다. 제가 “왜 안 됩니까?”라고 물으면, “제가 바쁘거든요!”라고 대답합니다. 나중에 저는 이 ‘바쁘다’는 말을 정말 연구해 보았습니다. 바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가롭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바쁘고, 연애소설을 읽느라 바쁘지만 하나님을 예배할 시간은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일과 프로젝트로 바쁩니다. 어쨌든 바쁜 것입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다 되면 죽습니다. 죽고 나면 더 이상 바쁠 시간이 없습니다. 죽은 뒤에는 시간이 아주 많습니다. 관 속에 누워서 시간이 넘쳐납니다.

그렇다면 바쁘다는 것은 무엇이고, 시간이 없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에게도 하루 24시간이 있고 저에게도 하루 24시간이 있는데, 어떻게 시간이 없을 수 있습니까? 다른 곳에 시간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아!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사실 우리 인생은 시험입니다. 무엇을 시험할까요? 여러분이 하나님을 의지하는지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제가 정리한 것을 여러분에게 말하겠습니다. 저는 죽어도 이 일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의지해 살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을 의지해 살아야 할까요? 제가 보니 제 힘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 힘으로 한다면 영계에서 누구도 이길 수 없습니다. 가장 작고 작은 귀신조차도 이길 수 없습니다. 영계의 일이 우리가 살아가는 일을 결정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삶이 잘 풀리지 않습니다. 정말 번거로운 일이지 않습니까? 사실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영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이 계시고 귀신도 있다고 믿었습니다.

왜 그것을 믿느냐고요? 저는 이 세상에 하나님도 계시고 귀신도 있다는 것이 너무나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고요? 점을 치는 사람이나 굿을 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아주 신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저와 같지는 않습니다. 왜 여러분은 저와 같지 않을까요? 깨달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영계와 맞서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아, 정말 재수가 없었습니다! 찬물을 마셔도 이가 막힐 정도였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얼마나 재수가 없었느냐 하면, 예를 들어 밖에 나가려고 문을 열고 나서는데 하늘에서 새똥이 떨어져 머리 위에 맞는 것입니다. 아, 세상에! 하늘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정말 재수가 없지요! 이 세상에는 재수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원한다고 해서 재수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 꼭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당신에게 생기면 어쩌겠습니까? 자업자득 아닙니까?

하나님은 사람을 시험하시고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이시다

나중에 저는 제가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고 정리했습니다. 제가 참 재미있는 사람이지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당시 저는 가장 큰 하나님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작은 신을 찾고 싶지 않았습니다. 작은 신을 찾았다가 큰 귀신을 만나면 우리 모두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신이 나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신을 보호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내가 그를 보호할 수도 없고 그도 나를 보호할 수 없다면, 내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렇지요? 결국 포기해야 합니다. 찬물을 마셔도 이가 막히는 꼴입니다. 정말 죽을 지경입니다! 그래서 저는 반드시 가장 큰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결국 가장 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어느 하나님이 가장 크실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꽤 크신 분인 것 같았습니다. 당시에는 저도 그저 추측한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종교가 있는데, 이 종교 저 종교를 찾아다니느니 차라리 잠을 푹 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잠자는 것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잠자는 것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으러 갔고, 예수님이 크신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크실까요? 이 일이 참 흥미롭습니다. 기독교회는 우상을 허물고, 무엇이든 건드립니다. 승리하는 교회든 승리하지 못하는 교회든 우상을 허무는 일을 감히 합니다. 저는 ‘이거 정말 대단하네! 무엇이든 건드리잖아!’라고 생각했고, 교회에 들어가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된 뒤, 오늘 다시 한 번 여러분에게 자랑을 좀 하겠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20여 년 전인데, 저는 주일예배를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믿을 수 있습니까? 주일예배를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바람이 불든 비가 오든, 감기에 걸리든 열이 나든, 하늘에서 칼이 떨어져도 갔을 것입니다! 다행히 칼이 떨어진 적은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주님을 진심으로 대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은 왜 그렇게 무책임합니까?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까 두렵지 않습니까?”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당시에는 사스도 없었고 코로나도 없었기 때문에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주일예배를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거의 30년 동안 몇 주나 되겠습니까? 1년에 52주이니, 3 곱하기 5는 15, 1,500주가 넘는 기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은 셈입니다. 시간으로 계산하면 3년 정도입니다. 20여 년 동안 3년의 시간을 온전히 드린 것입니다. 한 주에 성경공부를 인도하거나 성경공부에 참여한다면 드리는 시간은 더 많아집니다.

