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왜 하나님의 임재를 이야기할까요? 하나님의 임재는 비할 데 없이 좋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제목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입니다. 이 제목은 우리 하나님의 임재 시리즈 중 또 한 편의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설교를 몇 편이나 전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는데, 총 몇 편인지 저 대신 세어주실 분 계신가요?
싱가포르라는 곳에서는 아이들에게 새해에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할지 아십니까? 새해에는 닭고기가 빠져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싱가포르는 닭고기를 먹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맥도날드나 KFC에도 온통 닭고기뿐입니다. 크리스마스에는 무엇이 빠져서는 안 될까요? 미국에 가면 크리스마스에는 칠면조, 즉 닭류가 빠질 수 없습니다. 중국인들은 설을 쇨 때 설 용품으로 돼지머리를 준비하는데, 돼지머리를 먹는다고 똑똑해질까요? 돼지머리처럼 되지는 말아야겠죠. 우리가 어렸을 때는 설날이 정말 시끌벅적하고 즐거웠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평소에는 거친 음식과 나물만 먹으며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배추, 감자, 무에 비계 기름을 조금 넣어서 먹었죠. 설이 되면 어머니께서 비계 한 덩이를 사서 기름을 낸 뒤 항아리에 넣고 소금을 좀 쳐두셨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상하니까요. 요리할 때 툭! 하고 한 숟가락 퍼서 넣으면 고기 냄새가 좀 났는데, 그것이 우리의 일상이었습니다. 설이 되어야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었기에, 특히 북방 지역 중국인들에게는 설날에 만두가 빠질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늘 어떤 것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집을 살 때도 근처에 학교나 병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넓고 복잡한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의 방식이 있고, 저마다 ‘이것만은 절대 없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수많은 사람들이 좁은 외나무다리를 건너듯 경쟁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공무원이 꼭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온 힘을 다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는 월급으로 2~3천 위안을 받습니다. 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싶었습니다. 그러고는 외곽 지역으로 발령받아 공무원 일을 합니다. 그렇게 5년 동안 시험을 준비해서 들어간 것이죠.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르지만,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까?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그것이 괜찮은 것입니까? 옳은 것입니까? 아무도 묻지 않고 그저 공무원이 얼마나 좋은지만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사랑을 갈망하다가 온통 로맨스 사기꾼만 끌어들이고, 어떤 사람은 일확천금을 갈망하다가 일확천금 사기꾼을 끌어들입니다.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빨리 부자가 되는 것이니 착각하지 마십시오. 다들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에서 남에게 꼼짝없이 붙잡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면 이 세상의 귀신에게 꼼짝없이 붙잡혀 속아 넘어갑니다! 유독 사기꾼을 잘 끌어당기는 사람이 있어서 주변에 온통 사기꾼뿐인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가 어떤 것들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해외로 나갔고, 어떤 이들은 밀항까지 했습니다. 그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플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화면 너머로 보기만 해도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였는데, 그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입니까? 사기꾼을 끌어들이는 사람도 있고, 남에게 괴롭힘당하기 쉬운 사람도 있는데, 사실 다 사람이 어떤 것들을 중요하게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하나님의 임재는 중요하게 보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도무지 모릅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을 얻는데, 그것을 믿지 못하고 귀신의 임재를 끌어당기고 사기꾼의 임재를 끌어당깁니다.
우리가 진짜 관 속에 들어가고 나면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당신이 아무리 중요하게 여겼더라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관 속에 잠시 누워있으면 그것이 아직도 중요하겠습니까? 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정말 의아합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왜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걸까요? 저는 자주 이 문제를 연구하고 고민해보았는데, 나중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람은 그저 '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왜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까요? 다들 살아남으려 하기 때문에 약점을 잡히고 조종당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갑자기 제가 해적에게 납치되었다고 해봅시다. ‘설 명절에 왜 그런 말을 하냐’고 하시겠지만, 그냥 예를 든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두렵지 않고, 남들이 저를 저주하는 것도 두렵지 않으며, 그들은 저를 저주할 수도 없습니다.
해적이 “가서 가족더러 돈을 가져오라고 해라!”라고 하면, 저는 “그럴 필요 없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가 “왜 필요가 없냐?”고 물으면, 저는 “내가 몇 년 동안 내내 죽고 싶었는데 용기가 없었습니다. 당신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드디어 나를 죽여줄 사람이 나타났군요.”라고 할 것입니다. 유괴범이든 해적이든 속으로 ‘아이고, 사람을 잘못 납치했네!’ 하며 멍해지지 않겠습니까? 대단하지 않습니까? 정말 대단하죠! 해적이 약이 바짝 올라서 ‘도대체 이런 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안 되겠다, 그냥 버려버리자!’ 하고 풀어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거짓말 같지만 정말로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왜일까요? 사람은 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수많은 문제 앞에서 꼼짝없이 잡히고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일은 결국 ‘사람이 살고 싶어 한다’는 이 한 가지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은 살고 싶어 하지만 또 결국 죽을 수밖에 없으니, 이 얼마나 비극입니까?
