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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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가 진행하는 과정은 바로 ‘제자 되기’입니다! 제자가 되려면 먼저 계산기를 두드려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연 돌아오는 보상이 얼마나 되는지 말입니다. 저는 바보가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셈하고 계산하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계산을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철저히 계산해 본 결과입니다.

1. 투자와 보상

보상이 없는 일은 안 하는 법입니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보상이 없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보상도 없는 일을 뭣 하러 하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모릅니다. 어리석어서 모르지요. 모르면 설득하고 싶었지만, 요즘은 설득하는 일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사람을 전도해서 주님을 믿게 한 뒤에 십일조부터 가르쳐야 했는데, 요즘은 그런 말을 잘 안 합니다. 이제는 “당신은 헌금할 자격이 아직 안 됩니다. 내가 언제쯤 자격이 됩니까?” 이런 스타일로 이야기합니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믿으면 십일조를 가르쳐야 했습니다. 십일조를 어떻게 가르쳤을까요? “제 얼굴을 한번 보세요. 제가 바보처럼 보입니까?”라고 물으면, “목사님! 얼굴만 봐도 아주 똑똑해 보이십니다!”라고 합니다. 그럼 제가 말합니다. “그렇지요! 내가 똑똑하지 않은데 어떻게 똑똑한 일을 하겠습니까? 맞지요? 그럼 목사님,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겁니까? 저처럼 똑똑한 사람이 자기 돈을 남에게 그냥 주겠습니까? 저처럼 영리한 사람이 돈을 내놓는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제가 십일조를 드리는 게 바보라서 그런 줄 아십니까!” “어! 듣고 보니 그렇네요!” 수년 전에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똑똑해져서 이런 말도 잘 안 합니다. 업그레이드된 것이지요.

당시에 어떤 어르신이 계셨는데, 정말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그 어르신은 주유소를 여러 개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주유소가 뭔지 아시지요? 주유소가 여러 개 있거나 임대해 주는 건물이 여러 채 있다면 엄청난 부자일 것입니다. 차가 주유소로 들어와서 뚜- 뚜- 뚜- 탁! 하면 300위안이 그냥 들어오는 겁니다. 차들이 줄지어 들어와 기름을 넣으면 저절로 돈이 벌리는 것이지요. 그분이 제게 강의를 해주셨는데, 제가 싹수가 있고 멍청하지 않아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분이 제게 십일조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저는 속으로 셈을 해보았습니다. ‘내가 한 달에 1,000위안 남짓 월급을 받는데, 월세 내고 생활비 빼고 나면 겨우 300위안 정도 남을 텐데! 만약 200위안을 헌금한다면 10분의 1이 아니라 3분의 2를 떼어내는 거잖아. 그건 심장을 도려내는 것처럼 너무 아플 텐데. 총 300위안에서 200위안을 내면 100위안만 남네.’ 기분이 어땠겠습니까? 이 셈을 하느라 머리에서 열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뇌 용량이 딸렸던 것이지요. 교회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속에서 엄청난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 200위안을 헌금하지 않고 300위안을 쥐고 있는다고 해서, 평생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절대 아니지. 살다가 한번 큰 병이라도 걸리면 그 300위안마저 몽땅 날아갈 텐데.’ 눈알을 굴리며 계속 머리를 굴렸습니다. 어릴 때부터 《손자병법》을 읽었으니 나름대로 치밀하게 계산을 한 것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 중간쯤 갔을 때 계산이 딱 떨어졌습니다. 십일조를 하기로 결단했습니다. 왜일까요? 헌금하지 않으면 평생 가난하게 살 텐데, 누가 가난하게 살고 싶겠습니까? 헌금하면 손해일까요? 1년이면 2,400위안, 2년이면 4,800위안입니다. 모험을 걸어보는 것이지요. 만약 망하면 4,800위안 날리는 셈 치자. 그런데 이렇게 결단하고 나니 대단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계산법이 하나님 보시기에 다소 불경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저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리는 제자의 보상 역시 철저히 계산해 본 결과입니다. 십일조를 드린 후, 나중에는 헌금을 훨씬 더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수십만 위안, 백만 위안 가까이 드리기도 했습니다. 돈이 아쉽지 않으니까요.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자로서 받는 보상이 없다면 왜 그 길을 가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가 가난하게 살기를 원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질병의 고통 속에 살기를 원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난하심으로 우리가 부요하게 되었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으며,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로 우리가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드리는 것이 투자가 아닙니까? 투자입니다! 투자하지 않고 어떻게 보상을 얻겠습니까?

