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데살로니가후서03-교회 안에서 규칙을 따르라!
필기를 참고
서론
a. 사람들은 삶 속에서 규칙을 배웁니다. 선한 사람이 되는 법을 모르면 규칙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b. 자녀를 양육할 때 규칙을 정하는 법을 모른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아이가 자라면 분명히 실패자가 될 것입니다.
1. 교회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a. 교회는 사람들에게 규칙을 따르도록 가르치고, 사람들을 세우기 위해 규칙을 정합니다.
b. 하나님은 규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규칙을 정하기 위해 절기와 안식일을 정하셨습니다.
c. 규칙을 따르는 것은 인격이며, 그 사람이 인내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2. 교회의 가장 중요한 규칙은 조용히 일하고 자기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a. 베드로가 세운 교회는 규칙이 없는, 그저 식당에 불과한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는 각자 제 할 일을 하고 제 음식을 먹는 교회였습니다.
b. 주 예수님은 할렐루야를 크게 외치는 자가 아니라, 이 사람들이 조용히 일하도록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장차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내어 이 땅을 다스리고 다스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c. 주 예수님은 어떻게 처신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사람과 일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아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3. 주님의 재림은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망으로 여겨질 수 없습니다.
a. 사람들이 일하는 것이 은혜임을 알지 못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수고하는 기쁨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몫입니다.
b.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주님의 재림을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망으로 여깁니다. 이는 터무니없는 논리이며 게으름입니다.
c. 주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가 경영하는 일을 하도록 인도하시고, 이 땅을 다스리고 관리하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내도록 보내시기 위함입니다.
d.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듣는 데 있어서 선택적이어서, 일해야 한다는 말은 듣지 못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야 한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4. 규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멀리하십시오.
a. 규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그저 장난치는 사람들입니다. 오염되지 않도록 거리를 두십시오.
b. 교회 안에서는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고 할렐루야를 먼저 외치는 사람들을 특히 조심하십시오. 그들 대부분은 거짓말쟁이입니다.
c. 주 예수님은 교회를 정결하게 하시는 주 예수님이십니다. 규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멀리하십시오. 그들을 원수로 여기지도 말고, 가까이하지도 마십시오.
5. 그런 사람들을 훈계하십시오.
a. 그런 사람들을 훈계하십시오. 변화되지 않으면 마귀에게 사로잡힐 것입니다.
b.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은 그저 낡은 말일 뿐입니다.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6.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본보기를 보였습니다.
a. 사도 바울은 밤낮으로 일하고 수고하며 형제자매들을 착취하지 않음으로써 우리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b. 모든 사람이 우리의 본을 따르고,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키고, 하는 일에서 잘 성장하며,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도록 격려하십시오.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a.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는 먹고 마시며 죽기를 기다리라는 가르침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주 예수님은 매우 유능한 엔지니어이십니다.
b.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내, 곧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인내가 없이는 교회가 세워질 수 없습니다.
8. 주님의 길이 속히 퍼져 나가 영광을 얻게 하라
a. 영광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b. 우리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데살로니가후서 3장, 마지막 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주제는 무엇일까요? 바로 "교회는 규칙을 따라야 한다"입니다. 사실, 이 단락을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 주의 깊게 읽어보면 이 장을 요약할 수 있는 주제는 단 하나, "교회는 규칙을 따라야 한다"라는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규칙은 너무나 강력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답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면, 그는 사람이 되는 법을 모르고, 사람의 규칙을 따르는 법도 모릅니다. 사람이 되는 법을 모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규칙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사람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람답게 행동하지 않고 짐승처럼 행동한다면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을 키우고 규칙을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실제로 무엇을 할까요? 사람들은 살면서 규칙을 배우고, 규칙은 매우 강력합니다. 따라서 어릴 때부터 아이의 육체를 소중히 여긴다면, 아이가 규칙을 따르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육체에 속한 사람은 동물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동물은 규칙을 따르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개를 훈련하는 조련사도 있고, 사람을 훈련하는 조련사도 있습니다. 사람을 훈련하는 조련사는 듣기에 좋지 않지만, 규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실제로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아이를 키울 때 어떻게 규칙을 따르도록 훈련시키나요? 지팡이, 막대기, 그리고 큰 막대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머니 중 한 분이 제 말을 듣고 지팡이를 가지러 집에 갔다가 나중에 막대기를 가지러 갔습니다. 그 결과, 아이는 지팡이는 괜찮지만 막대기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몰래 막대기를 아래층으로 던졌습니다. 어머니가 돌아와 아이에게 "막대기는 어디 있니?"라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엄마, 저 막대기는 사람을 죽일 수 있어요. 맞아요, 저 막대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규칙을 정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결과적으로 우리는 다시 아래층에서 막대기를 집어 올려야 합니다.
