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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느헤미야 2장 -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셨도다!

2025-10-03 29,982 尼希米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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尼希米记02章-尼希米返耶路撒冷
  • 1 亚达薛西王二十年尼散月,在王面前摆酒,我拿起酒来奉给王。我素来在王面前没有愁容。
  • 2 王对我说:“你既没有病,为什么面带愁容呢?这不是别的,必是你心中愁烦。”于是我甚惧怕。
  • 3 我对王说:“愿王万岁!我列祖坟墓所在的那城荒凉,城门被火焚烧,我岂能面无愁容吗?”
  • 4 王问我说:“你要求什么?”于是我默祷天上的 神。
  • 5 我对王说:“仆人若在王眼前蒙恩,王若喜欢,求王差遣我往犹大,到我列祖坟墓所在的那城去,我好重新建造。”
  • 6 那时王后坐在王的旁边。王问我说:“你去要多少日子?几时回来?”我就定了日期。于是王喜欢差遣我去。
  • 7 我又对王说:“王若喜欢,求王赐我诏书,通知大河西的省长准我经过,直到犹大;
  • 8 又赐诏书,通知管理王园林的亚萨,使他给我木料,做属殿营楼之门的横梁和城墙,与我自己房屋使用的。”王就允准我,因我 神施恩的手帮助我。
  • 9 王派了军长和马兵护送我。我到了河西的省长那里,将王的诏书交给他们。
  • 10 和伦人参巴拉,并为奴的亚扪人多比雅,听见有人来为以色列人求好处,就甚恼怒。
  • 11 我到了耶路撒冷,在那里住了三日。
  • 12 我夜间起来,有几个人也一同起来;但 神使我心里要为耶路撒冷做什么事,我并没有告诉人。除了我骑的牲口以外,也没有别的牲口在我那里。
  • 13 当夜我出了谷门,往野狗井去(野狗:或译龙),到了粪厂门,察看耶路撒冷的城墙,见城墙拆毁,城门被火焚烧。
  • 14 我又往前,到了泉门和王池,但所骑的牲口没有地方过去。
  • 15 于是夜间沿溪而上,察看城墙,又转身进入谷门,就回来了。
  • 16 我往哪里去,我做什么事,官长都不知道。我还没有告诉犹大平民、祭司、贵胄、官长,和其余做工的人。
  • 17 以后,我对他们说:“我们所遭的难,耶路撒冷怎样荒凉,城门被火焚烧,你们都看见了。来吧,我们重建耶路撒冷的城墙,免得再受凌辱!”
  • 18 我告诉他们我 神施恩的手怎样帮助我,并王对我所说的话。他们就说:“我们起来建造吧!”于是他们奋勇做这善工。
  • 19 但和伦人参巴拉,并为奴的亚扪人多比雅和阿拉伯人基善听见就嗤笑我们,藐视我们,说:“你们做什么呢?要背叛王吗?”
  • 20 我回答他们说:“天上的 神必使我们亨通。我们作他仆人的,要起来建造;你们却在耶路撒冷无份、无权、无纪念。”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계속해서 《느헤미야기》 2장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나를 도우시다”입니다. 사실 이번 장의 본문을 보면 주제가 매우 분명합니다. 전체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곳곳에서 느헤미야를 돕고 계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느헤미야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마음속에 온통 더러운 생각만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도우실 수가 없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시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인 지경입니다.

