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빌립보서01-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필기를 참고
1.성경을 읽는 방법
a.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저자가 우리에게 의도하는 바를 분별해야 합니다. 즉,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b.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 따라 행하는 것은 비전신학의 성경 공부의 핵심적인 접근 방식입니다.
2. 빌립보서의 배경
a.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유럽에 세운 최초의 교회였습니다.
b.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다양한 사역을 지원했지만, 그곳 형제자매들은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3.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해하고 빌립보 형제자매들을 깊이 사모했습니다.
a. 바울은 빌립보 형제자매들을 깊이 아끼며 그들이 지식과 통찰력에 자라가는지 살폈습니다.
b. 사람은 사랑을 가져야 하지만, 남을 기쁘게 하는 사랑은 아닙니다. 이 사랑은 지식과 통찰력에 기초합니다.
4.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
a.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많은 지식과 이해와 통찰력이 있다고 해서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b. 인간의 기준에 따라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은 선악을 분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은 지혜입니다.
c. 세상의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십시오.
5. 의의 열매를 맺으십시오
a. 의의 열매는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는 것, 곧 믿음의 열매입니다.
b. 저주 아래 사는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며, 하나님의 축복 없이는 삶이 어렵습니다.
c. 의에 대해서는 아예 말도 꺼내지 마십시오. 축복을 얻기 위해 자신을 드리는 것조차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삶은 분명 어려울 것입니다.
d.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의의 열매를 맺고 자신을 드리는 것은 시작일 뿐이며, 끝없이 계속 성장할 것입니다.
6. 바울의 경험은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a.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비록 그가 쇠사슬에 묶여 있었지만, 쇠사슬은 하나님의 임재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b. 바울은 복음이 번성하도록 믿음의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의 고난은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했습니다.
c. 고집을 부리거나 완고하게 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만 고집하십시오.
7.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는 것
a. 사람이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기쁜 삶을 살 것입니다.
b. 사람이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주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 없이 그저 살기 위해 산다면, 그의 기쁨은 악령에게 빼앗기고 슬픔과 고통만 남게 될 것입니다.
c.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의 열매를 맺으며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은 삶의 단순한 사실들을 꿰뚫어 보고 사람이나 악령에게 속지 않을 것입니다.
8. 믿음 안에서 성장하고 기뻐함
a. 믿음 안에서 자라나는 사람은 의심할 여지 없이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b. 믿음은 하나님의 길이며, 진리 안에서 끊임없이 자라나면서 지식과 이해력이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빌립보서 공부를 시작해 봅시다. 성경 공부를 하면서 많은 분들이 빌립보서 1장의 주제를 찾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은 하나 됨 안에서 풍성해진다"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살든지 죽든지 우리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외에도 많은 시도들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상기시켜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주제를 어떻게 찾으시나요? 주제를 찾는 것은 성경 공부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주제를 찾지 못하면 읽은 내용을 완전히 잃게 됩니다. 빌립보서의 주제는 "너희 사랑이 지식과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되기를 구하노라"입니다.
성경 읽는 법
다시 성경 읽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저자를 위해 읽지 말고, 우리를 위해 읽으세요. 빌립보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록되었나요? 네, 우리를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누군가가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는 것입니다. 옛날 얘기만 잔뜩 늘어놓은 서신을 읽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든 우리 하나님이든, 그분께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씀하시고 싶으시다면,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대로 행하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이러한 성경 공부 방식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기를 원할까요? "우리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더욱 풍성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격려와 칭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형제자매들을 깊이 염려했습니다. 왜 그렇게 염려했을까요? 바로 그들의 사랑에 지식과 통찰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무리라도 그들을 쉽게 속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쉽게 속습니다. 어떤 일에 부딪히면 혼란스러워하고, 또 다른 일에 부딪히면 또 혼란스러워합니다. 하지만 사기꾼이 나타나면, 그들은 더 이상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그냥 따라갑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사도 바울의 혼란이나 그의 마음속에 품었던 염려와 근심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실 하나님의 염려였습니다. 바울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사모합니다."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의 이해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부족한 것이 많은 문제의 근원입니다.
