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느헤미야07-하나님 중심의 삶의 방식을 회복하는 길。
필기를 참고
1. 성벽을 수리하고, 성문을 설치하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 레위 사람들을 임명했습니다.
a. 성벽을 쌓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목표는 하나님 중심의 삶의 방식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b.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사시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은 무엇보다도 회개를 요구합니다. 만약 잘못 믿었다면, 다른 어떤 설명도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c. 느헤미야의 목적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속 성벽은 수리되고 회복되어야 합니다.
2. 성문 경비대 배치
a. 느헤미야는 최고의 성문 경비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을 주셨으니, 우리는 그 성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문제를 일으키려는 자는 반드시 처리해야 합니다.
b. 귀신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라. 하나님 중심의 교회와 승리하는 군대를 건설하라.
c. 예수 그리스도의 성벽 경비병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뒤에 남겨둔 것은 얻은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섬기는 데 방해가 될 수 없습니다.
3. 포로 귀환으로 시작하다
a. 편안하게 사는 사람들은 회개하기 어렵습니다. 고난을 겪고 악령에게 쫓겨 교회로 온 후에야 사람들은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포로 귀환자들에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회복하는 시작입니다.
b.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 건설을 포기한 것은 그들이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생존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돈벌이만 생각했습니다.
c.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며, 세상의 논리를 버리고 생존을 추구하는 것에서 "영생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4. 인간의 헌금으로 시작하다
a. 헌금만으로는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없지만, 헌금이 없다는 것은 분명히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헌금은 사람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b. 교회를 세우는 것은 헌금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이기적인 사람들이 모여서는 교회를 세울 수 없습니다.
c. 가정에서 극도로 게으르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대인 관계가 원만하지 못할 것입니다.
d. 교회 안의 헌금은 사람들을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도록 훈련시키고 축복으로 인도합니다.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느헤미야 7장을 계속해서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방식 회복에 초점을 맞추다"라는 주제로 공부해 보겠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쌓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까요?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성벽을 쌓기 위해서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생계를 위해 애쓰며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 중심적인 사람이라면, 삶의 의미를 찾을 뿐만 아니라 사람답게, 심지어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방식 회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52일 만에 성벽을 완공했습니다. 그들은 팀워크를 다지는 활동을 했고, 사람들의 마음은 52일 만에 성벽을 쌓을 수 있다는 사실에 불타올랐습니다! 하지만 성벽이 완공되기 전에도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주저했습니다. "이 성벽은 수십 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는데, 느헤미야가 갑자기 열정적으로 나타나다니!" 이방인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의 실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재건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마치 집을 수리하는 것처럼 단 52일 만에! 집을 수리하는 데는 최소 두 달이 걸릴 텐데, 그러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당 건설" 프로젝트, "팀 빌딩" 프로젝트를 완료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느헤미야는 하나님 중심의 삶의 방식을 회복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특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누가 그런 지혜와 통찰력을 가졌을까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왜 느헤미야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이 일을 끝낼 수 있었을까요? 이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단 한 명이라도 감히 일어나 "자, 성벽을 쌓고 하나님 중심의 삶의 방식을 회복합시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어려웠습니다!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누가 팔을 들고 하나님 중심의 삶의 회복을 외쳤을까요? 많지 않은 것 같네요! 팔을 들고 바빌론의 지배를 무너뜨린 사람이 있었나요? 물론입니다! 세상의 논리 체계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너무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가 어떻게 이 일을 했는지 볼까요?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제 가장 큰 강점은 모방과 계승입니다. 제 강의를 들으셨다면, 이 사람이 정말 흥미롭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그는 심지어 예수님이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예수님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유산을 본받고 이어가고 싶습니다. 이러한 모방과 계승은 평생의 추구였습니다. 저는 느헤미야를 비롯한 역사 속 많은 위대한 신앙 인물들의 유산을 본받고 이어가고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얼마 전, 제가 목회하던 어떤 분이 가게에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러 날이 지난 후, 저는 "가게에 쓸 만한 사진을 찍어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진을 찍는 데 애를 먹었지만, 아주 천천히 찍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온라인에서 사진 몇 장을 찾아 보내드렸고, 순식간에 아주 간단하게 완성되었습니다.
