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데살로니가전서 04장-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필기를 참고

1.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더욱 격려하라고 권면했습니다.

a. 주님을 믿은 후에는 귀신이 쉽게 유혹합니다. 하나님은 보호하실 수 있지만, 사람을 대신하여 결정하실 수는 없습니다.
b. 주님을 믿은 후, 마귀가 먼저 퍼뜨리는 거짓말은 당신이 주님을 믿어 구원받았다는 것이며, 당신은 엎드려도 된다는 것입니다.
c.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구원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우리는 아직 멀었습니다.
d. 주님을 믿은 후에는 구원받았다고 확신하지 말고, 구원을 얻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2. 거룩하게 되고 음행을 멀리하십시오.

a. 그리스도인은 행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를 훨씬 초월합니다. 사람들은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b. 주님을 믿을 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의 허물을 덮습니다. 우리는 배움을 통해 더러움을 제거하고 거룩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c. 사도 바울의 복음은 육신을 죽이는 복음입니다. 모든 인간 문제의 뿌리는 육신에 대한 생각입니다. 타고난 것 중에 쓰레기가 아닌 것은 거의 없습니다!
d.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끊임없이 배우고, 우리의 이해력으로 하나님을 알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e.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것은 "나는 그를 용서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잘못했다. 나는 충분하지 않다. 나는 그것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f.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거룩해지고 음행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조언하지 말고, 오직 자신에게만 조언하십시오. 이것이 거룩함에 이르는 길입니다.

3. 형제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a.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를 넘어 형제를 괴롭히지 말아야 합니다.
b. 교회는 본래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며, 교회는 이러한 악행을 처리하고 거룩해야 합니다!
c. 교회 안에서 험담하고, 헛소리하고, 물건을 팔고, 사업을 하고, 사람들을 속이고, 괴롭히는 자들은 주님의 벌을 받을 것입니다!
d. 우리 교회는 정치적 입장이나 사업에 대한 분쟁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거룩한 곳입니다.

4. 서로 사랑하십시오

a. 잘못된 복음을 믿고 잘못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b. 교회는 교회의 요구 조건을 낮출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말해야 합니다.
c. 가장 큰 계명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d. 형제를 괴롭히면 하나님께서 결코 자비를 베푸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e.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서로 사랑할 때, 여러분이 받는 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5. 네 손으로 일하라

a. 사도 바울의 신학적 체계는 제 손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그는 제 손으로 자신과 동료들을 부양했습니다.
b. 종교적 색채가 가득한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기도와 설교로 생계를 유지합니다. 결국 교회를 망치는 것입니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c. 제 손으로 일하여 일을 처리하고, 신앙을 실천하며, 문제를 진지하게 해결하십시오.
d. 비전신학의 사명론은 사람들이 제 손으로 일하도록 양성하는 것입니다.

6. 영원한 소망으로 서로를 위로하십시오.

a. 주님을 믿는 가장 큰 보상은 소망입니다. 영원한 소망이 있으면 우리는 서로를 위로할 수 있습니다.
b. 인간의 영혼이 육신을 떠날 때, 그 영혼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지고 세상의 수고를 멈추게 하며 편안하고 안락하게 됩니다. 언젠가 예수님께서 오실 때, 산 자와 부활한 자가 함께 공중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c. 영원한 소망이 있으면 우리는 세상에서 헛된 길을 걷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d.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마십시오. 영원한 소망이 있으면 어떤 압박감도 없고 삶이 매우 단순해질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데살로니가전서 4장을 읽어 봅시다. 앞 장들에서 좋은 말씀들을 드렸고, 이제 본격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데살로니가전서4:1)

4장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주를 기쁘시게 하는 길로 행할 줄 알아야 한다." 사실, 그들은 주님을 믿는 지 두 주밖에 되지 않았고, 모두 매우 흥분했습니다. 바울이 떠난 후, 그들은 멍한 상태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은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그 결과 많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에서 돌아와 그들이 질문한 내용을 바울에게 가져왔습니다.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데살로니가인들이 던진 질문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인들은 어떤 질문들을 던졌을까요? 예를 들어, "우리는 모두 주님을 믿었고 구원받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런 질문이 어울리지 않을까요? 아주, 아주 비슷합니다. 마치 큰 성공을 거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교회 안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바울의 신학 체계는 "저는 구원받았고 죽은 후에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바울은 항상 "그것을 위해 노력하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처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아십니까? 어떻게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지금 가고 있는 방향으로 더욱 용기를 내야 합니다. 아직 멀었으니까요.