우리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에는 하나의 핵심이 있는데, 바로 ‘사명(하나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즉,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는 할 일이 없어서 사서 고생을 한 것일까요? 그는 왕궁에서 술 맡은 관원장으로서 날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술을 마시며,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를 모시면서 날마다 높은 급여를 받았습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황제를 잘 모시는 한편 아랫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수많은 사람이 날마다 그에게 돈을 바쳤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느헤미야가 황제 앞에서 누군가를 위해 좋은 말 몇 마디만 해 주어도, 원래 닥칠 재앙이 사라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말을 잘했기 때문에 황제가 그에게 “이게 어찌 된 일이냐?”라고 물었을 때, 그가 설명하며 좋게 몇 마디 거들어 주면 아무 일도 없게 됩니다. 반대로 사실을 그대로 말하거나 일을 조금 더 심각하게 말하면 그 사람은 감옥에 갇혀야 했습니다. 그러니 느헤미야는 황제 앞에서 대단한 존재였습니다! 그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고, 그가 된다고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는 그렇게 좋은 삶을 누리면서 왜 조정에 머물지 않고 굳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벽을 건축하며 모함을 받기까지 했을까요? 제가 말씀드리건대, 조정을 떠나 멀리 가서 관리가 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언제 조정의 누군가가 황제 앞에서 당신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유다 땅에서 사실상 토착 황제나 다름없었고, 거의 왕 노릇을 할 뻔했습니다. 만약 밑에서 누군가 그를 고발하는 상소를 올리기라도 했다면 그는 끝장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마음에 품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예루살렘이었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황폐해지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으시며, 교회가 황폐해지는 것도 바라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제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여러분을 도우실지 아닐지를 결정합니다.

정말이지, 느헤미야는 평안하게 조정을 떠나 평안하게 조정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일생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그를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날마다 황제와 함께하며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도우셨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느헤미야보다 수십 년 전에 《에스더기》라는 성경이 있었습니다. 에스더라는 한 처녀가 훗날 페르시아 황제의 왕후가 된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하만에 의해 몰살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때 에스더의 양부 모르드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이 자리에 앉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느냐? 지금이 바로 네가 자신을 헌신할 때가 아니겠느냐?”

그러므로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사람이 평생 추구하는 것들은 다 헛된 짓이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여러분을 돕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은혜의 손은 반드시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핵심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로 하여금 왕과 왕후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왕과 왕후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시다

느헤미야의 일과는 황제와 함께 술을 마시고 술을 왕에게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황제는 이 술을 마셔도 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느헤미야가 먼저 마시고 황제는 “두 번째”로 마셨습니다. 만약 느헤미야가 입이 거칠고 덕이 없었다면 황제 곁에 머물 수 있었겠습니까?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황제는 느헤미야를 매우 신뢰했고, 두 사람의 관계는 목숨이 하나로 연결된 것처럼 아주 가까웠습니다. 느헤미야를 단순히 술을 나르는 시종 정도로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가 조정을 떠나면 곧바로 지방의 고위 관리가 될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평소에 느헤미야는 왕에게 술을 올릴 때 ‘미스터 빈’처럼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딱 알맞게 웃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황제가 보기에 그의 얼굴이 마치 쓴오이(근심이 가득한 얼굴) 같았습니다! 감히 황제 앞에서 그런 어두운 표정을 짓다니, 목숨이 날아갈 일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황제가 성미 급한 사람이었다면 “네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느냐? 감히 내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느냐?”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마침 그날 황제의 기분이 좋았기에 느헤미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보십시오. 황제가 느헤미야를 참 잘 이해해 주지 않습니까? 어찌 이토록 사리분별이 있고 너그러운 황제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느헤미야는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다음 일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왕에게 말했습니다.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제가 말씀드리건대, 예로부터 황제들은 백성들에게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할 것을 장려했습니다. 만약 조정 관리의 부친이 사망하면 집에서 1년 동안 상을 치를 수 있었는데, 그가 실제로 1년 동안 효도를 다하든 안 하든 1년간 휴가를 주어 집에 가서 시묘살이를 하고 효를 다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조정이 민심을 얻는 하나의 도구였으니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습니다”라고 하니, 황제는 ‘내 관할 구역 안에 어찌 이런 일이 있는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황제가 상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서 황제가 물었습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이 일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황제든 여러분의 직장 상사든 여러분을 이해해 주느냐 마느냐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돕고 계시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신기하여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황제의 마음과 생각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기쁘게 하시면 기뻐하고, 괴롭게 하시면 괴로워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무엇도 하나님의 손바닥 안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문제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직장 상사를 더 두려워합니다. 자신의 운명이 상사의 손에 달렸지 하나님의 손에 달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느 날 보시기에 ‘이 녀석이 내가 자기 상사보다 크다는 것을 모르는구나’ 하시고 상사의 머리를 툭 건드리시면, 며칠 뒤 상사가 영문도 모른 채 여러분을 호되게 질책하고 여러분을 보기만 해도 짜증 나고 미워하게 만드신다면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여러분 위에 있다면, 여러분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제가 말씀드리건대,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이 지혜가 너무나 부족합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 마치 직접 겪어보신 것처럼 말씀하시네요”라고 합니다.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제 위에 계셨습니다. 저의 직업적 커리어는 제가 계획해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제 위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교회를 세우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제 위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머리가 제대로 돌아간다면 누가 크고 누가 작은지 알게 될 것입니다.

