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느헤미야08-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은 큰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필기를 참고
1. 서론
a 자기중심적인 삶은 악마의 질병을 불러들이고, 무력감과 고통을 가져오지만, 하나님 중심적인 삶은 엄청난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b. 하나님을 대체하는 것은 무엇이든 슬픔만 더할 뿐입니다. 돈, 비디오 게임, 소설, 오락도 하나님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c. 하나님 중심적인 삶은 평범한 기쁨이 아닌 엄청난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1.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시간을 거룩하게 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a. 하나님 중심적인 삶은 삶의 중심을 하나님 말씀에 두고, 시간을 거룩하게 정하여 말씀을 듣는 것을 의미합니다.
b. 자기 중심적인 삶은 내면의 혼란과 걱정, 불안으로 가득 차 기쁨을 잃게 합니다.
c. 시간은 모두 인간이 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간을 아껴 쓰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시간을 거룩하게 정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입니다.
d. 주님을 믿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되면 온 마음을 다해 믿으십시오. 주님을 믿는 것이 손해라고 생각되면 믿지 마십시오.
2.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사는 열쇠입니다
a.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믿음입니다.
b.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신앙입니다.
c.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이해해야 하며, 결코 에서의 세상적인 논리에 따라 살아서는 안 됩니다.
3. 하나님 중심적인 삶은 슬픔과 울음의 삶이 아닙니다.
슬퍼하지 마십시오. 오늘은 주님의 거룩한 날입니다. 여러분의 우는 마음을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사는 마음으로 바꾸십시오.
4. 주님 안에서의 기쁨이 여러분의 힘입니다
a. 주님을 믿는 것은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쁨이시요 지혜이시요 힘이십니다.
b. 기쁨은 돈이나 음식, 음료, 오락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힘입니다.
5. 초막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것이며, 큰 기쁨을 누리기 위한 것입니다.
a.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과 슬픔이 아닌 기쁨을 위해 초막절을 지키도록 마련하셨습니다.
b. 초막절 동안의 음식은 단순하며, 거룩함을 위해 시간을 따로 정합니다.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큰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c. 주님을 믿는 믿음이나 섬김이 결코 짐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d. 일은 축복이고, 섬김은 축복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은 더 큰 축복입니다.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느헤미야 8장의 중요한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성벽이 세워졌고, 완공되었습니다! 그래서 뭐요?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별일 아닙니다! 성문이 설치되고, 모두 각자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그렇다면 요점은 무엇일까요?
이 장의 주제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은 큰 기쁨을 가져다준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내용이 본문에 없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괜찮습니다. 이 장의 주제는 바로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마귀를 끌어들이고, 그에게는 무슨 이득이 있을까요? 끝없는 질병, 끝없는 약, 그리고 무력감, 고통, 그리고 고난뿐입니다. 평생 이렇게 산다면, 그것은 수고와 슬픔의 삶일 뿐입니다.
사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에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얻으실까요?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진정한 기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에서의 부에 감명을 받아 그와 같이 되고자 갈망합니다. 하지만 야곱과 자신을 비교하며 야곱을 덜 행운아로 여기고 관심을 잃습니다.