이렇게 말하면 그들이 찔릴까 봐 걱정입니다. 먼저 기초를 다지고 나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여러분은 아직 멀었습니다. 제 번역이 맞습니다. 주님을 처음 믿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은 분명히 하나님과 같은 사람이 되기에는 너무 멀지 않습니까?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더욱 격려했습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믿는 것은 번거로운 일입니다. 왜 번거로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지 않으십니까? 주님을 믿는 순간 마귀가 찾아옵니다. 과거에도 마귀가 있었습니까? 과거에도 마귀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마귀는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타락해야 할 자들은 모두 타락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믿으면 마귀가 더 활발하게 찾아옵니다. 왜 그럴까요? 이 세상에는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의 세계에서 마귀는 그리스도인을 타락시킬 수 있다면, 매우 후한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돌아옵니다. 그래서 마귀는 여러분이 주님을 믿는 것을 보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러분을 타락시키려고 찾아옵니다.

주님을 믿으면 마귀를 끌어들이기가 매우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믿은 후 어리석고 미련하게 되고, 주님을 믿은 후 쉽게 타락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보호해 주실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보호해 주실 수 있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대신하여 결정을 내리실 수 없습니다.

귀신들이 풀어놓는 첫 번째 거짓말은 당신이 이미 주님을 믿었고, 이미 구원받았으니, 그냥 누워만 있어도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누워 있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미 구원의 확신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전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보았는데, 그들을 아무리 봐도 구원받은 것 같은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을 멈출 수 없습니다. 추구하는 것을 멈추면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당신은 말합니다.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렇다면 마귀의 손에 빠지는 것이 힘든 일입니까? 한 가지 묻겠습니다. 뒤에서 호랑이가 쫓아온다면, 당신은 매우 빨리 달릴 것입니다. 여러분이 충분히 빨리 달리지 않으면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제가 여러분의 열정을 깎아내렸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무것도 아닙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을 믿고 눕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합니다. 힘들지 않습니까? 네. 하지만 마귀의 손에 넘어가는 것보다는 쉽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으면서 잘못된 복음을 믿는 것은 비극입니다.

거룩하게 되고 음행을 멀리하십시오

오직 우리가 너희 구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느미.(데살로니가전서 4:2-7)

육신이 무익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행위에 근거하지 않지만, 행위를 초월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기에, 믿음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께 중국의 운명론이 사후 천국에 가는 신학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는 신학이라는 것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품위 있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고, 절대 공자처럼 살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믿는 순간부터 우리는 거룩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실 뿐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형상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 긴 여정이 막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고 싶으신가요? 물론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고 품위 있는 삶을 사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스스로 생각해 봅시다. 우리 머릿속에는 여전히 쓰레기가 많고, 여전히 많은 쓰레기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구원받았고 육신은 쓸모없다고 생각하여 간음을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도덕적 기준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니 형제자매들이 이 문제를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아직 하나님의 형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타고난 것, 자연스러운 것, 그리고 우리가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다 쓰레기입니다.

한 번은 뼈가 부러졌고, 또 한 번은 병에 걸렸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제 머릿속의 쓰레기가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언제 머리로 여겨지겠습니까? 주님을 보는 것이 머리이시니, 이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배우고 온전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죄를 덜 지을 수 있고,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지혜가 없는데, 어떻게 잘 살 수 있겠습니까?

삶의 지혜가 없는 사람은 잘 살 수 없습니다. 마귀가 거짓말을 퍼뜨리면, 그들은 그 거짓말을 따르고 수많은 변명을 늘어놓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신학은 육신의 악행을 죽이는 신학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은 육신의 악행을 죽이는 복음입니다. 사람의 삶에서 모든 문제의 근원은 육신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육신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자연스럽고 본능적이므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배워야 합니다. 지식과 이해로 하나님을 알 때마다, 우리는 영 안에서 어느 정도 정화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한 목사님이 감옥에 있는 목사님에 대해 논평하는 영상을 봤습니다. 최근 인터뷰를 했는데, 그의 논평은 매우 흥미롭고 날카로웠습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회개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심지어 "아, 저는 그들을 용서했습니다."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사실, 당신은 누구를 용서합니까? 마치 누군가가 당신에게 상처를 준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그를 용서하고, 그와 논쟁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와 선악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매우 선하고 스스로를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정화해야 합니다. 어떻게 정화해야 하는지, 이 일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저는 그를 용서합니다"와 같은 말을 하지 마세요. 마치 당신이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인 것처럼,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마세요.

