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디모데전서01-선한 싸움을 싸우려면.
필기를 참고
1. 믿음의 길은 싸움의 길입니다
a. 디모데는 다소 소심했고 믿음이 강하지 않았기에 싸움에서 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며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격려했습니다.
b. 이 선한 싸움은 믿음과 불신앙 사이의 싸움이었으며, 디모데에게 이미 사탄을 그의 손에 넘겨주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c. 디모데는 교회 내 영향력 있는 인물들로부터 어려운 도전에 직면했지만, 디모데의 내면의 믿음이 그가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했습니다.
d. 불신자들은 마귀의 거짓말을 받아들였습니다. 내면의 믿음은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믿음은 바로 그들의 본성입니다.
2. 원수는 교회 안에 있습니다.
a. 교회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들의 믿음을 타락시키는 자들이 가장 많고, 악령들은 교회 안에 거하기를 좋아합니다.
b.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서 진지하게 사역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터무니없고 근거 없는 말과 끝없는 족보를 늘어놓고, 이단을 설교하고, 심지어 율법까지 언급하지만, 신앙을 증진하는 데는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c. 정결 기도와 가문에 대한 신화를 버리십시오. 믿음과 불신앙은 싸움입니다.
d.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질병의 근원은 저주이고, 불신앙은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
3. 율법은 악인을 위한 것입니다.
a.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힙니다. 율법은 믿지 않는 자(악인)를 위한 것입니다.
b.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먹고 싶을 때는 먹고, 먹고 싶지 않을 때는 먹지 않으며, 먹고 마시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4. 궁극적인 계명은 사랑입니다.
a. 가장 큰 계명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큰 계명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b.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며,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점점 더 적은 죄로 고통받을 것입니다.
c. 주님을 진지하게 믿는다면, 가족은 의심할 여지 없이 당신의 믿음을 약화시킬 것입니다.
d. 믿지 않으면 얻을 수 없고, 강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e.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십시오. 아무도 나를 막으려 하지 마십시오. 나는 그들을 "놓겠습니다".
5.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a. 바울은 자신이 죄인 중 괴수라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믿음을 가진 자들을 구원하시며, 믿지 않는 자들은 정죄받지 않습니다.
b. 믿는 자들은 끊임없이 불신앙과 싸워야 합니다. 병원은 믿는 자들을 위한 곳이 아닙니다.
6. 믿음과 선한 양심을 유지하십시오.
a. 디모데는 선한 싸움을 싸워 불신앙을 이겼습니다.
b.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에 따라 믿는 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이루실 것입니다.
c. 믿지 않는 자들은 멸망하지만, 믿는 자들은 세워집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디모데전서 1장 공부를 시작해 봅시다. 디모데전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개인적인 편지입니다. 1장의 주제는 "선한 싸움을 싸우게 하라"입니다. 디모데는 꽤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그는 아마도 20대 초반의 아주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마치 아들처럼 바울의 조력자로 섬겼습니다.
디모데에게도 약점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종종 소심했고, 믿음도 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디모데의 약점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를 썼습니다. 그가 섬기는 일에 능숙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꽤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디모데의 믿음은 다른 면에서는 강하지 않았습니다. 싸움에 임할 때 그는 조금 약해졌습니다.
교회에서 섬길 때 우리는 종종 어려운 사람들, 아주 어려운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렇게 까다로운 사람들은 종종 매우 합리적인 말을 합니다. 그들과의 논쟁에서 이길 수 없다면, 꽤 골치 아픈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당신은 논쟁에서 이길 수 없는 것일까요? 사실, 말로 하는 논쟁은 믿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당신이 충분히 강하다면, 말로 하는 논쟁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은 참으로 강력합니다.
믿음의 길은 싸움의 길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게 하려 함이라." 이 선한 싸움이란 무엇일까요? 믿음과 불신앙 사이의 싸움입니다. 당신과 저는 종종 이런 상황을 경험합니다. 믿음이 우리 안에서 승리할 때, 우리는 내면의 힘을 발견합니다. 불신앙이 승리할 때, 우리는 깊은 연약함을 발견합니다.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질문은 사실 질문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들의 믿음의 부족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무지에 있습니다.
