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시편 시리즈-복이 있는 사람이
필기를 참고
1.서론
a. 성경에서 가장 명석한 인물은 다윗입니다. 다윗에게서 배우려면 사무엘상과 시편을 연구해야 합니다.
b. 축복으로 가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c. 모든 재앙은 갑작스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읽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감정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d. 사람에게 닥치는 저주와 재앙은 단지 피상적일 뿐입니다. 다윗은 사람이 여호와의 율법을 싫어하는 것은 비극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e. 어떤 것들은 사람에게 이롭게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불리합니다. 어떤 것들은 사람에게 이롭게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유리합니다.
f. 사람이 세상의 관습과 자신의 취향에 순종하는 것은 권력의 타락으로 이어집니다. 밤낮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올바르고 합당한 것을 행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2. 성경의 말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 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편1:1-6)
3.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복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알게 하소서. 우리 모두 당신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놀라운 은혜를 마음으로 깨닫게 하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당신의 율법과 말씀을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의 시간을 거룩하게 하여 밤낮으로 묵상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축복을 받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 안에 있는 저주하는 것들을 제거하여 당신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는 그 말씀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사랑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축복을 받게 하소서. 우리가 밤낮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이 말하는 신비를 이해하는 엄격한 태도를 갖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 성경말씀의 배경
a. 다윗의 시편은 그 자신을 위해 쓰였으며 그의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b. 다윗은 항상 승리하는 장군이었으며,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는 결코 바쁘지 않았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근심 걱정 없는 삶을 삽니다.
c. 다윗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의 중요성을 깊이 이해했습니다. 종종 잠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d. 다윗은 시편 1편에서 복 있는 사람의 원리를 훌륭하게 요약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그 율법을 묵상합니다."
5. 복 있는 자는 저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a. 하나님은 저주받은 자에게 저주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시고, 복 있는 자에게 축복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십니다.
b. 어떤 것들은 사람에게는 유익해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손해처럼 보입니다. 또 어떤 것들은 사람에게는 손해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유익처럼 보입니다.
c. 악인의 꾀를 따르지 말고, 죄인의 길에 서지 말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씀하시므로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4. 결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마십시오. 우리는 교만할 권리도, 죄인이 될 권리도, 죄인의 길을 걸을 권리도 없습니다. 인간의 의견은 최종적인 결정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6. 복 있는 자들은 죄인과 악인을 피합니다.
a. 악인에게는 그들만의 잣대가 있습니다. 그들은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스스로를 저주하고 있습니다.
b. 승리하는 교회에 다니는 것이 핵심이 아닙니다. 승리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c. 악인은 믿지 않는 자이고, 죄인은 육신을 따르는 자입니다.
7. 복 있는 자들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만을 기뻐합니다.
a. 비전신학론은 한 가지를 증명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기뻐하는 것이 행복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b. 여호와의 율법은 보물 창고와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줍니다.
c. 무지한 자, 부유한 자, 교만한 자는 조심해야 합니다!
8. 복 있는 자는 밤낮으로 묵상합니다.
a. 복 있는 자는 밤낮으로 묵상합니다. 이는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진지한 태도의 문제입니다.
b. 읽자마자 바로 이해하는 것은 드뭅니다. 읽고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밤낮으로 묵상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구하는 태도입니다.
c. 우리는 매일 거짓과 유혹에 직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이것이 악한 일이며, 결코 행할 수 없는 일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d. 하나님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고 율법책의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마십시오. 성경을 원어로 읽고 수십 번 읽으십시오.
9.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했습니다
다윗의 경험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보여줍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했습니다.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복 있는 자"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번 주일부터 시편을 설교 본문으로 사용하고, 설교하면서 시편을 해설할 것입니다. 저는 몇 년 동안 시편을 접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끝없이 찾아봤지만 이 부분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성경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하는 큰 꿈을 가지고 있으며,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시편 1편의 제목은 "복 있는 자"입니다. 다윗이라는 복된 사람이 지었습니다. 그는 정말 놀라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얼마나 축복받았을까요? 하나님께서 그의 삶 전체를 다스리셨고, 그는 후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서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진정한 무패 장군이었습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성공적이었고, 그가 계획한 모든 것이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시편 1편에 요약했습니다.