그래서 요즘 우리 형제자매들에게는 십일조 이야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헌금할 자격이 아직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누구에게 배웠을까요? 에르메스와 샤넬 같은 명품 브랜드에서 배웠습니다. 명품 매장 아시지요? 매장에 들어간다고 해서 아무 물건이나 살 수 있게 해주지 않습니다. 실적을 충분히 쌓아야만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는 자격을 줍니다. 사람들은 그걸 사려고 온갖 물건을 마구 사들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사실 예수님께서 수많은 사람이 따르는 것을 보시며 회원이 될 만한 사람이 있는지 보셨습니다. 이것은 최고급 명품과 같아서 일반적인 물건이 아닙니다. 이것은 엄청나게 풍성한 보상입니다. 최상급 럭셔리입니다. 일반 가방 하나 메고 옷 한 벌 입는 게 대수입니까?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모든 권세가 주어지는데, 고작 명품 가방 따위와 비교가 되겠습니까? 샤넬이든 에르메스든 그 어떤 브랜드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버리고 내려놓지 않고 어떻게 제자가 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고작 100위안짜리 원가의 물건을 3천, 5천 위안에 팔아도 당연하게 여깁니다.

거기에 라벨이 붙어 있으니 입으면 대단하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명품 브랜드입니다. 이마에 ‘나는 제자다’라고 딱 새기고 영적 세계를 활보해 보십시오. 이마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표식이 새겨져 있으면, 잡귀들이 보고는 혼비백산하여 도망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밥도 공짜로 먹습니다. 왜일까요? 명품 브랜드를 가졌으니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돈을 내지 않아도 “사진 한 장 찍어 드릴게요. 홍보가 되니까요!” 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단합니다! 영적 세계에서는 거칠 것이 없습니다.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확실하게 계산이 되셨습니까? 이런 것을 계산해보지 않고 되겠습니까? 계산할 줄 모르는 자가 바보입니다!

저는 오늘날 형제자매들을 보면 참으로 의아합니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제자가 되지 못하다니, 얼마나 큰 손해입니까!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으면서도 제자가 되지 못했다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입니까? 저는 때로 속이 답답합니다. 고개를 떨구고 나오는 바보 같은 모습을 보면 속이 터집니다. ‘어쩌자고 저렇게 어리석을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러니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은 결코 헛된 소리가 아닙니다! 가끔 교회 성도들에게 묻습니다. “앞으로 들어갈 모든 병원비를 아껴서 하나님께 바치고 싶지 않으십니까?” 당연히 바쳐야지요! 병원비를 아끼는 것도 문제지만, 질병의 고통은 당할 것이 못 되지 않습니까? 제가 또 묻습니다. “치매로 보낼 수도 있는 그 노년의 시간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고 싶지 않으십니까?” 당연히 바쳐야지요! 누가 치매에 걸려 살고 싶겠습니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권세입니다. 그렇다면 계산기를 두드려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똑똑하게 셈하지 못하면 큰일 납니다.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교회의 헌금을 횡령해서 도망쳤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장난칠 대상이 없어서 하나님을 상대로 장난을 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문제인데, 제자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원수가 되려 하다니요.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었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결코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을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제대로 제자가 되든지, 아니면 관두든지 해야 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떤 분이 댓글로 “목사님도 명품 브랜드를 아시네요?”라고 쓰셨는데, 설교하는 목사가 어리숙해서야 목회를 할 수 있겠습니까? 바보 같아서야 되겠습니까?

2. 살아있는 동안 핵심은 저주와 축복이다

저는 이 문제를 아주 깊이 연구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바로 ‘저주’와 ‘축복’입니다. 101 과정을 들어보셨지요? 오늘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성경을 연구하면서 깨달은 것이 무엇일까요? 인생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저주와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축복과 저주, 이 두 가지뿐입니다. 이 두 가지를 명확히 깨닫는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은 죽어서 천국에만 가는 신앙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축복 속에서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 점은 모두가 인정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왜 이렇게 재수 없게 살까? 물만 마셔도 체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닷가나 섬나라에는 귀신이 많고, 영적인 영향력이 아주 강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참신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여 여러 대가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들은 저를 상대해주지도 않았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믿으라. 죽은 후에 어떻게 될 것이다”라고만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 신앙이 살아있는 동안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고통만 겪게 한다면, 죽어서 어디를 가든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제가 참 셈이 빠르지 않습니까! 살아있을 때도 명확하지 않은데, 죽어서 어떻게 분명하게 갈 수 있겠습니까? 이후에도 여러 곳을 찾아다녔지만, 다들 죽은 뒤의 일만 이야기해서 별 흥미가 없었습니다. 제가 관심 있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였습니다. 그러다 교회에 오게 되었는데, 교회에서 전하는 하나님은 바로 ‘산 자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제가 “인생의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렇다! 반드시 바꿀 수 있다!”라고 하더군요. 얼마나 좋습니까.