디모데 시대, 에베소 교회에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라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유창하고 강력한 화술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무슨 말을 했을까요? 다른 사람들을 믿지 않는 교리를 전파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게 비열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나중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들을 사탄에게 넘겨주었으니, 이는 그들이 벌을 받고 신성모독하는 것을 멈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는 교회를 이끌고 있었는데, 후메내오나 알렉산더처럼 거칠게 말하는 권력 있는 지도자들을 만났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종종 당신의 믿음을 약화시키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전형적인 예입니다. 예를 들어, 불치병에 걸린 자매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신은 어떻게 할까요? 기도를 인도합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진전이 보이자, 그녀의 가족들은 불행해집니다. 이 악마가 얼마나 사악한지 상상해 보십시오! 이 사람의 삶은 믿음과 불신앙 사이의 싸움입니다.
그러니까 가족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말씀하시는군요.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 그들은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아들입니다. 어려운 상황입니다. 억지로 뚫고 나가면 정말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겁니다. 사람들이 불평하면 어쩌죠? 생각해 보세요. 거리에 서서 "아플 때는 주님을 믿는 믿음과 기도에 의지해야 합니다."라고 외치면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이단으로 여길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세상이 악한 자의 손아귀에 있고, 당신은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의사를 믿는 사람들을 불쾌하게 한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불치병에 걸렸다면 치료하십시오. 죽을 때까지 치료하십시오. 생명이 위태로운 병입니다.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렇다면 디모데에게 묻겠습니다. 교회에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 같은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마주하는 디모데의 일이 쉬웠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말기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섬기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삶은 엄청나게 힘듭니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나쁜 일이지만, 아무리 나쁘게 말해도 나쁜 일입니다. 우리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면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해를 끼쳤다고 비난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모든 것을 다한 후에 그들이 죽는다면 어떨까요? 더 나아가, 그들의 생사는 그 사람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싸움이 모두 사람 안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 디모데전서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 싸움의 승패는 디모데의 믿음에 달려 있었습니다. 당신의 죄가 아무리 깊더라도, 당신의 문제가 아무리 크더라도, 기꺼이 믿으려는 마음만 있다면 치유될 것입니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고, 선생님이 저렇게 말씀하시지만 소용없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제 말을 믿지 않으시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다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종종 안전하게 행동하며 믿음을 키우고, 믿음이 어둠의 권세에서 구원해 줄 수 있다고 믿으려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고,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치든 마음대로 하세요.
그래서 저는 젊은 목회자들에게 종종 격려합니다. 그들은 제게 "그녀의 남편이 주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그녀와 다툰다고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그럼 그냥 그녀가 믿도록 내버려 두지 마세요.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가족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제 말이 끝나자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설명이 있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설명이 있습니다. 결국 믿음이 당신의 운명입니다.
믿음의 길은 믿음과 불신앙 사이의 싸움, 즉 싸움의 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불신자들은 실질적인 해결책이 거의 없고, 그저 마귀의 거짓말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병원에 가서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고 어떤지 보면 이해가 될 겁니다.
아버지는 사실 꽤 총명하신 분이셨어요. 저를 따라 신앙생활을 하셨지만, 당시 우리가 세운 교회는 실패하고 황폐했어요. 저도 직장에서 엄청나게 바빴고, 정말 힘들었어요. 그러다 아버지께서 간단한 폐렴에 걸리셨죠. 70대셨는데, 아무 이상도 없으셨어요. 혼자 병원에 가셨는데, 병원에서 "입원하셔야 합니다."라고 하셨죠. 한 달간 치료를 받으신 후, 아버지는 병상에서 나오지 못하시고 입원까지 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께 온갖 치료를 쏟아부으셨죠.
