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골로세서 04-서로 위로합시다

필기를 참고

##1.서론
a.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우리가 그분의 은혜 안에 거할 수 있도록 허락하십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것도 하나님께는 가능합니다.
b.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가난에서 확실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c. 이기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1. 끊임없이 기도하고 깨어 있고 감사해야 합니다.
a.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실천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깨어 있고 감사해야 합니다.
b. 기도의 가장 중요한 효과는 위로입니다.
c. 깨어 있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깨어 있는 것이 사람들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d. 끊임없이 기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을 기억하고 바울과 같은 비전과 사명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2.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a. 끊임없이 기도하고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b.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진지한 일을 하십시오.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 보고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c. 주님을 믿는다고 해서 수도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외부인을 대할 때 지혜롭고, 친절하게 말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방식대로 살아야 합니다.
d. 좋은 습관을 기르고 지혜롭게 말하는 법을 배우면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3. 내가 두기고를 보내어 너희를 위로하게 하였노라
a. 바울은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보내어 골로새 교인들을 위로하게 했습니다.
b. 바울은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근심을 덜어주었습니다.
c.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그는 사람들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4.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내 마음속에서 나를 위로합니다.
a.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골로새서 마지막 장을 썼습니다.
b. 믿음이 강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 과장하고 변명하게 될 것입니다.
c. 사람은 항상 자신이 잘못했다고 느끼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으며, 마음이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5. 은혜가 항상 너희와 함께하기를 원하노라
a. 은혜가 항상 너희와 함께하기를 원하노라,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기를 원하노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잃으면 환난에 처하게 될 것이다.
b. 은혜가 항상 너희와 함께하기를 원하노라. 진리에서 벗어나지 말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온전하며, 굳건히 설 수 있는 충분한 믿음을 가지라.

안녕하세요 여러분, 골로새서 4장을 읽어 봅시다. 이 장을 읽고 나면 무엇을 읽게 될까요? 이 장의 주제는 "서로 위로하자"입니다. 왜 "서로 위로하자"라고 부르게 되었을까요? 사실 그 시대는 오늘날 우리 시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 당시에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상대방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뿐이었고, 마음은 걱정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실 얼마 전, 다시 말해 30년이나 50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가족 중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직접 가서 보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보러 간다면 정말 번거로웠습니다.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기차표를 사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시대에는 걸어서 그들을 보러 갔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요즘은 훨씬 편리해졌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리워지면 위챗으로 전화해서 "괜찮으세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묻곤 합니다. 잘 지내고 계시고, 저도 위로가 됩니다. 하지만 그 시대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골로새 교회가 매우 악한 것들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목사님들을 시작으로, 그들은 모두 매우 악한 것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우리가 서신의 처음 세 장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서"를 썼고, 마지막에 "서로 위로하자"라고 했습니다. 위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만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떠나면, 그 고난은 정말 끔찍해집니다.

어제 우리 가운데 한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그 자매님은 집을 빌리고 싶었지만 구하지 못했고, 다른 누군가가 빌렸습니다. 그 자매님은 집을 보긴 했지만 구하지 못해서 매우 슬퍼했습니다. 그 자매님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슬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급히 그 자매님에게 전화 약속을 잡았습니다. 아, 전화 통화 후, 저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녀가 지난 몇 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은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인생은 얼마나 단순한 일인지 깨달으며 그녀의 믿음을 다시 굳건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녀의 가족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남편의 신용카드 빚은 한도에 도달하여 천천히 갚아야 했습니다. 갚을 수 없으면 그냥 다른 곳으로 넘기곤 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저는 "갚을 수 없으면 갚지 마라"라고 자주 말했는데, 갚지 못하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제 말을 듣고 파산 신청을 했지만, 결국 갚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남편은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예전에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안정적입니다. 남편의 수입은 지난 2년 동안 연 4만 위안에서 연 9만 위안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런 일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빚에 시달리거나 파산했거나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자주 말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돈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저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은혜 안에 있는 한 하나님은 참으로 신실하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일들이 많습니다. 작년에 저희 중 한 자매님이 직장을 잃었습니다. 그 덕분에 올해 안에 내면의 가난한 사고방식을 많이 없앴지만,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비록 뿌리가 남아 있지만, 그렇게 많은 가난한 사고방식을 없앤 후 저는 올해 직장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월급도 나쁘지 않습니다. 최근에 다시 이직했는데 월급이 두 배로 올랐습니다. 수당까지 받으면서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특히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가난은 분명히 없앨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목회하는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고 있습니까? 이것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목회자들은 자신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만 생각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항상 간절히 기도하고 지혜를 구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고 깨어 있고 감사하십시오.

