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시편 시리즈(9)-우리에게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필기를 참고
1.서론
a. "성경"은 만물의 법칙을 매우 간략하게 요약한 것이고, "담론"은 "성경"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방법입니다.
b.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자기 의로움이 커집니다. 자기 의로움이 커질수록 더 어리석어집니다.
c. 인생에는 지혜와 명철이 필요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는 것입니다. 올바른 학습 태도는 모든 것을 배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d. 지혜의 기초를 얻으십시오.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은 사람일 뿐입니다. 자기 만족에 빠지지 말고 행복하게 사십시오.
e. 지혜의 마음을 얻으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쟁을 피하고, 이 세상의 논리적인 체계와 꿈을 깨뜨리십시오.
f. 하나님과 함께하는 행복한 삶이 지혜입니다. 얽매인 삶은 악마의 존재와 함께하는 삶이며, 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2. 성경의 말씀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산이 생기기 전,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자나간 어쩨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 마팜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 간에 다하였나이다.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조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시편90:1-17)
3. 기도
하나님!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소서. 하나님, 머리가 부족한 우리에게 당신 앞에서 지혜의 마음을 주소서. 우리는 70년, 80년밖에 살지 못하지만, 당신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소서. 우리의 삶은 짧으니, 당신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사람임을 알게 하소서. 우리는 끊임없이 당신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지혜를 주소서. 당신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도록 지혜를 주소서. 삶의 허무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를 주소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기뻐하고, 이 짧고 씁쓸한 이 땅의 삶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게 해 주소서. 우리 손으로 한 일을 기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 성경말씀의 배경
a. 모세는 삶의 작은 것들만 생각하는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을 보았습니다.
b.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대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동쪽으로 가라고 하셨지만, 그들은 서쪽으로 갔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혜의 마음을 배우고 얻기 위해 시편 90편을 썼습니다.
c. 이스라엘 백성의 특징 (1): 그들은 삶이 공허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지만, 삶이 매우 현실적이라고 느꼈고, 행복하기 어려웠습니다.
d. 이스라엘 백성의 특징 (2):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를 알지 못했습니다.
e. 이스라엘 백성의 특징 (3): 그들은 다투고, 논쟁하고, 반대되는 노래를 부르기를 좋아하며, 행복하든 불행하든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f. 이스라엘 백성의 특징 (4): 사람의 손으로 하는 일은 힘들고 원망스럽습니다.
5, 지혜 (1) -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a. 우리가 세상에 오기 전부터 하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왜냐고 묻지 마십시오!
b. 비록 우리가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것들 뒤에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진과 쓰나미는 모두 신의 섭리입니다.
c. 신은 신입니다. 신은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십니다. 저는 제가 인간임을 알고 신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6, 지혜 (2) - 우리의 인생은 짧습니다
a. 우리의 인생이 짧다는 것을 아십시오. 고통과 괴로움, 그리고 얽힘 속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계산해 보십시오. 신과 논쟁하지 마십시오.
b. 과학이 발달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질병에 시달립니다. 이것들은 모두 영적인 문제이며 약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c. 우리의 인생은 짧으니, 날을 신중하게 헤아리고 기쁘게 살아가십시오. 쓴웃음을 짓지 마십시오.
7. 지혜 (3) - 모든 것은 덧없습니다
a. 인생이 짧고 덧없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쓸모없는 것을 붙잡으려 하지만 결국 많은 가시를 붙잡게 됩니다.
b. 인생이 짧고 덧없음을 아는 사람들은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8. 지혜 (4) - 하나님을 경외하라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따르십시오. 자만하거나, 교만해지거나, 자신이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9. 지혜 (5) - 우리를 기쁘게 하라
a. 지혜가 없으면 사람은 기뻐할 수 없습니다. 기뻐하지 않는 한, 사람들은 자신이 틀렸다고 확신하고 옳다고 생각합니다.
b. 사람들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실 것입니다. 재앙이 닥치면 하나님은 우리의 세상적인 꿈을 깨뜨리실 것입니다.
c. 고난과 환난은 당신이 충분히 선하지 못함을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쁨으로 살아가십시오.
