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시편 시리즈(7)-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필기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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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서론
a.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 살도록 허락하시어 원망하는 자들을 넘어뜨리고 지혜를 가르치십니다.
b.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부족한 것입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허락 하에 일어납니다.
c. 친족의 주장은 원망만 불러일으킵니다. 운명은 친족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d. 악을 행하는 자들이 있지만, 원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원망하는 자들은 곧 악을 행하는 자가 됩니다. 그런 쓸데없는 일은 잊어버리세요!
e. 누군가 당신에게 악을 행하더라도 원망하거나 그것 때문에 괴로움을 느끼지 마십시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
2. 성경의 말씀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지시리로다.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깊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고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파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향하여 그 이를 가는도다.주께서 저를 웃으시리니 그 날의 이름을 보심이로다.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기어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지간 자를 죽어고자 하나.그 칼은 자기의 마음을 찌르고 그 활은 부러지리로다.여호오께서 완전한 자의 날을 아시니 저희 기업은 영원하리로다.저희는 환난 때에 부끄럽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하려니와.악인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연기 되어 없어지리로다.악인은 꾸고 깊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주의 복을 받은 자는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는 끊어지리로다.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저는 넘어지나 아즈 엎드러짖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붙드심이로다.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영히 거하리니.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르르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라로다.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의인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 그 혀는 말하고 그 혀는 공의를 이르며.그 마음ㅇ[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여호와는 저를 그 손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치 아니하시리로다.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들어 땅을 차지 하게 하실 것이라 악이니이 끊어질 땡0ㅔ 네가 목도하리로다.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토에 선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으나.사람이 지날 때에 저가 없어졌으니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목하였도다.완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결국은 끊어질 것이나.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여호와께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권하심은 그를 의지한 연고로다.(시편37:1-40)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악인과 의인의 운명을 알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이 세상에서 당신의 행하심을 통해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이 얼마나 복된지 알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우리는 이 세상의 악인들을 마치 시들어가는 푸른 풀과 곧 베어질 풀처럼 봅니다. 하나님, 우리를 인도하시고, 당신이 원하시는 길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당신을 따를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악인의 행위에 분개하거나 불의를 행하는 자들의 이익을 부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의 부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혜를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 성경말씀의 배경
a. 사람이 악에 대해 원망을 품으면 지성은 사라집니다.
b. 원망을 품는 것은 어리석고 궁극적으로 파괴적입니다. 나쁜 것을 보면 믿음으로 바라보십시오.
c. 늙으면 악인이나 의인이나 모두 멸망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d.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자신의 삶의 경험을 글로 요약했습니다. 근시안적이고 미래를 멀리 내다볼 수 없는 그리스도인은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5. 관찰하는 법을 배우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a. 모든 문제는 학습 문제입니다. 지식, 지혜, 그리고 관찰력의 부족에서 비롯됩니다.
b. 모든 것은 배워야 하며, 배움은 다른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배움을 방해하는 것은 무지와 독선입니다.
c. 삶이 얽매여 있다면, 즐거운 사람에게서 배우고, 바쁘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서 배우십시오. 힘든 일은 없고 오직 성취만 있을 뿐입니다.
d. 사람들의 종말을 살피고, 주님을 기뻐하며, 배우고 계획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6. 원망을 품는 것은 자신을 파괴합니다.
a. 원망을 품는 것은 자신을 비하하고 내면의 혼란을 일으킵니다.
b. 수다스러운 사람들은 혼란을 야기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헛소리를 하고 자신을 혼란스럽게 할 뿐입니다.
c. 혼란스럽다면 배우고, 혼란스럽다면 상황을 명확히 하고, 헛소리하지 마십시오.
d. 악을 행하고 타락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들입니다. 원망하는 마음을 품는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5. 사람들은 앞날을 충분히 보지 못하기 때문에 원망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7. 하나님을 기다리십시오.
a.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는 충분히 오래 살지 못합니다. 인생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연극입니다. 너무 깊이 빠져들지 마십시오.
b. 하나님을 기다리십시오. 지혜 있는 자는 의인과 악인 모두의 종말을 분명히 볼 것입니다.
c.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실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침착하고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흥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지혜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8.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a.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b. 저주를 뿌리는 자는 반드시 저주를 거둘 것입니다. 사람 안에 있는 악의 대부분은 심판에서 비롯됩니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우리를 악하게 만들고 버림받게 합니다.
