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빌립보서0-

필기를 참고

1.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빌립보서 2장을 읽어 봅시다. 빌립보서 2장은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사는 방법을 아시나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와, 좀 무리하지 않나요?

저는 처음 그리스도인이 된 후, 주님을 간절히 찾고 신학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교수님이 아주 열정적으로 강의하셨는데, 저는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라면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실까요?"라고 질문했습니다. 교수님은 "저는 예수님이 아닌데,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대답은 제가 질문에 답하고 나서 교수님에게 질책을 받던 때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어쩌면 저도 교수님에게서 이런 가르침을 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질책을 받고 나니, 세상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더 이상 공부할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내가 여기서 신학을 공부하는 걸까? 예수님의 생각을 알아야만 했습니다. 이 생각은 제가 예수님을 처음 믿은 날부터 떠올랐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지만, 예수님의 생각을 모릅니다. 도대체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걸까요? 완전히 헛소리 아닌가요? 신학이 뭐죠? 무슨 요점이 있는 걸까요?

사실, 우리는 예수님의 생각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생각하신다면 우리도 똑같이 생각해야 하고, 우리도 똑같이 보아야 합니다. 제가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다른 것을 믿었다면, 저는 그것을 부지런히 탐구했을 겁니다. 마르크스를 믿었다면 마르크스의 생각을 연구했을 겁니다. 석가모니를 믿었다면 석가모니의 생각을 연구했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노자를 믿었다면 노자의 생각을 알아야 했을 겁니다. 그러니 그에게서 배우도록 합시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 수 있게 해 줍니다. 흑백의 무상함처럼 산다면, 만약 당신이 소머리 말얼굴처럼 산다면, 만약 당신이 작은 악마처럼 산다면—왕이라는 사람은 왕 작은 악마라고 불리고, 리라는 사람은 리 작은 악마라고 불린다면—그가 무슨 영광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말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죽은 후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당신의 것으로 삼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지 않는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저는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스스로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들이 틀렸다고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잘못하신 것이 아닙니까? 만약 당신이 그렇게 틀렸다면, 예수님께서도 당신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시겠습니까?

자, 제가 여러분에게 이것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맏아들이시어 우리에게 영생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기쁨의 길을 열어 주셨고, 영광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내 흠 없는 자녀가 될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성경을 읽어 왔고, 그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 성경이든 중국어 성경이든 주의 깊게 읽어 보면 같은 메시지를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이 말씀을 명심하십시오.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있다면, 얼마나 가지고 있습니까? 저는 한동안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세상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형제자매가 얼마나 될까요? 제 생각에는 우리 중 옛 자아를 진정으로 극복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한다면, 모두 절망할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옛 자아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아시다시피, 빌립보 교회는 비교적 좋은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썼을 때, 그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참된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속지 마십시오. 왜 육신에 속한 사람들에게 이 부분을 언급했을까요? 전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빌립보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여기서 멀지 않지만, 고린도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이 꽤 훌륭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낼 수 있을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어떻게 살아내시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증거를 주셨습니다.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이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6-11)

와, 정말 잘 말씀하셨네요. 이해하셨나요? 이 구절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지만, 자신을 낮추시어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시면서도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습니다. 높고 권능이 있으시기보다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분은 사람이 되시며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사람이 되는 방법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어떻게 사람이 되셨을까요? 인간이시면서도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심지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본보기가 되셨습니다. 인간이셨기에 인간의 형상을 취하셨습니다.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이는 그분이 반드시 겸손해야 했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살아야 할 모습이고, 영광스럽게 살 수 있는 방법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스스로 위대하다고 생각하지만, 겸손하십시오. 그것은 골치 아픈 일이며, 그들은 그 축복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자신을 낮추고 순종하십시오.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저는 순종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여러분이 순종할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처럼 살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처럼 살고 싶다면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모든 것을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심지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여러분의 삶이 끝났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가장 높은 곳으로 높이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 점을 이해해 주십시오. 저는 여러분에게 영적인 높이를 오르라고 자주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말씀을 조금 읽고 붙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금만 읽고 붙잡으면 영적인 높이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여러분은 무엇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의 삶은 헛되고 헛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것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면, 여러분은 어려움에 처해 있음을 압니다.

