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시편 시리즈(2)-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필기를 참고
1.서론
a. 사람들이 스스로를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극도로 파괴적입니다. 사실 우리는 죄인이며,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십니다.
B. 우리는 자신이 죄인이며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잊는 순간, 귀신들이 찾아올 것입니다.
C.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더 더럽고 불결하다고 느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질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선하다고 생각합니다.
D. 허물이 사함받고 죄가 가려진 자들은 복이 있나니, 스스로 선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죄인이니, 그들의 허물이 사함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E.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귀신들은 그들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시면, 귀신들은 우리 안에서 무법천지가 됩니다.
2. 성경의 말씀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심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함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셀라).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 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시편32편1:1-11)
3.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우리가 얼마나 더럽고 오염되었는지 깨닫게 해 주십시오. 또한 당신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알게 해 주십시오. 당신의 이 은혜가 우리 안에서 영광스럽게 찬양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오늘 당신 앞에서 고백하고 회개할 용기를 허락해 주십시오.
주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허물과 죄를 씻어 주시고, 당신 보시기에 우리를 의롭게 만들어 주십시오. 하나님,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당신 앞에서 구원과 기쁨을 되찾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당신을 의지하여 어둠의 권세를 이기고 당신께서 저를 창조하신 영광스러운 형상대로 살아가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 성경말씀의 배경
a. 다윗은 죄를 지었고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러나 고백하고 회개하자 다시 기쁨을 찾았습니다.
b.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허물이 사해지고 죄가 가려진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c.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인정할 때, 우리는 용서를 받습니다.
##5. 복 있는 사람들은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a. 완악한 사람은 많은 고통을 겪으며, 그들이 겪는 고통의 양은 그들의 부드러움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b. 부드러운 마음은 위대한 속성입니다.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할 정도로 고집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고통을 덜 받게 됩니다.
6.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을 수 있을 때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찾을 수 있을 때 기도하십시오.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거나 홍수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7. 복 있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 안에 거합니다.
a. 복 있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 안에 거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지 않으면 악령이 찾아와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b.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러한 계략과 속임수를 피하십시오.
c. 다윗은 부드러웠습니다. 그는 구할 수 있을 때 찾고 회개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거합니다.
8. 복 있는 사람은 고통을 덜 받습니다
a. 복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동안 그분께 기도합니다. 끊임없이 하나님 안에 거하면 고난을 덜 겪습니다.
b. 복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부드러워야 하고, 항상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식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고난을 덜 겪습니다.
9. 복 있는 사람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a. 하나님의 눈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며, 우리가 가야 할 길로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고, 훈계하십니다.
b.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그분의 진리를 구하며, 끊임없이 영적 진리의 높이로 올라가십시오.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번에는 시편 32편을 계속 공부해 보겠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주제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성경에서 저주와 축복은 영원한 주제입니다. 신약에는 저주가 없다고 주장하지 마세요. 어리석은 짓입니다.
신약 성경, 즉 성경은 저주에 대해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복음을 믿거나 잘못된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저주를 받습니다. 이런 사람은 저주받아 마땅합니다. 자세히 읽어보시면 찾아보실 수 있겠죠? 그러므로 축복과 저주는 성경에서 매우 영원한 주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주와 축복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완전히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지키고 순종하면 축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합니다. "선생님, 저는 지키고 순종할 수 없어요." "아, 저는 지키고 순종할 수 없어요." "아, 그럼 정말 무서워요." 무서워해야 합니다. 하루 종일 지키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무서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번 시편 32편에 대한 우리의 토론은 "죄를 용서하고 죄를 덮어주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기분이 나쁘면 존재감조차 잃고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 그것이 살아남을 희망과 용기가 됩니다. 비극적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는 순간, 그들은 위험해집니다.
당신은 원래 죄인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원래 죄인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인으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사실, 당신은 여전히 죄인입니다. 이 율법책을 당신의 입에서 떠나지 말고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복이 있나니, 하는 일마다 다 형통할 것이니라. 하지만 성공이 오래 지속되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된다. 이상하지 않나?