그러니 제가 말씀드리건대, 규칙을 정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것은 비극입니다. 아이가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자라서 반드시 실패자가 될 것입니다. 규칙을 따르도록 태어난 사람이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그 자식의 아이는 어릴 때부터 매우 문제아였습니다. 한 자매가 말했습니다. "저는 제 아이를 하루에도 여러 번 때립니다. 그러니 규칙을 정해서는 안 되고, 아이가 규칙을 따르도록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루에도 여러 번 때릴 수 있겠습니까? 때릴 때마다 그저 가려운 곳을 간지럽히는 것일 뿐입니다. 그것은 때리는 것이 아니라 마사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교회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말할까요?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데살로니가후서 3:6)
교회는 사람들에게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을 지키도록 가르치고 싶어 합니다.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소용없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규칙을 지키지 못했는데, 이는 그의 삶에서 비극입니다. 교회가 사람들에게 규칙을 지키도록 가르치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가르치는 겁니까? 사람들에게 육신을 배려하도록 가르치는 겁니까?
실제로 꽤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저희를 보실 때마다 저희와 매우 가깝다고 느끼셨습니다. 왜냐고요? 그분은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고, 이제 40대인데도 여전히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대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규칙을 지킵니다.
교회에는 많은 규칙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일 예배 시간에 교회에 와야 합니다. 만약 이 시간에 교회에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중에 녹음을 들어보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그 시간에 대한 최종 결정권이 없다면, 저는 받아들입니다. 만약 그 시간이 당신이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시간이라면, 당신은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에게 묻습니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그런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규칙을 지키지 않는 그런 사람은 절대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단 규칙이 정해지면 치명적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매주 일요일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오전 10시 30분에 교회 모임에 갑니다. 내일 시험이 있는데, 저는 당신에게 묻습니다. 가고 싶니? 내일 시험이 있습니다. 내일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저는 오늘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 그림을 배울 것입니다. 내일 시험이 있는데, 오늘도 할 것입니다. 이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면 10시 30분에 주일 예배에 참석해야 하는데, 당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 숙제를 못 끝낼 것 같아. 숙제를 못 끝냈다면, 아까 뭘 했나요? 예배에 참석해야 해요. 잠깐, 오후 2시나 3시, 3시나 4시까지 기다려 보세요. 가서 보충하면 돼요. 왜냐고요? 이게 바로 규칙이에요. 하나님은 왜 절기를 정하셨을까요? 규칙이에요. 하나님은 왜 안식일을 정하셨을까요? 규칙이에요. 교회는 규칙을 정하는 곳이니까요.
제가 말씀드리는데, 규칙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규칙을 지키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아요. 저는 확신합니다. 이런 이유도, 저런 이유도 아니라면, 그 사람은 미래가 없는 사람일 겁니다. 사람들은 행사를 서두르지 않아요. 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해야죠.