나중에 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하셨어요. "여기까지는 멀쩡히 들어왔는데, 지금은 침대에 누워 계시다니. 어디 가서 정의를 구하시겠어요?" 아버지는 "더 이상 아버지를 치료하지 않을 거야. 집에 갈 거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낫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악화되셨어요. 제가 말했잖아요. 사실 약을 너무 많이 드신 탓이라고요. 그는 집으로 돌아와 두 달 후 세상을 떠났다. 물론, 그는 덜 고통스러웠다. 그들은 하루 종일 이것저것 하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났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병원을 믿고 싶다면, 믿을 수 없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병원을 믿지 않는다면, 믿을 수 없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이런 일은 늘 일어납니다. 수술이 필요 없는 사람도 수술을 받고, 수술을 받아야 할 사람은 꼭 받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월별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습니까? 약을 끊임없이 복용해야 합니다.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환자들이 불평할 것이고, 약을 복용하는 것은 단지 돈을 더 벌고 보너스를 더 많이 받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불신은 모두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 싸움은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믿음과 불신 사이의 싸움입니다. 저는 깊이 느낍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쉽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그에게 어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두 불신 때문입니다.
원수는 교회 안에 있습니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여 변론을 내는 것이라.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마음으로 나는 사랑이것늘.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되 말에 뻐져.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디모데전서 1:3-7)
보시죠? 교회에는 자랑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도 직접 경험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교회에 다니는데, 거기에는 온갖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처음 2년 동안은 괜찮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교회의 어두운 면을 보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은 귀신이 교회에 산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있는 곳,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에는 귀신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무섭다고? 교회를 세우는 건 악마들이 즐겨 모이는 곳이야.
한번은 내가 악마를 쫓아내면서 "나가!"라고 말했어. 그러자 악마가 말했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말했지. "나이트클럽이 있고 그 뒤에 홍등가가 있어. 거기에 사람들이 많이 있고, 모두 네 무리야. 어서 가." 악마가 말했지. "가지 않을 거야." 아, 이 악마는 꽤 강하구나. 내가 말했지. "그럼 떠나야 해. 떠나고 싶지 않더라도 말이야. 떠나야 해!" 악마가 말했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 그래서 내가 말했지. "그럼 어디로 가는 거야?" 악마가 말했지. "교회에 갈 거야." 세상에! 내 말을 듣고 나서 "무슨 일이야?"라고 생각했어.
그러자 악마가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어. "우리에겐 쉬운 일이 아니야. 상관들이 우리를 교회로 보내서 문제를 일으키게 하는 거야." "교회에서 실패하면, 돌아올 때 죽을 거야." 이 악마는 꽤 흥미로웠어요. "돌아가면 죽을 거고, 여기서도 죽을 거야. 그러니 그냥 죽자." 라고 말했죠. 보세요, 악마는 죽을 믿음까지 가지고 있어요. 악마는 정말 흥미롭죠.
"교회에 가야 해." 라고 말했어요. "그럼 그 교회에 가." 라고 했더니, "가지 않을 거야." 라고 했죠. "왜 그 교회에 안 가?" 라고 물었더니, 악마는 그 교회에 다녔고, 하층민들이었다고 말했어요. 그러고는 모두 농부들이라고 하더군요. "흥미롭군." 이라고 말했죠. "거기 가긴 하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거기 자리를 얻는다고 해도 돌아올 때 보상은 없어." 라고 말했어요. "뭐가 문제야? 힘든 일을 맡고 싶어 하다가 이제 벽에 부딪혔잖아. 뭘 할 수 있겠어?" "나가야 해!"
나중에 우리 교회가 걸어온 길이 어떤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싸움 능력이 계속 향상될수록, 우리가 싸우는 곳마다 악령의 파도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우리는 쫓겨납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조금씩 발전하고, 조금 더 싸우면, 그 악령들은 다시 쫓겨납니다. 교회를 어떻게 정화할 수 있을까요? 말씀드리겠습니다. 교회의 영적인 높이가 거룩함의 정도를 결정합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 안에서 우리가 영적으로 충분히 발전하지 않으면 그 강력한 악령들이 스스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건 정말 다루기 힘든 문제입니다. 최근에 우리가 이해 부족을 다루는 동안, 우리는 이해의 문제만 다루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셨나요?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 이 사람이 계속 교회에 다니도록 내버려 두면 내가 쫓겨날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영적 수준이 높아지고 있으니, 차라리 이 사람을 데려가는 게 낫겠습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가운데 있는 젊은 목자로서 여러분은 한동안 이 사람을 돌보았지만, 그가 떠나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교회의 영적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교회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진정한 사역을 하는 대신, 멋지고 터무니없고 근거 없는 말과 끝없는 족보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아담이 아무개를 낳고, 아무개가 아무개를 낳고,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지다가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어지는 마태복음의 족보는 잊어버리십시오. 여러분이 마태복음에 족보를 기록하자, 몇몇 사람들이 그 족보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가계도를 연구하면 사람들은 "당신은 어느 가문 출신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솔로몬 가문입니다." "그럼 당신은 어느 가문 출신입니까?" "저는 아나니아 가문입니다." "그럼 당신은 어느 가문 출신입니까?" "어디서 왔어?" "저는 암논 가문 출신입니다." 사람들은 "저는 솔로몬 가문 출신입니다."라고 생각합니다.