9. 결론
a. 하나님의 마련에 대해 판단하거나 원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우리를 악한 자들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b.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며,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기쁜 삶을 살 것입니다.
c.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이용하게 두십시오. 돈에 희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두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삶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우리는 기도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병에서 치유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왜 그들은 이렇게 많은 병을 앓고 있을까요? 사람의 문제의 근원은 진정으로 무엇에 관심을 두는지에 있습니다. 그것이 진리일까요, 지혜일까요? 지혜가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저 멜로드라마처럼 반복될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지혜를 얻고 있습니다. 어떻게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주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야 할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멜로드라마 같은 길이 아니라 번영과 기쁨의 길입니다. 삶의 이러한 측면을 이해한다면 기쁨이 얼마나 놀라운지 알게 될 것입니다. 기쁨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이 많지만 깊은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만약 누군가 제게 10억 위안을 주었는데 다 써버린다면, 저는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거든요. 내년 이맘때쯤이면 18억 위안, 아니 어쩌면 90억 위안이 될지도 몰라요. 왜 가치가 떨어지는 걸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거든요. 부동산을 사라고 하는데, 어디서 사야 할까요? 어떻게 사야 할지 모르겠어요. 정말 답답하고 답답해요.
그래서 우리 형제자매들은 종종 기쁨이 부족해요. 기쁨이 없는 사람들은 정말 헛된 삶을 살고 있는 거예요.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농담이에요?"라고 묻곤 해요. 왜 세상에는 악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걸까요? 아무런 문제도 겪지 않았는데도 문제를 일으키고 싶어 해요. 행복하게 살고 싶지 않고, 그저 문제를 일으키고 싶어 하는 거예요.
제 자매 중 한 명의 부모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들은 함께 있지 않을 때는 서로를 많이 그리워하고, 함께 있을 때는 다툰다. 딸은 여전히 부모를 공경하고 싶어 하지만, 나는 그것을 오락거리로 여긴다. 그들은 기쁨을 원하지 않고, 그들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고통이 없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고통을 찾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나누고 싶은 가장 중요한 지혜는 악한 자들에게 원망을 품지 않는 것이다. 원망을 품는 것은 해롭다.
악한 자는 바로 당신 옆에 앉아 있을 수도 있다. 원망하지 마라. 악한 자는 다른 누군가 옆에 앉아 있고, 당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원망하지 마라. 원망을 품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은 이 땅의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것이다. 당신은 이러한 일들을 일으키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당신은 여전히 손가락질하고 비난한다. 하나님,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십니까? 사실, 당신은 물을 권리가 없다. 왜냐고? 내가 원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원한다고. 나는 내가 원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풀고, 내가 원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푼다.
이번 주 주일 설교 주제는 시편 37편입니다. 지난주에는 시편 25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을까요?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것을 멈추세요. 하나님, 왜 이렇게 행동하십니까? 이유가 없잖아요? 어떻게 이유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원한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원한다고. 당신은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원치 않더라도 하나님은 어쨌든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들이 이 세상에 살도록 허락하셔서 원망하는 자들을 넘어뜨리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악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하나님이 악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렇게 행동하실 뿐입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원망하는 자들을 넘어뜨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혜롭게 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을 불쾌하시게 하는 길로 걷지 않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꽤 흥미로운 자매님이 계셨습니다. 할 일이 없던 그녀는 온라인 질의응답 시간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녀는 곤경에 빠졌습니다. 신이 보낸 사람이든 악마가 보낸 사람이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 사람들이 그녀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원래 온라인에서 질문에 답하려고 했지만, 결국 자기 자신, 즉 집에서 자란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고, 누군가 그녀에게 가족 기원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중에 아직도 가족 기원설을 믿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있다면, 그런 헛소리는 집어치우세요. 이 자매는 가족 기원설에 대한 글을 많이 읽기 시작했고, 결국 곤경에 처했습니다. 가족 기원설은 진실이 아닙니다. 그저 문제를 찾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오빠를 찾아가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빠는 그녀의 부모가 정말 악하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부패한지 아십니까? 이야기를 마친 후, 저는 오랫동안 그녀의 가족 기원설을 조사했고, 그녀의 부모가 그녀를 심하게 대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그녀의 오래된 병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전에도 우울증을 앓았는데, 제가 말씀드리건대,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데, 모두가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원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이것을 "책임 전가"라고 부릅니다.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당신 자신과만 관련이 있습니다. 제가 기도를 인도할 때 "선생님, 저는 이런저런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누가 그런 것들을 조사하라고 했나요?