제가 가르치는 게 바로 이것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제가 할 일이 있었냐고요? 네, 있어요. 하지만 일요일 예배를 거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넘어져서 못 일어날 때 빼고요. 일어날 수가 없어요. 이제 온라인이니까 인터넷을 켜도 소용없어요.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을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사람은 인내심이 있습니다. 교회는 이런 사람을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 봅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일을 처리해야 한다면 다른 시간에 처리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이사를 간다면 왜 주일 예배 시간에 이사를 해야 합니까? 다른 시간은 없습니다. 누가 그렇게 말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 저는 이 시간에 이사를 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시간에 손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손님을 만났을까요? 왜? 손님을 만나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말씀드리건대, 사람들이 규칙을 지키도록 훈련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떠날 때 왜 규칙을 정했습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진을 치고 가라." 왜냐고 묻지 마십시오. 그냥 그런 것입니다. "내 아이를 먹이겠다"고 하면서 가고 싶으면 가고, 가고 싶지 않으면 광야에 남아서 늑대에게 먹이를 주라고 합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수없이 늘어놓지만, 저는 듣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어색하게 집회에 오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왜 여러분은 집회에 꼼지락거리며 오십니까? 마치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집회에 오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왜냐고요? 집회가 사람들을 세우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규칙은 조용히 일하고 자기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규칙이 있는데, 교회의 가장 중요한 규칙 중 하나는 조용히 일하고 자기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동북부 사람인 제 발음이 불편하지 않으세요. 저는 "吃"와 "泪"의 차이를 모릅니다. "卷", "泪", "平", "泪"의 차이도 모릅니다. 우리가 학교 때문에 베이징에 갔을 때, 입을 열자마자 모두가 웃었습니다. 왜냐고요? 동북부 방언으로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면, 고기를 먹으면 "又"가 되고, 사람들은 기뻐하는데,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발음이 규칙에 맞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고기(meat)라고 부릅니다. 정확한 발음은 "고기(肉)"이지만, 정통 북동부 사투리는 "수(又)"입니다. 교회는 "고기"나 "수"의 규칙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규칙은 조용히 일하고 자기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사실, 이 문장은 매우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당시 교회를 어떻게 지었는지 아십니까? 베드로가 교회를 지은 방식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베드로가 교회를 지었을 때, 교회라고 부르지 않고 식당을 짓는다고 불렀습니다. 그는 아주 큰 식당을 지었습니다. "야, 일 안 하면 그냥 먹는 거잖아. 안 먹으면 불평해야지." 모두가 수만 명의 사람들이 먹고 일 안 하면 모든 재산을 팔아 먹고 산다고 말하며 다투었습니다.
묻겠습니다. 얼마나 오래 먹을 수 있겠습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많을 텐데, 그게 부자들을 먹는다는 말 아닌가요? 베드로는 교회를 짓는 법은 몰랐지만, 식당은 짓는 법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말했습니다. "설교자들이 먹는 것까지 책임지는 건 적절하지 않습니다. 먹는 것조차 제대로 못 해결한다면, 어떻게 설교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말씀드리건대, 그 시대에 베드로가 지은 교회는 규칙 없는 교회, 게으른 사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어차피 먹고 먹어, 주 예수님이 오실 테니 먹고 먹자." 세상에! 그게 교회라는 겁니까?
그럼 바울이 지은 교회는 무엇일까요? 각자 자기 일을 하고 자기 밥을 사 먹습니다. 그게 가장 기본적인 겁니다. 교회는 식당이 아닙니다. 교회는 여러분에게 어떻게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는지, 어떻게 정상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어차피 주 예수님이 오실 테니 먹고 마시며 죽음을 기다리자"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분이 안 오시면 어쩌죠?" 먹고 마시고 돈을 다 썼는데도 주 예수님이 아직 안 오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안락사를 원하시죠?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말에 속지 마십시오. 주 예수님이 내일 오시고 세상이 내일 끝난다고 해도 오늘 해야 할 일을 하고 잘 행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아주 잘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두 여자가 함꼐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대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두 사람을 밭에서 일하다 하나는 대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누가복음 17:34-36)
밭에서 쟁기질하는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둘 것이다. 다시 말해, 밭에서 일하는 일꾼들, 즉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버려질 것이다. 교회에서 할렐루야를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질 것이다.
