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데살로니가후서01-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필기를 참고
1.환난과 박해 속에서의 인내와 믿음
a.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혼란에 답하기 위해 편지를 썼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b. 저주를 위한 고난과 하나님을 위한 고난은 서로 다릅니다. 하나는 보응이고 다른 하나는 영광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고난은 믿음의 증거입니다.
c. 육신은 영적인 것을 핍박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모두 환난과 박해 속에서 인내했습니다.
d. 나쁜 일이 일어날 때, 그것은 박해가 아니지만, 우리가 의롭지 않습니다. 신명기 28장 15-68절은 모두 저주의 표현입니다.
e.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환난과 박해 속에서도 여전히 인내와 믿음을 유지한다면, 당신은 분명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릇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을 통해 당신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당신을 괴롭히는 자에게 환난을 갚으실 것입니다
a. 주 예수님을 핍박한 자들에게도 하나님께서 갚으실 것입니다.
b.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모두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었고, 자신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면에는 종교의 영이 있었습니다.
c. 종교의 영이 초래한 타락은 세상에 대한 사랑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d. 종교의 영은 하나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규칙과 운영에 휘둘리며,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e. 종교적인 감정은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해를 끼칩니다.
f.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핍박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종교적인 감정을 가진 신자들에게 핍박을 받습니다.
3.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a.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반드시 징벌하실 것입니다.
b.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징벌하실 것입니다.
c.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이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자비를 베푸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의 죄를 아버지로부터 아들로, 삼사 대까지 징벌하실 것입니다.
d.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4. 주님은 우리 안에서 영광받기를 원하시며, 우리도 주님 안에서 영광받기를 원합니다.
a..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해야 합니다. 즉,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b.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으로 우리와 함께하심을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c. 하나님은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d. 만약 당신이 치유받지 못했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더 높은 영적 경지로 올라가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치유될 것입니다.
e. 결코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대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은혜는 헛되이 받은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회개하기 위해 받은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데살로니가후서"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의 주제는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입니다.
사실, 주님을 믿으면 우리는 매우 괴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매우 어려운 것이 있는데, 바로 선한 사람은 좋은 상을 받지 못하고 악한 사람은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직시하는 한, 여러분은 분명 매우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데살로니가후서"는 누구에게 쓰여졌을까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쓴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데살로니가전서"를 쓰지 않았을까요?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를 쓰고 나서 많은 부분이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데살로니가전서를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데살로니가후서를 썼고, 몇 가지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이 추가 구절을 통해 바울은 어떤 질문에 답하고 싶었을까요? 그는 데살로니가에서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흔히 겪는 혼란에 답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몇 가지 설명을 덧붙이고 싶었습니다. 자, 이 구절을 읽어 봅시다.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의로우신 하나님이심을 설명하는 것은 너무 어렵습니다. 이 구절을 이해했냐고 물으시는군요. 저는 여러분이 노력해 보라고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인들은 이러한 혼란에 직면했고, 바울은 계속해서 그것들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는 데살로니가인들에게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라는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매우 노력했습니다.
데살로니가인들은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고, 그 후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을 믿는 것처럼 보였지만, 참되신 주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박해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박해와 환난 속에서의 인내와 믿음
말씀드리겠습니다. 믿음은 어떻게 증명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핍박과 환난을 당할 때입니다. 그러한 핍박과 환난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고난이며, 믿음의 증거입니다. 다른 것들로 인한 고난도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제가 말씀드리건대, 이것을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암이나 여러 가지 이상한 질병을 앓으면서도 환난 속에서도 인내와 믿음을 유지합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인내와 믿음과 같은 것일까요, 아니면 전혀 다른 것일까요? 저는 속았습니다. 여러분뿐만 아니라 저도 그렇습니다.