저는 이 주제가 성경을 읽는 방법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아, 바울은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바울의 기쁨은 당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또는 "바울은 정말 행복해. 바울은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았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바울은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았고, 매우 행복합니다. 그것도 당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의 이해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3, 4년 동안 이해의 성장을 촉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형제자매들이 너무 쉽게 속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최근 속임수 사례가 너무나 많습니다.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이 부분을 꼭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빌립보서의 배경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유럽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세운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따르면 바울은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지만, 빌립보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습니다. 특히 자주색 천을 파는 루디아라는 여인이 친절했습니다. 자주색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고급 천, 최고급 천을 파는 것을 뜻합니다. 파란색은 어떨까요? 파란색은 죽은 자를 위해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자주색은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루디아는 매우 경건한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일요일 기도 모임에 참석하여 루디아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그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울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러분은 복음 전파에 연합해 왔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바로 이런 의미였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바울이 도착할 때마다 기도 모임을 열었습니다. 이들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로마인이나 헬라인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기도 모임에 참석하여 자신의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루디아는 깜짝 놀랐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진정으로 이해했습니다. 이전에는 구약을 믿었지만, 이제는 구약을 따르고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것처럼 이 사람들도 큰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다양한 사역을 지원했습니다. 예를 들어,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 빌립보 교회는 상당한 재정적 지원을 비롯한 여러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나중에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빌립보 교인들은 에바브로디도라는 사람을 로마로 보내 바울을 돌보게 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중병에 걸려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바울이 에바브로디도가 죽는 것을 보았다면, 오, 세상에, 그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도 그는 가슴 아픈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에바브로디도는 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로 돌려보내 그곳 형제자매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자신을 그리워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빌립보서의 이러한 배경 속에서 바울은 무엇을 하려고 했을까요? 많은 어려움에 시달리던 빌립보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편지를 쓰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가 빌립보 교회를 칭찬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칭찬은 단지 서두일 뿐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사실은 빌립보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여전히 많은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요점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해하고 빌립보 교회 형제자매들을 깊이 사모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해했을까요? 왜 그는 빌립보 교회 형제자매들을 깊이 사모했을까요? 나중에 바울은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빌립보서 1:23)
나는 이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고 세상의 수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 때문에, 내가 떠난 후에 여러분은 덜 그렇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빌립보 교회의 형제자매 여러분, 이런저런 일로 나를 지지해 주는 여러분이 사랑이 가득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통찰력으로 뒷받침되고 있습니까? 저는 전에도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고,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심장마비로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아, 저는 그것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정말 놓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왜 신경 써야 합니까? 이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하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다행히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이제 살아나서 제 가장 깊은 걱정을 주변 형제자매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정말 걱정됩니다. 지금 여러분의 상황에서 귀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너무 육적이고 세상적이며, 여러분의 이해는 정말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울이 그렇게 느꼈다는 것을 말씀드리죠.
저는 너무나 많은 것들로 혼란스럽습니다. 저 바울은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혀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에 왔습니다. 저는 판결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형제자매 여러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그러자 그들은 "아, 바울이 감옥에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온갖 무리와 당파가 생겨 각자 자기 복음을 전파하며 복음을 완전히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당파주의와 분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오, 하나님, 바울, 어디 계셨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들이 사랑과 지식과 통찰력에 점점 더 자라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이 주제를 찾는 이유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고통을 받습니다. 바울의 고난은 저주였을까요, 아니면 저주였을까요?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빌립보 교회 안에 이상한 목소리들이 들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품기 시작했고, 마음이 불안해졌으며, 복음에 대한 믿음이 약해졌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권자이시고 참으로 능력이 많으신 분임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들 안에 사랑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그저 좋은 본성의 사랑이라면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사랑을 지식과 분별력으로 더욱 풍성하게 하십시오. 여러분 안에 지식과 분별력이 있고, 이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처럼 능력이 많으신데,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이것은 빌립보서에서 바울이 한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선생님,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이 선악을 아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지식과 총명이 있어도 분별력이 뛰어나다면,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은 선악을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선과 악을 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선과 악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이 옳습니다. 자신의 기준에 따라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이 선악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 이것이 정상적이지 않습니까? 정상적입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빌립보서 1:9-10)