사람들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돈 때문일까요? 제가 말씀드리건대, 하나님을 무엇으로 대체하든 슬픔은 커질 것입니다. "내가 왜 주님을 믿어야 하지? 그 시간을 돈 버는 데 쓸 수도 있는데!"라고 생각한다면, 한번 시도해 보세요. 슬픔이 커지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문제가 생겼을 때 슬픔 없이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아는 28세 남성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명문 회사에 취직하여 꾸준히 승진했습니다. 잘 살다가 암에 걸렸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울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그의 아버지는 그가 말하는 동안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아들은 대학 졸업 후 직장에 나가 좋은 직장을 얻었지만, 연애할 시간은 전혀 없었습니다. 열렬한 연애 경험도 없이 세상을 떠났죠."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삶의 의미를 모르는 걸까요? 이제 오랜 고민 끝에 제가 내린 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은 답이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매일 기쁨으로 산다면 그것은 즐거운 삶입니다. 매일 수고와 슬픔으로 산다면 그것은 수고와 슬픔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즐거운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수고와 슬픔의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하지만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쁨이란 얼마나 어려운 것일까요! 지혜 없이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컴퓨터 게임을 하면 젊음을 망치고, 소설을 끊임없이 읽어도 젊음을 망칩니다. 그러면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요? 소설을 읽거나 게임을 하면 마음이 공허해지고 끔찍한 기분이 듭니다. 여러분도 분명 이런 경험 해보셨을 겁니다.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고 집에 가서 침대에 누워도 여전히 끔찍하고 공허한 기분을 느끼는 거죠. 어떤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느껴 엄청난 업무 압박감을 느낍니다. 실제로는 별로 일하지 않았는데, 상사와 본인까지 속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마침내 기회가 생기면 짐을 싸서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 중에는 기쁨을 느끼지만, 직장에 복귀하면 다시 지쳐 버립니다.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삶은 즐거워야 하지만, 지혜와 하나님 없이는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을까요?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중심적인 삶은 엄청난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과 목회자들은 이 메시지를 왜곡해 왔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믿으면 노트북 가방뿐만 아니라 십자가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무겁고 강력한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이제는 십자가까지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왜곡하여 짐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을 바로잡고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 기쁨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거룩함을 위해 시간을 따로 내어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귀환 후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과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느헤미야서에 기록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분명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을 꾸준히 전파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기에, 느헤미야는 먼저 그들에게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힘을 합쳐 성벽을 완성했습니다.
성벽은 엘룰월 25일, 대략 6월에 완공되었습니다. 며칠 후 일곱째 달인 티슈리월이 왔습니다. 6월에 완공된 성벽에 문이 설치되었고, 약 일주일 후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곱째 달 초하루가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곱째 달 초하루는 수확기였습니다. 수확 후 이스라엘 백성이 초막절을 지키고 모두가 성벽을 쌓느라 바빴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그들은 지체 없이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놀라워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수확이 끝났고 성벽이 수리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고,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경험을 직접 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수리하는 것 외에 다른 일들을 할 수 없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불가능합니다! 하루에 두 시간씩 수확하여 예전에 열 시간 동안 하던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성벽이 수리되고 수확이 끝났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기적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은 힘을 가져다줍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지혜뿐만 아니라 능력도 가져다줍니다.
그 사람들은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자지 않고 일을 마치고 성벽을 수리한 후, 추수하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고 다음 날 성벽을 수리했습니다. 아무것도 지체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에게는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사람 안에 있는 에너지는 고정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님은 강력한 하나님이십니다. 영이 사람 안에 거하시며, 그것이 사람에게 에너지를 줍니다. 정말 기적적인 일입니다.
추수가 끝나고, 모든 사람이 수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곳은 마치 도심 광장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느헤미야가 그들을 부르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이도록 권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 기적적인 사건을 증거하고 직접 경험하게 해 주셨습니다. 성벽이 수리되고, 추수가 이루어졌으며, 모든 일이 동시에 이루어졌습니다.
7월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읍에 살았습니다. 그때 그들은 수문 앞 광장에 모여 서기관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책을 가져오라고 요청했습니다.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는 율법책을 알아들을 수 있는 남녀 회중에게 가져왔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정오까지, 그는 물문 앞 광장에서 모든 남녀에게 율법책을 읽어 주었고,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읽어 주었습니다. 백성들은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서기관 에스라는 이 일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나무 단 위에 섰습니다.
