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함께 복음을 나누는 유익((2)-하나님의 아들을 될 것이다!
필기를 참고
1.서론
a. 육신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는 것은 영광스럽지만, 복음의 유익을 받고 저주를 받는 것은 영광스럽지 않습니다.
b. 복음의 유익이 없는 것은 육신과 악한 정욕이 죽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러한 목회적 돌봄이 없습니다.
c. 육신에 빠져 세상을 사랑하고 선악을 분별하는 교회는 복음의 유익이 없습니다.
d.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e. 육신을 죽이고 성령을 순종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2. 성경의 말씀
나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고대합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니,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 자신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압니다. 뿐만 아니라 또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로마서 8:18-23)
3.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 안에서 역사하소서. 당신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것이 풍성한 은혜임을 알게 하소서. 우리가 이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육신이 당신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열고 성령의 보혜사가 우리 안에 들어오시도록 초대합니다. 육신의 악한 행실을 죽이도록 도와주세요. 성령의 보혜사는 우리의 마음을 열어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가 성령께 순종하고 성령의 뜻을 헤아리며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여 육신의 악한 행실을 죽이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유의 영광을 누리며 살도록 인도하소서. 하나님, 육신의 악한 행실을 죽이는 데 약간의 고난을 받게 하소서. 우리도 이와 같이 고난을 겪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 예수님의 고난을 본받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얻게 하소서. 이는 하나님 자녀들의 자유의 영광이니라. 하나님, 우리가 자라나 하나님 아들의 형상이 될 때까지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 성경말씀의 배경
a. 로마인들은 주님을 믿는 믿음에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들은 믿었지만 복음의 유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들의 혼란을 묘사했습니다.
b.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그들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에 순종할 것인지 성령에 순종할 것인지가 핵심이라고 답했습니다.
c. 주 예수님과 함께 고난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얻는 것을 의미하며, 그렇게 되면 아들이라는 칭호를 얻게 됩니다.
d. 육신의 악한 욕망을 죽이는 것은 매우 불편합니다. 육신의 악한 욕망을 죽이지 않으면 더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e.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기다리며, 성령을 의지하여 육신의 악한 욕망을 조금씩 죽여 우리 몸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f. 하나님은 성령께 순종하는 자들을 도우십니다. 자신의 육적인 논리 체계를 더 많이 죽일수록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5. 모든 인간 문제의 근원은 육에서 나옵니다.
a. 육적인 것들은 육적인 논리 체계로 생각됩니다.
b. 문제 해결의 답은 우리가 육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발로 밟고 다니면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c. 육을 죽이는 악행이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e.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모든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6.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의 신분으로 예정하셨습니다.
a. 우리가 아들의 신분을 갖기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의 신분으로 예정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도록 자라게 하려는 것입니다.
b. 사람들은 보상에 따라 선택을 해야 하며, 육신의 논리는 사람들을 아들의 지위를 잃게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준비를 하셨습니다.
c. 하나님은 태초부터 우리를 아들의 지위를 갖도록 예정하셨고, 우리 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전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여 육신의 악한 행실을 죽입니다! 우리는 점점 더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7. 우리 몸의 구원
a. 몸의 구원은 더 이상 질병이 없음을 생명살라나는 것이 의미합니다! 가장 중요한 구원은 치유와 해방입니다.
b. 몸 구원의 두 번째 단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삶의 모든 필요가 충족된다는 것입니다.
c.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시므로 우리는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8. 하나님은 우리를 돕는 분이십니다.
a. <로마서>의 주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b.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언제나 우리의 도움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탄식, 곧 방언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진리 안으로 인도하십니다.