궁금한 게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얼마나 악할 수 있을까요? 지금 당신은 정말 멋져 보이지 않나요? 부모님이 어떻게 당신을 그렇게 아름답게 키울 수 있었을까요? 게다가 우울증 병력까지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그녀가 자존감이 극도로 높은 사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이 점을 생각해 보세요. 이런 더러운 지식에 얽매이지 마세요. 그건 지식이 아니라, 그저 당신을 원망하게 만들 뿐이잖아요? 형과 다툰다고 해서 당신이 옳다는 뜻인가요? 당신은 세상을 왜곡해서 보고 있는 거예요. 지금도 저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원망에 가득 찬 것을 봤어요. 말씀드리자면, 만약 당신이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라면, 아무도 당신을 해칠 수 없을 거예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운명을 주관하세요. 이해하시겠어요? 당신의 본가가 아닙니다.
세상에는 부패한 지식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 지식을 듣는 순간, "아, 내가 왜 이럴까? 부모님이 내 교육을 지지해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지."라고 생각하게 돼요. 생각해 보세요. 교육은 부모가 지지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겠어요? 배우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배울 수 있어요. 배우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해도 소용없어요.
악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해 원망하는 것을 좋아하는 자매가 있어요. 당신은 악한 일을 했나요? 네. 했나요? 했을 수도 있고, 안 했을 수도 있어요. 다시 생각해 보세요. 악행에 대한 이 분노가 정말 악한 걸까요? 네, 하지만 분노를 품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입니다.
남편과 이혼한 또 다른 자매가 있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그녀는 갑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와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혼했는데 남편이 다른 여자와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뭐가 문제야? 아무것도 아니잖아, 그렇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낳은 아이가 자기 자식과 집안의 재산을 두고 경쟁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흥미롭지 않나요? 그래서 그녀는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녀는 다른 사람과 소란을 피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저 미친 여자처럼 대하며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그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끔찍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누구와 소란을 피우고 있었던 걸까요? 그녀는 자기 자신과 소란을 피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목사님이 저에게 그 일에 대해 물으러 오셨고, 저는 "그냥 무시하자. 충분히 소란을 피우면 알게 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어리석은 걸까요? 스스로 불행해지려고 문제를 찾아야 하는 걸까요?
말씀드리건대,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정말 많아요. 당신 아들은 사실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육신에서 태어난 아이는 그저 살덩어리일 뿐이에요. 어떤 아이는 45kg이 넘고, 어떤 아이는 50kg이 넘죠. 세상은 원래 그런 거예요. 심지어 200kg이나 나가는 아이도 있는데, 팔아도 아무 가치도 없어요.
저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비극들에 깊이 공감합니다. 얼마 전 미국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직 자세히 조사하지도 않았고, 시간도 없습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대학교수와 주부인 한 부부가 미국에서 부동산과 집을 사서 고향의 펠로우십에 가입했다는 것입니다.
