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디모데전서03-하나님의 집에서 통치하는 법을 아는 것。
필기를 참고
1.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a. 교회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며, 교회 통치는 심오한 규율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에서 집사를 뽑을 사람들을 시험하라고 썼습니다.
b.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은 진리의 기둥과 터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경건의 비밀입니다.
c.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결코 교회에 더러운 것을 끌어들이지 마십시오. 교회를 세울 때는 경건과 거룩함을 지키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d. 겉으로는 선해 보이지만 은밀하게 교회에서 지도력을 구하며 이익을 취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합니다.
2. 교회의 다스리라
a. 교회 다스리는 교회의 감독자와 집사를 포함합니다. 가장 많이 섬기는 사람은 감독이고, 덜 섬기는 사람은 집사입니다.
b. 집사와 집사는 세상적인 논리에 따라 선출되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경건한 기준에 따라 선출되어야 합니다. c. 감독은 목회 지도자이고, 집사는 그룹 지도자입니다. 감독과 집사는 목표를 달성할 때에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며, 달성할 수 없을 때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3. 감독과 집사 선출 기준 및 요건
a. 첫째, 그 사람은 기꺼이 해야 합니다. 기꺼이 하지 않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b. 둘째, 핵심 요건은 섬김입니다. 돈을 사랑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대가를 기꺼이 치르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얽매임이 적을수록 좋고, 얽매임이 없는 것이 더 좋습니다.
c. 셋째, 감독은 주로 남자에게 주어지지만, 연약하고 가정에서 종종 타협하는 사람은 선택되어서는 안 됩니다.
d. 넷째, 교회 밖에서 좋은 평판을 얻고, 성실하게 사역하며, 가르치고 관리하는 데 능숙하고, 지혜를 소유해야 합니다.
4. 몇 가지 핵심 사항
a. 첫째, 시험을 받아야 합니다. 임원과 감독 모두 먼저 시험을 받아야 합니다. 부목사, 그룹 리더, 목회자는 철저한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b. 둘째,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수호하려면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용기가 없으면 주님을 계속 믿기 어렵습니다.
c. 셋째, 충성. 믿음의 두 가지 필수 요소는 인내와 충성입니다.
d.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지만 사람은 외모를 봅니다. 이 핵심 사항들이 진리를 수호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디모데전서 3장을 계속 읽어 보겠습니다. 3장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아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주제는 제가 말하는 것과 똑같아요."라고 말합니다. 다행히도 여러분 모두 이 주제를 점점 더 깊이 이해하고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구절의 맥락은 디모데가 에베소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에는 많은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교회들에 문제가 생깁니다. 이 교회들은 새로 설립되어 목사를 찾아야 하는 교회들이거나, 아니면 이미 설립된 교회들이지만 바울이 감독자라고 부르는 목사들이 감독자들을 도와 다스려야 하는 교회들이었습니다.
문제는 어린 마음을 가진 디모데가 이 사람들을 선택하는 데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딜레마일까요? 이 사람도 좋고 저 사람도 좋은데,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요? 만약 둘 다 좋고,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조금 더 나은 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아는 것에 대한 바울의 진술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디모데전서 3:14-15)
이게 심각한 문제일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심오한 주제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디모데에게 교회의 감독과 집사로 섬길 사람을 선택하고 검토하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교회에 감독이 있다면 집사는 어떻게 선출될까요?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교회를 다스리는 것에 대해, 만약 당신이 선택해야 한다면 옳은 길을 분별할 수 있을까요? 처음에는 모든 것이 좋아 보였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핵심이 잘못되었습니다. 왜 잘못되었을까요? 표면적으로는 그 사람이 좋아 보이지만, 사실은 교회 내에서 감독직을 얻어 그로부터 이익을 얻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지도자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집은 곧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이 개념을 먼저 정립하고, 다른 것들은 나중에 논의해 보도록 하죠. 사도 바울의 신학 체계는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것이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것,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경건한 진리, 경건한 비밀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교회를 세우는 것에 대해 썼을 때, 그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경건의 비밀이 크도다!" 저는 그가 왜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바울은 교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정말 흥분합니다.
교회는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 "모든 문제"란 무슨 뜻일까요? 왜 어떤 교회에서는 치유와 구원이 효과적인데, 다른 교회에서는 그렇지 않은지 묻겠습니다. 한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고, 다른 교회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교회들은 다 똑같지 않나요? 겉모습만 비슷해요. 교회 간판만 내걸면 교회인 줄 아는 거죠."라고 말씀하시죠. 하지만 여기는 하나님의 집이고, 하나님이 거기에 거하십니다. 저곳은 하나님의 집이 아니고, 하나님이 거기에 거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기도가 효과가 있지만, 저곳에서는 효과가 없습니다. 놀랍지 않나요?