왜 그럴까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할렐루야를 크게 외치는 사람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이런 사람들이 조용히 일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장차 주 예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데려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포함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여러분 모두가 그들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려고 애씁니다. 그분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이 땅에 데려오셔서 이 땅을 다스리고 통치하게 하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창조된 이 뜻은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부름을 받은 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넘버원.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땅을 다스리고, 다스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확실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할렐루야만 할 수 있고, 스스로 먹을 것도 벌 수 없다면, 당신은 낭비가 아닙니까?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늘에는 그런 사람이 절대 없고, 그 당시 땅에도 그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있을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인간으로서 일을 잘하고, 사람을 관리하고, 모든 것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논리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쓸모없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일하지 않는 것에 대한 소망으로 여길 수 없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일하지 않는 것에 대한 소망으로 여길 수 없습니다. 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하면 머리카락을 제외하고는 온몸에 통증을 느낀다고 합니다. 일한 후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 주님, 제발 일찍 오세요. 주 예수님, 왜 일찍 와야 합니까? 오, 당신이 오시면 일할 필요가 없어요."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 그들은 세상에서 일을 그만둔 모양이군." 일하는 것이 은혜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전도서를 읽어보면 이 사람이 하나님의 선물이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몫인 자신의 일에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 같은 사람들은… 글쎄요.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취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기숙사에 마작판이 있었습니다. 저는 하루 24시간 마작판을 했습니다.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저도 어렸을 때 그랬습니다. 마작판을 잡을 때 그들의 표정은… 카드. 딱 한 장만 더 있으면 지는 거야. 카드를 쥘 때 표정이 찡그려져. 손으로 카드를 문지른다. 아, 원하는 카드가 아니라는 걸 알면 버린다. 그러면 다음 차례가 되는 거야. 카드를 뽑았는데, 세상에, 표정이 마치 마약에 취한 것 같았다. '이게 뭐가 그렇게 재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가 안 가.
누군가가 말했다. '뭘 이해해? 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은데, 어떻게 이걸 처리할 시간이 있겠어?' 엄마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엄마는 마작을 좋아해. 가끔 전화하면 엄마가 받고 마작 패 소리가 들려. '어디 있어?'라고 물었더니 엄마가 말했다. '나 마작 패 사이를 걷고 있어.'라고. 그리고 엄마가 말했다. '찰칵, 총을 들고 마작을 하고, 담배를 입에 물고 있잖아.' 아, 엄마는 재밌다고 생각하셨는데, 이해가 안 됐어. 나중에 그녀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때까지 계속해서 문질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치명적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주님의 재림을 일 없는 소망으로 여깁니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논리입니다. 사실, 주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한 도시, 열 도시, 백 도시를 다스리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스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이 땅에 보내 하나님처럼 이 땅을 다스리도록 부르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다스릴 수 있을까요? 좀 긴장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가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경영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싶습니다. 관리자가 되고 싶으신가요? 누군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지금 위생 청소부입니다. 상관없습니다. 위생 관리자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청소부입니다. 바닥을 쓸고 닦는 것과 변기를 청소하는 것은 다릅니다. 논리적이지 않습니까?" 누군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변기를 청소합니다. 변기를 하나만 관리할 수 있다면 열 개를 관리할 수 있고, 열 개를 관리할 수 있다면 백 개의 화장실. 백 개의 화장실을 다 청소하지 못하면 열 명을 배치하여 화장실 청소를 맡길 수 있습니다. 당신이 책임자가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우리를 경영하는 일을 하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당신과 저는 먹고 마시고 마작을 하고 놀지 않습니다. 당신과 저는 이 땅을 다스리고 땅의 짐승과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를 다스릴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물고기를 잡듯이 사람을 잡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람을 잡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다스리는 것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다시 오시면 마침내 즐겁고 마침내 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듣는 것은 게으름일 뿐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듣고 따랐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아마도 큰 교회에 속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쨌든 청소부나 관리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부유한 아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모두가 바울이 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부자 아내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품고 있잖아요.
설마요, 이 이야기는 전에도 나온 적이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예요. 교회에서 봤어요. 어떤 자매가 있는데, 별로 예쁘지 않아요. 어쨌든, 당신이 저와 결혼하길 바란다면, 저는 원하지 않아요. 물론 저는 자격이 없어요. 그녀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말했을 때,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예요. 제 얼굴은 마치 꽃처럼 활짝 피었어요. 멋지죠,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예요. 아무것도 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고 싶어 해요. 아, 정말 아름답네요.
데살로니가 사람들도 그랬어요.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냥 듣기만 했어요. 사도 바울이 일에 대해 한 말을 잊어버리고, 매일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꿈을 꾸었어요. 신부요.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예요. 매일 예수님께서 저와 결혼해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아, 정말 자만심이 가득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감동했습니다.