사실 시간은 생명이고, 생명은 시간입니다. 저는 제 생명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제 시간은 남겨 두고 제가 사용한다면, 그것을 생명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할 수 있습니까? 많은 사람이 늘 말합니다. “아! 나는 하나님께 먼저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주일예배에는 오지 않습니다. “아! 나는 하나님께 먼저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성경공부에는 오지 않습니다. “아! 나는 하나님께 먼저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기도회에는 오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러 갔을까요? 돈을 벌러 갔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매우 실제적인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두 가지로 시험하십니다. 하나는 돈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입니다. 돈이란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땅에 씨를 뿌려 자라난 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입니까? 움직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선택합니다. ‘나는 내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겠다. 내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겠다. 내 돈도 하나님께 드리겠다.’ 이렇게 하면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상상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제가 드린 헌금은 보통 사람이 평생 벌어도 벌지 못할 만큼 많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는지 거짓으로 의지하는지는 한 번 시험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재수가 없을까요? 늘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서 자신이 영계의 일들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늘 하나님과 맞서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이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이길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나중에 저는 아주 묘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여러분이 제 성경공부를 듣고 제 설교를 들으면, 제 안에 그래도 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한 가지 원칙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누구와도 감히 맞설 수 있지만 하나님과는 감히 맞서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라고 하시면 저는 즉시 순종하여 합니다. 제가 정말 원하느냐고요? 사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행하고 나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복을 받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내가 당신에게 전화하면 당신은 분명 나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믿습니까? 당신이 나에게 전화하지 않아도 내가 당신에게 전화할 것입니다. 우리 한번 겨뤄 봅시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겨뤄 보면 결국 당신을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에게는 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데 시간을 잘 사용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시간을 드리는 것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성경공부에 참여하고, 주일에는 설교와 기도회에 참여합니다. 그 밖에도 101 과정, 102 사역, 003 사역의 성경공부와 각종 과제에 참여합니다. 아, 세상에! 어떤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왜 우리 중화인 운명신학에 오면 대학에 다니는 것처럼 되었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지혜로워지고 자신이 만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정말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할까요? 이것이 바로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좋습니까?” 좋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면 무엇을 잃습니까? 여러분, 진심으로 한번 말해 봅시다. 정말 무엇인가를 잃었습니까? 아무것도 잃지 않았습니다! 돈을 벌어야 할 때 여전히 돈을 벌지 않습니까? 솔직하게 말해 보십시오.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고 나서 번 돈이 오히려 더 많아지지 않았습니까?

저는 몇 가지 놀라운 일을 경험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 정말 열심히 일하고 또 열심히 일했는데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잘 섬기러 돌아오고, 열심히 귀신을 쫓아내고 또 쫓아내면 다음 날 주문이 눈송이처럼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러자 사장이 실적이 좋은 한 자매에게 경험을 나누어 달라고 했습니다. “이 자매님은 어떻게 일을 이렇게 잘합니까? 실적이 좋은 비결이 무엇입니까?”