c. 하나님은 그분의 뜻대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께서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이시기를 바라십니다!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복음의 유익을 함께 누리기" 시리즈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여전히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왜일까요? 여러분은 복음의 유익을 얻고 싶지 않으신가요? 당연히 유익을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강의는 "아들의 지위를 얻기"라는 제목의 또 다른 에세이입니다. 사실 이 강의는 로마서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에 로마서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묻는다는 것입니다. "왜 저는 복음의 유익을 볼 수 없나요? 저는 아들의 지위도 못 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노래를 불렀고 공산주의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은퇴했는데 어디로 이어받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5대째 기독교인이지만 가족 안에서 복음의 유익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믿습니까? 그녀는 복음 전파에 매우 열정적이었고, 이것저것 섬겼지만, 온몸이 아팠고 간과 신장도 좋지 않았습니다. 가족 중 다른 자매는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면접도 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왜 그녀가 축복받지 못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러자 우리는 그녀에게 "복음의 유익을 얻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선생님, 저희 가족은 5대째 기독교인이지만 복음의 유익은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오직 질병만 겪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우리는 그녀에게 면접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우리 교회 예배는 매우 실용적이었습니다. 그녀는 거의 일자리를 찾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읽지만 복음의 유익이나 하나님의 아들됨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만지거나 보거나 경험할 수 없는 신앙으로 여길 뿐입니다. 이것이 비극이 아닙니까? 정말 그런가요? 중국 교회 신학의 황금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제가 잘못 이해했습니다." 제가 잘못 이해했는데, 그게 문제입니다.
최근 "복음의 유익을 함께 누리기" 설교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는데, 로마서 8장을 다시 읽었습니다. 아들됨 앞에 "기다린다"라는 단어가 두 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다린다"라는 두 단어를 이렇게 오랫동안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전 "복음의 유익을 함께 누리기" 시리즈의 두 번째 강의는 "아들됨을 얻는다"였는데, 사실은 "아들됨을 얻기 위해 기다린다"여야 합니다. 이 문장은 저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알고 보니 아들됨을 받기 위해 기다린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본 후, 로마서를 처음부터 다시 읽었습니다. 마침내 로마서 8장의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에 대해서는 나중에 긴 글에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 구절이 인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읽어드리고 제가 말하는 느낌을 이해하실 수 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중간에 몇 가지 작은 메모를 덧붙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 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로마서 8:1-4)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셨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왜 복음의 유익을 받을 수 없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죄를 정죄한다는 것은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당신이 여전히 율법을 지킴으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면 복음의 유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육신을 따라 행하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만,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육신을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요 영을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는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영 안에 있나니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로마서 8:5-11)
이 글을 읽고 조금 느끼셨나요? 다시 생각해 보세요. 이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저도 생각해 봤는데, 이 길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는 육신에게 빚진 것이 없으므로 육신대로 살지 아니하노라. 육신대로 살면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니니.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꼐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로마서 8:12-17)
이 구절을 읽어보면 매우 간단하고 분명합니다. 우리가 한꺼번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는 아들의 신분을 받기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이름뿐이지만, 아들이라는 칭호를 얻는 것은 성장하여 아들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여전히 어린아이입니다. 어린아이는 혼자 비행기에 탈 수 없습니다. 어른이 동반해야 합니다.
나중에 우리가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그와 함께 영광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함께 같은 고통을 겪는다면, 간 손상으로 고통받는 것이 영광스러운 고통이라고, 신장 손상으로 고통받는 것이 영광스러운 고통이라고, 종양으로 고통받는 것이 영광스러운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 자르고 내일 자른다면 무슨 영광이 있겠습니까? 영광이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고난을 받고 육신을 죽이고 육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그와 함께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한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굴복하게 하신 이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것은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소망을 갖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음을 압니다.
생갹건대 형제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치조물의 고대 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그 바라는 것은 치조물ㅇ; 디 ㅇ;ㅈ;[낒; 힘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거슬 바라면 참음으로 가디릴찌니라.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로마서 8:18-26)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뭔가 느껴지신다면, 제 말만 듣지 마시고 로마서 8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보세요. 적어도 서른 번이나 오십 번은 읽어 보세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성령의 첫 열매들도 마음속으로 탄식합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탄식합니까? 수고 때문에 탄식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육신 안에 살고 있고, 수고 때문에 탄식합니다. "나는 성령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구원받았다"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문제는 육신에 속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육신에 속한 사람이라면 복음의 유익을 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어떻게 복음에서 유익을 얻을 시간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해가 없다면 좋을 텐데, 그것은 아들의 신분이 아닙니다.