저만 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예수님은 우리가 관리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어렸을 때 성경을 읽고 이해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인문학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편견이 있었습니다. 편견이 없었다면 몇 가지 요점을 더 제시했을 텐데,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저는 편견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목사가 되었고, 마침내 이 편견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문제는 해결되었고 더 이상 편견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 교회의 규칙과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저는 성경을 필사적으로 읽었지만, 다 읽고 나서는 먹고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복음을 한 번도 읽지 않았습니다. 그건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의 복음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가는 복음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냅니다.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보면 바로잡힐 것입니다. 저는 불편함을 느낍니다. 이런저런 불편함을 느낍니다. 길.
오늘 설교를 읽다가 한 형제자매가 요약했습니다. "이미 십 대인데, 어릴 때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어요.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세요? 많이 잃었는데 아직도 빚을 갚고 있어요. 불안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먹고 마시고 즐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세요? 그들은 먹고 마시며 죽음을 기다리는 부류예요. 그건 좋지 않아요. 그들은 종교적 색채로 가득 차 있어요." 왜 처음 두 장은 항상 주님의 재림에 대해 이야기할까요? 사실, 그것은 그들에게 변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규칙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멀리하세요
규칙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멀리하세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데살로니가후서 3:6)
누가 이 편지제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같이 권하라.(데살로니가후서 3:14-15)
교회는 이런 사람들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저는 예전에 주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라고 믿는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 교회 성도들을 데리고 우리 고향 근처 멀리 떨어진 산으로 가서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일주일을 기다렸지만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져가야 할 음식을 다 먹고 나서야 돌아왔습니다. 아,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도대체 무슨 생각인가? 이런 무질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여러분, 이 교회에서는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을 조심해야 합니까? 할렐루야를 먼저 외치고 말만 잘하는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그들은 대부분 거짓말쟁이입니다. 이렇게 되는 사람들 중에는 속은 사람도 있고, 거짓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거짓말쟁이가 많습니다. 우리 중 누구라도 속았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자주 속는다면 조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그들에게서 멀리하십시오.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할지, 아니면 멀리해야 할지 묻겠습니다. 반드시 그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들이 깨끗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의 머릿속은 먼지와 쓰레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먼지에 오염되지 않도록 거리를 두십시오. 왜냐하면 그들은 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매우 흥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먹는 음식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번 돈으로 먹고삽니다. 만약 당신이 이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부양한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무엇을 하기를 바라십니까? 주 예수님께서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우리가 그를 원수로 여겨서는 안 되지만, 너무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같은 종의 새들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 집단으로 나뉩니다. 당신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비슷한 사람들은 무리 지어 다닙니다. 만약 당신이 그들과 거리를 두지 않는다면, 만약 그들이 작은 무리라면, 우리는 그들과 같은 무리에 속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다른 무리에 속해 있습니다.
초창기 교회를 세웠을 때, 저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매우 가난해서 교회에 많은 보조금을 의존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사람들을 섬길 때 조심합니다. 언젠가 그 아이도 그런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중국 속담에 "세 살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릴 때 그런 사람은 커서 선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다면, 새로운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커서도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런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자라서도 계속 좋아할 것입니다. 평생 무지한 것은 사람에게 비극입니다.
우리는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조언한다고 해서 그들과 가까운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좋아합니다. 교회 유지는 나, 당신,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에 관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그런 형상대로 살아간다면, 그들은 언뜻 보기에 유령처럼 보이고, 흑백논리처럼 살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에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을 좋아하고, 저는 속으로 '아, 당신도 그런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지난 몇 년 동안 끊임없이 쓰레기를 걸러내고, 또 다른 쓰레기를 걸러내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교회를 정화하시는 주 예수님이십니다. 같은 깃털을 가진 새들이 모여듭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을 좋아합니까?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은 모이는 법입니다. 조심하세요. 저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고, 함께 있으면 서로 잘 지냅니다. 어쨌든 저는 확신합니다. 바보 같지 않나요?