자매는 손을 내저으며 사장에게 말했습니다. “사장님, 이 일은 어떻게 나누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장은 의아해했습니다. 왜 나눌 수 없을까요? 자매는 두 손을 펼치며 말했습니다. “이 주문들은 제가 기도해서 얻은 주문입니다!” 아, 기도라고요? 사장은 더욱 어리둥절해졌습니다. “당신은 삼계를 통하는 사람입니까?” 자매의 계약은 삼계를 통해 온 것이니, 그녀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사장은 완전히 당황했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주일예배 한 번만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성경공부가 하나 더 생겼고, 또 하나 더 생겼습니다. 나중에는 기도회도 생겼습니다. 점차 이런 모임, 저런 모임이 늘어났습니다. 마치 개구리를 따뜻한 물에 넣고 삶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개구리를 따뜻한 물에 삶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따뜻한 물에서 복을 삶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저는 정말 걱정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수업이나 퇴근이 끝나자마자 교회로 달려오는데, 혹시 공부와 일을 방해하면 어떻게 할까?

당시 우리 가운데 한 자매는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밤에는 섬겼으며, 그 와중에 시간제 대학 과정까지 공부했지만 여전히 매일 교회에 왔습니다. 교회에 오면 곧바로 과제를 하고, 과제를 마치면 곧바로 섬기고, 섬긴 뒤에는 다시 대학 공부를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졸업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그녀와 함께 대학을 다닌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졸업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왜일까요?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정말 걱정했습니다. ‘공부를 방해하면 안 되는데!’ 하지만 이제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무엇을 합니까? 힘껏 거두어들입니다! 모든 사람의 시간을 하나님 앞에 모으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얼마나 이익이 됩니까? 정말 이익이 큽니다. 얼마나 많은 번거로움을 줄였습니까? 얼마나 많은 재난을 피했습니까? 돈을 잃는 일과 인생의 수많은 문제를 얼마나 줄였습니까? 이 문제는 여러분이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죽도록 일하고 또 일했는데, 한 번 병에 걸리면 돈을 전부 잃어버립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한 것입니까? 일하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또 일하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자기 방식은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의 방법으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충분히 오래 살았다면, 이것이 정말 그런지 한번 살펴보십시오. 어쨌든 제가 본 하나님을 찾으러 온 사람들은 그전에 모두 매우 불운한 삶을 살았습니다. 저도 삶이 매우 힘들 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쪽이 더 유익한지 알아야 합니다. 어느 쪽이 더 유익한지는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가장 유익한 선택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사실 《레위기》 23장의 흐름을 간단히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대략 읽어 보았다면 알겠지만, 아주 직설적으로 말해 시간을 내어 하나님께 드리라는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하루를 내어 모입니다. 모여서 무엇을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합니다.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첫째 달 14일과 15일에는 유월절을 지켜야 합니다. 이 단어 때문에 혼란스러워하지 마십시오. 유월절과 무교절은 사실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의 섣달 그믐날이 음력 12월 30일 밤이고, 설날이 새해 첫날인 것과 같습니다. 이름은 여러 가지지만 의미는 같습니다. 시간을 내면 한 번에 7일을 내야 하고,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날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 집은 지금 집을 짓고 있습니다. 집을 절반쯤 지었는데 멈출 수 없습니다.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외칩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설날이 되어서야 일하려고 합니까? 그전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이것이 무슨 핑계입니까? 이 며칠 동안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까? 그러므로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곡식이 익으면 곡식의 첫 단을 베어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즉 첫 열매를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오순절이 되면 어떻게 합니까? 유월절, 곧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이 있었던 날부터 시작합니다. 유월절 밤은 우리가 말하는 섣달 그믐날 밤과 같습니다. 그다음 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이어서 유월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이라고도 불립니다. 오순절은 유월절 후 50일이 지난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전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면,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40일이 넘게 계셨던 것입니다.