한 젊은이가 그곳으로 유학을 갔다가 그 부부를 만났습니다. 그 학생은 그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팬데믹이 닥쳤고, 그 여자는 좀 까다롭고 까다로웠습니다. 아파트를 임대하고 세입자를 구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좋은 세입자를 찾지 못하면 답답하고, 집주인도 좋은 세입자를 찾지 못하면 답답합니다. 그리고 세입자가 좋은 집주인을 찾지 못하면 더욱 답답합니다. 집주인은 감염을 두려워하여 아이를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했고, 아이는 우울증에 빠질 때까지 집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얼마 후, 팬데믹 제한 조치가 완화되자 아이는 산책을 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집주인은 아이에게 흠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아이는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자 아이는 여러 차례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부부는 보증금을 자주 내지 않고 이런 행동을 반복했습니다. 보증금은 수천 달러에 달했을 겁니다. 엄청난 금액이었을 겁니다. 나중에 다른 거주자들도 같은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아이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집주인의 손을 들어주었고, 세입자들은 격노했습니다. 겨우 20대였던 소년은 속으로 "아, 얼마나 분한지! 정말 불행한 일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소년은 자제력을 잃고 부부를 칼로 살해했습니다. 결국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제 집세도 낼 필요가 없잖아요? 더 이상 돈을 벌 걱정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먹을 것도, 살 곳도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보증금도 낼 필요가 없습니다. 남은 인생의 문제들이 완전히 해결된 것입니다.
정말 비극입니다! 분개심과 분노를 품으면 악마가 나타나 지혜를 잃습니다. 악행을 저지른 사람에게 원한을 품으면 금세 당신도 죄인이 됩니다. 왜 인생이 이렇게 힘들어야 합니까? 온갖 병에 걸리거나 다른 질병에 시달리게 되는데, 둘 다 당신을 비참하게 만들 뿐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문제를 찾지 마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제 조언을 따르세요. 쓸데없는 일은 잊어버리세요.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사실 저도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보증금을 냈는데, 누군가 이사를 못 가게 막았습니다. 바로 그런 일이 저에게 일어났습니다. 아, 제 마음은 정말 혼란스러웠고, 아파트를 빌리는 것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정말로 악을 행한다면, 분개심을 품고 삶을 비참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평생 기쁨으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이렇게 살게 하시고, 당신이 하나님을 찾는지 보시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귀신에 이끌려 하나님의 교회로, 귀신에 이끌려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까? 고통을 겪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인간의 삶은 헛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삶은 악을 행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도 고통스럽고, 악을 행하는 것도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도 악을 행하십니다. 레아라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아이가 살해당했습니다. 그녀는 돈도 없고 영향력도 없었습니다. 얼마 전 학교에서 어떤 아이들이 그녀를 괴롭혔고, 그들은 끔찍하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악합니다. 아이가 살해된 후, 노부부는 청원을 했습니다. 돈이 있을 때마다 청원을 했고, 마치 게릴라전처럼 청원을 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남편이 죽을 때까지 청원을 했고, 그녀는 혼자서 계속 청원을 했습니다. 늙을 때까지 청원을 하다가는 어떻게 되나요?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원망으로 가득 찬, 극심한 고통의 삶이었습니다. 청원을 하는 삶은 원망으로 가득 찬 삶, 증오로 가득 찬 마음입니다. 원망은 얼마나 타락한 것일까요?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원망을 품고 있으며, 그들의 마음은 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는 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채셨나요? 끊임없이 원망을 품는다면, 누군가 당신에게 잘못을 저질렀거나, 당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에 대해 원망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한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원망을 품고 있으며, 그들의 마음은 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는 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채셨나요? 끊임없이 원망을 품는다면, 누군가 당신에게 잘못을 저질렀거나, 당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에 대해 원망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한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2. 성경의 말씀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지시리로다.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깊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고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파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향하여 그 이를 가는도다.주께서 저를 웃으시리니 그 날의 이름을 보심이로다.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기어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지간 자를 죽어고자 하나.그 칼은 자기의 마음을 찌르고 그 활은 부러지리로다.여호오께서 완전한 자의 날을 아시니 저희 기업은 영원하리로다.저희는 환난 때에 부끄럽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하려니와.악인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연기 되어 없어지리로다.악인은 꾸고 깊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주의 복을 받은 자는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는 끊어지리로다.