그런 사람들을 훈계하세요
그런 사람들을 훈계하세요. 그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냥 내버려 두세요. 놓아줄 수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그냥 참겠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을 훈계하고, 계속해서 당신을 쫓아낼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전에는 시력이 좋지 않았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사람들을 데려왔습니다. 그도 헌신했고, 꽤 잘했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저에게 수천 마일을 여행하고 수천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저는 그가 수천 마일을 여행하면서도 수천 권의 책을 읽지 않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제가 세상과 소통하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물을 즐기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노는 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어디든 놀고, 걷고, 걷고, 걷는 걸 좋아하고, 그게 좋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그 패턴을 요약해 봤는데, 먹고, 마시고, 즐기는 건 늙은 말과 같다고 하더군요. 그가 계속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에게 열심히 일하고, 일을 잘하고, 조용히 일하고, 자기 밥을 먹으라고 조언했어요. 물론 그는 일할 필요도 없고, 잘 먹을 수도 있죠. 그는 돈이 있는데, 예전에 어떻게 벌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그를 설득해서 일하게 했고, 그는 저를 먹고, 마시고, 즐기라고 설득했어요. 우리는 여기서 서로 경쟁하는 거예요. 저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맛있는 음식이 맛있다는 건 알아요. 제가 그 맛을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하지만 저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데 전혀 관심이 없어요. 제가 관심 있는 건 오직 일하는 거예요. 저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관리해요. 즐기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제가 뭘 헷갈렸을까요? 세상의 모든 도시는 다 똑같다는 거죠. 아시나요? 모든 도시가 다 똑같아 보이잖아요. 아마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몰라요. "아, 다르네. 북유럽의 작은 도시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봐. 보고 나면 뭘 할 수 있겠어?" 매일 봐도 질리지 않을 거예요. 저는 모든 도시가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시골은 다 똑같아 보이더라고요. 재미없더라고요. 보고 싶으면 인터넷 사진 좀 보세요. 직접 보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워요.
제 동료들은 한 가지 특징이 있어요. 놀기를 싫어해요. 앉아서 밥 먹고, 물 마시고, 가끔은 이야기도 나누면서 먹는다고 하시는데, 사실 그게 가장 중요한 건 아니에요. 가장 중요한 건 먹는 과정에서 목회도 하고 다른 일도 한다는 거예요. 먹고 마시고 노는 건 정말 지루해요. 모든 도시가 다 똑같아 보이잖아요. 아, 이건 정말 이상한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은 제 삶이 너무 단조롭다고 생각하고, 저도 그들의 삶이 너무 단조롭다고 생각해요. 결국 무승부였으니 잊어버리세요. 여러분은 가서 즐기세요. 저는 제 하나님을 잘 섬기겠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저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사람들은 우리 가운데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사람을 바꾸지 않으면 마귀에게 빼앗길 것이라는 경고였습니다. 빼앗긴 사람은 빼앗긴 것입니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즐겁게 지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들은 무엇을 먹었을까요? 2, 3년마다 담석이 생겼을 겁니다. 담석이 생기면 그들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을 겁니다. 그게 재밌을까요?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누가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데살로니가후서 3:8-9)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이 우리를 본받도록 진심으로 격려합니다. 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의 본보기를 따르도록 격려할까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우리는 이미 많은 가치를 창출해 왔습니다. 저는 묻습니다. 만약 당신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면, 이 사회가 당신을 실망시킬까요?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가난할까요? 저 같은 사람이 가난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가난할 수 없고, 절대 가난하지 않을 겁니다. 이제 저는 모든 사람이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키고 자신이 하는 일에서 잘 성장하는 법을 배우기를 권합니다. 젊은 목회자들을 훈련할 때, 직장에서 업무 효율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하루 일을 줬고, 우리는 두 시간 만에 끝냈습니다. 나머지 여섯 시간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가난할 수 있을까요? 일의 질이 나쁘거나 형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질은 정말 좋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밤낮으로 수고하고 또 수고하며 여러분 중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으려고 일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여기서 공짜로 먹고 마실 권한이 없어서가 아니라, 여러분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 형제자매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형제자매들을 착취하지 않겠다는 목표를 마음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가운데 한 형제자매가 있는데, 한 목사님과 그의 동역자를 열렬히 영접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특별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캐나다에 가서 어떤 분의 집에 묵었습니다. 저는 그 집에서 지내 본 후 꽤 흥미로웠습니다. 그들이 어떤 집에 도착했을 때에도 유기농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요구 조건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이 요구 조건은 정말 높습니다. 공짜 음식, 공짜 음료, 공짜 숙박.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설교자들이 많은 것을 봅니다.