이 40일 동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엠마오에서 만나기도 하셨고, 갈릴리에서 만나기도 하셨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금요일과 부활절은 모두 유월절을 전후한 며칠 동안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던 기간은 모두 40일 정도였고, 나중에는 500명의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때는 아직 오순절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후 100명이 넘는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숨어 기도했습니다. 이 백여 명의 사람들이 거의 열흘 동안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열흘 정도 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 주십시오.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 주십시오. 성령을 부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오순절 날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오순절에는 성회를 선포하고 모두 함께 모였습니다. 사실 함께 모이는 일은 매우 영적인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노동도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오순절입니다.

첫째 달은 유월절이고, 이스라엘의 새해도 유월절에 시작됩니다. 일곱째 달이 되면 속죄일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그들의 일곱째 달입니다. 속죄할 때에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날 일을 하면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닙니까? 속죄일이 지나고 일곱째 달 15일이 됩니다. 일곱째 달 1일은 나팔절이고, 10일은 속죄일이며, 15일은 초막절입니다.

이때에는 곡식을 모두 거두어들였고, 사람들은 장막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축하했습니다. 무엇을 축하했을까요? 이집트에서 나와 장막에서 살았던 날들을 기념한 것입니다. 장막에서 7일 동안 지내며 그 날들을 축하했습니다. 이는 중국인들의 노동절 연휴, 국경절 연휴, 춘절 연휴와 비슷합니다. 일을 하지 않고, 어떤 노동도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신 일입니다. 참 흥미로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이 절기들에 함께 모여 성경을 배우기도 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일만은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레위기》 23장에 나오는 절기들을 정리해 보면, 유월절과 무교절은 섣달 그믐날과 설날 첫날과 같습니다. 절기가 끝나고 50일이 지나면 오순절이고, 몇 달이 지나면 일곱째 달이 되어 나팔절을 지킵니다. 여전히 어떤 노동도 해서는 안 됩니다. 일곱째 달 10일은 속죄일이고, 15일부터 초막절이 시작됩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시대가 되면, 그것은 훨씬 훗날의 일이지만 부림절이라는 절기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이 절기도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들을 모두 계산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꽤 많습니다. 참 흥미로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절기를 지킬 때마다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계속 말씀하실까요? 왜 그러실까요? 안식일에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유월절에도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나팔절에도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오순절에도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초막절에도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속죄일에도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왜 이 일을 말하고 있을까요? 사람에게 한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일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합니까?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심지어 일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장점이라고 생각한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살아가는 목적이 일을 하기 위한 것이라면 곤란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시험하고 계십니다. 무엇을 시험하실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일을 반드시 일을 해야만 가능한 것으로 여기는지 시험하십니다. 여러분이 일을 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일을 하며 살아가십시오!

제가 본 여러 민족은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중국인들은 매우 부지런합니다. 정말 부지런합니다! 우리 중국인들은 일을 해서 살아갑니다. 보십시오. 중국인이 어느 지역에 가면 그 지역 사람들 가운데 우리와 경쟁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중국인이 부지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죽을 때 무엇을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평생을 살아도 수고와 근심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중국인으로 태어났지만 본질적으로는 중국인 같지 않습니다. 매우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게으른 것은 장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절기 외의 날에는 사람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절기에는 성일을 지키고, 절기가 아닌 날에는 빈둥거리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됩니다.

기꺼이 시간과 돈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드리자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시험하실까요? 우리가 시간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드리기를 원하는지 보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100퍼센트를 드리고 한 푼도 남기지 않은 채 살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십분의 일을 드리고, 그 밖에 감사헌금과 이런저런 헌금을 더해도 20퍼센트 정도입니다. 이것은 단지 시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해 사는지, 아니면 자신을 의지해 사는지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뜻입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람이 이것을 의지해 산다면, 누군가가 일을 하거나 돈을 버는 데 영향을 주는 것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평소에는 누구도 우리의 일을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하나님을 예배하고 의지하며, 하나님을 위해 절기를 지키고 시간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드리는 일은 일을 하더라도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우선순위가 올바르게 정해져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우리는 우선순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이 있을 때만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러나 저는 시간이 없어도 하나님을 섬깁니다. 이것이 같습니까? 결코 같지 않습니다. 시간이 있을 때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바빠지면 시간이 없어집니다.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이 있을 때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일에 모임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프로젝트나 일이 바빠지면, 끝입니다. 사람이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을 보면 평소에는 꽤 좋아 보입니다. 바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밤에 잠도 잘 오지 않으니 저와 함께 기도하러 옵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저를 찾아와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을 보내는 대상은 바로 저입니다. 문제는 정말 일이 생겼을 때 무엇을 선택하는지를 보면 드러납니다. 비교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한가할 때는 알 수 없습니다. 집에 있어도 심심하니 모임에 오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일이 매우 바쁜데도 시간을 내어 섬기려 한다면, 그것이 진짜입니다!