10, 지혜 (6) - 하나님께서 우리 손으로 하는 일을 견고하게 하시리라
a. 악령이 우리가 하는 일을 방해한다면, 그 일은 결코 잘 될 수 없습니다.
b. 우리의 일을 즐기고 수고에서 기쁨을 찾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몫입니다.
c. 하나님을 경외하고 기쁨의 길을 걸으십시오.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번 주 주제는 매우 강력하게 들립니다. "우리가 지혜의 마음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저희 설교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헛된 말이 아니라, 이 지혜의 마음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혜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이 지혜를 받을 수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우리 중국 예정론의 매우 뚜렷한 특징입니다. 헛된 말이 아니라 실제적인 적용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요? 오래전, 우리는 설교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연구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성경을 읽으며 설교합니다. 나중에 많은 연구 끝에 저는 마침내 이해했습니다. 성경은 고전이고 설교는 이론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전통 중의학에서 배운 것입니다. 고전이란 무엇일까요? 고전은 만물을 지배하는 법칙을 매우 간결하고 명확하게 요약한 것입니다. 이론이란 무엇일까요? 성경의 진리를 우리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론입니다.
예를 들어, 황제내경은 중의학 이론을 잘 요약한 고전입니다. 하지만 한의학은 이론입니다. 장중경의 한의학은 황제내경의 이론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에 대한 논문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마음을 얻으라고 말하는 시편 90편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 시편은 모세가 썼습니다.
며칠 전, 한 자매가 수년 전에 위가 뚫리는 일을 겪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아들에게 화가 났고, 그다음에는 그의 아내에게 화가 났기 때문입니다. 싸움이 얼마나 격렬했을까요? 위가 뚫린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들이 그녀에게 화가 났고, 그녀도 아들에게 화가 났으며, 그 분노가 구멍을 만들었습니다. 며칠 전, 그녀는 다시 복통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통증이 심해지자 목사님이 함께 기도하며 가르치고, 마침내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원인은 다시 그녀의 분노였습니다. 신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이번에는 구멍이 생기지 않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머리에 구멍이 나든, 배에 구멍이 나든, 내장에 구멍이 나든, 모두 생명에 큰 위협이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아주 흥미로운 속담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그녀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죠?"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냥 바보예요, 정말 바보예요." 네, 정말 바보 같아요. "그럼, 이제 더 똑똑해질 수 있을까요?"
어제 목사님께 "이제 기분이 나아지셨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괜찮습니다."라고 답하셨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의 분노의 뿌리는 이미 제거된 걸까요? 괜찮아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같은 상황에 다시 화를 낸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정말 어리석은 일 아닌가요? 왜 사람들은 이렇게 해야 할까요?
며칠 전, 면역 체계 질환을 앓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매님을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기도를 인도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매님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비참해 보였습니다. 마침내 "왜 이런 일을 하시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정말 어리석은 짓입니다! 저는 바보입니다. 그런데 왜 더 똑똑해질 수 없는 걸까요? 저는 우리가 지혜로운 마음을 갖고 스스로에게 해로운 행동을 멈추기를 바랍니다.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10년도 더 전에 교회에 오신 또 다른 자매님이 계십니다. 어렸을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고, 지난 10년 동안 엉뚱한 짓만 해왔어요. 그녀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냐고 물었고, 구했어요. 또 돈을 벌고 있냐고 물었고, 정말 벌었어요. 돈을 다 써버렸어요. 못 벌었던 것처럼요. 저축도 없어요.
얼마 전에 취직했어요. CEO 비서라는 좋은 자리였죠. 그런데 일을 해야 했는데 돈이 없었어요. 얼마나 창피했는지! 가방 몇 개 사려고 온라인에서 7만 위안을 빌렸어요. 하지만 가방으로 머릿속의 얼룩을 감출 수는 없죠. 며칠 후,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해서 해고당했어요. 하지만 온라인 대출금은 아직 갚아야 해요. 세상에, 너무 힘들어요. "왜 이러는 거예요?"라고 물었어요. "난 그냥 바보일 뿐이야."
왜 이렇게 바보들이 많은지 궁금했어요. "왜 가방을 사세요?"라고 물었죠. "난 그냥 바보일 뿐이야."라고요. 다른 형제도 마찬가지였어요. 간단히 말해서, 난 그냥 바보일 뿐이야. 네가 그걸 배울 수 있다면, 나도 바보야. 그러면 내가 가르쳐 줄게. 그러면 우리가 지혜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정말 감동적이야. 그래서 연설을 준비하면서 짧은 영상을 보고 온갖 정보를 찾아봤지. 누군가 말했지. 90%의 사람들은 사실 바보라고. 내가 같은 말을 한다면 나를 탓하지 마. 영상에서 나온 말이니까. 내가 탓할 거야. 하지만 내가 동의한다고 말하지 마. 왜냐고? 사람들이 배우는 많은 것들은 배운 게 아니기 때문이야. 그저 뜬금없는 추측, 뜬금없는 가정, 그리고 독선일 뿐이야. 나이가 들면서 독선은 커지지만, 실제로는 별로 배우지 못했어.
