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에베소서 02-우리는 주님의 성전이 되기 위해 함께 지어져 갑니다!

필기를 참고

1.서론

a. 주님을 믿는 믿음이 개인의 수준에 이르면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를 잃고, 악령이 교회 안에 거하게 됩니다.
b. 에베소서는 신약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책입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에베소서를 주의 깊게 읽어야 합니다.
c. "함께 지어져 간다"는 것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지어져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1. 우리는 허물로 죽었고,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살리십니다

a.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허물 때문에 죽고, 세상의 논리 체계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것뿐입니다.
b.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치유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리십니다.
c. 사람들은 죽음이 임박하면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경향이 있고, 다시 살아나면 세상의 풍습을 따릅니다.
d. 우리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십니다. 주님을 믿는 것조차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e. 살아 있다고 해서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거나 많은 것이 중요해졌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2.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여 천국에 함께 앉기를 원하십니다.

a. 천국에 함께 앉는다는 것은 사람들의 관념이 예수 그리스도의 관념과 동일하며, 사람들의 논리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b. 세상의 논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진지하게 살면 불편함을 느낄 뿐만 아니라 천국의 논리가 어색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c. 지금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음이 매우 편안해질 것입니다.
d. 영적인 높이에 오르고 조금씩 나아지려면, 우리는 하늘에 앉아 땅의 것들을 내려다보아야 합니다.

3.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a. 구원은 은혜와 믿음으로 옵니다. 우리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b. 무언가를 하면 자랑하게 됩니다. 섬김은 은혜입니다. 무언가를 함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가지 마십시오.
c. 선을 행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하심을 실천하고 사람들을 죄와 마귀의 지배에서 해방하는 것입니다. 거리나 기차역에서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d. 스스로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은혜를 받을 뿐입니다.

4. 우리는 육신으로는 이방인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a. 우리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님의 성전으로 함께 세우셨고, 우리는 함께 약속을 받고 함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b. 교회를 세우려면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야 합니다. 이는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성령께서 거하시는 일입니다.

5.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a.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지만, 맹목적으로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b. 하나님은 그의 가족 안에 있는 자들을 징계하시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저주하십니다.
c.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소망, 그리고 지지를 받습니다.

6. 우리는 주님의 성전이 되기 위해 함께 지어집니다.

a.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b.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성전을 짓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면, 그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c. 교회는 사람들을 거룩하게 합니다. 교회에서 육신을 다루고 육신의 악한 행실을 죽이는 것은 교회를 세우는 핵심 요소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에베소서 2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에베소서는 신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또 믿기 때문에 어리석어집니다. 믿음은 개인적인 행위가 되고, 믿음은 개인적인 문제가 되며, 이는 좋지 않습니다.

그럼 이 문제에 대해 조금씩 이야기해 봅시다. 주님을 믿는 믿음은 개인이 믿어서는 안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왜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를 잃었을까요? 하나님의 임재를 잃는다면, 농담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잃는다면 누가 올까요? 마귀가 옵니다. 주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마귀가 그 안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어려움에 처하는 이유입니다.

에베소서 2장의 주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함께 세워지고 있습니다." 함께 세워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러분이 세워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무언가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무언가를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것은 우리가 하는 일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 상관 없다고 하시지만, 뭔가 연관이 있는 것 같고, 전혀 관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었지만 어떻게 벌었는지 모릅니다.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잃었지만, 어떻게 잃었는지 모릅니다. 왜 그럴까요? 영적인 세계가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교회를 짓는 사람들이, 제가 어떤 목사라고 한다면, 에베소서를 자세히 읽어 보세요.

사실, 성경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인정할까요? 사람들은 살고 죽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비교해 봅시다. 우리는 어떻게 암에 걸렸는지, 강직성 척추염을 어떻게 치료하는지, 어떻게 치료하는지, 어떻게 치료하는지, 어떻게 치료하는지, 어떻게 치료하는지, 치료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한 가지 작은 문제가 있습니다. 똥을 싸는 것은 가능할까요? 똥을 못 싸는 사람을 봤는데, 정말 비극적이었어요. 죽지 않을까요? 작은 요추뼈 하나만으로도 반쯤 죽은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몸의 어느 부분이 부러지면 고통받을 수밖에 없죠. 뭘 할 수 있겠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뭘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허물 때문에 죽는 것뿐이에요.