제가 교회에 발을 들이고 주님을 믿기 시작한 그날부터 단순한 논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나는 가장 큰 신을 찾겠다!’ 쥐 한 마리가 도술을 부린다고 해서 그것을 섬기지 마십시오. 고양이가 도술을 부리면 그 쥐를 가만두겠습니까?

내가 쥐를 섬기는데 다른 사람은 고양이를 섬긴다면, 나는 날마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겠습니까? 쥐가 도술을 부린다고 해서 고양이 도술보다 크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함께하시는 것은 너무나 좋은 일입니다! 저는 깊이 감탄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를 전혀 알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는 일만 골라서 하며 저주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저주가 드러나게 될 것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아, 이것은 선악과(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이니 먹으면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남과 잘잘못을 따지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녀 관계, 형제 관계, 부부 관계 등 모든 관계는 여러분이 선악을 분별하는지(선악을 따지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러니 여러분, 조심하십시오. 저와 선악을 따지려 들지 마십시오.

《성경》에서 말하는 ‘선악을 분별함(선악을 따짐)’은 매우 무서운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겁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저와 선악을 따진다고 한들 제가 그것을 신경 쓰겠습니까? 제가 손해를 볼 것 같습니까? 사실은 선악을 따지는 그 사람이 손해를 봅니다. 성경에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왕궁에서 황제가 느헤미야에게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아, 대답하기 얼마나 어렵습니까! 느헤미야는 이때 함부로 말할 수 없었기에 하늘에 계신 가장 크신 하나님께 묵도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며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다시 건축하게 하옵소서.”

느헤미야는 매우 솔직하고 명확하게 몇 마디로 분명하게 설명했습니다. 즉, 왕의 영토 안에 성읍 하나를 다시 건축하여 폐허가 된 성, 곧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그 성읍을 재건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는 묵도를 마친 후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반드시 자기를 도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우물쭈물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페르시아 황제의 인내심은 매우 짧다는 것을 느헤미야는 깊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내게 있으니 황제는 반드시 나를 그곳으로 보내주실 것이다. 나는 그저 직무를 바꾸는 것뿐이고, 황제가 나를 대신할 두 번째 술 관원장을 찾을 수 있을지는 황제의 일이다. 나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조상의 묘실이 있는 곳을 재건하기를 원한다.’