저는 사람이 병들었을 때 살고자 하는 그 소망이 얼마나 간절한지 자주 봅니다! 병원에 가서 호스 하나 꽂아서 안 되면 두 개 꽂고, 두 개로 안 되면 세 개를 꽂습니다. 위에도 꽂고 아래에도 꽂아서 과학 실험 장비처럼 온몸이 호스 투성이가 됩니다. 어떤 호스인들 안 아프겠습니까? 호스 하나하나가 사람을 잡을 만큼 고통스럽습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죠. 어떤 약을 쓰고 또 다른 약을 쓰면서 “이 약을 쓰시겠습니까? 1년을 더 살게 해줄 수 있는데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얼마일까요? 10만 위안입니다. 10만 위안으로 1년을 사는 것이죠. 그러고 나서 1년 뒤에 결국 죽는다면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저는 줄곧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1년 더 산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어떤 사람은 전신마비가 되었는데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여깁니다. 우리 동역자 중 한 분의 외할머니께서 마비가 오셔서 등이 다 짓무르고 썩었는데도 그곳에서 ‘그래도 사는 게 낫다’고 중얼거리셨습니다. 산다고 해도 고통뿐인데 말입니다.
나중에 제가 결론을 내렸는데, 믿거나 말거나 저는 “내가 왜 아직 안 죽었지?”라고 말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그때 제 나이가 겨우 마흔 살이었는데, 비인두암 증상이 다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저더러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지만, 저는 싫다고, 죽으면 그만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납득하지 못했지만,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저와 나이가 비슷하고 자녀 나이도 제 아이와 비슷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도 저와 똑같은 증상이 나타나서 검사를 받아보니 비인두암이었습니다. 온갖 치료를 받더니 9개월 뒤에 관 속에 눕게 되었습니다.
제가 장례식에 가서 관 앞의 유리창을 통해 그 사람을 보았는데, 치료를 받느라 뼈만 앙상하게 남고 얼굴도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보게, 죽고 싶어 하는 게 얼마나 좋은데 왜 그렇게 살려고 했나? 죽고 싶어 하던 나는 왜 죽지도 않고, 살고 싶어 하던 자네는 왜 살아남지 못했는가?” 사람들은 “이 사람 정말 못됐네, 죽은 사람한테 농담을 다 하고”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종종 관 옆으로 가서 죽은 사람에게 몇 마디 중얼거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귀신이 안 무섭냐?”고 묻습니다. 그따위 것을 왜 무서워합니까? 귀신이 나를 무서워해야죠. 말씀드리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귀신도 무서워합니다.
저는 한 가지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살려고 하는 순간 문제가 생깁니다. 오늘 제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설교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잠시 후에 본문과 연결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빚을 지고 병에 걸려 죽어가길래 제가 기도했더니 살아났습니다! 끝난 줄 알았는데, 사람이 죽을 때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고 돈 쓸 일도 없지만, 살아나고 나니 “목사님, 제 빚은 어쩌죠? 돈을 벌어야 하는데요”라며 근심에 빠집니다. 사람이 살려고 하면 문제가 생기고, 사람이 죽으려고 하면 문제가 사라집니다. 참 이상한 역설 아닙니까?
그래서 오늘 여러분에게 제안 하나를 드립니다.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내가 죽어도 상관없다, 내 목숨을 하나님께 바쳤다!’라고 하십시오. 묻겠습니다. 죽음조차 개의치 않는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누구도 나를 협박할 수 없고, 누구도 나를 쥐고 흔들 수 없으며, 누구도 내 안의 기쁨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기뻐하며 살고, 하루를 살아도 나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며 살고,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런 존재입니다. 오늘 여러분 자신을 죽을 사람으로 여기십시오. 그러면 아무것도 개의치 않게 됩니다. 어차피 죽을 텐데 무엇을 신경 쓰겠습니까? 그러면 기쁨이 찾아옵니다!