우리는 허물 때문에 죽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셨어요.

읽어 드릴게요.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으니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어써더니.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에베소서 2:1-5)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과거에 우리는 그런 상태에 살면서 어둠의 권세와 세상의 논리에 순종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한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저는 누구의 분노를 샀습니까? 저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진노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보시고는 너무나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아, 제 얼굴은 쓴 박과 같이 고통으로 일그러졌습니다. 왜 그런 표정을 지었습니까? 고통스럽고 힘듭니다.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까? 암? 강직성 척추염? 온갖 염증으로 배변, 배뇨, 식사, 수면이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죽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니었다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인도하기 위해 작은 은혜를 베푸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 어떤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즉, 여러분은 치유받고 은혜를 받았으며, 죽을 사명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시고 다시 살리셨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면 악해진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은 살아나면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우리가 죄와 악으로 죽으면, 우리가 곧 죽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십니까?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내일 죽는다면, 오늘 돈을 벌러 갈 것입니까? 그 돈을 누구에게 쓸 것입니까?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입니까? 내일 죽을 것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마시고 싶은 것을 마시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진찰을 받으면 이미 죽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들은 묻습니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무엇을 마시고 싶으세요? 그 상태에 이르면, 어떤 것도 맛있지 않고, 어떤 것도 맵지 않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 매운 것을 마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적어도 맛있는 것을 먹고 매운 것을 마실 자격은 있어야 합니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여러분을 택하신다면, 저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할 시간이 있습니까?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시간이 있습니까? 시간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시간이 있습니까? 시간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할 시간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정말로 살아났다"라고 말하지 마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부활하신 능력으로 여러분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살아나면 여러분은 다시 악해지고, 죽는 데 며칠이 걸릴지 모릅니다. 그러면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 결과 여러분은 다시 끝장납니다. 당신은 다시 이 세상의 풍습을 따르고, 공중 권세 잡은 자에게 복종하며, 육체의 정욕에 빠져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행합니다. 당신은 다시 분노를 일으키고, 다시 선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보시고 "아, 네 뇌가 왜 그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되살리십니다. 이 사람은 어떻습니까? 그게 전부입니다.

사람이 살아나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겠습니까? 얼마 전에 한 자매님이 이런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와, 큰 위기가 왔구나. 가족에게 재앙이 닥쳤구나.' 그녀는 기도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두 시간씩 일곱 번 기도했고, 그녀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기도 후에는 괜찮아졌습니다. 저는 이 사람이 죄와 악으로 죽어 있는 것이 두렵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 아십니까? 한 가지 생각만 하면 됩니다. 자세히 보면 우리 가운데 한 자매님이 있습니다. 그녀는 죽어가고 있는데, 저에게 메시지를 보내 당신이 그녀를 도울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제가 그녀를 도울 수 있어요. 저는 이 분야 전문가거든요. 그녀의 언니도 병이 심각해서 죽어가고 있었어요. 언니는 주님을 믿었지만, 언니는 믿지 않았어요. 이게 정말 악하지 않나요? 제가 말씀드리는데, 이건 하나님의 선택이에요.

사실 우리는 스스로를 살린 게 아니고, 설령 주님을 믿기로 선택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지는 알 수 없어요. 우리를 살리신 분은 하나님이셨고, 우리 모두는 그것을 수동적으로 받았을 뿐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악해요. 그들은 그저 그것을 받을 수 없을 뿐이죠.

하지만 모두에게 다시 한번 일깨워드리고 싶어요.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얼굴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많은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모든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건 나쁜 생각이에요!

하나님은 또한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부활하여 하늘에 함께 앉으라고 부르십니다.

