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느헤미야05-하나님은 사람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하나님은 사람을 부유하게도 하십니다。
필기를 참고
서론
a.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드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면, 그들은 또한 그들을 부유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 열심히 일하고 많은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b.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난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내면에 빈약한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c.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는 부는 추가적인 재앙을 가져오지 않지만, 탐욕스러운 돈은 분명히 재앙을 가져올 것입니다.
d. 하나님은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드시지만, 또한 부유하게도 만드십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1. 느헤미야가 성벽을 쌓는 동안 가난한 자들은 부르짖고 불평합니다.
a. 가난한 자들은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 시간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들은 눈과 마음이 가난하며, 매 순간 부정적인 것을 보고 하나님 보시기에 끊임없이 분노를 쌓습니다.
b. 느헤미야는 백성의 가난을 해결하고 축복의 상태로 인도하기 위해 성벽을 쌓았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그들의 마음과 생각에서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c. 사람들의 불운은 의심할 여지 없이 영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악귀는 하나님이 보내신 원수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2. 가난한 자는 부자들에게 유혹이 됩니다.
a. 돈이 있는 사람들은 교만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록 그들의 행동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합법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반드시 그들을 벌하실 것입니다.
b. 자신의 돈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러한 행동이 자신에게 저주를 가져올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벌을 받을 것입니다.
c. 부자가 가난한 자를 대하는 방식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부자를 대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은 부자들에게 유혹이 됩니다.
d. 섬김은 부나 가난에 근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부유하든 가난하든 선하게 섬겨야 합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동해야 할까요?
a. 세상이 평화로울 때 사람들은 경건함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혜를 얻고 많은 재앙을 피할 수 있습니다.
b.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영계에는 투명하게 보입니다. 귀신과 신 모두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c.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옳다고 여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거스르지 마십시오.
4. 하나님은 사람들의 소유물을 비우실 것입니다.
a. 하나님은 사람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b.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분은 그들의 소유를 비우실 것입니다.
c. 느헤미야는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을 축복으로 이끌기로 결심했습니다.
5. 느헤미야가 부요하게 된 길
a. 느헤미야의 가난과 부에 대한 관점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b. 느헤미야가 부에 이르는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었습니다. 월급이 없어도 하나님은 그를 부유하게 하셨습니다.
c. 느헤미야는 관대하고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베푸는 자는 결코 가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d. 더욱 관대하고 관대해지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마음이 넓어질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모든 민족과 모든 이름에 복이 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며, 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느헤미야 5장을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의 주제는 "하나님은 사람들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또한 부유하게도 하신다"입니다. 이 주제를 통해 느헤미야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의 마음속에 논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또한 부유하게도 하신다"라는 말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아십니까?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한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무엘과 같은 아들을 원해서 자녀의 이름을 한나라고 짓지만, 한나의 생각, 즉 "하나님은 사람들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또한 부유하게도 하신다"는 생각이 느헤미야의 마음속에도 깊이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는 어떻게 부유해졌을까요? 그는 어떻게 궁궐의 술 맡은 관원이 되었을까요? 그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또한 부유하게도 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몰랐다면 참담했을 겁니다! 그는 뼈 빠지게 일했지만, 일할수록 더욱 가난해졌습니다. 아예 일하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 겁니다. 천만 달러를 잃었습니다. 도망치는 것 외에는 어떻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말씀드리자면, 오직 하나님만이 빈곤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빈곤을 없애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미국은 부유한가요, 부유하지 않은가요? 하지만 빈민가 사람들을 보세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한 나라에서 빈곤을 없애려고 하면 수많은 우스꽝스러운 상황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가난해질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난하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난하게 만드시나요? 그들의 마음속에 가난한 사람의 논리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오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보시고 "이 사람 머릿속에 가난한 사람의 논리가 자리 잡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그를 가난하게 만들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부유하게 만드셨는지 깊이 경험했습니다. 그의 가문은 부유했지만, 그것은 부패 때문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부는 어떤 추가적인 불행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패한 관리가 되면 끝장입니다. 횡령한 돈은 반드시 불행을 가져올 것입니다. 신이 주시지 않은 돈이라면, 아무리 한 푼씩 벌어서 많은 부를 축적하더라도 불행을 가져올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최근 싱가포르에서 한 중국인이 자금 세탁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열 곳의 사기 산업 단지에 연루되었습니다. 얼마나 악랄한 일입니까!