어떻게 아들의 신분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집에서 여러 자원을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자녀라면 여전히 당신을 돌봐줄 청지기가 필요합니다.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명목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그는 단지 어린아이일 뿐이며 청지기의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육신의 악한 욕망을 죽이는 삶입니다. 이것이 우리 비전신학론의 핵심 개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삶입니다. 함께 고난받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는 것입니다. 육신의 악한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그것은 질병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고난입니다. 육신의 방종에 대한 저주도, 영광스럽지 않은 종류의 고난도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 이해의 핵심임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복음의 유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교회에서 육신의 악한 욕망을 죽이는 목회적 돌봄을 거의 보지 못하므로, 당연히 복음의 유익을 볼 수 없습니다. 제가 말한 이 문장이 중요할까요?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복음의 유익을 잃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바로 육신의 악한 욕망을 죽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문장을 적어 보세요.
그러므로 비전신학론의 목회적 돌봄은 육신의 악행을 죽이는 목회적 돌봄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는 목회적 돌봄이며, 하나님 아들의 신분을 얻게 하는 목회적 돌봄입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복음주의자들은 "오,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구원받았습니다. 저는 병들었습니다. 그것은 고통받는 것이고, 주님과 함께 영광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닙니까? 병드는 것이 복음의 유익입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자세히 확인해 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회의 지도자이자 장로인 복음주의 형제가 있습니다. 그가 암에 걸렸을 때 저는 그를 섬겼습니다. 그냥 그에게 냉대받으려고 했던 겁니다. 화학 요법과 전기 요법의 효과를 그들이 누리는 걸 정말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주라고 말하자 모든 게 끝났습니다. 그는 화를 내며 "네가 저주받은 사람이야."라고 말했습니다.
확인해 보니 그를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대하면 바로 표정이 바뀌더군요. 저는 "왜 화를 내니? 왜 표정을 바꾸니? 잘하면 받아들여지지 않겠니?"라고 물었습니다. 교회에서 그는 육신에 속한 장로이고 세상을 사랑하며 선악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여전히 예전과 똑같습니다. 저는 복음의 효과, 하나님의 능력, 치유와 구원의 효과를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복음의 효과를 문자 그대로만 볼 수 있을 뿐,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정말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그를 조금 다루긴 했지만, 엄하게 다뤘습니다. 그가 저를 만나러 먼 곳에서 오셨기에, 마침내 그를 상대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왜냐고요? 그를 상대한 후에야 그를 고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원거리 교인과는 다릅니다. 몇 마디 말을 건넸는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를 가까이서 보고는 "왜 화를 내세요? 왜 얼굴이 변했어요? 잘하면 받아들여지지 않겠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니 말씀드리지만, 육신을 상대하는 것은 사실 복음의 유익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삶 속의 얽힘과 불편함, 어머니와 딸의 나쁜 관계, 아버지와 아들의 나쁜 관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나쁜 관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경쟁하는 것을 무슨 복음이라고 부르겠습니까?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들을 만질 수 없습니다. 만지면 고름과 더러운 것을 뿜어낼 것입니다.