천국에 앉아 보셨나요? 저는 없다고 했죠. 그곳에 가 보셨나요? 아직 안 가봤어요.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어요. 그러면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고 하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부활시켜 하늘에 함께 앉히라고 부르신다고 하셨죠. 제가 잠깐 가르치는 것을 들어보세요. 비록 그곳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이 일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헤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에베소서 2:6-7)

아, 좋은 말씀입니다. 하늘에 함께 앉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당신 안의 생각이 영적인 봉우리를 오르는 것과 같을 때 말입니다. 땀을 흘리면서도 계속 오르고,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는 것 말입니다.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 걸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당신의 내면의 생각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지경에 도달할 때 말입니다. 아, 정말 놀랍습니다. 갑자기, 이 땅에서 당신은 천국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속담이 있나요? 이 땅에서 당신은 천국에 있는 것입니다.

사실 정말 깊이 감동받았어요. 저는 자주 오르락내리락해요. 왜 그럴까요? 가끔은 희망이 없어 보여요. 잊어버리곤 하죠.

아, 그걸 깨닫고 나니 갑자기 우리 내면의 논리 체계가 세상의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니, 아니. 왜 기분이 나빠야 하죠? 왜 희망을 잃어야 하죠? 아니, 아니, 너무 어려워요. 올라가서 내면의 논리를 예수님으로 바꿔요. 일단 내면의 논리를 예수님으로 바꾸면 다시 천국에 앉게 돼요. 땅바닥에 있는 중생들을 내려다보면 마치 깨달음을 얻은 고승처럼 느껴져요. 아, 갑자기 마음이 다시 맑아졌어요.

말씀드리건대,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한 우리조차도 조심하지 않으면 넘어질 수 있어요. 즉, 우리 안에 악이 있다는 거예요. 악은 어디에 있을까요? 때때로 우리는 정신이 산만해지면 땅으로 돌아가요. 정신이 산만해지면 땅의 논리가 이치에 맞죠. 땅의 논리는 자연스럽다고 느끼는데, 하늘의 논리는 어색하고 옳지 않다고 느껴져요.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요. 주님을 믿는 게 먹힐 수 있나요?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봐, 땅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도 먹을 수 있다고." 사람들은 당신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천국에 가시나요?" 저는 갈 필요 없어요. 이미 하늘에 있거든요.

긴 이야기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길입니다. 왜 고통스러울까요? 땅에 있기 때문입니다. 왜 고통스러울까요? 교회 안의 논리 체계가 여전히 세상의 논리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설교자가 되고 싶다면 하늘에 앉아 있는 설교자가 되어야 합니다. 땅에 앉아 있는 설교자라면 당신의 수준은 너무 낮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분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셔서 하늘에 함께 앉히셨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이번에는 그 말씀을 듣고 그 맛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풍성한 은혜, 곧 그분의 자비를 후대에 보여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 풍성한 은혜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을 하늘의 높이까지 올려주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자세히 설명해 드릴 수 있을까요? 제 감정에 따라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바로 내면의 논리 체계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라고 고백한다면, 곧바로 다른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십니까?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당신의 은혜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정말 비극입니다. 사람들은 알아야 합니다.

아직도 상사를 두려워해야 합니까? 아직도 이것저것 걱정해야 합니까? 이사회가 당신을 해고하려 한다면, 아직도 이런저런 걱정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영원히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고 말씀드립니다. 지금 문제는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하늘에 함께 앉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사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왜 하늘에 올라가서 하늘에 앉아야 합니까? 너무 편안하잖아요! 지상에서는 너무 불편해! 지상에서는 너무 불편해! 불편함을 느끼고 싶다면 내 조언을 들어라. 지상에서는 천국에 앉아 있지만, 지상에서는 육체만 자라나 불편해. 함께 부활해서 천국에 함께 앉아라. 정말 좋은 거야! 내 조언을 들어야 해. 천국에 앉아 우리 안의 논리 체계를 바꿔야 해.

위기가 닥치지 않을 때는 알 수 없어. 예를 하나 들어보지. 자네는 바빌론의 총리라고. 관료가 되는 게 쉬운지 묻겠네. 자네는 이집트의 총리라고. 쉬운 일이냐고? 쉽지 않아. 힘든 일이야. 주변의 정치적 갈등, 얼마나 복잡하겠나? 피할 수 없어. 총을 겨누고 숨은 화살을 쏘면 자네는 순식간에 시리아가 될 거야. 우크라이나가 될 거야. 정말, 정말 힘들어. 자네는 자네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거야.