좋은 말씀이 아닙니까? 지금 당장 분별할 수 있습니까? 저는 이나모리 가즈오의 책을 읽고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다가 몇 번 강의를 듣고 유명한 스승들의 강의를 들었는데, 속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죠. 가끔은 속았다고 설명해도 "말을 참 잘하는 줄 알았는데."라고 하면서 어리둥절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은 잘하는데, 도대체 그들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당신의 돈을 사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들을 고소하고 싶다면, 애초에 그들이 하는 일이 불법이기 때문에 큰일 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약간의 돈을 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이 제게는 고통스럽습니다. 우리가 과연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종종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사기꾼을 선한 사람으로 오해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옳고 그름을,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인생의 큰 비극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돈을 사랑할 수 없고,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지금 분별할 수 있습니까? 돈을 너무 사랑해서 빚에 파묻혔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것이 고통스럽습니다. 저는 때때로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를 돌보고 육신에 탐닉하며 자녀에게 타락할 정도로 헌신하는 형제자매들을 보라." 그들은 이미 마흔 살이 되었는데, 부모에게만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쳤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육신에 탐닉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잘못되었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자녀를 사랑하는 방식은 잘못되었습니다. 그런 사랑은 자녀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자녀를 타락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저는 제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속고, 악령에게 속고, 사로잡히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사람들은 "선생님, 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이 일 뒤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나요?"라고 묻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숨겨진 이야기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무지에 속습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면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다시 한번 온 마음을 다해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여러분은 지식과 총명이 더욱 풍성해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까? 세상의 이치에 따라 분별한다면, 고난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의의 열매를 가득 맺으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빌립보서 1:11)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어떤 열매를 맺습니까? 우리 형제자매들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슬픔의 열매, 불행의 열매, 기쁨이 아니라 오직 불행, 오직 얽힘, 오직 절망의 열매만 맺는다면, 그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도 바울은 기쁜 삶을 살았습니다. 사슬에 묶이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그는 기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쳤을 때에도 그는 기뻤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는 하나님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매, 곧 의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의의 열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므로 영광과 찬양은 하나님께 합당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는 것일까요?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는 그것을 알지도 못합니다. 그들은 저주 아래 살면서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들의 삶은 혼란과 불편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한 자매가 축복을 받도록 돕기 위해 큰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몇 달 동안 그녀는 헌금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삶은 혼란과 불편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축복받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여러분의 헌금이 필요해서만 헌금을 권장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만약 교회가 여러분이 헌금하기 때문에만 헌금을 권장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돈이 부족해서 헌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 질문한 후, 그녀는 "저는 헌금을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그리고 결과를 보는 순간 그것을 알았습니다. 나중에는 관계가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들은 그러한 관계를 쌓기 위해 큰 대가를 치르셨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것은 한심한 헌금이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축복을 가져올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믿음의 가장 기본적인 헌금이었고, 사랑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사랑은 지식과 통찰력으로 가득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단계, 즉 축복을 가져오는 것들에서도 사랑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그 단계를 넘어서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정말 끔찍하지 않나요? 월급이 3,000달러가 넘는데 생활비도 3,000달러가 넘습니다. 매달 남는 게 하나도 없잖아요.
최근 꽤 흥미로운 일이 있었어요. 1선 도시에서 6,000달러가 넘는 돈을 벌고 생활비는 9,000달러가 넘습니다. 집세, 식비, 음료비까지 포함해서요. 그러자 어머니가 말씀하셨어요. "얘야, 아빠가 너 학교 다닐 때 한 달에 1,500달러씩 주셨잖아. 이제 네가 일해서 한 달에 3,000달러 넘게 부양해야 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잖아." 이게 무슨 논리예요?
이 세상 사람들은 정말 축복이 필요하지 않나요? 축복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축복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아, 정말 말씀드리는데, 우리는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아직은 의롭게 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축복을 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예요.
베풂의 유익을 아는 형제자매라면 결코 인색하게 베푸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처음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간증을 나누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6개월 후, 저는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때 교회에서 수업을 했는데, 우리 수업은 그들의 수업보다 더 심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 노인이 전하는 아주 간단한 가르침을 해주었습니다.
세상에! 한 달에 200위안을 저축할 수 있는데, 100위안, 100위안 더 낸다면 뭐가 남겠어요? 아, 정말 혼란스러웠습니다. 교회에서 집으로 이사하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의의 열매에 대해서는 이야기도 안 했습니다. 저는 그저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입니다. 아, 이 딜레마가 제 마음을 정말 울렸습니다.
나중에 계산을 해 보니, 한 달에 200위안을 저축하고 있었습니다. 언제쯤 부자가 될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잊으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축복의 길을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사람의 진심 어린 결정은 정말 강력했습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드리세요!
