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스가랴06장-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필기를 참고
1.스가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실 것을 보았습니다.
a.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실 것입니다.
b.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음과 영광을 담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육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c. 그리스도인은 제사장 직분과 왕권을 모두 얻어야 합니다. 이 두 직분은 완벽하게 하나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2. 멀리서도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올 것입니다.
a. 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가장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b. 예수 그리스도 안에, 즉 교회 안에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c.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를 밟을 수 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자들은 자신을 산 제사로 드리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d.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마귀와 원수를 짓밟으며, 육신의 악한 욕망을 처리하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e. 진지한 자세로 하나님의 뜻에 맞는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영광의 면류관은 우리를 위해 예비되어 있습니다
a. 우리가 기꺼이 헌신하면 영광의 면류관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면류관을 예비해 두실 것입니다.
b. 우리 삶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영광스러운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고, 영광의 면류관을 예비해 두는 것입니다.
c. 면류관은 헌신의 마음에서 나오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헌신해야 합니다.
d. 세상에 사는 것에 욕심을 부리지 말고, 자신을 내어 주어야 합니다. 줄 것이 없다면, 자신을 잘 수양해야 합니다.
4. 교회를 세우려면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a.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지혜이며, 하나님의 능력이 거하는 곳으로,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b. 모든 일은 차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의지할 때만 가능합니다. 말은 힘과 재능, 그리고 양손의 검을 상징합니다.
c. 교회가 세상의 논리 체계대로 세워진다면 사탄은 반드시 쳐들어올 것이고, 목회자는 가장 먼저 고난을 당할 것입니다.
d.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훈련받고, 양육받고, 육신을 다루어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e. 사탄은 인간의 의도를 가장 잘 헤아리는 반면,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을 가장 적게 헤아리십니다. 그는 늙은 말보다 나으시며, 하나님께서 위로받으실 것입니다.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스가랴 6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을 읽는 데 조금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천사", "환상", "네 대의 병거"를 보는 것에 대해 읽었을 때, 이 장이 설명하기 어렵다고 느꼈지만,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교회를 짓는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를 짓는다는 관점에서 이 장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장의 주제는 "다윗의 가지라 불리는 자가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할 것이다"입니다.
스가랴는 이 장을 썼지만, 그 자신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는 단지 미래에 아브라함의 후손, 또 다윗의 후손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할 것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성전"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교회를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그 성전은 별로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스가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시려는 것을 보고
고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스가랴 6:12-13)
구약 성경에서 이 구절만 읽는다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나중에 사도들이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이 구절에서 "주의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교회"를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곧 주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가고 싶어 합니다. 저는 예루살렘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순례를 위해 예루살렘에 간다는 것은 그 성전이 현재의 모스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에는 성전에도 통곡의 벽이 있었는데, 그 성전이 주님의 성전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나중에 제가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을 위해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할 때, 예루살렘이라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여러분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자들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교회"라는 팻말이 있다고 해서 교회가 교회일까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 가지 위대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첫 번째 위대한 일은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잘생기고 훌륭한 설교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은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셨습니다. 하데스에 가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죽음을 이기신 첫 번째 분이시므로 존귀를 받으셔야 합니다.
하늘과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보다 더 존귀한 이름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보다 더 영광스러운 이름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귀신을 쫓아내고 영계에 가서 그들과 싸우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없습니다! 귀신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으면 떱니다.
저는 특히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엔지니어로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을 이론으로만 믿으라고 한다면 조금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이론이 아니라 주님을 믿으며, 죽은 후에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살아 있을 때는 하나님의 행적이나 영광을 볼 수 없었는데, 죽은 후에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좀 신비롭습니다! 그러므로 이 논리 체계는 이해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나를 속여요.
나중에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복음이 강력한 복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세상에서 행하신 일은 전례가 없으며 결코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영광을 받으시기에,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많은 목사들이 "삶이 충분히 좋지 않으면 귀신을 쫓아낼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건 완전히 헛소리입니다! 삶이 무슨 뜻인가요? 하지만 저에게 말하지 마세요. 이 귀신은 아주 나쁘다고! 예를 들어, "네 몸에는 아직 상처가 있구나. 너는 충분히 좋지 않아!"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귀신에게 "잊어버려! 내가 충분히 좋다고 해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아니,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다."