근거 없는 주장과 끝없는 가계도로 무장한 이 사람들은 이교주의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이교주의를 퍼뜨리고 있는 걸까요? 그들은 별을 보고, 별자리를 관찰하고, 온갖 기이한 것들을 믿고 있습니다. 교회에는 손금 보기, 별자리 보기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이교주의의 냄새가 납니다.
영적인 것들이 매우 실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그 성읍에서 왕이 이스라엘 백성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패배할 것을 알고 아들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 제물의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은 패배했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네, 이해합니다. 영적인 것들은 매우 강력합니다.
지금 유튜브에 접속하면 영계에 대한 많은 자료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말씀드리자면, 저는 목사로서 영계를 믿는다고요?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렇게 많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어요? 영계 문제는 너무나 현실적입니다. 인간 제사, 빌린 수명 등과 같은 것들이 포함됩니다.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네! 효과가 있죠? 그렇지 않다면 영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증명할까요? 교회 안의 이 모든 이야기는 논쟁만 불러일으킵니다. 누군가는 '예'라고 하고, 누군가는 '아니요'라고 하고, 누군가는 '아니요'라고 하고, 누군가는 '예'라고 합니다. 그들은 서로 논쟁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믿음의 율법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온통 이교, 족보, 터무니없고 공허한 말들뿐인데, 율법을 들먹이는 것은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뿐입니다. 하지만 믿음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습니다. 후메내오, 알렉산더, 그리고 여러분의 추종자들 중 몇몇이 교회 안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 안에서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이 교회는 치유와 구원. 치유와 구원 후에는 정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며칠 전 어떤 분이 겁에 질려 떨면서 제게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무슨 일이에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너무 무서워요." 그가 말했습니다. "아, 암 환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는데, 기도를 마치고 나서 정화 기도하는 걸 깜빡했어요." 제가 "아니요."라고 하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폐암에 걸렸는데, 이제 저도 폐가 아프네요." 세상에!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게 무슨 믿음일까?' 그냥 불신앙일 뿐이잖아요.
형제자매 여러분, 믿음과 불신앙 사이의 싸움은 하나의 싸움이고, 교회 안에도 그런 싸움이 많습니다. 악령을 쫓아내는 교회와 은사주의 교회는 많은 것을 가르칩니다. 원가족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나요? 많이요. 왜 당신은 그런가요? 원가족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내게 오면 간단합니다. 내가 말합니다. 네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러면 그가 천 대까지 너와 맺은 인자의 언약을 지키실 것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죄를 벌하실 것입니다. 아버지부터 아들까지, 삼사 대까지 말입니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정말 놀랍습니다!
제 말씀드립니다. 문제의 진정한 해결책은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입니다. 자신을 너무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제게 놀라운 능력이 있다 해도, 제가 이 땅의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의 불신앙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고침받은 사람들의 병의 근원이 치유되었을까요? 아닙니다. 병이 재발했을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두 재발했습니다. 왜 재발했을까요? 근본 원인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기에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조상 3, 4대에 걸친 저주가 그들의 머리에 내려졌습니다. 어떻게 고칠 수 있겠습니까? 나중에 이 사람들은 모두 주님에 대한 믿음을 잃었습니다.
당신은 그들이 모두 주님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수천 명의 사람을 고치셨지만, 우리가 예루살렘에서 그분을 따라 기도하며 하나님을 기다리면 120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500명이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하늘로 승천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제가 말씀드리건대, 질병의 근본 원인은 저주입니다. 여러분은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저주를 받았고, 이제 건강해졌는데도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율법책에 기록되어 있으니까요, 그렇죠?