하지만 다니엘은 바빌론의 총리였네. 자네에게 묻겠네. 누가 그를 건드릴 수 있겠나? 누군가 그를 만지면 사자굴에 던져질 것입니다. 사자굴에 던져진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돌보실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그를 돌보실 수 있지만, 사자들은 그를 물 수 없습니다. 당신은 우리 하나님이 그렇게 강력하시지만, 우리가 천국에 앉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신다고 말합니다.

이틀 전 한 자매님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불편해요. 어떻게 그분은 이 땅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실 수 있죠?" 그래서 제가 하는 말이 가끔은 조금 이상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불편한 게 좋은 거예요."라고 말했더니 자매님이 "뭐가 좋은데요?"라고 물었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어 하셨잖아요." 당신은 하루 종일 너무 진지하게 사니까요. 이제 진지하게 사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진지하게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하실 겁니다. 당신이 진지한 것을 봅니다. 이 땅이 당신의 진정한 집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러니 마음을 열고, 마음을 열고,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세요. 명확하게 생각하세요. 우리 하나님이 다스리실 수 있을까요? 네. 그분이 그 작은 것을 다스리실 수 있을까요? 네.

그러니 제가 말씀드리는 건, 그것을 내려다보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것들을 내려다보세요. 내려다보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낄 겁니다. 내려다보게 되면 아무것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하늘에 앉아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하늘에 앉아 땅을 내려다볼 때, 제가 말씀드리건대, 어떤 느낌이 들 겁니다. 그 느낌이 들 때, 그 느낌이 들 겁니다. 하늘에 앉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높이에 앉아, 내려다보세요. 오, 세상에, 이건 바보 같아. 이것도 바보 같아.

점점 더 깊이 들여다보면, 많은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많은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전에는 우리도 그와 똑같았지만, 오늘은, 오,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 바보 같은 아이야. 많은 것을 보고 나서 이런 느낌이 들 겁니다. 이런 느낌이 들 때, 당신의 레벨이 올라가기 시작할 겁니다.

레벨이 조금만 올라가면, 하늘로 올라가면서 "바보 같다"는 말이 점점 더 많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될 겁니다. 바보야, 어떻게 이렇게 바보 같을 수 있지, 어떻게 이렇게 바보 같을 수 있지? 이해하셨나요? 당신은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려 하심이니라.(에베소서 2:8-10)

참 좋은 말씀입니다! 당신은 오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모두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당신은 그 중 무엇을 얻었습니까? 당신이 스스로 얻은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렇게 많은 것을 주셨는데, 당신은 더 얻고 싶습니까? 조금 더 얻고 싶습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으면서 이것이 은혜라는 사실을 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제가 가마를 옮기는 것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도와 가마를 옮기십시오." "하나님, 제가 당신의 집에 가서 당신을 위해 청소하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당신을 위해 맛있는 것을 준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신데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 문제는 정말 골치 아픈 문제입니다."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주 중요한 관리의 집에 간다고 가정해 봅시다. 제가 당신에게 무엇을 드릴까요? 그는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마치 우리 허벅지 살을 잘라 시장에 내다 팔아 그에게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그것이 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거저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행동해야 합니까? 왜 우리는 믿은 후에 우리 자신을 자랑해야 합니까? 믿음으로 행동하면 우리 자신을 자랑하게 된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보세요, 저는 이것을 했습니다, 저는 저것을 했습니다. 보세요, 하나님, 저는 너무나 많은 것을 헌신했습니다.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결국 저주를 받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과 목회자들이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습니다.