어제 한 자매님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줬어. 이제 60세가 되어 은퇴한 오빠는 매우 놀랐습니다. 오빠는 성적이 좋지 않았고 학교 공부도 잘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매우 재능 있는 전기 기술자였습니다. 그때 근처에 있던 한 자매가 "목사님! 목사님과 똑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형도 여러 과목을 합쳐 100점이나 200점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주 훌륭한 전기 기술자입니다. 그는 이런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정말 이런 재능이 있을까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 전기 기술자로 일하면서 전기 지식을 배우는 것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입니다. 올바른 태도로 배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 즉 어디에서든 독선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무언가를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 저런 생각이 들었어, 돈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라고 생각하면 결국 돈을 잃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모두 독선입니다.
무언가를 배우는 데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배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학습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지혜와 이해는 모두 학습되는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저는 인생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들 안 됐어요. 뭔가를 가정할 때마다 속아서 손해를 봤죠. 열심히 공부하면 확실히 지쳐요. 어떻게 지치지 않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지쳐도 바보가 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만약 제가 전기 기술자였다면, 제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대로 했다면, 저는 살아있지 못했을 거예요. 만약 제가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게 전기 관련 부품들을 만지작거리다가, 쾅! 엄청난 불덩어리가 생겼을 거예요. 이게 바로 우리가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방식이에요. 그러니까 사람이 독선적일수록 더 어리석어지는 거죠.
옛날에 컴퓨터에 쓰이는 무정전 전원 공급 장치(UPS)를 작업하고 있었는데, 자매 중 한 명이 "내가 할게!"라고 말했어요. 자매가 손을 뻗자 쾅! 엄청난 불덩어리가 터져 나왔어요. 그리고 있잖아요? 양극과 음극 단자가 단락되었고 렌치가 녹아버렸어요. 손에 화상을 입었어요! 아, 정말 무서웠어요! 엄청난 물집이 생겼어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녀는 이해력과 지혜가 부족했고, 자신이 은혜를 베푼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돕는 많은 사람들이 불덩어리를 만들죠, 그렇죠? 아론의 두 아들도 하나님 앞에서 봉사할 때 렌치로 이상한 불을 바쳤는데, 거대한 불덩어리가 터져 두 아들을 태워 죽였습니다.
기독교에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들어보셨나요?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말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틀렸습니다. "한 번 재앙이면 영원히 재앙받는다"는 말은 맞습니다. 교통사고만 당하면 끝입니다. 이해하시겠어요? 한 번 구원받았다고 해서 항상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재앙도 영원히 지속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인생에 이해력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고와 슬픔, 비참함으로 가득 찬 허무한 삶이 될 뿐입니다. 이런 삶을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비참합니다. 그러니 모세가 우리에게 가르친 것을 잘 들어보세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과 내일, 그리고 모레, 이십 대, 삼십 대를 엉뚱하게 보내야 할 겁니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겁니다. 배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 향상됩니다. 나이가 들면서 배우지 않으면 남들이 밥을 먹는 것보다 소금을 더 많이 먹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점점 더 독선적이 되는데, 이는 혐오스러운 일입니다. 독선이 극도로 험난한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이는 모두 우리 자신의 잘못입니다.
모든 것은 학습된 것입니다. 타고난 재능은 쓸모없습니다. 재능을 가지고 놀지 마세요. 재능을 통제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오, 나는 이 재능이 있고, 저 재능이 있고, 이 재능이 없고, 저 재능이 없습니다. 책임을 전가하는 것 외에는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르치는 것은 실용적입니다. 모든 것은 학습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모세는 시편 90편을 매우 훌륭하게 썼습니다. 그 중 가장 훌륭한 구절은 "우리가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려 함이라"입니다. 모세를 아십니까? 그는 나중에 그는 매우 현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집트의 왕자였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집트에서 그는 뛰어난 과학자이자 엔지니어, 위대한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그의 유모는 사실 그의 생모였습니다. 이집트 궁궐에서 그는 이집트 공주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사실 공주의 생부는 아니었지만, 공주의 아들이었습니다.
궁궐에서 그는 자신감과 야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와,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고, 신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할 거야." 하지만 그는 이집트인을 죽이고는 경악했습니다. 파라오는 이 사실을 알고 "네가 이집트인을 죽였으니, 나를 죽이지는 못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왕자든 아니든 누가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왕자는 너무 두려워 말을 더듬었습니다. 그는 "야, 야, 야, 야, 이집트, 이집트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마침내 이집트를 빠져나왔지만, 너무 두려워 말을 더듬었습니다.
