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요나04장-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필기를 참고

1.요나가 믿는 하나님

a. 요나는 하나님이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뜻만 따르려 하여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b. 다행히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이 가득하셔서 요나를 그 자리에서 죽이지 않으셨고, 기도할 때 요나의 생명도 살리셨습니다.
c. 현명한 생각과 실천은 우리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능력도 있으신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일단 그러한 하나님을 찾으면 우리는 그분을 우리 삶의 목표로 삼을 것입니다.
d. 어리석은 사람들이 하는 일은 현재의 문제 해결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2.요나는 죽기를 구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a. 요나는 죄를 지어 죽고 싶었으나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기사 요나를 죽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b. 어리석은 짓을 멈추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시작하십시오.

3.요나는 다시 죽기를 간청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은혜와 긍휼을 베푸십니다.

a. 요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다시 한번 죽음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십니다.
b. 사람들은 내면의 원칙을 바꾸느니 차라리 죽기를 원합니다.

4.요나가 화를 내는 것이 합리적입니까?

a. 합리적인 사람은 자신 안에 있는 이성 때문에 피해를 입는다. 요나다는 마음속으로 니느웨가 재앙을 받기를 바랐습니다. 이것은 은혜와 긍휼이 없는 이론이었습니다. 그가 관심을 두는 것은 하나님이 관심을 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b. 요나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불쌍히 여기시고 자기가 하나님과 경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를 냈습니다.
c. 하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불행을 기뻐하라는 뜻이 아니라, 원수들이 재난으로 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뜻입니다.
d.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을 귀히 여기시며, 인간이 구원받기를 바라시며, 인간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신다.

5.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을 사랑하십니다.

a.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이 가득한 하나님이시므로 우리가 오늘도 살아있습니다.
b. 하나님은 우리를 멸하실 수도 있었지만,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c. 너무 어리석지 말고 너무 완고하지도 마십시오. 우리는 결코 충분히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십시오.

안녕하세요 여러분, 요나서의 마지막 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기신다”고 하는데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장의 주제를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1. 요나가 믿는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잌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음이니이다.(요나 4:2)

요나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알고 있나요? 요나는 왜 다시스로 도망쳤나요? 그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죽는 것을 정말로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나가 다시스에 도착했을 때 예언을 선포했는데, 하나님께서 그가 선포한 예언에 따라가 아니라 사람의 회개에 따라 그것을 성취하셨다면 흥미로울 것입니다. 요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나는 하나님께 속고 싶지 않아요. 나중에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한 후에 악하게 되었습니다. 요나가 믿었던 하나님도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관심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모두 자기 자신뿐입니다. 내가 요나라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요나보다 별로 나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내가 아는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가 크시사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줄 알아야 하노라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했고,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가 그를 육지에 뱉어내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에 도착한 후 다시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며 다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죽겠습니다. 사람 속에 있는 생명력은 하나님 덕분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 같은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사람을 쳐서 죽였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생각해 봅시다. 당신은 하나님께 죄를 한두 번만 지었나요? 그것은 또 훼방하고 또 훼방하고 은혜를 받고도 돌이켜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이 사람이 정말 멍청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야, 나도 감정적이야! 때때로 나는 하나님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렇게 풍성한 은혜를 가지고 계신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다행히 하나님은 은혜가 너무 많아서 하나님이 나를 꺾으라고 하시면 개미를 쳐서 죽이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내 머리 속에 아주 영리한 생각이 있다는 걸 당신도 알잖아요. 나는 그때 하나님의 편지를 찾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매우 불운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불행한 상황에 직면하셨나요? 그럼 당신은 머리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어떤 사람들은 단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하며 신을 찾는 것을 잊어버린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신을 찾고 있었는데, 이 아이디어가 너무 똑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너무 똑똑하다고 말한 다음 그 아이디어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무슨 아이디어야?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첫째, 그분은 매우 강력한 하나님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분을 지지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분이 나를 지지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해야 해요. 이건 좀 어렵죠? 예를 들어 온몸에 근육이 있고 가슴부터 등까지 갈치 문신을 한 조폭 보스를 만난다. 왼쪽이 청룡, 오른쪽이 백호인데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죠. 내가 그를 찾는다면 그것은 늑대를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 아닐까? 그건 작동하지 않습니다. 나는 강력하고, 놀랍고, 사랑이 가득한 하나님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으로 교회에 오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부른 노래에는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며, 하나님은 강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자주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하시고, 자비가 풍성하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나중에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이 점차 확인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을 쉽게 포기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당신을 쉽게 사랑하는 하나님을 포기한다면 그분은 당신을 죽이지 않으실 것이며, 당신에게 쉽게 화내지도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로 회개하라 이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시니라