그럼 당신은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처음에는 제가 여기서도 부족하고, 저기서도 부족하고, 여기서도 바뀌어야 하고, 저기서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아직 바꿀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은 분명히 보지만, 자신의 허물은 분명히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거룩하고 음행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바꿔야 할 것이 많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다른 사람에게 조언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불만이 있을 때 그들을 보지 마십시오. 오직 자신의 문제만 보고 스스로에게 조언하십시오.

저는 스스로에게 조언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거룩해지는 길입니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제게 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당신에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허물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스스로는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를 용서하고 용서합니다. 이상하게 들리십니까? 저는 그와는 선악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데살로니가인들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서 계속해서 그것을 구하고 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인들이 주님을 믿고 함께 예배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독선적입니다.

형제를 속이지 마십시오.

이 일에 부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4:6)

이 말씀의 의미를 이제 아시겠습니까? 직장에서는 사장이지만 교회에 오면 여전히 횡포한 분위기를 풍기며 "이것은 여기로, 저것은 저기로 옮겨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횡포한 분위기가 매우 강합니다. 주님을 믿는 일반 사람들도 있고, 직원들도 주님을 믿는데 사장이 형제의 월급을 깎습니다. 그러면 그 형제가 교회에 가서 "보세요, 제 월급을 깎았어요"라고 불평합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교회에서는 세 점을 주지만, 교우들에게 돌아가면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도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교회 목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바울에게 가져갔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울아, 우리는 이런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세상에서 네 지위를 넘어서 형제들을 괴롭히지 마라. 또 교회 안에는 재산을 나누지 않아 다투는 두 형제가 있다."

주님을 믿으면서 자신이 거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주님을 믿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제가 처음 주님을 믿었을 때, 교회 안에서 이런 이상한 현상들을 보고 특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구원받은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원받는다는 것을 전혀 믿지 않았지만, 구원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교회에는 목사들이 그에게 말할 때 격렬하게 반응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당신의 저주를 끊겠습니다. 끊고 싶습니다! 당신의 말이 저에게 가져다주는 저주를 끊고 싶습니다. 그런 말을 듣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끊는 자들은 사람을 끊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끊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본래 나쁜 일들이 있습니다. 과장된 말을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이런 나쁜 일들을 보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싶지만, 그러지 않겠다. 교회는 거룩해야 하고, 이런 악행들을 처리해야 한다.' 다행히 과장된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많은 문제들을 처리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는 험담하고, 헛소리하고, 물건을 팔고, 사업을 하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속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반드시 벌하실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교회에 오는 게 얼마나 좋은지, 사람이 많은데, 이런 곳에서 MLM을 하는 게 얼마나 좋은지, 그렇지 않나요? 사업하는 게 얼마나 좋은지, 제가 말씀드리는데, 주님께서 반드시 벌하실 겁니다.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교회 안에서 정치적 입장 차이로 인한 분쟁을 용납하지 않고, 교회 안에서 이것저것 사고파는 것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거룩한 곳이지만, 거룩함을 추구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 이 일을 해왔고, 수많은 문제들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몇 년 전, 저는 코로나19에 걸렸습니다. 코로나19에 걸렸을 때에도 휴대폰을 쓸 수 있었습니다. 어떤 단체에서 어떤 목사님도 코로나19에 걸렸다가 결국 나았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다행입니다. 그런데 며칠 후, 그 목사님은 코로나19 이후의 심경을 담은 긴 글을 올리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교회를 세울 때 교회가 치열한 경쟁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교회가 싸움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교회는 그 목사님이 지은 게 아닌가요? 왜 그는 자신이 세운 것에 만족하지 못했을까요? 그러고 나서 그는 여러 말을 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난 후, 저는 그의 글에서 수많은 문제점들을 읽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대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도 아닙니다. 이틀 후, 그 메시지가 다시 전달되었고, 그는 죽었습니다. 갑자기 죽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코로나19 시대에는 사람들이 종종 갑자기 죽었습니다. 저는 사실 마음이 너무 슬펐습니다! 잘못된 복음을 믿고 잘못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모두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권하노니 더 많이하고.(데살로니가전서 4:9-10).