여러분에게 자랑할 만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한동안 제 일에 문제가 생길 만한 것은 반드시 생겼고, 생기지 않을 문제도 생겼습니다. 정말 정신없이 힘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힘든데 일을 더 잘해야 하지 않습니까?” 사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매일 섬겼습니다. 일을 잘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잘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해 주신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가 제게 임했고, 저는 그때 일을 완전히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섬기게 된 것 아닙니까? 원래는 이렇게 섬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늘 일을 통해 스스로 먹고살면서 그중 일부의 시간을 내어 섬기려고 했습니다. 그것도 괜찮고 저도 원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계산은 하나님의 계산을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의 팔은 허벅지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만두고 하나님과 맞서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安排하시면 그대로 하면 됩니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길지만, 제가 능력이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늘 돌아보면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安排였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일이 얼마나 좋습니까? 예전 일보다 훨씬 좋습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되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제가 아무리 바빠도 그때 누군가 저에게 기도를 인도해 달라고 요청했다면 반드시 섬겼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시 교회가 그다지 승리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치유와 해방을 했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도 매우 잘했습니다. 어느 날 제 일은 매우 힘들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점심때 우울증을 앓고 있던 한 학생이 저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선생님, 안 돼요, 안 돼요, 안 돼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 좋습니다. 제가 당신과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제가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저는 그 학생을 제 회의실로 데려갔습니다. 저도 참 대담했습니다. 회의실에서 치유와 해방을 했습니다. 두 시간 넘게 기도하자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서둘러 일을 했습니다. 그 학생은 수업이 끝난 뒤, 오후 4시가 조금 넘어 다시 왔습니다. 저는 오후 2시가 넘어서야 기도를 마쳤는데, 4시가 넘자 또 온 것입니다. 아, 세상에! 제 일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다시 그 학생과 기도했습니다. 밤 8시까지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첫째 날이었습니다. 둘째 날 점심에도 다시 왔습니다. 또 그곳에서 기도했습니다. 아, 정말! 제 마음이 얼마나 갈등했는지 모릅니다. 그 학생은 나아진 뒤 수업에 갔지만 밤에 또 왔습니다. 셋째 날 점심에도 왔고, 셋째 날 밤에도 왔습니다. 아, 세상에! 결국 그날 밤 저는 전화를 걸어 “오늘은 집에 가서 저녁을 먹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섬겨야 합니다. 저녁을 먹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상대방은 “이게 언제 끝나는 겁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받고 있었는데, 섬김을 받던 그 학생이 엘리베이터 모퉁이에 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전화에 대고 “괜찮습니다. 그 학생이 해방되면 끝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섬겼습니다. 또 밤 8~9시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국 그날 그 학생은 해방되었고 나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학생이 낫지 않았다면 언제 끝났을까?’ 저도 언제 끝날지 알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섬겼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이 자매는 정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산다고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살았으니, 그렇게 살도록 두었습니다. 저는 그 자매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빌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게 매우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시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은혜롭게 대하십니다. 당시 그 자매는 제 말을 듣고 “선생님, 저를 포기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안 됩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제가 계속 당신과 함께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밤 8~9시까지 기도하자 그 자매가 말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는 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 순간 그 자매는 해방되었고 우울증도 나았습니다.

