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시편 시리즈(6)-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꼐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필기를 참고
1.서론
a. 하나님은 사람 자신이 아니라 태도를 소중히 여기십니다.
b.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용서하실 수 없으며, 마귀는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c. 다윗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슬퍼하고 회개했습니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길러진 그의 성격적 특성이었습니다.
d. 다윗은 모든 것을 바로잡는 것을 좋아했고, 그 덕분에 자라면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e. 부드러운 마음은 쉽게 적응합니다. 겸손하고 통회하며, 자신이 잘못한 일을 항상 깨닫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f. 지혜로운 사람은 잘못한 일을 바로잡습니다.
g
. 다윗을 본받아 지혜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2. 성경의 말씀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망하소서.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리 제하소서.대저 나는 내 죄과르르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꼐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리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하나님이요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영을 새롭게 하소서.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기뼈아니하시나이다.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꼐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성을 쌓으소서.그 때에 주꼐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시편51:1-19)
3. 기도
함께 기도합시다. 지금 마음을 준비하십시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다윗입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축복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지금 마음을 준비하시고 저와 함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 마음이 당신께로 돌아오게 하소서. 우리가 부드러워지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고집하지 말고, 더 이상 어리석음에 집착하지 말고, 더 이상 무지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우리는 종종 실수를 하지만, 슬픔과 회개의 마음은 거의 찾지 못합니다. 하나님, 오늘 제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해 주셔서 제 잘못을 깨닫고 의로운 영을 되찾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제 바꾸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러한 변화는 제 태도뿐 아니라 크고 작은 모든 문제에서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당신의 형상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만약 당신이 저를 기뻐하신다면 오래전에 제게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드리는 것은 슬픔과 회개의 마음입니다. 하나님, 저는 아직 당신의 형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지금 저를 바로잡아 주시고, 저를 변화시켜 주십시오. 주님, 당신은 저의 구원의 하나님이시며, 영원히 저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저를 강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 저는 평생 주님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 성경말씀의 배경
a. 다윗의 성찰: 그는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며 죄책감을 느꼈고, 비난을 받자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b. 태도를 바로잡으십시오. 이성이나 설명 없이 실수를 바로잡으십시오.
5.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나 악령을 끌어당깁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회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6. 하나님은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a. 우리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재앙을 불러옵니다.
b. 죄는 우리 앞에 있으며, 악령은 종종 우리를 괴롭힙니다. 우리가 죄책감을 느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7. 하나님은 슬픔과 회개의 태도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자신의 더러움을 드러내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슬픔과 후회에 빠지게 됩니다.
8. 하나님은 내면의 정직함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하며, 그분을 속이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번 주 주제는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입니다. 이 설교가 특히 좋은 이유는 오랫동안 우리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종종 꽤 괜찮은 기분을 느낍니다. 일단 기분이 좋아지면, 리더에서 동료로, 동료에서 목사로, 목사에서 부목사로, 부목사에서 형제자매로,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우리 모두는 꽤 괜찮은 기분을 느낍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납니다.
최근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우리에게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안주하고 다정하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바로 태도입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사람들의 태도를 보고 판단하십니다. 그분은 그들의 태도를 보고 사람들을 선택하십니다. 회사들은 그들의 태도를 보고 사람들을 고용하고, 태도는 많은 일의 결과를 결정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능력이나 헌신, 아름다움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십니다. 키가 크고, 잘생겼고, 부유하고, 아름다운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작은 실수를 하든 큰 실수를 하든 개의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당신의 태도입니다. 이는 기업과 교회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윗이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와 강제로 결혼시켰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밧세바가 임신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아가 전쟁터에서 돌아와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고 다시 전쟁터로 돌아갔다면, 그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죠?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을 때, 왜 그토록 다윗과 닮았을까요? 모두가 궁금해했습니다. 우리아는 검은 피부를 가졌고, 다윗은 밝고 부드러웠습니다. 그런데 왜 점점 더 다윗과 닮아가는 걸까요? 다행히 당시에는 친자 확인 검사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와 결혼했습니다. 이야기는 끝나야 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있는데, 악령 무리가 나타나 "다윗, 너는 정말 악하구나!"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악령 무리가 나타나 "네가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와 결혼했구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마치 성가대처럼 다양한 목소리로 다윗의 죄를 찬양했고, 악령들은 기뻐했습니다.
