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사사기01장-이스라엘 백성이 타협을 시작했습니다.
필기를 참고
1.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a.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때 장난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타협하지 말고 경외해야 합니다.
b.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실 것입니다.
c. 비전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d. 봉사를 선택하는 것은 이유가 없습니다. 이유를 찾으면 그것은 무너집니다.
d. 어리석은 사람들이 하는 일은 현재의 문제 해결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2.이 문제에 대해 아직도 물어봐야 합니까?
a. 이 문제에 대해 아직도 물어봐야 합니까? 다들 먼저 올라가야 해요.
b.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구할 때에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c.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많은 것을 하나님께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과 함께 계시고 당신이 승리하도록 마련해 주셨습니다.
d. 비전신학은 타협하지 않는 신학이며, 이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3.하나님은 상관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유다와 함께 계십니다
a. 하나님은 개의치 아니하시고 여전히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올라가자마자 하나님께서 그 대적을 유다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b.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원하시지만, 믿음을 가진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줄을 아십시오.
c. 전쟁을 하는 데에는 시므온 지파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 믿음과 강인함과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4.하나님은 믿음을 가진 자를 기뻐하십니다.
a. 하나님은 우리가 이기도록 예정하셨고, 하나님의 약속이 아무리 많아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b. 악사가 그의 아버지에게 샘물 있는 밭을 구하니 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니라. 악사가 우리 하나님은 부의 하나님이시며 형통의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c. 당신을 형통하게 하는 것은 당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당신을 형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5.유다 백성은 타협을 시작했습니다
a. 이유를 찾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주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심지어 철병거도 종이로 만들어졌습니다.
b.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능력은 결코 당신의 어려움만큼 크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에 당신의 어려움은 결코 하나님의 것만큼 크지 않을 것입니다.
c. 비전신학론은 이성을 믿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믿는다.
d. 우리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그 이유는 불신앙입니다.
6.각 부족은 타협의 이유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a. 핑계를 찾는 것은 악한 영이며, 받아들일 수 있는 핑계는 거의 없습니다.
b. 오늘부터 아무 이유 없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세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믿습니다.
7.가나안 족속을 노예로 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a. 영계에서는 가나안 족속의 정신이 이스라엘 족속을 힘들게 했습니다.
b. 힘든 노동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순종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c. 세상의 논리체계는 돈을 보고, 신의 논리체계는 영적인 세계의 문제를 봅니다.
8.결론
a. 한 번 타협하면 끝이고, 점점 더 많은 타협으로 이어집니다.
b.모세, 여호수아, 갈렙에게서 배워 주님의 얼굴을 뵐 때까지 결코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사사기 첫 장을 살펴보겠습니다. 한번은 어떤 분이 홈페이지에 사사기가 언제 완성되느냐고 묻는 글을 남겨서 사사기를 다시 확인해 봤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마지막으로 사사기에 관해 가르쳤던 때는 11년 전이었습니다. 이제 웹사이트의 "사사기"는 2013년의 것이어야 합니다.
이 장은 사사기 전체의 시작 부분이다. 아, 일어난 모든 일은 비극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이 첫 번째 장의 주제는 "이스라엘인들이 타협을 시작했습니다"라고 생각합니다. 이 주제는 약간 소박하고 문학적이지는 않지만 타협의 문을 열어줍니다.