미얀마 코캉 가문의 네 대가문은 모두 부유하고 거만하며 사기 산업 단지를 운영합니다. 그들은 최근 동방의 주요 강대국을 화나게 하여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그들은 여전히 거만하게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춤을 추고 있습니까?
그러니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유하게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쁘다면 어떻게 선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느헤미야가 성벽을 쌓을 때 가난한 사람들은 부르짖으며 불평했습니다.
백성들과 그들의 아내들은 유다에 있는 형제들을 향해 큰 소리로 불평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우리와 우리 자식들이 많으니 살아남기 위해 양식을 구하러 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밭과 포도원과 집을 저당 잡았습니다. 배를 채울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밭과 포도원 때문에 왕에게 세금을 낼 돈을 빌렸습니다. 우리 몸은 형제들의 몸과 같고, 우리 자식들은 그들의 자식과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식들을 종으로 만들 것입니다. 우리 딸들 중 일부는 이미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밭과 포도원은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졌으므로 우리는 그들을 구할 힘이 없습니다."
때애 백성이 그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 형제 유다 사람을 원망하는데.혹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곡식을 얻어 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혹은 말하기르 우리의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전당 잡히고 이 흉년을 위하여 곡식을 얻자 하고.혹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어 세금을 바쳐ㅆ도다.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저희 자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으나 우리의 밭과 포동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니 속량할 힘이 없도다.(느헤미야 5:1-5)
이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느헤미야가 오기 전에는 집에서 가난하게 살았지만, 아무도 탓하지 않고 그대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누구에게 울부짖었을까요? 울부짖고 불평했습니다. 누구에게 불평했을까요?
느헤미야는 “자, 우리가 성벽을 쌓아 아무도 우리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울부짖고 불평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의 눈은 멀었을 것입니다! 너무 심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은 최근에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항상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오직 “어떻게 성전을 지을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 시간을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합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가난의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이 세상에는 항상 가난이 만연할까요? 다른 이유가 아니라,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진노를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눈에 가난하고, 마음도 가난하고, 모든 면에서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난하게 태어났습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이 부자가 되고 싶다면 먼저 생각과 의도를 바꿔야 합니다. 그들의 생각과 의도는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입니다. 그들은 결점투성이이고, 하나님의 성품의 흔적도 없이 괴물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난하지 않다면 누가 가난하게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가난하게 하지 않으신다면, 그분을 공의로운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백성들과 그들의 아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큰 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쌓음으로써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을까요? 그는 백성들의 가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와서 성벽을 쌓을 수 있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집에서 항암 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장폐색을 겪었고, 어떤 사람들은 배변을 못 하고, 어떤 사람들은 소변을 못 보고, 어떤 사람들은 피부 궤양을 앓고 있었습니다. 온갖 병이 다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남을 탓하고, 유다에 있는 형제들을 탓했습니다. 그게 남들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들 자신의 문제였습니다. 왜 그들은 그렇게 운이 없었을까요? 왜 그렇게 운이 없었을까요? 영적인 통찰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사실에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싱가포르에서 온 동료이자 친구와 함께 사무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기독교인을 데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특별히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 순간, 저는 소위 "기독교인"이라는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1.5미터, 1.4미터,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쥐만 한 작은 사람들이 원숭이처럼, 사람처럼 서 있거나 걸어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강화된 소대처럼 줄지어 줄을 지어 서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이게 뭐지?"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이 사람이 매우 가난하고 불운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야 이해했습니다. 유령이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해야 할까 생각하며 "뭔가 불운한 일이 있는 건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재치 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싱가포르 친구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정말 저 사람을 도와주셔야 해요. 저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불운하거든요!" 그가 무엇을 하든 유령이 그와 함께 있으니 어떻게 불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성공하는데 저 사람은 항상 실패합니다.
우리 어렸을 때 "남들이 소를 끌고 갈 때 말뚝을 뽑는다"라는 속담이 있었습니다. 왜 말뚝을 뽑았을까요? 그는 잡혔고, 말뚝이 그의 집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소를 훔쳤다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소가 어디 있는지 몰랐고, 다른 사람이 가져갔습니다. 불운한 일이 아닙니까?