바퀴를 새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할 뿐입니다. 우리는 모방하고 계승할 뿐입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따라 합니다. 선생님이 "선생님, 정말 대단하십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몇 분 만에 온라인에서 몇 개를 찾았는데, 이미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바퀴를 다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잘 배우는 사람은 글쓰기를 배우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방과 계승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낸다면 오타입니다. 만들어낸 글자로 글을 쓴다면 아무도 당신이 무슨 글을 쓰는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우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입니다. 바울에게서 교회를 짓는 법을 배우고, 느헤미야에게서 성벽을 쌓는 법을 배우고, 모세와 다윗에게서 성전을 짓는 법을 배우고, 중국 운명신학 교회에서 목회 사역을 배우십시오. 신뢰할 수 없는 자료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지금도 교회에는 신뢰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말씀드립니다. 한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이것이 변장한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에 그런 내용이 있나요? 아닙니다! 어떤 교회 신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눈먼 자는 그대로 두고, 혈루증 있는 자는 계속 피를 흘리게 두어라!" 혈루증이 있으면 계속 피를 흘리게 두어라! 혈루증이 없어지면 어차피 언젠가는 죽게 될 테니, 그렇게 하라." 하지만 성경에 그런 내용이 있나요? 아닙니다.
교회는 이런 인간적인 허구로 가득 차 있지만, 그중 어느 것도 예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정말 끔찍한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들은 강력한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신 복음을 무력한 복음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참으로 비극적인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이단, 저 이단이라 부르며 자신만이 정통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파괴하면서도 여전히 자신들을 정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방식을 회복해야 합니다. 정복과 가난, 질병의 시대는 지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기 시작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시대처럼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살면서 그것을 "변장한 축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레미야의 애가를 부르면서도 여전히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합니다!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최고의 감사의 형태입니다.
성벽이 수리되었고, 문들이 설치되었으며,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 레위인들이 임명되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벽을 수리하는 것이 결코 목표가 아니었고, 교회를 짓는 것도 목표가 아니었음을 아십시오. 진정한 목표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회복하지 않는 교회를 짓는 것은 기껏해야 지역 사회 클럽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때는 함께 있는 게 좋았지만, 매주 금요일 저녁 소그룹 모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기보다는 그저 음식을 나눠 먹었습니다. 닭고기 수프, 오리 수프, 햄, 과일을 먹고, 그러다가 모두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걸 하나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배 중심이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짓고 실제로 사람들을 모으는 데 이용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하지만 그건 그저 반찬, 양념일 뿐입니다. 진정한 메인 코스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입니다. 느헤미야는 왜 술잔을 올리는 일을 맡지 않고 예루살렘의 변방까지 가서 지역 깡패들을 마주하지 않았을까요? 그건 재미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문제가 발생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큰 집회소를 짓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건물이 완성되고 문이 설치되면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사람들이 오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사람들은 와도 하나님은 안 오신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며칠 전, 깊은 감회를 느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선생님, 말기 암에 걸린 교회 지도자가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럼 그 다음에는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조카딸이 그를 우리 공동체에 데려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암 환자는 심각한 중독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변장된 축복이라고 말하다가도, 다음에는 고통이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하늘에서 그를 위해 애가를 부르고 있는데도, 그는 여전히 그것이 하나님의 변장된 축복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가 얼마나 심각한 중독 상태에 있는지 보세요? 우리는 그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대대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지만, 안타깝게도 다리가 부러지고 아이가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이 상황을 감당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비밀을 하나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섬기기 매우 어렵습니다. 예레미야의 애가와 같은 상태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섬기고 싶다면, 먼저 그들의 상태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살고 있는데도 당신이 매일 자비를 구한다면, 그 기도는 전혀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회개하고 자신이 잘못 믿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들을 섬길 수 없습니다.
느헤미야의 목표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방식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성벽과 성문을 수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사람들의 마음의 성벽과 성문을 수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벽을 수리한 후에 나는 성문을 설치하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임명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동생 하나니와 병영 관리 하나냐를 임명하여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하나냐는 신실하고 다른 모든 사람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성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사람들을 세운 후에.내 아우 하나님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로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위인이 충성되어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어난 자라.내가 저희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거민으로 각각 반차를 따라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을 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느헤미야 7:1-3)
도시 관리 공무원 임명
현재 도시 관리 공무원들은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들이 노인 노점상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생각하며 많은 불만을 제기합니다. 느헤미야는 또한 나쁜 놈들이 밤에 들어와 불을 지르거나, 사람을 죽이거나,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도시 관리관들을 성벽과 성문을 지키도록 임명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닭이 없어졌다가, 다음 날 또 다른 닭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바로 족제비 때문입니다! 족제비는 정말 놀랍습니다. 아무리 작은 틈새라도 스스로 작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게 이해가 안 됩니다. 스스로 작아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닭을 그 틈새로 작아지게 할 수 있었을까요? 아직도 이해가 안 됩니다. 하지만 먼저 도시 관리관부터 알아봅시다.