말씀드립니다. 저와 함께 주님을 믿는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10% 대신 5%를 드리다니요. 그럼 나머지 5%는 어떻게 하시나요? 정말 어리둥절했습니다. 결국 저는 정말 축복받지 못했습니다. 일자리를 찾는 게 너무 어렵잖아요. 손해 보지 마세요, 아시죠? 의의 열매를 맺으세요. 의의 열매가 뭐죠? 믿음의 열매입니다.
나중에 저는 다른 사람들이 가르쳐 준 대로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제 나름대로 하는 것이라고 모두에게 말했습니다. 세전 기부금과 CPF 기부금 모두 합산됩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40%의 세금을 낸다면 얼마를 기부해야 할까요? 문제는, 만약 그것이 좋은 일이라면 왜 안 하겠습니까? 물론, 기부하는 것 외에도 의의 열매를 맺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점, 즉 시작일 뿐입니다.
제가 세금에 대해 이야기하는 줄 아실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싱가포르는 세금이 낮아서 그런 거예요. 싱가포르에서는 세금을 적게 내는데,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많이 내잖아요."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면 어떻게 결정하겠습니까?
빌립보 교인들은 기부에 대해 분명히 문제가 있었습니다. 자색 옷감 장수 루디아는 바울을 자기 집으로 맞아들여 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묻습니다. 그녀는 얼마를 기부했을까요?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울을 지지하고, 그의 사역을 지지하고, 그의 사역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그 모든 돈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루디아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에게서 나온 것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너희 사랑을 지식과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왜 점점 더 풍성하게 할까요? 처음의 헌신은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그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다음에는 조금 더, 조금 더, 끝없이, 점점 더 풍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의의 열매입니다.
바울의 경험은 복음을 전파합니다
여기에는 여전히 혼란이 있습니다. 바울은 모든 사역을 마친 후 왜 체포되었을까요?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바울의 믿음은 진실했을까요, 아니면 거짓이었을까요? 만약 거짓이었다면, 우리는 더 이상 믿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질문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바울은 여전히 복음을 믿었고, 그의 마음은 진실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의 이해가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는 분명해졌을까요? 모두가 이 점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빌립보서 1:12)
이번에는 그들이 정말 알았을까? 알았다면 말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빌립보 교인들은 당황했다.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빌립보서1:13)
이 말의 요점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는 구치소에 있었고, 그 층에 있던 간수들은 간수라고 불렸습니다. 그렇다면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제가 이야기를 지어내겠습니다. 여러분은 읽을 수 없지만, 저는 이야기를 지어내어 대담한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간수 중 한 명이 갑자기 죽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이상한 병 때문일 것입니다.
아래층 병사들이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대단하구나." 그는 생각했습니다. "아, 병원도 그를 고칠 수 없구나." 우리 간수들 중에도 놀라운 죄수가 있었습니다. 군인이 말했습니다. "그가 그의 손수건을 만지자 병자들이 나았습니다. 제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오, 대장. 상사님, 한번 해 보시죠. 마침내 그들은 바울에게 가서 시험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바울 안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자!
바울의 명성은 온 황실 경비대에 퍼졌습니다. 이 죄수는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소문이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열로, 열에서 백으로 퍼졌습니다. 황실 경비대원 중 누군가가 아프면 감옥으로 데려와 그곳에서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던 바울을 만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생각해 보니, 저는 모두에게 묻습니다. 감옥에 있는 죄수들이 바울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었을까요? 그럴 수 없었을까요? 하지만 바울은 괜찮았기 때문에 자유롭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황실 경비대원 모두가 바울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바울이 감옥에 있는 동안, 간수들과 모든 교도관들이 그의 믿음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이것이 바로 복음을 전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로마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정말 그랬습니다. 그 결과, 많은 지역 신자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제 명성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곳에 갇힌 것은 분명히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쇠사슬에 묶여 있지만 하나님의 영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쇠사슬이 하나님의 임재를 막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임재가 몸과 영혼에 나타날 때, 그것은 더욱 귀하고 순금처럼 빛납니다. 이것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지만, 빌립보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워했습니다. 바울은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어떤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하나.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ㄱ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줄 아는고로.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 되게 하려 하나니.(빌립보서 1:14-20)
와, 정말 놀라운 말씀입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고통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암으로 고통받는 것은 영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두 선과 악을 알고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 야곱의 아들 요셉, 야곱, 이삭, 아브라함은 모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값진 대가를 치렀습니다. 와, 이 사람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돌보실 수 없으신가요? 물론 가능합니다.