왕후가 왕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만약 왕후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한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문제없지만, 이때 왕후도 곁에 있었습니다. 만약 왕후가 듣고 언짢아하며 ‘내가 어디서 또 다른 느헤미야 같은 사람을 찾겠는가? 지금 네가 일하고 있어서 참 편한데, 마음에 안 차는 술 관원장이 오면 우리는 어찌 지내란 말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황제와 왕후 두 사람이 함께 있었으니 참으로 절묘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얼굴에 수심을 드러낸 것이 결국 하나님의 은혜의 손을 가져왔습니다. 왕후가 듣고는 ‘조상의 묘실이 있는 성을 재건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왕후의 마음 또한 하나님의 손안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손이 사람 위에 임하는 것이니, 그것은 정말 치명적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느헤미야를 본받아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여러분 위에 머물게 하기를 권면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사람이 극도로 이기적이면 길가의 개도 그것을 압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다가 우울증, 루푸스(홍반성 루푸스), 에이즈, 암 등을 주실 수 있는데, 그중 어느 하나만 와도 뼈아픈 고통을 겪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아, 이 자는 선악을 따지는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으니 며칠 이가 아프게 하자’ 하실 수도 있고, 선악을 따지는 정도가 너무 심하면 한동안 위통을 앓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완전히 망가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결국 황제도 기뻐하고 왕후도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술 관원장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왕후는 속으로 ‘내 오라비나 남동생이 술 관원장이 되려고 줄을 서 있는데! 네가 떠나면 내가 한 사람을 앉히면 딱 맞겠구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황제 또한 “왕후여, 누가 술 관원장으로 적합하겠소? 내 보기에 아무개가 괜찮은 것 같소!”라고 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 조서를 얻게 하시다

느헤미야는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내게 조서를 내려주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사실 양날의 검과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황제의 생각이 ‘뭐라고? 내가 바보인 줄 아느냐? 네게 조서를 주지 않겠다’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위험합니까? 혹은 황제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네가 말해줄 필요 없다. 내가 진작에 조서를 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여러분이 제 앞에 와서 “목사님, 저를 이렇게 양육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한다면, 저는 ‘네가 나한테 일하는 법까지 가르치려 드는구나. 차라리 네가 내 스승을 해라. 내가 너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꺼내기 쉽지 않은 말입니다. 황제에게 일하는 법을 가르쳐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느헤미야기》 2:7-8)

왕이 듣고는 그 말속의 칼날을 느끼지 못하고 속으로 생각하기를, ‘아, 네가 일깨워주어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일을 빠뜨릴 뻔했구나. 만약 네가 가는 도중에 가로막힌다면 곤란하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했습니다.

느헤미야는 큰 강 서쪽, 즉 요단강 서쪽을 통과할 수 있도록 왕에게 조서를 청했고, 또한 왕에게 목재를 구했는데 그것들은 모두 값비싼 자원이었습니다. 그 후 왕이 허락해 주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왕이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황제가 듣고 속으로 ‘요즘 국고가 좀 비었으니, 느헤미야야, 네가 그곳에 가서 스스로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아라!’라거나 ‘요즘 부동산 시장도 좋지 않고 우리 경제도 어려우니, 네가 자구책을 마련해 볼 수 있겠느냐? 네 조상의 묘실이 있는 그곳 현지인들에게 돈과 힘을 좀 내게 하여 국가의 어려움을 헤아리게 해라’라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 왕이 그렇게 한다 해도 매우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건대, 여러분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자원을 주십니다. 옛날에 다윗은 늘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고자 했습니다. 성전을 짓는 데는 구리나 철, 나무뿐만 아니라 금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다윗 시대에 그는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많은 톤의 금을 모았습니까? 수백 톤의 금이었습니다! 우리가 기둥을 감싸고 벽을 바르고 패널을 덧댈 때 고작 플라스틱이나 나무를 사용하는데, 이것들은 값비싼 것이 아니며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와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는데 어찌 벽 패널 따위를 쓸 수 있겠습니까? 금을 사용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해 다윗에게 금을 보내주셨는데,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그들은 암몬 사람들을 쳐부수고 암몬의 금을 가져왔으며, 나중에는 레바논의 금도 가져왔습니다.