맛다댜, 스마, 아나야, 우리아, 힐기야, 마아세야는 그의 오른편에 섰고, 브다야, 미사엘, 마키아, 하손, 하바르다나, 스가랴, 므술람은 그의 왼편에 섰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칠월 일일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회중 앞에 이르러.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매 그 우편에 선 자는 맛다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 좌편에 선 자는 브다아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하사 에스라가 모든 벡성 위에 서서 저의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과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느헤미야 8:1-6)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느헤미야 8:8)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삶의 중심을 두고, 말씀을 듣는 데 시간을 따로 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의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는지 모른다면, 집회에 참석할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묻습니다. 그렇게 되면 기쁨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라고 생각하며 갈등에 빠져 있을 때,
저는 그런 분들을 깊이 공감합니다! 우리 중에도 여전히 갈등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기쁨을 잊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분명 온갖 걱정으로 가득 차 있고, 이것저것 걱정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시간은 사람이 스스로 마련하는 것인데, 왜 하나님께 시간을 내어달라고 애써야 합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하여 삶을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 첫 부분만 들으면 무슨 말씀을 하실지 알겠습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물론입니다! 저는 매일 "하나님 중심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반복되는 비율도 꽤 높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제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안다고 해도, 얼마나 잘 실천하느냐는 것입니다. 생각 없이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 들으셨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얼마나 잘 실천하느냐입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쌓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들은 모두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말라기서를 증거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은 매우 중요합니다. 말라기는 느헤미야 시대의 선지자였습니다. 백성들은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기에 바빴습니다. 학개는 그보다 앞선 선지자였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중심적인 삶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증거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슬픔과 고통이 더 커졌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그들이 시간을 거룩하게 지키도록 미리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제야 그들은 동의했습니다. 이해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손해라고 느낀다면 믿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느낀다면 진심으로 믿으십시오.
저는 때때로 매우 바빠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 저는 제 삶을 하나님께 바치고 싶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좋다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 제 시간을 바칠 수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제 생각에, 이미 삶을 바쳤다면 당신의 시간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러니까 다 가짜인 거죠.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 저는 온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데, 그러면 돈은 안 드리겠어요."라고 말합니다. 그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가요? 다 가짜예요! 시간을 거룩하게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경을 들으러 와서 다음 날 다시 듣고, 초막절이 되어서 또 7일 동안 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8일이나 9일 동안 성경을 들었으니, 하나님을 위해 시간을 따로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사는 열쇠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있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성경을 진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문제는 읽고 나면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보내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위해 모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제 한 그리스도인이 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영상을 봤습니다.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나더니 그는 차에 치여 죽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영혼이 몸을 떠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에서 피가 흐르고 사람들이 구급차를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의 영혼은 아주 탁 트인 곳으로 가서 주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는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고 성경 공부를 빼먹지 않았기에 천국에 갈 것이라고 항상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자만심이 강했고 죽은 후에도 천국에 갈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죽은 후, 그는 예수님이 실제로 계신 곳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은 엄숙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처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갈 수 없다. 그들은 스스로를 선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그의 과거를 녹음기처럼 들려주며 그 안에 숨겨진 모든 생각과 의도를 드러냈습니다.
후에 예수님은 그를 돌려보내셨고, 그는 죽음에서 부활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간증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 영상이 믿을 만한지는 모르겠지만, 내용은 꽤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어떻게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해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데서 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교회에서 본보기를 보이기만 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책을 자세히 읽어 주고, 그 뜻을 풀어서 백성이 그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읽었을까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유월절이든 초막절이든 말입니다. 모세 오경은 모든 절기에 낭독되었습니다.
오경을 읽은 후 이스라엘 백성은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다윗, 왕국의 몰락, 포로 생활과 귀환, 그리고 성전 재건이 떠올랐습니다. 축복은 매우 좋지만, 저주 또한 매우 현실적입니다.
느헤미야의 부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곳에 모였습니다. 왜 갑자기 기쁨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요? 이 사람들이 마침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곳에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면 정말 어렵습니다!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에서처럼 부유해지기를 갈망하면서도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세상의 논리는 너무나 부패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삶을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할까요?