1.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마지막 책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이전 책은 여호수아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성을 공격하여 그 땅을 약탈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강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서 마지막 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죽기 직전에 이스라엘 모든 백성, 곧 그들의 우두머리들을 지파의 우두머리들로 불렀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을 능히 섬길 수 없느니라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화를 내며 “우리는 주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을 능히 섬기지 못하되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욱 화를 냈습니다. “당신들은 섬길 수 있는데 우리는 할 수 없습니까? 뭐요? 당신이 특별합니까?” 사실 여호수아는 자기 자신을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이 매우 컸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여호수아가 말한 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싶습니까? 이 하나님을 섬기고 싶다면 장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여러분은 그분을 경외해야 합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되면 다른 것을 섬길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사람들을 밀어내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 발생합니다. 빨리 선택해야 합니다. 일단 선택을 했다면, 하나님을 잘 두려워하십시오. 너희가 애굽의 신들을 섬기든지 가나안의 신들을 섬기든지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려 한다면 그분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여호수아 24:20)
내가 농담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많은 것을 관찰했고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보다 더 많이 저주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눈치채셨나요?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보다 저주를 더 많이 받습니다. 당신은 여호와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을 잘 섬기거나, 아니면 다른 것을 섬기기로 빨리 선택합니다. 당신은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질투하지 않습니다. 미륵불과 관공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면 그들은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거기에 신을 모시고 거기에 미륵부처, 관공, 부신을 모신다면 곤란할 것입니다! 용기가 있으면 시도해 볼 수 있지만 용기가 없습니다.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여호수아 24:20)
이것이 중국 운명론이 관찰한 바이며, 우리는 매우 치명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저주조차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외부 사람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신명기의 축복과 저주,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저주하실 것입니다. 외국인들은 왜 이런 걸 엄격하게 따르는 걸까요? 예 아니면 아니오? 사람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한 자매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세상을 너무 사랑하고 소소한 삶을 살고 있는데, 제 여동생은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는데 왜 그렇게 불행합니까? 알다시피, 나는 꽤 잘 지내고 있어요. 당신은 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여호와 하느님을 섬기기로 선택한다면 여호수아는 당신이 그분을 섬길 수 없다고 말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임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중국의 예정신학이 일반 신학체계보다 성경에 대해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성경과 대조하여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다른 교회 출신이라면, 가서 이것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는 누구도 남겨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사람들을 납치합니까? 우리는 부도덕하게 사람들을 납치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싶으면 나를 잘 따르라. 하나님을 잘 섬기고 싶지 않다면 내 말이 더 강하니 나가라. 내가 이렇게 말할 때 나는 사람들이 나를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애초에 하나님을 섬길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결코 쉽게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쉽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 안의 암 발병률이 세상보다 높은 이유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 암 치료율은 세계보다 높습니다. 타협할 수는 없습니다. 타협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조슈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말을 마치자 이스라엘 백성이 응답했습니다.
백성이 대답하되 우리는 감히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하노니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우리 목전에서 큰 표적을 행하셨음이라 우리가 지나간 나라들이 우리를 보호하였고 여호와께서 이곳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다 쫓아내셨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라.”(수 24:16-18)
이렇게 할 수 있나요? 이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한 가지 비결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선택하는 나의 운명입니다. 왜 하느님을 섬기기로 선택해야 합니까?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이유를 찾기만 하면 그것은 나쁜 일이 될 것입니다. 천천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한 삶을 살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을 섬깁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지키시고,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질투하여 재앙을 내리시면 곤란합니다.
모두에게 상기시켜야 합니다. 당신은 누구를 섬기고 있습니까? 그것은 당신의 직업에 봉사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누구를 섬기고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한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이것을 위해 태어났고 이것을 위해 이 세상에 왔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당신을 축복하든지, 나를 치료하든지 않든, 우리를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든 말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말한다: 선생님, 당신의 기준은 너무 높습니다. 사실 그 기준은 높지 않습니다. 원래 인간의 삶은 헛될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 그건 내 일이에요. 당신은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어제부터 오늘까지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그러면 오늘부터 내일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 별거 아니다.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주 잘 산다는 말을 합니다. 나중에 나는 한 자매를 섬기면서 같은 말을 했습니다. 당신의 남편은 돈을 많이 벌고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봅니다. 왜 그런 말을 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거나 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어지럽히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난장판을 치울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유심히 관찰했고, 당신은 삶이 좋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나의 하나님을 어떠한 타협도 없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농담이 아닌 것 같아요. 일단 타협하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러나 내가 조금만 타협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재앙을 내리실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2. 이 문제에 대해 여전히 질문해야 합니까?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사사기 1:1)라고 물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너희를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서 그 땅을 나누어 승리할 만한 모든 사람을 치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는 땅을 많이 차지하였느니라. 이제 당신은 나를 보고 나도 당신을 보면 그들은 모두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가 올라가고 있는 걸까? 너 먼저 올라가! 나는 가지 않을 것이다. 왜 이 문제에 대해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합니까? 모두가 먼저 올라가야 하는데 왜 뒤에 숨어서 이득을 취하는 걸까요? 진짜 칼과 총은 사람을 죽일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 계시는데, 이 새들을 보고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아, 하느님! 그것은 쇠똥구리를 먹는 것과 같고, 더 심각하게는 방귀벌레를 먹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하나님께 물어보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이것을 별로 믿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하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양치를 해야 할까요? 이 문제가 질문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다른 사람들은 옷을 입어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엉덩이 알몸으로 나가서 뭐해요? 경찰이 당신을 체포한다고요? 이런 질문을 할 만큼 멍청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궁금해했습니다. 누가 먼저 올라갈 것인가? 나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나중에 유다가 선택되었고 모두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야, 유다다!” 그는 정말 운이 좋지 않습니다. 이게 정신 나간 것 같지 않아? 다른 사람들은 꽤 좋다고 생각합니다. 유다가 모든 사람이 나를 이렇게 쳐다보는 것을 보고 시므온 지파에게 이르되 형제여 나와 함께 올라오라 나는 혼자서 할 수 없느니라 너희가 다른 날 제비를 뽑으면 나도 너희와 함께 가서 이기리라. 그 당시 그가 시므온과 동행하여 싸웠는지 여부는 여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유다는 이미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선은 나를 위해 매질을 끝내고 나중에 이야기하자.