2. 요나는 죽기를 구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요나 4:3)

우리 중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꼭 있을 겁니다. 한 번 죽었다고 했는데 왜 또 왔나요? 그들은 나를 배 밖으로 내쫓고 나를 죽이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요나의 성질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고문을 받고 죽었지만, 고문을 받고 죽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통사고를 당했다가 차에서 내려 살아남더니 “내가 왜 이렇게 빨리 죽었지?”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내 죽고 싶었는데 결국 안 죽었어요. 요나는 죽기를 간청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셨습니다. 죽음을 구하자마자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처음으로 받은 직장은 꽤 흥미로웠는데, 그에게는 좋은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세 형제는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는 날씨에 밖으로 달려가서 외쳤다. 신이 존재하는가? 신이 있다면 벼락으로 나를 칠 것이다. 아야, 하나님께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우리와 같은 성질을 갖고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를 죽여라! 당신은 죽지 않을거야? 어서, 나는 당신에게 죽음을 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어떤 종류의 두뇌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몹시 불쾌해하고 심지어 화를 냈습니다. ‘하나님, 나를 속이려고 하시는 겁니까? 당신은 분명히 나에게 장난을 칠 것입니다. 나는 선지자이므로 내가 말하는 것은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화를 냈습니다. 요나는 죽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그가 죽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이 죽음을 요구할 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죽어라, 내 목숨을 가져가라! 사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잘 듣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을 귀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많은 불운을 겪었고, 속이고, 다른 사람에게 괴로움을 당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 왜 나를 막지 않았습니까? 나는 그것을 멈출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남편과 결혼했는데 그 남편이 가정 폭력을 저지릅니다. 그녀는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 그 당시에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왜 나를 막지 않았나요? 그때는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자매들은 목회자들로부터 꿈과 환상과 확증을 받고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실수하고 계십니까? 그 당시 나는 평안했고 확증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당신이 하나님께 물어보면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에게 묻기를 원하실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것이 당신 자신의 선택이라는 것을 믿지 마십시오. 결국 책임은 하나님에게 맡겨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신 것을 모르십니까? 당신은 죽음을 요구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여전히 자비가 가득하시고, 은혜가 가득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호흡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요나가 죽기를 구걸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죽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얼마나 크십니까? 요나는 처음으로 죽기를 구했지만 실패했습니다.

3. 요나는 두 번째로 죽기를 간청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은혜와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3번의 죽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1장에서 바다에 던져진 시간까지 포함하면 정말 3번이었습니다. 아, 할 일은 세 가지뿐이에요! 세 번이나 죽음을 청했는데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분임을 증명하는 것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요나는 처음으로 화를 내며 죽기를 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매우 흥미로우시며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의 생냄이 어찌 합당하냐 하시니라(요나4:4)

요나는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너무 게을러서 관심을 주지 않는 저 경멸적인 표정을 아시나요? 나는 이런 모습을 자주 보며, 사람들은 나를 신으로 여긴다.

요나가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앉되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하니라.(요나4:5)

요나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아시나요?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계속 기도해야 하고 내가 선언한 것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나를 거짓 선지자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장막을 짓고, 간절히 기도하고, 심지어 울부짖고, 땅에 얼굴을 대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거짓 선지자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겠지요? 요나는 그 도시가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재앙을 내려 그들을 멸망시키실 기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중에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당신의 원수가 당신을 속이고, 해를 끼치고, 이용하고, 상처를 준 것 같습니다. 하나님! 그들을 파괴하세요! 하나님은 죽지 않으셨고 당신은 지쳤습니다. 이 요나는 생각합니다: 어쩌면 나는 충분히 기도하지 않고 이 도시가 어떤지 보기 위해 더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선언 성과.