옛날에 제가 막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저는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누군가 짧은 간증을 촬영해서 교회에서 상영하는 단편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보고 나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단편 영화는 비인두암에 걸린 한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간증 영상은 그가 비인두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전 과정을 담았고, 그가 역경 속에서도 어떻게 인내하며 믿음을 지켰는지 보여줍니다. 영상을 보고 나서는 이게 무슨 간증인지 의아했습니다. 아, 정말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제 믿음 안에서는 하나님이 저를 치유해 주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치유되지 않았을까요? 이 때문에 많은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주님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이런 것들에 혼란스러워하지 않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제가 연구한 결과, 저주 때문에 고난받는 것과 하나님 나라 때문에 고난받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자세히 관찰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에게는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이 영상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자세히 관찰한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나라 때문에 고난받는 것과 저주 때문에 고난받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 분명한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면, 이 사람들의 성격이 매우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 이상한 걸까요? 하나는 보복이고 다른 하나는 영광입니다. 하나는 보복이고 다른 하나는 영광입니다. 교통사고와 다른 재난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사람들은 좋은 말을 하고 싶어 하며, 이러한 모든 것을 박해, 즉 하나님을 위한 고난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년간의 연구 끝에 저는 "박해와 고난 속에서의 인내와 믿음"에 대해 증언할 핵심 인물을 찾았는데,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후에 이삭도 끌려나왔고, 야곱도 끌려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박해를 받았을까요? 야곱은 박해를 받았고, 그의 형은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성경은 어떻게 말할까요? 육신이 영적인 것을 박해했다고 하셨죠. 야곱이 나중에 겪은 고난은 그의 믿음 때문에 겪은 고난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나중에 더 자세히 연구했습니다. 야곱의 딸이 강간당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성경에 매우 모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오랜 연구 끝에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가 파괴의 짐을 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영광스러운 일일까요, 아니면 영광스러운 일일까요? 영광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그러다가 야곱에게서 한 가지 개념을 배웠습니다. 이 악한 일들을 박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하나님을 위해 박해받는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 개념을 혼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박해와 고난 속에서 인내와 믿음의 본보기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분은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화학 요법, 전기 치료, 감전사, 또는 독극물로 죽으셨습니까? 아니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까? 그는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병으로 죽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실제로 매우 혼란스러워집니다. 나중에 성경에서 이 저주의 명백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신명기 28장 15절에서 64절까지입니다. 저주는 바로 그것들이며, 애굽 사람들의 질병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누구에게 임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박해와 환난 속에서도 인내와 믿음을 보이는 것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상급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보여 주었고, 여러분의 혼란과 이해는 해결되었습니까? 해결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 박해와 환난을 겪었지만, 여전히 인내하고 있으며, 여전히 인내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릇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그릇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행하는 기적을 통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기뻐하신다는 증거가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분명히 함께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박해를 받고 고난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고난을 가져오는 자들에게 고난을 가져오실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고난은 어디서 왔습니까? 그들은 그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 사람들에게 고문을 당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 유대인들이 데살로니가에 교회를 막 세운 신자들을 박해하기 위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보고 또 봐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들어와 그들에게 큰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의로우신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문제에 대해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나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들이 심하게 저주했습니까? 물론 깊이 저주했을 것입니다.
왜 이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을 핍박했을까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바로 이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사람의 피의 죄가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그들은 하늘과 땅이 진동할 정도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러면 묻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들을 그 자리에서 멸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고, 그분은 걸림돌이 되셨습니다. 이 반석에 떨어진 자들은 산산이 부서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그 유대인들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말씀드리건대, 그들은 나중에 많은 심판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환난을 가져오는 자들에게, 마치 주 예수님을 핍박했던 자들처럼 환난을 가져오실 것입니다. 생각조차 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결국 매우, 매우 심한 고난을 겪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정말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소리쳤습니다. 어떻게 그 사람의 피를 흘린 죄를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돌릴 만큼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나중에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누구일까요? 어떤 사람들일까요? 말씀드리건대, 제가 찾은 답은 그들이 모두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왜 다른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할까요? 예수님은 로마인들에 의해 박해받아 죽지 않으셨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그분을 풀어주고자 했지만, 대제사장을 포함한 유대인들, 그리고 회당과 성전에서 매우 열렬했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들이 정말 이해했을까요?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저에게 매우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사탄에게 눈이 멀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이 배후에는 종교의 영이 있었습니다. 종교의 영이 초래한 타락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당신은 세상을 사랑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세상을 더 사랑하고,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그 보상은 무엇일까요? 저주의 보상은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리건대, 종교의 영은 매우 가증스럽습니다.