은사주의자들은 말합니다. "나는 거듭났다!" 그날 성령이 내게 내려왔고, 내 머리카락이 곤두섰습니다. 저는 성령에 쓰러졌고, 방언을 했고, 감전되었고, 구원받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중에 면밀히 조사한 후, 저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었고, 그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육신에 대한 생각, 세상을 사랑하는 것, 선악을 아는 것, 이 세 가지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는 복음의 유익을 볼 수 있을까요? 그는 복음의 유익을 볼 수 없고, 그저 문자 그대로 "아, 저는 구원받았습니다."라고만 말합니다. 이 복음에는 유익이 있는데, 저는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요점이 무엇일까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사람의 삶의 문제는 육신의 문제입니다. 사람의 삶에 대한 해답은 성령을 의지하여 육신의 악행을 죽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육신의 악행을 죽이는 데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병들까요? 육신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끼고 노동에 대해 한숨을 쉬나요? 육신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은 가난할까요? 육신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은 두려워할까요? 육신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은 복음의 유익을 보지 못할까요? 육신 때문입니다.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육신 안에서 살도록 허락하시는 위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육신의 악한 욕망을 죽이고 하나님 자녀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따라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육신 안에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승리하고 육신의 악한 행실을 죽이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성령을 따르면 성령께서 우리가 승리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성령을 따르면 복음의 유익을 반드시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의 신분을 얻고, 하나님의 약속을 상속받고, 복음의 유익을 받도록 예정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두려움 때문에 광야에서 죽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복음으로 우리를 위해 그것을 이루셨고, 이미 죄를 정하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셨으며,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오직 성령을 따르는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의와 율법의 의를 이루셨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저는 우리가 아직 복음의 유익을 탐구하기에는 너무 멀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복음을 잘 탐구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결코 충분히 잘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마치 바다가 바다를 채우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다가 바다를 채우듯이 우리를 위해 풍성한 약속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유익을 얻고, 아들의 신분,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기를 원합니다. 우리 몸은 구속되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부족하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돌보실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 몸의 구속에 기초하고 있으며, 우리의 영광스러운 소망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합니다. 우리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반드시 보게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2. 성경의 말씀
나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고대합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니,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 자신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압니다. 뿐만 아니라 또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로마서 8:18-23)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 안에서 역사하소서. 당신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것이 풍성한 은혜임을 알게 하소서. 우리가 이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육신이 당신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열고 성령의 보혜사가 우리 안에 들어오시도록 초대합니다. 육신의 악한 행실을 죽이도록 도와주세요. 성령의 보혜사는 우리의 마음을 열어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가 성령께 순종하고 성령의 뜻을 헤아리며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여 육신의 악한 행실을 죽이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유의 영광을 누리며 살도록 인도하소서. 하나님, 육신의 악한 행실을 죽이는 데 약간의 고난을 받게 하소서. 우리도 이와 같이 고난을 겪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 예수님의 고난을 본받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얻게 하소서. 이는 하나님 자녀들의 자유의 영광이니라. 하나님, 우리가 자라나 하나님 아들의 형상이 될 때까지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말씀의 배경
로마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바울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로마로 와서 우리에게 복음의 진리를 전해주세요."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전했을 뿐만 아니라, 로마 사람들은 주님에 대한 믿음에 대해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왜 혼란스러웠을까요?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믿었더니 기도가 사라져 버렸어요."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밀월기라고 하는데, 우리의 밀월기는 이미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바울, 우리는 복음의 유익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전에는 가끔 복음의 유익을 보았지만, 이제는 볼 수 없어서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말씀을 기록하여 "로마서"를 써야 했습니다.