사람의 삶은 헛됩니다. 말씀드리건대, 이것은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영적인 높이를 오르고 싶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명확하게 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것 없이는 이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삶이 실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건대, 삶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헛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돈이 실재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환상입니다. 누군가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람처럼도 유령처럼도 살지 않는다면, 그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이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어떻게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요? 바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다스리고, 내일은 마귀가 다스린다고 생각한다면, 오늘은 인간이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내일은 마귀가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모레는 하나님이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결정한다면, 이 길을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가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는 어떤 일을 마주친다고 가정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것일까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왜 그럴까요?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이런 일을 경험하게 하시는 걸까요? 우리는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유령처럼 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처럼 살고 싶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쉽지 않죠?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깨닫고 나면 영적인 높이에 도달하게 됩니다. 와, 순식간에 높이 날아오르게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자신을 비우십시오.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오, 당신의 자존심, 당신의 존엄성, 뭐든 간에, 결국 당신은 모든 존엄성과 영광을 잃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형체를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이시면서도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심지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서른셋의 나이에 돌아가셨다고 해서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영원 속에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람이 세상적인 것에 마음을 쏟는 순간, 파멸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분명 영적 위계의 가장 낮은 단계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단계가 18단계가 아니라고 하셨습니까? 아니요, 0단계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18단계에 도달해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 삶을 살면서 돈을 우선순위에 두면, 비로소 깨닫게 될 것입니다. 70년, 80년, 80년, 90년, 그게 다입니다.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 버립니다. 마치 사진 앨범을 넘기는 것과 같습니다. 한 노인이 90대에 돌아가셨습니다. 죽기 전, 그는 사진 앨범을 꺼냈습니다. 그는 1931년에 태어났고, 지금은 2025년입니다. 눈 깜짝할 새에 94년이 흘렀습니다. 94년은 음력으로 95년입니다. 앨범을 넘기자 흑백 사진들이 노랗게 변해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앨범을 다시 넘기자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더 많이 넘기면서 그는 많은 것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은퇴했습니다. 몇 페이지 만에 그는 60대, 70대, 80대, 90대가 되었고, 마침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단순히 벽에 걸었던 것이 아니라, 걸어두었습니다. 아, 얼마나 빨리 사라졌는지.

그렇다면, 이 세상의 삶이 헛되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헛됨을 진정으로 간파할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면 걱정이 줄어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걱정하십니까? 당신의 영적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입니다. 너무 낮기 때문일까요? 당신은 그저 땅을 파고 있을 뿐입니다. 파고, 천천히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으로서, 강한 자들을 따르십시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에게서 배우십시오. 순종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지만, 빌립보서에서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바로 그 순간에 승리를 거두셨다는 것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꿰뚫어 볼 수 있다면, 당신의 일이 당신에게 문제가 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상사가 당신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으시는 것을 진정으로 안다면, 와, 이 모든 것이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높이실 것을 진정으로 안다면, 당신은 여전히 그렇게 애써야 하겠습니까? 아니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삶의 문제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모든 것을 우리 발 아래 두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문제는 사소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십시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얼마나 가지고 있습니까?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빌립보서 2:5)

이해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가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순종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시므로 아무도 여러분의 치즈를 가져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시기에, 여러분은 그분을 우선시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말을 할 때면 너무 공허하게 들리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어떻게 하면 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요? 사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이 되는 법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삶을 사는 것, 그 사람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말입니다. 인간도 아니고 유령도 아닌 삶을 살지 마십시오. 그건 비극적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순종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순종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똑똑해집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왜 그렇게 멍청하니?"라고 물으면 당신은 "아, 제가 멍청하네요."라고 대답합니다. "뭐가 문제야? 나를 얕보는 거야?"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들어보세요. 갑자기 사람의 IQ가 0으로 떨어지고 정말 멍청해집니다. 누군가 "당신은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난 바보가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 똑똑하다고 생각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사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러므로 순종은 매우 중요합니다.