한 자매님이 저에게 "선생님, 제가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똑똑해야 합니다. 그 어리석음으로 어떻게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선생님, 제가 어떻게 똑똑해질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건 쉽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은 다윗입니다. 다윗에게서 배우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에게서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요? 저는 예전에 사무엘서를 읽었고, 지금은 시편을 읽습니다. 시편의 많은 부분은 다윗이 썼고, 첫 번째 시편부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축복 없이 사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축복을 받는 것은 쉽지 않지만, 축복이 없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저주 아래서 사는 것은 누릴 수 없는 축복이 있지만 견딜 수 없는 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젯밤에 젊은 목사님 중 한 분이 두드러기로 뒤덮인 자매님을 목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매님이 사진을 찍었는데, 축복받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말레이시아인이고 싱가포르에 거의 5년 동안 살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대만에서 10년 동안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다니던 어떤 교회에서도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그녀가 저를 찾아왔고,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싱가포르에서 일할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삶이 나아질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멍청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그녀가 멍청해졌을까요? 하나님 말씀과 섬김에 대한 모든 관심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했을 때는 사람들을 목양했지만, 이제는 목양하지 않아도 괜찮고, 목양하면 더 힘들어집니다. 월급도 오르고, 직장도 좋아졌지만, 하나님께 대한 관심도 잃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멍청할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를 가난에서 구해 주셨는데, 이제는 기도에도, 하나님 말씀 읽는 것에도 관심이 없고, 심지어 건강 보조제를 먹는 것조차 두드러기가 났습니다.
어제 기도하다가 그녀를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사람들을 축복으로 인도하고 축복받은 사람이 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왜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렇게도 잘 이해하지 못할까요? 왜 축복으로 가는 길을 모르는 걸까요? 사람들은 영적인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벌집은 영일까요? 네, 맞아요. 누가 그랬을까요? 그녀가 직접 그랬어요.
얼마 전,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한 자매님이 왔어요. 건강 보조제를 먹고 있었는데, 간질인 발작이 일어났어요.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나서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고 떠났죠. 사람들을 축복하는 게 정말 어렵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에게 지혜를 가르치는 게 정말 어려워요. 정말 힘든 일이죠.
사실, 목사로서 저도 목사님의 노고에 절반은 공감합니다. 목사님이 이렇게 사는 걸 보면, 어떻게 힘들지 않을 수 있겠어요? 특히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타락으로 치닫는 걸 보면요. 예언자나 예언은 필요 없어요. 바로 눈앞에서 타락으로 치닫는 게 보이잖아요. 죽어가고 있잖아요? 건강 보조제가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건강 보조제를 살 돈은 있는데 기도할 시간은 없나요? 나중에 저는 하나의 습관을 들였어요. 축복을 받을지 못 받을지는 운명에 달렸다는 거죠.
성경에는 지혜로운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다윗도 그중 한 명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발가락 열 개도 없을 테니, 열 개라고 생각하세요. 우리는 형제자매들이 복된 삶을 살고 영적인 세계를 이해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선택은 여전히 여러분의 몫입니다. 복된 사람이 되려면 복으로 가는 길은 무엇일까요? 복으로 가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다윗이 시편 1편을 해설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듣고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우리 자매 중 한 명은 신앙생활에서 매우 힘든 여정을 겪었습니다. 어머니가 암에 걸려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괜찮습니다. 수술과 약으로 충분할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항암 치료를 받으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의사는 "아니요, 절대 안 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미사여구를 알아들었습니까? 바보들만 믿을 것입니다. 요즘 의사들은 그런 미사여구에 매우 능숙하며, 모두 원장들에게서 직접 교육받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훈련시키듯이, 원장들도 같은 방식으로 의사들을 훈련시킵니다.