저는 모든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항상. 우리는 남을 이용하고 먹고 마시고 공짜로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 손으로 합니다. 사실, 정말 힘든 일이죠. 밤낮으로 정말 열심히 일합니다. 과장 없이 말씀드리자면, 20대부터 지금까지요. 기본적으로 쉬는 시간은 없고, 물론 밤에 자죠. 하루 24시간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사람들을 접대하고 있었는데, 그날 밤은 겨우 세 시간밖에 못 잤습니다. 낮에 운전하고 돌아오니 너무 졸렸어요. 그래서 고속도로에서 멈출 수가 없어서 고속도로를 계속 운전해야겠다고 고집했습니다. 결국 고속도로는 2~3킬로미터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운전할 수 없어서 형에게 맡겼습니다. "어서 운전 좀 도와줘." 조수석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아, 정말 잘 잤어요."
저는 우리 형제자매 모두가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은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이 저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제 우상입니다. 천국에 가서 주 예수님께 돌아가면 누구를 가장 보고 싶냐고 물으셨죠. 저는 바울과 가장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도 바울이 제 롤모델이기 때문에 그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바울을 제 우상이라고 했는데, 오해는 마세요. 바울은 제 롤모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는 먹고 마시며 죽기를 기다리거나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기다리는 논리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자세히 읽어보면 무엇을 읽게 되시나요? 분명 잘 일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설교를 시작하실 때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설교를 절반쯤 마치셨을 때 누군가 "예수님이 우리 가족을 위해 만들어 놓으신 식탁이 무너졌는데, 아직 보증 기간이 지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경험을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 우리 가족을 위해 만들어 놓으신 의자가 무너져서 당신의 엉덩이가 부러졌습니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나요? 아니요. 그분은 목수의 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리스도의 인내를 배우라.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열두 살 때부터 성전에 계셨고, 그 후 여러 해 동안은 성전에 계시지 않았으며, 그 기간 동안 기록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 기간 동안 그분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일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이 그곳에서 일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섬길 때를 기다리시며 일하셨습니다. 섬기러 나오셨을 때, 목수 일을 멈추고 설교하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세우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성막을 지은 모세든, 성전을 지은 솔로몬과 다윗이든,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은 모두 매우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운다면, 그리스도의 인내 없이는 교회를 세울 수 없습니다. 이 인내를 믿음이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인도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시고, 그리스도의 인내를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목수 일을 하고, 내일도 목수 일을 하고, 또 목수 일을 하여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목수 일을 하다가 봉사하러 나가라. 세례 요한이 그분께 세례를 주었고, 그분은 물에서 올라오시어 성령으로 충만하셨다. 이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우리 주 예수님은 매우 강력하고 유능하신 주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장인이시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으면 그분이 장인이심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 더 빨리 달리게 하소서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데살로니가후서 3:1)
이 말씀이 중보기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기도할 때 했던 일을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을 했는지 마음속 깊이 깨닫게 하여 그를 본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기도할 때 우리 사도 바울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그는 말씀하시면서 주님의 말씀이 더 빨리 달려 영광을 받도록 이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영광을 받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영광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속히 전파되어,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십시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며 사도 바울의 하나님이신 그분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우리가 그런 자만심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자만심에 있어서는 첫째입니다. 이것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원한다면 사도 바울처럼 하십시오.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같은 영광을 살아냅시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파하신 교리에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신 지 단 3년 만에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영광스러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영광스러운 길을 걷고 싶습니까? 만약 우리가 이 영광스러운 길을 걷고 싶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게으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낼 수 있습니까? 저는 게으른 사람들이 둘째 형제를 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둘째 형제가 되고 싶습니까? 여러분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살아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논리를 우리의 게으른 논리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중국 운명론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내는 신학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고, 형제자매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삶의 모든 면, 모든 구석, 모든 순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