그 자매의 우울증은 매우 심각했습니다. 늘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생각했고, 때로는 자신이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제 시간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드렸습니다. 제 시간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하나님이 제 생명이심을 압니다. 제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다른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저는 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섬김은 가장 큰 보상이다

오늘 형제자매들이 저를 만나면 해방되지 않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만나서 정말 다행입니다! 귀신은 제 이름만 들어도 속이 녹아내립니다. 귀신들이 외칩니다. “이 사람은 정말 끈질기구나!” 무슨 뜻일까요? 제가 귀신을 한 번 물리치고 승리할 때마다 제 안에서는 마치 만한전석을 먹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정말 즐겁고 행복합니다. 너무나 기쁩니다. 그러므로 이 일이 제 손에 들어오면, 그 사람이 포기하지 않는 한 저는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제 한 형제를 섬겼습니다. 이 형제는 무슨 일을 하든 바쁘고 또 바빴습니다. 무엇 때문에 바쁠까요? 돈을 잃느라 바빴습니다. 그는 그것을 좋아합니다. 취미가 돈을 잃는 것입니다. 저도 왜 그가 그런 일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돈을 벌기 위해 바쁘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 바쁩니다. 어제 제가 그 형제를 섬긴 것은 진지한 일이었고, 저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세계적인 특별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큰 체육관 안에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래쪽에 앉아 천천히, 잘 들으며 있었습니다. 아, 무대 위에는 모두 유명한 목회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쪽지를 올려 보내 그 목회자들에게 개인적인 취미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두 목회자가 참 재미있게 대답했습니다. 한 사람은 “저는 사냥을 좋아합니다”라고 했고, 다른 사람은 “저는 스포츠카를 좋아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아, 세상에! 모두 아주 비싸고 비싼 취미였습니다! 저는 그런 것을 할 시간도 없습니다!

제 동역자가 옆에서 저를 쿡쿡 찌르며 물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맞혀 보세요.” 동역자가 대답했습니다. “섬기는 것을 좋아하시잖아요!” 제가 말했습니다. “맞아요! 상을 좀 줘야겠네요!” 저는 섬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귀신을 쫓아낼 때마다 그것이 바로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포츠카를 타고 사냥하는 것을 고상하고 멋진 취미라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차를 몰고 다니는 대신 용을 몰고 귀신을 몰고 다니며 귀신을 잡는 것을 좋아합니다. 큰 물고기를 낚는 것과 같습니다. 아, 물고기가 정말 큽니다! 이리저리 지치게 만든 다음 낚아 올립니다.