나는 내가 꽤 잘났다고 생각했다. 목사님과 영적 지도자들과 논쟁도 했다. 세상에, 나는 내가 너무 잘났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옳고 그름을 고집하기까지 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사실,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을 때, 하나님은 우리가 의롭다고 말씀하신다. 이 사실을 잊으면 마귀가 온다. 그러면 일이 잘못되고 순탄치 않게 된다.
누가 이런 경험을 가장 많이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렇습니다. 저 외에도 성경에 나오는 다윗 왕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항상 관찰하고, 연구하고, 요약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은혜를 받았고 스스로를 선하다고 생각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제 시편 1편을 쓴 다윗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그는 무엇을 썼을까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 시편을 쓴 사람은 바로 다윗 왕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는 시편 32편을 썼습니다. 이 시편의 배경은 무엇일까요?
한동안 그의 삶은 편안했고, 더 이상 최전선에서 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평화로운 삶이었고, 더 이상 직접 칼과 총을 들고 전투에 나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후 경제가 번영하고 사람들의 생활이 극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업적이 엄청났다고 느꼈습니다. 크고 작은 집회를 열고 부하들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는 여호와의 율법을 여전히 즐거워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밤낮으로 자신을 묵상하며 자신이 복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부드러워지기 시작했고, 아랫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며 더욱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는 아첨꾼들로 자신을 둘러싸게 되었습니다. 정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기타리스트를 한 명 섭외했습니다. "데이비드, 마이크 잡고 시편 1편 불러." 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를 위해 곡까지 작곡했고, 데이빗은 "와, 정말 멋진 곡을 썼네."라고 노래하며 기분 좋게 웃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악마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는 너무 자랑스러워서 스스로를 데이비드 글로리, 글로리 데이비드라고 불렀습니다. 그때 악마가 나타났습니다.
데이비드는 전날 밤 술을 몇 잔 마시고 친한 친구들을 모아 케밥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들은 한 잔씩 마시며 마오타이주 한 상자를 순식간에 비웠습니다. 그런 다음 맥주 세 상자를 가져와 케밥 몇 접시를 준비했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업적을 이야기하고 밝은 미래를 기대하며 완전히 취할 때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시편 32편의 기원에 대한 것입니다.
그들은 아침까지 술을 마시며 사이사이 다윗이 지은 시편 몇 편을 불렀습니다. 와, 정말 기뻤습니다! 제가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오후까지 잤습니다. 깨어났을 때는 완전히 멍했습니다. 해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어제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동쪽에서 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서쪽에서 봤을까요? 거의 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너무 이상했습니다. 아, 너무 졸렸습니다.
그때 그는 예루살렘의 가장 높은 테라스에 잠옷을 입고 서 있었습니다. 당시 가장 높은 테라스는 아마도 2층 건물이었을 것입니다. 내다보니,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젊은 여자 밧세바가 다윗의 집 근처 마당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 정말 각도가 완벽했습니다. 그녀가 목욕하는 모습을 다윗은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상상이 가? 세상에! 저 목욕 동작은 여호와의 율법에 따른 건가요? 전혀 아니고, 그냥 신체적 반응일 뿐이에요. 어제 마오타이주를 마셨는데, 제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그녀를 데려갔고, 데려갔고, 아, 정말 데려갔어요."
밧세바는 왜 거기서 목욕을 하고 있었을까요? 아, 정말입니다. 밧세바, 이 여자. 남편은 전선에서 싸우러 나가 있었어. 흥분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저 다윗이 저 테라스에 서 있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을 뿐이야. 아, 언제쯤 내가 여기서 목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정말 우연이군! 정말 우연이었지. 그렇게 다윗의 머릿속은 밧세바의 목욕으로 가득 찼어. 누군가 목욕하는 모습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될 테니까. 마침내 그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왔지. 마치 우연처럼, 그녀는 임신을 했어. 그냥 임신한 거야. 어떻게 해야 할까? 자, 우리 모두 그에게 조언을 좀 해 주자. 어떻게 해야 할까?