이직할 때 이 직장을 택할까 저 직장을 택할까 고민하고, 직장이 없으면 돈이 다 떨어져 간다고 괴로워하며 마음을 졸입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한 가지 방법을 더 알려드려도 되겠습니까? 직장도 없고 돈도 다 떨어져 간다면, ‘좋다! 내 생명을 하나님께 바치고 80일 동안 금식 기도하자. 돈도 한 푼 안 들 테고, 목사님이 전화해도 안 받으면 그만이다’라고 하십시오. 가끔 제가 동역자들에게 “어쩌면 제가 80일 금식 기도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면 그들은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압니다. 비할 데 없이 좋습니다! 죽음조차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무엇을 더 신경 쓰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것들은 아직 비교적 낮은 단계에 속합니다. 제가 열일곱, 열여덟 살 때 이미 깨달은 것인데, 그때부터 사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었고 여전히 막막했습니다. 그러나 더 높은 수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으면 죽으리라’가 아니라 영원히 사는 것, 즉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을 가진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주 훌륭하게 살아갑니다. 정말 좋은 삶입니다. 이런 소망을 구하는 사람들은 다 비범한 사람들입니다! 500년에 한 번 나올 법한 기인(奇人)들입니다. 누가 이런 사람을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꿰뚫어 봅니다! 오늘 여러분의 얽힌 문제를 푸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여러분이 살고자 하는 그 소망을 없애버리면 일이 쉬워지고, 다시 죽고자 하는 소망마저 없애버린 뒤 여러분을 영생으로 이끌면 됩니다.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나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는다고 했는데, 정말 기인 아닙니까? 초인(超人)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이며, 여러분 모두가 이런 초인, 초자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썩지 아니할 복을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이렇게 수년간 사역자로서 목청껏 “영원하고 썩지 아니할 복을 구하라!”고 외쳐댔지만, 둘러보면 몇 사람 되지 않습니다. 우리 이렇게 작은 무리뿐입니다. ‘아니, 왜 이것이 좋은 것인 줄 모를까? 왜 도무지 모를까?’ 싶어서 마음이 조금 답답하기도 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답답할 게 뭐 있나, 다 각자의 몫이지!’ 싶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이런 느낌은 너무나 자유롭습니다. 마음이 정말 탁 트이고 시원합니다! 그 어떤 것도 나를 얽맬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내 안의 기쁨을 빼앗을 수 없으며, 그 어떤 것도 나를 핍박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저를 버리지 마옵소서.”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는 분이 아니라고 자주 말씀드립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아무런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늘날까지 제가 한 가지를 더 확증했는데, 바로 이런 사람에게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작은 가게 하나를 차려놓고 아등바등하며 조금 더 잘살아 보려고, 가게를 조금 더 잘 키워보려고 애쓰다가 결국 스스로 고민에 빠지지 않습니까? 사실 사람이 사는 것은 아주 단순한 일 아닙니까? 예전에 저의 수준은 ‘살다 보면 죽는 거지’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나중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는데, 예전에는 그것이 타고난 생각이었습니다. ‘살다 보면 결국 죽는 거지’라는 생각이 날 때부터 있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분명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깊이 생각해보며 주님을 믿은 후에는 사람들에게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누구에게 배웠을까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배웠는데, 그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이 야곱이라는 친구입니다. 그 사람과 관계가 참 좋아 보인다고 하시겠지만, 훗날 제가 천국에 가서 야곱을 만난다면 정말 기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는 기인이자 초인이었습니다! 저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사무엘, 다윗 같은 사람들에게서 배웠습니다. 무엇을 배웠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배웠습니다! 오늘 우리가 배우는 사람이 바로 이 야곱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중히 여기느냐에 따라 그것을 갈망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갈망해야 할까요? 아브라함의 갈망, 이삭의 갈망, 야곱의 갈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하나님은 바로 야곱이 있는 곳에 계시며, 당신의 갈망 속에 계십니다. 그것은 참으로 엄청난 일입니다!
야곱은 줄곧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했습니다. 오늘 바로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고, 그는 잠에서 깨어난 후 “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내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었을까?”라고 말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 나와 함께하옵소서!”라고 말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진실로 우리와 함께 계시며, 하나님은 진실로 여기에 계시는데 다만 우리가 모를 뿐입니다. 위기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고, 하나님의 지키심이 있으며,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위기가 지나가고 나면 우리는 또다시 하나님의 임재를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위기 때는 그곳에서 “하나님!” 하고 부르짖으며 그렇게 열정적이다가도, 위기가 지나가면 “기도요? 목사님, 저는 왜 기도할 때 느낌이 안 오죠?”라고 합니다. 이게 느낌으로 하는 것입니까? 제가 보기엔 당신이 위기를 덜 겪어서 그렇습니다. 다음에 또 위기를 겪을 때 하나님께서 당신을 진노의 그릇으로 삼으신다면 큰일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위기 때만 “하나님!” 하고 부르짖다가 위기가 지나가면 “주일이요? 시간 없어요! 성경공부요? 시간 없어요!” 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주님을 믿은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성경을 한 번도 완독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한심하지 않습니까? 매를 맞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사람들은 정말 고생을 덜 겪은 것입니다. 저는 때로 속으로 기도합니다. 여러분 저를 탓하지 마십시오. 저는 진심으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기를 원하며,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있는 세상적인 것들을 다 무너뜨리셔서 절망 가운데 들어가게 하사 하나님의 임재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임재가 비할 데 없이 좋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야곱은 그렇지 않았으니 여러분은 차근차근 배우십시오. 한참 동안 서론을 말씀드렸는데, 사실 핵심은 여러분이 무엇을 갈망하며, 무엇을 중히 여기느냐는 것입니다. 무엇이 여러분 안에서 가치 있고, 무엇이 가치 없습니까? 이렇게 단순한 일입니다. 시간이 없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다른 일이 중요하고 이 일은 중요하지 않다는 뜻 아닙니까?