사실, 바울은 왜 그 시대에 "로마서"를 썼을까요? 처음에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지만, 로마 교회가 복음을 믿었기 때문에 그 능력을 잃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로마서 전체가 이러한 주제들을 많이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 하나는 육신의 악한 정욕에 대한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육에 속해 있으며, 믿는 대로 육에 속하게 됩니다. 육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쓴 답이 이러한 문제들을 설명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 바울, 우리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어서 육신에 특별히 신경을 씁니다. 지금까지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제가 무슨 답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육신을 따르려 하면 실패를 거두지만, 성령을 따르려 하면 영생을 거둘 수 있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바울에게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이고 구원받았습니다."라고 물었습니다. 바울, 당신이 쓴 글은 무슨 뜻입니까?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잠깐만요. 당신은 우리의 믿음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믿는 것들이 즉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성경의 진리도 아니고 복음의 진리도 아닙니다. 제가 세례를 받았고, 구원받았고, 거듭났고,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복음 진리의 혼란에 대한 교회의 현재 상황은 사도 바울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로마서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로마서에 대한 많은 정보를 찾아보았고, 읽고 나서 솔직히 말해서, 말의 입이 아니라 나귀의 입술과 같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순종할 의지가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여러분을 구원하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여러분이 누구에게 순종할 의지가 있는지 아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로마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우리는 병들었습니다. 우리의 간은 좋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장은 좋지 않습니다." 좋다, 허리도 좋지 않고, 다리도 좋지 않고, 뇌도 좋지 않다. 이것이 바로 내가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겪고 영광을 얻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아니다. 언제 예수님께서 간, 신장, 허리, 다리, 뇌가 좋지 않은 것을 보셨습니까? 아니요, 나쁘지 않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겪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원래 개념은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고 함께 영광을 얻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은 암에 걸렸을 때도 이렇게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암의 귀신조차 이겨내지 못한다면 미래에 무슨 영광을 누리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육체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영광은 따옴표 안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쉽게 혼동할까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의 해석은 무엇일까요? 그들의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죽음 이후에 영광스럽게 됩니다. 그럴까요? 아닙니다. 그래서 나중에 바울은 이러한 잘못된 관념들을 깨뜨리고 싶어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으면 평안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사실, 피조물은 지금까지 헛된 것과 탄식과 수고에 굴복해 왔습니다. 왜 탄식하고 수고해야 합니까? 육신이 아직 죽임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첫 열매를 가진 우리조차도 마음속으로 탄식합니다. "아, 언제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얻을 수 있을까? 언제 이 복음의 유익을 얻을 수 있을까?" 이런 느낌일까요?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기다리는 것은 우리 몸의 구속, 즉 우리의 온 몸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께 돌아가 이 육신의 모든 악한 정욕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들의 신분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바울은 이러한 탄식과 수고가 성령의 첫 열매를 가진 자들에게도 해당된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정욕을 죽이는 것은 매우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정욕을 죽이지 않으면 매우 불편하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육신의 정욕을 죽이는 것 역시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덜 고통스러운 방법을 택하고, 육신의 정욕을 죽이는 것이 더 낫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아들의 신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소망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을 품고 내려가서 조금씩 육신의 정욕을 죽이십시오. 나중에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약할지라도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이 설명은 서로 연결해 보면 이해가 됩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제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하나님께서 성령께 순종하는 자들을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악한 정욕을 빨리 죽일수록 육신에 속한 사람일수록 더 행복할 것입니다. 당신은 세속적인 논리 체계와 육신적인 논리 체계를 짊어지고 있으며, 매우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그 육신의 불편함에서 나와서 자신이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명성을 얻었지만, 여전히 한숨 쉬며 수고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합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 구절은 많은 로마 그리스도인들의 혼란을 해결했고, 우리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의 혼란도 해결했습니다.
설교 시간을 약 50분으로 제한하고 싶지만, 여전히 매우 어렵습니다. 제 설교에서 세 번 반복한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제 설교의 한 단락을 놓치시더라도 괜찮습니다. 세 번 반복합니다. 첫 번째는 서론에서, 두 번째는 이 구절의 배경에서, 세 번째는 다시 다음 요점에서 반복합니다.