어쨌든 제가 말씀드리건대, 하나님의 은혜의 손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는 자들 위에 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은 진짜 금과 은입니다! 번쩍이는 황금과 번쩍이는 백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아주 작은 조각이 아닙니다. 금은방에 가서 금목걸이 하나 사서 걸치고 대단하다고 여기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 수백 톤의 황금입니다! 벽 패널을 금으로 만들었으니, 그것을 1밀리미터처럼 아주 얇게 펴서 붙인다 해도 얼마나 많은 금이 필요하겠습니까? 이 자원은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견고한 성벽의 재료를 얻게 하시다

그러므로 조서는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황제가 조서를 써주니 목재 도매지에 도착했을 때 달라는 대로 다 내어주었습니다. 국가의 경제 상황 따위는 상관없었고, 우리는 그 정도 자원이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성전 건축 재료를 얻게 하셨고, 느헤미야에게 성벽 건축 재료를 얻게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하지 못하실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기 시작할 때, 자원은 차고 넘치게 됩니다!

참으로 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그분의 은혜의 손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분을 위해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성전이자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교회를 건축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하나님, 지금 제게 인공지능(AI) 인재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절실히 필요합니다’라고 생각했을 때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또 ‘아, 인공지능 분야는 비용이 많이 드는데!’라고 생각했을 때 재정이 채워졌고 돈이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제게는 한 가지 결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때 결코 고철이나 폐품 같은 것을 쓰지 않고,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가장 좋은 것입니까?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데 돈을 아끼지 않고, 지으려면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성전을 짓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풀과 나무와 짚으로 성전을 짓고, 어떤 사람은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짓습니다. 하나님의 불이 나타날 때 누구의 공력이 남아 있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불 가운데 남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것은 헛된 짓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벽을 세울 견고한 재료를 얻게 하셨습니다.

저는 참으로 형제자매들이 제가 경험한 것을 함께 경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형제자매들이 느헤미야가 경험한 것을 늘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비록 그가 대단한 선지자는 아니었을지라도, 느헤미야는 매우 탁월한 인물이었으며 아주 훌륭한 프로젝트 관리자였습니다.

우리 중 어떤 형제자매들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눈앞이 캄캄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예컨대 예루살렘에 가면서 빈손으로 어슬렁어슬렁 간다면 성벽을 쌓을 수 있겠습니까? 느헤미야는 매우 뛰어난 엔지니어였으며, 왕궁의 프로젝트들도 아마 느헤미야가 관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성벽을 위한 계획을 세우게 하시다

황제는 느헤미야에게 조서를 내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마병을 보내 그를 호위하게 했습니다. 그 여정은 꽤 길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묻겠습니다. “말 위에 앉아 있는 동안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그는 ‘예루살렘 성벽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나는 황궁과 수도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예루살렘 성벽은 남들에게 전해 들었을 뿐 직접 가본 적이 없다’라고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프로젝트의 프레임워크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사흘을 머문 후, 밤에 일어나 하나하나 대조하며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사람과 함께 일어났으나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사실 다른 사람에게 말해봤자 소용없습니다. 프로젝트 관리를 할 때는 계획을 잘 세우고 일을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그 밤에 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용정으로 분문에 이르는 동안에 보니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탔더라 내가 또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서는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

그 밤에 시내를 따라 올라가서 성벽을 살펴본 후에 돌아서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 돌아왔으나 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족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알리지 아니하다가” (《느헤미야기》 2:12-16)

느헤미야가 그들에게 말했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말할 자격이 있을까요? 저는 매우 뛰어난 프로젝트 관리자이기 때문입니다. 제 손에 프로젝트가 맡겨지기만 하면 크고 작은 일들, 특히 핵심적인 세부 사항에서 저는 거의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제 계획은 매우 치밀하여, 저와 함께 일해 본 사람들은 저의 이러한 역량에 감탄하곤 합니다. 저는 이것을 느헤미야에게서 배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하나님의 은혜의 손은 느헤미야로 하여금 왕과 왕후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조서를 얻게 하시고, 성벽을 건축할 재료를 얻게 하시고, 평안하게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의 마음에 지혜를 주셔서 전체 프로젝트의 계획을 철저히 세우게 하셨습니다.