말을 더듬다가 미디안에 도착한 그는 십보라와 결혼하여 시어머니. 이 피닉스 남자는 고통스러워하며 앉아 있었습니다. "맙소사! 정말이야, 그는 자기 목에 올라타서 똥을 싸는 아내와 결혼했어." 그들은 모세를 괴롭혔고, 모세는 매일 그런 상황에서 살았습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매일 양을 치면서 그는 모든 꿈과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그는 깊은 슬픔에 잠겼고,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마침내 진실을 깨닫고 지혜를 얻었습니다. "아, 내가 너무 자신감이 넘쳐서, 내가 하나님을 거스르는 걸까? 잊어버려. 나는 아직 하나님을 위해 뭔가 할 수 있어. 잊어버려, 그냥 여기서 양 치는 거야."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을 때, 그는 "가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러 가시면,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이 헛소리를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양 치는 일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을 도우려고 하면 결국 매우 바빠질 것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돕고 싶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렇게 하라고 요구하실 것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모세의 인격을 형성하는 과정의 일부였습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80세에도 왜 여전히 강할 수 있었냐고 물으시는 겁니까? 40세에 그는 이집트인들에게 쫓겨났습니다. 그 후 미디안 제사장의 집으로 도망쳐 십보라와 결혼했습니다. 온갖 학대와 고난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80세에도 여전히 양을 치고 강인함을 유지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40년 동안 행복했을까요? 행복했습니다. 아무것도 모세의 마음속 기쁨을 앗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는 지혜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행복하게 살아가자." 시편에서 기쁨에 대해 말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살면서 양 떼를 돌보고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할 것이다."
말씀드립니다. 만약 당신이 스무 살의 자아는 허영심이고, 당신은 끝났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고, 당신의 노고는 끝났습니다. 그래서 늙은 모세는 놀라울 정도로 건강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를 학대했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마음속 기쁨을 앗아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당신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시며, 이 세상의 우리 인간은 결국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시편 90편을 썼습니다. 사실, 그는 양을 치던 중에 만물의 공허함을 깊이 생각하고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지혜의 기초를 얻으려면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시며, 당신은 영원한 인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인간은 덧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무엇을 남길 수 있겠습니까? 그저 약간의 기쁨만 남길 수 있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자만하거나 의기양양해하지 마십시오.
결국 시간의 궤적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만세"를 외치는 자들도 결국 죽는다는 것이 아닙니까? 하루 종일 "주님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은 실제로 오래 살지 못합니다. 황제는 가장 짧은 수명을 가졌는데, "주님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조차 저주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냈지만, 하나님은 그를 중간에 죽이려 했습니다. 이해하시겠어요? 그들은 타협에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괜찮아, 저것도 괜찮아, 내가 행복하기만 하면 돼." 그의 아내는 아들의 할례에 반대했고, 그는 "그래, 아내가 동의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모세를 죽이려 하셨고, 십보라는 모세의 아들을 할례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이해하시겠어요?
이 이야기들을 살펴보죠. 이 모든 정보를 파헤쳐 보면 꽤 흥미롭습니다. 이집트로 가서 파라오와 맞선다는 것, 아시잖아요, 파라오와 맞선다는 것 말이에요? 그는 마치 80세 노인과 같습니다. 모세는 내면에 논리가 있었고, 하나님은 그의 성품과 논리를 통해 "사람의 삶은 먼지에서 나온 헛된 것이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지로 변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냥 이렇게 살자."
그래서 출애굽과 홍해 건널 때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너무 어리석어."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렇다면 파라오는 어리석었을까요? 그는 어리석었습니다. 그래서 90%의 사람들이 어리석습니다. 사람들은 평생 하나님의 진노 아래 죄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래서 모세는 우리에게 지혜의 마음을 주라고 말했습니다.