종교의 영이란 정확히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하나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종교적 규칙을 만들어내고 그저 운영할 뿐입니다. 그저 운영과 규칙을 가지고 놀 뿐,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요? 형제자매들에게 하나님을 이해하는 면에서 알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이 이런 것에 지배당하지 않고,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모두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전에서 “주님, 주님!” 하고 외치지 않았습니까?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까? 모든 대제사장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면에는 이 낡은 말과 세상에 대한 사랑보다 훨씬 더 강력한 종교의 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환난을 가져오고자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보셨습니까? 보셨습니까? 아니요. 사실 저는 지금까지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천천히 풀어보면, 실제로는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제가 조사한 결과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요? 이 사람들이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나니 충격이 컸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제게 아주 친한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그는 성경 공부를 하러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제 교회의 파수꾼입니다. 목사님이 잘못된 말씀을 하시면 바로잡아 드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괜찮아지셔서 저와 함께 성경 공부를 하러 오셨습니다. 병 고침이나 귀신 쫓아내기처럼 신학적 관점이 겹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우리 모두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그가 다니던 교회는 병 고침이나 귀신 쫓아내기가 아니라 목사님만 쫓아냅니다. 그런데 그는 어땠을까요? 그는 하루 종일 목사님을 바로잡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우리 교회의 파수꾼이라고 말했습니다. 계속 지켜보다가 암에 걸렸습니다. 저는 모두에게 이게 심판이냐고 물었습니다. 심판이었습니다. 누가 그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했습니까? 그는 이 일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가 제 좋은 친구라는 것을 알았고, 그를 이 상황에서 끌어내고 싶었습니다. 암을 치료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종교적 콤플렉스를 치유하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그는 교회에 충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충성심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쓸모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했냐고요? 그를 세웠습니다. 제가 그를 위해 한 일이 쓸모없었던 게 아니라, 오히려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길을 가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가야만 했습니다.
그는 한동안 다시 저에게 연락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에게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그는 저를 싫어했습니다. 아, 차라리 계속 지켜보는 게 낫겠어요. 세상에, 암이 피를 뿜어내고 있어요. 마치 아이가 오줌을 누는 것 같아요. 그는 지난 3일 동안 매일 밤 죽음의 영이 자신에게 찾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를 찾아와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아, 정말 슬펐는데, 며칠 후 돌아가셨어요. 동료들을 데리고 관에 계신 그분을 보러 갔어요.
가장 해로운 게 뭐냐고요? 종교적 복합체가 특히 해롭습니다. 이 종교적 복합체는 기독교인들에게만 해로운 것이 아니라, 세상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을 돌이켜보면, 그런 광신주의를 종교적 광신주의라고 부릅니다. 이해하시겠어요? 그들은 그 낡은 간부들을 박해했을 뿐이죠.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박해받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길을 말하는 한, 박해받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알아주세요. 사람들이 박해하면 박해할 뿐이고, 저는 그 무리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복음이 매우 순수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박해는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누가 박해하냐고요? 그들은 모두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지만, 종교적 복합체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 친구 중에도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나중에 그의 가족이 화재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저는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선지자가 한 말은 모두 역겨운 말이라고 모두에게 말했습니다. "형제님, 조심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주님에 대한 믿음이 매우 순수하고, 그보다 더 순수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분명 축복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창고에 불이 나서 수백만 달러를 태워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집 창고 화재로 인한 박해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암에 걸렸습니다. 바로 그 병에 걸렸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는 박해를 받은 적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환난을 가져오는 자들에게 환난을 가져오실 것입니다.
사실, 그의 암은 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고, 잘못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그는 또한 저를 반박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했습니다. 제가 그를 섬긴 것이 효과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효과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이야기를 하자 그는 듣기 싫어했습니다. 사람들은 저주받을 수 있지만, 당신이 저주받았다고 그에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유 없이 저주를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유 없이 저주를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해석을 보세요. 같은 구절인데, 그는 이유 없이 저주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이야기해 온 것은 우리가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교회에는 당신이 있기 때문에 혼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여전히 매우 외롭습니다. 왜 그럴까요? 종교의 영이 우리의 방식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의 가장 강력한 힘은 교인들을 어리석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전통적인 교회는 어떻게 가르치나요? 교회가 종교의 영에 지배받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언급할 예는 훨씬 더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종교의 영이 있을까요? 종교적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언제 완전히 바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하나둘씩, 하나둘씩 강한 종교적 콤플렉스를 품고 있지만, 하나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떤 곳에서 종교 개혁이라는 것을 추진하면, 그들은 당신을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어떻게 당신이 변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당신을 이단으로 낙인찍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의, 하나님은 보복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제가 방금 언급한 예들을 통해 이것이 사실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복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벌하실까요? 물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한 유다는 보복을 당했습니까? 그는 분명히 그랬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한 후 목에 밧줄을 걸고 스스로 목을 매달았습니다. 신약 성경은 정말 잔혹합니다. 내장이 온통 땅에 널려 있죠. 그분이 거기에 매달려 계셨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내장이 온통 땅에 흘러내릴 수 있겠습니까? 징벌은 사람들을 속상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데살로니가후서 1:6-9)