그러자 귀신이 말을 이었다. "사실, 너는 네가 섬기는 사람도 미워하는구나." 아, 이 귀신은 정말 강력하구나! 육신으로는 이 사람을 미워하지만, 내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 귀신아, 물러가라! 이 자매는 자유로워야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큰 은혜임을 깨달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얼마나 고귀하고 존귀한지 너는 모를지도 모른다. 나는 우주를 창조하신 주님을 알 기회가 있어서 정말 행운이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부활하셔서 나에게 강력한 길을 열어 주셨다.
한번은 내가 귀신을 쫓아낼 때, 귀신은 나를 속일 방법이 없었다. 내가 속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내가 믿었던 복음은 모든 귀신과 원수를 짓밟는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그 결과 귀신들은 그들이 저를 보고 걱정했어요.
또 한 번은 제가 어떤 사람을 치유하고 구원할 때 악령 무리를 봤어요. 키는 약 1미터 정도였는데, 난쟁이 같았는데 얼굴은 원숭이 같았어요. 두 발로 서서 두 발톱을 늘어뜨리고 있었죠.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눈빛에 사나운 기색만 빼면 꽤 귀엽죠! 그래서 그들은 "아, 빨리 가자. 이 사람을 만나다니 정말 운이 없네!"라고 말했어요. 알고 보니 제 이름을 알고 있었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너무나 강력하거든요!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싶어 하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런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면,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제사장직과 왕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모두 왕자이기 때문에 왕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왕권과 제사장직은 그리스도인 안에서 완벽하게 하나가 되어 "두 직분 사이에 평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전에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면, 여러분은 왕이 되었을 것이고, 만약 제사장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면 제사장이 되었을 텐데,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두 가지 직분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 정말 놀랍습니다!
조금 후회가 됩니다. 왜 우리는 점점 귀신을 덜 쫓게 되었을까요? 지금까지는 모두가 수련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 같죠? 기회가 더 많아진다면, 천천히 느껴보실 수 있을 겁니다.
다윗의 후손들이 주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영광을 얻고, 보좌에 앉아 왕권을 행사하며, 보좌에서 제사장으로 섬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는데, 이는 우리 안에 있는 귀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육신의 문제도 해결해 줍니다. 그러므로 사가랴는 다윗의 후손, 곧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교회를 건축하실 것을 보았습니다.
먼 곳에서도 사람들이 와서 주님의 성전을 건축할 것입니다.
먼데 사람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만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할진대 이같이 되리라.(사가랴6:15)
이 구절은 우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우리는 모두 멀리, 온 땅에 흩어져 있지만,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해 왔습니다.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성전을 짓습니까? 오직 주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해 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세상에 보내신 분이 만군의 여호와이심을 알고,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있음을 알고, 이 성전을 짓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임을 압니다! 귀신들이 여러분을 두려워할지라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제가 말씀드리건대, 하나님의 교회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매우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즉 교회 안에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주 예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이지, 예수님께서 더 작아지셔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 안에 하나님의 성전을 짓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이 되도록 보내셨고, 그분께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실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이 귀신을 쫓아내니, 귀신들이 여러분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귀신보다 더 강하다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사람이 되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음부의 권세를 이기시고, 죽음에서 부활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를 이깁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비극이 아닙니까? 어쨌든 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비극입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는 자신을 산 제사로 드려야 하며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멀리 있는 우리가 이제 그 일을 해낼 것이며,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제가 처음 교회를 건축했을 때는 상황이 매우 황폐했지만,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를 건축하려는 우리의 의지가 있다면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싱가포르에는 1㎢마다 교회가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땅은 금처럼 귀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 결과 많은 교회들이 산업 건물로 이전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산업 건물 안에 교회와 사원이 들어섰습니다. 어쨌든 인구 밀도가 매우 높습니다.