그러니까 말씀드리건대, 원수는 교회에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베드로는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했고, 3천, 5천 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구원은 헛소리입니다! 강조하고 싶은 건, 헛소리입니다. 그건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불신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시죠? 베드로가 헌금을 요청하자, 세상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헌금했습니다. 헌금한 후에는 풍성한 식탁에서 먹고 마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으면 불평했고, 너무 적게 먹으면 불평했고, 피클 몇 개만 먹어도 불평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교회를 파괴하고, 많은 땅을 삼켜버린 후, 결국 교회를 없애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이 교회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때문에 원수는 교회 안에 거짓말을 퍼뜨려 왔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첫날부터 이 싸움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와 싸우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불신앙, 마귀가 퍼뜨린 거짓말, 그리고 그것과 함께 오는 불신앙과 싸우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불신앙이 문제의 근원입니다.
율법은 악한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이 불법한 자들과 불순종하는 자들, 경건하지 않은 자들과 죄인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율법은 악한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루 종일 율법을 연구하고 이것저것 지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한 자매님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사가 되려는 설교자들을 초대했습니다. 왜 그 유명한 목사들이 그렇게 훌륭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을 보세요. 어떤 사람들은 그저 유명한 목사가 되고 싶어 하지만, 아무런 명성도 없습니다. 그들은 결국 캐나다에 있는 우리 자매님의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우리 자매님의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미 다 자란 그녀의 아들이 여전히 잠자리에 오줌을 누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 큰 아이가 계속해서 잠자리에 오줌을 누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정말 답답합니다. 그녀는 왜 우리 교회에 왔을까요? 그 일은 나중에 일어났습니다. 우리 교회에 온 후로 그녀의 야뇨증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왜 야뇨증을 앓았을까요? 그들은 육욕을 탐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
이 무리는 유명한 목사가 되고 싶어 했고 유기농 식품을 추구했습니다. 유기농 식품을 먹고 싶다면 직접 재배해야 합니다. 와, 그냥 계속 유기농 식품을 만들면 됩니다. 어쨌든 저는 지루합니다. 먹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예수님께서 먹는 것이 사람을 더럽힐 수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다음 날 변기에 앉게 되죠. 하지만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힐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타락한 사람들의 믿음이 있을까요? 정말 타락했습니다.
성경에는 이것저것, 먹을 수 없는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맞습니까? 네. 아직 있다고 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제 동창회 후에 어떤 사람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와 속이 메스꺼웠습니다. 음식이 더러웠습니다. 그리고 더러움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갑자기 그들의 양심이 부패하고 믿음 또한 부패합니다.
율법을 읽을 때 우리는 악령의 지배를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율법을 올바르게 사용하기만 한다면 율법은 선하다는 것을 압니다. 올바르게 사용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믿음 안에서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한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음행하는 자며 남색한 ㄴ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자며 것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디모데전서 1:9-10)
이런 것들은 죄인들,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아, 당신은 더러움, 더러움, 더러움에 대해 계속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그것들을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왜 지킬 수 없습니까? 율법은 믿는 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 저는 우리의 믿음의 길이 투쟁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율법은 악한 자들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먹는 것을 먹고, 먹지 않는 것을 먹지 않는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특히 저 같은 사람은 음식을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저녁 6시까지 일하는데도 아직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괜찮습니다. 육신에 탐닉하는 사람들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우리가 믿는 복음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추상적으로 생각되지 마십시오. 사실 매우 구체적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계명의 끝은 사랑입니다
계명이란 무엇일까요? 율법의 요지는 사랑이고, 계명의 끝은 사랑입니다.
경ㄱ몌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것늘.(디모데전서 1:5)
한번 이 사랑에서 벗어나면 파멸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러면 천천히 고난을 통해 배우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유익할까요?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토록 큰 고난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그렇다면 자신을 믿고 자신을 잘 사랑하십시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계명은 이것입니다. 첫째, 마음을 다하고 온 힘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둘째,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나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차라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낫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잘 사랑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이 두 계명은 율법의 모든 것을 요약합니다. 저는 가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병, 저 병으로 계속 고통받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당신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어느 정도 치유해 주셨습니다. 100%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80~90%는 치유되었습니다.