저는 물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라 귀신을 낚습니다! 귀신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며, 하하하, 귀신을 힘이 빠질 때까지 몰아 결국 낚아 올립니다. 말을 몰고 용을 몰고 다니는 것처럼, 저는 이것을 좋아합니다. 제 취미가 정말 좋습니다! 왜냐고요? 제가 시간을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입니다. 방금 여러분에게 말한 것처럼, 저는 누구와도 감히 맞설 수 있지만 제 하나님과는 감히 맞서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누구와도 감히 맞서지 못하면서 하나님과는 감히 맞서려고 합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저는 그것을 보며 ‘이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머리가 어디에 달려 있는 것일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제가 하는 일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제가 하는 일은 아주 큰 사업입니다! 이해됩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 일이 돈이 됩니까?”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아주 빨리 됩니다! 제가 돈을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라 돈이 제게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늙은 마귀를 제가 한 번 이기면, 마귀가 “아, 정말 재수가 없네. 당신을 만나다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제가 “안 됩니다. 당신은 전쟁에서 졌으니 돈을 갚아야 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마귀는 “갚겠습니다, 갚겠습니다. 소달구지에 금은보화를 가득 싣고 당신에게 보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보셨습니까? 우리 가운데 많은 형제자매가 왜 복을 받을까요? 귀신을 쫓아내서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의 보상은 매우 큽니다. 제가 전에 《귀신을 쫓아내는 보상》이라는 설교를 한 적이 있는데 조회 수가 꽤 높았습니다. 역시 여러분은 가치를 알아보는 것 같습니다. ‘보상’이라는 두 글자를 보자마자 눈이 번쩍 뜨이지만, ‘귀신을 쫓아낸다’는 말을 듣는 순간 눈을 감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일의 보상은 정말 큽니다. 형제자매들은 우리가 귀신을 쫓아내며 살아간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귀신은 정말 돈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어떤 형제자매들은 우리 교회가 그들의 헌금으로 부유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정도의 헌금이 교회나 저를 부유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지혜와 복을 가루처럼 아주 조금만 우리에게 뿌려 주셔도, 복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넘치도록 우리에게 임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귀신을 쫓아낼 때 성품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성품일까요? “저에게는 시간이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시간이 있습니다.” 일단 저와 맞붙었다면 그 귀신의 결말은 반드시 끝장입니다. 아, 모두에게 시간이 있다고요? 좋습니다! 귀신과 한번 겨뤄 봅시다. 예를 들어 지난 두 주 동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저는 매일 기도를 인도했습니다. 이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저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저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이 사람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아주 즐거웠고, 업무 효율도 높았습니다.

오늘은 반대로 생각해 봅시다. 이 시간을 내어 돈을 벌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분은 이 시간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보다 결코 더 많이 벌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이 시간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든,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절기를 지키든, 안식일을 드리든, 주일을 구별하든,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 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산다는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을 하나님을 중심에 둡니다. 나의 하나님은 내가 살아가는 중심이며, 나의 핵심 이익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지요?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경쟁하는 몇 가지 능력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첫째는 창의력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이 있습니다. 이 영광의 형상이 바로 창조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창조적인 사람이라면 오늘 새로운 방법 하나, 내일 새로운 방법 하나를 계속 찾아낼 것입니다. 그러면 늘 대단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왜 창의력이 있을까요?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은 모든 지혜가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지혜롭고, 복을 받고, 창조하는 사람이 됩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결국 이런 것에 달려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복과 저주, 이 두 가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오늘 여러분이 나이가 많든 적든 창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창조할까요? “어? 여기에 문제가 있네. 해결하자.” “어? 저기에도 문제가 있네. 해결하자.” 문제를 보기만 하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얼마 전까지 제가 무엇을 해결하고 있었는지 아십니까? 우리 형제 한 사람의 집 에어컨 실외기에서 계속 물이 새고 있었습니다. 물이 똑똑, 똑똑 떨어졌습니다. 저는 ‘이 물이 똑똑 떨어지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생각했고, 결국 머리를 써서 해결했습니다.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전부 창의력 덕분입니다! 창의력은 정말 좋은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는 직접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는데, 지금 쓰는 것은 두 번째 버전입니다. 소프트웨어를 작성하는 데 대략 2주면 끝납니다. 보통 사람이 한다면 반년은 걸리지 않겠습니까?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도, 심부름하는 사람만 잔뜩 있고 실제로 일하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됩니다. 보십시오. 제가 일하면서 언제 정신없이 허둥댄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정말 정신없이 일한 적이 없습니다. 일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복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경쟁합니까? 창의력으로 경쟁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시간으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하루에 6시간 일하는 것으로 부족하니 8시간 일하고, 8시간으로 부족하니 10시간 일하고, 10시간으로 부족하니 12시간 일하고, 아예 잠을 자지 않으면 결국 어디로 가겠습니까? 병원으로 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효율과 창의력으로 경쟁합니다. 복을 받는 것으로 경쟁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세상을 떠나면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영원한 영광을 시작합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을 전 존재와 온몸과 온 마음으로 온전히 드리기 시작합니다. 손해를 볼까요? 손해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아! 나의 전 존재와 온 마음을 모두 드리고, 연초부터 연말까지 매일 성일을 지키겠습니다!”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성일을 지키는 것을 게으름을 가리는 수단으로 삼으면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안식일, 유월절, 초막절, 속죄일, 나팔절, 오순절을 지키기 때문에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을 해도 결코 일을 잘 못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일을 잘합니다.