바울이 쓴 본문은 여러분이 충분히 잘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교회는 하나님의 요구 사항을 높여야지, 낮출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요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이것저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고, 우리도 그렇게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저는 제가 포기한 모든 것이 결국 얻은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헛된 말처럼 들리지만, 실천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요구는 매우 간단합니다. 누군가 저에게 구약의 율법은 어떤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 다른 사람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 주님께서 반드시 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지고 장난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장난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을 다루시고, 반드시 가르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르치실 때 결코 너그럽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은 축복하실 것이고, 결코 너그럽지 않으십니다.

또 다른 자매님은 축복받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그녀의 뼈를 파헤쳤을 때, 저는 감히 많은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가능한 한 빨리 축복의 길을 걸으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당신은 온 마음을 다해 주 하나님을 사랑할 마음이 있습니까? 있는 것 같지만, 다른 사람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두 가지이지만,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하나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과 그녀의 말투는, 마음속으로나 겉으로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빚진 것 같다는 생각과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풍깁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과거에 당신이 그렇게 함으로써 손해를 보았다고 한다면, 다시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서로 사랑함으로써 받는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 그리고 우리가 받는 축복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행할 수 있다면, 비록 우리가 이해력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더라도, 우리 안에 있는 육신의 악행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합니다. 복을 받지 않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빚진 날들을 끝내기 시작하십시오.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반드시 당신을 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사람들은 종종 어리석은 실수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사람들이 똑똑하다면, 제가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고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가지고 장난을 칩니다. 얼마나 큰 손해를 보게 될까요? 더 이상 하나님과 장난을 치지 마십시오. 가장 큰 계명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네 손으로 일하라

또 너희에게 명한것 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데살로니가전서 4:11-12)

사도 바울의 신학은 결코 그냥 가만히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신학 체계는 자기 손으로 일하는 것이며, 사도 바울 자신도 자기 손으로 일합니다. 교회에서 가장 흔한 것은 입이 즐거운 2센트짜리 찻주전자입니다. 그는 하늘을 나는 것, 땅을 달리는 것,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전문가입니다.

하지만 일단 그에게 맡기면 끝입니다. 이것 봐, 저것 봐, 이것 좀 해 봐, 저것 좀 해 봐. 그러면 사람들이 그에게 어떻게 하냐고 묻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왜 손으로 일하지 않으세요? 그는 말만 할 줄 알고, 교회에서 말하는 사람들은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교회 안에서도 손으로 일하지 않고, 교회 밖에서도 손으로 일하지 않는다면, 그가 가난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가 완전히 가난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 저는 너무 가난해서 영적인 은혜만 남았습니다. 그런 말을 듣는 것은 매우 악한 일입니다. 가난한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믿은 후에는 말만 할 수 있고 손으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조용한 사람이 되고, 자기 일을 하고, 손으로 일하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에 여러분에게 명령한 대로, 밖에 있는 사람들을 바르게 대하고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도록 하십시오. 지금까지 저는 실제로 그런 상황을 많이 봐왔습니다.

한번은 어떤 곳에 갔는데, 친구가 지역 교회 목사님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먼 길을 운전해서 목사님을 뵈러 갔습니다. 이야기를 나눈 후, 거기서 열다섯 살, 열여섯 살, 혹은 일곱 살쯤 된 아이들이 나왔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이곳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회에 나가면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저는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훈련시켰습니다. 그리고 가난하면서도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결코 그런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많은 교회와 목사들이 그들의 신학 체계가 바울의 신학 체계와 다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타락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중 한 명의 목사는 그에게 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그를 지지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일하지 말고 와서 하나님을 섬기세요. 일하면서 어떻게 섬길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얼마나 놀라운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자기 손으로 일했습니다. 어디를 가든 적절한 직업을 찾고, 직장을 다니며, 자신과 동료들을 부양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여러분이 외부인들에게 예의 바르게 처신하고, 등에 날개 두 개만 달고 천사처럼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종교인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교회는 형제자매들을 자기 손으로 일하는 사람으로 훈련해야 합니다.
목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으로 끝입니다. 별명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데데"라고 불리면, 당신은 반드시 데데가 될 것입니다. 왜 데데라고 불리냐고요? 베드로입니다. 그는 기도와 설교로 생계를 유지했고, 결국 교회를 망쳤습니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혼자 떠도는 것은 구걸하는 것과 같아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자기 손으로 일하십시오. 그리고 자기 손으로 일하는 과정에서 당신은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일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믿음을 실천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따르는 것입니다. 사이비 종교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기 위해 자신의 손으로 일하는 것은 편향될 수 없으며, 진지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하려 함이라.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ㅇ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주께서 호령과 천사자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게 있으리라.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데살로니가전서 4:13-18)