이 세대에는 불운한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불운한 일이 하나라도 생기면 10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불운한 일이 두 번 생기면 인생 전체가 끝장납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한 번 속으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두 번 속으면 창조 이전 시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완전한 공허와 혼돈입니다."
그렇다면 이 불쌍한 사람들이 성벽을 쌓을 때, 그들은 축복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사람의 불행은 항상 영적인 세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귀신들은 하나님께서 그를 괴롭히기 위해 보내신 것 외에 다른 어떤 이유로도 그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28장 - 나는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칙은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니 말씀드리건대, 어떤 사람이 60대까지 빚에 허덕이며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들의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불쌍한 존재였고, 쉽게 속아 넘어갔습니다! 어릴 때부터 시야가 왜곡되어 부정적인 것만 봅니다.
제 말씀을 드리자면, 어린 시절부터 긍정적인 것만 보면 축복받을 것이고, 부정적인 것만 보면 나중에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20대, 30대, 50대, 60대, 70대, 80대까지 살면서 항상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마치 이 유대인들처럼 말입니다. 백성들과 그 아내들이 유다의 형제들을 향해 큰 소리로 불평하고 비난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유대인들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느헤미야가 성벽을 쌓으려 했을 때 가난한 사람들이 불평하고 울부짖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또한 부유하게도 하십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제 말을 더 잘 듣고 마음속의 쓰레기를 끊임없이 치운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저는 이 점에 특히 감동했습니다.
며칠 전, 한 자매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아시죠? 저희 회사에서 직원을 해고하는데 제 월급이 3천이나 올랐어요! 정말 대단해요!" 저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3천은 큰돈은 아니지만, 해고가 만연한 시기에 3천이나 오른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 불쌍한 사람들을 보세요. 성벽이나 사원을 짓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우리 형제자매들 중에는 꽤 흥미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종교적 선입견을 가지고 모임에 오는 것을 원하지 않고, 선생님의 설교도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듣고 싶어 한다면, 저는 별로 기쁘지 않습니다.
그럼 문제가 뭐죠? 제 말이 당신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듣는 것은 저에게 은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은혜를 줍니다. 자주 듣고 나서 "선생님, 제 월급이 3천이나 올랐습니다."라고 한다면 당신은 가난해지겠습니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선생님, 제 월급이 3천이나 올랐어요!"라고 말할 거예요. 정말 멋진 일이죠!
누군가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면, 제가 매일 당신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더라도 소용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섬기는 것은 때로는 매우 힘들고, 저에게는 큰 유혹입니다.
때로는 짜증이 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제 악한 충동을 억누르고 그들과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후에는 정신적인 수고를 하고, 그 후에는 다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종종 저를 비난합니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그러니 말씀드리는 겁니다. 세상에는 항상 가난한 사람들이 있겠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하루 종일 돈에만 집착한다면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돈에 집착할수록 더 많은 악이 들이닥치고, 당신은 더 가난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실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정은 당신의 몫입니다! 목사는 정말 어렵습니다. 저는 발꿈치로 운세를 볼 수 있는데, 점술보다 더 정확할 겁니다. 왜냐고요? 그 사람이 제 눈앞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오는 것을 보게 될 테니까요.
사실, 할 말은 다 했습니다. 더 이상 말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속으로만 간직해야 할까요? 그가 불행을 겪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요즘 예레미야서를 공부하면서 이런 생각이 자주 듭니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들에게 유혹이 됩니다.
돈이 좀 있다면 가르쳐 주겠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들에게 유혹이 됩니다.
저들이 이렇게 외치는 것을 듣고 저는 매우 화가 났습니다. 마음속으로 계략을 꾸며 귀족들과 관리들을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모두가 자기 형제를 이용하고 있다!"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중심에 계획하고 귀인과 민장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취리를 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저희를 쳐서.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속량하였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저희가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느헤미야 5:6-8)
이 유대인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누군가 그들에게 돈을 빌려 갚을 수 없을 때, 그들은 무엇을 담보로 내놓을 수 있을까요? 가난한 사람은 부자에게 "내 아이를 저당 잡히겠습니다. 이 아이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은 내 아이를 팔아도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양측 간의 합의입니다. 하지만 정말 빌린 돈을 갚을 수 없게 되자, 그들은 "그럼 아이를 주세요. 팔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중개업소에 "장모우모는 누군가의 노예가 되어 고문당하거나 죽임을 당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를 사세요. 당신의 것입니다!"라는 표지판을 세웁니다. 그러고는 빌린 돈을 갚을 수 없어서 저에게 돈을 주고, 자기 아이를 저에게 저당 잡힙니다! 제가 한 일은 아주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행동입니다.