그냥 그런 사람들이 모인 것 같은데, 불안하지 않나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귀신에게 조종당하는 사람을 보고 하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 제가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물론 그 사람이 와서 구걸해야겠죠. 먼저 하나님께 물어보세요. 그것이 필요합니까? 불필요한. 처음에는 하나님이 믿음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은 오래전부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전히 누구를 먼저 보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나에게도 형제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나와 함께 교회를 시작했는데, 그 사람이 꽤 흥미로웠어요. 나중에 나는 그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즉, 그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는 말했다: 왜 봉사하지 않습니까? 그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봉사하기 전에 제 머리털이 꼿꼿이 서야 합니다. 아! 성령 충만을 받고 머리털이 곤두서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 분명 좋을 것 같은데 문제는 늙어서도 머리가 꼿꼿이 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에겐 비결이 있어요. 헤어스프레이를 좀 주면 확실히 세워지고 넘어지지 않을 거예요. 맙소사! 보기만 해도 속상하네요. 지금은 아니었고 이제는 무적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할 수 없었습니다. 똥벌레를 먹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많은 것을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과 함께 계시고,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하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당신을 이 약속의 땅을 얻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아무리 많아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 그렇습니다. 유령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가 거인이건 아니건, 그는 승리할 것입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며,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유령이 죽임을 당했고, 얼마나 많은 악마가 제압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악마가 제압되었는지. 어떤 형제자매는 “선생님, 저번에 귀신을 쫓아냈어요. 아, 이 귀신이 나를 쫓아내러 올까? 나는 방금 그에게 말했습니다: 유령이 오고 있어요! 결과적으로 그는 숨어버렸지만 사실 나는 그런 척을 한 것뿐이었다.
어떤 형제자매는 “저는 지난번에 그 사람을 위해 귀신을 쫓아냈지만 정결함을 구하는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정결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하늘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 타협을 주도한 것이 아니며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많은 것을 묻지 않습니다. 이유를 아십니까? 그 이유는 이런 것들을 물어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 일을 물으면 누구나 다음과 같은 말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아, 누가 먼저 보내야 하나? 듣기가 피곤해요! 이 사람들 다 올라가야 되는거 아니야? 많이 그렸어요. 이 땅은 당신 것입니다. 저 땅은 당신 것입니다. 가서 가져오세요! 그 결과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합니다. 아야, 맙소사! 마침내 유다가 치료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열두 지파 가운데서 찾으시는데 왜 나를 찾지 못하셨나요? 당신이 나를 찾을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난 갈게! 그러므로 중국 운명신학은 타협신학이 아니며, 중국 운명신학은 극단적이거나 이단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늘에 굳게 서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마다 고침을 받으리라. 오늘은 한 번 손을 얹어도 낫지 않으면 열 번 손을 얹고, 열 번 안 낫으면 백 번 손을 얹습니다. 백 번, 천 번, 만 번 손을 얹으면 나을 것입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저는 “모든 사람이 치유됨”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이제 다 나았나요? 모두 치유되었습니다. 우울증도 다 사라졌고, 요추, 경추도 다 사라졌고, 생리통도 다 사라졌습니다. 게으르지 말고 종교적 행위를 이용해 여러분의 불신앙을 덮지 마십시오.