길을 가는 동안 느헤미야는 이미 머릿속으로 프로젝트 전체에 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재료가 얼마나 필요한지, 이 부분은 어떻게 작업하고 저 부분은 어떻게 작업할지를 명확하게 계획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형제자매 여러분 모두에게 이것이 필요합니다.

왜일까요? 우리의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일은 예루살렘 성벽을 짓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엔지니어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물을 생각할 때 엔지니어의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느헤미야 위에 임하여 ‘이 부분을 네가 빠뜨렸다, 저 부분을 놓쳤다’ 하고 일깨워 주셨으니, 아,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입니다! 여러분도 느헤미야를 본받고 싶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목사님, 더 묻지 마세요. 부끄럽지만 꿈에서도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라고 합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배우십시오!

그러자 그는 “아이고, 목사님, 저는 도면만 그리려고 하면 머리카락 빼고 온몸이 다 아픕니다. 계획만 세우려고 하면 머리카락 빼고 온몸이 쑤셔서 계획을 안 세웁니다”라고 합니다.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바보 같은 짓이 아니겠습니까?

때로 제가 말이 좀 직설적일 때가 있어서 “도대체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느냐? 썩은 계란이냐?”라고 합니다. 왜일까요? 계획을 통 세우지 않으면서 늘 자기 머리가 좋다고 착각하니, 그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제게 “목사님, 제가 이 일을 하려고 합니다”라고 하면, 저는 먼저 글(계획서)을 좀 써 가지고 와서 논의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결국 아무것도 써내지 못합니다. 계획을 세울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형제자매들은 “목사님, 저는 왜 이렇게 둔하고 멍청할까요?”라고 묻습니다. 여러분도 저에게 이 말을 묻고 싶지 않습니까? 저는 “당신이 계획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정말입니다! 지혜로워지고 싶다면 일할 때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그가 “목사님, 저는 계획을 쓸 줄 모릅니다”라고 합니다. 그것은 계획을 쓸 줄 모른다고 해서 쓰지 않기 때문이고, 쓰지 않으니 더욱 쓸 줄 모르게 되며, 계획을 쓰지 않으니 점점 둔해져서 머리가 썩은 계란처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이고, 목사님 말씀이 듣기에 너무 거북하고 마음이 답답합니다”라고 합니다. 당연히 마음에 찔리고 거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많은 사람이 정말로 마음의 찔림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배움의 태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계획을 잘 쓸 줄 알아서 쓰는 것이 아니라, 쓸 줄 모르기 때문에 계획 쓰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집을 인테리어할 때 패널이 몇 개나 들고, 콘센트와 조명이 몇 개 필요한지 계획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디자인과 설계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계획을 쓰고 싶습니까? 별로 내키지 않습니까? 지혜로워지고 싶지 않습니까? 지혜로워지고 싶다면 글과 그림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부터 시작하여 차근차근 배우십시오. 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모른다면 제게 와서 조언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유다 평민, 제사장, 귀족, 방백들로 하여금 일어나 건축하게 하시다

이 사람들은 참 못됐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성전 건축은 실행되지 않았고, 남들이 와서 자기 집 성벽을 헐어가 자기 집 돼지우리를 짓는데도 찍소리 한마디 못하고 고스란히 당하고만 있었으니,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겠습니까?