처음 교회를 건축하기 시작했을 때, 이 광경을 보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다른 교회의 조명, 무대, 그리고 북 연주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연주하는 북소리는 인터넷 스타들의 북소리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 찬송가, 음향 시스템, 마이크도 훌륭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뜻이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대와 같은 것들을 비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빛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교회에 기꺼이 거하실지 여부입니다. 정말 기분 좋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교회를 세워야 할까요? 주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마귀의 원수를 이기고, 사람들의 육신의 욕망을 처리하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과 제사장과 왕의 직무, 그리고 하나님 자녀들의 부흥을 이곳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정말 좋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극도로 황폐한 환경에서 교회를 세울 수 있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왜 교회를 세웠을까요? 당시 다른 사람들이 세운 교회들을 얕봤기 때문입니다! 조금 정신이 나갔지만,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 많은 교회들이 베드로가 세운 교회와 같습니다.
우리가 세운 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와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얼마나 멋진지요! 비록 우리가 10만 8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지만, 3만 마일, 2만 마일, 1만 마일, 3,500킬로미터,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함께 건설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구약 성경의 이 장을 살펴보듯이 수요일과 금요일에 성경을 살펴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형제자매들도 이와 같은 진지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교회를 세우십시오!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것이 바로 중국의 운명론입니다.
영광의 면류관이 우리를 위해 예비되어 있습니다.
"스바냐의 아들 요시야의 집으로 바벨론에서 온 헬다이와 도비야와 여다야의 은금을 가져가라. 그날 그의 집에 들어가서 은과 금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면류관을 만들어 대제사장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그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다윗의 가지라 이름하는 사람이 그의 자리에서 자라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사로잡힌 자 중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들었나니 너는 이날에 그 집에 들어가서 그들에게서 취하되.은과 금을 취하여 면륙관으르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고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바라 순이라 이름하틑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과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그 면류관은 헬렘과 도비야와 여다야 스바냐의 아들 헨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안에 두라 하시니라.(스가랴 6:10-14)
이 구절을 읽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영광의 면류관은 대제사장의 머리에 쓰이지만, 주님의 성전에 기념물로 두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헬대, 도비야, 여다야, 그리고 스바냐의 아들 시안, 즉 요시야의 것입니다.
왜 그들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주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영광의 면류관을 우리를 위해 간직하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영광의 면류관은 주님의 성전에 기념물로 두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헬대, 도비야, 여다야, 요시야가 바빌론에서 돌아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짓는 데 바칠 많은 금과 은 보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스가랴에게 요시야의 집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네 사람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스가랴가 문을 밀고 들어가 그들을 보았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어떻게 지을지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스가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너희는 예물을 가져오너라. 내가 면류관을 만들겠다." 그것은 진주, 마노, 보석 등으로 장식된 면류관으로, 매우 귀한 물건입니다.
스가랴가 이 면류관을 만들어 헬대, 도비야, 여다야, 요시야에게 주었지만, 하나님의 성전에 기념물로 두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해석할 때, 이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제 머리에 쓰고 싶어 합니다. 여러분은 "왜 그렇게 자기만족에 빠져 있니?"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고대인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해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데 기꺼이 헌신한다면, 영광의 면류관은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대의 헬대, 도비야, 여다야, 요시야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영광의 면류관을 예비해 두실 것입니다.
저는 마음속에 깊은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조금 더 고통받는 것은 상관없지만, 하나님께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충성되고 착한 종아, 들어오너라. 내가 이 영광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라고 말씀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것이 제 평생의 소망입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잠을 자고, 깨어나 하루 세 끼를 먹고, 하루 세 번 잠을 잡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저는 가능한 한 빨리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뭐, 일찍 죽고 싶다고요?"라고 묻습니다. 사실 저는 일찍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영광의 면류관을 일찍 받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한 말은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오늘 죽기를 원하신다면, 저는 결코 내일까지 기다리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제가 사는 매일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성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요? 그것은 사람들을 거룩하게 훈련하는 것, 모든 사람을 헤드, 도비야, 여다야, 요시야처럼 훈련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의 성전을 짓는 것이고, 우리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의 교회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짓는 사람이라면, 이런저런 일로 여전히 불편함을 느끼겠습니까? 사람들이 하루 종일 이런 헛소리에 시달린다는 건 얼마나 역겨운 일입니까! 영광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지금 매우 힘들어요. 형제자매들이 세상에서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갖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다투지 않고는 함께 있을 수 없고, 어머니와 딸은 다투지 않고는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가시덤불로 말을 하고, 어쨌든 싸우죠! 다투고! 소란을 피우고! 이 모든 게 헛소리입니다. 얼마나 비극적입니까? 왜 사람들은 삶에서 역겨운 방귀를 뀌며 살아가나요?
