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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고린도후서 5장 - 다시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우리를 대신해 죽었다가 살아나신 주를 위해 살라!

2024-07-10 35,852 哥林多后书 为主而活 不再为自己活 永生的路 天上的盼望 坦然无惧 神的爱激励我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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哥林多后书05章-劝人与 神和好的职分
  • 1 我们原知道,我们这地上的帐棚若拆毁了,必得 神所造,不是人手所造,在天上永存的房屋。
  • 2 我们在这帐棚里叹息,深想得那从天上来的房屋,好像穿上衣服;
  • 3 倘若穿上,被遇见的时候就不至于赤身了。
  • 4 我们在这帐棚里叹息劳苦,并非愿意脱下这个,乃是愿意穿上那个,好叫这必死的被生命吞灭了。
  • 5 为此,培植我们的就是 神,他又赐给我们圣灵作凭据(原文是质)。
  • 6 所以,我们时常坦然无惧,并且晓得我们住在身内,便与主相离。
  • 7 因我们行事为人是凭着信心,不是凭着眼见。
  • 8 我们坦然无惧,是更愿意离开身体与主同住。
  • 9 所以,无论是住在身内,离开身外,我们立了志向,要得主的喜悦。
  • 10 因为我们众人必要在基督台前显露出来,叫各人按着本身所行的,或善或恶受报。
  • 11 我们既知道主是可畏的,所以劝人。但我们在 神面前是显明的,盼望在你们的良心里也是显明的。
  • 12 我们不是向你们再举荐自己,乃是叫你们因我们有可夸之处,好对那凭外貌不凭内心夸口的人,有言可答。
  • 13 我们若果颠狂,是为 神;若果谨守,是为你们。
  • 14 原来基督的爱激励我们;因我们想,一人既替众人死,众人就都死了;
  • 15 并且他替众人死,是叫那些活着的人不再为自己活,乃为替他们死而复活的主活。
  • 16 所以,我们从今以后,不凭着外貌(原文是肉体;本节同)认人了。虽然凭着外貌认过基督,如今却不再这样认他了。
  • 17 若有人在基督里,他就是新造的人,旧事已过,都变成新的了。
  • 18 一切都是出于 神;他藉着基督使我们与他和好,又将劝人与他和好的职分赐给我们。
  • 19 这就是 神在基督里,叫世人与自己和好,不将他们的过犯归到他们身上,并且将这和好的道理托付了我们。
  • 20 所以,我们作基督的使者,就好像神藉我们劝你们一般。我们替基督求你们与 神和好。
  • 21  神使那无罪(无罪:原文是不知罪)的,替我们成为罪,好叫我们在他里面成为 神的义。

《答疑解惑》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우리는 《고린도후서》 5장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의 원래 주제는 《허묾과 세움》이었지만, 제가 이를 한 단계 끌어올린다면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주를 위해 사는 삶》이라고 붙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이 제목을 듣자마자 멍해질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주님을 위해 산단 말인가? 게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매우 공허하게 들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를 위해 살겠다고 말하지만, 주를 위해 시간을 낼 시간은 없습니다. 비즈니스를 할 시간은 있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돈을 위해 살아가니, 사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화두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저는 인간이 참으로 가증스럽다고 느꼈습니다. 일만 생기면 하나님을 찾다가, 일이 지나가면 하나님을 한쪽에 내팽개치고, 심지어 하나님이 찾으려 하셔도 찾을 수 없게 숨어버리며 하나님이 자기를 못 찾으실 줄로 압니다. 당신이 세상 끝까지 도망쳐도 하나님은 당신을 찾으실 텐데, 왜 하나님과 숨바꼭질을 하려 합니까? 저는 이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왜 하나님을 위해 살지 못하고 언제나 조건을 내세웁니까? 자기 사업을 위해 살 수도 있고, 학위를 위해 살 수도 있고, 자녀를 위해 살 수도 있고, 직장 일을 위해 살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살든 다 되는데, 유독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에 대해서는 흥정을 하려 합니다.