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저는 넘어지나 아즈 엎드러짖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붙드심이로다.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영히 거하리니.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르르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라로다.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의인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 그 혀는 말하고 그 혀는 공의를 이르며.그 마음ㅇ[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여호와는 저를 그 손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치 아니하시리로다.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들어 땅을 차지 하게 하실 것이라 악이니이 끊어질 땡0ㅔ 네가 목도하리로다.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토에 선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으나.사람이 지날 때에 저가 없어졌으니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목하였도다.완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결국은 끊어질 것이나.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여호와께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권하심은 그를 의지한 연고로다.(시편37:1-40)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악인과 의인의 사명을 알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이 세상에서 당신의 행하심을 통해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이 얼마나 복된지 알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우리는 이 세상의 악인들을 마치 시들어가는 푸른 풀과 곧 베어질 풀처럼 봅니다. 하나님, 우리를 인도하시고, 당신이 원하시는 길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당신을 따를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악인의 행위에 분개하거나 불의를 행하는 자들의 이익을 부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의 부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혜를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말씀의 배경
다윗은 평생 동안 재판을 했고, 종종 복잡한 사건들을 다루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 범죄자가 끌려왔는데, 그는 20대 청년처럼 잘생기고 예의 바르게 보였지만, 범죄자라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잘못했나요?" 심문 결과, 그들은 이 젊은이가 부부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데이비드는 심문 후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집주인을 상대로 보증금을 놓고 소송을 제기했지만, 집주인은 변호사를 통해 그들을 따돌렸습니다. 판사는 결국 집주인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데이비드는 이 광경을 보고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세상에는 비극이 너무나 많습니다. 며칠 후, 법정이 다시 열렸습니다. 기둥들이 부딪히는 듯한 격론 끝에 죄인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알고 보니 분노를 품은 또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 그들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었습니다. 왜 그들을 죽였을까요? 이런저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분노는 너무나 타락해서 세상에는 언제나 비극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또 같은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는 매일 이런 일들을 겪었습니다.
다윗은 늙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었지만, 의인이 버림받거나 그의 후손이 걸식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구나." 그러나 그가 본 것은 악인의 원망, 드라마 같은 삶뿐이었습니다. 그런 드라마가 매일같이 펼쳐졌습니다. 하루 종일 이런 일을 심판하고, 이런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피곤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국가의 법은 선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국가는 악인의 행실을 철저히 연구해야 합니다. 아무리 연구해도 악인의 영리함을 따라잡을 수는 없습니다. 악인은 얼마나 영리할까요? 솔직히 말해서, 악인은 의인보다 훨씬 영리합니다. 법의 허점을 연구하는 것은 성경을 연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통찰력 있는 일입니다. 아, 이 세상이 정말 악인의 세상일까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보세요, 저는 왜 이렇게 운이 없는 걸까요? 저는 계속 이런 일들을 겪고 있습니다." 당신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왜 자꾸 이런 일들을 마주하게 되는 걸까요?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들을 마주하고 보게 하십니다. 면밀히 분석해 보면, 수많은 멜로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모두 악인들의 원망, 즉 악행으로 이어지는 분노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다윗이 늙어서 할 일이 없던 어느 날 밤 꿈을 꾸었습니다. 망치가 내려치며 악인들이 불려 나왔습니다. "원고, 피고, 하고 싶은 말을 해라." 그렇게 악인들의 원망이 다시 불려 나왔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악인들에 대한 원망을 품는 순간부터 지성은 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 다음 날 아침, 그는 일어나 씻고 옷을 입고 종이와 잉크를 준비했습니다. 그때는 종이가 아니었고, 아마도 양가죽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37편을 썼습니다.
만약 제 생각이었다면, 모두가 읽을 수 있는 교육 자료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읽고 난 후에는 질문을 던졌을 것입니다. 질문들을 마친 후, 아이들은 반복해서 공부하며 어디서 틀렸고 어디서 맞았는지 파악했습니다. 그런 다음 저는 시편 37편을 사용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가르쳤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누군가 악을 행했든 아니든 원망하는 마음을 품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히려 파멸을 초래할 뿐입니다.