조언을 좀 드리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였습니까? 그는 더 높은 존재였습니다. 인류 역사상 예수 그리스도를 능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분의 제자로서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누구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까? 그분이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셨으니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은 실제로 노력의 복음입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돈을 사랑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분은 육신에 살지 않고 영원 속에 사셨기 때문에 죽음에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며, 생명을 주는 것은 영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 세상, 육신 안에서만 살면서 그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실패할 운명입니다. 왜 그럴까요? 당신은 옛 자아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옛 자아를 극복하면, 삶의 문제에 무관심해집니다. 이것을 영적인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헛소리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안에 참으로 사신다면,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왜 놀라운 일일까요? 바로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면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당신은 돈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가정 문제, 자녀, 남편, 아내 등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당신의 생각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과 같다면,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생각과 의도는 세상의 논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저 헛된 말이 아닙니까?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의 논리가 여러분 안에 있다면, 여러분은 분명 매우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분명 매우 총명할 것입니다. 분명 매우 유능할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지닐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여러분이 탐구하고 실험해 보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마음과 한 영이 되십시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자비와 긍휼이 있거든,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고 한 뜻을 이루어서 내 기쁨을 충만하게 하십시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자기 일만 돌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빌립보서 2:1-4)

이 글을 읽고 "그게 단점이 아닌가?"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그게 단점이 아닌가?"라고 묻고, 또 "그게 문제 아닌가?"라고 묻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죠. 모든 형제자매가 같은 생각을 가졌다면 누가 그렇게 했을까요? 바로 하나님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고, 저는 제 생각을 가지고 있고, 당신은 당신의 생각을 주장하고, 저는 제 생각을 주장하고, 우리는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논쟁합니다. 저는 "그만하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둘 다 38살이나 23살입니다. 당신은 뭘 알겠습니까? 당신은 그저 작은 사람일 뿐인데, 왜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니 같은 생각과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교회는 이러한 분열의 영과 싸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다른 생각과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점차 떠났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떠났을까요? 그들은 악령에게 끌려갔습니다. 나이든 어머니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고, 교회는 점점 더 연합되었습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치열하게 싸운 초기 영적 전쟁들 중 일부였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생각과 마음은 다양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꿈과 추구하는 것이 있고, 당신에게도 각자의 꿈과 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고 싶어 하지만, 그분은 당신 사역의 마음을 갖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길을 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실까요? 악령을 보내 그들을 데려가십니다.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교회는 더욱 순수해지기 시작합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누군가 떠날 때 불안해합니다. "불안하지 않으세요?"라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예전에는 불안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주권자이심을 알고, 모든 형제자매가 같은 생각과 마음, 그리고 같은 가치관을 갖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으로 하나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모든 일에 분파를 이루거나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마십시오. 그저 겸손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겸손을 인간의 겸손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겸손은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아무도, 심지어 하나님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할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자,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여기는 걸까요? 당신이 나를 보고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내가 당신을 보고 내가 당신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면,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싸우지 않나요? 만약 그렇다면, "이건 옳지 않은 것 같아." 네, 저도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자,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 볼까요? 정말 멋지지 않나요?

제가 "이렇게 생각해, 38, 23이라고 생각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38, 22"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아니, 38, 27"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그들이 똑같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모두가 38, 24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틀릴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 틀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있다면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요?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한다면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요? 그러니, 절대 하나님께서 못 하실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분명히 하실 수 있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건 사람들뿐입니다.