결론: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를 살아 내자

며칠 전 한 자매가 저를 크게 웃게 했습니다. 그 자매가 제게 말했습니다. “아세요? 용산의 조자상 말이에요!” 다행히 저는 알아들었습니다. 원래는 ‘상산의 조자룡’이라고 해야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자매는 또 “10년 동안 뱀에게 물리면 하루아침에 우물의 두레박줄을 무서워한다”는 말도 거꾸로 말했습니다. 전부 뒤죽박죽이었습니다. 하지만 말하지 마십시오. 그 자매는 일을 꽤 잘합니다. 화문 교사이기도 합니다. 이 교사가 가르친 많은 문제 학생들이 결국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그 자매를 전국 최우수 교사로 추천하려고 했습니다. 추천을 받아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사람이 의지하는 것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기만 하면, 여러분에게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의 복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제가 말할 간증은 많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형제의 가족들이 그 형제에게 집을 맡겨 임대하게 했습니다. 최근에 귀신을 쫓아내자 집이 모두 임대되었습니다. 시간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드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시간을 구별하여 드리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 임대주택에 고객이 한 명 와서 보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또 한 명 와서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합니까! 연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과 사귀었는데 잘되지 않고, 또 한 사람과 사귀었는데도 잘되지 않습니다. 감정만 상하지 않습니까?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과 이야기했는데 성사되지 않고, 또 한 사람과 이야기해도 성사되지 않습니다. 시간은 낭비되고, 자신은 매우 바쁩니다. 그런데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계약이 하나도 성사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고객이 많지 않아도 한 사람이 오면 한 사람과 계약이 성사되고, 또 한 사람이 오면 또 성사된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효율이 매우 높습니다. 영업을 하든, 임대주택을 운영하든,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정말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없으면 무엇을 하든 어렵습니다.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없으면 정말 어렵습니다.

교인이 한 명 오면 문제를 일으키고, 또 한 명 와도 문제를 일으키고, 또 한 명 와도 여전히 문제를 일으킵니다. 아, 세상에! 너무 지칩니다!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복이 없으면 너무 어렵습니다. 오늘 신약성경에 이르러 저는 온 마음과 온몸과 온 존재를 하루 24시간, 일주일 7일 동안 온전히 하나님께 드립니다. 일주일 7일에 하루 24시간을 곱한 모든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 성경을 읽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방해합니까? 아무것도 방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린도전서》 2:9).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섬길 일이 있으면 우리는 섬기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는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 낼 수 있습니다. 원래 이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단지 절기를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사람이 조나라의 진영에 있으면서 마음은 한나라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몸은 절기를 지키고 있으면서 마음은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저와 함께 성경공부를 하지만 사실 성경공부를 하지 않고, 필기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영업 계획을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평소에 무엇을 했습니까? 미리 쓰지 않고 왜 하필 지금 쓰는 것입니까? 사람의 머릿속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 것일까요?

우리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반드시 아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安排에 따라 행하기를 원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며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것을 예비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기대하기 시작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사랑하던 상태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향해 방향을 전환하고 하나님께 말하십시오. “하나님, 이제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선택합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기가 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소망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원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방향을 돌이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르러야 합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재정적으로 모두 복을 받고, 건강에서도 복을 받으며, 여러분이 직장에서 무엇을 하든 복을 받고, 여러분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이 복을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진지하게 대해야 합니다. 절대로 하나님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속기게 대하면 하나님을 이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여러분은 투명합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과 속사람은 모두 하나님 앞에 투명합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결정은 자신의 시간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드리고, 복받는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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