이런저런 일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으로 하루하루를 속상해하며 나쁜 것만 본다면 어떻게 선해질 수 있겠습니까?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쁜 것을 볼 때, 저는 믿음에 의지하여 그들의 밝은 미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늙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인의 종말이 있고 의인의 종말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너는 하나님을 경외하라."
다윗이 이 시편을 썼을 때 아마 저와 비슷한 나이였을 겁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분 없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처음 싱가포르에 왔을 때 사기를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수없이 사기를 당했을 겁니다. 부동산 중개인은 제 돈을 가져가고는 제 입장을 대변하지 않았습니다. 집주인은 제 돈을 가져가고는 이사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그런 비극을 막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왜 이렇게 악한 사람들이 많은 걸까요?" "하나님, 대체 무슨 짓을 하고 계세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모른다면 당신의 무지함을 탓할 수밖에 없어요."라고 묻지 마세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부유한지 하나님께 묻지 마세요. 그들이 보응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근시안적이기 때문입니다. 악인이 부유한 것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마세요.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자들이 어떤 이점을 가지고 있는지 묻지 마세요. 당신의 관점은 너무 근시안적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쁨입니다. 인생은 부를 축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행복할까요? 모든 저택 뒤에는 수많은 멜로드라마가 있습니다. 그렇죠? 모든 상장 기업 뒤에는 수많은 멜로드라마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먼 앞날을 보지 못하고 눈앞의 미래만 본다면 근시안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이 지혜를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리아오는 "성공한 사람들의 뒤에는 인생의 부침이 아니라 더러움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면 정상에 오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충분히 나쁜 사람이었을 테니까요. 충분히 잔인하고 사악했을 겁니다.
세상이 이렇습니다. 권력을 쥔 악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부패한 관료들이 이렇게 많지 않았을 겁니다. 이제 저는 그것이 우리에게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부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삶을 요약하며 가장 아름다운 교훈을 우리와 공유했습니다. 그가 아들 솔로몬을 위해 시편 37편을 썼는지,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썼는지 궁금합니다.
상상해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이 시편 37편을 읽고 어떻게 생각할까요? 다윗, 당신은 이런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생각 없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군요. 저는 악을 행하는 것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악을 행하는 것에 화가 난 것입니다. 며칠 전, 저는 다윗을 만나러 갔습니다. 다윗은 망치를 내리치고 그 죄인을 불러냈습니다. 그는 시편 37편을 읽고 악을 행하러 갔죠, 그렇죠?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시편 37편을 읽을 때 우리는 다윗의 간절한 가르침을 듣는 것입니다.
배우고 관찰하고 지혜를 얻으세요
저는 아마 5년 전부터 배움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 왔습니다. 관찰을 통해 모든 문제는 결국 배움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왜 그것이 배움의 문제라고 말할까요? 당신은 그가 지식과 지혜가 부족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 선생님, 요즘 너무 바빴습니다. 완전히 지쳤어요. 시간도 없고, 침대 정리할 시간도 없어요. 제 침대는 돼지우리 같아요.
"뭐 하느라 바쁘세요?"라고 물었더니, 학습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어요. 다른 사람들이 한 시간에 배우는 것을 그 사람은 열 시간이나 걸려서 배우는데, 어떻게 바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한 시간에 여섯 시간이나 해야 하는데, 어떻게 바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지식과 지혜, 그리고 관찰력이 부족해서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해요. 관찰과 학습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없어요.
자,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고, 그에게서 배우고, 그를 관찰해 보면, 젊든 늙든 의인이 버림받거나 그의 후손이 떡을 구걸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많은 것들이 배움을 필요로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배워야 할까요? 배움이란 정확히 무엇일까요? 배움이란 결국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이라는 걸 알고 계신가요? 독선적인 사람은 배우기 어려워요.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을 쉽게 과장합니다. 따라서 배우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벽을 긁어내는 전문가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벽을 긁어내고 싶다면, 매끄럽게 벽을 긁어내는 전문가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삶에 얽매인 기분이라면, 기쁨을 느끼는 사람에게서 빨리 배우세요. 저를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 무언가를 발견할 것입니다. 이 사람의 일은 꽤 흥미롭습니다. 그는 결코 서두르거나 허술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꼼꼼하고 서두르지 않고 처리합니다. 그는 많은 것을 성취하고 많은 문제를 해결합니다. 제가 모든 것을 계획하기 때문입니다. 계획 없이 그가 어떻게 무언가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제가 계획을 세울 수 없다면, 계획하는 법을 배우겠습니다.