크도다 견건의 비밀이며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디모데전서 3:16)
정말 놀라운 말씀입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게 무슨 말씀인가요? 사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자신의 영을 나타내시고, 교회 안의 사람들을 의롭다 하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는 것입니다. 좀 혼란스럽게 들리시나요? 천사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지만, 이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천사들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천사들에게 보이고, 천사들에게도 보이고, 이방인들에게 전파되고, 세상에서 믿어집니다. 권능이 없는 교회가 어떻게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는 것, 즉 하나님의 집,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를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 문제를 신중하게 숙고해야 합니다. 목사, 그룹 리더, 집사 등 교회의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바울이 이 글을 쓸 때 갑자기 감정이 북받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고, 하나님의 집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이곳은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령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더러운 것들을 끌어들일 뿐만 아니라 더러운 사람들을 감독과 집사로 임명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이 헌금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는 어떻게 될까요? 이 교회는 심각한 곤경에 처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헌금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감히 자랑할 수 있습니다. 왜일까요? 교회에는 돈이 부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집,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거룩함과 경건함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경건의 비결이며, 모든 사람이 이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교회를 세웁니다. 예를 들어, 어떤 형제자매가 목사와 갈등을 겪어 교회를 떠납니다. 이것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터무니없는 방법입니다. 목사는 동료들을 데려가 그 사람에게 사과하고 마치 조상처럼 다시 초대합니다.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그런 사람들을 다시 초대합니까? 교회에는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없으면 베풂도 없습니다. 베풂 없이 교회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이 논리를 보십시오. 그것은 경건의 비결이 아니라 더러움과 오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교회를 세우려면 거룩한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룩한 교회에 들어가려면 많은 것을 요구해야 합니다. 교회가 베풂에만 관심이 있고 거룩함은 고려하지 않고, 돈에만 관심이 있다면 마귀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더러움이나 오물을 가져오지 마십시오. 교회는 사람들이 거룩해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묻습니다. 섬기고 싶습니까? 내가 그를 섬기는 것은 그가 교회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찾으러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도 그를 섬깁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험담하고 헛소리를 하면서 보험과 건강 보조 식품을 팔려고 한다면, 당신은 잘못된 곳에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교회이므로,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크도다 견건의 비밀이며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디모데전서 3:16)
이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거룩하지 않은 교회를 세운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시겠습니까? 설령 당신이 책임을 지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영은 그곳에 거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교회 설립은 교회 통치에 관한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 통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미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들을 다루었습니다. 에베소서, 갈라디아서,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마태복음, 누가복음, 사도행전에 나오는 진리들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창세기부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원리들은 자명하며, 근본적인 요구 사항입니다.
교회 통치는 이제 감독과 집사, 두 가지로 구성됩니다. 교회 내 집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집사를 재정 후원자로, 교회에 더 많이 헌금하고 집사가 되어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는 사람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아무리 헌금을 많이 하더라도 우리 교회에서는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감독은 가장 많이 섬기는 사람이고, 덜 섬기는 사람은 집사입니다.
저는 오늘날까지도 교회가 집사와 감독의 개념을 매우 혼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방문했던 교회들에서 집사는 무엇입니까? 교회 내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진 사람, 즉 돈과 지위를 가진 사람입니다. 돈과 지위, 그리고 후한 헌금을 하면 집사가 됩니다. 하지만 집사는 실제로 무슨 일을 할까요? 집사는 섬기는 일을 합니다.