도시 관리관은 정말 중요합니다! 도시 관리관이 있을까요? 네! 그리고 도시 관리관들은 매우 유능합니다. 저는 적어도 80%는 새벽 2시 이후에 잠자리에 듭니다. 왜 새벽 2시 전에는 잠자리에 들지 않을까요? 간, 심장, 폐에 좋은 수면입니다. 이렇게 자면 건강에 해롭지 않을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아직 아주 건강합니다.
우리 형제자매들 중 많은 이들이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악령은 언제 오는 걸까요? 밤에 찾아오는데, 아주 끔찍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악령들이 내 잠을 방해하는 건가? 잠도 안 자고 성벽만 지키면 되겠지.' 우리 교회의 많은 목사님들이 제게서 이런 훈련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때도 이런 식으로 그들을 섬겼고, 지금도 다른 목사님들은 이렇게 섬깁니다.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장폐색으로 고통받는 한 여성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제 치료는 매우 효과적이었고, 그녀의 사고방식도 바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그녀에게 치료가 효과를 발휘하면 몇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유령들이 그녀를 속이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령들은 전략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작은 유령을 물리치면, 그 유령은 우두머리에게 갈 것입니다. 그 우두머리는 분명 더 강력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작은 유령을 붙여 그녀를 감시하게 하고, 그녀를 납치하고 억압할 것입니다. 우두머리가 나타나면 그녀의 병은 더 악화될 것입니다.
그날 아침, 저는 그 작은 악마가 자기 사장을 만나러 갔고, 우리 담임 목사님 중 한 분도 자기 사장을 만나러 갔기 때문에 그 여자를 섬겼습니다. 담임 목사님이 저에게 문자를 보내시더군요. "선생님, 그 여자의 고통이 너무 심해졌어요." 제가 원하던 바였습니다. 악마가 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을 정하세요. 제가 직접 섬겨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작은 악마의 사장은 우리 담임 목사님의 사장에 맞설 수 없었고, 제가 그를 무너뜨렸습니다. 설령 그가 자기 사장의 사장을 부른다 해도, 저는 그를 무너뜨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강력한 후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설령 그 작은 악마의 사장이 마왕을 부른다 해도, 그는 여전히 짓밟힐 것입니다. 악마는 생각했습니다. "맙소사, 이 놈은 감당할 수 없어. 느헤미야와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어. 심지어 도시 관리까지 보냈잖아."
어젯밤, 장폐색을 앓는 이 환자는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진통제 주사를 맞으러 의사를 만나고 싶어 했는데, 사실은 모르핀이라는 독극물이었습니다. 주사를 맞은 후 몇 시간 동안 멍한 상태로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다시 밤새도록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젊은 목사님이 아침에 연락했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정오쯤, 젊은 목사님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고 저도 함께했습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 신앙을 쌓는 것, 그리고 악령이 어떻게 활동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녀는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변장한 축복"이라는 말만 들었을 뿐, 악령을 물리치는 것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고, 하물며 악령의 우두머리를 물리치는 것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우두머리가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그녀는 악령이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으로 짓밟힐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동안 그녀는 제게 "선생님, 이제 걸어다닐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직도 아프세요?"라고 물었더니, "더 이상 아프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활력도 넘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악령들이 얼마나 사악한지 상상이나 되시나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도시 관리 책임자와 같습니다. 당신은 제 영역 안에 있습니다. 저를 찾아오시면 피곤할 것도 걱정 없고, 밤에도 쉬지 않을 겁니다."
제 말이 끝나자, 그 자매님은 너무 감동해서 거의 울 뻔했습니다. 이런 목사님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어요? 제게 정말 감동적인 목사님이 계셨어요. 그분이 암 환자를 데려오셨는데, 제가 "함께 섬기자"고 했죠. 그분은 "아니요, 시간이 없어요."라고 하셨죠. 그분이 아웃소싱을 하신 건가요?