다윗, 여호와의 율법이 그때도 존재했을까? 그 율법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녀의 임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그는 그녀의 남편을 전선에서 불러들였어. 집에 돌아오면 그녀와 불륜을 저지를 거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다행히 우리아, 네가 아이를 가졌구나! 좋은 계획이었어.
하지만 우리아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 그는 다윗의 집 밖에 앉아 잠을 잤습니다. 다윗은 이 일로 심히 걱정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오, 우리아, 자네는 정말 충성스럽군.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군." 그래서 우리아를 다시 최전선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아의 장군에게 편지를 써서 전투에서 죽겠다고 했습니다. 이게 계략이 아니라면 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뭔가 수상쩍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윗이 시편 1편을 지을 때, 그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그 율법을 묵상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과연 복이 있는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그는 오직 밧세바의 태중에 있는 사생아와 이 부끄러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아, 이 걱정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신하들은 모두 다윗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아, 다윗은 나라와 민족을 걱정했습니다. 다윗, 왜 자네는 행복하지 않나? 오, 묻지 마, 묻지 마, 가버려, 가버려. 그는 우리아의 계략을 어떻게 없앨지 밤낮으로 고민했습니다.
정말 고통스러운 감정이었습니다. 우리아가 살해당하고, 밧세바가 아이를 낳고, 아이가 죽을 때까지 상상해 보세요. 다윗은 그 모든 기간 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런 고통을 겪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 그는 말했습니다. "죄를 고백하세요. 하지만 당신의 존엄성은 어디에 두시겠습니까?" "죄를 고백하지 마세요."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다윗은 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지혜는 무엇이었을까요? 오랜 숙고 끝에 그는 마귀에게 조종당할 수 없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 구원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 당신 앞에 제 죄를 고백합니다. 당신 앞에 제 죄를 고백했을 뿐만 아니라 시편 32편까지 썼습니다. 이 부끄러운 이야기를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털어놓습니다. 허물이 사해지고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습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부자가 행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맑은 마음입니다. 기쁜 마음은 단순히 포도주를 조금 마시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아아, 그는 다시 구원의 기쁨을 찾았습니다. 그는 복이 있습니다!
시편 32편은 다윗이 극심한 고난을 겪다가 마침내 진리를 깨달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밤낮으로 주님의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은 자기 의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파멸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오늘 조심하십시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의롭다고 느끼며,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느낍니다.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물론, 이런 감정을 느낄 수는 있지만, 스스로 선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때로는 사실이고, 때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 예수님 덕분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매우 당혹스러운 글을 썼습니다. 주님을 계속 믿으면서 자신을 죄인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믿고 섬기면서 자신이 죄인이라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믿으면서 그는 큰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죄인들의 괴수가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논리입니까? 말씀드리자면, 사람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수록 더 더럽고 불결하다고 느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질수록 스스로를 선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런 원리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욥을 언급하지만, 나중에 저는 욥에 대해 연구하면서 욥이 엄청나게 기분이 좋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스 땅에 의로운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제가 욥이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즐거워하며 존재감에 충만해져서 엄청나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이를 보고 "어머? 네가 정말 선하다고 생각하는 건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불평하러 갔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 이것이다. 가서 그를 처리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스스로 꽤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그걸 알 수 있을까요? 욥기를 읽어 보세요. 문맥 없이 읽지 마세요. 욥기를 완전히 이해하면, 욥이 스스로 꽤 훌륭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는 오래전에 고통을 받았어야 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욥은 하나님과 다투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터무니없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셔서 그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그의 대화를 보면, 욥이 스스로 꽤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나중에 욥은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스스로 꽤 훌륭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치명적인 일입니다.
제가 목회했던 사람들 중에는 암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꽤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는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중에 암에 걸렸고 치유받고 싶다면, 간단합니다.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당신의 결정입니다.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자신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멈추세요. 저는 나중에 세상을 떠난 많은 암 환자들을 목회했는데, 그들은 모두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여전히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악령들이 와서 그들을 고문하여 죽였습니다.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욥은 의로운 사람이었을까요? 어떻게 의로울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습니다. 다윗은 의로운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습니다. 당신과 저는 의롭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십니다.