모세를 생각해 보세요. 그는 250명의 장로가 불에 타 죽는 것을 보았고, 고라와 그의 가족이 땅에 삼켜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에게 지혜의 마음을 주소서. 고라는 땅이 갈라져 자신을 삼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알았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감히 그렇게 했습니까? 그에게는 경건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적인 것들의 허무함을 깨닫게 되면 그렇게 많이 논쟁하지 않습니다. 고라는 왜 그렇게 논쟁적이었을까요? 모세는 왜 그렇게 우월했을까요? 우리는 레위인인데 왜 동등할 수 없나요? 고라는 모세를 사십 년 동안 따랐습니다. 몇 년 동안, 자신감과 야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제게는 장로가 250명이나 있는데, 설령 당신이 2,500명이나 있다 해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하지 않으셨으니까요. 이해하시겠습니까? 도대체 뭘 하려는 겁니까? 모세를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데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렇죠? 모세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어리석을 수 있지?" "하나님께 지혜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 200만, 300만 명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읽도록 경전을 써 주었습니다. 경전을 읽고 나서 그들은 "모세야, 네가 하나님의 백성을 죽였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에, 도대체 그들의 머리는 얼마나 좋은 걸까요? 정말 지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그분을 경외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모세는 열두 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습니다. 그들이 돌아왔을 때, 그중 열 명은 나쁜 소식을 전하다가 하나님 앞에서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세상에! 모세는 "그들의 90% 이상이 어리석고, 거의 모두가 어리석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정탐꾼의 수를 기준으로 여호수아와 갈렙, 두 명만 총명했다면, 그 비율은 엄청나게 적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기쁨의 삶은 지혜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일하는 삶은 지혜입니다. 얽매이고 고통스럽고 힘겨운 삶, 악령이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삶은 어리석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려면 우리 안에 있는 계획을 파괴해야 합니다. 영어를 알든 모르든, 제가 한 마디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바로 "아젠다(Agenda)"입니다. 자신의 계획, 자신의 계획을 뜻합니다.
자신만의 계획을 갖는 것은 끔찍합니다. 그것은 이생에 대한 당신의 꿈을 파괴할 것입니다. 이생에 대한 당신의 꿈을 파괴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계획, 자신의 목표, 자신의 논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의 논리와 꿈을 파괴해야 합니다.
어떤 심각한 질병을 앓든, 그것은 자신의 체계 때문이며, 그 체계가 당신을 죽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파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지혜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왜냐고 묻지 마십시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실 것입니다. 만약 사람의 삶이 무의미하고 공허하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왜 120세까지 살면서도 산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제가 말씀드리건대, 그는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입니다.
2. 성경의 말씀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산이 생기기 전,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자나간 어쩨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 마팜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 간에 다하였나이다.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조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시편90:1-17)
기도
하나님!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소서. 하나님, 머리가 부족한 우리에게 당신 앞에서 지혜의 마음을 주소서. 우리는 70년, 80년밖에 살지 못하지만, 당신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소서. 우리의 삶은 짧으니, 당신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사람임을 알게 하소서. 우리는 끊임없이 당신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지혜를 주소서. 당신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도록 지혜를 주소서. 삶의 허무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를 주소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기뻐하고, 이 짧고 씁쓸한 이 땅의 삶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게 해 주소서. 우리 손으로 한 일을 기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말씀의 배경
이 구절의 문맥은 모세가 어리석은 자들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그들이 얼마나 어리석었습니까? 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안배를 받았습니다. 그는 성막을 짓는 법을 배웠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십계명이 적힌 두 돌판을 주셨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보니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모세는 격분했습니다. 그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었고, 이집트로 돌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는 이집트에서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격분한 모세는 두 돌판을 던졌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리고 저는 여러분에게 말하지만, 그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출애굽기와 민수기 전체에서 모세는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직접 목격하고 경험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생존을 최우선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이 신경 쓰는 것은 이 하찮은 생존 문제뿐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셨을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죽일 거라고요! 아, 정말 어처구니없네요! 고라의 무리와 장로 250명, 장로 250명 전원이 불에 타 죽었습니다. 아론의 두 아들도 불에 타 죽었습니다. 아, 정말 바보 같았습니다. 모세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제발 우리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세요. 왜 우리는 이해할 수 없나요? 당신은 교회 목사라고 하셨잖아요. 아, 제 마음은 모세의 말을 너무나 잘 이해합니다. 저는 항상 그의 뇌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열두 정탐꾼이 나쁜 보고를 가지고 돌아왔을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집트는 정말 발전했고,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파라오의 군대에서 당신을 구해내시고 이집트 군대를 홍해 밑바닥에 파묻으셨는데, 이번에는 왜 그렇게 못 하시나요? 당신은 하나님을 거듭거듭 노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열 명의 정탐꾼은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죽임을 당한 열 명의 정탐꾼을 보고 "하나님, 당신은 너무나 강하십니다! 항복합니다, 항복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 말씀드립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저 하나님의 반대자였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들은 그저 반대자였습니다. 