수술비가 너무 싸서 부담이 없어요. 그런데 수술 후에 의사가 "아직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약 몇 개면 충분하지 않을까요?"라고 묻습니다. 의사는 "주사 없이는 수술이 헛수고가 될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주사 한 번에 4천 위안인데, 그 이상씩이나 맞아야 합니다. 마치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6만 위안짜리 집을 10만 위안으로, 10만 위안짜리 집을 5만 위안이나 6만 위안으로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이게 다 영업직 아닌가요? 하지만 그들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축복받은 사람들은 이런 일들을 겪을까요? 아닙니다. 축복받은 사람들은 암도 걸리지 않는데, 왜 주사나 수술이 필요하겠습니까? 축복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사람들은 마귀에게 속을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속습니다. 마귀에게도 속고 사람에게도 속습니다. 정말 힘듭니다. 요즘은 뭐든 가짜는 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저는 형편이 좋습니다. 집을 꾸미고,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고, 병을 치료하고, 독학도 합니다. 물론 아무도 저를 속일 수 없죠. 기껏해야 생필품 정도만 살 수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축복으로 가는 이 길을 모릅니다. 저주의 길은 천국으로 이어집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모든 길은 저주의 길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축복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그 율법을 묵상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최근 흥미로운 소식이 있습니다. 재난은 사람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때 항상 갑작스럽게 찾아옵니다. 한 위대한 스님이 있었는데,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저 맡은 일을 열심히 했을 뿐입니다. 그는 그 과정에서 O가 들어간 CEO가 되었습니다. 그는 초라한 사원을 수십억 달러 규모의 거대 기업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그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얼마나 많은 여자와 아들을 두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먹었는지가 더 걱정됩니다. 농담입니다.
재난의 특징 중 하나는 갑자기 닥친다는 것입니다. 모든 재난은 갑작스럽습니다. 누군가 여러 부자들이 건물에서 뛰어내렸다고 썼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고 뉴스도 안 봤습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돈이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요? 재난은 항상 갑자기 닥칩니다. 사람들이 주님의 율법을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사랑하든 규칙처럼 따르든, 그 율법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감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무언가를 놓치는 것처럼 느껴지고, 하나님 말씀을 읽지 않는 것은 무언가를 놓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집회에 참석하는데, 그래서 저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규칙만 고집하지 마세요. 집회에 온다고 해서 규칙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음, 제가 집회에 참석하는데, 저에게 뭘 더 바라세요?" "저는 성경 공부하는데, 저에게 뭘 더 바라세요?" 이런 식의 생각은 전혀 아닙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사랑한다면, 읽을 때 짜증이 날까요? 아니요. 피곤할까요? 피곤할 수도 있지만, 행복할 겁니다. 저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다 그렇습니다. 마작을 좋아하는 사람은 밤새도록 해도 지치지 않고,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인터넷 카페에서 밤새도록 해도 지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한다면, 분명 지쳐버릴 것입니다. 나중에 저는 이렇게 결론지었습니다. 왜 어떤 목회자들은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걸까요? 그들은 그것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라는 단어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는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밤낮으로 그것을 묵상합니다.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순간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지면 피곤함을 느끼겠습니까? 열정적인 사랑은 당신을 지치게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모든 노력은 헛수고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누군가 회의에 와서 메모를 하고 이것저것 하며 지칠 때까지 일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고가 발생합니다. 악마가 당신 말고 누구를 쫓겠습니까? 오늘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전기자전거에 치였습니다. 악마가 조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모든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열정적인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차가운 사랑"이나 미지근한 사랑이라는 용어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 가정의 20%가 극심한 곤경에 처해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 수치가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수년 전의 통계일 뿐입니다. 대략적으로 20%는 극심한 곤경에 처해 있고 80%는 미지근한 상태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닥쳐오는 저주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다윗은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왜 다윗은 그렇게 많은 것을 보았을까요? 그는 많은 것을 경험했고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왕으로서 그는 중요한 사건들을 재판하기 위해 항상 다윗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동안 수많은 사건들을 직접 재판했습니다. 그는 관찰을 통해 사람들의 삶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기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느 날 다윗이 어떤 사건을 재판하고 있을 때, 소에 뿔에 들이받힌 한 여인이 자신의 문제를 다윗에게 가져왔습니다. 다윗은 그 여인에게 "소가 왜 당신을 뿔에 들이받았습니까? 시어머니와 당신의 관계는 어떻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시어머니와 시어머니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더 깊어졌고, 그 여인은 시어머니에 대해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다윗은 깨달았습니다.