중국 운명론은 성경, 특히 에베소서를 읽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봉사가 은혜라고 말합니다. 자랑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말합니다. 하나님, 당신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은혜입니다. 저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얻었고, 믿습니다. 이것은 제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입니다. 제 선행에서 난 것도 아닙니다. 제가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는 당신의 작품이며, 당신은 제 안에 빚어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성전을 짓는 데 쓰일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면 선행을 한다는 것이 거리나 기차역에 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의 물건을 도난당하면, 그가 집으로 돌아갈 기차표를 살 수 있도록 돈을 줍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우리 중에 아직도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은 선행이 아닙니다. 선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선행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하심에 따라 그것을 실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을 죄에서 해방시키는 것. 저주에서 해방시키는 것. 복음을 전파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사람들을 마귀의 지배에서 해방시키는 것.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선하심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앞으로는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헌신, 봉사, 그리고 온갖 일에서 그것이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잘못하면 하지 않는 것이 낫고, 그렇게 하면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자세히 살펴보세요. 제가 만난 그리스도인들은 중병을 앓은 후였습니다. 그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 감시자입니다." 저는 그에게 어떻게 감시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잘못 말할 때 바로잡아 줍니다. 목사님은 감시자라고 불립니다. 목사님은 자신이 훌륭하고 큰 공헌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그렇게 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을 돕고 싶어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듣든 못 듣든 저는 말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듣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돕고 싶다는 큰 생각이나 큰 야망을 가지고 오지 마십시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그릇일 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그저 은혜를 받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비통한 표정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슬픈 마음으로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은 때로는 불편합니다. 이제 모두가 이해합니다. 오, 그가 다시 내려오셨다가 다시 올라가셨다가 다시 내려오셨다니. 때로는 제가 은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때로는 잊어버립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각해 보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본래 육신으로는 이방인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날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에베소서 11-12장).

말씀드립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일입니다. 어려움에 부딪히면, 아무리 자주 헬스장에 가더라도 그 몇 안 되는 근육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팔을 위로 들어 올리면 그 근육, 이두근, 삼두근은 마치 보디빌더의 근육 같지만, 쓸모가 없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운이 나쁠 때, 근육이 꺾여 버리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너무나 필요로 하고, 어떤 사람들은 필요로 하지 않지만, 저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너무나 필요로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너무나 필요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너무나 소망하며, 이 세상에서 소망과 지지를 받기를 너무나 소망합니다. 이 세대는 아버지와 경쟁하는 세대가 아닙니다. 이 세대는 하나님과 경쟁하는 세대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모든 것보다 크시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습니까? '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라'라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너는 어디 있느냐, 나는 있느냐, 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니라.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은 어디에서 시작하셨습니까?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나 아브라함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이것저것 가지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중에 이것을 얻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 덕분입니다. 우리는 유대인이시며 아브라함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우리 안에서 이러한 일들을 행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할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래 이방인이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본래 이방인이었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토록 많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님의 성전으로 만드셨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약속의 상속자입니다. 우리 모두가 약속의 상속자임을 기억하십시오. 아브라함의 후손들, 함께 지어진 자들, 육신에 속한 자들, 유대인들, 그리고 육신에 속한 아브라함의 후손들 모두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우리 모두는 아브라함의 약속의 언약을 상속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하나님의 많은 약속들을 보고, 우리의 기도가 모두 성취되는 이유입니다. 이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교회를 건축할 때, 주님의 성전으로, 성령을 통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으로 건축해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난 곳에 성전을 건축하면, 주 하나님께서 귀신을 보내실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 때문입니다. 저는 때때로 주님을 믿는 것이 제대로 되지 않고, 참으로 재앙이며 위험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왜 제대로 되지 않을까요? 그것은 행동 때문입니다.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화자찬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아서가 아니라 항상 자신이 위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는 은혜의 영광은 얼마나 풍성한지요. 그렇다면 소망이 없는 시대에 사람들은 무슨 소망을 가집니까? 하나님도 없고, 약속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지금 문제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아십니까? 저는 압니다. 왜냐고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세요.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소망이 있고, 지지가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 당신이 아브라함이었다면, 당신을 저주하는 자들이 저주받는다는 것을 아십니까? 당신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받는 것이고, 당신을 축복하는 자는 축복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의 직업에 큰 공헌을 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또한 당신의 직업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선하십니다.