교회의 많은 상황들이 항상 저에게 이상하게 느껴졌고,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다소 이해할 수 없는 이해로 그것들을 바라봅니다. 제가 아는 한, 많은 교회들이… 저를 비난하지 마세요. 저는 단지 진실을 말하는 것뿐입니다. 그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제가 상관할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집사란 무엇일까요? 섬기지는 않지만 많은 것을 바치는 사람을 집사라고 부릅니다. 많은 교회에서 그렇습니다. 돈이 많고 기꺼이 섬기고자 한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교회 감독, 목사 등은 모두 고용된 직원입니다. 교회의 집사 위원회는 이사회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더 많이 섬기는 사람을 집사라고 부르고, 더 많이 섬기는 사람을 감독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섬기는 사람들이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지 않는 사람들이 초대합니다. 섬기는 사람은 발언권이 없고, 섬기지 않는 사람은 발언권이 없습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왜 이러는 거야?"라는 비난을 받는 거죠. 그리고 비난도 있죠. 그리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비난을 받는다면, 그건 문제입니다. 바울은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교회는 사실 세상적인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회사를 설립할 때 자본 투자가 최종 결정권을 갖나요? 물론 자본 투자가 최종 결정권을 갖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집인 교회 안에서는 감독과 집사가 임명되어 경건한 기준에 따라 운영됩니다. 믿음의 기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믿음이 그 기초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감독과 집사를 선택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 감독이나 집사를 선택하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바울은 감독과 집사가 주님을 믿는 데 필요한 추가적인 기준이라고 썼습니다.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한 아내와 결혼하고 다른 한 사람은 첩이 있다면, 저는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당신은 누구를 택하시겠습니까? 어떤 남편을 택하시겠습니까? 이것이 옳은 선택일까요? 네, 맞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성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단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장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디모데전서 3:1-4)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이 문제를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설명하기가 조금 어렵지만, 저는 최선을 다해 명확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합니다. 매우 중요한 점은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요구 사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당신이 믿는 자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는 자들 중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여러 아내를 둔 남편들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들 모두가 집사가 될 수 있습니까? 그들 모두가 감독이 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더구나 요즘 중혼을 범하면 집에만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 감옥에 가게 될 테니까요. 이것이 교회 통치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합니까? 목회적 돌봄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감독은 지역 지도자이고, 집사는 그룹 지도자, 즉 소규모 목사입니다. 그래서 현실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우리가 이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하고, 그것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소규모 목사라면 이것이 당신의 기준입니다. 지역 지도자라면 이것이 당신의 기준입니다.
당신은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만약 당신이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그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는 걸 압니다. 도달한 후에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해낸 후에야 달성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해낸 후에야 달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채용할 때 어떤 직원을 선호하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제 요구 사항의 50%만 충족하는 직원을 선호합니다. 나머지 50%는 어떨까요? 그들이 일하면서 성장 목표가 됩니다.
우리는 오직 실천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요구 사항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해서 기대치를 낮추는 것은 아닙니다. 요구 사항을 낮춰도 여전히 충족되지 않고, 더 낮추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이 여전히 경건의 비밀인가요? 그것은 더러운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기준은 바뀔 수 없습니다.
감독과 집사를 뽑는 기준과 요건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성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디모데전서 3:1)
첫째, 그는 기꺼이 해야 합니다. 감독의 직분을 원하는 사람은 선한 일을 갈망해야 합니다. 감독이 되고 싶다면, 목사가 되고 싶다면 선한 일을 갈망해야 합니다. 선한 일을 갈망하지 않으면 목회에 지쳐 버릴 것입니다. 세상에! 왜 기꺼이 해야 합니까? 감독을 임명하는 데도 기꺼이 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새벽 3시에 누군가 전화해서 "선생님, 배가 아픕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배가 아파서 회오리바람 속에서 기도해야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괜찮냐고 물어보세요. "왜 부르세요? 잠은 잘 수 있나요? 내일 일하러 가야 해요."라고 말합니다. 기꺼이 하지 않으려면 하지 마세요. 이것은 선한 일이고, 여러분은 기꺼이 해야 합니다.
저는 이 모든 목사님들을 섬겨 왔기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그들을 섬길 때, 그들은 모두 새벽 5시에 일어나 늦게까지 깨어 있었습니다. 3시든 4시든, 때로는 정말 두려웠습니다. 이 모든 싸움이 눈물과 콧물의 여정이었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사역할 때마다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을 섬기는 방식이 앞으로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을 섬길 방식입니다." 저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그 보상은 엄청났습니다. 많은 영적인 자녀들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좋은 일입니다. 예를 들어, 감독이 되고 싶다면, 누군가 새벽 2시에 전화를 걸어 죽기 전에 자신을 섬겨달라고 부탁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들을 섬기지 않는다면, 그들이 죽은 후에는 무엇을 섬기겠습니까? 저는 많은 젊은 목회자들에게서 본 것에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암에 장폐색이 있어서 새벽 3시에 이런 일이 종종 있습니다. 어떻게 아프지 않겠습니까? 그냥 전화하세요." 그날 새벽 4시에 그에게 전화했더니 응답했습니다. 한 시간 정도 기도하고 나니 벌써 5시가 되어 있었고, 기도를 마치고 소그룹 기도를 인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기억해 주시기를!" 하고 기도했습니다. 정말 좋은 일입니다.