모든 인간 문제의 근원은 육신에서 나옵니다
모든 인간 문제의 근원은 육신에서 나옵니다. 아시다시피, 이 사람은 죽습니다. 육신이 죽습니다. 뭔가를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고, 돈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습니다. 사람은 육신에 속합니다. 저는 특히 흥미로운 형제자매들을 섬긴 적이 있습니다. 그는 곧 죽을 것 같았지만, 아직 3개월이 남았는데도 열린 마음으로 상황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직 3개월이 남았으니 신중하게 계획을 세워야겠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3개월이 남았을 때도 여전히 애쓰고, 한 달이 남았을 때도 여전히 애씁니다. 이 육신적인 것은 특히 부패했습니다. 나중에 우리는 그가 낫기를 기도했지만, 그는 다시는 그것을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왜 전에는 그것을 내려놓았을까요? 죽을 때 돈을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왜 돈을 쓰겠습니까?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인민폐든 미국 달러든, 붉은 지폐든 녹색 지폐든, 그것은 세상에서는 유령 돈이 될 것입니다. 지하 세계. 뭘 위해 싸우는 거야? 왜 미국 달러를 위해 싸워야 해? 왜 인민폐를 위해 싸워야 해? 죽은 자들은 살아있는 우리를 보고 혼란스러워해. 그들은 저기서 유령 돈을 움켜쥐고 있고, 우리는 여기서 인민폐를 움켜쥐고 있어. 양쪽 다 혼란스러워.
사람들이 살아나면 모든 게 끝나고, 다시 돈을 움켜쥐려고 해. 풀려나면 다시 불편하고 얽매이기 시작해. 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지. 그래서 이런 육적인 것들이 육적인 논리 체계로 여겨지는 거야. 왜 사람들이 돈이 많이 필요할까? 오래 살 거라고 생각하고, 돈이 있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사실 돈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지는 건 아니야. 돈은 행복과 아무 상관이 없어. 그래서 사람들이 육적인 논리 체계 안에서 살면 매우 치명적이야.
말하자면, 중국인들은 잘 살지 못해. 싱가포르에서 만난 말레이인들은 더 잘 살아. 돈은 많지 않지만 매일 행복해. 어느 날, 중국인 한 명과 말레이인들은 해변에서 낚시를 하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얼마 후, 중국인들은 사라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돈을 벌러 갔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60대 중국인들이 돌아와 말했습니다. "아, 드디어 낚시의 즐거움을 누릴 기회가 생겼네요." "그럼 지난 몇 년 동안 뭘 하셨어요?" "저는 돈을 벌러 갔습니다." 말레이인들이 말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낚시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낚시를 즐겼지만, 중국인들은 고통받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돈이 있어야 먹고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모든 문제는 육신적인 것에서 비롯됩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는 육신적인 논리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들이 실패한 모습을 보면 자존감이 손상됩니다. "어떻게 저런 아들을 키울 수 있었을까?" 그는 불편함을 느낍니다. 아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꾸짖는 모습을 보며, 사랑과 미움이 뒤섞입니다. 그 결과 아들의 얼굴은 일그러집니다. 육신적인 어머니와 딸은 서로 물고 꼬집고, 육신적인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물고 꼬집고, 육신적인 형제는 서로 물고 꼬집습니다. 그들은 모두 복음의 유익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로서 우리의 사역은 그들을 지혜롭게 만들고 그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줘야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육신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육신에 속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발 아래 짓밟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매우 강하여 모든 것을 발 아래 짓밟습니다. 육신에 속한 남편도 만물에 포함되며, 그때 사람들은 기뻐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악행을 죽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내가 하늘과 땅에 말했지만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중국의 논리 체계가 당신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 논리 체계에 따라 열심히 일하며 돈을 벌려고 기다리다가 늙으면 힘들어질 것입니다. 늙으면 다리와 발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시력도 나빠져 서서히 고통받게 될 것입니다.