다윗은 이 순간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는 눈을 뜨든 감든 악령 무리, 수많은 목소리들을 보았습니다. "다윗, 너는 끔찍해! 너는 끔찍해! 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어." 다윗이 "나는 비난과 저주를 끊겠다! 물러서라! 소용없어. 소리쳐도 소용없어. 형제자매들이여, 피를 흘린 후에는 악령들이 반드시 너희를 쫓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던가요?
하지만 다윗은 마음속으로 "나는 회개하고 변화하겠다."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변했을 뿐만 아니라 시편 51편까지 썼습니다. 우리가 논의하는 주제는 "하나님, 당신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입니다. "내가 변하리라"는 것은 태도입니다. 당신은 그가 우리아를 죽였다고 해서 악령들이 하루 종일 그를 괴롭혀 사울처럼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입니다. 다윗은 미쳐버렸을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이 순간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았다면, 그는 이미 망가졌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잘못되었을 때, 왜 그랬는지 반복해서 제게 설명합니다. 그들은 변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아, 정말 속상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설명하는 겁니까? 설명이 당신의 잘못을 정당화한다는 겁니까?
다윗이 평범한 사람처럼, 평범하고 어리석은 지구인처럼 행동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하나님, 저를 탓하실 순 없습니다. 보세요, 그녀가 낮에 거기서 목욕을 했고, 그걸 저에게 보여줬어요. 그 후로는 제가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날 저는 구기자가 들어간 양고기 수프 한 그릇을 마셨는데, 아, 정말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사람을 보내 그녀를 데려왔고, 우리는 성관계를 가졌고, 그녀는 임신을 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어떻게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죽일 수 있었겠어요? 제 잘못이 아니었는데."
다윗이 하나님께 그렇게 말했다면, 그는 끝장이었을 겁니다. 다윗은 분명 사울의 병, 정신 질환에 걸렸을 겁니다. 사실, 그 기간 동안 그는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와 결혼했고, 모든 일은 끝났지만, 정신 질환의 영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 질환과 우울증이 극도로 고통스러운 상태라는 것을 모르고 있죠? 고통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는 걸 이해하시겠어요? 엉덩이 통증, 무릎 통증, 목 통증, 두통 같은 게 아닙니다. 아무 문제도 없는데 극심한 고통입니다.
어떻게 악마가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왜 왔을까요? 다윗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백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허물을 지워주실 수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슬픔과 회개를 표현하기 위해 시편 51편을 써서 온 백성이 읽고 배울 수 있도록 출판했습니다. 그는 무엇을 배우고 있었을까요? 다윗의 어리석은 행동에서 배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 땅 모든 사람에게 나의 어리석음을 전하여 모든 사람이 나의 어리석음과 슬픔과 회개가 얼마나 귀한지를 알게 하리라."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이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와 결혼한 후에야 이런 습관이 생겼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그냥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런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잘못했고, 잘못했으며, 이제 바로잡을 것이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는 실수를 많이 하지만, 슬픔이나 후회는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잘못했을 때, 슬픔이나 후회를 느끼시나요? 슬픔과 후회를 10단계로 나눠서 평가해 볼까요? 1단계, 2단계, 3단계, 10단계. 당신의 슬픔과 후회는 몇 단계인가요?
사기당하면 슬픔이나 후회를 느끼시나요? 잃은 돈만 생각하는데, 어떻게 슬픔이나 후회를 느낄 시간이 있겠어요? 아, 그 사기꾼 정말 싫어요, 그렇죠? 데이비드는 어릴 때부터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었어요. 어떻게 그런 태도가 생겼는지 아세요? 세 살 때부터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어요. 세 살 때 고집이 세면 커서 분명 바보가 될 거예요. 그래서 세 살 때부터 적응해야 해요.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그들의 행동을 바로잡을 방법을 찾아야 해요. 세 살 때부터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으니까요. 데이비드는 어린 시절부터 매우 유능했어요.
기억하세요, 데이비드가 어린 시절부터 왜 이런 회개와 끊임없는 조정의 자세를 가졌는지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리건대, 이건 배울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가 어떻게 스스로를 조정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좋은 접근 방식이죠, 그렇지 않나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습관이 있었어요. 저는 고집이 없어요. 제 안에 그런 고집이 없어요. 아, 고집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세상에는 고집 센 사람들이 참 많죠. 내비게이션을 켜고 운전하는데, 더 나아가면 바다로 가는 길일 거예요. 어제 여기 지나가는데, 누가 다리를 부쉈어요? "다리가 무너졌어."라고 하더군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정말 고집 센 사람들은 다 그렇죠.