모두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당신이 왜 살아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은퇴하면 행복한 노인이 되고, 그 후에는 장난치다가 곧 "트림"을 합니다!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제가 목회할 때 한 자매님이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장이 저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외국인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는 투지가 넘치고 하루 종일 일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뇌졸중을 앓게 되었다고 합니다. 왜 하루 종일 그렇게 했을 까요? 세상의 이런 것들이 정말 흥미로운 걸까요? 하지만 그것이 그의 운명이고 숙명입니다.
저와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사명대로 살 수 있을까요? 축복받지 못하는 것은 삶의 목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의 삶의 목적이 이런 것들이라면, 악취를 풍기며 살 수 없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루 종일 사는 것은 이런 것들을 위한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 앞에서 감히 한 가지라도 구할 수 있습니까? 이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구할 수 있습니까? 이 영광스러운 지위를 구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네 사람이 가장 귀한 것을 바쳤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면류관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무슨 논리일까요?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영광스러운 직분을 맡고, 촛불처럼 자신을 내어드리고, 하나님을 위해 불타오르며, 빛나고, 뜨겁게 달구어지고,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볼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큰 상을 주시고 영원토록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예비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면류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우리의 헌신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싶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에게 인생의 목적을 깨닫기를 권합니다. 인생은 정말 재미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늙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 걱정합니다. 왜 자신을 돌봐야 할까요? 저는 "늙은 말"을 돌보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늙지 않는데 왜 자신을 돌봐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늙지 않기 위해 아이를 키우는 것"을 바랍니다. 이것은 매우 이기적인 일이 아닙니까? 그들은 그저 휠체어에 앉아 다른 사람들이 밀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돌보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탐욕스럽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살며 자신을 내어드립니다! 드릴 것이 없다면, 먼저 자신을 가꾸십시오.
나는 늙어서도 나 자신을 돌보고 싶지 않습니다. 영광을 돌보고 싶습니다. 늙어서도 나 자신을 돌보고 싶지 않습니다. 나의 젊음을 돌보고 싶습니다. 늙어도 나 자신을 돌보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늙으면 뭘 할 거냐?"라고 묻습니다. 나는 늙어도 모세처럼 강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도록 준비시키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하루를 살며, 하루 동안 빛나고 온기를 발하며 하나님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섬깁니다. 그래서 나는 영광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왜 늙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휠체어나 온갖 재난, 질병을 예비해 주시지 않고 영광의 면류관을 예비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늙었다고 느끼지 않고 매일매일 설렘 속에 살아갑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저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저보다 육체노동을 더 잘할 수는 없습니다! 늙기 전에 교회를 세운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또한 그때 직장을 잃고 영광스러운 자리를 얻은 것도 행운이었습니다. 주님의 얼굴을 뵐 때까지 지금까지 계속 일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마음속에 아주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헌신하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재능을 바쳐야 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사람들을 훈련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목회적 돌봄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일하도록 훈련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무지는 정말 비극입니다! 사람들은 무지하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갑니다. 열 살까지 모르고, 스무 살까지 모르고, 결혼도 모르고, 아이도 모르고, 이혼도 모르고, 이혼도 모르고, 이혼도 모르고. 어쨌든 이런 일들이 저를 속상하게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무지 속에 살지 마십시오. 지금 결정하십시오. 나는 사명대로 살고 싶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운명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이것을 위해 태어났고, 이것을 위해 살고, 땅의 모든 민족에게 복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열어준 길입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사람들의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매우 무지합니다. 교회는 매우 신성한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지혜이며,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곳입니다. 교회의 가장 큰 사역은 사람들의 육신의 모든 문제를 표면화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와 딸이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화가 주제에서 벗어나면 둘은 다투게 되고, 그러면 어머니는 불편해지고 딸도 불편해집니다! 왜 그럴까요? 육신에 속한 두 사람은 함께 있을 수 없듯이, 교회에도 육신에 속한 사람들이 있다면 교회는 분명 좋지 않을 것입니다. 설교자라면 자신이 세운 교회에 주의를 기울여 육신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살펴보십시오. 교회를 세우는 순간, 라오 마가 온다! 그러면 교회는 연기와 독기로 가득 찰 것입니다.