살아있는 동안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여러분도 해결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살아있을 때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수년간 연구하며 얻은 관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식인인 저는 이런 것을 깊이 파고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만약 누군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오직 죽은 후에만 이루어진다고 약속한다면, 절대 믿지 마십시오. 그것은 속임수일 가능성이 큽니다. 살아서는 안 되는데 죽어서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어떤 분이 “보험이 그렇잖아요”라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보장하는 것이지 생명을 보장하는 보험이 아닙니다. 얼마나 끔찍합니까? 살아있는 동안의 핵심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가 왜 필사적으로 성경을 읽었을까요? ‘살아있는 동안의 이 문제를 반드시 명확히 풀어내야겠다!’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사실 신명기 30여 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전부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받는 저주와 축복에 대한 내용입니다! 살아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죽은 뒤에 무엇을 하겠습니까? 죽은 후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고 살아서 주님께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제가 그의 온천 별장에 머물 때 저에게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목사는 어디를 가든 대접을 잘 받습니다. 입술을 열어 몇 마디 말씀만 전해도 사람들의 의문을 풀어주기 때문입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류 목사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예전에 어떤 목사님이 오셔서 ‘천 명 중 한 명만 천국에 가고, 999명은 지옥에 갑니다. 당신이 그 999명 중 한 명이 아니기를 바랍니다’라고 설교하셨습니다. 참 듣기 거북한 말이었는데,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어떻게 보겠습니까? 제 견해를 말했습니다. “살아있을 때 누구를 닮았느냐에 따라 죽어서 갈 곳이 정해집니다. 살아있을 때 귀신처럼 살았다면 죽어서 귀신에게 갈 것이고, 살아있을 때 예수님처럼 살았다면 죽어서 예수님께 갈 것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제가 믿는 주님은 ‘살아있는 동안’에 관한 주님이십니다. 저는 죽은 뒤의 일만 걱정하는 사람들과 다릅니다. 살아있을 때 귀신처럼 살았는데, 죽어서 예수님께 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이치를 꿰뚫어 보았습니다. 살아있을 때 귀신처럼 살아 귀신이 함께한다면 귀신에게 가지 어디로 가겠습니까? 살아있을 때 하나님과 동행하며 복을 받았다면 하나님께 가지 어디로 가겠습니까? 이것이 이치에 맞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듣고 그 부자는 “지금까지 들어본 대답 중 가장 지혜롭습니다”라며 매우 만족해했고, 저 역시 기뻤습니다. 투자와 보상, 축복과 저주는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무엇이 저주를 부르고, 무엇이 축복을 부르는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살아있는 동안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만약 오늘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온통 저주의 표본 같다면, 속히 돌이키십시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까지 내어놓으셨는데,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승리하셔서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모든 권세를 얻지 않으셨다면, 제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 영적 세계에서 당당하게 다닐 수 있는 것은 모두 예수님께서 자신을 내어놓으심으로 얻으신 결과입니다. 내가 주님을 본받지 않고 누구를 본받겠습니까? 살아있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축복과 저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 저주를 받습니다. 그렇다면 제자가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 아닙니까? 예수님의 말씀인데 우리가 어찌 듣지 않겠습니까?

저는 축복과 저주를 연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가정을 보면 온 가족이 암에 걸리고, 아이는 자폐증에 걸리고, 온갖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볼 것도 없이 저주가 너무 깊은 것입니다. 저주는 넘쳐나고 축복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물어보면 주님을 믿은 지 오래되었다고 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님을 오래 믿었는데 어찌 저주 속에 머물러 있단 말입니까? 보상에 관한 누가복음 18장 29~3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29-30)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현세에 백 배를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어떤 투자가 백 배의 결실을 맺겠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버릴 때 얻게 되는 권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백 배의 복을 얻기 위해 분명 어떤 법칙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성경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백 배의 축복, 그 근원을 찾아보니 바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3. 아브라함의 믿음과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갈라디아서 3:1-9)