그들은 제가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읽으라고 하면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완전히 잊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시간을 어떻게 쓰겠습니까? 돈을 벌고, 대학 입시를 보고, 생계를 유지하는 데 시간을 허비합니다. 한번은 어떤 목사님이 저를 어떤 모임에 데려가셨습니다. 제가 "자녀는 어디 있나요?"라고 물었는데, 목사님은 자녀가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맙소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우리 목사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그저 아는 사이였기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슬펐습니다. 그는 시험에 온 시간을 쏟고 있었습니다. 다음 해에 그를 다시 만나 "자녀분 시험은 어떠셨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불합격했다고 했습니다. 물론 불합격이었죠. 우리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그분과 함께하는 시간을 줄이려고 하는 것이 불신의 표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의 뜻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은 슬픔과 울음의 삶이 아닙니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 제사장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말라 하고.(느헤미야 8:9)
기독교인들은 종종 울음과 웃음을 혼동합니다. 한번은 이런 관습이 있다는 걸 모른 채 모임에 초대받았습니다. 도착해서 보니 성찬식 때 모두가 마치 누군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처럼, 마치 가슴이 터질 듯 울부짖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옳은 건지, 아니면 그들이 옳은 건지? 성찬식 때 우리는 그렇게 울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울고 있는 걸까요? 저는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교우들은 저를 몰래 비웃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게 뭐지? 누군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처럼!' 완전히 정반대였습니다. 성찬식은 정말 기쁜 순간인데, 그들은 마치 누군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처럼, 마치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신 것처럼, 축하할 일이 아니라 슬픔의 날인 것처럼 울었습니다. 정말 정반대 아닌가요?
느헤미야는 지금이 바로 구별되어야 할 때이며, 마침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울고 있을까요? 정말 한심합니다! 정말 이상합니다. 그들은 슬픔과 눈물의 복음을 전했고, 슬픔과 눈물의 신앙을 믿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삶을 원하시나요? 느헤미야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거의 이렇게 말할 뻔했습니다. "왜 울고 있니? 율법의 말씀을 들어라! 무엇 때문에 울고 있니?" 만약 당신의 마음이 울고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사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울지 마십시오.
어떤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울 때, 마치 억울한 일을 당한 것처럼 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후회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종종 그들은 정반대입니다. 슬퍼하지도 말고 울지도 마십시오. 오늘은 주님의 거룩한 날입니다. 마치 성찬식을 거행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잘못을 하신 것처럼 억울함을 느낍니다.
주님 안에서의 기쁨이 당신의 힘입니다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뭇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아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느헤미야 8:10)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느헤미야 8:12)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을 믿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믿는 것은 유익을 가져다주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너무 위대하다고 생각하며 "왜 그렇게 물질만능주의적이에요? 유익을 얻기 위해 주님을 믿는 거예요! 뭐라고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고요?"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런 말이 완전히 터무니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그분은 나의 하나님이시고, 나는 그분의 백성이며, 그분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제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다른 곳에서 은혜를 받는다면 하나님께서 화를 내실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아빠한테 더 이상 돈을 달라고 하지 않겠어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게요."라고 하면 아빠가 화를 내실 것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에게 말씀드리건대, 주님 안에서 찾는 기쁨이 여러분의 힘입니다.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거나, 사업으로 돈을 벌거나, 먹고 마시거나, 즐겁게 놀거나, 여행하는 기쁨이 아닙니다. 그런 기쁨은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주님 안에서 찾는 기쁨이 여러분의 힘입니다.
우리는 방금 이것을 경험했습니다. 느헤미야가 방금 여러분에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성벽이 수리되었고, 곡식이 수확되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디에서 힘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주님이 우리의 힘이시며, 주님이 우리의 기쁨이심을 이해해야 합니다. 삶에서 기쁨을 누리려면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는 것은 지혜와 힘을 가져오고, 주님을 믿는 것은 유익과 기쁨을 가져옵니다. 이 말이 너무나 명확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이해하고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아, 나는 하나님께 빚을 졌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사실입니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빚을 졌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슬픔과 비극으로 이끌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을 믿는 것의 유익을 진정으로 깨달았습니다. 모두가 느헤미야의 간증을 들어야 합니다. 그는 어떻게 술잔을 올리는 자가 되었고, 어떻게 비천한 군인에서 최고 궁정의 자리에 올랐으며, 어떻게 황제가 그를 유다 총독으로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을까요?