돈이 있다고 해서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종이 되기를 원치 않으시고 하나님 집에서 자녀가 되기를 원하시지만, 육신의 논리 체계를 깨뜨리지 않고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로 예정하셨습니다
이 구절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들의 신분을 주시기 전에 이미 우리를 자녀로 예정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아직 어린아이이고,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길에서 자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예정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신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서 죄를 정하셨습니다. 그 사건은… 닫혔습니다.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고, 아무도 당신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당신이 처음 주님을 믿었을 때, 당신은 100% 육신에 속했을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당신을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성령님께 순종하고 육신에 순종할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정죄하셨습니다. 당신은 "저는 자유가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거짓말하고 헛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통제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제가 한번 시도해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 계좌에 있는 돈을 저에게 이체해 주세요." "그건 안 될 겁니다." 이런 통제가 얼마나 좋은지 아십니까? 당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육신을 생각하면 육신은 손상될 것입니다. 육신을 생각할 때 우리는 불편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육신을 생각할 때 편안했지만, 나중에는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불편함을 느끼면 먹고, 불편함을 느끼면 먹습니다. 먹고 나면 살이 찌고, 처음에는 보기 흉해 보여서 필사적으로 살을 빼기 시작합니다. 체중이 줄면 간과 신장이 손상됩니다. 이 고통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체중의 절반을 감량했다가 더 먹었더니 다시 살이 찌고, 또 살이 쪘습니다. 육신에 탐닉하는 것이 제 목숨을 앗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선생님, 저는 그것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저는 제가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하나님께서 성령을 예비하셨기 때문입니다. 통제할 수 없을 때는 성령을 의지함으로써 분명히 통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의 논리 체계, 우리 안의 핵심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때때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운에 달려 있습니다. 운이 좋지 않으면 좋지 않고, 당신의 목숨을 앗아갈 것입니다.
사람이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입니다. 선택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선택할 때는 보상에 따라 선택합니다. 당신은 이것이 보상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보상받지 못합니다. 당신은 이것을 하면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유익을 얻으려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이 육신의 논리입니다. 육신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 아들의 신분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모든 준비를 하셨습니다. 당신은 연약합니까? 성령께서 당신을 도우실 것입니다. 당신은 무지합니까? 성령께서 당신을 비추시고, 비추시며, 당신의 마음에 빛이 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순종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말한 대로, 성령께 순종한다면, 오늘이 지나갈 수 있겠습니까?" 결과적으로, 그날은 마치 개 피 흘리는 날과 같았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우리를 아들의 신분으로 예정하셨습니다.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초부터 우리 뼈 속의 유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전자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씩 하나님과 성령을 의지하여 육신의 악행을 죽여야 합니다. 물론 이 과정은 짧을수록 좋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무도 제 안의 기쁨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를 아십니까? 제 안에는 육신에 속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말합니다: 당신은 불멸자가 되었습니까? 아니요,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제가 육신 안에 살지만, 이것이 육신의 악한 행실임을 분명히 압니다. 저는 성령께서 육신의 악한 행실을 죽이시기를 의지합니다. 육신의 악한 행실을 더 많이 죽일수록 제 기쁨은 더 커질 것입니다.
말씀드립니다. 사람이 기쁨 없이 사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사람은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모든 답을 예비하셨습니다. 당신은 거룩함의 길에 있으며,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얻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하셨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그것을 의지하느냐 의지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의지합니까? 믿음으로 의지하십시오.
그것은 우리 몸의 구속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합니다. 아들의 신분을 기다리는 것은 우리 몸의 구속입니다. 제가 묻습니다. 몸이 구속되면 어떻게 됩니까? 몸이 구속되면 질병이 없을 것입니다. 질병은 육신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말합니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존 숭 무대에서 설교하던 그는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존 성은 전형적인 죄인입니다. 당신과 저도 전형적인 죄인입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존 성은 위대한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많은 복음서가 왜곡되어 믿어지고 전파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만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성경이 옳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로마서를 읽습니다. 마틴 루터가 로마서를 올바르게 읽었습니까? 저는 그가 올바르게 읽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존 성이 로마서를 올바르게 읽었습니까? 저는 그가 올바르게 읽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옳습니까? 아니요, 성경은 독창적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제 해석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해야 합니다. 성경은 명확하게 기록되었습니다.