참으로 강력한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백 배의 복을 받았습니까, 받지 못했습니까?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살아있는 동안 매우 번성했고 대단한 삶을 살았습니다. 보통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제 말이 이해되십니까? 아브라함이 살아있을 때 주변 사람들은 그를 ‘존귀한 지도자(왕자)’로 여겼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어디서 난 지도자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귀한 지도자입니다.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농사를 지으면 땅이 복을 받고, 양을 치면 양 떼가 복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말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가 어떻게 이렇게 대단해졌을까요? 바로 그의 ‘믿음’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을까요? 모든 것을 ‘내려놓는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왜 대단한지 아십니까? 어느 날 하나님께서 “네 아들 이삭을 내게 바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아내와 상의조차 하지 않고 이삭을 데리고 3일 길을 떠났습니다. 사라는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만약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려 다 태워버리고 뼈가루만 한 줌 들고 돌아왔다면,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뭐라고 설명했겠습니까? 사라가 발로 차서 침대 밑으로 처박지 않았겠습니까? 얼마나 기가 막힐 일입니까! 사라가 “어떻게 나랑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럴 수가 있어요?”라고 따졌겠지요. 하지만 이 일은 상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느 정도였습니까?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수준의 믿음이었습니다. 그가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그 큰 복이 무엇입니까? 엄청난 복입니다. 바로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내 제자가 되라”는 말씀의 복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였으니, 오늘날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아브라함의 믿음은 모든 것을 버리는 믿음이었고,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와 능력과 존귀함이었습니다. 그는 축복 속에 살아가는 지극히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축복 속에 살아간다는 것, 그것도 작은 복이 아니라 엄청나게 큰 축복 속에 산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에게 권면하고 싶은 것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기까지 그 과정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이삭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작은 믿음에서 시작하여 조금씩, 조금씩 자라나 마침내 온전히 자신을 드리는 아브라함이 된 것입니다. 그는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을 실천하는 기초는 무엇일까요?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를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인생을 꿰뚫어 보게 되면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축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반대로 인생을 통찰하지 못하면 개념이 모호해집니다. 개념이 없으니 돈만 좇고, 병이 나면 의사만 찾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방식입니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 나도 그렇게 따라가는 것이지요. 나무랄 수는 없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길이 아닙니다. 명확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믿음과 그가 받은 축복은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만약 구약에서 누구를 본받아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아브라함을 본받겠다고 하겠습니다. 저와 아브라함 사이에는 실제로 닮은 점이 좀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알고 난 후 하나님의 복을 받아 부족함이 없고, 모든 일이 순탄하며 형통하게 살았다는 점입니다.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 있는데, 제 월급은 해마다 껑충껑충 뛰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장 말단 직책에서 시작해 십여 년 만에 최고 경영진의 자리까지 올라갔습니다. 그 자리에 오르니 연봉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누가 하신 일입니까? 하나님의 축복이 하신 일입니다. 왜일까요? 제 안에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200위안을 드리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온전히 제 자신을 드렸습니다. 온전히 헌신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저를 가로막을 수 없었고, 나를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기꺼이 내려놓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이자 아브라함의 축복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세에 백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4. 현세에 백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는다

제자로서 받는 보상은 현세에 백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이생에서 백 배를 얻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누구나 꿈꾸는 일입니다. 오늘날 보십시오. 어떤 기업은 수천억, 수조 원의 빚을 지고 파산합니다. 운 나쁜 사람이 분양 아파트를 샀는데 회사가 부도가 나면 어떻게 됩니까? 공사가 중단되고 폐허가 됩니다. 하지만 은행 대출금은 고스란히 갚아야 합니다. 은행에서 빌린 돈은 당신이 빌린 것이고, 아파트를 사기 위해 빌린 돈입니다. 돈을 빌린 것과 아파트를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니, 건물이 중단되어도 은행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아무리 거대한 대기업이라도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그런 집을 샀다가는 망하고 맙니다. 하늘을 쳐다보아도 소용없고 땅을 쳐도 대답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평생 다시 일어설 수 있겠습니까? 매우 어렵습니다. 인생에서 몇 번의 불운만 겪어도 사람은 주저앉고 맙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말씀드립니다. 이것도 못 내려놓고 저것도 못 내려놓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지 못하면, 결국 ‘재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제자가 되지 못하고 화를 자초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제자의 길과 실패자의 길은 한 끗 차이 같지만 결과는 엄청나게 다릅니다.

오늘날 누군가가 가난하고 사기를 당한다면 왜 그렇겠습니까? 돈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제자가 되기는 싫어하고 재수 없는 삶을 자처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제가 한 가지 제안을 드립니다. 이제부터 지혜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어떤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현세에 백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불운이 비껴갑니다. 사람이 왜 자꾸 불운을 겪을까요? 귀신이 함께하니 불운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반드시 지혜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고 삶에 적용하십시오. 얼마나 명확한 말씀입니까!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무엇을 믿으시겠습니까?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기는 좀 어렵습니다”라고 합니다. 어렵습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어렵게 느껴진다면 믿지 않기 때문이고, 쉽게 느껴진다면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실패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참된 제자가 되십시오. 제자가 되는 것의 보상은 실로 엄청납니다. 더 이상 어리석게 살지 마십시오!

오늘은 여기까지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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