과거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 굳게 세워져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잘못된 복음을 전하고 저주를 받는다면, 잘못된 복음을 믿는다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 지식과 통찰력으로 사랑을 풍성하게 하십시오. 고집하지 말고, 완고하지 마십시오. 완고해야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완고해야 합니다. 바울이 바로 그랬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임재는 막을 수 없었습니다.
삶과 죽음을 꿰뚫어보다
믿는 사람이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오로지 이 육신만을 위해 산다면, 그것은 참으로 비극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묻습니다. 시체를 본 적이 있습니까? 몇 구나 보셨습니까? 화장터에서 본 적이 있습니까? 매일 줄을 서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북과 징 소리에 맞춰 초상화를 들고 있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시체가 불에 타고 한 줌의 재가 피어납니다. 지금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으니 어느 한 줌을 가져가야 할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그냥 두세요.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가 나오는 것을 볼 때마다, 죽은 사람이 냉동고에서 꺼내져 그곳에 안치되고, 시신에 작별 인사를 하는 의식이 거행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싱가포르의 상황은 정말 놀랍습니다. 싱가포르에서는 시신을 3일 동안 작별 인사로 모십니다. 아래층에 천막을 치고 그곳에 안치하죠. 매일, 며칠씩 그곳에 갈 수 있습니다. 그 후에는 어떨까요? 기분이 상쾌해지지 않나요? 평생 관에 누워 숨 쉬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늘 다른 사람들과 다투곤 합니다. 죽은 후에도, 더 이상 다툴 수 없게 된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다투고 있습니다. 평생 고생하고 걱정하며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들은 텅 비어 있고, 또 텅 비어 있습니다.
폴은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간곡히 권고합니다.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비참하고 기쁨을 느끼기 어려울 것입니다. 기쁘게 살면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하지만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드뭅니다. 특히 어려운 경전을 암송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모든 가정에는 각자 어려운 경전이 있습니다. 암송하고, 또 암송하십시오. 고집하며 지쳐 있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주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믿지 않으면 마귀가 기쁨을 훔쳐 갑니다. 남는 것은 슬픔과 걱정뿐입니다. 저 얼굴을 보십시오. 마치 쓴맛이 나는 오이처럼 흉측합니다. 왜 그럴까요? 당신이 그것을 꿰뚫어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삶과 죽음을 진정으로 꿰뚫어 본다면 분명 기쁨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제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 맡깁니다. 저것 역시 통제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 맡깁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은 통제할 수 있으므로 잘합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그것을 꿰뚫어 보았습니까? 이를 위해서는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통찰력으로 넘쳐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이 삶은 속임수에 불과하며, 평생 빚을 지고 사는 삶입니다. 빚으로 가득 찬 삶입니다. 힘들다고 생각하십니까? 힘들다면, 어떻게 안 힘들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예전에 어떤 사람에게 사람들을 평생 괴롭히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첫째, 돈 부족입니다. 둘째, 병입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으면 가난하지 말고, 가진 것이 많으면 아프지 마십시오. 하지만 이러한 목표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자, 이야기해 봅시다. 최종 결정권은 당신에게 있습니까? 당신은 없습니다. "가진 것이 있으면 아프지 말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 있으면 가난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사람들의 말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잘 보십시오. 사람들의 말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플 때 최종 결정권은 당신에게 있습니까? 당신은 없습니다.
그러니 질문은, 어떤 사람이 이것을 이룰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인과 의의 열매를 맺으면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든 악령이든 속는 일이 한 번도 없을 것입니다.
일생에 한 번 속으면 해방 이전 시대로 돌아갈 것입니다. 얼마나 큰 위험이 걸려 있는지 보십시오. 백만 달러를 잃으면 집을 잃을 것이고, 천만 달러를 잃으면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어 블랙리스트에 오를 것입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 속으면 세상 창조 이전의 완전한 공허와 혼돈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세 번 속으면, 열여덟 번째 단계는 말할 것도 없고, 적어도 다섯, 여섯 번째 단계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평생 끊임없이 속는다면 얼마나 어리석겠습니까?