하나님이 동쪽으로 가라 하셨을 때 그들은 서쪽으로 갔습니다. 하나님이 개를 잡으라고 하셨을 때 그들은 닭을 잡았습니다. 그들은 그저 어리석은 무리였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어리석었을까요? 저도 감동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었을까요? 아,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어리석을 수 있을까요? 나중에 모세는 시편 90편을 썼고, 그들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암송하도록 시편 90편을 썼습니다. 모두가 시편을 암송하고 그 문서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모세의 시편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어리석음의 핵심이 있습니다. 첫째, 사람들은 삶이 공허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다가 결국 병들고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것저것으로 경쟁하고, 세상에, 결국에는 아무것도 따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허영심의 허무함을 이해하지 못하면 기쁨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아들, 며느리,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다투곤 합니다. 그들의 마음은 땅콩 같고, 머리는 호두 같고, 여전히 무지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를 보시고 "이 자식아! 네가 다투게 놔두고 그에게 배탈을 주겠다!"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선생님, 제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 아파요! 아까 뭐 하셨습니까? 당신은 바보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두 번째 문제는 모세가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모세가 기쁨이 중요하다고 믿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불행한 것은 괜찮지만, 우리는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사실, 그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천공(위와 장 천공, 심장마비, 뇌졸중)을 겪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고, 에이즈와 루푸스에 걸린 사람은 얼마나 많았을까요?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럼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기쁨은커녕 그저 다투기만 했습니다. 모세는 "가라, 또 가라."라고 말했습니다. 멈추고 진을 치고… 음, 다시 진을 치고… 마치 원수처럼, 그렇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를 떠난 후 원수처럼 되었습니다. 하는 모든 일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모세가 하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반대했습니다. 마치 반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네 번째 오해는 모세가 인간 노동의 고충을 전달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고되고, 모든 것이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놀랐습니다. 그들은 원망하며 일했습니다. 정말 힘든 일 아닙니까? 모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들은 원수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모세는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며, 삶에 기쁨이 없고, 일에서 기쁨을 찾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일은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지혜롭지 못했고, 그저 어리석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혜의 마음을 얻도록 시편 90편을 썼습니다. 사실, 모세는 우리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지혜의 마음을 얻도록 말입니다. 듣고 계시나요?
지혜 1: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은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 오기 전부터, 심지어 우리와 함께하기 전부터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말 필요로 하신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러니 절대 이유를 묻지 마십시오. 하나님, 왜 그 사람이 죽임을 당했습니까? 왜 건물에서 뛰어내렸습니까? 하나님, 왜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미국에서 한 남자가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는 설교자, 정치인, 그리고 사회운동가였습니다. 1993년에 태어났습니다. 세상에, 지금 생각해 보니 1993년은 얼마나 어렸던가요? 서른두 살이었습니다.
그가 지역 대학생들과 토론을 할 때, 젊은이들이 "신이 있다면 왜 세상에 이렇게 많은 재난이 일어나는 걸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꼬맹이들은 항상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왜 저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라고 묻습니다. 그냥 당신이 바보인 거죠? 왜 묻는 걸까요? 하지만 박식한 서른두 살 청년은 그들에게 설명하고 토론했습니다. 저였다면 토론하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은 무엇을 증명하려는 건가요? 증명에 증명을 거듭하는 건 무의미합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은 신이 창조했고,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인도했습니다. 한 아이가 물었습니다. "노자가 도덕경을 쓴 이유를 아십니까?" "아니, 내가 말하노니 노자가 원했으니, 노자가 원했으니." 그러니까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다는 거 아닙니까?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원하시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원하시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상관없습니다.
그러니까 왜냐고 묻는 거냐고요? 하나님은 대답조차 안 하실 겁니다. 더 묻더라도 작은 재앙만 주실 겁니다. 더 묻고, 계속 묻으십시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살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것이 지혜의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는 없지만, 모든 것 뒤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바이러스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하나님에게서 왔을까요? 그래서 뭐 어떻습니까? 아, 아니요, 우리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선하신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나중에 사람들은 쓰나미와 지진, 그 모든 것이 신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의 모든 역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의 필멸성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비극적이지 않습니까? 해변에서 수영을 하다가 수십 미터 높이의 파도를 동반한 쓰나미가 덮쳐 사람들이 휩쓸려 갈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었고, 그들의 시신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신은 여전히 그 이유를 묻고 싶어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신은 신이시며, 그분은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신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지혜를 얻고 싶다면, "그분은 신이시고, 저는 인간입니다"라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신께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까? 신이 정하신 축복의 법칙을 따른다면, 저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신의 말씀대로 행한다면, 그분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됩니다.