하나님은 정말 잔인하십니다. 그 사람들은 복음이 아닌 복음을 전했습니다. 매우 부패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건대, 형벌이 임하기 전에는 모든 것이 괜찮았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여러 해 동안 파수꾼으로 일하다가 암에 걸렸습니다. 암에 걸리기 전에는 자신이 벌을 받을 줄 몰랐고, 걸린 후에도 몰랐습니다. 오늘날 그는 괜찮아 보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던 유대인들은 그 당시에는 목이 졸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큰 소리로 외치고 팔을 힘차게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그들은 벌을 받을 것입니다. 반드시 벌을 받을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복음을 믿으십시오. 제 자랑은 듣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복음을 혼란스럽게 믿고 제 말을 반쯤 이해한 채 듣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여러분이 여러분의 이해 안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몇 번이나 저에게 "이게 사실입니까?"라고 반문하는 것은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게 사실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정말 놀랍습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오늘날에도 저는 형제자매들이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지혜로워서 제 말이 사실인지 성경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는 신약 성경이 없고 구약 성경만 있었습니다. 구약 성경만으로도 오늘날 우리가 믿는 복음이 무엇인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더러 내신지라.(데살로니가후서 1:10)
어떻게 증거하는지 묻겠습니다. 증거가 아닙니다. 그분은 교회에서 의자 몇 개를 옮기셨습니다. 아, 정말 활기찹니다. 매주 주일 예배는 한 시간 전에 시작되고 의자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아주 활기찹니까? 아닙니다. 이게 뭐죠?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 목사님이 저에게 와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 암에 걸린 자매님이 계십니다. 아, 이해합니다. 사람들은 제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암 때문에 성격이 아주 강해지셨죠." 목사님은 즉시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우리 자매님은 아주 잘 살고 계십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삶이 아주 좋은데 어떻게 암에 걸릴 수 있습니까? 암에 걸렸다면 괜찮을 겁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자 사람들은 거의 혐오감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건대, 여러분이 진심으로 귀 기울인다면 여러분의 암이 우리에게 오고, 저는 그것이 저주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아, 저주입니다."라고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빨리 나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보복을 받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치유되어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저는 감동했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이 문제를 그렇게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요? 저주일까요, 아니면 보복일까요?
바울이 이 서신을 쓴 것은 지면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에서 이 사람들과 성경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창세기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또한 신명기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저주받은 역사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성경을 인용하며 하나님은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하나님은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언약을 지키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은 죄에 대해 아버지로부터 아들, 삼사 대까지 벌을 받을 것입니다.
3, 4대 전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많은 사람들이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조부모, 조부모, 증조부, 증조모, 증조부, 뭐, 그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저주를 없애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해결되지 않습니다. 교회에는 말도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성경에서도 그런 것들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계속해서 그것을 없애고 영혼의 끈을 끊어버립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잘라내는 것,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을 치유하고 구원한 후에도 여전히 정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이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온 마음과 혼과 힘을 다해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3, 4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3, 4대, 어떻게 헤아리겠습니까? 그래서 말씀드리건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정말 특별합니다.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해 봅시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어떻게 벌하시는 걸까요? 신명기 28장 15절부터 64절까지 자세히 읽어 보세요. 바로 징벌입니다. 역사 후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나라와 민족들 사이에 흩어졌고, 소수의 유대인들은 중국으로 쫓겨났습니다. 그 후 그들은 이스라엘이 건국될 때까지 모세의 율법을 지켰다가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벌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도 벌을 받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하고자 하시는 일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데살로니가인들처럼 진정으로 하나님께 돌이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여부입니다.
교회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많은 징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고, 마귀도 실수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이 실수를 했을 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유령은 하나님이 보내신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과 엮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며, 마땅히 벌받을 자들을 반드시 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산타클로스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징벌의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이 징벌들을 제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아직 징벌이 없다고 하셨습니까? 시간 문제입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간 문제입니다. 샤오핑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모든 사람에게 진실을 말합니다. 성경에 있는 내용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가지고 장난치지 마십시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이해의 관점에서, 그리고 이해에 대한 충분한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종교적 신앙이 아니라 말입니다. 종교적 색채가 가득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종교적 색채가 가득한 것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인 줄도 모르고 십자가에 못 박고, 여전히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저주받은 사람들이 여전히 하나님을 위해 핍박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극이 아닙니까? 이 모든 것은 허구입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서 영광을 받기를 원하시며, 우리 또한 그분 안에서 영광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은 우리 안에서 영광을 받기를 원하시며, 우리 또한 그분 안에서 영광을 받기를 원합니다. 모두에게 읽어드리겠습니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데살로니가후서 1:11-12).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주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눈먼 사람을 만지셨고, 눈먼 사람이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심으로 주님 안에서 영광을 얻습니다. 귀신이 기적을 행할 수 있을까요? 네, 하지만 귀신이 행하는 기적은 눈먼 사람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을 눈멀게 하는 것인데, 그것 역시 기적입니다.