오랫동안 그리스도인으로 교회에서 설교하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요? 신명기 28장이 그 이유였습니다. 우리의 "101 과정"은 축복과 저주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신명기 28장의 축복과 저주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저도 자주 불순종하는데, 저도 저주를 받지 않을까요? 그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슨 일을 하셨을까요? 그분은 무엇을 이루셨을까요? 십자가에서 무엇을 이루셨을까요? 아, 정말 혼란스럽네요."
이 혼란이 너무 혼란스럽지 않나요? 그녀는 이 문제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저도 그녀가 무엇을 혼란스러워하는지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그녀는 죄인이고, 이미 많은 저주를 받았잖아요? 그런데도 여전히 이런 혼란 속에서, 무섭지 않나요? 예수님께서 이 매듭을 풀러 오셨어요. 왜냐고요?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귀신이 우리를 지배할 수 있어요. 귀신이 우리를 지배하면 어떻게 되나요? 사람들은 저주를 받습니다.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었고, 신명기 28장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를 죄인으로 여기지 않고 의인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죄는 어디로 갔을까요?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그 후 악령은 불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매듭을 푸셨습니다.
보시다시피, 당신은 죄인이기 때문에 악령은 합법적으로 당신을 괴롭힐 수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악령이 당신을 괴롭히면 더 많은 죄를 짓게 됩니다. 죄를 많이 지을수록 악령은 더 많이 괴롭힙니다.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습니까? 이제 예수님께서 이 매듭을 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구원하시는 것은 당신이 충분히 잘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후에 당신은 이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 깊게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당신이 주의 깊게 순종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순종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은 결코 순종하지 않을 변명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삶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저는 신명기 28장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이는 당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상기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죄인이며 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재갈과 고삐가 있어야만 길들일 수 있는 노새나 말처럼 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서 악한 자들은 많은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비참합니다. 얼마나 악한 사람입니까!"라고 말씀하셨죠. "목사님, 저는 비참합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매우 악한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게임이나 소설을 읽을 때와 같은 에너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한다면, 혼란스러워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혼란스러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소설을 읽거나 게임을 할 때, 그 에너지가 솟아오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람은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면 악해집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의 허물이 용서받지 못했고, 죄가 가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의 말씀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심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함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셀라).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 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32편1:1-11)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우리가 얼마나 더럽고 오염되었는지 깨닫게 해 주십시오. 또한 당신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알게 해 주십시오. 당신의 이 은혜가 우리 안에서 영광스럽게 찬양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오늘 당신 앞에서 고백하고 회개할 용기를 허락해 주십시오.
주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허물과 죄를 씻어 주시고, 당신 보시기에 우리를 의롭게 만들어 주십시오. 하나님,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당신 앞에서 구원과 기쁨을 되찾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당신을 의지하여 어둠의 권세를 이기고 당신께서 저를 창조하신 영광스러운 형상대로 살아가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말씀의 배경
아, 이 구절의 맥락은 이미 다뤘습니다. 다윗이 죄를 지은 후, 그는 매우 기뻤습니다. 그가 행복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정말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의 고난은 그 기쁨보다 열 배나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하자, 악령이 그에게 달라붙었습니다. 그는 악마의 지시를 한 걸음씩 따라가며 점점 더 비참해지고 고통스러워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고 크게 성장한 후 건물에서 뛰어내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투옥되거나 자살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과거에 건물에서 뛰어내린 다섯 명의 개인 사업가가 나오는 영상을 보내왔습니다. 개인 사업가들은 돈을 벌고, 그중에는 유명 브랜드의 오너들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돈을 벌면 무엇으로 이어지는가? 고통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돈을 벌면 악해지기 때문입니다.
리아오가 아주 잘한 말을 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착한 사람이 없고, 착한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착한 사람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어릴 때부터 착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착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무슨 말을 했을까요? 성공 뒤에는 인생의 부침이 아니라 악과 부패가 있다고 했습니다.