저는 어렸을 때 모든 걸 바로잡는 걸 좋아했어요. 잘못되면 그냥 계속 고치려고 노력했죠. 나중에 말씀드리지만, 자라면서 이 습관 덕분에 덜 힘들었어요. 이게 왜 이렇게 잘못된 걸까요? 부수고 고치면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이 코드는 왜 이렇게 형편없게 작성됐지? 내가 뜯어고쳐야겠다.
고치지 않으면 기존의 나쁜 코드를 고친다고 소용없어. 솔직히 말해서, 일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야. 기초가 잘못되면 더 추가할 필요가 없지. 애들은 공부하고 대학에 가잖아. 대학은 왜 가는 거야, 그렇지? 아니, 그냥 대학에 가고 싶어.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면 뭐 할 거야? 대학에선 숙제만 하면 돈은 벌 수 있지. 하지만 졸업하고 나면 누가 네 일을 도와줄 거야? 내 생각엔, 월급 1만 위안을 벌고 2만 위안 버는 사람을 고용하면 월급 1만 위안은 손해 볼 거야. 그 정도 손해는 감수할 수 있지? 그냥 돈 많고 멍청한 짓거리 아닌가?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어릴 때부터 튼튼한 기초를 다져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해. 뭔가 잘못되었다면 즉시 바로잡아야 합니다. 다윗이 무엇 때문에 슬퍼하고 회개했는지 아십니까? 우리아를 죽인 후, 그는 정오까지 푹 잤습니다. 왜 그렇게 행복했을까요? 기분이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국경은 안정되었고, 주변 국가들은 모두 정복당했습니다. 나는 가장 강력한 군대, 가장 뛰어난 장군, 가장 뛰어난 장군들, 가장 뛰어난 중장들, 그리고 가장 뛰어난 하급 장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날 밤 포도주를 조금 마시고 푹 잤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시계를 보니 9시, 10시, 그리고 2시였습니다. 그는 4시에 일어나 기지개를 켰습니다. 발코니로 가서 기지개를 켠 후 눈을 떴습니다. 목욕하는 여자의 흐릿한 모습에서 점점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옆집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평생 실수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잘하고 있다고 느낀 단 한 번의 순간이 그에게 곤경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종종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어린 데이비드는 열일곱 살이 되어서야 양을 치기 시작했지만, 아마 열한 살이나 열두 살쯤 되었을 겁니다. 아빠가 제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 소를 몰다가 선생님이 강의하는 학교 앞을 지나갔다고 하더군요. 아, 얼마나 부러운지! 하지만 그들은 돈이 없어서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소를 몰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교실 밖에 쪼그리고 앉아 몇 마디라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당시 아빠는 우리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기를 바랐습니다.
데이비드도 열한 살이나 열두 살 때 양을 몰았습니다. 만약 당신이 열한 살이나 열두 살짜리 아이이고 허리에 낫을 차고 양을 몰고 있는데 늑대가 나타난다면, 늑대를 이길 수 있을까요? 늑대가 양을 뺏어간다면 데이비드는 어떻게 할까요? 가족에게 어떻게 설명할까요? 열한 살이나 열두 살짜리 아이는 코를 닦고 있을 겁니다. 흐느끼며 눈물을 흘리면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는 신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신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실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이 울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시를 주셨습니다. 새총을 만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새총잡이는 밧줄과 양가죽 조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찰칵 소리를 내며 새총을 만들어 돌멩이를 집어 들었습니다.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돌멩이는 날아갔습니다. 늑대가 올 때만 돌멩이를 던진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저 나무에는 망고가 많이 열려 있습니다. 사과나 키위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돌멩이를 집어 던지세요. 마치 우리가 어렸을 때 새총으로 새를 쏘던 것처럼 말입니다. 새는 작은 사과만 했습니다. 새를 던졌지만 빗나갔습니다. 빗나가 왼쪽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날아갔습니다. "펑!" 저는 물었습니다. 몇 번이나 연습해야 합니까? 이 과정을 슬픔과 회개라고 합니다. 못 맞추면 포기해야 합니까?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계속 연습할 거야! 나중에 왼쪽으로 기울면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기울면 왼쪽으로, 위로 기울면 아래로, 아래로 기울면 위로 조정했어.