이것은 합리적이고 합법적이지만, 신의 뜻에 어긋납니다. 그렇다면 그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서 온 걸까요? 사실, 그들은 부자가 된 후 교만해집니다. 교만해지면 스스로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식을 저당 잡히고, 남의 자식도 팔아치웁니다! 하지만 신께서 반드시 그들을 벌하실 것입니다.
우리 중국 속담에 "재산은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1세대의 돈은 스스로 번 것이거나, 바람에 날려간 것이거나, 탐욕으로 번 것입니다. 1세대는 돈이 있습니다. 과거 1세대 부자들은 엄청나게 근면하고 기꺼이 노력했습니다. 부유하거나 권력 있는 가문의 아들이었던 그들의 자녀들은 "내 자식들이 나처럼 고생하게 둘 수 없다"라고 생각하며 응석받이로 자랐습니다. 이로 인해 쓸모없는 자식이 태어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2세대는 돈을 아낌없이 쓰기 시작했고, 3세대가 되자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가 3대를 넘기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한때 부유했던 사람들이 가난해지는 이유입니다.
홍루몽의 대경원에 사는 부자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은 강남의 4대 명문가 중 하나였고, 그들의 부는 고강의 사기극으로 얼룩진 공업 단지 소유주들과 맞먹었습니다! 하지만 황제가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자 그들은 파산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궁핍해지고, 어떤 이들은 투옥되고, 어떤 이들은 투신자살했습니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 세대에는 운명이 바뀌고, 누구의 차례가 되든 고통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일까요? 당신들이 신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의 행동이 저주받았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당신들은 저주받았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은 스스로 돈을 벌었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합리적이고 합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신의 뜻에 어긋납니다.
왜 재물이 3대를 넘기지 못하는지 아십니까? 신의 저주는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내려졌습니다. 기독교인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요? 전 세계가 마찬가지입니다. 신이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세계에 규칙을 정하셨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어떻게 대할까요? 이는 치명적인 유혹입니다. 만약 당신이 가난한 사람을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미래에 당신을 똑같이 대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을 결코 얕보지 마십시오. 저는 동료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저주가 깊더라도, 아무리 악하더라도, 우리가 기꺼이 그들을 섬기려 한다면, 그들이 얼마나 많이 바치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기여에 따라 섬기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부자니까 잘 섬기고, 이 사람은 가난하니까 잘 섬길 필요가 없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망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당신이 잘하고 있는데, 내가 당신을 위해 섬겨야 할까요? 그냥 잘 살아라! 당신은 글을 읽고, 설교를 이해하고, 장도 막히지 않고, 배변도 할 수 있다. 그러면 잘 성장할 것이다.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제대로 된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가난한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 싫습니다. 여러분이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나 복된 삶을 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유하게 만드시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가난해지는 것을 정말로 좋아하지 않으시지만, 그분을 믿는 사람이 있을까요? 정말 어렵습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이 되는 것은 백 명 중 한 명꼴로,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명문대에 진학하는 사람들조차 반드시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
느헤미야는 왜 화가 났을까요? 느헤미야는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도 이런 짓을 하고, 저 가난한 사람들도 똑같은 짓을 하곤 했다. 너희가 저주 아래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너희는 저당 잡힌 자식들을 노예로, 심지어 이방인들에게까지 팔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왜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에게 팔았을까요? 이방인에게 파는 것이 더 이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팔아넘긴 것은 7년 후에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정말 악한 일이 아닙니까? 그들에게 정말 그 돈이 필요했을까요? 그는 저주 아래 살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팔지 않고 외국인들에게 팔았습니다.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이것이 바로 징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의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유하게도 하십니다. 여러분은 믿으십니까? 믿지 않으시더라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형제자매들은 제 말을 더 자주 듣고 마음을 맑게 해야 합니다. 하늘과 땅에 외칩니다. 조심하세요!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몹시 가난합니다. 가끔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들은 예전에는 너무나 가난했지만, 중국 운명론이 승리하는 우리 교회에 온 후 삶이 나아졌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삶이 나아진 후,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봉사를 포기하고, 집회 참석을 포기한 것이었습니다. 악한 일이 아닙니까?