해ㅐ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요나 4:8)

요나는 피마자가 물려 죽은 것을 보고 그의 속에 기운이 회복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에너지가 꽤 자주 솟아오르므로 요나처럼 되지 마십시오. 매우 흥미롭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나의 머리는 태양에 노출되었고, 하나님께서는 태양과 태양의 힘과 적외선과 자외선을 더해 그에게 10배의 힘을 더해 주셨습니다.

돋보기를 들고 햇빛에 비추면 종이에 불이 붙을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돋보기를 사용해 초점을 맞춘 후 태양이 종이에 불을 붙일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마도 요나에게 빛을 비추시기 위해 하늘에 확대경을 두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의 머리에 불이 붙거나 타 죽지 않도록 조심하시고, 그냥 뜨거워지도록 하셔야 했습니다. 이 열병으로 인해 요나는 기절하여 “내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나겠나이다” 하고 죽음을 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보다 죽음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이렇게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줄을 너희가 알느니라. 당신이 그에게 태양을 비추고 그가 죽음을 구걸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아야 합니까? 하나님은 그래도 그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요나는 왜 그렇게 죽기를 좋아합니까? 요나는 자라면서 상처도 많이 받았고, 죽고 싶은 버릇도 생겼기 때문에 할 일도 없고 하루 종일 죽음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요나는 분명히 보고 세상의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지만, 자신이 기도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는 여전히 선지자로서의 지위에 대해 매우 진지했습니다. 요나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단지 니네베에 재앙이 닥치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왜 햇빛이 나에게 비치는가? 불편하고 힘든 일이에요. 내가 말해 주겠다. 사람은 내면의 원칙을 바꾸느니 차라리 죽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다시 요나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그렇게 화내는 것이 합당한 일이냐?” 사실, 하나님은 사람을 자신의 원칙에 따라 인도하기를 원하셨지만 여전히 사람에게 은혜와 자비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장의 주제를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만약 당신이 나에게 신이 되어 달라고 하면 나는 그를 때려죽일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됩니까? 당신은 나에게 관심이 없는데 내가 관심이 있을 것 같나요? 나는 죽어도 상관 없는데, 당신이 죽으면 내가 어떻게 신경쓰겠습니까? 당신을 성취하십시오. 황소 머리와 말 얼굴을 한 어린아이를 보내어 데려가서 죽이게 하라 이는 사람이니라.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나는 내 자신의 원칙을 별로 믿지 않습니다. 내가 선언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는 이루어질 것임을 압니다.

4. 요나가 그토록 화를 낸 것은 합리적인 일입니까?

하나님은 요나에게 물으셨고 그에게 몇 가지 생각하는 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요나 4:9)

나는 얼마나 많은 형제자매들이 요나와 같은지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자신의 원칙에 대한 믿음은 아무리 생각해도 소용이 없고 불운을 가져올 뿐입니다. 축복의 길? 그건 작동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축복받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나는 이유만 이야기하고, 죽기까지 이유를 이야기한다. 이유를 가지고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움직일 수는 없다. 이성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아, 사람은 이래야지 자기 안의 진실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합리적인 사람들은 모두 바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합리적인 사람들이 왜 멍청한가? 그 사람이 한 말은 그 사람에게 해롭고 불편함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해하지 못하면 불편할 것 같나요? 우리 형제자매들, 예를 들면 시어머니, 며느리, 며느리는 항상 자신이 무리하다고 느끼는데, 시어머니에게 선악을 말할 것인가? 아니요. 그녀는 단지 자신이 정당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가끔 저를 설득하려고 하는 형제자매들을 만나는데, 이유를 설명하기도 전에 '선생님, 정말 안타깝습니다. 나한테 미안하면 나한테 뭘 하려는 거지? 다른 형제자매들은 이렇게 믿습니다. 선생님, 그 사람에 대해 말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이 당신을 매우 불쌍히 여길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를 불쌍히 여기나요? 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혀 넘어뜨리는 그런 일이 있나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중에 나는 이 자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나한테 미안하다고 생각하나요? 그 사람은 내가 자기에게 미안하다고 느꼈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이 요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쌍히 여겨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지 않았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요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죽기까지 화를 내는 것이 옳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과 경쟁하고 있습니까? 사실 하나님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다.이는 이스라엘 나라를 멸망시킨 니느웨입니다.이것은 남경 대학살을 일으킨 일본 마귀들입니다. .