한번은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 임하여, 나를 위해 죽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저는 매우 흥분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이 순간을 고대해 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간절히 바랐기에, 당연히 하나님을 위해 죽겠다고 했지 결코 집에 가서 생각해 보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임했다면 여러분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이 이 말씀을 물으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집에 가서 생각해 보겠다고 대답한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주님을 위해 사는 것, 이것이 제 평생의 중심축입니다. 저는 무엇이든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제 모든 것을 가져가도 좋지만 제 하나님만은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을 위해 살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을 빼앗긴다면 마음이 몹시 아프겠지만, 괜찮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5:14-15)

예수님 한 분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으니 모든 사람이 다 죽은 것입니다. 그분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살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 말은 전혀 심오하거나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영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우리를 위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백 살까지 장수하기를 바라고, 또 어떤 사람은 백 수를 누리기를 축복하지만, 사실 백 살까지 사는 것은 저주입니다. 천 살이라도 저는 원치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주를 위해 사는 것이요, 주를 위해 죽는 것이며, 영생의 길입니다. 만약 백 살까지 사는 것이 은혜라면, 병원에 가서 90세 넘은 분들을 보십시오. 한순간 다리가 붓고, 눈이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리고, 치아가 망가집니다. 제가 요양원에 갈 때마다 먹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모습, 벌벌 떨며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요양원에서 돌봐주니 다행이지 집에 있다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는 것에 대해 매우 깊이 연구했습니다. 제가 탐구할 때, 어떻게 예수라는 분이 나를 위해 기꺼이 죽으려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중에는 혼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너무나 잘 살고, 모든 일이 순풍에 돛 단 듯 풀리는 것을 보며 더욱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33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뚱뚱하고 큰 귀를 가진 부유한 형상의 보살상과 비교한다면, 당연히 보살이 예수님보다 더 잘 산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그분이 죽을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죽어야 마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순히 이 땅에서 살아가는 문제가 아니라 영생의 문제입니다.

본래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짊어져야 했고 저주를 받았지만, 예수님이 참으로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시고 우리의 허물을 짊어지셨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허물로 인해 상함을 받으시고,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시며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나의 저주가 예수님의 몸에 얹혀졌는데, 어찌 그분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나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본래 저는 저주 가운데 살아야 마땅했습니다. 처음 교회에 왔을 때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몰랐고, 예수님도 제가 누구인지 잘 모르셨을 것입니다. 사실 서로가 누구인지도 몰랐습니다. 교회에 오기 전, 저는 여러 가지 길을 찾아 헤맸지만 그다지 진지하게 찾지는 못했습니다. 교회에 와서 사람들이 말하기를,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고 참으로 나의 저주를 담당하셨으며, 내게 새로운 생명을 주려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옛 생명은 저주 가운데 살던 생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거 좋다, 너무 훌륭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제 팔자는 정말 바뀔 필요가 있었습니다. 찬물을 마셔도 체할 지경이었고, 저주 가운데 사는 것은 정말 재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의 삶이 모든 게 순조롭다면 굳이 예수님을 위해 죽겠다고 결단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저와 같은 상황에 이르면 예수님을 위해 죽고 싶어집니다. 저주 가운데 살던 저의 허물을 그분이 온전히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님을 믿은 첫날부터 이런 영생의 소망이 있었느냐고 물으신다면, 사실 깊이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깊이 깨달았다고 하면 그것은 허풍일 것입니다. 하지만 소망 없이 살았다는 것만은 확실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예수님과 인연이 있었는지, 하나님의 은혜가 제게 임했고,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그 후로 제 삶의 목표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만약 제가 나 자신을 위해 살았다면, 비열하고 찌질한 모습, 꼴불견에 엉망진창이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 꼴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아실 것입니다. 당시 제가 보기에 세상은 흑백이었고, 빛을 잃어 캄캄하고 괴로웠습니다. 매일 눈빛도 정상이 아니었고, 조금만 흔들리면 건물에서 뛰어내릴 것 같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저는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깨달았고, 그분의 사랑이 제 안에서 역사하여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 그분을 알지도 못했고 그분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지만, 그분은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교회에서는 다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분은 나를 위해 죽으셨고, 참으로 나의 고통을 담당하시고 나의 슬픔을 짊어지시며, 나를 위해 영생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사랑에 강권함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주님을 위해 살게 하십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을 점점 더 깊이 알게 되고,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 분이신지 점점 더 깨달으면서 주를 위해 살기로 결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제게는 대단한 체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암에서 치료받았다거나 큰 병에서 치유받은 것과 같은 천지를 뒤흔드는 간증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저 사는 것이 무의미했고, 취직도 안 되고, 무엇을 하든 매우 꼬이고 괴로웠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주를 위해 살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주를 위해 사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 때문이며, 우리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2. 담대함