2. 본문 말씀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세기 28:10-16)
3.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 주님의 임재가 얼마나 보배로운지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이러한 결단을 주시고 우리의 마음 문을 열어주셔서 야곱이 걸어간 길을 본받게 하시고, 야곱의 그 간절한 갈망과 대가를 치르고자 하는 헌신, 주님을 구하기 위해 치른 그 무거운 대가를 본받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는 주님의 임재를 보길 원하며, 오늘 우리는 주께서 여기 계심을 알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주께서 진실로 여기 계심을 알게 하옵소서. 보라, 이곳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입니다. 하나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 제단 위에 드리기를 원하며, 우리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드리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 앞에 서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저에게 용기를 주시고 능력을 주옵소서! 이 세상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본받아 이 땅에서 영원한 영생의 길을 달려가게 하시고, 우리가 주님의 얼굴을 뵈올 때까지 영원 가운데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본문 배경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 구절은 참 흥미롭습니다. 왜 알지 못했다고 했을까요? 이전에는 몰랐다가 나중에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본문은 야곱이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은 장면입니다. 이때 야곱의 나이가 75세였습니다. 75년이라니, 저는 이 사람이 정말 존경스럽고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나중에 아내를 넷이나 두게 되지만, 야곱은 75세가 될 때까지 연애도 안 하고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자주 결혼을 재촉하며 “아들아, 연애 좀 해라. 규수를 소개해주마. 아들을 낳아야지, 안 그러면 늙어서 어쩌려고 그러니?”라고 했을 것입니다. 70이 넘도록 연애도 안 하고 결혼도 안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 의아해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다닌 걸까?’ 그는 온종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임재를 가져올 수 있을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 하는 생각만 골몰했던 것입니다. 말씀드리지만 이런 사람들은 다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랬다는 점이 대단하며, 우리도 왜 그랬는지는 모릅니다. 그는 태어났을 때 어땠습니까? 날 때부터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은 참 무의미하다고 여겼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장자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의 쌍둥이 형 에서는 그보다 겨우 5분 일찍 태어났는데, 1분만 먼저 나와도 야곱은 둘째가 됩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10.1초와 10.2초는 차이가 큽니다. 10.01초는 우승자이고 10.02초는 2등입니다. 2등이라는 말은 듣기 싫죠. 그래서 야곱은 마음이 몹시 답답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무릎 위에 자주 앉아 있곤 했습니다. 그때는 아브라함이 아직 살아 있었고 나이가 꽤 많았는데, 야곱이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까지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습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다니!’ 야곱은 이 이야기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들었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의 임재 없이 그저 살다가 죽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아이는 참 대단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오늘 여러분은 이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10대나 수십 세가 되었어도 여전히 산다는 이 사소한 일들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면, 오늘부터라도 천천히 꿰뚫어 보기를 배우십시오.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여러분의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생각하는 것이 “목사님, 제 아이를 위해 기도해서 아이가 또 아이를 낳게 해주세요”, “목사님, 제 딸이 부잣집 사위를 만나게 기도해주세요” 같은 일들뿐입니다. 저는 차라리 결혼정보업체나 불임클리닉을 차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돈을 쓸어 담을 텐데 말입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보며 참 씁쓸하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이 야곱은 참 흥미롭습니다. 에서는 장자였으니 본래 이 일은 장자인 에서에게 계승되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듣고는 “이게 대체 뭐야? 그게 밥 먹여줘?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 재미없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휙 하니 나가서 칼과 활을 다루며 무예를 뽐냈는데, 실력이 꽤 좋았습니다. 새총으로 탁! 쏴서 참새 한 마리를 떨어뜨리고는 아브라함에게 “할아버지, 제가 참새 한 마리 잡아 왔어요”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참새 고기 드셔보셨습니까? 새끼손가락만 한 고기 한 점입니다. 여담이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 참새 고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어떻게 먹었을까요? 진흙으로 참새를 둥글게 감싸서 불 속에 던져 구운 다음, 진흙을 벗겨내면 가슴팍에 남은 작은 고기 한 점이 있는데 구운 참새가 정말 맛있었습니다. 에서는 “그게 밥 먹여줘? 참새가 훨씬 낫지”라며 탁! 새총으로 까마귀를 쏴서 구워 먹고, 탁! 독수리를 쏴서 구워 먹고, 탁! 토끼를 잡아다 구워 먹었습니다. 바비큐 솜씨 하나는 끝내줬습니다.