당신은 전에는 가난했는데, 지금은 부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적응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수면 마비로 고생했는데, 지금은 나아졌으니 잊으셨나요? 아직도 경건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경건함이 부족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영계의 진리를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작은 악마를 보내 당신을 괴롭힐 때, 당신은 상황을 바꿀 힘이 없고 당신의 마음은 극도로 완고해질 것입니다.
이 불쌍한 사람들처럼, 성벽을 쌓고 성전을 짓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회복하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그들은 울부짖고 불평합니다. 그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물론 느헤미야도 힘든 시간을 보냈고, 저는 그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그들은 이미 너무 가난하고 비참했기에 그들을 변화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부자들을 개혁하여 몇 년 더 부유하게 살 수 있도록 합시다.
당신은 부당하게 행하면서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습니까?
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위가 좋지 못하도다 우리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함에 행할 것이 아니냐?(느헤미야 5:9)라고 말했습니다.
비방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원수들이 너희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제멋대로 행동하는데, 내가 조금만 바로잡아 주면 “나는 너희의 비난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많은 교회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나는 너희의 비난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악마가 사람들을 고발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짓을 하면 비난받고 비방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방인이 '저 유대인은 얼마나 악한지,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한다'고 비방하면, 악마가 들을 수 있겠습니까? 네, 들을 수 있습니다! 악마가 올까요? 네! 악마가 오기를 원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악마를 보내실까요? 네! 하나님께서 그를 처리하실 것입니다.
내가 말하노니, 살아 있고 아무 문제가 없을 때,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우리처럼 인색하고 비판적이며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이렇게 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면 많은 재앙을 피할 수 있고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말하노니, 우리 중에 시부모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며느리가 얼마나 됩니까? 그들은 단지 '우리 시부모님과 그 가족 모두가 그렇다'고 말하며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럼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당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봐요? 제 말이 맞나요? 당신은 항상 다른 사람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죠.
물론이죠! 당신 남편은 당신에게 아주 관대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화가 나 있어요! 아마 당신 남편도 부모님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이렇게 하겠어요? 모든 게 남의 부모님 문제라고 하면서, 당신 부모님은 어떻게 하겠어요?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 당신은 이런 문제를 겪어보지 않으셨어요. 겪어보셨다면 아실 거예요."라고 말하죠. 저는 "저는 안 겪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이 저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걸 보고, 저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죠?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우리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유령조차도 알고, 하나님도 아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영적인 일들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한번은 한 자매를 풀어주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저는…을 부인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자매님은 말을 더듬거리며 제대로 된 문장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하지만 제 생각은 꽤 빨리 움직였습니다. 뭔가를 시도해 보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미혹의 악령들에게 물러가라고 명령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악령이 제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악령은 너무 사악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속여 보고 싶었습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이 저를 충만하게 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문제없습니다! 그녀는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말을 바꾸어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미혹의 영들에게 물러가라고 명령합니다.'" "끝났습니다. 그녀는 다시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정리하고, 추상화하고, 요약하고, 분류했고, 발견했습니다. 우리 마음속 생각은 영적인 영역에서는 투명하게 드러납니다! 정말 무섭지 않나요? 말할 때 바꾸려고 했지만, 이미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저는 어머니 안에 있는 알츠하이머 노인의 영을 제거할 수 있었을까요? 제가 그것을 너무 잘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제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지 않을까요? 가난한 사람들이 경외하지 않는 것은 괜찮지만, 부자들인 당신들은 우리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유하게 하신 것이 아닌가요? 왜 가난하게 살겠다고 고집하며 그런 짓을 하십니까? 이것이 느헤미야의 분노입니다.
만약 당신이 제 말을 자주 듣는다면 설교와 성경 공부를 통해 하나님은 사람들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유하게도 하시고, 병들게도 하시고, 치유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듣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탓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탓하십시오." 조금 어리석은 것은 우리의 잘못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멈추자.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습니까? 때때로 당신은 옳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합시다!
우리의 모든 형제자매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 아래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든 형제자매들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 행동, 처신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은 사람들의 소유를 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소유를 비우실 것입니다.