이제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담을 허시고.원수 된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하시고.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어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에베소서 2:13-19)

이렇게 긴 글을 읽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제가 여러분에게 설명해 드리고 있는 게 아닌가요? 앞의 설명을 이해하셨나요? 앞의 설명을 이해하셨다면 이 글도 쉽게 이해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데,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러자 이스라엘과 아브라함 사이의 담이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항상 자신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고 생각했고, 이방인들을 이방 돼지, 이방 개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님도, 소망도, 약속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반면 우리는 모든 것을 가졌고 아브라함의 후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정말 모든 것이 있었을까요? 그들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믿은 후에 매우 교만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고 하면서 자기들은 매우 교만하다고 생각하지만, 여러분은 모두 이방 돼지, 이방 개라고 말합니다. 그런 상황이 있을까요? 아주 흔한 일입니다. 그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지만, 그런 장난, 즉 갑자기 맹목적인 교만심을 갖지 마십시오. 그것은 무의미합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한 맹목적인 교만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그분의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는 두 분의 하나됨, 곧 둘의 하나됨에 대해 여러 번 언급되어 있습니다. 즉, 이미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입니다. 육신의 이스라엘 백성이든 아니든 상관없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두 분과 새로 온 자들은 다시 하나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함께 지어지고, 주님의 성전으로 세워지며, 성령을 통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 됩니다.

이것은 평범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은 모두 우리의 것이며, 이들은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저주는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가족에게 저주를 내리실까요? 그렇지 않으실까요? 물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저주도 받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가족은 하나님께서 친히 징계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 없이, 하나님의 은사 없이,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저주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가족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을 징계라고 하고, 외부적인 것을 저주라고 합니다. 당신의 구분이 조금 이상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저주하셨습니까? 아니요,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과 야곱을 저주하셨습니까? 아니요, 하나님은 그들을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들을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저주하셨습니까?" 그것은 저주가 아니라 징계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러한 징계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가족에 속하는 것을 징계라고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계속해서 불순종하고 쫓겨난다면 그것은 나쁜 일입니다. 징계를 한다고 해도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분열입니다. 이 문제에 더 이상 연연하지 맙시다. 우리는 내 가족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외부에서 온 사람들을 받아들이십니까, 아니면 자신의 가족에서 온 사람들을 받아들이십니까? 외부에서 온 사람들을 받아들이십시오.

약속, 소망, 지지, 하나님의 언약,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얻으면 끝입니다. 밖에서 안으로, 어떤 사람들은 먼저 안으로 들어오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은 이미 안에 있는 사람들과 연합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성전으로 함께 지어졌습니다.

다섯 번째 요점은 아직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돌아가서 스스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의 성전으로 함께 지어졌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에베소서 2:20-22)

이것이 핵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로 구원받았지만, 은혜로 구원받은 후 하나님의 성전을 짓지 않으면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곳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구원받았지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만물을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시키고,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분의 몸이며,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신약의 주제는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 곧 영광스럽고 승리하는 교회를 건축하는 것입니다. 신약 전체도 교회 건축에 관한 것입니다. 구약은 신약의 교회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어디에도 거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 시대에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을 위해 장막을 지으셨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 장막에 가득 찼습니다. 후에 다윗과 솔로몬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건축했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성전에 가득 찼습니다. 모든 사람이 손을 들어 이 성전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의 기도에도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하나님은 이곳에서 그의 백성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알아야 할 것은, 만약 여러분이 여전히 자기 수양에만 빠져 있고, 자기 꾀에만 빠져 있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이 길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에베소서 후반부 몇몇 장에서는 교회가 하나님의 지혜이며, 교회를 통해 사람들이 거룩해진다고 분명히 언급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물고 싸우는 것이 교회입니까? 제가 말씀드리건대, 그것은 육신입니다.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면 서로 물고 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싸우고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서로를 물고 뜯습니다. 마치 입에 털이 가득 찬 개가 개를 무는 것과 같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 물고 싸우는 것이 바로 육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한 가지 좋은 점은 마귀가 와서 여러분을 해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육신을 처리하고 육신의 악행을 죽이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가 성장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성전으로 함께 세워지는 것은 영원한 주제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아직 이러한 마음을 갖지 못했다면, 이제부터 이러한 마음을 갖기 시작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에베소서 2장의 이 장을 다 읽었습니다. 앞으로 모든 분들의 신학적 자질이 조금씩 향상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듣기에 유쾌하지는 않지만, 유익한 정보들이 가득합니다. 정말 유용한 정보들이죠.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어려운 장을 마침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이해가 안 되실 수도 있지만, 제 말씀을 들으시면 이해하실 겁니다. 특히 중국 운명론 자료를 활용하여 교회를 세우시는 분들은 이 장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모두에게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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