다윗이 재판하고 있던 상속 사건에서, 노인이 죽자 그의 후손들이 상속 재산을 놓고 다투다가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판단과 이해는 온갖 옛이야기를 발굴했습니다. 율법은 그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있으며, 반드시 인간의 이성에 따른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이성은 우리의 이성이며, 하나님의 이성은 하나님의 이성입니다.
판결 2년 후, 또 다른 소송이 제기되었습니다. 우리 자매 중 한 명이 아버지의 두 번째 아내가 변호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형제자매와 온갖 사람들을 고소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데이비드는 다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는 지난번에는 우위를 점했지만, 이번에는 불리한 입장에 놓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충분히 보고 난 후, 데이비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 실제로는 하나님께는 이롭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 실제로는 하나님께는 이롭습니다. 사람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모아 복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관찰하고 요약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말씀드립니다. 인생의 비극은 바로 자기 자신이 되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하고 싶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결코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길을 가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나 자신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육신의 정욕에 따라 이 세상의 풍습을 따르고 공중 권세 잡은 자에게 복종할 때, 결국에는 부패가 따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자연적인 것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 어떤 것도 복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는 자들만이 복을 받습니다. 자화자찬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선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 마음속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부패해 있습니다.
왜 밤낮으로 하나님의 법을 묵상해야 합니까? 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법만을 기뻐합니까? 하나님의 법에 저주와 축복, 두 가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축복과 저주입니다. 저주 아래 살고 있다면, 그것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결국 파멸하고, 수치스럽고,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축복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이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하는 일마다 다 잘 되리라.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당신은 정말 하나님 말씀에 그렇게 열정적입니까? 제가 처음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와, 이 하나님은 정말 선하시구나! 내가 아무것도 드리지 않았는데도 그분이 저를 도와주셨다. 내가 무언가를 드리면 그분이 제게 무언가를 주시고, 또 내가 그분께 더 드리고, 그분이 제게 더 주시고, 그분이 제게 더 주시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성경을 끊임없이 읽었습니다. 왜냐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몇 가지 작은 경험을 통해 성경이 얼마나 소중한 보물인지 깨달았습니다. 당시 제 업무 일정은 저녁 8시까지 사무실에 있다가 집에 가서 샤워하고, 또 다른 일과 공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밤 11시나 12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새벽 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성경을 읽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침에 다시 일어났습니다.
주님을 믿기 전에는 정말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경험을 해보셨는지 모르겠네요. 그때는 주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믿고 제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납덩어리로 가득 찬 것 같았습니다. 빌린 아파트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갈 때쯤에는 땀에 흠뻑 젖어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버스를 타고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일할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사장님이 그런 직원을 보시면 섭섭해하시지 않을까요? 일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믿게 된 후로는 끝없는 기력을 얻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기력이 넘칩니다. 피곤함을 느끼지 않고, 젊은 사람보다 더 활기차게 걷습니다. 이걸 보물로 여기지 않고 어리석게 건강 보조제를 먹지 않았더라면, 저는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었을 겁니다. 제 정신은 아직도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일단 이걸 보물로 여기게 된 순간,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라 생각했고, 온 힘을 다해 추구했습니다.