저는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거의 죽을 뻔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코로나19로 죽든 어떻게 죽든 상관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 당시 저는 집에 누워 매일 제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그때 저와 같은 시기에 코로나19에 걸린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며칠 만에 돌아가셨지만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전에도 "용호랑이 싸움" 교회를 세운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 "용호랑이 싸움"이 많았기 때문에 자신이 세운 교회에 만족하지 못하셨습니다. 단순한 용호랑이 싸움이 아니라 육탄전이었습니다.
제가 교회를 세울 때 제 마음가짐은 이랬습니다. 나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자는 함께 가고, 그렇지 않은 자는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가라! 그래서 우리 교회는 지금 육신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육신을 다루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를 세움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으니, 교회를 세울 때는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다시 눈을 들어 보니 두 산 사이에서 네 병거가 나오는데, 그 산들은 놋산이었습니다. 첫 번째 병거에는 붉은 말이, 두 번째 병거에는 검은 말이, 세 번째 병거에는 흰 말이, 네 번째 병거에는 점박이 말이 끄는 병거가 있었습니다.
건장한 말은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고자 하니 그가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 하매 곧 땅에 두루 다니더라.(스가랴 6:1-7)
이 글을 읽고 조금 혼란스러우신가요? 여러분뿐만 아니라 저도 혼란스럽습니다. 저는 말에 대해 매우 깊이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말을 타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은 매우 영적인 존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날 때, 하나님은 그들이 이집트로 돌아올 때 말을 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나귀나 노새를 사는 것을 막지는 않으셨지만, 말을 사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후에 성경 여러 곳에서 말이 언급되었는데, 그중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차로가 아니고, 말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입니다.
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자동차는 "BMW"라고 불리고, 좋은 차는 "마세라티"라고 불리며, "메르세데스"는 "마세라티"라고 불립니다. 말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말은 힘, 재능, 육체, 그리고 양손 검을 상징합니다.
이 구절에는 "어디든 돌아다니라"라는 흥미로운 구절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다"를 검색해 보면, 이 단어는 하나님에게서 나와 돌아다니는 사탄, 늙은 말, 마귀 사탄을 묘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할머니 할멈이 돌아다니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성전을 짓고 나면 할멈이 찾아올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늙은 마를 이길 수 없다면, 당신은 늙은 마의 교회를 세운 셈이고, 그러면 사람들은 타락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의 논리 체계에 따라 교회를 세운다면 그것은 늙은 마의 교회이고, 사탄이며, 그 교회의 목사들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막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을 때, 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교회를 세우겠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재난을 겪고, 어떤 목사님들은 우울증, 암, 투옥 등으로 고통받으며, 너무나 많은 혼란을 겪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보 같은 짓 하지 마! 교회를 세우는 것은 불장난과 같아. 농담이 아니야. 불장난을 하거나 하나님 앞에서 몸짓을 할 수는 없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 후 저는 노마와 "싸움"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저는 마침내 노마를 이겼습니다. 이것이 교회를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입니다. 교회를 연기와 독기로 가득 채우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목사가 가장 먼저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많은 과학적 연구와 하나님 말씀을 연구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에 대한 많은 훈련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전 과정을 통해 훈련받고, 양육받고, 육신의 악한 욕망을 다스려야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70대, 60대 노인들이 있습니다. 다른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만 걱정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있는지, 하나님 말씀 안에 살고 있는지, 하나님 말씀 안에 살면 삶의 모든 걱정이 해결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우주의 모든 것은 그분께 속합니다. 그분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그분이 우리의 생존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신다면,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의 운명 안에서 살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영광스러운 지위를 얻고, 이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쓰고, 늙은 말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내가 말하노니,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면 노마가 반드시 너희에게 올 것이다. 노마를 이기지 못하면 노마가 너희 교회에 문제를 일으켜 교회가 "용과 호랑이의 싸움"이 될 것이다. 나와 같은 시기에 코로나19에 걸린 목사는 결국 회복되었지만, 그는 죽었다. 그는 노마에게 잡혀 갑자기 죽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풀과 나무와 짚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께 헌신해야 한다. 교회를 세우면 이 땅에 돌아다니는 마귀 사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마귀는 그 사람이 매우 육적인 것을 알게 되면 "이 사람아, 내게로 오너라!"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에게 끌려갈 것이다. 만약 그가 다른 육적인 사람을 만나면, 그는 다시 그에게 끌려갈 것입니다.