지혜 2: 영원에서 영원까지,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인생은 짧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당신의 눈앞에 천 년이 어제 같고 밤의 한 순간과 같다고 묘사합니다. 당신은 물처럼, 잠처럼 그것을 쓸어 가십니다. 아침에는 돋아나고 자라다가 아침에는 베어져 말라 버립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날을 세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의 인생은 짧습니다.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그러면 이 짧은 날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화를 내며 보냈는지 세어 보십시오. 뇌졸중, 뇌출혈, 심근경색, 열병, 감기, 숨가쁨, 고통스러운 일들과 씨름하며 보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짧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짧은 인생을 사는 70대나 80대 노인이 하나님께 소리치는 것을 보십시오. 그가 무엇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는 오직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인간인 당신은 영원하신 하나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하나님께 맞서고 있습니다. 세상에, 좀 얌전히 처신하세요. 싸움은 그만둬요. 저는 위천공, 장천공, 신부전, 뇌출혈, 백혈병을 옹호해 왔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의학과 과학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신과 논쟁하기를 좋아합니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질병은 더 많아지고, 결코 완전히 치료될 수 없습니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질병은 더 많아지고, 결코 완전히 치료될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질병은 영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학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요? 우리 인생은 짧은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더 기뻐해야 하지 않을까요?
목자로 일하라는 사명을 받았다면 그 일을 잘해야 합니다. 청소하라는 사명을 받았다면 그 일을 잘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일은 무엇이든 기쁘게 하십시오. 그러니 얼굴을 찌푸리며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왜 얼굴을 찌푸려야 합니까? 왜 기쁘게 할 수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날짜를 세어 보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마음만 먹으면 매일 시간을 기록해 보십시오. 어떤 때는 쓴맛이 나고, 어떤 때는 바나나가 되고, 어떤 때는 사과가 됩니다. 시간을 기록하는 것을 날을 세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혜 3: 모든 것은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집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글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편 90:10)
정말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덧없는 시간이고, 그게 끝입니다. 얼마 전 한 배우가 건물에서 뛰어내렸습니다. 덧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30대, 어쩌면 37세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뛰어내렸습니다. 그는 스타였습니다. 아주 성공한 스타였죠. 몇 년 전, 장국영 같은 사람은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눈 깜짝할 새에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아, 인생은 짧고 눈 깜짝할 새에 사라져 버립니다.
이 사실을 모른다면 바보가 아닙니까? 인생이 길다고,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군요. 이 사실을 모른다면 분명 미쳐버릴 겁니다. 이것저것에 매달리다가 결국 손에 가시 돋친 듯이 살게 될 겁니다. 그러니 그러지 마세요.
인생은 짧고 눈 깜짝할 새에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든 것이 덧없을 때,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지혜를 얻은 사람만이 하나님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하나님이심을 압니다. 지혜를 얻은 사람만이 우리의 삶이 짧다는 것을 압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지혜를 얻은 사람만이 우리가 덧없다는 것을 압니다. 장례식장이나 화장터에 가면 눈 깜짝할 새에 사라져 버리는 많은 것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기 전에도 여전히 삶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오빠를 너무나 사랑했던 누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빠에게 돈을 주었습니다. 나중에 오빠가 암에 걸려 몹시 짜증을 냈습니다. 월급이 너무 적어서 언니는 돈을 주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오빠는 고마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니 얼굴에 돈 뭉치를 던지며 "네 더러운 돈은 필요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는데, 서른 살이 넘은 아들을 품에 안고 있던 그의 어머니가 카메라 앞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아, 모든 것은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지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 쓸모없는 것들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저는 암 환자 한 분을 섬겼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혜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 환자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암에 걸렸습니다. 저는 그와 함께 기도하며, 일어나서 힘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가 힘을 되찾자 다시 저와 함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8억이나 3천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저는 들었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라고 물었더니, 그는 "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늦은 밤까지 그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그의 이모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분은 어떠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이모는 비디오를 켜고 그의 눈을 크게 뜨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분을 만져보고 숨이 붙어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죽었습니다. 불과 6시간 전에 그는 저에게 수천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눈 깜짝할 사이에 어떻게 사라졌는지 보세요.