왜 이랬을까요? 우리도 모릅니다. 하지만 야곱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넘어야 할 산이 있었습니다. ‘내가 언제쯤 이 장자의 명분을 얻을 수 있을까?’ 왜 그랬을까요? 장자의 명분 그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얻고 싶어서였습니다. ‘내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 내 아버지 이삭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나도 하나님과 맺고 싶다!’ 바로 이 열정을 품고 있었기에, 연애에는 관심이 없었고, 여자친구를 사귀는 데도 관심이 없었으며, 어머니가 데려온 여자에게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이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했습니다. 걱정할 만하지 않습니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대단한 것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장자의 명분을 차지해버렸습니다. 이때 그가 하나님을 만난 적이 있었을까요? 없었습니다. 나중에 형이 자기를 죽이려 할 때까지도 하나님을 직접 뵌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는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 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주님은 할아버지에게 말씀하셨으면서 왜 저에게는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아버지에게 말씀하셨으면서 저에게는 왜 말씀하지 않으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고, 몹시 애가 탔을 것입니다! 형이 자기를 죽이려 하니 그는 서둘러 도망쳤습니다. 형이 늘 무기를 다루었으니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새를 쏘던 그 새총으로 야곱을 한 방 쏘기만 해도 골로 갈 뻔했습니다. 결국 야곱은 지팡이 하나만 짚고 도망쳤는데, 이때 야곱의 나이가 이미 70이 넘었습니다. 정말 감탄할 만하지 않습니까? 기다리고 기다려 75세가 된 것입니다.
지팡이 하나를 짚고 외삼촌 라반의 집, 즉 어머니의 오빠 집으로 향하던 그는 길을 가면서도 여전히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 주님은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이런 갈망을 하루이틀도 아니고 75년 동안 품었습니다! 75년 동안 간직했다는 것은 장난이 아니며, 실로 엄청난 믿음의 훈련이었습니다! 야곱이 어느 곳에 이르러 돌 하나를 가져다 누웠는데, 제 생각에 그는 눕기 전에 ‘아,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고 목마르고 배고프구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돌 하나를 베개 삼아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잠이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깨어났을 때 “와, 하나님이 과연 여기 계셨는데 내가 알지 못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왜일까요? 그가 오직 관심을 둔 것은 오직 한 가지, 즉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것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75년 동안 갈망했는데, 여러분은 고작 몇 년이나 갈망해보셨습니까? 겨우 1초 갈망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패스트푸드를 좋아하지만 패스트푸드는 건강에 매우 해로우며, 영적인 패스트푸드도 별 볼 일 없습니다! 그곳에서 먹을 것도 다 떨어져 가고, 마실 것도 다 떨어져 가고, 돈도 다 떨어져 갔습니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라 이런 고생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언제 돌을 베개 삼아 누워봤겠습니까? 그런 곳에서 잘 수나 있겠습니까? 게다가 깊은 산골 숲속이라 사자가 나타나도 당해낼 수 없고, 호랑이가 나타나도 당해낼 수 없으며, 흑곰이 나타나도 당해낼 수 없는데 그가 무엇을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늑대 무리가 오면 더 치명적이고, 들개 무리가 나타나도 꼼짝없이 당할 판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저를 지켜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꿈을 꾸었는데, 여호와께서 사닥다리 위에 서서 그에게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선포하셨고 이삭에게 선포하셨던 그 축복을 드디어 받게 된 것이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일어나서 “아, 하나님이 과연 여기 계셨구나!” 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염려하는 문제를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가는 길에서 저를 지켜주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옵소서.” 그가 무엇을 구한 것입니까? 아주 단순한 필요를 구했을 뿐 과한 욕심은 부리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훗날 이 땅으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족했고, 그는 영원 안에서 이 땅을 얻고자 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라고 하자,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하나님 역시 우리 무리가 야곱과 같은 마음을 갖기를 갈망하십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야곱과 같은 결단을 가져야 하며, 이 일을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5. 살다 보면 결국 죽으니, 모든 것이 헛되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이 말을 뇌리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여러분이 프로젝트를 맡고 있든, 회사를 경영하든, 작은 가게를 운영하든, 직장 생활을 하든 사람은 살다 보면 결국 죽고 모든 것이 헛됩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든 문제는 사는 이 사소한 일들을 너무 진지하게 여기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은 유골함에서 불과 한 뼘 떨어진 곳에 멈추어 있습니다. 한 걸음만 더 가면 유골함인데도, 우리는 산다는 이 하찮은 일을 너무 무겁게 여깁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은 저와 똑같은 의문을 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모아둔 이 모든 것을 훗날 누구에게 줄 것입니까? 사람들은 “목사님은 돈이 많으신가요?”라고 묻습니다. 돈이 많지 않으며, 돈이 많아도 별 의미가 없고 누구에게 줘야 할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누구에게 줄지 모르는데 많으면 누구에게 주겠습니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살다 보면 결국 죽고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은 근본적인 논리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이 기초가 없다면, 사는 이 사소한 일을 몹시 중하게 여겨 세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는 일을 그렇게 중하게 여기면서 육신의 생각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육신 가운데 살고 있지만,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며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재물은 아무 의미가 없고, 집도 의미가 없으며, 차도 의미가 없고, 사랑도 의미가 없으며, 가정도 의미가 없고, 사업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의미가 있겠습니까?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이 이것들이 무의미함을 알 때 비로소 올바른 기초 위에 설 수 있고, 영원 속에 있는 썩지 아니할 복을 구하게 되며, 하나님께서 영원 안에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영광의 면류관을 구할 수 있게 됩니다. 구하지 않는데 어디 가서 얻겠습니까? 야곱이 바로 그렇게 걸어갔고, 야곱뿐만 아니라 아브라함도 그렇게 걸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자가 된 후에 구했지만, 야곱은 돈이 있을 때도 구했고 땡전 한 푼 없는 가난한 처지에서도 똑같이 구했습니다.