나중에 제 월급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올랐습니다. 10년 만에 열 배로 올랐죠. 그 열 배의 증가는 단순한 축복이 아니라 진정한 축복이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말 축복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위대하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복과 저주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나중에 저는 많은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했는데, 그중에는 어머니가 할아버지를 어떻게 돌보셨는지도 포함됩니다. 할아버지는 1962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2,000위안의 빚을 지고 계셨습니다. 당시 월급이 20위안이었기에 5위안을 저축하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였습니다. 이듬해에 빚은 모두 갚았고, 어머니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바로 저였습니다. 만약 어머니가 저를 낳지 않으셨다면, 어머니는 엄청난 곤경에 처하셨을 것입니다.
저는 중국어 성경을 세 권이나 찢었습니다. 넘기다 페이지가 거의 떨어져 나갈 뻔해서 새 성경을 샀습니다. 영어 성경도 찢었습니다. 정말 축복입니다! 이 축복된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는 졸리지만 돈을 벌 때는 졸리지 않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는 졸리지만 휴대폰을 볼 때는 졸리지 않습니다. 영적인 음식을 먹을 때는 졸리지만 훠궈를 먹을 때는 절대 졸리지 않습니다. 늙은 여인들과 이야기할 때는 졸리지 않지만, 하나님 말씀을 공부할 때는 분명히 졸립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왜 그럴까요? 그들에게는 하나님이나 그분의 율법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마치 백만 명, 천만 명, 천만 명을 사랑하듯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이미 성경을 읽을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주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축복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이것이 매우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러니 축복받기 위해 무엇을 사랑해야 할지 신중하게 살펴보고 결정해야 합니다. 축복받은 사람이 되어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우리 안에 있는 독선적인 것들을 뿌리 뽑고, 우리를 저주하는 거짓말을 뿌리 뽑고, 밤낮으로 묵상하고, 하루 종일 우리 안에 있는 독선적인 것들을 처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
사람들 안에 있는 독선은 너무나 강합니다. 초창기 우리 교회는 주일 예배와 금요일 소그룹 성경 공부만 했습니다. 모두가 너무 지쳤다고 생각했어요. 교회까지 택시로 한 시간이나 걸렸거든요. 나중에는 수요일에 소그룹 리더들을 이끌고 신약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수요일에 성경 공부가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모두들 모였습니다. 사람들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기에, 결국 수요일에는 성경 공부를 하고, 금요일에는 성경 공부를 하고, 일요일에는 모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 화요일 밤에 기도 모임을 하나 더 추가했고, 모두 모였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에도, 목요일에도, 월요일에도 또 다른 모임을 추가했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모임을 하여 잡담할 시간을 완전히 없앴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놓친 것이 있을까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제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잎이 마르지 않습니다. 당신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2. 성경의 말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 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편1:1-6)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복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알게 하소서. 우리 모두 당신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놀라운 은혜를 마음으로 깨닫게 하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당신의 율법과 말씀을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의 시간을 거룩하게 하여 밤낮으로 묵상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축복을 받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 안에 있는 저주하는 것들을 제거하여 당신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는 그 말씀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사랑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축복을 받게 하소서. 우리가 밤낮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이 말하는 신비를 이해하는 엄격한 태도를 갖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말씀의 배경
(시편 1:1-3)