저는 모두의 "도시 관리 책임자"입니다. 저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고 하나님 중심적인 교회를 세우고 싶습니다. 이해하시겠어요? 벽을 수리하고 문을 설치한 후 승리 축하 행사를 여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와 원수가 언제든 방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승리하는 군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왔고, 주님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세우고, 이 교회는 영적인 싸움을 벌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귀신의 왕이 왔다고 하지만, 그가 예수님보다 더 위대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러니 느헤미야는 최고의 "도시 관리 책임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 도시를 주시면 우리는 한 도시를 관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 도시를 주시면 우리는 두 도시를 관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 도시를 주시면 우리는 열 도시를 관리합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의 도시 관리 책임자입니다. 누군가 문제를 일으키려고 오면 우리는 그들을 제거할 것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귀신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형제자매들이 마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와 은혜 속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도시 관리 책임자가 되고 싶으십니까? 저와 함께 도시 관리 책임자가 되어 보세요! 밤에 전화가 울리면 도시 관리 책임자들이 일어납니다. 귀신들이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금속판을 발로 차고, 도시 관리관이 다시 발로 차는군요! 정말 대단하네요!
느헤미야는 성읍이 광대한데 인구는 희박하고, 집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으며, 황폐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곳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로 성읍을 가득 채울 계획을 세워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이것저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요? 그건 어리석은 짓이에요!”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면 아무것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버리는 것이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버림으로써 얻는 것입니다. 저는 평생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온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제 어머니는 저를 아들로 두신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훨씬 덜 고통받으셨습니다! 의사들은 어머니의 허리가 좋지 않아 마비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실제로 어머니의 등을 받쳐 주셨기 때문에 마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어머니 때문에가 아니라 제가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 때문에 어머니에게 자비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제 삶에서 아무도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 제게 "당신은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아니면 저를 사랑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겠죠? 당신은 자신을 주 예수님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논쟁할 건가요?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아무도 그분에 대한 제 사랑을 앗아갈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움츠러들었습니다. 당신이 아내나 남편을 매우 사랑한다는 것을 알지만, 악마에게 결코 압제받지 않을 거라고 보장할 수 있습니까? 악마가 당신에게 오지 않을 거라고 보장할 수 있습니까? 아니요, 저는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제 사랑을 방해하는 사람은 누구든 버리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관리하도록 맡기시면 저는 그들을 잘 관리할 것이고, 열 사람을 관리하도록 맡기시면 저는 그들을 잘 관리할 것이며, 백 사람을 관리하도록 맡기시면 저는 그들을 잘 관리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중국 예정론의 문이 열려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쏟아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많은 포로들을 해방시키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해방시키며,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돌아오도록 하기를 원하십니다.
장폐색을 앓고 있는 자매님과 이야기를 마친 후, 자매님이 저에게 "선생님, 저도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좋아요, 저와 함께 기도해 주세요. 제가 한 문장을 외우면 자매님도 따라 외우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자매님을 인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용감한 군사가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충성된 예수 그리스도의 수호자가 되겠습니다! 귀신들이 내게 덤벼들더라도 내가 그들을 완전히 물리칠 것이요, 늙은 말도 비틀거리고 넘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복음서의 성경 원문은 "눈먼 자가 보고 저는 자가 걸을 것이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복음입니다. 귀신들을 불러내라! "악마들이 온다, 세상에, '아이고'라는 말은 왜 하는 거야? 정말 한심해!"
우리는 준비를 시작해야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유배자들이 돌아왔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열정적으로 교회를 짓고 있지만 하나님의 교회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니,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번영할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는 준비되었습니다. 유배당하고 억압받고 가난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며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번영할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온 땅에 가득할 것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돌아온 유배자들부터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교회는 부유하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특별히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유배에서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일단 유배된 사람들은 하나님 중심의 삶이 없이는 비참한 삶을 살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족보에 따라 백성을 등록하고, 레위 지파와 유다 지파 등 모든 사람을 등록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생각하던 중, 갑자기 명단을 발견했습니다.
스롭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아시랴와 라아먀와 나하마니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베렛과 비그애와 느훔과 바아나들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라.(느헤미야 7:7)
이 명단에는 스룹바벨만 있었고, 다른 사람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 사람들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사람들은 악령에 쫓겨 교회로 몰려옵니다! 사람들은 큰 고통을 겪고 회개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면 회개하기가 어렵습니다.