주님을 믿는 가장 큰 보상은 소망, 곧 영원에 대한 소망이며, 서로를 위로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인들은 바울에게 물었습니다. “바울아, 우리 교회의 형제가 죽었는데, 우리 모두는 몹시 슬퍼하며 가슴이 무너져 울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죽었습니까? 왜 우리의 기도는 효과가 없습니까?”

기도는 효과가 있지만, 죽음의 때가 오면 결코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죽음의 때가 이미 왔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인간의 영이 육신을 떠나는 것이 훨씬 더 좋다는 새로운 개념을 정립해야 합니다. 영이 육신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는 육신으로 돌아왔을 때 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는 영이 육신을 떠난 후 매우 편안하고 안정된 기분을 느꼈다고 묘사했습니다.

그럼 묻겠습니다. 우리의 영이 육신을 떠나는 것이 좋은 일입니까, 나쁜 일입니까? 살아 있는 우리에게는 그가 죽었으니 나쁜 일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좋은 일입니다. 세상의 고달픔에서 벗어나 평안을 누리고 자유로워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육신에 거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해진 기간 동안 살도록 예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소망을 품지 말고 이 세상에서 영원을 소망하십시오. 육신을 떠나 주님과 함께하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이 더 좋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 이상 죄를 지을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더 이상 죄를 지을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더 이상 고통받을 필요가 없고, 육신의 고통도 겪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소망이 있기에 죽은 자들의 몸은 장차 반드시 부활할 것입니다. 재로 변한 당신이 어떻게 부활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 몸의 원자는 여전히 존재하며, 당신의 영혼은 여전히 땅에서 부활할 수 있습니다.

죽음에서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핵심 요소이며, 사도 바울의 복음의 핵심 요소이기도 합니다. 즉, 장래 어느 날 우리 주님께서 오시면 죽은 자들이 죽음에서 부활할 것입니다. 즉, 우리의 몸이 구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우리와 부활한 자들이 함께 공중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영원에 대한 소망을 품는다면 이 세상에서 헛된 길을 걷지 않을 것입니다. 기원전 330년경, 마케도니아 사람 알렉산더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20세에 전쟁을 시작하여 이집트, 페르시아 제국, 그리스 도시 국가들을 포함한 많은 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그의 영토는 인도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32세에 죽었습니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벨탑의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마십시오. 어디에 소망을 두든, 그것이 당신의 압박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에 소망을 두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압박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영원에 대한 소망이 있다면,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은 우리의 소망이 아니며, 이 땅에서의 소망은 그저 지나가는 풍경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작은 시험을 주시고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십시오. 세상적인 것들을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언젠가 이 세상적인 것들이 우리와 큰 상관이 없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땅에 살 때, 우리의 섬김의 결과는 영원 속으로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영원한 소망으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이 영원한 소망에 닻을 내리고, 장차 주님과 함께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소망에 닻을 내리면, 세상에서 무엇을 하든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하시므로, 그것이 당신에게 압박감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삶은 매우 단순해집니다.

갑자기 어떤 일이 떠오르면, 당신은 긴장합니다, 알렉산더. 알렉산더는 극심한 압박에 시달리다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영원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을 사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을 불공평하게 대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만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괴롭히려고 작은 악마들을 보내실 것입니다. 왜 굳이 애쓰십니까?

그러니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병든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고, 가난한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 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알렉산더 왕처럼 이런 헛된 것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죽으면 아무것도 당신과 상관없습니다. 이집트와 인도를 정복하고 나라들을 하나씩 파괴하고 온 세상을 다스렸다 해도,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기로 선택하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모두에게 축복을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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