제가 왜 이렇게 지혜가 없는지 말하지 마세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인생은 짧고 허무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혜 넷째: 하나님을 경외하라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한 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악한 말을 입에서 절대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 돈을 드리고, 열심히 일하고, 온 마음을 다해 봉사했는데, 직장을 잃었습니다. 감히 하나님께 왜 그런지 묻지 못했습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고요?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모든 것이 제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냐고요? 자신감에 차고 들떠서 제가 너무 위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짓는 것을 도울 수 있고,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계획은 하나님의 계획만큼 좋지 않잖아요? 결국 하나님께서 그 일을 앗아가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감사합니다. 나의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하고, 경외롭고, 능력이 많으십니다. 그분은 저를 위해 모든 것을 훌륭하게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에 소멸되고, 그분의 분노에 두려워합니다. 당신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당신 앞에, 우리의 숨은 죄를 당신 얼굴 빛 가운데 두셨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진노 아래서 우리의 날들을 보냈고, 우리의 해는 한숨처럼 지나갔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우리의 날들을 셀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당신의 인자하심으로 일찍 만족하게 되어, 우리의 모든 날들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해 주십시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그분은 결코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십니다.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십시오.
지혜 5: 우리를 기쁘게 해 주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지혜 없이는 기뻐할 수 없다. 지혜 없이는 오직 어려움만 겪게 되고, 얽매이고 비참해질 것이다. 일단 기뻐하지 않으면, 파멸하고 바보가 된다. 왜냐면, 온갖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은 짧지 않은가? 그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당신이 자랑하는 것은 오직 고난과 슬픔뿐입니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모세는 아주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일찍 만족하게 하사 우리가 평생토록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께서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들과 우리가 악을 본 햇수들을 인하여 우리에게 기쁨을 주소서." 이해하시겠습니까? "주께서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들과 우리가 악을 본 햇수들을 인하여 우리에게 기쁨을 주소서." 이 말씀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사람들은 조금의 고난도 겪지 않아도 여전히 자신감과 활력으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고난을 겪지 않으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항상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말씀드리건대, 사람이 지나치게 야망에 빠지면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이 고난의 세월, 이 고난의 날들은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세상적인 꿈을 즉시 파괴할 것입니다. 그들은 당신이 그저 인간일 뿐이며, 인생은 짧고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인생은 이것저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기쁨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신께서 우리를 기쁘게 해 주시기를.
끊임없이 다투는 사람들, 즉 딸과 딸이 다투는 어머니, 며느리와 며느리가 다투는 시어머니, 심지어 아들까지도 조심하세요. 즐겁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잘못된 것입니다. 왜 우리는 즐겁지 않을까요? 우리가 옳기 때문입니다. 제가 발견한 아주 좋은 원칙이 있습니다. 이 원칙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바로 '합리적임'입니다. 합리적임은 고통스럽습니다. 만약 당신이 옳다면, 당신은 고통받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합리적이지 않습니까?
당신이 옳다고?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어떻게 나를 그렇게 대할 수 있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자신의 영리함, 이성, 그리고 이 타락에서 벗어나십시오. 그러면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결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일단 옳다고 생각하게 되면,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진리가 당신 손 안에 있다고 믿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은 당신이 무능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해낼 수 없다면, 해낼 수 없다면, 그냥 포기하고 이성적인 생각을 멈추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고난과 고통을 허락하십니다.
지혜 여섯 번째: 하나님께서 우리 손으로 하는 일을 강하게 하시기를.
빵을 태우거나 다리를 짓다가 무너지는 것처럼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면, 당신은 반드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안주하여 "나는 이것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이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실패하면, 그들은 좌절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악령들이 우리가 하는 일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을 세우신다면, 왜 그럴까요? 우리에게는 지혜 1, 지혜 2, 지혜 3, 지혜 4, 지혜 5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해하셨나요? 제가 항상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 것 같아서 양해 부탁드립니다. 악령들이 우리가 하는 일을 방해한다면, 우리는 그 일을 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는 분명 잘할 것입니다. 자신을 너무 믿으면, 스스로가 너무 강하다고 생각하여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고,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삶은 짧고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일을 즐길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수고에서 기쁨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 당신의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일찍 만족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평생토록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우리를 괴롭히신 날수와 고난받은 햇수만큼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당신의 행사를 당신의 종들에게 나타내시고, 당신의 영광을 그들의 후손에게 알게 하소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나타내소서. 우리 손으로 하는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말씀을 듣고 나니 모세가 기록한 말씀이 참으로 놀랍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 모든 것을 진정으로 실천하실 수 있다면, 어떻게 기뻐하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갈등, 불편함, 질병, 분노는 우리의 운명도, 우리의 몫도, 우리의 선물도 아닙니다. 그것은 어리석음입니다. 기쁨의 길을 걷고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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