계획을 세울 수 없다면, 계획을 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계획은 더욱 무능해질 것입니다. 서두르는 것을 피할 수 있을까요? 분명히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두르면 기쁨을 잃고 모든 일에 무능해집니다. 오히려 당신은 자신이 유능하고 많은 것을 이뤘다고 생각하며 독선적이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노력은 중요하지 않고 성취만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아시죠? 노력은 쓸모없습니다. 처음부터 잘못하면 다 지칩니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보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보응을 놓치지 않겠지만, 당신은 그것을 볼 만큼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이제 배움을 마쳤으니 사람들의 결과를 살펴보겠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누군가 실수를 하고 배우지 않고 독선적이 되면 성경 공부 노트를 쓰느라 너무 바빠서 식사를 거르게 됩니다. 얼마나 비효율적일까요? 아무리 작은 프로젝트라도 하나조차 너무 어렵습니다. 그 계획은 두 손가락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 손에 나눠서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압도당했을 때, 실수를 했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무지는 정말 치명적이며, 독선과 결합되면 학습을 방해합니다. 그러니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은 학습된 것입니다. 학습은 당신이 압도당하지 않도록 보장해 줄 것입니다. 당신은 그 산업과 분야에서 매우 경쟁력이 있고, 분명히 앞서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습 없이 스스로 해낸 것은 필연적으로 엉망이 될 것입니다.
데이비드는 공부하고 연구했으며, 여호와를 기뻐하고 그분 안에서 기쁨을 찾기로 결심했습니다. 기쁨이 많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많은 병을 앓습니까? 항상 불안한데 어떻게 건강할 수 있습니까? 왜 조울증이 있고 숨이 막히는 것 같습니까? 하루 종일 공부하지 않으면 어떻게 숨이 막히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중국 운명론은 학습의 신학입니다.
그렇다면 분노를 품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데이비드는 그것을 철저히 연구했습니다. 원망은 쓸모없습니다. 오직 죄를 짓는 것만이 유익합니다. 원망은 큰 구덩이와 같습니다. 뛰어들고 싶으면 평화롭게 뛰어들지만, 결국 불안해집니다. 뛰어들 때는 평화를 느끼지만, 일단 들어가면 평화를 느끼지 못합니다.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 이렇게 바쁘고 체계적이지 못한지 분석해야 합니다. 계획이 없어서일까요? 계획 없이 어떻게 혼돈을 피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 한 시간을 위해 열 시간을 일한다면, 당신은 바보가 아닐까요? 그렇지 않나요?
원망은 자신을 파괴합니다
향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시편 37:1-2)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시편 37:8-9)
성급한 마음이 너를 부패하게 하고 너를 불안하게 하느니라. 네가 백 살까지 산다 해도 삼만 일이 넘으니, 2년의 육아는 허비되고, 그 뒤에는 몇 년의 학업과 직장 생활, 그리고 은퇴 생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먹고 자는 데 조금 시간을 빼면 나머지는 원망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분노로 곪아 터지는 것은 자신을 부패시킬 뿐입니다. 그러니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선생님, 선생님은 많이 말씀하시지만 제 말은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혼란스러워지면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다가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됩니다. 왜 마음속에 분노가 있는 걸까요? 제가 그들을 멍청하다고 부르고, 실제로 그렇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이 너무 멍청하고 비효율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효율성을 높여야 합니다. 저는 그들이 너무 멍청하고 비효율적이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효율성을 높여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어요. 아무것도요. 그는 오직 자기 생각만 하고, 말도 엄청 많이 해요. "아, 난 이렇게 느껴." 그가 말하죠. "그런데 그렇게 되는 거야." "아, 내가 틀리지 않았어, 괜찮았고, 꽤 옳았어." 그는 말이 많아요. 그러면 제가 "이 모든 말의 요점이 뭐야?"라고 묻죠. 아주 좋은 말이지만, 쓸모없어요. 요점은, 당신이 한 말은, 요점이 뭐야? 완전히 쓸모없다는 거예요.
