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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마가복음 11장 - 만물이 주를 위해 쓰임받다

2017-05-18 74,158 马可福音 咒诅 权柄 祷告 不饶恕 小驴驹 主的圣殿

相关经文

马可福音11章-光荣地进耶路撒冷
  • 1 耶稣和门徒将近耶路撒冷,到了伯法其和伯大尼,在橄榄山那里;耶稣就打发两个门徒,
  • 2 对他们说:“你们往对面村子里去,一进去的时候,必看见一匹驴驹拴在那里,是从来没有人骑过的,可以解开,牵来。
  • 3 若有人对你们说:‘为什么做这事?’你们就说:‘主要用它。’那人必立时让你们牵来。”
  • 4 他们去了,便看见一匹驴驹拴在门外街道上,就把它解开。
  • 5 在那里站着的人,有几个说:“你们解驴驹做什么?”
  • 6 门徒照着耶稣所说的回答,那些人就任凭他们牵去了。
  • 7 他们把驴驹牵到耶稣那里,把自己的衣服搭在上面,耶稣就骑上。
  • 8 有许多人把衣服铺在路上,也有人把田间的树枝砍下来,铺在路上。
  • 9 前行后随的人都喊着说:“和散那(“和散那”原有求救的意思,在此乃是称颂的话)!奉主名来的是应当称颂的!
  • 10 那将要来的我祖大卫之国是应当称颂的!高高在上,和散那!”
  • 11 耶稣进了耶路撒冷,入了圣殿,周围看了各样物件。天色已晚,就和十二个门徒出城,往伯大尼去了。
  • 12 第二天,他们从伯大尼出来,耶稣饿了。
  • 13 远远地看见一棵无花果树,树上有叶子,就往那里去,或者在树上可以找着什么。到了树下,竟找不着什么,不过有叶子,因为不是收无花果的时候。
  • 14 耶稣就对树说:“从今以后,永没有人吃你的果子。”他的门徒也听见了。
  • 15 他们来到耶路撒冷。耶稣进入圣殿,赶出殿里做买卖的人,推倒兑换银钱之人的桌子和卖鸽子之人的凳子;
  • 16 也不许人拿着器具从殿里经过;
  • 17 便教训他们说:“经上不是记着说:‘我的殿必称为万国祷告的殿’吗?你们倒使它成为贼窝了。”
  • 18 祭司长和文士听见这话,就想法子要除灭耶稣,却又怕他,因为众人都希奇他的教训。
  • 19 每天晚上,耶稣出城去。
  • 20 早晨,他们从那里经过,看见无花果树连根都枯干了。
  • 21 彼得想起耶稣的话来,就对他说:“拉比,请看!你所咒诅的无花果树已经枯干了。”
  • 22 耶稣回答说:“你们当信服 神。
  • 23 我实在告诉你们,无论何人对这座山说:‘你挪开此地,投在海里!’他若心里不疑惑,只信他所说的必成,就必给他成了。
  • 24 所以我告诉你们,凡你们祷告祈求的,无论是什么,只要信是得着的,就必得着。
  • 25 你们站着祷告的时候,若想起有人得罪你们,就当饶恕他,好叫你们在天上的父也饶恕你们的过犯。
  • 26 你们若不饶恕人,你们在天上的父也不饶恕你们的过犯。(有古卷无此节)”
  • 27 他们又来到耶路撒冷。耶稣在殿里行走的时候,祭司长和文士并长老进前来,
  • 28 问他说:“你仗着什么权柄做这些事?给你这权柄的是谁呢?”
  • 29 耶稣对他们说:“我要问你们一句话,你们回答我,我就告诉你们我仗着什么权柄做这些事。
  • 30 约翰的洗礼是从天上来的?是从人间来的呢?你们可以回答我。”
  • 31 他们彼此商议说:“我们若说‘从天上来’,他必说:‘这样,你们为什么不信他呢?’
  • 32 若说‘从人间来’,却又怕百姓,因为众人真以约翰为先知。”
  • 33 于是回答耶稣说:“我们不知道。”耶稣说:“我也不告诉你们我仗着什么权柄做这些事。”

마가복음 목록

주님께 쓰임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함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러 감람산에 계실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마가복음》11:1-3)