누군가에게 죄가 있고 저주받았다고 말하면, 그들은 "네가 죄가 있고 저주받았어!"라고 반박할 것입니다. 그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제가 말씀드리건대,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하나님 중심의 삶을 회복하십시오.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 사람들은 70년이나 80년 전에 포로로 잡혀 있었습니다. 사실 느헤미야가 성벽을 건축한 것은 스룹바벨보다 약 80년에서 90년 후였습니다. 더 나아가 스룹바벨이 해야 할 일은 느헤미야 시대에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스룹바벨과 느헤미야 사이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경험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영감을 받고 열정적으로 성벽을 쌓기 위해 앞장섰지만, 성벽은 중간에 포기되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자"라고 제안했고, 모든 사람을 조직하려 했지만 소수만 남았습니다. 나중에는 한두 명으로 줄어들었고, 마침내 그 한 사람만 남았고, 그렇게 성벽은 끝났습니다.
스룹바벨에서 느헤미야까지의 이야기는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직 스룹바벨 시대의 사건들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룹바벨 시대에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평민, 귀족, 관리들을 포함하여 4만 명이 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름들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4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성벽을 쌓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겠죠? 하지만 그들은 끝내지 못했습니다. 사실, 공사를 완료하기까지 52일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스룹바벨 시대와 느헤미야 시대 사이에는 공사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왜 그랬을까요? 스룹바벨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신앙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맙소사, 성전과 성벽을 쌓을 기회가 아직 오지 않았군." 그래서 느헤미야가 올 때까지 계속 미루었습니다.
느헤미야는 52일 만에 그들에게 시범을 보였습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어떻게 공사를 망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열정을 잃었을까요? 오로지 돈벌이에만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이해하시나요? 그들은 일하러 가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일하면서 장폐색이 생기거나, 집에서 무슨 일이 생겨 재산을 잃었습니다. 나중에 사업을 하다가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성벽을 쌓든 교회를 짓든 믿음이 부족하면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막으실까요? 하나님 중심적인 복된 삶을 살면 돈이 부족할까요? 아닙니다! 포로가 될까요? 아닙니다! 압제를 받을까요? 아닙니다! 모두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보다 더 좋고 강력한 것이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죽음의 수단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목숨을 걸고 생계를 유지하려 한다면,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다윗처럼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산다면, 다윗의 왕국은 매우 강성했고 주변 나라들은 그에게 복종하며 조공을 바쳤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 포로 생활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왜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후, 다시 포로 생활을 하게 됩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결코 잊지 마십시오. 왜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 포로 생활에서 시작되어야 합니까? 그들은 고통을 겪었지만, 어떻게 그들이 겪은 고통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정복당한 나라의 노예가 되었다가 다시 노예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정말 놀랍습니다.
저는 많은 목사님들을 만나 교회를 세우는 방법을 이야기하며, 교회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당신 말은 말도 안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들어보세요.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전하는 신앙은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논리 체계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전파하면서 목사들조차 암에 걸리고 우울증에 걸리고, 심지어 어떤 목사들은 성폭행을 저지르고 감옥에 가고, 심지어 하나님 때문에 감옥에 간다고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얼마 전, 아주 훌륭한 목사님에 대한 뉴스 기사가 있었습니다. 제가 무대에서 그분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그분이 아동 성폭행 혐의로 6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끔찍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분은 복음주의자였습니다. 저는 복음주의자들에 대한 편견이 있습니다. 그들은 강력한 복음을 대승불교로 바꿔버렸으니까요! 뭐, 납치당해도 괜찮습니다.
이제 돌아왔으니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다시 시작하시겠습니까?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성전 생활을 회복하고, 사람들을 단순한 생존의 길에서 구출하시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영생을 추구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생존을 추구하는 것에서 영생을 추구하는 것으로의 변화는 완전히 다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 점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사람들은 세상적인 것들로 마음이 가득 차서 아직 회복되지 못하고 포로로 잡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들은 여전히 포로로 잡혀갈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명단을 검토한 후, 총 42,360명과 7,337명의 종을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노래하는 자들과 말, 나귀, 노새, 낙타의 수를 세었습니다. 정말 많은 수였습니다.
그러니 느헤미야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풍성함을 다시 경험하고, 아름답고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허락하십니다. 믿지 마십시오. 본래의 진정한 복음을 믿으십시오.