문제는, 당신은 아직도 온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해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것은 엄청난 은혜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에게 삶의 목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권합니다. 그러면 죄에 덜 시달릴 것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 덕분에 하나님께서 저를 모든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믿는다면 진심으로 믿으십시오. 제가 당신을 대신하여 결정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제가 당신을 대신하여 결정을 내릴 수 없다면, 제가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저는 정말 할 수 없습니다.
할 말은 다 했습니다. 할 말은 다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의향이 있습니까? 주님을 믿는 이 길, 믿음의 길을 걸을 의향이 있습니까? 당신 안에 있는 불신앙을 내던져 버리겠습니까? 주님을 믿는 믿음에 대한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습니까? 주님을 믿는 이 문제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우리 가운데 오실 때는 주님을 진심으로 믿어야 합니다. 진심으로 믿기로 결심하면 원수가 반드시 당신을 핍박할 것입니다. 말로, 남편을 통해서, 가족을 통해서, 온갖 핍박으로 말입니다. 그것은 사악한 본성입니다.
주님을 진지하게 믿기 시작하지만 진심으로 믿지 않고, 우리 가운데 떠돌아다니다가 거의 쫓겨날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다 갑자기 회개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가족이 당신을 고발할 것입니다. 이것이 악한 일이 아닙니까? 왜 그럴까요? 기도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주님을 향한 당신의 믿음은 너무나 약해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진지하게 믿기 시작하면, 세상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당신의 믿음을 훼방하러 올 것입니다. 인격 없이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께 권합니다.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어떻게 나아갈지 생각해 보세요. 그렇지 않다면, 그냥 따라가면서 관계를 발전시키세요. 믿음 때문에 가족을 망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싸움을 견뎌낼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제 능력을 정말 가지고 있다면 누가 감히 다가오겠습니까?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누구든 약해지고 바로 약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디모데는 언급조차 하지 마세요. 디모데도 당신처럼 인격적으로 약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에게 편지를 썼고, 저도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믿지 않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나중에 저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박해를 받으면서도 강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약하고, 그 배후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강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약하고 연약한 사람들은 쉽게 불신의 길을 따르지만,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명령의 핵심입니다. 사랑입니다. 내가 말하노니,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습니다. 누가 나를 막으려 해도 나는 놓아줄 것입니다. 모두가 이 말을 듣고 난 후에,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나는 수염도 없고 뿔도 없습니다. 황소 마왕이나 손오공이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는 여전히 평범해 보이고, 당신보다 더 평범해 보입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보다 일을 더 잘합니다. 내게는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재정, 내 일, 그리고 내 봉사를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내 삶 전체에 머물러 있습니다. 누가 나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내 성격입니다. 나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들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놓아주오"라는 노래를 썼습니다. 그들은 잘 불렀지만, 나는 음정이 어긋납니다. 모든 것을 놓아주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나는 당신을 해치는 어떤 짓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 속사람은 순수한 마음, 깨끗한 양심, 그리고 진실한 믿음에서 나옵니다. 나는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주 나의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을 섬기는 데 결코 게으르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그들이 매우 악하거나 주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더라도, 저는 결코 게으르지 않고 그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 제 작은 마음은 여러 번이나 상처받았습니다. 불신은 너무나 악합니다! 불신은 참으로 너무나 부패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심이니.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팝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람과 함꼐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은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꼐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ㅇ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꼐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이다 아멘.(디모데전서 1:12-17)
바울은 이 글을 쓰면서 갑자기 흥분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흥분했을까요? 아, 제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던 것입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에도 바울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나마 느꼈습니다. 그는 스데반에게 돌을 던지기를 거부하고 그의 옷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바울은 대제사장의 편지를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예수님을 만나 벽에 부딪혔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채찍에 발로 차는 것이 네게는 힘드니라." 바울은 예수님의 빛에 즉시 눈이 멀었습니다. 본래 눈이 멀어 있어야 할 사람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는 즉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이 순간, 그는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 축복을 받았는지 떠올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눈을 멀게 하지 않으시고 다른 사람을 보내 그의 눈을 고쳐 주시지 않았더라면, 그는 여전히 죄인 중 괴수였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하실 수 있다는 생각에 감동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불신앙을 고집한다면, 아무도,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눈이 멀었다면, 예수님을 믿어 시력을 회복하시겠습니까? 네. 만약 절름발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 주실 수 있습니까? 믿으신다면, 네. 하지만 당신이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아,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냐?"라고 생각합니다.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으면 다른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자신을 믿을 수도 있고, 의사를 믿을 수도 있고, 다른 무엇이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원하는 만큼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믿음이 있음을 보시고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정죄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이 명령은 궁극적으로 사랑에 관한 것이지만, 사랑은 믿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의 원수들은 모두 이단, 거짓 교사, 터무니없고 근거 없는 말, 헛된 말, 그리고 온갖 율법주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완전히 쓸모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아무리 큰 죄인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가장 악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믿습니까? 그래서 믿음과 불신앙 사이의 싸움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아,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불신앙은 너무 쉽습니다.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너무 어렵습니다.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지만, 여전히 너무나 어렵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끊임없이 불신앙과 싸워야 합니다.