이 나귀 새끼는 아무도 타 본 적이 없고, 아무도 쓰려고 하지 않는 작은 나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장 보잘것없는 이 나귀 새끼를 쓰기 원하셨고, 제자들은 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깔아 나귀 새끼가 그 위를 밟고 지나가게 했습니다. 이 옷과 나뭇가지는 나귀 새끼를 위해 깐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깐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주님께 쓰임받을 때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실 힘센 천리마 한 필을 끌고 오실 수도 있었지만, 작은 나귀 새끼를 끌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매우 분명합니다. 만약 주 예수님께서 값비싼 천리마를 타셨다면 그 나귀 새끼는 매우 슬펐을 것입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은 이 나귀 새끼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보기에는 그다지 쓸모 있어 보이지 않고, 권세 있는 명문가 출신도 아니며, 심지어 사회의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섬김으로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기 원하십니다. 주 예수님의 뜻은 사람들이 쓰지 않는 것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어제 제가 기도를 인도할 때 매우 강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 자신의 강함을 나타내시고,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는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있게 하시고, 심지어 백 배의 결실을 맺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길에 깔린 옷과 나뭇가지를 밟으며 나귀 새끼는 예수님과 함께 거룩한 성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우리가 노래를 부르며 “호산나”를 외칠 때면 나귀 새끼를 떠올리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매우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는다면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 쓰임받지 못하면 저주를 받음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나무에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도 들었더라(《마가복음》11:12-14)아침에 그들이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마가복음》11:20-21)

이 무화과나무는 저주를 받은 다음 날 말라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 우리에게 주님께 쓰임받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저주를 받게 되고, 번성할 수 없으며, 설령 번성하더라도 생명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 주시려는 것입니다. 작은 나귀 새끼는 하나님께 쓰임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고, 무화과나무는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해 저주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적인 원칙을 알려 주고 계십니다. 무화과나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면 저주를 받아 그 생명이 말라 버립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장차 저주를 받아 자연스럽게 말라 죽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그 무화과나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주님의 성전은 기도하는 집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없앨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성 밖으로 나가시니라(《마가복음》11:15-19)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목적은 기도하는 집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기도가 있어야 하나님의 풍성함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성전을 사람들에게 빌려주어 장사하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기도하지 않고, 돈을 바꾸며 장사를 했습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성전은 본래 축복을 나누어 주는 곳이며 사람들이 기도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이 장사꾼의 마음가짐으로 인해 강도의 소굴로 변해 버렸습니다. 장사꾼의 마음가짐으로 보는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의 사업체입니다. 몇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임대할 수 있는지,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돈만 보게 됩니다. 바로 이런 장사꾼의 마음가짐이 주 예수님을 분노하게 했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의 이런 장사꾼의 마음가짐을 거친 방식으로 다루셨습니다.

이곳의 대제사장들은 아마 주님을 매우 사랑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 안에는 장사꾼의 마음가짐이 있어서 교회를 세우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런 장사꾼의 마음가짐으로 오랫동안 더럽혀져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철저히 깨뜨리실 때까지 그러했고, 저는 마침내 이런 마음가짐을 완전히 버렸습니다. 장사꾼의 논리 체계를 교회 안으로 가져오는 것은 주 예수님을 분노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결코 투자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투자하는 곳이 아니라 제단을 세우는 곳이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오는 곳입니다. 기도로 많은 은혜를 얻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은혜를 얻으려 하지 않고 돈을 추구합니다. 저는 어떤 교회의 지도자들이 형제자매들을 데리고 다단계 판매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럴듯하게 “하나님께서 내가 다단계 판매를 하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다단계 판매를 하지 않으면 돈이 없는데 어떻게 살아가겠어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마음가짐과 장사꾼의 마음가짐은 완전히 다릅니다. 제사장의 마음가짐은 이렇습니다. “나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나는 이 땅에 기도의 제단을 세운다. 그러면 이 땅은 복을 받을 것이고, 이 땅에 돈이 없을 수 없으며, 이 땅이 가난한 삶을 살 수도 없고 가난의 저주를 받을 수도 없다.” 장사꾼의 마음가짐은 이렇습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돈이 필요하다. 나는 여기서 기도할 시간이 없으니 밖에 나가 돈을 벌고, 돈을 번 뒤 교회를 위해 장소를 하나 사야겠다.” 장사꾼의 마음가짐은 매우 혼란스러운 신앙 상태입니다. 교회는 이런 장사꾼의 마음가짐을 물리쳐야 합니다. 이곳의 대제사장들 안에는 제사장의 마음가짐이 없고 장사꾼의 마음가짐만 있었습니다. 돈을 근본으로 삼는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습니다. 맘몬을 섬기든지 참 하나님을 섬기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맘몬을 섬기는 사람은 참 하나님을 섬길 수 없고, 참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결코 맘몬을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 맘몬은 장사꾼의 마음가짐이며, 맘몬 뒤에 있는 영을 맘몬의 영이라고 합니다.