우리 몸의 가장 중요한 구원은 치유와 해방입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진리는 삶의 모든 필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입니다. 우리 몸이 구원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얻습니다. 하늘의 자원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구원입니다. 몸.
사람들은 왜 두려워할까요? 살고 싶어서요. 왜 걱정할까요? 살고 싶어서요. 왜 우울증에 시달릴까요? 삶에 너무 신경 쓰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이 구원받았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전에도 이것을 실천했습니다. 교회가 헌금으로 산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하나님의 공급으로 삽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가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쁘시게 하시며, 우리 몸이 구원받을 때까지는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몸이 구원받았다면 대학 입시에서 잘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여전히 밝은 미래가 있습니다. 대학 입시 점수가 299점이라 해도 어떤 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 하지만 당신의 미래는 대학 입시 점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에 있습니다.
대학 입시에 합격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집안에서 가장 높은 학점인 299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는 그 형편없는 학교에서 자신감을 키웠습니다. 그는 그 학교에 감사해야 했고, 그 학교가 그에게 많은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학교에는 이중 일류 대학 외에도 삼류 대학이 있습니다. 사실, 이중 일류 대학에서 그의 집까지는 거리가 멀지만, 학생들은 매우 자신감이 넘치고, 그 결과 그는 생계를 유지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방금 기도를 인도할 때 한 형제가 1979년에 대학 입시를 봤고,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만 합격했다고 말했습니다. 대학 입시에 불합격한 사람들은 이제 자신보다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무엇 때문에 바쁘십니까? 당신은 외로움 속에서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필요가 충족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구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이 구절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십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해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겐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로마서 8:26-30)
로마서에서 의롭다 하심에 대해 이야기합니까? 아니요. 로마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이 아니라, 이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고 도우시기를 원하시며, 우리는 오직 믿기만 하면 됩니다. 로마서는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라고 말합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 즉 방언 기도가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든 사람은 성령을 잘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면에 능력이 생기고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 안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이는 절대적으로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떤 형제자매들은 삶에서 혼란스러워합니다. "아, 하나님이 저를 도우시는데, 하나님이 또 저를 괴롭히시는군요. 좋은 것을 보셨는데, 하나님이 저를 괴롭히셔서 저를 매우 불편하게 만드시는 건가요? 하나님이 저를 도와주시는 건가요, 아니면 괴롭히시는 건가요?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육신의 악한 욕망을 죽이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왜 당신은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 서지 않습니까? 당신 안에는 여전히 육신의 논리 체계가 있고, 당신은 항상 그것들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해하셨나요? 중요한 것은 당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도우시고 육신의 악한 욕망을 완전히 없애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부족한 형제자매를 본 적이 있습니까? 그것은 당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입니다.
작년에 한 자매님이 직장을 잃었습니다. 그녀는 매우 비참하고 슬퍼 보였습니다. 그녀는 나이가 들었고 결혼할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 나이가 지나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그녀를 도우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과정에서 그녀를 어떻게 도우셨는지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왜 직장을 잃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육신의 논리 체계를 다루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우리가 그녀를 섬겼을 때, 그녀가 예수님을 믿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부의 신을 숭배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기네요. 부의 하나님께서 무슨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분은 그녀를 실직하게 만든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녀를 풀어주시고 자유케 하시고 싶어 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당신이 직장을 잃지 않도록 하신다면, 언제 돈을 숭배하는 논리에 맞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돕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대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갖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의 자원을 활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 여러분, 저는 다시 한번 하늘과 땅에 여러분 모두를 증거하라고 외칩니다.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 여러분, 성령을 의지하여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인다면 복음의 유익을 받지 못할 수 없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받지 못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기업을 받지 못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는 자가 될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이제 우리가 받은 것이 적으니, 온 힘을 다해 달려갑시다. 육신을 다루는 것도 어렵지만, 육신을 다루지 않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지금 육신을 다루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형제자매들이 이 타락한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 자녀의 자유의 영광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비록 우리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 자녀의 자유의 영광을 얻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려가야 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