우리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야곱이 이런 것들을 구하다가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던 중 길 중간에서 결국 손에 지팡이 하나만 남게 되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은 “보세요, 저주를 받은 것 아닙니까?”라고 설교합니다. 저주를 받았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겠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이 저주받은 자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셨습니까?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저주하리라” 그런 구절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축복을 선포하셨다면 그것이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우리는 이것이 많은 것을 시사함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기뻐하셨고, 그가 산다는 일을 꿰뚫어 본 그 논리를 기뻐하셨다는 뜻입니다.
야곱이 왜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을까요? 그가 행한 일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그의 근본 바탕이 ‘모든 것이 헛되며, 살다 보면 결국 유골함으로 들어갈 텐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위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직장의 스트레스를 너무 크게 만들지 맙시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 업무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요”, “목사님, 대학 입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요!”라고 합니다. 저는 “그럼 그냥 미치세요. 늦게 무너지는 것보다 일찍 무너지는 게 낫습니다. 왜 아직도 안 무너졌습니까?”라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제 말을 농담으로 여기지만 농담이 아닙니다. 무너지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일찌감치 무너져서 이것들이 다 헛되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들이 헛되다는 것을 알면 왜 멘붕이 오겠습니까? 멘붕이 올 일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름다운 사랑을 중히 여기면 로맨스 사기꾼이 찾아오고, 아름다운 가정을 중히 여기면 그 가정이 여러분의 얽매임이 됩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게서 이런 것들을 다 깨뜨려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중히 여기면 사업이 여러분의 억압이 됩니다. 걸핏하면 “목사님, 제 사업 좀 봐주세요” 하며 길게 늘어놓고, “목사님, 제 직장이요”, “목사님, 제 이력서 좀 봐주세요, 면접 봐야 해요”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목사님, 왜 그렇게 절망적인 반응을 보이세요?”라고 합니다. 다 별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섬기기는 하지만, 여러분 스스로 자신이 좀 어리석지 않은지 돌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 이런 것들 때문입니다.
사람이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나면 무슨 스트레스가 있겠습니까? 사는 것이 아주 단순한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천천히 이해해보십시오. 저는 찾고 찾다가 절망의 지경에 이르렀고, 절망의 지경에 이르러서야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절망하지 않았다면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 기회가 있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더 나은 본향, 영원 속의 영광스러운 본향을 구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포자기하며 마음껏 쾌락을 즐깁니다. 인생을 꿰뚫어 보고 나서 사는 게 재미없으니 마음껏 즐기자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즐기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무엇을 즐기겠습니까? 제대로 즐길 수나 있습니까? 즐기다 보면 도리어 얽매이게 됩니다.
6. 하나님을 갈망하고 구하기 시작하다
사람이 서른 살까지 살면서 영적 세계를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30대가 되어 스스로 밥벌이를 하고 생계를 꾸려가기 시작하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매우 영적인 일임을 관찰하게 될 것입니다. 몹시 불운했던 잘나가던 사람, 어느 대기업 회장이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대기업 회장이라고 교통사고를 피해 갈 수 있습니까? 회장 아버지라도 교통사고는 못 막습니다.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다 보면 여러분은 야곱이 걸어간 길처럼 하나님을 갈망하고 구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야곱이 그 길을 갈 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을까요? “하나님, 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 제가 어떻게 주님과 언약을 맺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제가 주님과 언약을 맺어도 되겠습니까? 하나님, 제 눈앞에서 제 조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축복을, 제 아버지 이삭에게 주셨던 축복을 선포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하나님, 저도 그런 복을 원합니다!”
그렇게 구하고 또 구하던 야곱이 75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드디어 그에게 입을 열어 말씀하셨는데, 그것도 꿈속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께서 꿈에 “내가 너를 축복하고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결코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고 해봅시다. 그가 잠에서 깨어난 뒤 속으로 ‘이게 무슨 꿈이야? 내가 그따위 걸 어디다 써? 그게 밥 먹여줘? 하나님, 저에게 몇천만 위안이나 좀 주세요’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런 것뿐입니다. 설령 신장이 망가져서 그 몇천만 위안으로 신장 하나를 이식받는다고 한들, 얼마나 큰 고통을 겪겠습니까? 그런 것을 어디다 쓰겠습니까? 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을 구하기 시작하여 이 헛된 인생 속에서 살아가는 참된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핵심입니다!