3. 하나님은 상관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유다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유다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은혜로우신가! 하나님은 유다와 함께 하셨고, 그 결과 하나님은 그들의 대적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유다 백성이 전쟁에서 승리할 정도로 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대적을 유다 자손의 손에 붙이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그들이 베섹에서 만 명을 죽였느니라 유다 사람들이 나가서 만 명을 죽였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오, 하느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 앞에서 장난을 치고 있고, 여전히 누구를 먼저 보내야 할지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다른 부족들은 뒤에서 그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나는 아직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진짜 칼과 총이 사람을 죽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새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으셨고, 다른 부족의 신들도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런, 기분이 너무 좋아요!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 결과, 그는 색깔 경쟁 왕을 잡았고, 그를 잡았을 때 손가락을 잘랐다. 사실 그의 손과 발의 엄지손가락은 아무 이유 없이 잘려 있었는데, 저는 그 이유를 몰랐을 뿐입니다.
아도니 베섹이 가로되 엣적에 칠십 왕이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찍히고 내 상 아래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나의 행한대로 네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사사기 1:7)
하나님은 매우 유머러스하신 분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참 하나님이십니다! 당신보다 더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하기를 원하시는데 당신은 믿음의 사람입니까? 하나님은 당신에게 관심이 없으시며, 그 결과로 성을 공격하고, 땅을 약탈하고, 불을 지르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싶습니까? 아, 정말 좋아요! 하나님은 유다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러면 왜 이 시므온 지파를 데려왔느냐? 시므온이 당신을 도와줄 수 있나요? 시므온은 사실 장식일 뿐이지 별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힘이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원하기만 하면 평생 동안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아십시오. 이유나 변명을 찾지 마십시오. 일단 이유나 변명이 생기면 그것은 타협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완전히 방어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 기도하고, 두 번째 기도하고, 세 번째 기도해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치료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바울의 옆구리에 있는 가시였습니다. 얼핏 보면 바울이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짓을 하여 가시를 씌우고 있는 걸까요? 바울 옆구리의 가시는 아직 멀었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티모시입니다. 배에 가시가 있습니다. 당신은 디모데가 아니고 이런 일을 처리하기를 좋아하고 다시 처리하면 욥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하나님은 믿음을 가진 자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가진 자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당신이 직장에서든 인생에서든,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승리하도록 운명지으셨다고 말씀드립니다. 믿거나 말거나? 하나님은 당신이 승리하도록 운명지으셨습니다! 믿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이 사람을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실제로 믿지 않는 설교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매우 가난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소시지가 너무 먹고 싶어서 집에서 기도했는데, 다음날 아침 문을 열자 그가 언급한 소시지뿐만 아니라 브랜드도 보였다. 사람들이 소시지를 먹을 때 브랜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더군요. 저 같은 사람들은 한 팩에 2위안짜리 소시지가 있다면 저는 한 팩에 2위안짜리 소시지를 먹겠죠? 왜냐면 내부에 팬이 많기 때문이죠. 소시지가 나오자 그는 하느님께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은 소시지도 먹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왜 소시지를 달라고 합니까? 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구하지 않습니까?
나는 소시지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아무리 많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내 안에서 성취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여기서 하나님께서 믿음을 가진 자를 기뻐하신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형통의 하나님이심을 압니다. 갈렙은 기럇-세벨이 서로 맞서는 것을 보고 오랫동안 공격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갈렙이 말하기를 가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사사기 1:12)고 말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정말로 그것을 포착했고, 반드시 무거운 보상을 받을 용감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옷니엘은 그것을 보고 “와, 갈렙의 사위가 되니 참으로 멋지구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옷니엘이 붙잡히게 되었는데, 이는 실제로는 사위를 가려내고 배우자를 찾기 위한 방법이었다. 옷니엘은 갈렙 가문의 사위가 되었는데, 알고 보니 옷니엘은 정말 강력한 인물이었습니다.
갈렙의 딸 악사는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했습니다. 이것이 빈곤의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부유한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형제자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삶과 죽음을 통해 보았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밭을 구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비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사사기 1:14).