왜냐고요? 바로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경건의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시고, 성령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셔서 천사들에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당신이 하는 일을 보고 있나요? 네, 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못 볼 수 있겠어요? 당신이 하늘에 부르짖는데, 한 시간 후에 악령이 풀려났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하나님의 천사들과 하늘 군대가 나타나 악령을 쫓아냈습니다.
이 말씀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아내의 남편이 되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바울은 그 기준을 조금 낮췄습니다. 바울 자신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편지에서 가끔 이렇게 묻곤 합니다. "저를 곁에 두고, 섬기고, 돌보고, 함께 걸어다닐 자매와 결혼할 수 없나요? 베드로처럼요. 그럴 수 없나요? 저는 자격이 없는 건가요?" 그는 자신이 반드시 자격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자격은 있었지만, 그것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바울아, 너희 모두 나처럼 걱정 없이, 한 사람이 온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면, 그 시대에 그런 사람을 찾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가 한 명뿐인 남자와 결혼하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러니 만약 디모데가 그곳에서 누군가를 택하여 바울에게 편지를 써서 "바울아, 여기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독신으로 지내고 결혼하지 않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라고 말한다면, 바울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는 그 사람을 택했을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에베소에서 감독, 목사, 지역 지도자로 선출될 수 있는 사람들 중에는 아내가 한 명인 사람도 있고, 두 명인 사람도 있고, 세 명인 사람도 있고, 네 명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내가 네 명인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왜 저는 안 되죠? 야곱을 보세요. 어떻게 아내가 네 명인데도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었을까요?" 이 말의 원리를 생각해 보세요. 아내가 네 명인 사람을 정말 좋아한다면, 그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목사가 되고, 많은 자매들이 그를 존경합니다. 많은 자매들이 그를 보고 감탄합니다. 그런데 며칠 후, 그는 첩을 얻고, 또 며칠 후에 또 첩을 얻습니다. 저는 이것이 감독들에게 다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 야곱, 다윗, 모세는 모두 한 명 이상의 아내를 두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바울의 요점은 아내가 여러 명이라면, 한 명과 결혼하여 한 아내의 남편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핵심 가치관, 핵심 포부, 그리고 내면의 가치관을 반영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기꺼이 값을 치르려 한다면, 얽매임이 적을수록 좋습니다. 더 나아가 얽매임이 없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하루 종일 후궁들과 씨름하는 그 혼란스러운 집안. 그리고 후궁들의 음모가 커질수록 드라마는 더 커지고 악랄한 여자들이 늘어납니다. 어떻게 교회를 세울 시간이 있겠습니까? 첩들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음탕한 짓입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경영과 가르침에 능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요점입니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집을 세우고 다스리는 믿음입니다.
바울은 감독자를 선출하는 일을 남자들에게 맡겼습니다. 물론 여자들을 감독자로 뽑은 것도 하나의 이유였을 것입니다. 어쩌면 에베소에 여자 감독자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여자가 선출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디모데에게는 그런 상황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성이 하나님을 섬기고 감독이나 목사가 되려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경건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바로 핵심 가치관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의 핵심 가치가 돈이라면 감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당신의 핵심 열망이 봉사라면, 특히 경영에 능숙하다면 희망이 있습니다.
여기서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네 집을 잘 다스리라"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매우 심오합니다. 사실, 앞 장에서 디모데와 그의 여자친구에 대해 살펴보았듯이, 디모데는 여자친구에게 거의 지배당했기 때문에 집을 잘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감독을 선택할 때 디모데에게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말이 부드러운 남편을 택하지 말라." 아내의 고함 소리가 때로는 가정의 기초를 흔들 수 있는데, 목사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목사의 아내가 고함치면 목사의 마음도 떨리고, 심지어 가정의 기초마저 흔들립니다. 이것을 다스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걸 경영이라고 하나요? 경영이 아닙니다.
저는 아내를 두려워하는 목회자들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가정을 다스리시나요? 많은 목회자들이 타협에 의지합니다. 타협이 문제를 해결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목회 사역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가정을 희생하게 됩니다. 가정을 희생하면 저와 함께 저녁 식사도 하고, 쇼핑도 하고, 또 쇼핑도 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섬기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고열에 시달리거나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나요? 놓아주시나요, 아니면 안 하시나요? 놓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다스릴 줄 아는 건가요, 아니면 모르는 건가요?