야곱은 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세월을 인내했는데, 여러분은 겨우 얼마나 인내해보셨습니까? 여러분은 “목사님, 제가 일주일 동안 기도했는데 왜 아무 일도 안 일어나죠?”라고 합니다. 저는 “콩나물도 아직 싹이 안 텄습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구하기 시작하면 찾고 찾다가 결국 찾게 됩니다. 구하는 자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입니다. 당신이 구하고 있을 때 그리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야곱이 지팡이 하나만 짚고 그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황량한 들판에서 언제든 들짐승에게 잡아먹힐 수 있는 상황에서 돌 하나를 찾아 베고 잠이 들었습니다. 너무 피곤하고 지쳐 잠들었기에 아무것도 몰랐는데, 눈을 떴을 때 호랑이 한 마리가 두 눈을 부릅뜨고 자기를 노려보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호랑이는 고사하고 늑대가 두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거나, 흑곰이나 불곰이 노려보고 있다면 너무 무서워 기절할 지경일 것이며, 그 짐승의 점심이나 저녁, 혹은 아침 식사 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런 처지였습니다.
사람이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축복은 무슨 놈의 축복이야? 아버지가 나한테 축복해줬더니 오늘 이 꼴이 되었네’ 하지 않겠습니까? 알아들으셨습니까? 여전히 사는 이 사소한 일을 너무 중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에게 ‘사는 것은 헛된 것이다’라는 깨달음이 없다면 구하는 것 자체가 헛것입니다. 구하는 것이 헛것이면 문제를 만났을 때 당황하고 허둥대며 믿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야곱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주께서 저와 함께하신다면 제가 주께 서원하겠습니다. 무엇이든 다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부른 찬양 《나의 삶을 드리니》의 고백 아닙니까? “하나님, 제 생명을 주께 산 제물로 드리기를 원합니다!”
7. 위기의 때에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와 함께하신다
하루 세 끼 먹고 두 번 자는 삶, 세 끼 배불리 먹는다는 것은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는 것이고, 두 번 잔다는 것은 밤에 한 번 자고 낮에 낮잠 한 번 자는 것입니다. 말씀드리지만 하루 세 끼 먹고 두 번 자는 평안한 일상 속에서는 하나님을 보기 어렵고, 하나님이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을 그다지 사모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예전에 팥죽을 쑤었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쑤어내지 못했고, 녹두죽을 쑤었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쑤어내지 못했으며, 잡곡밥을 지었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지어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품에 안겨 어머니와 하나님의 임재를 논해보았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나오지 않았고,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하나님의 임재를 논해보았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사람에게 말씀하십니까? 사람이 위기의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지극히 큰 복입니다! 사람이 위기가 없을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더욱 큰 복입니다! 이때 야곱은 위기를 만났습니다.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그는 잠들기 전에 분명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손에 쥔 것은 지팡이 하나뿐이고 물도 다 떨어졌고 음식도 다 떨어졌으며,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며칠이나 남았는지 보름이 걸릴지 한 달이 걸릴지 알 수 없으니 정말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몹시 절망적이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절망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바로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저도 위기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몹시 힘겨운 날들이었지만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외에 또 누구를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지난 세월 동안 사실 하나님은 우리를 한 번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화인명정신학(중국인 사명 신학)은 바로 이렇게 세워졌습니다. 연이은 위기와 연이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고 땀을 흘릴 수 있으며 심지어 피를 흘릴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큼은 비록 숨이 끊어질 듯 희미할지라도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훗날 저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고, 깜짝 놀라 “내가 알지 못하였구나!”라고 외쳤습니다.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지난 세월 축귀 사역을 해오면서 어떤 분이 저에게 책 한 권을 선물해주었는데, 그 책은 영국의 쿡 목사님이 쓴 《거룩한 도전(Divine Challenge)》이라는 책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 책을 읽으면서 몹시 부러워했습니다. 너무나도 부러웠습니다! 속으로 ‘우리는 언제쯤 이 수준에 이를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이 이르렀을 때, 문득 그 책에 기록된 모든 것들을 우리가 다 경험했고 승리해야 할 것들을 다 이겨냈음을 발견했습니다. 1년 뒤 제가 다시 그 책을 집어 들었을 때 “하나님, 이 모든 것이 어쩌면 이렇게도 빨리 찾아왔습니까!”라고 고백했습니다.
사실 믿음이라는 훈련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제가 사람들을 이끌고 기도할 때 하루가 지나도 그대로이고, 이틀이 지나도 그대로이며, 한 달이 지나도 그대로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문득 그의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저는 모든 것이 너무나 갑작스럽고 빠르게 찾아왔으며, 하나님의 임재가 참으로 실제적임을 느낍니다. 사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며,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믿음을 훈련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어떤 위기에 직면하든,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든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하셨던 것처럼 여러분과도 함께하실 것이며,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것을 다 이루기까지 여러분을 결코 떠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아멘!