그러니 오늘 주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우리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우리도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이건 2센트짜리 찻주전자 아니야?"라고 말할 뿐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건대,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여 우리가 부러워하는 모든 선을 행해야지, 우리가 부러워하는 돈을 행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행한 모든 행위는 믿는 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믿음의 열매는 무엇일까요? 여러분, 한번 써 보세요. 믿음의 행위는 무엇일까요? 믿음으로 행한 행위는 기적이며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 때문에 분명히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분명히 우리와 함께하시는데, 우리는 여전히 박해를 두려워합니까?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이 우리를 싫어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우리를 반대하더라도 우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울이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쓴 것처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부러워하는 선을 행하고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나타날 것입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제 말을 믿지 않는 형제자매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이 모든 사람이 치유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너무 절대적인 말씀입니다. 저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당신이 받아들이든 안 받아들이든, 그분은 성경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뇌에 문제가 있습니다. 제 말을 믿지 않는 겁니다. 제 말은 제가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제가 지어낸 말입니까? 하지만 저는 그저 믿습니다."
그 당시에는 열 명 중 한 명만 치유되었습니다. 저는 그들 모두가 치유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나머지 아홉 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나중에는 열 명 중 다섯 명이 믿고 또 믿었습니다. 나중에는 믿고 또 믿기 시작해서 열 명 중 여덟 명, 열 명 중 아홉 명. 나중에는 천천히 모두가 치유되었습니다. 왜냐고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처음에 한 사람이 치유되었고, 나머지 아홉 명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고 이해의 측면에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나중에 저는 열쇠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치유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치유되지 않은 사람들은 제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저는 비밀을 발견했습니다. 모두 기억하세요. 이 영적인 봉우리를 계속 올라가세요! 올라가세요!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만약 열 명 중 다섯 명이 여전히 치유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계속 올라갑니다! 올라가세요! 열 명 중 여덟 명은 치유되었습니다. 다시 올라가세요.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면 한 가지 이유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영적인 높이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충만하게 하신 것처럼, 성령께서 나를 충만하게 하신다면, 나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고, 하나님에 대한 나의 이해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같다면, 모든 사람은 반드시 치유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암도 치유될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치유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들의 이해를 바꾸어 그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고 하나님의 보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해독제를 주고, 당신은 독을 받아 먹습니다. 나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나는 당신의 보응을 하나님 때문에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우리 하나님이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증거할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생을 구하고, 썩지 않는 행복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영생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께 빚지지 마십시오. 절대 "너무 절대적이야"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절대적이지 않다면 옳지 않습니다. "1 더하기 1은 2인데, 어떻게 그렇게 절대적일 수 있니? 3일 수도 있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4일 수도 있고 5일 수도 있습니다. 이 계산기에 따르면 1 더하기 1이 3이라면, 그 계산기는 잘못된 것이므로 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임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음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이 의로우심을 항상 압니다. "하나님이 실수하셨겠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땅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왜요?"라고 묻는 것은 감히 묻지 못합니다. 한 문장만 틀렸을 뿐이고, 틀렸다면 제가 받을 만한 죄입니다. 죄를 고백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죄를 고백한 후, "회개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박해를 받았습니다. 죄를 고백하고 회개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문제가 많아 완전히 회개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저는 완벽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완벽하십니다. 저는 종종 실수를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마귀조차도 실수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서 영광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강력한 증거가 우리가 믿는 믿음을 지킬 수 없게 만듭니다.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 아닙니까? 우리에게는 이렇게 강력한 증거, 이렇게 좋은 증거가 있는데도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우리가 견디지 못하면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당부드립니다. 마음을 높이십시오. 여러분이 받는 은혜는 헛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받고 하나님을 알기 위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큰 은혜를 받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들은 마침내 세상을 사랑할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벌을 받지 않겠습니까? 검소하게 사는 자는 벌을 받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지 않습니까? 이 길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찬 길입니다.
이제 저는 마침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놀라운 일을 행하시어 우리가 그분으로 인해 영광을 받고, 그분께서도 우리로 인해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뜻입니다. 제가 데살로니가후서에서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제가 제대로 전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와 사례를 들려주긴 했지만, 여전히 제가 아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