기도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마태복음》11:22-24)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는 말씀은 매우 단정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주 예수님의 약속은 모두 절대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한 구절만 보아서는 안 되고 앞뒤 문맥을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더라도 이 말씀은 분명히 성립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예를 통해 제자들에게 믿음의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한마디 말씀만 하셔도 그 나무는 말라 죽었고, 산을 바다로 옮기라고 한마디 말씀만 하셔도 산은 바다로 옮겨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현재 어떤 큰 어려움을 만나고 있든지, 그 어려움이 두 개의 큰 산처럼 여러분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힘센 천사 둘을 보내 여러분의 어려움을 옮기실 것입니다. 전제 조건은 이것을 아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구하고 받은 줄로 믿으면 반드시 받게 됩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한 자매가 생리통으로 고통받고 있었는데, 저는 기도하면 반드시 나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자매에게 있는 모든 문제도 반드시 좋아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래도 낫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낫지 않더라도 결국 좋아질 것입니다. 지금 당장 낫지 않았더라도 앞으로 반드시 좋아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렇게 자신의 믿음을 훈련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기도를 막는 것은 용서하지 않는 마음

어떤 사람이 기도해도 늘 응답받지 못한다면 자신의 마음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약속을 받기 원한다면 마음속에 용서하지 않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잘못을 했다면 즉시 내려놓아야 합니다. 아무리 큰일이라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려놓지 않으면 이 용서하지 않는 마음이 여러분을 가로막게 되고, 하나님의 공급이 즉시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가복음》11:25-26)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 마음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옴

이 대제사장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운영했습니다. 예를 들면 기도와 성전의 등불을 관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속으로 이러한 것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매우 큰 보물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 있던 임차인들의 매대를 뒤엎으시자 대제사장들은 매우 화를 냈습니다. “어떻게 내 수입을 끊을 수 있습니까? 내 수입이 끊기면 성전이 어떻게 운영되겠습니까? 제사에 사용할 물건을 살 돈은 어디에서 나옵니까?”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제사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공적인 것을 자기 배를 채우는 데 사용하며 그것을 통해 재물을 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임차인들을 성전에서 내쫓으신 뒤 며칠 지나지 않아 대제사장들은 다시 그들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들이 예수께 와서 이르되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세를 주었느냐(《마가복음》11:28)대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전에 오셨을 때 그러한 권세를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일부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는 것을 직접 보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한 형제가 제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저는 진리를 찾아 나가야겠습니다.” 그 말은 진리가 교회 안에는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진리가 여기에 없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이곳에서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저를 목회자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저는 주 예수님께서 주신 권세를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교회를 세운 것은 결코 제 능력 때문이 아니라, 제사장의 마음가짐으로 제단을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화요일 저녁, 수요일 오전, 금요일 오전, 토요일 오후에 기도하고, 주일에도 예배 전 기도를 인도합니다. 최근 교회 회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교회 계좌에 있는 돈을 살펴보았는데, 이제 사십만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아주 많이 모이는 교회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제사장의 마음가짐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돈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HL 자매는 우리가 가르친 것을 이어받아 어머니를 위해 기도했는데, 어머니가 곧 나았습니다. 시어머니의 우상도 제거되었습니다. 이 대제사장들은 명목상 성전을 관리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성전에 오셨을 때 그분의 권세를 의심했습니다. 바로 이 대제사장들은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것을 본 사람들이었지만, 이제는 예수님이 어디에서 오셨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 제사장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알지 못했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이 제사장들에게는 많은 문제가 있었고, 해결하지 못한 필요도 많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성전 안의 매대를 사람들에게 빌려주어 돈을 벌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작은 것을 붙잡다가 큰 것을 잃어버렸고, 참으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협상하실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마가복음》11:33)이 말씀의 의미는 매우 깊습니다.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한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여러분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으니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매우 탄식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 대제사장들은 내 성전을 운영하면서 내가 내 집에 왔는데도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구나.” 정말 슬픈 일입니다.

결론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받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도 있고, 하나님께 쓰임받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받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전에 오신 것을 보고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하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 쓰임받고 있습니까? 축복 가운데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저주 가운데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에 순종하며, “목사님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합니까?”라고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권세를 받은 사람들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로 일을 합니다. 우리의 몸이 성전이라면 우리 안에 돈을 바꾸는 장사꾼의 마음가짐이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에 따라 그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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