그러니 설교자라면, 제가 빌립보서에서 설교하는 것을 듣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세요. 교회의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도록 요구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38세에 23세인 사람도 있고, 38세에 22세인 사람도 있고, 38세에 21세인 사람도 있고, 38세에 20세인 사람도 있습니다. 38세에 270세인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기준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삼읍시다.

자, 그만하자. 당신 얼굴을 봐. 왜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닮은 점이 하나도 없어? 응, 나도 당신 얼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표정을 별로 못 봐. 야, 우리 둘 다 똑같잖아. 손을 잡거나, 아니면 그의 어깨에 팔을 둘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준을 사용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것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것에 관심이 없으시다는 뜻입니다. 당신의 아들이 대학에 갈까요? 아들이 결혼할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것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분이 무엇에 관심이 있으시겠습니까? 영원에서 영광의 면류관이 우리를 위해 예비되어 있습니다. 사탄은 발 아래 짓밟힐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높여져서, 이 세상에서 아래가 아니라 위에, 꼬리가 아니라 머리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십시오. 물론 조금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말씀드리건대, 부주의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십시오. 이 말씀을 듣고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과 떨림으로 믿음에 이르렀습니까? 하지만 부주의하게 믿음에 이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정밀한 계획입니다. 매우 정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정밀한 프로젝트입니다." 이러한 이해가 없이 그저 마지못해, 멍하니,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주님을 믿는다면 어떻게 효과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일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공중으로 날아오를 수 있게 해주는 활공 프로젝트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당신이 너무도 아무것도 모르고 멍하니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봐, 나는 돼지인데 날 수 있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돼지는 바람구멍에 서 있기 때문에 날 수 있지만, 바람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돼지가 바람구멍에 있다 하더라도 날 수 있지만, 바람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지거나, 어쩌면 쿵 소리도 없이 푸른 하늘로 녹아내릴지도 모릅니다. 만약 이것이 떨어진다면, 세상에! 정말 보기 끔찍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높이 날아오르게 하고,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 꼬리가 아니라 머리가 되어 모든 것을 발로 짓밟게 합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무지하고, 어리석고, 부주의하다면, 정말 위험합니다. 당신이 짓는 집은 무너질 것입니다. 당신이 짓는 다리는 무너질 것입니다. 당신의 무지함으로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지은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고 오직 마귀만 있습니다. 당신의 예배는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고 그분의 진노를 초래합니다. 그것은 치명적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태곳적부터 꼼꼼한 준수와 엄격한 실천을 강조해 왔습니다. 저는 엄격하지 않은 사람들을 혐오합니다. 당신이 더 엄격할 수 있습니까? 만약 당신이 부주의한 태도로 산다면, 잊어버리십시오. 당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십시오. 같은 마음, 같은 마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려움과 떨림이 필요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두려움과 떨림,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배워야 할 것입니다. 재난을 한 번, 두 번, 세 번 겪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계속 나아가십시오. 옆길로 새지 말고 앞만 바라보십시오. 계속 나아가다 보면 푸른 하늘 속으로 녹아내릴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재난을 겪더라도 하나님을 탓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이러한 정밀 공학적 사고방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정밀 공학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제가 나누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산둥성, 허베이성, 동북부 지역과 같은 지역에는 정밀 공학 기술이 많지 않습니다. 저는 산둥성, 허베이성, 산시성 출신의 소수의 사람들을 만나봤는데, 그들은 정밀 작업을 할 능력이 없습니다. 옛날 중국에서 우리가 어렸을 때 상하이 시계와 스위스 시계는 매우 비쌌습니다. 상하이 시계는 200위안이 넘었습니다. 월급이 약 40위안이었고, 10위안을 저축하는 것도 좋은 투자로 여겨졌습니다. 상하이 시계를 살 만큼 저축하는 데 2년이 걸렸는데, 그 정도였습니다.

상하이, 일본, 장쑤, 저장 지역 사람들은 왜 그렇게 정밀하게 일할까요?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상하이 시계의 정밀 공학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엄격함과 꼼꼼함이 필요하며, 이를 철저히 준수해야 합니다.