헌금으로 시작
어떤 족장들은 역사를 위하여 보조하였고 방백은 금 일천 다릭과 대접 오십과 제사장의 의복 오백 삼십 벌을 보물 곳간에드렸고.또 어떤 족장들은 그 이만 다릭과 은 이천 이백 마네를 역사 곳간에 드렸고.그 나머지 백성은 그 이만 디릭과 은 이천 마내와 제사장의 의 복 육십 칠벌을 드렸느니라.(느헤미야 7:70-7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느니라! 헌금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헌금을 하지 않는 것이 분명히 무언가를 드러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 종일 하나님 중심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헌금에 관해서는 하나님께서 돈이 부족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작은 부분도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부족하시냐 마냐가 아니라, 당신이 부족하냐 마냐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헌금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 사실을 깊이 경험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초창기에는 헌금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가난한 학생들이었습니다. 저는 가장 큰 헌금자였고, 음식, 음료, 물품 등 교회 운영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제가 부담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저는 구운 닭고기, 구운 오리, 삶은 소고기, 소시지로 사람들을 끌어들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왔지만, 효과가 있었을까요? "효과적이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먹보들을 끌어들였습니다.
나중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주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왜 제 헌금이 저주받았을까요? 제가 모든 사람을 구운 닭고기, 구운 오리, 삶은 소고기로 데려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구운 닭고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사람들을 끌어들였어야 했습니다. 사실, 닭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면 훨씬 더 번거로웠을 겁니다. 닭으로 오리를 끌어들이고, 오리로 닭을 끌어들이는 건 정말 역겹죠. 마치 뭐든 끌어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나중에 저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로만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교회를 짓기 시작했을 때는 제가 구호품을 나눠주면 사람들은 그냥 먹고 마시러 왔어요. 나중에는 구운 닭고기와 오리 대신 도시락을, 도시락 대신 과일 한 접시를, 과일 한 접시 대신 생수 한 병을 주더군요. 심지어 생수 한 병에 1달러 동전을 넣어야 했어요! 저는 생수를 도매가로 2센트에 샀는데, 그들은 1달러 동전을 넣어줬죠.
제가 왜 이런 짓을 했냐고요? 이 모든 사람들을 베푸는 사람으로 훈련시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사람들이 교회를 지을 수 있을까요? 공짜 도시락을 먹고 배불리 돌아오는 거죠. 물 한 병이 2센트를 1달러로 바꿔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도록 베푸는 사람들을 훈련하는 것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때부터 저는 깊이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느헤미야는 헌금을 드리는 데 앞장섰지만, 혼자서 헌금하고 모두가 먹고 마시고 마음대로 쓰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느헤미야는 헌금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볼 수 있다고 믿으며 헌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우리 가운데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헌금을 하고 싶어도 제가 꼭 헌금할 권리를 주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해하십니까? 우리는 당시 느헤미야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우리는 강해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헌금한 후에 모든 사람이 복을 받도록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헌금을 하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십니까? 아닙니다! 베푸는 모든 사람은, 마음가짐이 잘못되었거나 무모하게 베푸는 경우가 아니라면, 유익을 얻을 것입니다. 베푸는 것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베푸는 것이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도 여러분에게 감사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베푸는 사람이 된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집에서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게으르면 관계가 좋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여러분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하고, 그들이 여러분을 존중하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베푸는 것부터 시작하여 다른 사람이 축복받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여러분에게 베푸는 것을 금지하는 엄격한 규칙을 정해 놓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베푸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여러분의 축복을 방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모세는 베푸는 것으로 성막을 짓기 시작했고, 다윗과 솔로몬도 베푸는 것으로 성전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보물이 있는 곳에는 그의 마음도 있습니다! 베푸는 것은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베푸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십시오. 이것이 우리 교회가 발전해 온 방식입니다.
목사로서, 어쩌면 모임에서 사람들을 인도하고 목양하는 분이라면, 제 조언을 꼭 들어야 합니다. 지금도 많은 목회자들이 헌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헌금한 후에 돈이 자기 주머니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기분이 좋아질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사람들을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도록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축복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헌금으로 시작하는 것은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예수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느헤미야 시대에 또 다른 선지자 말라기 역시 헌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놀라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벽을 쌓고, 팀워크 활동을 조직하고,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방식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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