아마 그들은 속으로 ‘에이, 어차피 성벽 벽돌인데 만리장성이든 짧은 성벽이든 우리 집과는 상관없지. 사실 남들이 벽돌을 가져가는 것도 이해가 가네. 나도 며칠 뒤에 몇 장 가져다가 우리 집 돼지우리나 지어야겠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다 평민과 제사장, 귀족, 방백들의 태도였습니다. 성벽을 헐어간 자들 중 많은 이들이 바로 그들 동족이었습니다. 다들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다 평민, 제사장, 귀족, 방백들의 마음을 움직여 일어나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성경 구절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느헤미야기》 2:17-18)

사람들이 듣고는 속으로 ‘느헤미야가 대단하구나! 황제의 총애를 받는 실세가 왔으니 우리에게 자원이 생겼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정에 아는 사람이 있어야 벼슬하기도 좋다”고 하는데, 제가 묻겠습니다. 조정에 황제가 든든히 받쳐주고 있으니 일하기가 얼마나 좋겠습니까? 일하기 참 좋습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던 이전의 혼탁하고 어두운 생각들이 다 사라졌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도 벽돌 몇 장 가져다가 우리 집 돼지우리나 지어야지’ 하고 생각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생각은 바뀌었습니다. ‘아, 느헤미야가 왔구나. 그가 전하기를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왕과 왕후의 마음을 움직여 느헤미야를 돕게 하셨고, 조서와 재료를 내어주셨으며, 이미 계획까지 철저히 세워놓았다고 하는구나!’ 이때 사람들의 마음에 뜨거운 열정이 일어났습니다.

느헤미야의 대단한 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에게는 종교적 감정놀음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까? 날마다 “할렐루야, 아멘! 형제자매 여러분, 일어나 하나님께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합시다!”라며 감정을 선동하는 방식 말입니다. 느헤미야는 결코 감정을 선동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그는 입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부추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감정만 부추기면 정작 진짜 금과 은을 들이고 힘을 써야 할 때 사람들은 발에 기름을 바른 듯 다 도망쳐 버리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아주 단순하고 분명한 말만 했습니다.

최근 여러분은 느끼셨습니까? 저의 구호는 점점 줄어들고 실질적인 일은 점점 많아져서, 여러분이 영적 깨달음과 지각 면에서 더욱 발을 땅에 딛고 견고하게 성장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이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백성들과 귀족, 방백, 제사장들은 자기 내면에 어떤 힘이 솟아오르는 것을 문득 깨달았고, 그들의 심령이 하나님의 영에 의해 감동을 받아 갑자기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품었는지는 저도 정확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왜일까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잠시 떠나자 백성들이 다시 예전의 생활 방식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가증스러운 일입니다.

어쨌든 이스라엘 백성은 느헤미야라는 말을 듣고 ‘그와 좋은 관계를 맺어야지, 그와 관계가 틀어지면 앞으로 살기 힘들어질 거야. 어찌 되었든 느헤미야의 체면을 세워주어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찌 되었든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느헤미야를 도우셔서, 그토록 형편없던 자들이 마침내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일어났으니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백성들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소요나 ‘대혁명’ 같은 소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때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느헤미야 위에 임하여 그 백성들을 격려하셨고, 그들이 이기적이든 아니든 간에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여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겠다고 결단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대적할 용기와 믿음을 주시다

이때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 찾아와 빈정거리며 말했습니다. “느헤미야,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도움이 필요하냐?” 사실 그들은 이전에도 이런 짓을 자주 했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중에 성벽을 쌓으려는 자들이 나타나면, 현지에서 권세와 영향력이 있던 이 세 사람이 나타나 고약하게 굴며 “너희가 무엇을 하려느냐?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라고 위협했습니다.

이렇게 정치적 프레임을 씌우면 골치 아파집니다. 마치 정치판에서 서로에게 프레임을 씌우며 헐뜯는 것처럼, 언제 선거에서 흑색선전을 하지 않은 적이 있습니까? 다들 비방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대답은 매우 당찼습니다. 그는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라고 일갈하며 그들을 꺾어버렸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지 못하시겠습니까? 고작 산발랏, 도비야, 게셈 따위가, 그들이 누구이든 간에 여러분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알아듣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늘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형통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이러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저는 과거에 수없이 많은 공격과 낙심을 겪었습니다. 아, 환경은 참으로 사람을 단련시킵니다. 자주 공격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너 같은 녀석이 무슨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하느냐? 하나님이 너를 부르시기나 했느냐?”라고 했습니다. 제 대답은 단순했습니다. “설령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지 않으셨다 할지라도 나는 기꺼이 이처럼 섬길 것이다.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이다!”