자, 형제자매 여러분, 이 논리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이 세상에 살다가 건물에서 뛰어내릴 수 있겠습니까? 상처에 소금을 뿌리지 말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마치 다윗처럼, 그토록 악행을 저질렀지만 비참함을 느끼고 하나님께 뛰어내리지 않은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는 "그때는 건물이 그렇게 높지 않았어. 뛰어내리면 다리만 부러질 뿐이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거야. 그의 집은 겨우 2층이었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다윗은 현명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쁨을 찾았습니다. 왜일까요? 우리 모두 원래 죄인이었고, 이제 죄가 하나 더 생겼기 때문입니다. 죄를 하나 더 자백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맙시다. 사실, 당신과 저는 모두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습니다. 다윗뿐만 아니라 당신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복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허물이 사해지고 죄가 가려진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왜 그들이 복이 있을까요? 우리가 죄를 자백하기 때문에 죄가 사해졌습니다. 일단 우리가 그것들을 인정하면, 그것들은 가려지고 지워집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문제입니다. 의로운 마음을 갖고 혼란스러운 생각을 피해야 합니다. 지금과 다른 문제입니다. 선생님,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이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 혼란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다윗이 이 일을 겪은 후 시편 32편을 썼습니다. 이 경험은 다윗에게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가 느낀 고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그것은 악령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악령이 사람에게 거하면 극도로 불편해집니다. 사람이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악령은 필연적으로 그 사람에게 거하게 됩니다. 우리의 허물이 용서받지 못했고, 우리의 죄가 가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악령은 우리를 괴롭힐 권리가 있습니다.
욥도 그 죄들을 겪었습니다. 당신은 악령이 그 일을 일으켰다고 생각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상황이 나아졌습니까? 욥은 회개했지만, 회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상황이 나아질 수 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작은 교만은 버리십시오. 그런 자만심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시편을 기록하여 후대에게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되었다고 말씀드립니다.
마음이 연약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연약한 자는 복이 있나니. 주의 깊게 살펴보면, 제가 오랫동안 연구해 온 이 세상의 현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완고한 사람들은 많은 고통을 겪고,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며, 자신이 믿는 것이 많은 고통의 원인이라고 믿습니다. 사람이 삶에서 겪는 고통의 정도는 그들의 완고함과 완고함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다윗은 "너희는 지각 없는 노새나 말과 같이 되지 말고 재갈과 굴레로 다스려야 하며 그렇지 아니하면 길들일 수 없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사실, 허물을 용서받고 죄를 덮어받아야 하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사역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게 하는 것이 특히 어려웠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잘못을 했다고 믿게 만들었는데, 간단한 일깨움조차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냥 저와 말다툼하고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원래 다 그런 법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더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지 않을까요? 마음이 여린 것은 좋은 자질입니다. 자신이 믿는 것을 고집할 정도로 고집하지 마십시오. 자신이 믿는 것을 고집하면 망하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여린 것, 끊임없이 자신이 옳은 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고통에서 구원해 줄 것입니다.
유덕화가 주연한 강호라는 TV 드라마가 있습니다. 본 사람 있나요? 저는 광둥어 기반 홍콩 드라마를 본 적이 없고, 영화도 거의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이걸 알 수 있을까요? 싱가포르의 한 목사가 집회에서 유덕화의 대사를 광둥어로 말했습니다. 유덕화의 대사는 이렇습니다. "내 말을 듣지 않고, 들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해도 행동하지 않고, 들어도 잘못한다. 틀렸는데 인정하지 않고, 인정해도 변하지 않고, 변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광둥어 버전이 더 듣기 좋고 풍미가 있지만, 제 번역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건 그냥 고집이잖아요? 발차기를 맞고 나서 한 걸음 내딛는 것과 같아요. 고집 센 사람들은 정말 많은 고통을 겪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고집이 좋은 특성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더 큰 고통을 안겨줄 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고집이 세고 고집 센 사람이라면 어떻게 신과 논쟁할 수 있겠습니까? 축복받은 사람들은 마음이 부드럽습니다. 마음이 부드럽다고 해서 인격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마음이 부드럽다는 건 아주 좋은 특성입니다.