우리가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하늘에 영생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일단 이 소망을 품게 되면 대단한 일이 일어납니다. 당신은 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며, 이 세상에서 능력으로 충만해져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으며 담대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사람이 왜 죽음을 두려워합니까? 죽음을 두려워해도 결국 죽어야 하는데, 그것은 너무 비참하지 않습니까? 저는 어릴 적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 이웃집 사람이 권력과 재물이 있었지만 암에 걸렸는데, 겨우 40대 후반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집에서 목청을 높여 소리치며 자기 병을 고쳐줄 사람이 없느냐고, 죽기 싫다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어떤 의사도 치료해 주려 하지 않고 다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들려오는 처절한 곡소리는 정말 끔찍했습니다. 사람이 죽고 나면 끝나는 것이며, 이 세상에는 소망도 없고 영생도 없으며 오직 지옥뿐입니다. 얼마 전 광장무를 추다가 황천길로 간 사람이 있었는데, 오늘 제가 당신을 저세상으로 보낸다면 그것은 죽으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이들이 그토록 강력했던 이유는 담대함과 하늘의 영원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고린도후서》 5:1-5)

우리가 주를 위해 살기로 선택할 때, 일단 그러한 결단을 내리면 하늘의 소망은 너무나 실재적이 됩니다. 이것은 영원한 주제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소망이 없기 때문에 영원 안에서 소망을 구했고, 그것을 찾은 후 처음에는 겨자씨만 한 작은 믿음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성령을 보증으로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당신 안에 거하시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능력이 바로 성령으로부터 오는 능력이 되며, 당신은 능력을 얻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한 네 살짜리 아이가 있었는데, 엄마가 고열이 나자 엄마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아이는 가끔 저의 설교를 듣고 기도 인도를 따라 했는데, 저를 흉내 내어 기도하자 엄마가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참으로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늘의 소망을 품기 시작할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거하시며,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실 때 하나님의 큰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입니다. 이 말씀이 다소 어렵게 들릴 수 있는데, 다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고린도후서》 5:6-8)

그리스도인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매우 비참한 일입니다. 얼마 전 한 자매가 평소에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장담하더니, 유방에서 6cm 크기의 작은 멍울이 발견되자 몹시 겁을 먹었습니다. 자기는 못 만졌는데 의사가 만져냈다고 합니다. 의사가 어떻게 만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사색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것은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믿는다면 우리가 몸 안에 거할 때는 주와 따로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담대히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끝장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두려워하는 자들은 유황불 못에 던져져 둘째 사망을 겪게 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두려워하면 반드시 귀신에게 사로잡히고, 귀신에게 끌려갑니다. 그래서 저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고통을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을 보면 답답합니다. 어찌하여 주를 위해 살 줄을 모릅니까? 왜 그렇게 사는 것에 집착합니까? 사는 게 그렇게 재미있습니까? 사실 사는 것은 재미없습니다. 여러분은 한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장막에서, 육신 가운데서 탄식하며 수고하는 것은 매우 고달픈 일입니다. 저는 진정으로 하나님이 주신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기를 원합니다. 당신이 죽음을 두려워할수록 더 죽게 되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은데 그들 중 상당수는 겁에 질려 죽는 것이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야말로 귀신을 가장 잘 불러들이는 짓입니다.

예전에 한 자매에게 "여기서 지내라"고 했더니 제게 화를 냈습니다. 그 방에서 사람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은 이미 재가 되었는데, 그가 살아있을 때도 두려워하지 않았거늘 죽었다고 두려워하겠습니까? 저는 생각했습니다. 살아있을 때도 신경 쓰지 않았는데 죽었다고 신경 쓰겠는가? '어디 올 테면 와봐라, 덤벼봐라.'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저것 두려워하면서도 오직 주를 위해 죽기만을 싫어하는 것을 보면, 어떻게 삶을 그렇게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제가 찬물을 한 바가지 끼얹겠습니다. 그렇게 사는 게 좋습니까? 아직 덜 살았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질리도록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암에 걸려 비명을 지르며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그러는 것입니까?