다윗은 노련한 전사이자,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승리의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무엇을 의지했습니까?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다윗은 오랜 세월에 걸친 자신의 경험을 짧고 간결한 좌우명인 시편 1편에 아름답게 요약했습니다. 악인의 꾀를 따르려고 할 때마다, 그는 자신의 좌우명을 흘끗 보고 즉시 그들의 꾀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죄인이 되려 할 때마다 자신의 좌우명을 흘끗 보고 죄인들의 앞길을 막지 않았습니다. 교만함으로 왕이 되어 조롱하려 할 때도 자신의 좌우명을 흘끗 보고 조롱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엇을 했을까요? 오직 주님의 율법만을 즐거워했습니다. 왜 이 글을 썼을까요? 시간이 부족했고, 너무 바빠서 성경을 읽을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는 무엇을 했을까요? 저처럼 법정을 마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젯밤 2시 30분까지 성경을 읽었는데, 이 말씀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주야로 주님의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바쁜 걸까요? 다윗은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은 평온하고 차분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을 보면, 마치 머리 없는 닭과 같습니다." 파리를 잡아서 머리를 뜯어내면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닙니다. 닭의 머리를 잘라내도 아직 살아 있어서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닙니다. (이걸 영어로는 '머리 없는 닭', 중국어로는 '머리 없는 파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데이비드는 계속 요약하지만, 가끔 실수를 하고, 실수를 할 때는 이것저것 틀립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요? 예를 들어 집 수리를 생각해 봅시다. 방수가 제대로 안 되어서 아래층이 침수됩니다. 위층에서 샤워를 하면 아래층 사람도 같이 샤워를 합니다. 위층에서 똥을 싸면 아래층에 누런 분비물이 나옵니다. 남의 집을 망가뜨려서 수리해야 합니다. 욕실을 싹 다 뜯어내고 새로 해야 합니다. 정말 번거롭지 않나요? 그냥 번거로운 게 아니라 엄청나게 번거롭습니다.
데이비드도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지난 6개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아서 변기가 막히고 배수관이 터졌고, 어떤 사람은 아프고, 어떤 사람은 몸이 좋지 않습니다." 잠시 후, 그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복이 있으며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이것은 경험의 요약이며, 다윗은 이를 특히 잘 요약했습니다.
누군가 실수로 저주를 불러일으키는 일을 저지른 후 "회개합니다"라고 말한다면, 회개가 효과가 있을까요? 네, 그렇습니다. 사형은 용서되지만, 생명의 형벌은 피할 수 없으며, 그들은 여전히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 하나님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의 중요성을 깊이 이해했습니다. 그는 테라스에 서서 여자가 샤워하는 것을 무심코 보다가, 내면의 욕망이 발동하여 저주받은 행동을 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단 하나의 생각에 불과하지만, 밤낮으로 묵상하지 않으면 그 단 하나의 생각이 재앙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후에 칼은 다윗의 집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현실을 되돌아봅시다. 높은 승려든 낮은 승려든, 평범한 사람이든 아니든, 극도로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요? 저주받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마주치는 모든 것은 불의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단 하나의 생각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이 구절의 맥락입니다. 다윗은 복 있는 사람이 되는 원칙을 훌륭하게 요약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저주를 피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권합니다. 당신은 정말 악한 사람입니까, 죄인입니까, 아니면 거만한 사람입니까?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된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별일 아닙니다. 저주만 받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괜찮아요, 별일 아니에요."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건대, 회복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여러분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 있는 자는 복 하나 놓치지 않고, 저주받은 자는 저주 하나 놓치지 않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꾀를 따르지 말며 죄인의 길에 서지 말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 가치 있고 무엇이 가치 없는지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눈에는 상당히 가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머니께서 할아버지의 치료비로 2천 위안을 빌려주신 것은 복된 결정이었습니다. 그것이 손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이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날 그런 며느리가 있다면, 그녀는 진정으로 복 받았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계명일 뿐, 다른 계명은 많습니다. 하나의 계명으로 다른 계명을 대체하거나, 하나의 좋은 것으로 백 가지의 나쁜 것을 덮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돌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나를 이 남편과 결혼시켰을까요? 나중에 제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야 어머니가 매우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들 눈에는 손해였지만,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그 결과 어머니는 시골로 전근하여 여단당 서기로 일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여단당 서기는 엄청난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지역의 폭군이며, 여단의 최고 지휘관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인간의 계산이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저 "이렇게 해야지. 이렇게 하는 게 좋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시신을 이발소로 옮겨 면도를 해주고 옷을 입히고 몸을 씻겨 장례를 치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20대셨기에 엄청나게 강하셨습니다. 그렇게 강하셨지만, 시신을 옮기는 것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정말 존경합니다. 어머니는 정말 유능하고 용감하십니다.