사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왜일까요? 이 갈렙은 정말로 심령술사이기 때문에 그의 정신은 더욱 예민해졌고, 그는 마음 속으로 '내 딸이 반드시 나에게 와서 그녀를 구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혼자 자란 사람이 어떻게 모를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무엇을 원하세요? 나는 당신에게 그것을 준다. 이 딸이 정말 갖고 싶어해요! 악사가 이르되 나를 그 곳에 두고 나에게 샘물을 주소서. 그 땅에는 샘물도 없는데 어떤 땅입니까? 그곳은 좋은 곳이 아닙니다. 부동산을 구입할 때에는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엉뚱한 곳에서 구매하셨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지 않습니다. 이 Achsa는 샘물이 있는 땅을 정말 원했습니다.
Achsa가 왜 그렇게 돈을 좋아한다고 생각합니까? 아니요, 농담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형통하기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살고 형통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약속임을 우리 형제자매들은 알아야 합니다. 왜 사람들은 우리 하나님이 형통의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재물의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가난한 설교자를 좋아한다면 다른 교회로 가십시오. 하나님의 설교자의 번영을 좋아한다면 우리와 함께하십시오. 너희가 하나님이 너희를 형통케 하시는 줄을 믿느냐 너희가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우리가 이런 것을 사랑해서가 아니요 오직 우리 하나님이 부의 하나님이심을 믿음이로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이 가난하고 가난한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며, 신학은 중국의 운명신학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은 사람을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물어보겠습니다. 폴은 가난한가요? 바울은 가난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 종이 도망쳐 가더니 주인 된 빌레몬에게 편지를 보내니 바울이 이르되 이 종이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내 계좌로 여기라 하였느니라. 바울이 이렇게 가난해서 그의 장부에 기록되었다면 기록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믿음을 가진 자를 기뻐하십니다.
5. 유다 백성은 타협을 시작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 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사사기 1:19)
평원의 주민들은 철제 마차를 가지고 있어서 쫓아낼 수 없습니다. 냄새를 읽을 수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느니라. 과거의 거인들은 다 죽었으나 철병거는 죽일 수 없느니라. 나는 매우 놀랐다. 제가 말씀드리자면, 이 지도자는 좋은 지도자가 아니었고 나중에는 무너지기 시작했고 군대는 산처럼 패했습니다. 그때는 거인을 무서워했어요. 어쨌든, 이것저것 두려워할 이유가 있었어요. 아, 이 회사는 별로예요. 아, 이 회사 제품은 별로네요. 아, 이 일을 어떻게 하시나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내 말에 따르면 급여는 공제되지 않았으니 그냥 하세요.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우리 중에는 돈을 빚진 사람들이 처벌을 받고 있으며, 이 블랙리스트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불립니다. 내가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놀랍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이유를 찾아서는 안 됩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우주의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철병거는 하나님 앞에 종이 한 장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는데 철병거를 두려워하느냐? 사람들이 이유를 찾으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를 찾으면 끝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아아,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고, 저 조건이 충족되지 않습니다. 핑계를 찾을 필요가 없는 유일한 것은 가난과 게으름입니다. 사람들은 게으르고 가난해서 평생 이렇게 살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그들의 운명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찾는 이유는 바로 철차입니다. God과 Iron Car 중 어느 것이 더 큰지 알 수 없습니다. 신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철병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자신의 능력에 의지한다면, 당신의 능력은 결코 어려움만큼 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철병거도, 거인도, 만물도 하나님만큼 크지 못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습니다. 이전에도 여러 번 승리하지 않았나요? 왜 철병거 때문에 갑자기 승리가 불가능해지는 걸까요? 산에 오르기가 쉽나요? 평원은 싸우기 쉬운가 아닌가? Pingyuan은 싸우기 쉽습니다. Pingyuan은 싸우기 쉽습니다. 평원에는 자연적인 장벽이 없습니다. 산에서는 싸울 수 있는데 들에서는 싸울 수 없습니까? 나는 그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변명을 찾지 마세요! 중국 예정론은 이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중국 예정론은 하나님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거인이 아무리 크더라도, 우리가 직면하는 어려움이 아무리 크더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어려움보다 크실 것입니다. 나는 변명을 찾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그렇죠? 나는 한 번 실직했고 거의 파산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왜 월급을 받지 못합니까? 돈도 많이 빌리고 주택담보대출도 많이 받았는데 못 갚으면 어떻게 하나요? 그럼 파산신청을 할 수 없나요? 압류 신청을 할 수 없나요?