그러니 오늘 우리는 담대해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므로, 우리가 주를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기를 원하며, 살아있는 자가 더 이상 귀신에게 사로잡히지 않고 어찌 되었든 주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설령 이 일이 가짜라 해도 가치가 있을진대, 하물며 이것은 진짜입니다. 이것이 진짜임을 제가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의 영이 제 위에 임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씀드리자면, 제가 얼마나 많은 표적을 행했습니까? 수많은 표적을 행했고, 수많은 사람을 자유케 했으며, 수많은 귀신을 쫓아내고 악령을 결박했습니다! 이것이 어찌 가짜일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다시 살아나셔서, 제 몸에 성령을 부어주시고 주님을 얻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은 원수 마귀를 짓밟을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이 영적 세계에서 당당하게 활보하며, 눈에 거슬리는 귀신이 있으면 발로 밟고 말하십시오. "꺼져라, 당장 도망쳐라!" 동북 방언을 여기에 빗대면 딱 맞습니다. 귀신이 "뭘 쳐다봐?" 하면 저는 "널 본다, 어쩔래?" 하고 쾅쾅쾅 발로 짓밟아버립니다. 일단 죽음을 두려워하면 끝장나고 귀신 밑에 눌리게 됩니다.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얼마나 멋지게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잘 살고 싶지 않습니까? 통쾌하게 살고 싶지 않습니까? 꿈에서도 바라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제부터 주를 위해 죽고, 주를 위해 사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반드시 여러분의 삶에 나타날 것입니다.

오늘날 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복을 받지 못합니까?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경외하며, 하나님이 자기에게 돈을 좀 벌어다 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자매는 사실 꽤 순진해서 여러 번 사기를 당했고, P2P 사기를 당해 100만 위안의 빚을 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공동체에 온 지 몇 년 만에, 일개 초등학교 교사인 그녀가 그 빚을 다 갚았습니다. 어떻게 갚았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신기합니다! 그녀의 남편은 점쟁이였는데, 점쟁이의 삶이 잘될 리가 있겠습니까? 잘될 수가 없지요. 그러다 부부가 세든 집에서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녀는 제 설교를 많이 듣고 마음을 비웠기에 마음속으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몇 년 동안 집세를 냈는데도 20여만 위안을 더 빚지게 되었으니, 그런 임대 계약이 어디 있습니까? 결국 그녀는 집주인을 법원에 고소하려 했습니다. 집주인은 겁을 먹었고, 최근 우리가 맘몬의 영을 대적하여 싸우자 집주인이 스스로 찾아와 15만 위안을 돌려주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맘몬의 영이 그녀의 발아래 짓밟혔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 말을 듣는 분들 중, 빚을 졌거나 사기를 당해 맘몬의 영에게 호되게 시달리고 짓밟혀 오늘 이 지경에 이른 분이 계십니까? 오늘 선택하십시오. 돈을 위해 살 것입니까, 주님을 위해 살 것입니까? 사실 돈을 위해 살아도 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주를 위해 사십시오. 이 말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주를 위해 산다면 성경공부할 시간이 없겠습니까? 주일예배에 참석할 시간이 없겠습니까? 비즈니스로 바쁘고, 아이들로 바쁘고... 비즈니스가 그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일이 그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업을 위해 살고, 아이를 위해 살고, 남편을 위해 살고, 직장을 위해 살고, 학위를 위해 살 수는 있어도, 주님을 위해서만은 살지 못합니다. 참으로 비참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야 세상을 꿰뚫어 볼 수 있겠습니까?

제가 장담하건대, 이 세상은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고 반드시 호된 맛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대한 당신의 소망을 완전히 산산조각 내어 절망 속에서 살게 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당신을 구원하고자 하지 않으신다면, 그 소망은 마지막에 뚝 끊어지고 인생의 연극도 끝이 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담대하십시오. 우리에게는 하늘에 소망이 있고 영원 속에 소망이 있으며, 세상의 많은 것은 배설물과 같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장 귀한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3.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않습니다