저는 "틱톡"이라는 이름이 특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틱톡을 계속 사용하는데 당신의 소유물이 사라지고 텅 비어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오늘이라도 그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취한바 돈이나 곡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지 일을 돌려 보내라 하였더니.(느헤미야 5:11)
이자를 돌려준다고? 손해 아닌가? 받아들일 수 있겠나? 그러자 모두가 "반드시 돌려주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이 부자들의 마음을 즉시 일깨웠습니다. 백성들은 "돌려주고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사장을 불러 약속한 것을 지키겠다고 맹세하게 했습니다.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돌려 보내고 아무 것도 오구하지 아니하리이다 하기로 내가 제사장들을 불러 저희에게 그 말대로 행하리라는 맹세를 시키게 하고.내가 옷자락을 떨치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치 아니하는 저는 곧 이렇게 떨쳐져 빌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판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대로 행하였느니라.(느헤미야 5:12-13)
들으셨나요?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소유를 비우셨습니다. 부유한 것이 가난한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복음은 가난한 자에게 전파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감동적이지 않나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가난한 사람들의 소유를 비우셨기에 우리는 더 큰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이 손해를 봤나요? 네, 하지만 그들에게 경외심이 있었나요? 경외심 때문에 축복을 받았나요? 네, 축복받았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할 수도 있지만, 느헤미야는 그들을 비행기 날개에 묶어두는 것을 의미하더라도 강제로 축복으로 인도하기를 원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때쯤이면 그들은 미라가 되어 있지 않았나요?"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한, 하나님께서 당신의 금고를 비우는 것보다 당신을 되살리는 것이 더 낫습니다.
"아멘"이라고 하면서도 집에서 마음을 바꾸는 부자들이 있을까요? 네, 그렇습니다! 그들의 아내들은 그들을 노려보고, 그게 전부입니다. 아내들은 "누가 그 못된 느헤미야에게 동의하라고 했니?"라고 말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아멘"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만, 집에 가서 마음을 바꾼다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들의 금고를 텅 비게 하셔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실 겁니다.
느헤미야의 부의 길
느헤미야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부와 가난에 대한 그의 견해는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그의 부의 길은 항상 효과적이었고 결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자, 이제 여러분께 읽어 드리겠습니다.
나와 내 형제들도 역시 돈과 곡식을 백성에게 취하여 주나니 우리가 그 이식 받기를 그치자.(느헤미야 5:10)
그들은 백성에게 돈을 빌려 주었지만, 과연 돌려받았을까요? 아마 돌려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군가가 네가 빌려준 것을 갚지 않으면 괜찮다. 하지만 갚으면 축복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베푼다고 해서 반드시 가난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 말씀을 듣고 기차역에서 사기를 당하지 마십시오. "아이고, 신분증도 잃어버렸고, 돈도 없는데 기차표 좀 사 주시겠어요?"라고 말하는 사기꾼에게 속지 마십시오. 그런 말에 속지 마십시오. 열 명 중 열 명은 사기꾼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느헤미야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것들을 준 후에 가난해졌는지 알아야 합니다.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그는 가난해지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은 사람들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또한 부유하게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돈을 빌려주었는데 누군가가 갚지 않는다면, 가난한 사람들의 재정은 바닥이 나고, 그들은 결코 갚을 돈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여러분을 부유하게 하실 것입니다.
내가 유다 땅의 총독으로 임명된 때부터,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부터 제삼십이년까지, 도합 열두 해 동안, 나와 내 형제들은 총독의 봉급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내가 유다 땅 총독으로 새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와 이십년 부터 삼십 이년까지 십 이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가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이전 총독들은 백성에게 토색하여 양시과 포도주와 또 온 사십 세겔을 취하였고 그 종자들도 벡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치 아니하고.(느헤미야 5:14-15)
이것이 느헤미야가 부유하게 된 방식,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성벽을 쌓는 일을 계속했고, 땅을 사지 않았습니다. 나의 모든 신하들은 그곳에 모여 일했습니다. 주변 나라에서 온 유다 사람들 외에도 유다의 평민과 관리 백오십 명이 내 상에서 먹었습니다.