예전에 제 상사가 여자친구나 아내를 찾을 때는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을 찾아야지, 마음이 딱딱한 사람은 절대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마음이 딱딱한 사람은 더 큰 고통을 겪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고통받을 거예요. 우리 자매님들 중에 아들의 아내를 절실히 찾고 계신 분이 있다면, 부디 올바른 사람을 고르는 데 신중하시기 바랍니다. 가족의 고통이 덜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이 문제에 있어서 잘못은 용서받고 죄는 덮어져야 합니다. 이 사람의 행복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요? 들어줄 수 있다면 들어주세요. 듣고 나면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그에 맞게 행동하고, 만약 실수했다면 다시는 실수하지 마세요. 실수를 했다면 빨리 인정하고 바로잡으세요. 그리고 마음속에 원망을 품고 고집 센 당나귀처럼 행동하지 마세요. 그건 정말 지치는 일입니다. 이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노새나 말처럼 재갈을 물고 끌려다니지 마세요. 입에 굴레를 물고 싶은데, 어떻게 힘들지 않겠어요? 사실 정말 힘들지만, 가장할 수는 없습니다. 이건 다윗이 한 말이지, 제가 한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분을 만날 수 있을 때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분을 만날 수 있을 때 기도합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제 죄를 당신께 고백하고 제 죄악을 숨기지 않습니다. "내 허물을 주께 자백하겠습니다"라고 말했더니, 당신께서 제 죄악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경건한 사람은 만날 수 있을 때 당신께 기도할 것입니다. 홍수가 닥쳐도 그에게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이 복된 사람의 마음은 부드러우면서도 고통스럽고, 매우 단단합니다. 우리가 홍수에 잠기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수 있고, 아직 기도할 권리가 있을 때, 빨리 기도하십시오. 그분 앞에 죄를 고백하십시오. 저는 주님께 제 허물을 자백합니다. 더 이상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 문장은 무슨 뜻인가요? 노아의 방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노아는 호랑이, 늑대, 사자, 코끼리, 그리고 다른 동물들을 짝을 지어 방주에 태웠습니다. 줄이 엄청나게 길었습니다. 당시에는 기술이 상당히 발달해서 지역 주민들이 이 이야기를 생중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노아의 방주 입성에 대해 들었습니다. "오, 무슨 일이야, 노아? 뭐 하는 거야?" "오, 홍수가 온다! 우리가 방주에 들어간다!" 홍수가 오고 있었고, 모두가 방주가 말라가는 것을 보았는데 왜 홍수가 난 걸까요?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아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후, 홍수가 오기까지 아직 7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마음은 완고했고, 그는 부드러워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방주의 문을 닫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웃으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어떻게 홍수가 날 수 있지?" 지상의 사람들은 아직 7일밖에 살 수 없었습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요리하고 먹었습니다. 홍수는 없었습니다. 노아의 가족이 그렇게 어리석었다면 "홍수가 어떻게 올 수 있지? 산책하러 나가야겠다. 슈퍼마켓에 가서 장을 좀 봐야겠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 테이크아웃 음식이 방주 문 앞에 도착했는데, 빨리 문을 열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문이 닫히면 아무도 나올 수 없습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도 들어올 수 없고, 안에 있는 사람들도 나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7일 후, 홍수가 옵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 소용없습니다. 그냥 익사할 뿐입니다. 홍수가 닥쳤을 때 하나님께 "하나님, 저를 구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만 기억한다면, 그건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홍수가 오기 전에, 하나님을 찾을 기회가 아직 있을 때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을 수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도하고 죄를 고백하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건 정말 소용없는 일입니다. 여러분을 겁주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많이 섬기고 있으니까요. 그런 완고한 사람들이 많으니, 모두가 덜 고통받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고집을 부리거나 문이 닫힐 때까지 기다리지 마세요. 그러면 어디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문을 열어주세요."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게 끝입니다.