말씀드리지만, 당신이 믿음의 사람이라면 보는 것으로 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표적과 기사가 당신을 따를 것입니다. 당신이 주를 위해 살기로 결단할 때, 그것은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지는 길입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천국에 가봤습니까?" 아닙니다! "영생을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내게 믿음이 있기 때문에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교회를 떠난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표적을 행해보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그들도 많은 표적을 행했고, 저를 따라 많은 귀신을 쫓아냈지만 나중에 떠나서 딴짓을 하러 갔습니다. 참으로 배짱도 좋습니다! 당신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때, 표적과 기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보는 것으로 행하면 망합니다. "자, 내게 한번 보여줘 봐."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당신이 보는 것으로 행한다면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아무런 표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무엇을 믿습니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믿고,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것을 믿을 때, 당신 자신의 행동이 변화되는 것을 볼 것이며 당신의 온 생명이 변화되는 것을 볼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죽기를 원하고, 이 모든 것을 하루빨리 얻기를 간절히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지쳐서 "왜 아직도 안 죽지? 왜 아직도 살아있지?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고 싶은데 왜 이렇게 더딜까?" 하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온갖 치료를 받으며 이리저리 발버둥 치고 건강보조식품을 먹지만, 결국 비참하게 이 세상의 것들에게 쓰러지고 맙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것, 이것은 놀라운 기본 원칙입니다! 보는 것으로 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는 것, 믿음이야말로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보게 하고 영원한 영광을 보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이토록 굳게 믿는 이유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경험한 것처럼, 다른 데서 기도해도 낫지 않던 것이 우리 가운데 와서 나았습니다. 저조차도 이것이 참으로 신기하다고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나 때문에 당신을 낫게 하신 것인가?' 생각해보면 사실 그렇습니다. 왜입니까? 제가 전하는 복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보는 것으로 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기에, 표적과 기사가 이렇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후 저는 생각했습니다. 제가 세운 교회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교회요,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전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만졌는데 어찌 낫지 않겠습니까? 만약 당신이 코끼리 다리를 만진다면, 코끼리가 발로 밟을까 조심하십시오. 그것도 문제를 해결하긴 하겠지요, 완전히 끝장을 내버리는 해결이겠지만요. 코끼리 엉덩이를 만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배설물 한 무더기가 쏟아져 곤욕을 치를 것입니다. 호랑이 엉덩이를 만진다면 그것도 소용없습니다. 말의 엉덩이를 두드리려다 말 뒷다리를 걷어차여도 소용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져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왜입니까? 우리가 이곳에서 보는 것으로 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이해가 되었다면, 여러분은 제게 빚을 진 것 아닙니까? 물론 저는 예수님께 훨씬 더 큰 빚을 졌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것을 어디서 얻었겠습니까? 내가 무슨 자격이 있어 이토록 큰 은혜를 받았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 와서 그저 은혜나 조금 얻어가려 한다면 잘못 짚은 것입니다. 그것은 중고이며 저를 통해 얻은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얻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고, 교회를 세우는 자가 되며, 여러분의 몸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짊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나타내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보는 것으로 행하는 사람은 순금과 은만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우스갯소리를 했습니다. 깊은 산골에 갔다가 수많은 황금을 발견하고 집에 가져와 보니 요괴의 똥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주울 때는 몹시 신났겠지요. 이것이 바로 보는 것으로 행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보는 것으로 행하면 무엇을 보겠습니까? 순금과 은을 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요괴의 똥입니다. 당신은 잔뜩 요괴의 똥을 주워놓고 스스로 순금이라 여기지만, 저는 요괴의 똥으로 봅니다. 믿음 안에서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4.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5:9-10)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합니다. 저는 이 일이 너무나 명백하지 않습니까? 이토록 명백한 일이고 많은 것을 경험했으면서도, 재물신을 기쁘게 하려고 뜻을 세우다니, 당신은 이미 재물신에게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습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까, 아니면 그 재물신을 향해야 합니까? 주를 기쁘시게 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주님은 재물신보다 훨씬 좋으신 분입니다. 당신이 오늘 이 꼴이 된 것은 다 재물신이 한 짓이 아닙니까?

우리가 몸 안에 있든지 몸을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뜻을 세운다면, 이러한 중심이 있을 때 사역하면서 훈련생들과 선악을 분별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목양하면서 당신이 돌보는 양들과 선악을 분별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왜입니까?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개념이 없다면, 하나님을 위해 죽겠다는 생각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으니 그분을 위해 살며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얻겠다는 개념이 없다면 복잡해집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떤 형제자매들은 "목사님, 제 목회자가 저와 선악을 분별합니다"라고 말합니다. 핑계를 대지 마십시오. 당신 자신이 다른 사람과 선악을 분별하고 있지는 않은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를 기쁘시게 하기를 힘쓰십시오. 묻겠습니다.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권면하는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까? 사람들이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까? 사람을 섬기는 것은 주를 섬기듯 하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함이며, 이것이 은혜입니다. 장차 언젠가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날은 참으로 두려운 날입니다!