나중에는 매 타격마다 과녁을 맞출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지. 그게 어디서 온 거지? 바로 개혁에서 비롯됐어. 우리 형제자매들 중 일부는 실수하면 욕하고 얼굴을 찡그리는데, 그들의 일은 마치 바닥에 오줌 누는 것과 같잖아. 그런 식으로 어떻게 돈을 벌겠어? 돈을 안 줘도 괜찮잖아.
개혁이 무슨 뜻이야? 왼쪽으로 기울면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기울면 왼쪽으로 조정했어. 그게 개혁이라고. 알겠어? 그게 개혁이라고. 바닥에 오줌 누고 얼굴을 찡그리는 것과 같아도, 그게 개혁이야. 넌 개혁했니?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 그렇게 할 때에도 여전히 얼굴을 찡그리게 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당신이 더 많이 개혁할수록 더 좋아집니다. 더 많이 개혁할수록 더 좋아지고,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당신이 훈련을 마친 후에 늑대가 올 것입니다. 늑대가 와서 양을 입에 물고 달아났습니다. 다윗이 던진 돌멩이를 따돌릴 수 있었습니까? 늑대는 양을 입에 물고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돌멩이는 양을 맞혔을까요, 아니면 늑대를 맞혔을까요? 늑대를 맞혔습니다. 흑곰, 갈색곰, 사자, 호랑이, 또는 다른 어떤 것이든 그는 모두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무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전쟁에서 수천 또는 수백 킬로미터의 사거리를 가진 미사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한 사람을 보내 버튼만 누르면 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당시에는 지금 우리가 가시거리 밖이라고 부르는, 가시거리를 넘어야 했습니다. 다윗이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그 모든 과정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고난과 눈물, 그리고 콧물을 견뎌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겨우 열한 살이나 열두 살이었으니까요.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는 평생 자신의 기술을 갈고닦았습니다.
이해하시겠어요? 그는 혼자 양을 몰고 있었습니다. "형들이 집에 있었어요." 그가 말했습니다. "형들이 저를 괴롭히니까 혼자 양을 몰게 됐어요." 다윗은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고,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양들을 안전하게 지켜야 해. 내가 못 지키면 어쩌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모두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믿음을 물려받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야곱의 양 떼는 어땠을까요? 세상의 어떤 목자도 야곱보다 더 잘 돌볼 수 없었습니다. 이해하시겠어요?
저는 재미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실수하면 바로잡습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습니다. 바로잡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바로잡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택하십니다. 하나님께 택함을 받고 싶다면 끊임없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옳지 않다면 반성하고, 저것이 옳지 않다면 반성하고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것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합니다.
실수를 하면 망칩니다. 다음에 실수를 하면 또 망칩니다. 다음에 실수를 하면 또 망칩니다. 계속해서 실수를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잖아요, 그렇죠? 무언가를 할 때마다 실수를 합니다. 듣지 않고, 듣더라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해하더라도 행동하지 않습니다. 다시 실수를 하고, 실수를 하면 고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고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윗은 마음속에서 수많은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어려운 시기에 그는 "포기해! 아빠가 나를 싫어해! 그들이 나를 괴롭혀!"와 같은 많은 말을 들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목소리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엇에 순종했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열한 살이나 열두 살쯤 된 아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유연하고 적응력이 있어야 합니다. 겸손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겸손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로잡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겸손하다는 의미입니다.
후에 다윗이 선택되었고, 사무엘이 왔습니다. 사무엘은 당대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그 지역의 가장 높은 영적 지도자가 다윗에게 알리지 않고 당신의 집에 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의 형제들이 모두 왔고, 윗사람들은 이 사람도 좋고 저 사람도 좋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좋아 보이는데 왜 모두 좋지 않은 것일까요? 사무엘이 이새에게 물었습니다. "다른 아들이 있느냐?" 막내아들이 양을 치고 있었는데, 사무엘은 "그를 다시 찾아라! 찾으면 바로 그 사람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원하신다."라고 말했습니다. 고집을 부리지 마십시오. 자신이 위대하거나 선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종종 당신에게 잘못을 저지른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윗은 어린 시절 양치기로, 사자, 호랑이, 늑대를 다루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품을 키웠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택함을 받기 전부터 슬퍼하고 회개하는 마음, 혹은 적어도 겸손하고 회개하는 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복된 사람이 되려면, 자신들이 종종 부족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종종 자신을 과신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선행을 다른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저는 한 사업가를 만났습니다. 그의 아들은 40대인데 평생 돈을 번 적이 없고, 오로지 써버리기만 했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는 아버지의 실수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는 자신이 위대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면서도 평생 돈을 쓰는 데만 바쳤습니다. 그는 부유한 아들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한숨을 쉬게 됩니다.