믿음을 일으키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말씀하십시오. “하나님, 제가 바로 이 세대의 아브라함이요, 이삭이요, 야곱입니다. 저는 지금 주님을 구하고 있습니다.” 거울을 보며 ‘올해 내 나이가 몇 살이지? 서른 몇 살이구나.’ 괜찮습니다. 야곱은 75세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그래도 주님을 구할 것이며, 사는 이 일들이 헛된 것임을 인정하고, 반드시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의 임재를 살아내겠습니다. 하나님, 저는 주님을 구할 것입니다. 비록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지라도 저는 여전히 주님을 구하며 주님의 임재를 갈망하고, 주께서 아브라함의 언약과 이삭의 언약과 야곱의 언약을 제게 선포해주시기를 갈망합니다. 하나님, 주께서 여기 계시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선포입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있는 모든 곳에서, 여러분이 가는 모든 길에서, 일생의 모든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공급하실 것이며 여러분은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팔이나 여러분의 능력을 의지함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음입니다.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보십시오, 우리 앞에 놓인 길은 바로 약속의 길이며, 우리 앞에 놓인 곳은 바로 약속의 땅입니다! 들어가서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다 이루시기까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야곱의 수준은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한 말을 읽어보면 참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아무리 수준이 낮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귀하게 보십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세기 28:20-22)
이 말이 듣기에 썩 그럴듯해 보이지 않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들으시기에 어떻습니까? 아주 거룩하고 대단해 보입니까?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도 않고 별것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때 손에 쥔 지팡이 하나만 보았기에 그의 믿음이란 고작 하나님이 입을 옷을 주시고 먹을 음식을 주시는 것뿐이었습니다. 그저 밥 먹는 문제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밥 먹는 것으로 여겼고, 자기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단순한 요구에 불과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수준을 따지지 않으시며,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 아주 단순한 믿음입니다. 지금 당장은 이 정도 수준이어도 괜찮습니다. 훗날 야곱이 일생 동안 겪은 고난은 결코 적지 않았으며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생 믿음을 실천했고, 마침내 애굽에 이르러 아들 요셉을 만났을 때는 이미 믿음의 경지가 완숙한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거창하고 대단한 서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필요 없습니다! 이렇게 단순한 추구만으로도 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따지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말을 좀 잘못한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과거에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모독한 적이 있다 한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오늘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한평생 살아가면서 자신이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언제 대변을 보고 언제 소변을 볼 수 있을지조차 스스로 결정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소한 일조차 스스로 어쩌지 못합니다. 밥을 넘길 수 있을지, 물을 마실 수 있을지, 잠을 잘 수 있을지조차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단순한 논리입니까. 하나님은 일찍이 영원 속에서 한 가지를 정해두셨습니다. 바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우리 안에서 다 이루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바로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8. 결론: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다 이루기까지 반드시 우리와 함께하신다!
기억하십시오. 자기의 의를 세우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여러분의 평생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전에 중요하게 여기던 것을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임재만을 중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영원 안에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그 영광의 면류관을 갈망하십시오. 이 세상에서 이 길을 달려갈 때 몸에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짊어짐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그 부활의 능력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십시오. 그 어떤 것도 아무것도 아니며,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를 신뢰하는 마음입니다. 아멘! 다 함께 선포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다 이루기까지 반드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건축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의 모든 약속을 다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다 신실하며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멘.
찬양 한 곡 부르고 오늘 헌금 시간을 갖겠습니다. 만약 헌금의 의미를 잘 모르신다면 헌금하지 마십시오. 야곱은 “주께 십분의 일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전에 어떤 분을 만났는데 “목사님, 저는 90퍼센트를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분을 쳐다보며 “그럼 뭘 먹고 뭘 마시려고 그럽니까?”라고 했습니다. 그건 제가 농담 삼아 말한 80일 금식 기도와 비슷한 것인데, 저는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곱은 십분의 일을 말했고, 우리는 하나님께 “주께서 제게 주신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주께 드립니다”라고 합니다. 듣기에는 대단치 않은 일 같지만 아주 단순한 원리입니다. 오늘 자신을 드리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선택이며, 10분의 1이냐 10분의 9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그분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보는 것이며, 그러면 사람의 인생은 비할 데 없이 복됩니다!
결코 “목사님, 보세요. 저는 벌써 10분의 9나 헌금했습니다”라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저는 “제발 그만두세요!”라고 말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생명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께 쓰임 받고 그분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본받아 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됨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습관을 기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면 설령 직장이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직장을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아멘!
저와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야곱을 본받아 영원 안에서 저를 위해 예비하신 영광의 면류관을 구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제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본받아 그들이 걸어간 그 길을 걷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저와 언약을 맺어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선포하셨던 그 말씀들을 제 삶에도 선포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저는 주님의 임재를 갈망하며 주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건축하기를 갈망합니다. 하나님, 주께서 우리 가운데 끊임없이 나타나시고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날마다 더해지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도우사 우리 안의 모든 염려와 걱정을 제하여 주시고 평생토록 주님만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