어떤 사람은 왜 탐관오리가 되었습니까? 심판의 날이 있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심판 때가 되어서야 후회하지만, 그는 잊고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행하지 않고 보는 것으로 행했기에, 눈앞의 금은보화를 보고 집으로 가져가려다가 자기 직분을 망각한 것 아닙니까? 그의 직분은 백성을 섬기는 것이지 백성의 재물을 갈취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사람이 누구를 기쁘게 할 것인가는 지극히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극도로 이기적이어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암에 걸리고, 우울증에 걸립니다. 우울증을 앓아본 적이 있는 분들은 오늘 조심하십시오. 우울증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매우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이 주를 기쁘시게 하기를 힘쓴다면, 우울증은 치료받을 필요도 없이 깨끗이 낫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울증이라는 몹시 고통스러운 병이 있습니다. 먹고 마실 것은 다 있는데도 속이 괴롭고 고통스러우며 극심한 고통에 시달립니다. 우리 가운데 우울증을 앓는 분이 계십니까? 겉보기에는 멀쩡하고 팔다리나 눈, 코도 다 온전하지만, 마음속은 몹시 괴롭고 심히 고통스럽습니다. 저보고 그것을 묘사하라고 하면 저는 전혀 모릅니다. 왜 괴로운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괴로운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 살든지, 아니면 자신을 위해 살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위해 산다면 수많은 골칫거리가 사라집니다. 한 자매는 치매 걸린 어머니를 돌보느라, 남편이 입원하느라, 친정엄마가 이렇다 저렇다 하느라 이리저리 시달렸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가 몹시 힘들게 살고 있는데, 제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녀의 영혼이 잘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이런 일들을 너무 무겁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기도 열심히 하세요" 하면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럼 시간을 보고 언제든 당신이 시간 될 때 제가 기도를 인도해 주겠습니다" 했더니, 그녀는 "요 며칠은 안 돼요"라고 합니다. 당신이 시간이 될 때는 제가 시간이 안 될 텐데 어쩌란 말입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제 권면을 들으시겠습니까? 무슨 권면입니까? 주를 기쁘시게 하기를 힘쓰십시오. 장차 반드시 심판의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날에 가서 이를 갈며 통곡하지 마십시오.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차라리 지금 결단하십시오. 주님은 두려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해서 우리가 계속 죄 가운데 막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고린도후서》 5:11)

무슨 뜻입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은 매우 솔직하고 직설적입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깨달으셨습니까? "너희로 하여금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정말 그렇게 썼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을 만난 것이 천만다행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다 멸망하지 않았겠습니까?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왜 강력하게 역사했습니까? 그곳에 멸망할 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수많은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고 수많은 치유와 축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고린도 사람들은 "와, 대단하다. 바울에게 임한 능력이 참으로 대단하구나. 그를 스치기만 해도 치유받는 역사가 일어나는구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가끔 여러분이 저를 만난 것이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5.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거리가 있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을 있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고린도후서》 5:12-13)

바울이 쓴 이 말이 사실 얼마나 엄중한지 아십니까?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아이구, 바울은 예수를 믿다가 완전히 미쳐버렸으니 그의 말을 듣지 마라. 그를 따라 주를 위해 살다 보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그는 미쳤고 극단에 치우쳤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내가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에 우리는 진정 하나님을 위해 미쳤고, 하나님께 푹 빠진 것이다. 하나님을 상식 밖으로 사랑하여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죽기로 작정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이해가 되십니까? 여러분도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그런 자들의 말을 듣고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어? 사람이 제 잇속을 안 챙기면 천벌을 받지. 저 사람은 돈이나 뜯어내려는 사기꾼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그들에게 손해를 끼친 적이 있습니까? 단 한 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뜻을 헤아리려 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그 사람 말 듣지 마, 다 사기야."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얼마나 많은 우울증이 나았습니까? 눈이 멀 뻔한 사람이 얼마나 많이 나았습니까? 어지럼증으로 고통받던 사람이 얼마나 많이 고침을 받았습니까? 온갖 통증으로 괴로워하던 자들이 얼마나 많이 나았습니까?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표적과 기사, 치유와 축사는 제게 일상적인 일입니다. 저는 이미 습관이 되어 새벽 2~3시 전에는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툭하면 이런저런 사역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잠시 그런 일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으로 하여금 우리를 자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제가 바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랑할 거리가 있게 하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속사람은 주를 위해 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주를 위해 사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을 만나는 사람들은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여러분은 주를 위해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누군가 당신으로 인해 자랑할 거리가 생길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분명히 우리와 함께하심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여기 아주 흥미로운 구절이 있습니다.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을 있게 하려 함이라. 그들에게 응답할 말을 주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이 고린도 교회에서 그렇게 떠들어대자, 고린도 교인들은 그 말을 듣고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라 멍해졌습니다. "바울처럼 믿으면 일상은 어떻게 살지?" 이제 대답할 말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외모로 행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는 할례를 주장하던 사람들, 즉 야고보와 베드로를 대표로 내세우던 자들을 가리킵니다. 외모란 무엇입니까? "나는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이다." 예수님을 따랐다고요? 가룟 유다도 예수님을 따랐지만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그러므로 겉으로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속에 든 것이 없고, 예수님을 위해 죽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마음이 없지 않습니까? 외모를 따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할례를 말합니까? 성기를 꺼내서 할례를 받았는지 확인이라도 해보라는 말입니까?