다윗이 선택되었고, 오늘날의 왕이 된 이유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진정으로 학구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열한 살이나 열두 살 때 소와 양을 치면서 어떻게 학교에 갈 시간이 있었겠습니까? 소와 양을 치면서 그것을 배우지 않았습니까? 후에 다윗은 시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시편의 많은 부분을 썼고, 그중 상당 부분은 독학으로 썼습니다. 다윗은 슬픔과 자책의 마음을 지녔습니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고치겠습니다."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면,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고치겠습니다. 프로그램을 고치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고치겠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저것을 관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실 지식을 흡수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종종 모든 것이 혼란스럽습니다. 왜 그럴까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걸 가르치면 머리가 복잡해지잖아요, 그렇죠? 가르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사람들은 배우는 게 아니라 배우는 거예요. 왜 배우는 걸 학습이라고 할까요? 열심히 공부하고 매일 발전하는 것이지, 잘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잘 들어보세요. 이해하셨나요? 데이비드가 그렇게 배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누구든 어떤 조건이든 배울 수 있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정말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힘들게 겪으면서 배웠습니다. 아무도 제게 말해주지 않아서 몰래 지켜봐야 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힘들지 않나요? 직장에서 누가 가르쳐 주겠어요? 정말 그럴까요?
누가 가르쳐 주겠어요? 저는 모든 것을 혼자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배웠습니다. 여러분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께 영감을 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고, 내용도 잘하지 못했고, 어떤 것도 잘하지 못했지만, 배울 수 있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데이비드가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은 태도에 달려 있었습니다.
실수를 바로잡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면 배우는 것이고, 실수하면 바로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밧세바 사건 때, 그가 실수를 해서 미쳐버릴 뻔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안 돼. 이렇게 계속 살 순 없어. 계속 미쳐버리면 큰일 나. 사이코패스가 되고 싶지 않아. 온 나라에 내가 그녀를 훔쳤다는 걸 알릴 거야." 이해하셨나요? 바꿀게요. 그게 바로 태도라고요.
가끔은 말을 꺼내는 게 좀 아플 때도 있어요. 동료들에게 말해요. 왜 멍청한지 설명해 달라고요? 그냥 "아, 이건 틀렸어. 뭐가 맞는 거지? 맞아. 나한테 필요한 건 바로 이거야."라고 말해 달라고요. 가르치는 데 시간을 쓰고, 보여주는 데 노력을 기울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배우고 변화하려는 자세가 없다면 아무것도 효과가 없을 거예요.
당신 바보야? 정말 바보야. 말을 마치고 나서 "아, 저는 바보예요. 선생님, 어떻게 하면 더 똑똑해질 수 있을까요?"라고 말해요.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잖아. 뭐가 문제야?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난 멍청해. 우리 둘 다 멍청해.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멍청하다고 말하는 게 잘못된 거야? 그런데도 변하지 않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도 변하지 않는다면, 네 태도가 잘못된 거야.
그래서 하나님은 태도 있는 사람인 다윗을 택하셨지. 어떤 태도? 네 실수를 바로잡으라고, 그렇지? 체면은 쓸모없어. 다윗은 전장에 나가 골리앗을 죽였어. 다윗이 거만하게 굴고 있는 걸 봤어? 아니야. 그건 그가 항상 끊임없이 성장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야.
다윗은 끊임없이 성장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어. 골리앗을 죽이고,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가 천 명의 군대를 이끄는 대장이 되기까지, 그는 한 명의 대장으로 시작해서, 십 명의 대장, 백 명의 대장, 그리고 마침내 천 명의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가는 천 명의 대장이 되었지. 이 중 네가 미리 알았던 게 뭐였어? 나중에 다 배우지 않았어? 그는 어렸을 때 연습했던 새총 덕분에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가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삶을 살고 싶다면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배우지 않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질문드리겠습니다. 작년에 성장했습니까? 재작년에 성장했습니까? 지난 5년 동안 성장했습니까? 여전히 똑같습니까? 어떤 성장을 이루었습니까? 어떤 문제를 해결했습니까?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습니까?