도리어 이 성 역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나의 모든 종자도 모여서 역사를 하였으며.또 내 상에는 유다 사람들과 님장들 일백 오십인이 있고 그 외에도 우리 사면 이방인 중에소 우리에게 나아온 자들이 있었는데.매일 나를 위하여 소 하나와 살진 양 여섯을 준비하며 닭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한번씩ㅇ은 각종 포도주를 갖푸었나니 비록 이같이 하였을지라도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니라.(느헤미야 5:16-18)
이 말씀을 읽고 어떤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는 매일 소 한 마리와 살찐 양 여섯 마리와 새를 사서 열흘마다 여러 종류의 포도주를 만들고, 그 후 12년 동안 봉급을 받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토지와 성벽 건축을 담당했습니다. 만약 그가 땅을 샀다면, 12년 후 페르시아 수도와 왕궁으로 돌아왔을 때 팔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부동산 사업을 해서 땅을 사고팔았다면, 분명 몇 배나 더 벌었을 것입니다.
그는 총독이었기에 이 땅과 저 땅의 소유권을 결정할 권한이 있었고, 심지어 정책을 세울 수도 있었습니다. 이 땅은 도심을 위한 것이고 저 땅은 상업 건물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도로 돌아와 취임했을 때 그 땅을 사서 팔 수도 있었습니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부유했을까요? 네! 그렇다면 그의 돈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그는 월급을 받지 않았고, 그의 부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면 우리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의 모습 때문에, 하나님께서 갑자기 아닥사스다 왕에게 꿈을 주시어 국고에서 느헤미야에게 돈을 분배하라고 지시하셨다면, 그가 어떻게 부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황제는 얼마 후에 돈을 보내주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열흘마다 포도주와 고기를 잔치에 차려 150명이 소 한 마리, 살찐 양 여섯 마리, 심지어 맹금류까지 좋은 포도주와 함께 먹었습니다. 어떻게 그가 가난해지지 않았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그는 공금을 썼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느헤미야 자신의 돈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부를 축적한 과정은 놀라웠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는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유하게 만들고 싶으시다면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을까요? 방금 예를 하나 드렸을 뿐인데, 훨씬 더 많은 예가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줌으로써 그렇게 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주는 사람은 결코 가난해지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사실인지 물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여기 숨겨진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안에 그분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시고, 부유함에서 가난함으로, 그리고 다시 가난함으로 인도하시며, 제가 항상 베푸는 자가 되도록 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가난해서 베푸는 것을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할 때에도 베풉니다! 할 수 있는 만큼 베푸며, 이를 통해 지구상의 모든 나라와 민족에게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비전이자 사명입니다.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에 하나님의 방식과 세상의 방식은 다릅니다.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제 형제자매들이 믿는 법을 배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느헤미야가 그렇게 했고, 그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생각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느헤미야 5:19)
저는 특히 이 말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저를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푸소서." 하나님께서 저를 기억하셨을까요? 네. 그분은 은혜를 베푸셨을까요? 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그러니 우리 가운데 와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베푸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느헤미야의 부의 길을 배우지 못하고, 오직 유다 사람들의 가난의 길만 배웠다면, 그건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만국과 민족에게 복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런 사소한 일로 시댁 식구, 가족, 목사님과 갈등을 빚겠습니까? 절대 안 됩니다! 베푸는 사람이기에 당신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당신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처럼 넓다면, 복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느헤미야는 유다 총독이었고 황제가 그에게 비용을 지원할 필요가 없었지만, 유다를 예외적으로 잘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황제가 우연히 헤센 가문처럼 수도에 부패한 관리 한 명을 몰아내고, 느헤미야에게 예외적으로 그의 재산을 하사했습니다. 예루살렘은 그에 비하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 당시에는 전화가 없었습니다. 황제는 서류 작업을 빨리 끝내라고 명령하고 집을 팔아 치우고 하인들에게 돈을 전달하게 했습니다. 매일 소 한 마리와 살찐 양 여섯 마리면 충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느헤미야의 부의 길을 깊이 이해하고 베푸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리고 다른 사람의 빚을 탕감해 준다면, 아멘! 그것이 느헤미야의 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기쁨과 행복으로 축복의 날들을 맞이합시다. 아멘!
더욱 관대하고 관대한 사람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땅콩에서 복숭아로 바꾸십시오. 그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복숭아에서 수박으로 바꾸면 더욱 위대한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모든 나라와 민족의 축복으로 가득 차면 참으로 위대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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