그는 어떻게 그곳에 이르렀을까요? 모든 발걸음이 간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을 중심으로 삶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황제의 술잔을 올리는 사람으로 섬기던 그는 평범한 군인인 당신처럼 바쁘지 않았습니다. 조금 이상하지 않으세요? 여러분 모두에게 말씀드리는데,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노력하십시오.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초막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큰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결을 위해 시간을 따로 내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다음 날, 모세는 모든 사람에게 초막절을 지키라고 명령했지만, 이 전통이 여호수아 시대 이후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지만, 여호수아 시대 이후로 사람들은 초막절을 지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는 "자, 오늘은 일곱째 달 열닷새니 와서 초막절을 지키라"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는 누구를 체포했을까요? 그는 "너희는 율법을 어겼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지키지 않았기에 율법은 모든 사람을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 바빴습니다. 초막절을 지킬 시간은 어디서 찾을 수 있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각했습니다. "아이고, 추수가 막 끝나 곡식 창고에 저장되었는데, 아직 할 일이 너무 많네. 초막절을 지켜야 하나? 내가 제대로 들었나?" 시간이 없어! 아, 안 돼! 여호수아부터 느헤미야까지는 초막절이 없었습니다. 느헤미야는 7월 15일 초막절에 맞춰 성벽 보수를 마쳤습니다. 그들은 7월 1일과 2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15일까지 계속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산에 올라가 나뭇가지를 베고, 물문이나 에브라임 문 근처의 넓은 공간에 천막을 짓고 그 안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초막절을 가장 좋아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가장 행복해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멋진 축제는 처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두 천막에서 살았고, 냄비와 프라이팬은 모두 집에 있었습니다.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음식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불을 피우고, 갈퀴를 세우고, 고기를 걸어 구워서 먹었습니다. 마치 소풍처럼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장난기가 많으십니다. 아무리 영리하더라도 하나님을 따돌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놀라울 정도로 사랑이 많으시며, 유월절, 초막절, 칠칠절과 같은 많은 명절을 마련하셨는데, 이는 고난과 슬픔이 아닌 기쁨을 가져다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고대부터 안식일을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중국인들은 매우 근면합니다. 일 년에 이틀 쉬는 것도 좋은 일로 여겨집니다! 새로운 세대인 Z세대는 변할지 몰라도,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국민들은 부지런하고 근면하며 매일 고된 노동을 하지만, 과연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일까요? 사람들은 우선순위를 뒤바꿔 놓았습니다.
초막절 음식은 단순합니다. 할 일이 없으니 집 수리, 공장 일, 회사 일, 상점 일 모두 멈춥니다. 모두가 와서 천막에서 살며 거룩함을 위한 시간을 따로 마련합니다.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칠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 제 팔일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느헤미야 8:18)
서로잡혔다가 도아온 희 무리가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함이 없엇으므로 이에 크게 즐거워하매.(느헤미야 8:17)
왜 모두가 그토록 크게 기뻐했을까요? 마침내 하나님을 위해 시간을 따로 내고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사는 기쁨을 경험했기에, 정말 놀랍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결코 믿음을 짐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 짐이 된다면 그것은 종교입니다. 믿음이나 섬김에서 기쁨을 찾지 못한다면, 당신은 어려움에 처한 것입니다. 당신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큰 기여나 희생을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생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반드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몇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일하는 것도 축복이고, 섬기는 것도 축복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은 더 큰 축복입니다.
드디어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 엄청난 기쁨을 가져다준다는 성경적 증거를 찾았습니다! 이것으로 성경 공부를 마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기원합니다!
命定神学 华人社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