그들은 그저 헛소리만 하고,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하고, 상황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거든요. 그러니 절대 독선적으로 굴지 마세요. 혼란스러울 때는 배우고, 혼란스러울 때는 상황을 파악하세요. 아주 간단해요. 감정이 뒤섞이면 사람 전체가 혼란스러워지죠.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분노를 품고 있다가, 분노에 차서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악행을 저지른 후에는 결국 감옥에 가게 되는 거죠.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악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너희의 타락 또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만약 원망을 품는다면, 그럴 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일들을 처리하십니다. 그리고 그 처리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것들이 더럽고 혼란스럽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원망을 품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충분히 오랫동안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아직 그를 벌하지 않으셨는지 궁금하실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벌하실 것이지만, 당신의 삶은 너무 짧았습니다. 주님 안에 잠잠히 머물고, 참고 기다리며, 그들의 행실이 형통하고 악한 계략이 성공한다고 해서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하고 푸른 채소와 같이 시들 것입니다.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들어 땅을 차지 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목도하리로다.(시편 37:34)
보시겠습니까?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서두르지 마십시오. 왜 악을 행하십니까? 서두르면 그분께서 당신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보호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은 당신에게 개입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단지 연극일 뿐이며, 각자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무대 뒤에서 분장이 벗겨지면 모든 것은 또 다른 연극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연극을 보거나 연기할 때, 너무 얽매이거나 너무 깊이 관여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지금 이 연극을 하고 내일 저 연극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은 우리 마음에 지혜를 드러내고, 의인과 악인의 종말을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악인의 종말을 주의 깊게 살펴보십시오. 수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악인들이 없었다면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시기를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분개심을 품으라는 것이 아니라, 침착함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관객석에서 연극을 볼 때 너무 흥분하지 마십시오. 시작이 실패하면 나머지 연극이 어떻게 진행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지혜를 분명히 볼 수 있도록 연극을 기획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본문 전체를 읽어보면 악인과 의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그분 앞에서 의롭게 되고,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의인이 버림받는 것을 보지 못하였고 다윗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의인의 후손이 구걸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는 좋은 것이 부족함이 없으리라.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느니라.
흠 없는 자를 살피고 정직한 자를 살피라. 화평을 베푸는 자에게는 아름다운 결말이 있음이로다.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고 악인들은 결국 끊어지리라. 그러나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니 그는 환난 날에 그들의 산성이시니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 구원하시며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시니 이는 그들이 여호와께 피함이니라. (성경 37:38-40) 다윗은 그의 삶에서 수많은 멜로드라마를 목격했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그분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의 운명을 보았습니다. 그는 많은 사건을 재판했는데, 모두 이런 종류의 사건들이었습니다. 그의 최후는 무엇이었습니까? 다윗은 믿음으로 말했습니다. 악인은 결국 끊어질 것입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분을 신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악을 행하면 내일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농담입니까? 저주를 뿌리고 내일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저주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일이 부족하면 하나님을 깊이 두려워해야 합니다. 병들면 하나님을 깊이 두려워해야 합니다. 많은 일들이 우리 안에 있는 악 때문에 일어나는데, 그중 상당 부분은 심판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경험한 악을 심판하거나,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행한 악을 심판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심판하면 우리는 악해지고 버림받습니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결론
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악 때문에 독선적으로 행동하거나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두려움입니다. 고난을 겪을 때 악한 자들이 당신을 해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당신의 방패가 되시어 우리를 고난에서 건져내실 것입니다. 원망만 품는다고 고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원망은 고난을 가져올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악한 자들로부터 건져내실 것입니다.
이제 이해하셨나요? 원망하는 것만으로 악한 자들로부터 건져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악한 자들로부터 건져내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께 피난처를 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사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기쁜 삶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 나를 이용한다면, 그들이 이용하고 축복하게 두어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돈에 희망을 두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그분을 경외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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