엄격함 없이 어떻게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으니 구원받았습니다."라고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되지 마십시오. 그것은 올바른 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순간,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큰 원수를 선택한 것입니다. 제가 '위대하다'고 말할 때, 저는 진정으로 위대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귀는 강하고 강력합니다. 그렇다면, 만약 당신이 그에게 짓눌리려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당신을 보호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빌립보서 2:12)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소를 채찍질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빌립보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더 높은 영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것이지,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결코 마지못해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못해 하는 사람들을 피할 방법은 없습니다.

저는 또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저는 정밀 공학 교육을 받았습니다. 대학 첫날, 강의를 들었는데, 교수님은 정말 훌륭하셨습니다. 그런데 작은 나사 때문에 비행기가 추락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현대 비행기는 모두 컴퓨터로 작동합니다. 졸업 후, 제 반 친구 한 명이 다른 항공기 제조업체로 발령받았습니다. 얼마 후, 그가 업무차 저희를 방문했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원생이었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 시험 조종사는 정말 위험한 직업이야. 30%의 위험이 따르지. 비행기를 탈 때마다 30%의 확률로 죽을 거야. 정말 끔찍해!"

그는 비행기가 착륙하려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활주로에 가까워지자 갑자기 비행기가 뒤집혔습니다. 그리고 스파크가 일어나 조종사의 머리가 날아갔습니다. 비극적이죠? 코드를 잘못 입력해서 양수 값을 음수 값으로 잘못 입력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작업을 마치고 나서 저는 "맙소사! 코더가 조종사를 죽였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제 일에 매우 엄격하게 임했습니다. 정말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 엄청난 책임에 대해 조금씩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을 죽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어그러지고 순종하지 아니하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십시오.

(빌립보서 2:13-18)

형제자매 여러분,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편안한 환경이나 아주 깨끗한 온실이나 먼지 없는 옷을 입고 칩 제조 공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더러운 세상, 이 비뚤어지고 반항적인 시대에 우리는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이 공학이 정교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칩, 하드 드라이브, 심지어 항공우주 공학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정교합니다. 훨씬 더 발전된 것이 아닙니까? 오, 제 마음은 형제자매들이 제 말을 들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에서 너무, 너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마주치는 일들은 단지 우리 안에 세상의 더러움을 너무 많이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더러움을 너무 많이 품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 불편함을 느낄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당신의 삶이 비참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당신은 제게 말하고 싶지 않지만, 저는 알 필요가 없습니다. 왜 우리는 비참하고 불행할까요? 우리는 인간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비참한지요. 우리 마음은 더러움으로 가득 차 있고, 문제들은 하나둘씩 끝없이 이어집니다.

이 어려운 경전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사명을 다합니다. 당신은 성경을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경전"을 암송하고 있습니다. 모든 가정에는 각자의 어려운 경전이 있습니다. 누가 당신에게 그것을 암송하라고 했습니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습니까? 이 어긋나고 패역한 세대에서 당신은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의 내면을 깨끗하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당신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하나님은 당신의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A와 B를 선택할 수 있고, 옳고 그름을 생각할 수 있으며, 세상의 논리에 따라 행동할지 하나님의 논리에 따라 행동할지 모릅니다. 결과는 당신께서 아십니다.

누군가 고통받고 있다면 당신의 마음이 증거하고, 하나님의 영도 증거합니다. 단순히 구호를 외치는 것은 소용없습니다. 정밀 공학자의 마음으로 진실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이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네, 우리는 진실로 노력해야 합니다!