후에 다윗은 사울의 딸과 결혼했는데, 사울의 딸과 결혼하려면 신부값이 필요했습니다. 블레셋 사람 200명의 포피, 즉 생식기 주변의 살갗이었습니다. 아, 이것이 다윗에게 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까요? 그는 알았지만, 그의 태도는 옳았습니다. 이해하십니까? 우리 모두는 이러한 태도에서 배울 자격이 있습니다.
후에 다윗은 쫓겨났을 때에도 항상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는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윗이 도망치면서 쓴 시편을 읽어보겠습니다. 제 눈물은 매트리스를 적셨고, 소파는 둥둥 떠다녔습니다. 인간의 상태를 정말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지 않나요? 너무나 많은 투쟁과 고통이 있었지만, 다윗은 이를 최고의 학습 환경, 최고의 교실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사회라는 대학이 아니었습니다. 도망치며 쫓기는 대학이었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선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하나님, 언제 저를 구원해 주시겠습니까? 그 투쟁, 그 고통, 그 절망, 그 실망, 그 걱정. 가끔은 저주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정말 뭔가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셨습니다. 좋아요, 그만하세요. 하나님은 항상 옳으십니다.
이전 강의에서 다윗이 블레셋 왕 아기스에게 도망친 이야기를 했었죠. 그는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해결책만을, 당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만을 추구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그의 옷자락을 잘라버렸습니다. 그는 후회했습니다. 다윗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나는 이것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저것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내가 잘못한 모든 것은 바로잡혔습니다. 그것이 바로 논리입니다.
똑똑해지고 싶으신가요? 간단합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나중에 다윗은 아비가일의 인색한 남편 나발을 거의 죽일 뻔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말했습니다. "바꿀게. 내가 잘못했어." 그게 다입니다, 그렇죠? 틀렸다면, 바꾸세요. 어제 밤새도록 휴대폰을 스크롤했습니다. 저는 변하고 있습니다. 슬픔과 회개로 변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뭔가 더러워졌습니다. 하나님, 저를 깨끗하게 해 주세요.
우리가 삶에서 바꿔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변화하려는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태도를 바꾸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저는 항상 마음속 깊은 소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축복을 받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 물론, 당신이 아플 때면 함께 기도하는 것이 기쁩니다. 그게 제 일이니까요. 하지만 당신이 변화된 후 축복을 받을 때 저는 더 기쁩니다. 당신의 축복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자, 이제 다윗에게서 배우기 시작해 봅시다.
2. 성경의 말씀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망하소서.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리 제하소서.대저 나는 내 죄과르르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꼐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리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하나님이요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영을 새롭게 하소서.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기뼈아니하시나이다.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꼐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성을 쌓으소서.그 때에 주꼐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시편51:1-19)
기도:
함께 기도합시다. 지금 마음을 준비하십시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다윗입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축복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지금 마음을 준비하시고 저와 함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 마음이 당신께로 돌아오게 하소서. 우리가 부드러워지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고집하지 말고, 더 이상 어리석음에 집착하지 말고, 더 이상 무지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우리는 종종 실수를 하지만, 슬픔과 회개의 마음은 거의 찾지 못합니다. 하나님, 오늘 제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해 주셔서 제 잘못을 깨닫고 의로운 영을 되찾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제 바꾸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러한 변화는 제 태도뿐 아니라 크고 작은 모든 문제에서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당신의 형상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만약 당신이 저를 기뻐하신다면 오래전에 제게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드리는 것은 슬픔과 회개의 마음입니다. 하나님, 저는 아직 당신의 형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지금 저를 바로잡아 주시고, 저를 변화시켜 주십시오. 주님, 당신은 저의 구원의 하나님이시며, 영원히 저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저를 강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 저는 평생 주님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말씀의 배경
이 구절은 사실 다윗의 모습입니다. 반성문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다윗은 일반적인 반성문을 썼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반성한 것일까요? 그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아시다시피, 다윗은 "그들이 나를 고소하고 있어! 네가 고소당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쓰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아를 죽이고, 우리아의 아내와 결혼했는데, 우리아는 아직 이혼도 하지 않았는데, 당신은 이미 아이를 낳았잖아요. 정말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렇지 않나요? 정말 악하다고 생각합니다. 오, 고소라니! 듣지 않겠어! 네 저주를 끊고, 네 고소를 끊겠다고. 쓸모없는 짓이야, 헛소리. 안 그래?