나중에 직장을 잃었나요? 돈이 없나요? 무슨 일이야? 하나님은 대단하십니다! 나의 하나님은 너무나 강력하십니다. 제가 가난할 때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직장을 잃었는데 그분이 나를 구해주실 수는 없었나요? 아직 구원받을 수 있어서 죽을까만 생각했는데 결국 죽지 못하고, 지금도 죽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다 사람들은 이유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유가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을 믿기보다는 이유 스테이션을 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유 때문에 주님을 믿을 수 없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중에 제가 주님을 믿는 길에 들어서게 되었을 때 제 안에 품고 있던 이런 성품은 정말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불신이고, 불신은 이성에 대한 불신이며, 그 이유가 나쁘다. 어떤 사람들은 “아, 다리가 아파요”라고 말합니다. 나는 말했다: 왜 아파요? 그는 말했다: 내 안에 철판이 있습니다. 나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철판이 있으면 왜 아픈가요? 기도한 후에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이상한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 내 발이 부러졌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해결해주실 수 없나요? 해결될 수 있습니다.
6. 각 부족은 타협의 이유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이 사사기를 가지고 거울을 보십시오. 유다는 핑계를 찾고 있었는데, 다른 지파들이 어떻게 더 잘할 수 있겠습니까?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 향리의 거민과 다아낙과 그 향리의 거민과 돌과 그 향리의 거민과 이블르암과 그 향리의 거민과 므깃도와 그 향리의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땅에 거하였더니.(사사기1:27)
이 구절은 꽤 흥미로워서 아직 쫓아내지도 않았습니다. 여기에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도 없고 이유를 쓰기엔 너무 게으르다. 왜?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집에도 쇠솥이 있고, 저기에도 쇠수레가 있고, 이쪽에도 쇠솥이 있습니다. 이 쇠솥이 당신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사람들은 이유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므깃도에 사용하는 쇠솥을 보세요. 아무튼 쇠솥, 쇠막대, 쇠갈래, 쇠삽, 쇠모자 이런 것들은 다 있어요! 유다 백성이 쇠수레의 문을 열자 쇠기물이 다 나왔습니다.
그 후에 에브라임은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고, 스불론은 글론 주민과 나할랏 주민을 쫓아내지 아니하였고, 아셀은 아고 주민과 납달리 주민을 쫓아내지 아니하였고, 벧세메스 주민에게로 나가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고 아나. 변명을 찾는 것은 악령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지금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사람들에게는 항상 이유가 있습니다. 나중에 나는 실제로 타당할 수 있는 이유가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하여 그 이유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놔두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사직서를 제출할 정도로 더욱 힘이 세집니다. 그러다 보니 그 직장을 그만둘 날이 며칠 남지 않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습니다. 나는 이것이 어떤 종류의 뇌인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들에게 "암에 걸렸다면..."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한 후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난 그냥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어. 그는 말했다: 그러면 나는 그것을 놓아줄 수 있다. 나는 말했다: 그러면 놓아준 후에는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그 결과 병원에 가서 전기치료도 받고, 항암화학요법도 받고, 이것저것 정리하는 수술도 받았습니다. 사실 버릴 수 없는 건지, 아니면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한 건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인간은 아무것도 버릴 수 없지만 하나님은 버릴 수 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믿고 모든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을 제대로 신뢰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이스라엘 사람이 되지 않습니까? 여호수아가 오늘까지 살았더라면, 여호수아가 오늘까지 살지 아니하였더라면, 그가 무덤에서 일어나 이르되 너희가 이 하나님을 믿을 수 없고 여호와를 섬기지 못하리니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심이니라 ! 당신은 변명을 찾는 사람들의 그룹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십니까? 어떤 사람은 “선생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교회가 부패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합니다. 교회의 모든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 보도록 합시다! 사람들이 떠나든 말든 내가 신경 쓸 것 같나요?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세요. 아무 이유 없이 믿으세요.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다른 길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길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우와! 요단강이 열렸습니다. 우와! 홍해가 열렸습니다. 우와! 여리고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장차 우리를 인도하여 영계의 도시와 영토를 정복하여 포로된 자를 해방시키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것이 아니라 눌린 자가 풀려날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 이는 우리 하나님이시다.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모든 사람이 일어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가끔은 그냥 한숨! 죽을 뻔한 적도 있었고,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떤 것들은 보고 나면 버릴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중병에 걸렸을 때, 그런 것들을 보면 정말 비참했다. 나는 몇몇 형제자매들, 특히 우리 동역자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말했다: 맙소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정말로 살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믿음을 모아 하나님께서 사막에 강을 내시고, 광야에 길을 내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갑시다. 당신이 믿음을 갖고 있는 한, 하나님은 그분의 보좌에 앉으시고 그분의 능력을 하늘에서 당신에게 보내실 수 있습니다. 가끔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면서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곤 합니다. 사실은 단지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것일 뿐이지만, 지금은 여전히 모두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확고한 신념입니다. 스스로에게 이유를 대지 말고 타협하지 마세요.