이 어그러지고 패역한 세대에서 우리는 더러움에 물들기 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보물이 적고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보물이 될지 쓰레기가 될지 선택하십시오. 밝은 빛처럼 빛나 생명의 길을 밝히십시오. 보라, 이것이 하나님의 길이다!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여러분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동행했습니다. 그들이 왜 바울과 동행했는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바울과 함께 갇혔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묻습니다. 여러분은 일을 포기하시겠습니까? 네. 손해를 보셨습니까? 재정적 손실이 있었습니까? 목숨이 위험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19-30)

정말 아름다운 구절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풀려날 예정이었지만 빌립보 사람들을 깊이 걱정했습니다. 왜 그렇게 걱정했을까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바울이 그들을 걱정했을까요? 이유는 무엇일까요? 빌립보 교회가 에바브로디도가 자기 교회 회원인 것을 알고 바울을 찾아갔다가 병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에바브로디도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요? 그는 고향인 빌립보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했습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꽤 흥미롭습니다. 바울은 그를 비난하거나 "왜 이렇게 늙었니?"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향수병에 걸렸고, 너무 향수병이 심해 병이 들었으며, 그의 생각은 악령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는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바울은 그를 섬겼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섬김의 과정 전체는 바울의 말 속에는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다. 바울은 그를 위로하고 재빨리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 여정은 매우 길었습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는 향수병에 걸렸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은 있지만 힘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을 돌보기 위해 빌립보에서 로마까지 갈 능력과 용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빌립보에는 바울을 만나러 로마까지 오지 않는 형제자매들이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했을까요? "내 마음을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정말 보고 싶어. 에바브로디도만 고향을 그리워하며 돌아가고 싶어 해. 그리고 디모데도 있어. 내가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 디모데에게 빌립보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만나서 내 안부를 전하라고 했지.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말해 줘. 너무 보고 싶어."

그는 무엇을 걱정했을까? 그들이 악령에게 사로잡혀 영적 수준이 아직 조금 낮은 게 아닐까 봐 걱정했어. 왜? 바울은 그들의 생각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생각해 봐. 비교적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을 돌보기 위해 로마까지 오려고 했지만, 여전히 고향을 그리워했어. 다른 상황들을 생각해 봐. 여전히 꽤 걱정스러운 일이지.

바울의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자신과 하나님을 바라보면 기뻤을 것입니다. 하지만 형제자매들을 생각하면 슬프고 비참해졌습니다. 이게 무슨 논리입니까? 세상에. 형제자매들은 정말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안에는 세상의 논리가 너무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저는 이 세상, 육신, 그리고 가족 관계의 제약을 극복하고 싶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바울이든, 디모데든, 에바브로디도든, 그들은 여전히 그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준을 조금 낮춰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빌립보서는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에바브로디도가 병들었고 바울도 거기에 있었는데 왜 그를 고쳐주고 구원해 주지 않았을까?"라고 말합니다. 그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에바브로디도가 향수병에 걸렸고, 그 때문에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실제로 이 문제를 마음과 생각으로 깊이 생각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정말 감동적입니다. 지금은 그때와 다릅니다. 요즘은 비행기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10시간에서 20시간 정도 걸립니다. 그 당시에는 몇 달씩이나 걸렸습니다. 가족을 만나기도 힘들었습니다. 왜 집이 그리울까요? 아내와 아이들이 걱정됩니다. 아, 그가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해, 여러분이 저를 위해 공급해 주시지 않은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거의 죽을 뻔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빌립보 교인 여러분, 행간에 담긴 뜻은, 여전히 두려워하고 떨며, 여전히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인 여러분, 비록 좋은 교회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되기에는 아직 거리가 멉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형제자매들 중 많은 이들이 여전히 그러한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생각해 보고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이 모든 일들 중 하나님의 역사가 아닌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 마음 속에서 역사하지 않으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부정적인 일을 겪을 때조차도,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쁨으로 가는 길입니다. 누군가 이러한 것들을 극복할 수 있다면, 분명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기쁨으로 살 수 있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세상의 논리 체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기쁨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끊임없이 이것저것에 얽매이고, 끊임없이 악령에게 시달립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들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받아들인다면, 설령 이러한 것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하더라도 더 이상 우리 마음에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 드려졌습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러한 마음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진정으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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