그것이 가치 있는 일이었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머니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어머니는 삶에서 큰 고통을 겪지 않으셨고, 믿음으로 저를 따른 덕분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행복한 노년을 즐기고 있습니다. 인간의 논리는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지만, 다윗의 논리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은 왕위를 찬탈했지만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았습니다. 그는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았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았습니다.
황제를 몰래 모시고 가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는 6품 관리의 하인을 보았는데, 그 하인은 매우 거만했습니다. 황제에게 6품 관리란 무엇이었을까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황제의 신분을 알지 못하는 그 남자는 "우리 주인님은 6품 관리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황제는 웃었습니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황제를 화나게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을 화나게 하지 마십시오.
다시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교만하거나 악하거나 죄인들을 가로막을 권리가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신의 말은 소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신의 말은 소중하지 않습니다! 재난이 닥쳤을 때, 그것은 당신이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논쟁하고 싶습니까? 절대 하나님과 논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 굳게 세워져 있지만, 제 말은 쓰레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시편 1:4-)
복 있는 사람은 악인도 죄인도 아닙니다. 악인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지 않고 밤낮으로 묵상합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비늘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입히고 스스로 저주를 자초합니다. 그러므로 악인은 겉보기에 유리해 보이지만 결국에는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의 숨결로 그것을 날려 버리실 수 있습니다. 아무리 높은 직위의 CEO라도, 아무리 큰 사업체라도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의 숨결로 그것을 날려 버리실 수 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의로운 회중의 죄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승리하는 교회에 있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승리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나는 승리하는 교회에 있으니 괜찮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런 식으로는 안 됩니다. 오직 승리하는 사람들만 괜찮습니다. 악한 사람이란 무엇입니까? 악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죄인이란 무엇입니까? 육신을 따르는 사람은 죄인입니다. 우리가 축복받고, 축복받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악인이나 죄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축복받은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법만을 기뻐합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호와의 법을 기뻐한다면, 그것이 쓸모없는 것이라 해도 여전히 기뻐하겠습니까? 쓸모없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중국의 예정론은 한 가지를 확실히 증명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는 것이 참으로 축복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겠습니까? 저주와 축복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합니다. 여호와의 법을 사랑한다면 저주를 가져오는 일을 피하고 축복을 가져오는 일에 집중하십시오.
제가 말씀드린 약속이 있는 계명처럼,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계명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모두가 혼란스러워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은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할까요, 저렇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습니다. 양심이 있는데, 그 양심이 손상되었다면 어떻게 여호와의 법을 여전히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왜 여호와의 법을 사랑하십니까? 그것이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 듣는 걸 좋아했어요. 어르신들이 풍요의 뿔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무엇이든 구하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된 후, 여호와의 율법이 풍요의 뿔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풍요의 뿔로 여기지 않죠. 솔직히 말해서, 제가 풍요의 뿔로 여기지 않았다면 새벽 두 시까지 읽을 수 있었겠어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때 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정말 놀라운 보물이라고 느꼈어요. 제가 이 보물을 찾았는데도 몰랐던 거예요. 제가 어리석은 걸까요? 저는 이런 면에서는 꽤 영리한 편이에요. 평생 성경을 열심히 읽어 왔거든요. 눈 깜짝할 새에 세월이 훌쩍 지나갔죠. 아무리 애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하지만 목사가 된 저는 모든 사람에게 이 율법을 나눠야 했고,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는 보물입니다! 보물을 원하십니까? 주님의 율법이 포르쉐보다 더 낫습니까? 네. 주님의 율법이 집이나 재산보다 더 낫습니까? 네. 주님의 율법이 권력보다 더 낫습니까? 네. 주님의 율법은 돈보다 훨씬 낫습니다. 사람의 모든 필요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충족됩니다. 삶에서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복 받은 사람이 되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부자가 되는 것보다 훨씬 낫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습니다.