골로새서 4장 1절은 바로 앞 장에 속합니다. 그는 장을 제대로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앞 장의 한 문장을 여기에 남겨 두었습니다. 4장 2-4절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으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골로새서 4:2-4)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도하다가 중간에 포기하면 끝입니다. 왜 포기합니까? 우리 안에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마음속으로 깨어 있어야 하며, 어떤 혼란도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해서 응답받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안식일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언제입니까? 안식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입니다. 그 결과 일요일이 토요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와서 당신이 할례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술을 받으러 갔습니다. 하지만 그 수술은 효과가 없었고,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하여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있고 감사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간절히 기도하고, 깨어 있고 감사하는 법을 천천히 배워야 합니다. 믿음이 있다면, 믿음으로 무엇을 구하든, 무엇을 구하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진심이십니까? 어떻게 사실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성경이 그렇게 말씀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문제는, 종종 진리에 부합하는 믿음이 아니며, 그것이 치명적입니다.

기도의 가장 중요한 효과는 위로입니다. 기도하면 마음이 맑아지고, 기도하면 원래 문제가 심각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기도하면 내면에 힘이 없던 것이 힘을 얻기 시작합니다.

사실,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혜가 부족한 것이 문제입니다. 기도하고도 깨어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깨어 있어야만 하나님의 은혜를 잃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신학적 체계를 나타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알고 계십니까? 잘못된 것을 믿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은 바울이 체포되는 것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이 잘못한 걸까? 만약 그가 옳았다면 체포되었을까? 우리 형제자매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때 바울이 그들에게 한 가지 생각을 주었습니다. "나를 위해 기도하고, 우리가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세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중보기도로 여기지만, 저는 중보기도가 유익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도의 유일한 목적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골로새에 있는 우리와 사도 바울이 같은 비전과 운명을 가지고 같은 것에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신비를, 마땅히 해야 할 말씀에 따라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은, 하나는 자신의 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위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할 때 사도 바울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울과 같은 비전과 사명을 공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저것에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싶다면,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믿기 시작할 것입니다. 마음이 위로받지 않겠습니까? 고통이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고통을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마음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마음이 아플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하십시오.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 때문에 당신의 아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당신은 운명지어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때문에 당신의 아들을 기억하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걱정하고 속상한 사람들을 섬깁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실 것이라고 말하면 그들은 안도감과 위로를 받습니다.

당신은 지혜로워야 합니다.

골로새인들은 처음에는 절기, 초하루, 할례 등에 대한 그들의 생각 때문에 약간 혼란스러웠습니다. 누가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바로 예루살렘 교회의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할례는 깨어 있기 위한 지혜, 깨어 있기 위한 끊임없는 기도, 그리고 동시에 지혜를 필요로 했습니다.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원을 아끼라.너희 말을 항상 은혜 사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로새서 4:5-6)

사람의 삶은 헛되고 헛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쉽게 넘어질 것입니다. 어차피 삶은 공허하니, 그냥 누워서 시간을 보내십시오. 그래서 바울은 시간을 아끼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예수님께 회계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누워서 두음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지만, 예수님과 함께 떨고 있습니까? 그는 정말 전기 충격처럼 떨릴 것입니다. 그러니 시간을 아끼고 진지한 일을 해야 합니다.