노자가 왜 도덕경을 썼는지 아십니까? 제가 말씀드리건대, 자신이 원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패기와 기개가 있었기에, 훗날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저를 도우셨고, 아무리 험난한 환경 속에서도 영적 세계에서 피 흘리는 싸움을 뚫고 길을 개척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마귀의 말은 아무런 권세가 없으니, 우리가 마귀를 높여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형제자매 여러분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습니까? 모든 질병은 치유받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우리 내면의 악한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죄를 짓는 상태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됩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잘잘못 따지기를 좋아하여, 스스로를 괴롭히고서야 직성이 풀리는데 어찌 자신을 그냥 내버려 두겠습니까?

마귀는 물러갈지어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모든 사람은 치유를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마귀 녀석 따위, 오는 족족 꺾어버리리라!”

제가 말씀드리건대, 바로 이 믿음의 기개로 저희 어머니의 치매까지 고쳐냈는데 고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이 용기와 믿음입니다. 마귀가 거짓말 하나만 던져도 믿음이 꺼져버립니다.

어젯밤 저는 루푸스(홍반성 루푸스)를 앓고 있는 한 자매를 사역했습니다. 루푸스는 면역 체계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치명적인 질병입니다. 그러나 제가 사역할 때 그녀는 반드시 치유를 받을 것입니다. 회개하고 더 이상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기로 결단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우리 가운데 또 한 어르신이 위장병을 앓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악습들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귀신을 쫓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우리 위에 머무르기만 하면 이기지 못할 귀신은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가난한 형제자매들은 반드시 이 가난의 산을 넘어서야 합니다. 병든 자들은 질병이 아무리 심각할지라도 고치면 됩니다! 과거에는 우리 위에 하나님의 진노의 손이 머물렀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머뭅니다. 과거에는 종교적 감정놀음에 빠져 있었으나, 이제는 신령과 진정으로 행합니다. 과거에는 잘못 행했으나, 이제는 바로잡으면 됩니다.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습니다. 원하건대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형제자매들의 마음에 이 결단을 북돋워 주셔서, 느헤미야의 이러한 지혜와 신앙을 배워 하나님의 은혜의 손 안에서 견고하고 실질적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날마다 쓸데없이 분란을 일으키지 마십시오. 오늘은 아들과 다투고, 내일은 딸과 다투고, 모레는 며느리와 토라져 다투는 짓을 하지 마십시오. 아이고 세상에! 날마다 방구석에 앉아서 입만 열면 모든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집안에서 골칫덩이처럼 굴지 마십시오. 자기 자신만 자기를 대단하게 여길 뿐 남들은 다 골칫덩이로 보는데, 온종일 할 일 없이 시비를 걸고 입만 열면 자기가 옳다고 우깁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은 없으면서 자기만 고수인 척하니, 어찌 병에 걸리지 않겠습니까? 병에 걸리고도 고치지 않으니, 얼마나 더 아파야 고치겠습니까? 우리는 더 이상 무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루살렘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고자 하는 결단을 품는다면, 그깟 사소하고 하찮은 일들이 우리를 흔들 수 있겠습니까? 흔들 수 없습니다! 우리의 눈을 하나님의 보좌에 고정하고,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느헤미야처럼 살아가십시오.

자식을 낳으려면 느헤미야 같은 자식을 낳아야 합니다. “자식을 낳으려면 손권 같아야 한다”가 아니라 “자식을 낳으려면 느헤미야 같아야 한다”입니다. 만약 자식이 없다면 우리 자신이 느헤미야처럼 되면 됩니다. 아,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항상 우리를 도우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이번 성경공부 나눔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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