하나님 안에 숨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시편 32편 7절은 "주는 나의 피난처시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워싸시리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정말 중요합니다. 아시다시피, 사람이 하나님 안에 있을 때는 귀신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밖에 있으면 귀신이 그에게 해를 끼칠 것입니다. 왜 하나님 밖에 머물러야 합니까? 하나님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다윗은 죄를 지었고 회개하여 귀신이 더 이상 닿지 못하는 하나님 안에 숨었습니다. 이 말씀은 때때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말은 직설적이어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계략을 꾸미거나 음모를 꾸미지 마십시오. 설령 다윗이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를 궁궐에 들여보낸다 해도, 다윗의 마음속 고통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내가 침묵했을 때, 신음하며 내 뼈는 쇠약해졌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당신의 손이 나를 짓누르시어 여름 가뭄처럼 내 기운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 안에 있지 않지만, 하나님의 손이 당신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억압하기 위해 몇몇 작은 악령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사람의 고통은 무언가를 먹는다고 해소될 수 없습니다. 우울증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고통이 닥쳤을 때 그 고통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이유입니다. 그런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견뎌내야 합니까?
저 위대한 기업가들은 어떤 어려움에 직면합니까? 그들은 세상의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아아, 사업이 호황일 때는 좋은 직원을 구할 수 없습니다. 좋은 직원을 구하면 사업은 망합니다. 세상에, 정말 힘듭니다. 은행 대출도 갚지 못하고 월급도 줘야 합니다. 정말 힘듭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그들이 고통받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아끼는 형제자매들이 있는데, 내가 얼마나 한심한지! 누가 그들을 보호해 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아직도 이 문제로 걱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숨는 것이 낫습니다. 세상의 짐을 혼자 짊어지려 하지 마십시오.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 압박감은 정말 견딜 수 없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손길이 자신을 짓누르는 것을 느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건물에서 뛰어내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어땠을까요? 다윗은 똑똑했습니다. 그는 마음이 부드러웠습니다. 할 수 있는 동안 기도하고 구했습니다. 할 수 있는 동안 회개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안에 숨어야 했습니다. 바깥세상은 재미없으니까요. 제게 물으신다면, 이 세상에는 좋은 곳이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악마가 당신을 만질 수 없습니다. 악마는 당신을 만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의롭다고 여기십니다. 제가 어떻게 거기에 숨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 말하되 듣지 않고, 들으나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되 행동하지 않고, 행하되 잘못하고, 인정하지 않고, 인정하되 변하지 않고, 변하되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당신은 제게 또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하나님의 손에 압제당할 뿐입니다. 가장 복된 자는 하나님 안에 숨어 거기서 나오지 않는 자입니다. 나온 후에 당신은 무엇을 할 것입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나온 후에 비참했습니다.
복된 자들은 덜 고통받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으며, 다윗은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이를 요약했습니다. "악인은 많은 고통을 당하고 복 있는 자는 적은 고통을 당할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시니, 그가 나를 고통으로부터 보호하시리라"라는 구절도 있습니다. 고통을 유발하는 것은 무엇이든 나쁘고 치명적일 수 있는데, 특히 질병은 더욱 그렇습니다. 당신은 경험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마치 지옥의 문을 통과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아프면, 당신의 몸에 대해 말해 줄 것이고, 설령 말해 준다 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매우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저는 질병을 결코 좋은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런 종류의 고통과 아픔은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니, 그가 우리를 고통으로부터 보호하실 것입니다. 악인은 많은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고통이 적고, 하나님 밖에서는 고통이 더 큽니다.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자신이 복이 있다고 생각하며, 곧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목사들은 감히 질병을 고통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실, 질병은 고통이 아닙니다."라고 말합니다. 왜냐고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체면을 세워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지만, 병들기도 합니다. 특히 목회자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도 그들에게는 정말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실수를 더 자주 인정하고 싶어 합니다. 실수를 더 자주 인정할 때 우리는 복된 사람이 됩니다.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덮어줍니다. 그만큼 복된 사람입니다. 제 실수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도 제 실수를 더 자주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체면을 세우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글쎄요, 저는 둔감하고, 그렇게 살지 않으니 실수를 했다면, 뭐, 잘못한 겁니다. 만약 잘못했다면, 그냥 바로잡으면 됩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복된 사람이 되려면 마음이 부드러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찾으실 때 하나님을 찾고, 그 앞에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복된 사람은 쉽게 헤매지 않고 하나님 안에 숨어야 합니다. 그러면 분명히 고통이 줄어들 것입니다.