시간을 아끼고 지혜를 사용하여 외부인과 교류하십시오. 당신은 불신자와 교류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승려가 되고 싶습니까? 여기에는 절이 없습니다. 이것은 승려가 아닙니다. 이것은 절이 아닙니다. 우리는 당신의 머리를 깎고 여섯 개의 점을 찍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여전히 일하고 진지한 일을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진지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여전히 지혜를 사용하여 외부인과 교류해야 합니다. 당신은 주님을 믿으면 가족이 당신에 대해 그렇게 걱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어 생계를 위해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된다면, 세상에, 그건 큰일입니다. 당신의 가족은 어떻게 될까요? 당신의 가족은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꿰뚫어 보고 아내와 자식에게는 관심이 없어 스님이 됩니다. 하지만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혜를 사용하여 외부인과 소통하고 사람처럼 말해야 합니다. 더 이상 사람처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날개가 달린 것처럼, 얼굴에는 머리카락과 머리에 뿔만 남은 것처럼 말합니다. 그렇다면 악마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사람처럼 말하고, 사람처럼 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할 때 항상 온화해야 합니다. 마치 소금을 넣어 맛을 조절하듯이 말입니다. 그래야 모든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무엇에 대답해야 할까요? 까다로운 질문들에 답해야 합니다. 특히 가족에게 질문할 때처럼 말입니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가요? 그분은 자신이 들 수 없는 돌을 창조하실 수 있나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그분은 돌을 창조하실 수 있지만, 창조하신 후에는 다시 들 수 없습니다. 이처럼 난해하고 혼란스러운 질문들이 많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직장에서 평범한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잘해야 합니다. 시간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쓰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어떻게 일을 잘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앞으로 여러분에게 일하는 법, 사람으로서의 삶, 일을 하는 법, 그리고 사람들을 대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를 위한 이념적인 인사 관리 사역을 실천합시다. 그래야 직장에서 반드시 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외부인과 소통하는 방법입니다. 말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화약을 들고 말을 뿜어대는 것처럼 말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이 주님을 믿는 사람이 어리석어졌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마음속에 약간의 걱정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말을 못하는 형제자매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들을 말하게 하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저를 조금 위로해 주시고, 말하는 법을 배우고, 지혜롭게 행동하며, 원수처럼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른 자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륜이 있었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진짜 사랑인지 가짜 사랑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가족을 매우 아꼈습니다. 그 결과, 그 자매는 원수처럼 집으로 돌아갔고, 그녀의 얼굴은 쓴맛이 나는 조롱박보다 더 쓰라렸습니다. 그 쓰라린 모습을 보고 저는 할 수 있는 한 그녀에게 가르쳐야 했고, 마침내 천천히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남편이 주님을 믿지 않더라도 저는 여전히 여러분이 남편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격려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 모두 알아야 합니다. 아들이 주님을 믿지 않더라도 여러분 역시 아들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제가 섬겨본 모든 사람들은 건강한 관계를 맺으려면 쓴맛이 나는 조롱박 같은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고, 가시가 있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저는 가시를 제거하지 않았고, 입을 열자마자 가시가 있는 말을 합니다. 그 말은 제가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제가 가르친 것도 아닙니다. 마을 농부들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가시 돋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좋은 습관을 기르고 지혜롭게 처신하며 말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여러분은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골로새 사람들은 엉뚱한 말을 했기에 바울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상기시켜야 했습니다.

두기고를 보내 여러분을 위로했습니다.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니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할 일군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내가 저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낸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저희가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골로새서 4:7-9)

바울은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에 매우 능숙하게 행동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길을 잃었지만, 왜 길을 잃었을까요? 그것은 바울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걱정과 걱정은 왜곡된 생각으로 이어지고, 왜곡된 생각 후에는 올바른 복음을 믿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은 바울이 자신의 일에 매우 엄격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보내 그들을 위로하고 바울의 상황과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주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울이 비록 쇠사슬에 묶여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을 여전히 감당하고 있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약함도, 후퇴도 없이 오직 전진만 했고, 감옥에 있었기에 그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도 교훈을 얻었습니다. 마가도 그곳에 갔고, 아리스다고도 그곳에 갔습니다. 그들이 감옥을 찾아와 바울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는데, 모두 매우 좋은 질문이었습니다.