중국 운명신학은 이 시대 전 세대를 축복할 것이다! 나는 내 생애 동안 중국의 예정신학이 이 세대의 많은 교회에 축복이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저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최근에 한 목사님이 자신이 목회하는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우리에게 왔습니다. 다른 신부님이 같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말했다: 좋은 목회적 돌봄! 그가 동의하면 그 사람과 잘 공유하십시오. 그가 동의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7. 가나안 족속을 노예로 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쫓아낼 수 없다고 말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뇌는 꺾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몰랐습니까? 그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계산을 하고 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 이것은 소 한 마리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아, 이 사람 정말 대단해요. 근육이 다 있어요. 아, 이 근육도 맛이 없구나. 인간의 살이 맛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도대체 GDP를 창출하면 가나안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재정적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이것은 영적인 세계의 문제입니다. 그 사람들이 아직 그 곳에 있고 그 곳의 영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는 동안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에게 열심히 일하게 하여 GDP를 만들게 했지만, 영의 세계에서는 그 사람들의 영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게 하셨습니다. 중노동.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하나님의 번영은 결코 GDP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순종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11,000가지 찾아내면 열심히 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노동과 GDP의 문제가 아니라 준수와 실패의 문제입니다. 나는 매우 감정적입니다! 당신의 마음 속에 세상의 논리 체계가 있다면 당신은 이 길을 따를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논리 체계는 돈을 보기 때문이고, 세상의 논리 체계는 산업과 부동산 평가를 보기 때문입니다. 신성한 논리 체계는 영적인 관점에서 보입니다.
8. 타협은 한 번만 하면 됩니다
사도 바울이 사람들을 이끌고 교회를 세웠을 때, 당시 사람들은 그다지 패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사도 바울이 죽은 후에 그는 조금씩 타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고작 1시, 2시, 3시, 4시, 5시, 6시라고 하더군요. 점점 더 터무니없어졌습니다.
많은 예를 들 수 있는데, 만약 우리 교회에 한번 들어오면 한 사람만 안 낫고, 두 사람, 열 사람, 그러면 많은 사람이 안 낫는다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입니다. . 논리. 말씀드리자면 제가 왜 치유받는 것에 대해 글을 써야 합니까? 사람들이 매우 혼란스러워하기 때문입니다! 틈이 있는 한, 모든 사람이 치유되지 않으면 그는 자신이 저 사람이고 다른 사람이 오고, 자기도 저 사람이고, 그런 다음 다른 사람이 오고, 그도 저 사람이고, 저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망할 것입니다.
따라서 타협은 한 번만 하면 됩니다. 모세, 여호수아, 갈렙 같은 사람들을 본받아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 되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메모를 하고 가다가 사라지곤 합니다. 한 번, 어쩌면 두 번 사라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이 기억납니까?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오는 것은 시간 낭비가 아닌가? 이해했나요? 인간의 악도 마찬가지다.
저는 모든 형제자매들이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에만 굳게 설 뿐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에도 굳건히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얼굴을 볼 때까지 결코 타협하지 말고 충성되고 선한 종이 되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