그래서 요즘 좀 걱정이 됩니다. 언제쯤 우리는 형제자매들을 더 현명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당신이 더 똑똑해져서 다른 교회에 다닌다면 저도 기쁠 겁니다. 적어도 속지는 않을 테니까요. 어떻게 낚이지 않을 수 있겠어요? 마치 물속에서 아름답게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한 입 베어 물면 낚아채는 거죠. 하지만 이 세상에 살면서 한 입 베어 물면 낚여버린다면, 어디서 이치를 찾을 수 있겠어요?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는 사람은 속기 어렵습니다. 삶의 사소한 문제까지 꿰뚫어 보는 사람은 속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속에 깊은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해와 지식, 그리고 온갖 통찰력을 키우기를 바랍니다. 삶은 허무에 불과하고, 삶은 죽음으로 이어지며, 결국에는 재로 변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얽매여 있을까요? 조금 더 행복해지고 우울하지 않을 수는 없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죽고 싶어, 죽고 싶어."라고 말합니다. 살고 싶은 욕망 없이 죽고 싶은 욕망이 있을까요?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끝 아닌가요? 건물에서 뛰어내리지 마십시오.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십시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꼐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그라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빌립보서 1:20-25)
저는 바울이 느꼈던 불안에 특히 공감합니다. 저는 이 말을 자주 하고, 여러분과도 나누고 있습니다. 저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저는 "이게 무슨 생각인가?"라고 묻습니다. 이 말을 너무 자주 하는데, 정말 미칠 것 같아요. 그러니 우리는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믿음 안에서 성장하고 기쁨을 누리세요
진정한 믿음을 믿는다면 분명 기쁨을 느낄 것입니다. 기쁨으로 자신을 평가한다면 결코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평생 믿음 안에서 성장한다면 분명 기쁨을 느낄 것입니다. 왜일까요? 속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이것은 이것, 저것은 저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성장하고 그 안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 문장을 반복해서 외우면, 항상 그 의미가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느낍니다. 제가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질문드리겠습니다. 당신이 믿는 믿음은 평평하고 꾸준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은 이해와 지식의 지속적인 성장에 관한 것입니다. 지식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매우 어렵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 앞에서 제가 진정으로 기쁘다고 자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왜 이렇게 기쁠까? 돈이 부족한 게 아닌데."라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그렇게 재정적으로 안정될 수 있을까요?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집을 직접 리모델링했습니다. 남들은 10만 위안을 쓰지만, 저는 1만 위안으로 했습니다. 돈이 부족할까요? 저는 돈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럼 9만 위안을 모으는 데 몇 년이 걸릴까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저는 제 병을 직접 치료합니다. 신이 계시고, 기도만 하면 치유됩니다. 임사체험도 할 수 있고요. 그리고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병원에 왜 안 가세요?"라고 묻습니다. "병원에 왜 가세요?"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 건 다 고칠 수 있어요.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는 것도 고칠 수 있어요." "병원에 왜 가세요?" "엄마의 알츠하이머도 고칠 수 있어요. 허리 마비도 고칠 수 있어요." "정말 건강하다고 하시잖아요!"
제 기술이 없었다면 얼마나 더 써야 했을까요? 간병인을 고용하고, 이것저것 고치고, 온갖 다른 일들을 해 보세요. 세상에! 알츠하이머도 고칠 수 있어요. 그리고 중요한 건, 공짜라는 거예요. 제 형제자매 중 누구도 제게 반박하지 않았어요. "엄마 병원에 데려다주는 게 어때? 하고 싶으면 하세요. 하고 싶으면 돈 쓰고." 모두 입을 다물었어요. "감히 더 부탁할 수 있겠어?" "아니요."
그러니 우리는 믿음 안에서 성장하고 기뻐해야 해요. 병이 들면 제가 직접 치료하고,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제가 직접 만들고, 스스로 배우고, 수업료도 내지 않아요. 뭔가를 배우려고 수천만 원을 내야 하는 어떤 형제자매들과는 달라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문제가 아니지만, 저는 돈을 쓰지 않고도 모든 문제를 해결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도 있고요. 모든 걸 명확하게 설명해 주죠. 정말 상쾌하고 기쁩니다! 이해가 없다면 어떻게 기쁨이 있겠어요?