그래서 다윗은 믿지 않았습니다. "네 고소를 끊겠다고! 내가 고소당해야 하지 않느냐?" 안 그래? "끊겠다고"는 무슨 뜻인가요? 포기는 쓸모없는 짓입니다. 왜죠? 그의 앞에 있는 이 악마들이 계속 그를 괴롭히고 괴롭혀서 그를 화나게 하고 극심한 고통을 안겨줬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는 책망하고 정죄하는 영들로부터 물러서는 것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직 회개만이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아, 이건 아니고, 저건 저건, 이거고, 저건 저건데요."라고 설명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설명은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는 데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바로잡아야 합니다. 더 이상 설명하지 마십시오. 계속 설명하면 저도 속상하고, 여러분도 불편해집니다. 그러니 태도를 바로잡으십시오. 제가 틀렸으니 바로잡겠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사실 여러분은 훨씬 더 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다윗보다 훨씬 더 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잘못되었다면 바로잡겠습니다. 논쟁하거나 설명하지 마십시오.
이 구절은 다윗이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합니다. 하나님, 당신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하나님,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십니까? 하나님, 당신은 무엇을 하실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또한 자신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성찰을 표현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죄인이었습니다. 저는 죄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이런 환상을 보셨습니까? 죄가 제 문 앞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 번 죄를 이겼지만, 이번에는 이길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제 약점들과 마귀의 지배를 떠올립니다. 아니, 저는 왕입니다. 비굴하게 굴며 온 나라에 큰 소리로 선포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다윗입니다.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지었습니다. 남의 아내를 훔쳤고, 남의 남편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의 아내가 제 아이를 임신했습니다.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말 수치스러웠습니다. 그가 여전히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을까요? 네, 그리고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범죄자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당신께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것은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인 척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그러므로 이 정직한 태도가 모든 태도 중 가장 좋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 싶다면, 이야기를 지어내지 마십시오. 면담 중에는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 섰을 때는 솔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숨기려 하지 마십시오. 쓸모없는 것이고, 감출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온 세상을 감찰하십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꼬리를 흔들면 그 사람의 배짱이 몇 개인지 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꿰뚫어 보신다는 뜻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고집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번에 살인하고 피를 흘리고 남의 아내와 결혼하고 불륜을 저지르고 아이를 낳는 등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물론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절대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저를 따르세요. "회개란 무슨 뜻인가요?"라고 묻지 마세요. 말로 설명하려 하지 마세요. 진지하게 생각해 봅시다. 저는 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엄하게 대하고 변화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사람들, 위대한 과학자든 물리학자든, 수많은 실수를 딛고 일어섰습니다. 머스크는 위성을 발사할 때 수많은 기술적 세부 사항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고집입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아무리 착해도 여전히 죄인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당신의 회개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제가 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나는 죄인이야, 나는 죄인이야, 나는 변할 거야, 나는 죄인이야, 나는 변할 거야"라고 말하면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전통적인 사람처럼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면 바꾸고, 저것이 잘못되었다면, 한 번에 하나씩 바꾸세요.
제 말은 강력합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났고, 하나님이 필요한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충분히 선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충분히 선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죄인의 생각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인의 생각에 집착하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다윗은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그는 "내가 죄악 중에 태어났고, 어머니가 죄 중에 나를 잉태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우리는 악령을 끌어들이는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만약 당신이 악령을 끌어들이는 존재로 태어났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제 당신의 악령을 끌어들이는 논리를 신성한 체계로 바꾸십시오. 변화는 그렇게 간단합니다. 그렇다면 이 죄인을 낳았으니, 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끊임없이 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윗은 의롭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이 죄인은 어렸을 때부터, 하나에서 둘, 셋에서 넷, 열한 살이나 열두 살까지 양을 치면서 배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배우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적응하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내면에 있는 논리 체계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그가 배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회개해 본 적이 있습니까? 자신을 엄하게 다스려 본 적이 있습니까?