특히 여성 인권이 중요한 이 시대에, 저는 많은 남편들이 문제와 끊임없는 다툼을 피하기 위해 타협하는 것을 봅니다. 물론, 우리 자매 여러분, 목회 사역을 하면서도 가정에서 어려움을 겪으시나요? 타협한다는 것은 자신의 가정을 다스린다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분명 지혜가 필요합니다. 너무 게으르면 집에 있는 것조차 손대지 않고 "할렐루야!"라고 외치기만 하죠. 보는 사람마다 짜증나죠. 그러니까 교회 밖에서 좋은 평판을 얻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죠? 제대로 된 직장에 다니고, 가정의 재정은 당신에게 달려 있으니까요. 당연히 가정에서 높은 지위를 얻을 거고, 가르치는 능력도 뛰어나야 하잖아요.
그러니 제 말이 좀 억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디모데전서에서 바울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지금 자녀들이 당신의 말을 듣는다면, 당신은 정말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자녀들은 각자의 방식이 있고, 그들이 듣든 안 듣든 당신이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좀 더 객관적으로 이 구절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며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집사들은 한 안내 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디모데전서 3:8-13)
이것이 감독과 집사를 뽑는 기준과 요건입니다.
모든 신자가 이러한 기본적인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몇 가지 핵심 단어가 있습니다. 첫째, 먼저 시험을 받아야 합니다. 질문드리겠습니다. 먼저 시험을 받아야 합니다. 감독은 분명히 집사들 중에서 뽑힙니다. 집사들이 먼저 시험을 받고, 감독들도 먼저 시험을 받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중에 저는 '그를 어린 목자로 삼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던 중, 어떤 일이 일어났고, 저는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좋아하지 않으시고, 적합하지 않으시며, 제가 먼저 그를 시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시험하고 어떻게 되는지 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험에서 떨어지면 안 됩니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감독이나 집사를 임명하는 일이든, 이는 교회 발전에 필수적인 단계이며, 끊임없는 실험이 필수적입니다. 교회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베드로가 설교했을 때 오천 명이 그리스도께로 나왔고, 베드로가 여러 간증을 했을 때 삼천 명이 그리스도께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일일까요? 좋지 않습니다. 이는 나중에 중국 신학에서 중요한 관점이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목회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목회할 수 있을까요? 갑자기 오천 명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감독과 집사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찾을 수 없다면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게다가 베드로는 지혜가 부족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고 헌금을 강요했습니다. 결국 모두가 그 상황을 이용했고, 많은 사람들이 공짜로 먹고 심지어 불만을 품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훈련과 축복의 장소입니다. 교회는 인원에 욕심을 내서는 안 됩니다. 너무 많은 것을 씹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담임목사와 지역 지도자들을 신중하고 철저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함부로 평가하여 감독 없이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가 임명한 일곱 집사처럼, 잘못된 길로 빠진 사람 중 한 명이 니골라단이었습니다. 니골라단은 후에 "니골라단"이라는 이단을 만들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니골라단"은 베드로 시대에 임명된 집사들을 가리킵니다. 당시 집사들은 식탁을 섬기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교회의 역할은 섬기거나, 요리하거나, 먹이거나, 먹는 것이 아니라 목회적인 돌봄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핵심은 용기입니다. 용기 없이 진리를 옹호하려 한다면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 누군가 무언가를 외치면 끝장입니다! 사람들은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진실로 진리를 굳게 지킬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경건의 비밀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천사들에게 보이는 것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오히려 귀신들에게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전파되고, 세상 사람들에게 믿어지고, 영광 가운데로 영접받는 것, 이 모든 것이 망가집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믿음에 용기가 없으면 계속 나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용기입니다.
세 번째 열쇠는 모든 일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믿음에는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인내이고, 둘째는 충실함입니다. 예를 들어, 영어 단어 "faithful"은 사실 충성과 인내를 모두 의미합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이 핵심 요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들이 진리를 굳게 지키는 열쇠입니다.
얼마 전, 아마도 몇 년 전이었을 것입니다. 한 목사님이 페이스북에 사랑하는 부부의 아름다운 사진을 올렸습니다. 모두가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일곱 살, 여덟 살 아이를 둔 누군가가 "아빠라고 불러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목사님을 곤경에 빠뜨렸습니다. 얼마나 큰 문제였을까요? 그 도시의 여러 유명 목사님들이 팀을 구성하여 교회로 와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문제가 해결된 후, 우리 모두는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부부는 정말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을까요? 사실, 그들의 사랑은 삐딱했고, 그저 겉치레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형제자매님들은 이 문제들을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것들이 진정으로 경건하지 않고 그저 겉치레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겉치레에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을 보십니다. 우리가 논의하는 것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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