할례가 대수입니까?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은 자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모세의 율법과 할례만 말합니까? 여러분도 알다시피 야고보가 비록 예수님의 동생이지만, 예수님의 동생이라 해도 예수님을 닮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이 고린도에 와서 "내 무릎에 굳은살을 보시오. 나는 매일 7시간씩 무릎 꿇고 기도하오"라고 자랑했다고 칩시다. 저는 교회에서 매일 7시간씩 기도하면서도 자기 빚을 갚으라고 딸에게 고리대금을 쓰게 강요한 어머니도 보았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외모가 무엇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행함으로 보여주십시오! 행해보니 예수님을 닮지 않았습니다. 왜 닮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동생이라고 해서 반드시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더 이상 외모로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겉치레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속마음이 진정으로 주를 위해 살고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공부의 주제는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 삶》입니다. 우리는 무릎에 기도의 굳은살이 조금 생겼다고 해서 "나는 참 경건하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그런 것은 전혀 경건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무엇을 증명합니까?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또 거친 말을 했습니다만, 이런 자들은 참으로 괘씸합니다. 사람들을 오도하기 때문입니다!

이 자들이 바울을 얼마나 심하게 헐뜯었습니까! 저는 그들이 틀림없이 《갈라디아서》를 읽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읽고 나서 정곡이 찔려 몹시 아팠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봐라, 바울이 쓴 갈라디아서는 바로 너희를 가리키는 말이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들은 겉으로는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속으로는 몹시 분노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속사람부터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외모로 자랑하지 말고, 자랑하려면 우리 속의 믿음을 자랑하십시오. 우리는 하늘에 우리를 위해 영광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음을 믿습니다.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하늘에 우리를 위한 처소를 예비하셨음을 압니다. 믿음 안에서 이 세상을 떠나 몸을 벗어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음을 압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며, 이득을 취하려 하지 않고 오직 나누어주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제게 묻습니다. "어디서 그렇게 줄 것이 많이 납니까?" 저는 제가 가진 것을 다 주고 싶고, 가장 귀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예수님을 위해 살고 예수님을 위해 죽으라고 권면하고 싶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이런 생각을 품은 사람은 참으로 많지 않습니다. 복음을 이렇게 전하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6. 새로운 피조물이 되십시오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속사람이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워지고, 영 안에서 완전히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부터 바싹 마르고 볼품없으며 찌질한 모습으로 살지 않게 됩니다. 입만 열면 쩔쩔매고 웅얼거리는 모습이 아닙니다. 당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말씀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속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강권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얼마나 진실한 말입니까!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요, 바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하늘에 속해 있으며, 우리의 영 안에서 이러한 각성이 일어날 때 형통하지 않으려 해도 형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직장에 돌아가서도 당신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억누를 수 없게 되며, 하나님의 능력이 당신의 삶을 통해 흘러넘칠 것입니다. 당신은 이미 근본에서 새로운 선택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우리를 위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주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이 결단 하나가 천지를 뒤흔들 수 있으며, 이 결단 하나가 당신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외모가 아니라 속사람입니다. 거울을 보며 어제보다 주름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은 정상입니다. "어제 마스크팩도 했는데 왜 주름이 또 늘었지?" 그러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져 속이 점점 더 하나님을 닮아가고, 점점 더 베풀고 싶어지며, 점점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어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우리의 허물을 담당하셨음을 점점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7.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허물을 담당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5:19)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허물을 담당하셨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당신의 허물은 이미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겨졌습니다. "그럼 내가 새로 짓는 죄는 어떻게 됩니까?" 새로 지은 죄는 회개하면 다시 씻김을 받습니다. 그러나 왜 죄를 짓습니까? 자신을 위해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주를 위해 살고 오직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려 한다면 죄를 지을 일이 있겠습니까?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항상 베풀고자 하는데 무슨 죄를 짓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오래 살기를 바라지 않고, 언제나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기를 원하는데 무슨 죄를 짓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돈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습니까? 돈이 부족하다고 느끼니 탐욕을 부리고, 탐욕을 부리다 더 빨리 죽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맘몬의 영에 깊이 사로잡혀 돈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결국 돈 때문에 더 빨리 죽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받은 직분입니다. 오늘 이 직분을 받은 우리 자신 또한 은혜입니다.