어떤 사람이 나에게 “목사님,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단지 적이 어떤 것에 의해서도 파괴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불행을 기뻐하지 마십시오. 불행을 기뻐하는 자에게는 재앙이 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요나가 관심을 갖는 것은 자신과 그의 나라입니다.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하나님이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닙니다.

이래서 사람은 거짓이고 하나님은 현실이시다. 요나가 니네베에 재난이 닥치기를 바라는 것이 합리적입니까? 죽음조차도 합리적이다. 요점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은혜와 자비가 없는 원칙이다. 그러므로 중국 운명신학을 중국 운명신학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비전신학은 이 땅의 모든 민족에게 복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과 또 그것을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요나에게 “이것이 당신에게 합당합니까?”라고 여러 번 물으신 이유를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에게 미리 알려드립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합당합니까? 당신의 이론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을 속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 거짓말쟁이들을 저주해 주시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헛되고 여러분이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을 귀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은 죄인이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며, 소돔과 고모라 백성이 죽는 것도 원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회개합니다. 우리 모두는 회개하는 마음을 갖고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게 하는 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요나가 그토록 화를 낸 것이 합당한 일입니까? 무모한.

5.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신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가 이 박을 심지도 아니하고 가꾸지도 아니하였거늘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죽는 이 박을 네가 아끼는 것이 하물며 이 큰 성 니느웨이냐? 왼손과 오른손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12만 명이 넘으니 나에게 가축이 많으니 어찌 그것을 소중히 여기지 아니하겠느냐?”

우리의 많은 형제자매들이 빚을 지고 블랙리스트에 올랐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여러분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벌써 여기서 나오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요? 나오세요, 하느님 감사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고, 육신을 염려하는 사람이 많고, 선과 악을 아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사람을 멸하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을 읽고 하나님이 매우 잔인한 하나님이라고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이 가득한 하나님이시니 여러분과 나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니 우리가 아직 살아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요나처럼 원칙을 지킨다고 해서 우리를 멸하지 않으실 것이며, 우리가 니느웨와 같다고 해서 잔인하게 행한다고 해서 우리를 멸하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루시기 위해 많은 고문을 고안하셨지만 그들을 멸망시키지는 않으셨습니다. 왜? 그들이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교리가 아닌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람들은 매우 잔인하며 모두 경쟁자를 죽이고 싶어합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면 상대를 죽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을 귀히 여기시며 인간의 회개를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회개할 때 결코 충분히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나는 이생에서 은혜와 자비가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알게 되어 특히 기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몇 번이나 죽었을지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나서』의 마지막 장은 우리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드디어 깨닫게 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60만 명을 죽이기도 하셨습니다. 죽음을 파헤쳐야 하는 자들인가! 또한 하나님께서 바로와 이집트인의 장자를 모두 죽였다고 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좋아하신다는 뜻도 아닙니다. 아니요!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기를 원하셨고,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인들에게도 회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실 수도 있었지만, 그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않기로 선택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두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렇게 어리석거나 고집을 부리면 안 됩니다. 사람이 살아갈 여지는 항상 있습니다. 사실 우리 중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지만, 더 이상 하나님을 모르는 형제자매들이 정말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병을 고쳐주신 후를 돌아봅니다.

한번은 몸이 마비되어 침대에 누운 사람이 있었는데, 그러다가 공장을 더 이상 가동할 수 없게 되었는데, 친구가 그 사람을 우리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와 함께 기도한 후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녀는 수년 동안 몸이 마비되어 있었지만 결국에는 더 이상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이런 사람인 줄 아실까요? 알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녀를 치료해 주셨나요? 그 사람이 일을 잘해서 병을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우리는 그녀와 함께 계속 기도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건 안 돼요. 제가 어떻게 당신과 함께 주님을 믿을 시간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아직도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해야 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아주 흔한 일입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와 함께 기도함으로써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자기 사업에 바빠서 돈을 벌러 갑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나님은 그 병이 다시 돌아와서 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왜?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기시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을 핍박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사람을 죽도록 벌하지 않으신다.

당신은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지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굳게 붙잡고 하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이렇게 대하셨습니다. 그는 세 번이나 죽기를 구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경외하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를 숭배한다고요? 모든 사람이 지능과 지혜를 얻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하나님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 축복이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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