제가 믿는 신앙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지뿐입니다. 어떻게 신앙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신앙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해할 수도 없고,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볼 수도 없습니다. 병이 나면 돈을 들여 치료해야 합니다. 해결되지 않고 고통스러운데, 결국에는 눈을 크게 뜬 채 비극적으로 죽습니다. 이게 무슨 소용입니까?
여러분 모두 우리 가운데 오시면, 저는 여러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과 은혜를 드리며, 여러분의 신앙 안에서 성장하고 기뻐하도록 격려할 것입니다. 그 사람의 지식은 계속 증가합니다. 만약 당신이 타오바오 매장을 연다면, 지식을 풍부하게 하고 파산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렇게 한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첫째, 제 능력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제 능력은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따르고 싶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십시오. 성경의 모든 책 중에서 전도서를 이해해야 합니다.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전도서를 이해하면 창세기도 이해하게 됩니다. 최근 미국에 사는 한 형제님 부부가 제가 창세기 1, 2, 3장을 낭독하는 것을 듣고는 "와, 정말 대단해요! 정말 귀한 말씀이에요!"라고 감탄했습니다.
창세기 15장을 모두 이해하게 되면 전도서의 허무함 중에서도 허무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창세기를 통해 운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왜 사는지 알고, 참된 믿음 안에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이 그 기초입니다. 그러면 이해가 점점 더 명확해질 것입니다. 그 부부가 제게 "와, 그 부부는 오랫동안 복음주의에 몸담으면서 성경 말씀을 다 들었어요."라고 말했던 것과는 다릅니다. 저는 매우 감명받아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인내하며, 겉으로는 이해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셨네요. 10년, 20년 동안 인내하신 모습이 정말 대단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도 그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믿음 안에서 성장하고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싸움입니다. 이해하기 시작하면 영적인 세계가 얼마나 실제적인지 깨닫게 됩니다. 아기일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보호하시지만, 영원히 아기로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해하십니까? 믿음 안에서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당신의 사랑은 지식과 통찰력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어른이 되면 영적인 무기를 들고 이 영적인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다.
마귀는 무섭습니다. 그러니 "와, 주님을 믿는 믿음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은혜도 많이 받았구나"라고 생각하며 시작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다음으로, 당신은 끊임없이 당신 안에 있는 악, 곧 육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을 다루어야 합니다.
당신이 성장함에 따라, 하나님은 당신을 세 살배기 아이처럼, 그저 어슬렁거리는 아이처럼 생각하게 하실 것입니다. 일곱 살이 되면, 하나님은 당신을 초등학교 1학년처럼 생각하게 하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 하나님, 제발 이렇게 살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아기가 되는 게 너무 귀엽다고 생각해." 여러분은 귀엽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시죠. 그런데 자라도 전혀 자라지 않는다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다리가 짧고 머리가 크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거대한 아기가 될 겁니다.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글ㄹ 믿을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빌립보서 1:28-30)
이와 같습니다. 싸울 줄 모르는 사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싸울 줄 모르는 사람은 민수기에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용사가 되기를 열망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싸우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도시를 정복하고 땅을 차지했으며, 마귀가 훔쳐간 것을 되찾았습니다. 그것은 모두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용사이며, 이 마귀의 원수들아. 이 악한 원수들은 많은 사람의 재물을 약탈했다. 너희는 마귀의 손에서 그것을 빼앗아 갔다. 어떻게 가난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지식과 총명이 더욱 풍성해지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오, 세상에! 참으로 풍성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원수들 앞에서 우리를 위한 잔치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빌립보서는 기쁨에 관한 서신이 아닙니다. 지식과 통찰력 없이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말을 걸면 미칠 것 같고, 누군가 당신에게 반박하면 망연자실합니다. 통찰력, 지식, 사랑, 진리 없이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고 싶습니까? 마침내 기쁨의 삶을 판단할 때, 우리는 그 삶을 살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지혜가 없으면 기쁨이 없고, 지식이 없으면 기쁨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 안에 있는 게으름과 싸우도록 노력합시다. 게으름을 해결하고 나면, 우리는 지식과 사랑과 온갖 통찰력이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나님! 우리 형제자매들 안에서 놀랍게 역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고 무장시켜 주십시오. 우리 각자가 정예 군인이 되어 원수를 약탈하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 아멘! 많은 형제자매들이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멘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