사실, 사람이 어디에 있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서"뿐만 아니라 "빌립보서"도 썼습니다. 그가 감옥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모두가 자유로웠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자유롭다면, 몸이 쇠사슬에 묶여 있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 사람들이 위로를 받는지 매우 염려했습니다.

나와 함게 같힌 아리스다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희는 할례당이라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골로새서 4:10-11)

사실,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 비록 내가 저주를 받더라도 내 동족인 유대인들이 구원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내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더라도, 내 동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여기에는 세 사람이 나오는데, 한 사람은 아리스다고이고, 다른 한 사람은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입니다. 나중에 우리는 마가와 바나바가 사촌 관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나바의 사촌 마가는 원래 베드로를 따랐고, 나중에 바울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할례받은 유다라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울을 따라 하나님을 섬긴 몇몇 할례받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는 바울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할례 문제가 엉망이었기 때문에 바나바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할례 부분을 지켰습니다. 저는 이 세 사람이 바울을 위로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바브라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는 실제로 골로새 교회의 설립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또한 누가, 데마, 님바도 있었는데, 모두 바울을 위로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아킵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아킵보에게 조심하고 주님께 받은 직분을 다하라고 전하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빌레몬서에 언급된 아킵보 중 한 명은 빌레몬이고, 다른 한 명은 자매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아킵보입니다. 바울이 빌레몬서를 쓸 때, 그는 세 사람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순서는 빌레몬, 자매, 그리고 아킵보입니다. 아킵보는 누구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그가 빌레몬의 아들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빌레몬의 집에서 교회를 관리하는 목사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아킵보에게 조심하고 주님께 받은 직분을 다하라고 전하라고 합니다. 이 문장은 사실 다소 무겁습니다. 아킵보가 골로새에서 거짓 복음을 받아 복음의 진리에서 벗어났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받은 직분, 곧 교회를 다스리는 직분을 주의하여 완수하십시오.

바울은 골로새서 마지막 장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서로 위로할 수 있도록 썼습니다. 어떻게 서로 위로할 수 있을까요? 즉, 항상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모든 뜻 안에서 온전하며, 온전한 믿음으로 굳건히 서서 행위에 속한 것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잃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 약하면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면 조금은 자기 의를 과시하게 되고, 결국에는 과장하고 변명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일이 생겼을 때, 누군가가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한다면, 여전히 쉽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끄러워서 그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온갖 변명을 늘어놓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골칫거리가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러 왔는데, 기도 후에도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며칠 전, 저는 한 자매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녀의 발 밑에 혹이 있었습니다. 기도한 후, 그것이 더 커지고 더 심해졌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아픈지 물었습니다. 그녀는 "너무 아파요."라고 말했습니다. 함부로 설명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계속 기도했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저 자신을 변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계속 기도했고, 결과는 좋았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다시 올지도 모릅니다. 다시 오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그녀가 올 때마다 기도하세요.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사도 바울의 신학 체계를 기준으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학 체계를 기준으로 삼고, 문맥에서 벗어나 해석하지 마십시오.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기를

"은혜가 너희와 함께하기를"은 빈말이 아닙니다. 제가 교회에 처음 들어갔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하기를"이라고 했습니다. 아멘!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장의 의미는 매우 심오합니다. 은혜가 너희와 함께하기를,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참으로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의 모든 문제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잃었다는 것, 그것이 골칫거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장의 의미는 매우 심오합니다. 즉, 우리는 진리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할례를 지키고, 율법과 절기를 지키고, 많은 것을 행하면, 우리는 진리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로 가게 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은혜를 잃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잃지 말고,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온전하고, 충분한 믿음을 가지고, 굳건히 서십시오. 이것이 핵심입니다. "골로새서" 4장은 끝났습니다. 다음 주에는 요약을 하고, 오래전에 이야기했던 "데살로니가전서" 1장과 2장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항상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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