나중에 라오 마가 제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교회를 짓는 것을 돕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라오 마에게 속한 자는 라오 마에게로 돌아가고,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라!" 사탄에게 속한 자는 사탄에게로 돌아가고, 카이사르에게 속한 자는 카이사르에게로 돌아가고,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라. 이 논리는 매우 간단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면 거룩해지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우리의 운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지혜입니다. 성령을 의지하여 육신의 악한 욕망을 죽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다툼은 육신에 속했음을 나타내고, "용호(龍虎) 싸움"은 육신에 속했음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었습니다. 그것은 당신과 제가 당신의 육신을 다루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었습니다.
라오 마가 여기 다니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악령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당신의 생각과 생각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십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그러니 당신은 너무 라오 마라서 아픈 것입니다. 하루 종일 그 더러운 것들 속에서 살면서 어떻게 악취가 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사람들이 문제 없이 모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문제의 근원은 육신입니다. 육신의 악한 욕망을 다룬다면 교회에 어떻게 문제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육신의 악한 욕망을 다룬다면 라오 마는 당신에게 제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한번은 라오 마에게 "무슨 일로 바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최근에 소달구지를 타고 다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왜 소달구지를 타고 다니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당신에게 돈을 가져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라오 마가 그렇게 순종적이고 자주 돈을 보낸 것은 드문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계속해서 "왜 돈을 보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아, 우리는 전투에서 졌습니다. 수천 년 동안 전투에서 진 적이 없는데, 당신들에게 패배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에게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목회적 의무는 육신을 다루는 것이라고 권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라오 마를 이긴다면 하나님께서 위로받으실 것입니다!
그가 외쳐 내게 일러 가로되 북방으로 나간 자들이 북방에서 내 마음을 시원케 하였느니라 하더라.(스가랴 6:8)
"북쪽으로 가라"는 말은 사탄이 당신에게 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이 직접 사탄에게 가는 것입니다. 사탄은 인간의 의도를 가장 잘 헤아립니다. 사탄에게 간다면 인간의 의도를 처리해야 하며, 그렇게 할 때 승리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데스로 내려가셨을 때, 사탄에게 달려가셨습니다. 북쪽 끝은 사탄의 보좌입니다. 결과적으로, 예수께서 사탄을 처리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에 관심이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죽으시고 장사되셨고, 마침내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라오 마는 누구입니까? 그는 사탄 휘하의 매우 중요한 장군입니다. 그를 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말들의 무리입니다. 저는 사탄이 "비마 웬"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북쪽으로 가면 사탄과 육신을 물리칠 수 있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위로받으실 것입니다.
스가랴서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우리 주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신 주 예수님이시며, 우리는 주 예수님의 교회를 세우는 제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낡은 말을 이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연기와 독기로 가득 찰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를 세우면서 낡은 말을 다루는 것을 음식으로 먹을 수 있겠습니까?" 어리석은 아이야! 먹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가난하다면 낡은 말을 생각하는 것이고, 질병이 많다면 낡은 말을 생각하는 것이고, 어리석어 보인다면 육적인 논리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똑똑해지고 싶은 사람은 먼저 낡은 말을 이겨야 합니다! 부유해지고 싶은 사람도 먼저 낡은 말을 이겨야 합니다! 복음에는 가난도 없고, 질병도 없습니다. 가난과 질병은 모두 낡은 말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