제가 왜 이토록 간곡하게 여러분에게 권면하겠습니까? 이것만이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만이 진정한 생명의 길입니다!

8.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간청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린도후서》 5:20)

바울의 서신은 매우 격정적으로 쓰였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듣기에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유익을 얻게 하고 복음의 유익을 누리게 하기 위해 바울은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니 제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간청한다고 합니까? 이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지 않고 쓰레기처럼 여겨 아무렇게나 내버리고, 아무 쓸모없는 것들을 다시 주워 담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보배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이러한 은혜를 받아들이기를 간청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여러분을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고, 참으로 우리의 허물을 담당하셔서 우리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에게 간청해야 하다니요! 아이러니하면서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참으로 크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는 크신 은혜와 인내가 있으십니다. 우리 가운데 일부 성미 급한 평신도 리더나 목자들의 인내심 같았으면 진작 개미처럼 짓눌러 죽였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은 크신 인내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여기에서 확증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간청합니다. 이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십시오. 이것이 사는 길이요 은혜의 길입니다.

어떤 분들은 제게 묻습니다. "류 목사님, 이것이 은혜의 복음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복음입니다.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와서 시험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보십시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는 길이며 다른 길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형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돈을 의지해서가 아니고 돈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도 아니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과 화목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갖추는 것이며, 더 이상 귀신의 형상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을 보십시오. 사람 같지도 않고 귀신 같지도 않게 살아가는 자들이 수두룩합니다! 거울을 보고 당신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걸핏하면 선악을 분별하고, 걸핏하면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지 않습니까? 오늘 당신이 하나님과 화목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낸다면, 이 세상에서 남에게 사기나 당하고 살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돈이 부족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건강이 부족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살아갈 용기가 부족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에게 진정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어떤 딸은 어머니와의 관계가 어그러지고, 어떤 어머니는 딸과의 관계가 어그러지며, 세상일에 얽매여 사로잡힙니다. 툭하면 얼굴을 붉히며 다투는데, 그것은 사는 길이 아니라 죽는 길입니다.

9. 하나님이 죄를 알지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이유

하나님이 죄를 알지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5:21)

아홉 번째 포인트는 결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우리, 즉 당신과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같은 형상으로 살아가게 하려 하심입니다. 우리 몸에서 드러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숨길 것이 아무것도 없고 모두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죽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이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 이것이 본래 하나님의 뜻이며 참된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고 싶다면, 내면의 세 가지를 철저히 다루십시오. '선악을 분별함', '육신을 따름', '세상을 사랑함'입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의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아가며 담대하게 십자가의 길을 걸어갑시다.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육신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이유입니다.

세상의 재물을 그렇게 많이 벌어서 누구에게 주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섰을 때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동안 모아둔 것이 다 요괴의 똥무더기였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이구, 냄새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돈을 사랑하여 이생에만 갇혀 살아갑니다. 당신이 20대라서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른다면 탓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이만큼 살아왔는데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조만간 죽을 것이며, 하루 더 살든 덜 살든 마찬가지입니다. 내일 살아있을지도 모르고, 내년에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데, 차라리 지금부터 무엇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오늘 제가 한 시간 동안 길게 설교했는데, 논리적으로는 잘 통하는 것 같습니다. 원래는 바울에 대해 말하려다가 결국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저는 제 진심을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을 위해 사십시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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