사실, 우리 중국인들은 여전히 벼락부자 의식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일본에 가서 "저는 부자입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비웃을 것입니다. 일본은 변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지식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부자라고 하면 구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과 부유함을 겸비하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무지에 부, 그리고 오만함이 더해지면… 아! 중국은 이 단계에서 서서히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 형제자매 중에 부유하면서도 오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조심하세요.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왜 우리는 밤낮으로 묵상할까요? 읽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밤낮으로 묵상합니다. 사실 밤낮으로 묵상하는 것은 태도의 문제이며, 저는 그것을 분명히 이해하고 싶습니다. 왜 여러분은 우리에게 오실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그토록 많이 경험하게 되시나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교회는 밤낮으로 묵상하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밤낮으로 묵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듣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이해해 줄 것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엄격한 태도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보물을 주셨는데,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모른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성경은 치유와 구원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지만, 읽어도 우리는 여전히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후, 저는 성경과 하나님 말씀을 계속 읽으며 마침내 더 깊은 깨달음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102과정인 "예수님처럼 치유와 구원"을 집필했습니다. 이 책은 심도 있는 연구와 탐구, 그리고 밤낮으로 묵상한 결과물입니다. 101과정을 3개월 동안 밤낮으로 묵상했고, 201과정도 다시 3개월 동안 밤낮으로 묵상했습니다.
그 3개월은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매우 힘들고 고된 시간이었습니다. 성경을 처음 읽었을 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요즘에는 에베소서와 스가랴서를 밤낮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와, 이 아이는 정말 사랑스럽다! 부지런히 찾고, 밤낮으로 묵상하고, 8시에 성경을 공부하고, 7시 30분에 깨닫는구나." 이것은 찾는 자세의 문제이므로, 우리는 밤낮으로 묵상해야 합니다.
밤낮으로 묵상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거짓과 유혹에 직면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이런 일들을 마주한다면,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도 할 수 없고, 저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악합니다. 많은 거짓말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단 한 번의 거짓말에도 저주를 받을 수 있고, 많은 거짓말에 빠지면 완전히 파멸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이 네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하십시오.
여호수아가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야, 이 율법책의 말씀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며, 네 평생에 어떤 원수도 네 앞에 서지 못하게 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책의 말씀이 네 입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부지런히 읽고 계속 읽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원문을 읽어 보십시오. 제 말만 듣고 성경을 찾아보지 마십시오. 원문을 수십 번 읽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무슨 일을 하든 형통할 것입니다.
(시편 1:3)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우리 입술에 있으며, 우리는 끊임없이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10년 전, 저는 창세기를 읽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9년 전, 다시 창세기를 읽고 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8년 전, 5년 전에도 창세기를 다시 읽었고, 올해도 다시 읽을 예정입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통찰력을 얻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시들어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왜 믿음이 시들어 버리는지 궁금합니다. "아, 제 예배가 너무 메말랐어요.", "아, 제 믿음이 너무 메말랐어요.", "아, 정말 메말랐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고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시들어 버릴 수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독서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 읽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은혜로운지 제 경험, 곧 다윗 왕의 경험을 통해 설명하겠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제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잎이 마르지 아니하며, 하는 일마다 다 형통할 것입니다. 당신도 그런 삶을 갈망하십니까? 그렇다면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당신은 복 있는 사람이 될 것이며, 하는 일마다 다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