병원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든, 의료가 과도하게 발달했든 그렇지 않든, 옳든 그르든, 잘못된 약 때문에 소송할 곳이 없더라도, 그냥 믿으십시오. 병원을 믿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왜 사람들은 그 차이를 구별하지 못할까요?
병원과 논쟁하고 싶지 않습니다. 병원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병원 말고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그렇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돈을 쓸 곳과 치료를 받을 곳을 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니 병원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병원이 정말 필요하지 않습니다.
믿음과 선한 양심을 지키십시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디모데전서 1:18)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읽은 내용을 이해하셨나요? 디모데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했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운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기는 것, 불신앙을 이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에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 이는 그들을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합니다. 이는 눈에 보이는 사실입니다. 믿는 자들은 주 예수님을 의지할 것입니다.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는 것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 얼마나 선한 싸움입니까! 이 싸움은 믿음과 불신앙 사이의 싸움입니다. 보십시오. 불신자는 멸망하지만, 믿는 자들은 구원받습니다. 인생은 믿음과 불신앙 사이의 끊임없는 싸움입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에베소 사람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을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로 떠나기 전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에게 "내가 네게 안수하고 기도하노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디모데야,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가 승리할 것을 예언하노라."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믿음을 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예언은 바울이 본 환상에 근거한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렇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환상이나 환상의 부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바울이 디모데의 연약함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선포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내가 네게 명령하지 아니하였느냐? 강하고 담대하라. 이것을 알라. 네 평생에 원수가 네 앞에 서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어가라. 너는 이스라엘 백성을 요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어가라."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저는 종종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바로 모든 사람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더욱 의지하고, 모든 사람을 믿음의 길로 인도하며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과 적에 직면하더라도, 우리의 이해 안에는 풍성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해 안에는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신비에 대한 지식이 충만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눈먼 자가 볼 수 있고, 절름발이가 걸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서 기적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볼 때, 주님을 믿는 믿음의 축복으로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신앙을 극복했습니다. 당신이 누구든, 설령 20년 동안 앞을 보지 못했더라도 여전히 믿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무엇을 말할까요? 이사야 61장 1절: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저는 형제자매들이 믿음으로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불신앙의 복음을 거의 전하지 않고, 불신앙의 논리에 대해서도 거의 논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채셨을 겁니다. 불신앙을 뭐라고 부르죠? 하나님께서 당신을 고쳐 주시지 않는다면, 당신은 여전히 믿을 수 있을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닙니까? 하지만 많은 교회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저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고쳐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믿든 안 믿든,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만약'은 없습니다. 오직 '아멘'만!
제가 불신의 복음을 거의 전하지 않고, 불신의 논리에 대해서도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채셨을 겁니다. 불신을 무엇이라고 부르십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고쳐 주시지 않는다면, 당신은 여전히 믿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닙니까? 하지만 많은 교회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저는 믿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고쳐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만약'은 없고, 오직 '아멘'만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 싸움에서 당신을 승리로 예정하셨다고 믿습니다.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약속의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십시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들어가지 않는 것은 반드시 죽음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불신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사면 평생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사랑을 키워갑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빕니다!저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이 싸움에 미리 정해 놓으셨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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