자신을 다루지 않는 사람들, 육신에 탐닉하는 사람들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모두 배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도 배우고, 하나님의 논리 체계도 배웠습니다. 이것이 옳지 않다면, 우리는 배우고 적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이신 하나님
그렇다면 제가 죄인으로 태어났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망하소서.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리 제하소서.대저 나는 내 죄과르르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편 51:1-4)
심판이 심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죄인이라고 부르시는 것은 당신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저도 가끔 당신을 어리석다고 부를 때, 당신이 더 지혜로워지기를 바라는 말을 합니다. 제가 당신을 어리석다고 부른다고 해서 제가 어리석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제가 당신을 거부하고 저주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거부하는 것입니까? 저를 거부한 후에도 여전히 어리석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의 허물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죄가 항상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없다면 죄는 항상 우리 앞에 있습니다. 마귀는 항상 우리 안에 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자신의 안에 마귀가 있는데도 편안할 수 있겠습니까? 분명 고통스럽고, 우리는 이 과정에서 죄인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슬픔과 회개의 태도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제사가 아니라 슬픔과 회개의 태도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께 닭이나 오리, 돼지, 심지어 찐 돼지고기를 드립니다. 그것은 쓸모없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슬픔과 회개의 마음을 원하시며, 슬픔과 회개의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다른 것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오직 이것에만 집중하십시오. 저는 죄인이고, 종종 실수를 저지르며, 거의 모든 일에서 실수를 저지르고, 저는 변화될 것입니다. 하나님, 무엇이 옳은지 알려주세요. 그것뿐이겠습니까? 그렇게 복잡한 것도 아니잖아요? 아, 한탄합니다. 사람들이 평생에 얼마나 제대로 하는 일이 적은지.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기뼈아니하시나이다.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성을 쌓으소서.그 때에 주꼐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시편 51:14-17)
정말 놀라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태도로 그분께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절대 하나님께 다가가서 "하나님,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괜찮다고 생각하면 망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한 가지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매일매일 자신이 영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하며 산다면,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다윗은 시편 51편을 쓰기 전까지는 자신이 꽤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에게는 자랑할 것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내가 골리앗을 죽였으니 위대하지 않나? 내가 양을 치는 동안 사자나 호랑이에게 잡히지 않았으니 위대하지. 이제 내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왕이 되었으니. 도망치던 시절에는 큰 죄를 짓지 않았는데. 이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니, 무슨 일이냐?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적을 물리칠 수 있다. 그래도 나는 꽤 훌륭하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나를 기뻐하셨고, 나는 너무 기뻐서 다음 날 오후 해 질 때까지 잠을 잤기 때문입니다. 해가 지자 벌거벗은 여자가 그의 앞에 나타났고, 그것이 그의 최후였습니다. 그것은 그의 모든 선함을 순식간에 파괴했습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고, 그제야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깨달았으며, 그제야 슬픔과 회개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절대 자신이 너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진실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드리려고 합니다. 제 마음은 끊임없이 걱정으로 가득 차 있는데, 과장이 아닙니다. 아직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이 시점에서 교회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제 안의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을까요? 저는 모든 것을 바로잡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당신은 아직 이 부분은 잘못했지만, 저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바로잡았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잡기 위한 부지런한 노력이 아닙니까?
자신이 모든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많은 강점을 가진 훌륭한 이력서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윗은 자신의 이력서를 쓰고 싶어 했고, 그 이력서에는 많은 강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증명합니까? 그것은 단 한 가지를 증명할 뿐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지만, 여전히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내면의 진실입니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시편 51:6)
이 말씀을 들으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속임수를 쓰지 마십시오. 누구든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절대 하나님께 속임수를 쓰지 마십시오. 마음에 정직하십시오. 하나는 하나이고, 둘은 둘입니다. 내가 한 일을 더 이상 변명하지 마십시오. 나는 죄인이고, 죽어 마땅하며, 당신의 구원이 필요하고, 슬픔과 회개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 진실하고 정직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이것은 과거에 잘한 일을 자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왜 어떤 형제자매들은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까? 남편이 "이봐, 네가 잘못했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내가 잘했어."라고 말합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떻게 사람들이 어리석지 않을 수 있습니까? "내가 잘못했어, 내가 틀렸어, 내가 오해했어."라고 변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사실, 저는 과거에 종종 오해했습니다. 그게 정상이 아닙니까? 진실하고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은 죄인일 뿐입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슬픔과 회개의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만약 당신이 슬픔과 회개 없이 이 세상에서 병들고 고통받았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만약 당신이 슬픔과 회개 없이 이 세상에서 속고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끊임없이 실수를 저지르고 얼굴을 찡그리며 행동하며 그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슬픔과 회개의 자세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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