사실 생각해 봤어요. 제 삶에서 수많은 고통을 피했어요. 하나님을 몰랐다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요? 저는 축복받았어요. 정말 축복받았어요. 저희 엄마는 점쟁이에게 상담하는 걸 좋아하세요. 특히 우리 아이의 운세에 관해서는요. 어떤 점쟁이에게 상담하든 항상 "아이가 축복받았어요!"라고 말해요. 아, 제 이름은 류우푸여야 할 것 같아요. 제 마음은 굳어지지 않았어요. 저는 수많은 고통을 피했고, 제 형제자매들도 덜 고통받을 수 있기를 바라요.
사실 이게 제 꿈이에요. 제 형제자매들이 그렇게 고통받는 걸 정말 원치 않아요. 소용없어요. 그렇게 고통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죠? 축복받은 자들은 덜 고통받는 거예요. 덜 고통받는 거죠. 욥이 좀 더 일찍 겸손해지고,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면, 사탄이 그를 택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죠? 욥은 할 일이 없었고, 그렇게 많은 고통을 겪지 않았을 거예요. 현실이 그렇죠. 우리가 항상 축복받았다고 느낀다면, 마음에 큰 고통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건물에서 뛰어내릴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복이 있나니!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실 것이다.
너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실 것이다. 내가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을 보여 주겠다. 내 눈을 고정하고 너를 훈계하리라. 하나님의 눈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잘못한 것을 보시고는 "이건 틀렸어, 이건 옳지 않아."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다 사람들이 고집을 부리게 되면, 그들은 타락하여 "아, 네가 옳지 않아, 이건 옳지 않아, 여기서 나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반항할 때 종종 아무 말도 하지 못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수많은 비난의 표적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무언가를 알려주셨을까요? 네. 다윗은 너무나 감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조심해, 요즘 조심해, 주변을 둘러보지 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살펴봐야 했고, 그러고 나서 하나님의 훈계 말씀을 잊어버렸죠. 그렇죠?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어딘가로 갈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십니다.
솔직히 말해서, 하나님께서 제게 여러 번 일깨워 주시고 제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생명이 위태로웠습니다. 저는 그 돈으로 교회를 후원할 돈을 벌었습니다. 전에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안 돼. 네가 나를 후원해 줄 필요 없어. 네가 교회를 후원하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할 필요도 없어." 그때 저는 변화되었습니다.
때로는 귀신을 쫓아달라고 기도하기도 했는데, 그 구덩이에 빠질 뻔했습니다. 그건 안 됩니다.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기도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만으로는 이해력을 키울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재빨리 변화되었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최근 들어 꾸준히 발전해 왔고,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가 다시 가야 할 길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복된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부드럽습니다. 우리는 순종하기 위해 고삐가 필요한 노새나 말과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그분의 진리를 구하며, 끊임없이 영적 진리의 높이로 올라갑니다. 하나님의 눈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주시하며 훈계하십니다. 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저는 진정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제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느끼며,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여러분 모두 복된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복된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만, 갑자기 정욕이 여러분을 죄로 이끕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마음속 정욕이 다윗의 정욕과 같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그 정욕, 그것이 형성하는 삶은 같은 정욕, 같은 삶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정욕에 빠졌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오늘 부끄러웠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과거에 죄인이었고, 오늘날에도 다시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우리의 허물이 용서받고, 우리의 죄가 가려질 때, 우리는 축복을 받습니다. 축복받은 사람이 되려면 세상적인 것들에 휘둘리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기를,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